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생 아다다 **






내 슬픈 전설의 22 페이지( 그림 천경자 )




저는 착한 사람을 사랑합니다
저는 순수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저는 저기 서 있는 사람은
하얀 사람이다 라고 하면
하얀 사람인줄 아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아다다~순진하고 착했습니다
제가 50평생 동안...가장 좋아하는 친구
친구의 동생도 아다다처럼 벙어리였습니다
헤헤 웃는...그냥, 아아"의 소리 밖에 못하는.
그런 친구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국민학교만 나오고
더이상 학교를 가지 못했습니다
집에서 안 보낸 것입니다
학교는 못가도 그녀는 웃으며
싸돌아 다니기만 했습니다.
농사 일과 집안 일은 맡아놓고
그녀의 차지였습니다

친구네 집은 우리 마을에서 강건너
저편인데 시오리 거리였습니다.
힘드는 생활인데도 언제나 웃는 얼굴로
반기며 오빠와 오빠 친구인 나를
하염없이 좋아만 했습니다.
그냥 얼굴울 보면 압니다
눈빛만 보아도 압니다.
맨날,여기 저기 바보라 소리를 듣는
그 동생이 얼마나 우리들 오빠들을 좋아 하는지를..
행동과 말에서 표정에서 알 수 있습니다.
위선과 가식이라고는 전혀 티끌조차도
찾아볼 수 없는, 못생긴?=그러나 너무도 예쁜
그런 친구의 동생이었습니다

또래 애들은 고등학생이었는데도
그녀는 일만하는 시골소녀였습니다.
우리들이 대학생이였을 때에 친구 집에서
그녀를 볼라치면 항상
솥두껑처럼 큰 두 손을 휘휘 내저으며,
논으로 밭으로 나다니며..밭을 매는
키는 멀대처럼 솟고,저고리 해삼 적삼은 헤져
햇볕에 그을린 붉은 속살이 드러나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언제나 미소지으며, 아다~로 반기는,
그녀는 제 친구의 동생이였습니다.
.............

세월이 흐른 뒤였습니다
난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막 되던
어느 해에 친구의 집에 갔었습니다,
그 때 친구 동생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친구의 동생을 물었지만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의 눈가엔 작은 이슬 같은 눈물방울이
맺히고는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도 더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집을 나서는 내내 저의 눈 앞은
그 동생의 해맑게 웃는 옛 모습만 어른거렸습니다
........
그 뒤 들리는 이야기로 여름 날
홍수로 불어난 내를 건너다 물에 휩쓸려
그렇게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고향의 江은 평상시에는
조그만 물줄기가 맑게 흐르는 내인데도,
비만 오면 맹수처럼 불어나는
물쌀돌이를 일으키며 무섭게 내달리는 江이 됩니다

곧 아랫 마을 허리가 꼽추인 총각에게
시집 가는 날을 잡아놓고 기뻐하고 좋아 했었다는데
그날도 일만시키는 성화에 못이겨 강건너 밭을 매러 갔다가
갑작스레 쏟아진 여름 폭우에 넘친 강물을 건너다 그랬답니다,
.......

.......

그후 이제는 벌써 20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잊고 있었지만... 그녀는 너무도 착한 이미지로
지금껏 제 맘 속에 남아있습니다
...
...
백치아다다(계용묵의), 노래 아다다~
아다다가 생각나는군요
백치 아~다다,..누가 불렀던가요
오래 전의 노래 아다다
너무도 착하고 착한 우리 아다다,
너무도 가엾은 우리 아다다,
불쌍하고,불쌍한 착한 아다다
몇 년 전인가..이미자와 조영남이
세종문화회관 이미자콘써트에서
이 曲 아~다다를 부르더군요,
미칠듯이 밀려 왔다가는 사라지고
다시 밀려오는 애원의 곡조가
이미자외 조영남의 美聲으로 어우러져
제 마음을 후비어
제 눈에서는 눈물이 주루루 흘렀습니다


글/이주민








햇살이 몹시도 따뜻하던 어느 봄날에 우리 동네 버스 정류장 앞에 어떤 할머니께서 좌판을 펼쳐 놓고 장사를 하시고 계십니다. 지나가며 우린 이다음에 나이가 들어 부자는 아니더라도 우리 부부 손잡고 공원에라도 산책하는 여유와 국수 한그릇 사 먹을수 있는 형편이라도 되어야지 우린 저렇게 되게 낭비말고 부지런히 살자며 이야기를 하며 지나갔습니다.



그런 한달 후 친정 엄마께서 우리 집에 다니려 오셨습니다. 아침에 식구 모두 직장에 나가고 혼자 심심하셨는지 운동 삼아 동네 한바퀴 도시다가 할머니를 발견하시고 과일 좀 사오셨다며 저녁 먹은 후 내 놓으십니다. 그러면서 젊을땐 고왔겠다며 "그 연세에 쯧쯧" 혀를 차시며 안타까워 하십니다. 그 다음날 엄마께서 좋아하시는 메밀국수를 하려고 장국 만들어 식혀두고 국수를 삶아 놓고 냉장고를 뒤져 파를 찾으니 다 먹었는지... 할 수 없이 수퍼에 파를 사러 가다가 문득 할머니 생각이 나서 발걸음을 돌려 할머니께로 향했습니다.



