죽음의 계곡.
그 옛날 프랑스
1개 여단이 전멸한 곳이고 한국군 부대도 많은 희생을 치른 곳이다.

적군이 처음에는 몇 명이 나타나면서 작전이 시작된다.
몇 명이 사살되고 전과를 거둔다.
그러다가 또 나타난다. 그리고 또 전과를 올린다.
몇 번 반복되면 아군은 자신도 모르게 계곡으로 깊숙이 빠져 들어가 버린다.
이때 적군이 앞뒤를 막으면 갈 곳이 없다.
천연 요새인 이곳은 양옆이 절벽이라 우회도 안 된다.
더구나 앞뒤 통로가 좁아 전진도 후퇴도 할 수가 없다.
무장헬기로 사격을 가해도 동굴 속에 숨어 있어서 소용이 없다.
결국 한국군 부대장이 내 놓은 최대 작전은 같이 죽는 길뿐이다.
전투기로, 대포로, 마지막에는 무장 헬기로 마감했다.
아군, 적군 모두 전사하고 생존자는 무전병 1명뿐이었다.

전쟁이 우리에게 준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저 욕설과 싸움과 황폐한 마음과, 술과 여자와 이기심 뿐 이였다.
저 메콩강이 거슬러 올라갔으면 좋겠다
철모를 벗고 흘러가는 강물에 나를 보내고 있었고
불어오는 열풍 속으로
강물에 비친 내 추한 모습에 M.16을 갈겨대고 있었다.

ㅇㅇ 작전 때 죽은 마이와 남이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 날은 중대와 합류 시간이 남아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베트콩의 이동이 포착되었다.
이들은 약삭빠르게 농부로 위장하고 있었고,
태연하게 우리 곁을 지나가고 있었다.
이 하사는 예민했다.
수색이 시작되었고, 결국 농기구와 함께 포장한 소총2정을 발견하고
베트콩2명은 현장에서 소대원이 보는 앞에서 병정놀이 때와 같이
천천히 잔인하게 대검으로 죽이고 있었다.
그 것도 신병에게 여기도, 저기도 자르라고 시키면서.........,
신병들에게 담력을 키워준다는 명분으로 즐기고 있었다.
그것도 그 부인들이 보는 앞에서............,

부대는 출발하고 있었지만,
부인들은 뒤를 돌아보면서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매를 맞고 억지로 끌려오고 있었고, 깊은 정글로 들어서고 있었다.
점심 식사 때 또 하나의 비극적 사고가 나고 있었으니
그것도 인간성을 상실한 전쟁의 비극으로 치부될 것이다.
소대원 42명중 소대장, 전령, 무전병, 위생병, 파견된 포병 등 5명은 알지도 못하고
나와 신병 10여명은 방관자가 되고
맑은 하늘 아래 2명의 여자는 무참하게 능욕 당했고 사살되고 말았다.

울먹이고 말했다
"이 하사님! 시체나 묻어주고 갑시다."
"날씨가 더워서 금방 썩는다" 라고 말하면서 출발을 서두르고 있었다.
"나뭇잎이라도 덮고 갑시다" 말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가슴에서 끓어오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이 하사 목에 총을 대고 있었다.
"이 짐승 같은 놈! 너도 묻고 가겠다."
소총의 잠을 쇠를 푸는 소리에 이 하사는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래! 묻어주고 가자." 떨고 있었다.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라.'
그는 무릎을 꿇고 있었다.
쟝글화로 허벅지를 두 번 문질렸다. 죽는다고 나뒹굴었다.

나도 정신이 없었다.
다만 그렇게 해서라도 그 영혼들을 위로하고 싶었다.
모두가 미쳐 있었다.
전쟁이라는 상황은 모두를 돌게 만들었고,
실제로 돌고 있었고, 모두가 선을 넘고 있었다.
인간으로서의 기본 도리를..............,
신병 두 명의 땀은 거룩한 두 여자를 묻어주고 출발할 수가 있었다.

첨병을 서고 있었다.
출발할 때 이 하사에게 말했다.
나는 뒤에도 눈이 있어! 서툰 짓은 이제 그만두시지?
한참을 가다보니
지도상의 길이었다.
손으로 정지하고 소대장에게 연락했다.
이 길은 위험하니 좌표를 보고 다른 길로 가자고 했다.
통상 잘 알려지고 좋은 길은 부비추랩과 저격수의 위험이 항상 뒤따르고 있었다.
그냥 전진하라고 연락이 왔다.
다시 한번 요청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번에는 소대장이 직접 왔다.
느낌이 좋지 않고 이 길은 위험하다고 말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1시간쯤 전진하다가
휴식을 끝내고 일어서고 있었다.
이때 C.K 소총 소리가 2번 울리면서 비명 소리가 났다.
저격수의 조준 사격이었다.
이 하사는 눈을 잡고 쓰러지면서 의식을 잃고 말았다.
베트콩은 우리를 읽고 있었다.
우리 뒤를 따라 다니고 있다가
저격하기 좋은 곳을 골라 기다렸다가 조준 사격하고
도망을 가는 수법이었다.

그런데 왜? 하필 이 하사일까?
인과응보가 금방 나타나는 것일까?

이렇게 전쟁은
필요 없는, 양쪽 다 이득이 없는 소모전을 계속할 뿐이다.
높은 사람들의 명분에 의해서.................,
우리들의 삶도 똑같이 적용되는 지도 모른다.
그저 명분, 명분뿐인지도 모른다.

잠에서 깨어나 캄란 항을 돌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고 있었다.
그 전쟁놀이를!!!!!!!

방관자!
어쩜 삶에 방관자인지도 모른다.
오직 자아만을 위해서
저 상하의 나라에서는 비굴할 정도의 방관자였고,
지금도
살아오면서
늘 방관하고 있었다.

이제 새 삶을 살면서 다시는 방관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우선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기로 생각하면서................,

(2002.4.22. 보리밭님이 쓴 글)





- 내 생애 처음 있는 날-


하루 일을 마치고 여느 때처럼,
컴퓨터에 앉아 있는 날.
대 1 년생인 딸이 왔노라고
인터폰을 눌러댄다.

그렇잖아도 삼촌 집에서 아르바이트 한답시고
집에 안 들어 온지가 며칠이 되서
퍽이나 보고 싶고, 가슴이 저려 오던 터에
얼마나 반가운지 다 큰 딸 아이한테
입던 모양 생각지 않고 달려 나갔다.

마음은 꼭 안고 볼에 뽀뽀라도 해 주고 싶건만
지금 이 순간, 딸아이는 너무나 의젓해진 모습으로
피식거리며 제 자리로 돌아간다.
믿음직스러우면서도 서운한 마음이 한 구석에
밀려온다.
이젠 그러려니 현실을 인정한 채
컴퓨터에 앉아 하던 일을 하는데
아빠의 등을 짚던 딸아이가 웬 예쁜
봉투 하나를 들이 내민다.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 치고는 너무나 얇아서
무슨 문화 티켓인가고 열어보니
손길타지 않은 십만 원 짜리 수표 한 장이 나온다.
옳거니, 애가 아르바이트를 한다더니
그 월급이랍시고 아빠에게 용돈을 내미는
딸아이를 볼 때
이상야릇한 기분 이루 표현 할 수가 없다.

말이야 아빠 현찰 좋아하는 것 어찌 알았느냐고
웃어 넘겼지만 그 느낌, 그 깊이를 나도 모르겠다.
엄마는 예쁜 목걸이며 귀걸이
어린 동생은 예쁜 손목시계
참,
나도 이제 늙어가는 한 과정을
거치고 있는 순간 인지도 모르겠다.

착한 우리 딸.
안고 키우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기특도 하지 ㅉㅉㅉ


**********************************************************







-아름다운 사람들-

강가에 노을이 비낄 때면, 불타는 그 아름다움에 넋을 읽는다.
하루 동안 세상을 비추고 서산으로 기울어 가는 태양은 하얀 솜 같은 구름에다 붉은 그림을 그린다. 벌레들도 제 분신을 위해 집을 짓고 떠난 지 오래, 그 강가의 언덕에는 갈대의 노래 소리가 노을에 실려 온다.

누가 나이 들어감을 서럽다 했는가?
힘겨운 전장에서 물러 나와, 젊음을 불태우던 한 마당이 아련한 꿈길처럼 느껴진다.