"할머니 잔파 천원치만 주세요. 봉투는 여기 있으니 여기에 담아 주세요." 파가 담긴 봉투를 내미시며 한줌 덤으로 더 주시며 고마워 하십니다. 봉투까지 들고 와서 더 주는 거라며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참으로 푸근해 보이고 비록 자판에서 장사를 하고 계시지만 고운 분이라 여겨졌습니다.



시장 다닐 때면 꼭 장바구니와 비닐봉투를 가지고 다닙니다. 내게는 비록 하찮은 봉투이지만 장사꾼들에게는 돈이니까요. 좀 귀찮더라도 가져갑니다.



난 가끔 할머니께 뭘 사러 갔다가 놀다 오기도 하며 시장에서 사고 받은 봉투는 깨끗이 씻어 차곡차곡 말려 두었다 할머니께 갖다 드리면 고마워 하시며 과일 몇개 집어 주십니다. 내가 받지 않으면 도리어 할머니께서 미안해 하실까봐 그중에 못생기고 흠 있는 걸로 몇개 골라 도망가듯 뛰어 가면 할머니께서는 나를 부릅니다. 그건 팔지 못해서 할머니께서 먹을려고 두었던 거라며 좋은 것 가져 가라고 고함을 지르십니다. 난 뒤돌아 보며 "할머니 잘 먹겠습니다." 하고는 얼른 집으로 갑니다.



어느날 할머니께 김치지짐 몇개 구워서 갖다 드리면서 가족이 없으시냐고 여쭈니 "놀면 뭐하노 힘 있을때 움직여 손자 용돈도 주고 내도 좀 쓰지" 하시면 씁쓸하게 웃으십니다. 젊은 시절때 참 고왔던 얼굴이며 그런대로 사셨던 인품인데 어찌하여 저 연세에 길거리 자판에서 장사를 하시며 사시게 되었을까 가슴이 아픕니다.



난 가끔 남편과 다투거나 남편이 늦게 들어오는 날엔 지짐 몇개 구워 할머니께 갑니다. 어린 시절 동네 머슴아들에게 맞고는 친할머니께 이르듯이 할머니께 남편 흉도 보며 화를 내기도 하면 할머닌 사람 좋은 웃음으로 "참거라" 하십니다.
"참는 사람이 이기는 기다. 남정네들 알고 보묜 불쌍하데이 그래도 색시 신랑은 그만하몬 된기다, 꼭 시장 같이 댕기고 심부림도 잘 하드마이 천난만날 젊인기 아이라 쌔움 하지 말거라" 하십니다.
난 할머니 말씀에 잠시 내 자신이 부끄러워 집니다. 그런 내 투정을 항상 잘 받아 주시며 살아가는 지혜로운 말씀을 더러 해 주시는 할머니가 참 좋습니다.



비가 아주 많이 내리던 날 밤에 남편이 내게 그럽니다. 비오는데도 천막밑에서 찬밥 드시고 계시기에 인사도 않고 얼른 와버렸다고 하는 남편도 마음이 안쓰러운가 봅니다. 내내 그말이 가슴에 맺혀 있었습니다. 그날도 남편이 늦는다는 전화에 남편줄 밥을 도시락에 담고 지짐 몇개 굽고 된장찌개 가지고 할머니께 갔습니다. 비닐을 덮어 쓰시고 계시는 초라한 모습에 공연히 화가 났습니다. 도대체 가족들은 뭐 하는 사람들인지 그들이 미웠습니다. 한사코 마다하시는 할머니께 던지듯 도시락을 드리고는 돌아서는데 내 눈에는 빗물인지 눈물인지 흘러 내리고 있었습니다. 밤 늦게 들어 온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잘 했다며 내 등을 두드려 주는데 갑자기 왈칵 또 눈물이 쏟아집니다. 아마도 예전에 내가 고생하던 그때가 생각나서 그런가 봅니다. 울면서 나 늙어서 할머니처럼 그렇게 살기 싫으니 돈 많이 벌라고 하니 남편은 웃으며 알았다며 그런 내가 어린애 같다고 꼬옥 안아줍니다. 그런 남편이 듬직해 보입니다.




(2002,3,24, 새침이님이 쓴 글)







비...... 글:보니/ 강길수



비가 오고있는 대지의 모습은 우리를 순수하게 한다.

정갈하게 가꾸어진 잔디밭 위에
한 줄기의 소나기가 내릴 때,

작은 연못 위에
빗방울이 떨어져 무수히 파문지며 물기둥이 솟을 때,

연록으로 물든 봄의 산야에 보슬비가 내릴 때,
비는 우리의 마음을 순수하게 한다.