한가한 시간, 그토록 갖고 싶어하던 나만의 시간이 이제 여기 있다.
산이 좋아 산에 가면, 인생의 호연지기가 거기 있어 좋다. 물이 좋아 낚시가면, 시간에 쫓기지 않고 느긋이 자연 속에 묻힐 수 있어 좋다.
평생 동안 벼르기만 했던 선현들의 지혜를 찾아 책 속에 묻히니 마음이 살찐다. 내 몫을 위해 남의 마음을 아프게도 했는데, 이제는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 줄 수 있으니 이 또한 뿌듯하지 않는가. 적은 돈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 좋다.

내 전철을 밟는 젊은이들을 보며, 세월이 무상함을 알려 줄 지혜가 있으니 이 또한 아름답지 않는가. 닫혔던 내 마음을 열어, 세상을 바라보니 배신과 투쟁이 한 줄기 바람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마음이 푸근하다.

뭔가 못마땅하던 아내의 얼굴에 하나 둘 주름이 생기는 것을 보고, 나 같은 바보 만나 고생만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측은한 생각이 앞선다. 소원했던 친구들을 가끔 만나 추억 어린 정담을 나누니 그 옛날의 우정이 살아난다. 젊은 혈기에 눌려 버렸던 양심이 다시 고개를 드니 인생의 의미가 새롭지 않는가. 추억 속의 친구들, 철없이 소홀했던 친척들, 내 인생에 큰 획을 그어준 은사, 나에게 조그만 도움을 주고 훌쩍 떠나버린 사람들, 이런 인연들이 그리워진다. 그리고 둥지를 떠나는 자식들을 바라보며 대견스러움과 안쓰러움과 걱정이 교차되지만,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도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 낡은 둥지는 내 몫이지 저희 몫은 아니지 않는가.

이런 깊이 있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 장년의 지혜요 아름다움이다. 무엇이든지 완성은 아름답다. 더러는 젊은 시절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자신의 걸어 온 길을 후회할 지라도, 이 모두가 한 줄기 바람이었으며, 잠시 일었다 사라져간 구름임을 알면, 참으로 마음이 편하다. 이런 사람은, 비록 세월의 풍파가 자신을 고통의 구렁텅이로 떨어트리고, 한없는 자괴감을 가져다 주기도 했지만, 그 황혼은 아름답다. 인간적인 양심에 따라 살았기 때문이다.

이웃과 스치는 인연들에게 자신의 양심을 내 보일 수 있는 인생은 아름답다. 어린아이의 해맑은 마음처럼, 주위 사람들에게 미소를 보낼 수 있는 황혼은 아름답다. 온갖 삶의 지혜의 창고를 열어 세상에 빛을 주는 황혼은 빛이요 소금이다. 노욕을 버리고 자연스럽게 새록새록 늙어 가는 황혼은 저녁 노을 보다 더 아름답다.

그렇다. 우리는 마음을 비우려는 사람을 우러러 본다. 마음을 완전히 비운다는 것은 무척 어렵지만, 비우려고 노력하는 자체가 아름답다. 고운 말 쓴 말을 웃으며 받아넘기고, 잘못하는 사람을 용서해주고, 꼭 바로잡아야 할 사람은 준엄하게 꾸짖을 수 있는 사람은 어디 가든 거침이 없다. 비록 주머니에는 먼지만 날려도 떳떳해서 좋다.

가진 것을 남에게 베풀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 황혼은 사랑과 자비 그 자체이다. 젊은 시절에 움켜쥐기만 하던 주먹을 풀어, 어려운 사람을 향해 내 밀수 있는 사람은 그 마음이 얼마나 기쁘겠는가. 주는 참 기쁨을 아는 황혼은 아름답다.

사랑의 마음으로 하루를 여는 열린마당의 님들도 아름답다. 주고받는 글들 속에는 삶의 애환이 서려있고, 남을 위하는 마음들이 너무너무 보기 좋다. 나는 열린마당의 님들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글 또한 진솔한 인생이 있어 참으로 좋다. 다듬어지지 않은 글 속에서 나는 님들의 진주 같은 마음을 읽는다. 때로는 눈시울을 붉히면서도 읽는 재미는 솔솔하다.

누가 늙어 감을 서럽다 했는가. 열린마당의 님들을 보노라면 즐거움이 마음에 가득하다.
서산에 걸린 노을과 강가의 갈대의 노래 소리는 참으로 아름다운 황혼의 음악이다.





어제 춘천에서 있엇던 국제 기업인 마라톤대회에
하프코스(20KM)에 참가했다.
벌써 금년들어 하프코스만 세번 완주했다.
어제는 500여명이 참여해서 중간 정도의
성적을 유지했다.
모두가 20대-3.40대들이고 50대는 단 두명 뿐...
날씨가 너무 더워 18KM지점을 통과할 땐 너무 숨이 차
상의를 벗어 머리에 두르고 정말 젖먹던 힘까지
다 쏟아 결승점까지 달렸다.
거의 쓰러지기 직전에 꼴인한 것이다.
끝이 안보이는 아스팔트 위를 달리면서
내 인생을, 내 삶을 반추해 봤다.
좌절과 울분과 슬픔으로 가득찬 내 삶의
긴 여정!
난 내 스스로 내 인생을 ( 못터진 DYNAMITE)라고
생각해 본다.
난 내 젊음의 열정을 공부하는 데 다 바쳐왔었다.
난 내 인생에서 공부를 빼 놓으면 아무것도 한 게
없을 정도다.
최고과정까지 수료하고 우리나라에서 최고 권위있는
학술지에 10편 이상의 논문을 수록했다.
고등학교 선생을 하면서 기적과 같은 일을 했지만
내 인생은 내 삶은 달라지지 안했다.
그저 초라한 시골 훈장으로 끝날 내 삶!
그저 마음이 슬프고 외로울땐 한없이 달려야만
잊을 수 있다.
내 목숨이 부지하는 날까지 난 달릴 것이다.
어쩌면 쓰러져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때까지......
사랑하는 마누라여!
그리고 나의 딸. 아들아!
너희는 아느냐?
이 처절한 마음을......

(글쓴이 : 항가산, 2002.5.20)







어린이 날이 다가 오니 생각나는 한 아이가 있다.
직장에서 자매결연 맺은 택시기사들이 만든 교인들의 모임이 있다.
그들은 한번씩 봉사모임을 가지는데 그날도 장애학교의 학생들과
바다가를 간다고 했는데 우리 병원에서 직원(간호사)이 따라 가야 한다기에
내가 앰불런스를 타고 그들과 함께 갔다.
출근하여 까운을 갈아 입고 현관 앞 앰불런스에 타고 학교로 갔다.
그곳에 가니 벌써 개인택시 기사들과 그의 가족들, 함께 갈 학생들,
학부형으로 북새통이었다.
교장선생님의 훈시를 듣고 우린 각자 차에 타고 출발을 했다.

물른 학부형들은 따라 가지 못한다.
택시 백여대가 한줄로 줄을 서 가고 맨 앞에는 경찰 오토바이로
호위를 하고 참으로 장관 이었다.
난 맨 뒤에 앰불런스에 올라 타고 ...........
몇시간만에 도착한 바다가 아침부터 날씨가 구질구질 하드니
결국엔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차에서 내려 좋아라 한다.
난 차에서 내려 구급가방을 메고 그 뒤를 따르고.........

그때 저만큼에서 한 아이가 더듬거리며 바닷가 멀리서 앉아
돌을 만져보며 신기해 하고 있었다.
나는 그애에게 다가 갔다.
그 아이는 맹인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이란다.
참 잘 생긴 귀공자 같은 아이였다.
"너 이름이 뭐니?" "네 ***인데요 누구세요?"
"으~~응 난 너희들 따라 온 병원에 간호원누나야"
"네에" 하고 대답을 하는데 마음이 아팠다.
그애 엄마는 멀리서 다가 오지도 못하고 바라 보기만 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그렇게 혼자 할수 있도록 교육을 시키는 거라고 했다.
그래서 다시 그애에게 말을 걸었다.
"**아! 나하고 바닷가 같이 가 볼까?"
"정말요? " 하며 좋아 했다.

나 그애 손을 잡고 바닥 가까이 데리고 가서 바닷물에 손을 당겨
물을 만져 보게 했드니 너무 좋아 하며
"누나! 바다물 짜다고 하든데 나 바다물 먹어 보면 안되요?"
"그래 먹어 볼래 더러울텐데?"
"아니 괜찮아요"
그애의 말에 난 손으로 바다물을 조금 담아서 그애 입에 넣어 주었다.
그때 그애가 갑자기 "에이~~~ 짜기만 하고 맛이 머 있래" 하며
침을 퇴 뱉으며 깔깔 거린다.

난 그애 손을 잡고 바닷가를 그렇게 걸었다.
연인들처럼 또는 아들과 엄마처럼.......
왜 그애가 눈에 띄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냥 그애가 그 많은 아이중에 내 눈에 띄었고 그저 나도 모르게
내 발길이 그애한테 향했을 뿐이다.

아마도 그애와 전생에 인연이 있었나 보다
그애 엄마는 내게 참으로 고마워 했다.
돌아 올때도 각자 택시에 올라 타고 한줄로 질서 정연하게 왔다.
그런데 대구에 다와서 앞에 차가 사고가 나고 말았다.
난 얼른 차에서 내려 달려가니 세상에~~~~~~ 바로 그애가 탄 차가 아닌가
택시기사는 멀쩡한데 그의 부인이 온통 얼굴에 유리 조각으로 박혀서
얼른 큰병원으로 옮기고 다행히 그애는 그리 심하지 않아서 곧 우리 병원
으로 옮겼다.

자가용에서 내린 엄마는 정신 없이 응급실로 뛰어 오드니 아들을 붙들고
대성 통곡을 하며 우는데 우리들 마음이 아팠다.
난 보호자를 진정 시키려고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물을 주며 진정 하라고 하니
울면서 하는 말이 그애가 어릴때 교통사고를 당해 그때 눈이 실명하게
되었다며 우는데 난 그말에 할말이 없었다.
그래서 실명까지 하게 되었는데 또 교통사고를 당했으니 엄마로서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그애는 어른처럼 엄마를 보고 "엄마 울지마 나 아프지 않아 "
하는데 그애의 그 말이 너무 가슴 아파서 나도 울고 말았다.
다행히 몇군데 상처만 나고 이상 없어서 소독만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며 내내 돌아 보며 손을 흔든다.
"누나 안녕"

정도 많고 얼굴도 잘 생긴 그 아이,
더더욱 심성이 곱고 명랑하고 소리내어 잘 웃든,
그 아이가 갑자기 생각 난다.
지금 아마도 중학생이 되었겠지.......
잘 자라고 있겠지.
그땐 어려서 그랬겠지만 이제 사춘기에 들고 하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친구들도 많이 놀려대고 따돌림도 더러 받겠지.

그애를 생각 하니 마음이 아프다.


(글쓴이 : 새침이, 2002.5.4.)







자전거 타고..
빗속을 달렸습니다..

그 상쾌함이란..
누가..알런지..

가슴속에 잔잔하게 일던 파문이 ..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얗고 투명하게 되어가고 있었죠..
동그라미 두개..그위에..내 발을 얹어놓고
힘차게 밟았습니다..

마치..
길다란 기차를 운전하는듯 했습니다..

요리 조리..피해가며..그리고
가느다란 빗줄기를..가슴에 꽃아가며..

비와 나는 얘기를 했습니다..
내..가슴에 숨죽여야 하는 고통도..
작고..보잘것 없는 내..바램도..

모두 네가 가져가다오...

비는 내게 말했습니다..
그래..단하나만 빼놓고..모두 내게 다오..
너의 맑은 사랑..
너의 순수한 영혼..그것만 네게 남겨두고
고통과..절망..그리고 병든 육신의 잔해들..
그런것 모두..모두...내게 다오..

그렇게 비는 내게 말했습니다.

개울로
강가로..
그리고 내가 두려워 하고 있는 ..그 바다로
모두 가져가마...

비는 내게 그렇게 속삭였습니다..
참..
고마운..고마운 비였습니다..

그런비가..예고도 없이 오는것이..
나는 참 불만 스럽습니다..
자주 자주 보고 싶거든요...^^







별이 빛나는 밤
실개천 따라
소복입은 처녀처럼
자지러진 메밀꽃이
허연울음 흘리는
그 길을 별이 되어 걷습니다


풀섶의 개구리
가끔 두려움으로 다가오길래
서툰 어릿광대처럼
낯선 몸짓하지만
익숙한 밤길은
어머님 품처럼 아늑합니다


뒷산 접동새
무엇이 그리 슬퍼 우는지
쉬어가려는
풀잎바람마저
서둘러 어둠속으로 데려갑니다


이 어둠 다하기 전
그대 이름 석자
가만히 불러 봅니다


내 안의 유일한
빛으로
다시 살아나
이 밤을 밝힙니다


사랑의 근원
그대에게서 시작되었고
종착점 또한 그대이기에
마르지 않는 나의 사랑시
사위어가는 마지막 촛불이 됩니다



<종려나무 메뚜기>

월드컵 준결승하는 날이다.
드물게 좋은 날씨다.
하늘은 푸르고
구름은 편안하고
먼 데 경치는 씻은 듯이 또렷하게 보이고
가로수는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린다.

얼마만에 걸어보는 인사동길인가.
어렸을 때는 거의 매일 다니던 길인데...
아마 20년은 족히 됐지?

깨끗하고 멋지게 변했다.
둘레둘레 구경하며 여유롭게 걸어간다.
화랑도 많고 표구점, 필방, 도예점, 공방,
골동품점, 민예품점, 자수점, 개량한복점,
그리고, 여기저기 내걸린 음식점 간판.

점심을 먹어야지.
만두 잘하는 집이 있다던데...

사동면옥을 찾았다.
실내장식을 요란하게 한 집이다.
뭘 이렇게 정신없이 만들어 놓았나...
만두국물맛이 독특하다.
산초, 황기 맛인가?
해초맛은 확실하다.
만두는 그냥 담백하고 부드럽다.
밑반찬으로 나온 호박새우젓조림 맛이 좋다.

안국로터리 쪽으로 스적스적 걷는다.
건물들은 깨끗하고
찻집들은 개성이 있다.
보도와 차도 사이에는
가로수와 꽃과 큼직한 직육면체 석물들이
줄지어 있다.

사람도 많다.
붉은 티셔츠 차림이 여기저기 보이고,
옛날신사 티가 나는 분들도 이따금 보인다.
친구분들과 나들이를 나오셨나?
외국인 관광객도 꽤 있다.
키가 육척에 가까운 사십대 서양여자,
그 여자가 입은 스카프처럼 하늘하늘한 치마,
어쩐지 경박스러워 보이는 일본 청년,
가무잡잡하고 입술이 두터운 편인 동남아 사람.

안국로터리 부근 크라운베이커리 앞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어떤 이가 뭘 만들고 있다.
잎사귀를 길게 찢어서
척척 접고 매듭을 짓고
송곳으로 구멍을 내서
그속으로 꿰어당기고...
그렇게 메뚜기를 만든다.
진짜 같은 메뚜기다.
재료가 무어냐니까 종려나무란다.

삼천원에 한 마리를 사서
무얼 할까 생각한다.
누구에게 줄 생각이다.
옳거니...
세 번째로 칼럼지기가 되시는 님께 드리자.
<열마대상>이니 <오월의 여왕>이니
맨날 엉터리 사이버 상만을 올렸던 데 사죄도 할겸.

다시 종로 쪽으로 걸어간다.
시골 촌놈처럼 두리번 거리면서...
스타벅스커피점도 인사동길을 침범했다.
종로에 거의 다와서 大臀女를 보았다.
상돌벤치에 퍼져앉아서 무얼 먹고 있는데,
꼭끼는 흰바지에 정말 안반만하다.
역시 서양사람들은 좀 멍청해보인다.

촌놈 인사동 구경에 기분이 즐거워진다.
그런데 아차 !
십년 넘게 가보려 했던 <歸天>을 깜빡했잖아 !!!.


.( 주 : <歸天>은 작고하신 천상병 시인의 부인이 운영하는 찻집이다.
<종려메뚜기>는 내 책상속에 고이 모셔놓고 있다.)


작은큰통.200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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