어느 비 오는 가을날,
낙엽 깔린 숲 속에서 난생 처음 알게된 소녀가
열 일곱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버리자,
비만 오면 비통에 잠기던
다정했던 옛 벗의 슬픈 이야기를 생각하게 될 때,

여행길의 차창에 빗줄기가 흐를 때,
그리하여,
문득
지난날의 일들이 영화 장면처럼 확 되살아나고,
"아! 나는 바보였었다!"라고 후회하게 될 때,
흐르는 빗줄기는 우리를 숙연하게 한다.


비는 쉴 새없이 대지를 두드린다.
대지는 문을 열고 생명은 눈을 뜬다.


한 포기의 방울꽃이
함초롬히 비에 젖어 있을 때,
밤새껏 내리던 비는 어느새 멎어 버리고,
산뜻한 새 아침의 햇살은 터지도록 맑고,
순결한 방울 소리가 온 아침에 퍼질 때,
어제 내린 비는 기묘하기만 하다.


비 온 후의 깔끔하고 순결한 생명의 대지,
온통 맑고 푸른 하늘,
신선한 공기,
청아한 새소리‥‥‥.
이 모든 것은 신비로운 비의 작업이다.


비가 있는 대지
축복 받은 곳,
생명의 고향.

비가 없는 대지
버림 받은 곳,
황량한 사막.

비는 대지의 생명소(生命素),
대지의 혈액(血液).
비는 혈관을 따라 흐르며
영양을 공급하고 노폐물을 제거한다.


대지는 싱싱하고 온통 푸르다.
골고타의 언덕 위에 암흑이 뒤덮고 비가 내릴 때,
거룩한 빗방울 방울 성혈(聖血)이 되어
온 세상을 씻어 내리고,
순교자의 붉은 피로 연연히 이어 왔으리니,

비는
거룩한 사랑의 상징,
영생(永生)의 효시.


비는 내려야 한다.
사랑의 비는 내려야 한다.
너의 마음에도,
나의 마음에도
그리고,
모든 사람의 마음에도‥‥‥.
비는 내려야 한다.


공해로 질식되는 자연을 씻어주고,
기계와
정보와
돈의 노예로 전락하는 인간을 해방시키고,

독선과
아집과
이기와
그릇된 사상과
무관심을 모두 씻어버리고,
맑고 순수한 영혼이 숨쉬는 대지가 되어야 한다.

때로는 진노의 대왕 폭풍우가 되어
혼돈의 현대에 준엄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
더 격렬한 '노아의 홍수'가 필요한 세태(世態)다.

장마철은 와도 참 비는 내릴 줄 모르는가?
비를 그리는 내 마음
어둡고 내가 찾는
맑은 동공(瞳孔)들은 어디에 있는가?


비는 우리를 기다리게 한다.
대지는 갈증으로 신음하고,
곡식은 말라죽을 때,
농민들이 기우제를 지내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할 때,
비는 끈기 있는 인내심을,
사심 없는 맑은 마음을 요구한다.

비는 또, 우리를 당황하고 슬프게 한다.
폭풍우가
노도(怒濤)보다 등등한 기세로 대지를 삼켜 버릴 때,
갈증에 신음하던 대지는 홍수에 휩쓸리고,
무수한 수재민이 생길 때,
비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어느 덧
홍수의 상처도 아물어 가을을 재촉하는 단비가 내릴 때,
비는 비로소 기쁨을 선사한다.

대지와 생명을 사랑하는 비는
온 누리에 영그는 열매와 곡식이
자신의 분신(分身)이란 것을
그리고, 결코
비는
인간들의 이기,
자만,
독선,
아집,
탐욕,
분노,
나태‥‥·,
이런 것들과는 영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선포한다.

비는
전능하신 분의 자비로운 용서의 선물이다.

구름으로 승화한 빗방울은
바람 타고 대지를 살피다가 필요한 곳곳에 내린다.


비는 태초부터 대지에 내린다.
뭇 생명을 발아시키고,
양육하며,
이물을 씻어 내린다.

비는 대지의 혈액,
그 기묘한 작업을 계속한다.
비가 오고 있는
대지의 모습은 우리를 순수하게 한다.




별채: 번호:22320









하남시 사회문화회관 조감도 (석정님의 공모 출품작 디자인 송윤호)


7년 전에,
역삼동에 한 설계사무소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건축의 축자도 모르는 내가 특공대로 초빙되어 간 꼴이다.
설계비 20억이 걸린 대형 프로젝트이므로,
회사의 사활을 걸고 일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동생 친구의 부탁이고, 사장도 동향에 동갑내기이라 흔쾌히 입사했다.
나름대로 "컴도사" 소리를 들으면서 전직원 교육도 해 주었다.
남보다 1시간 일찍 출근하면서.....

일상근무 시간에도, 툭하면 직원들이 불러댔다.
내 일을 하면서도, 사무실을 이곳 저곳으로 쫓아다니면서,
열심히 가르쳐 주었다.

그리하여, 고집 쎈 컴맹들을 수준까지 올려 놓았다.
IMF가 터지고, 이름 있던 사무실들이 쓰러져 갈 때에,
우리에게도 위기가 닥쳤다.

두가지 대형 프로젝트가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설계실 직원들이 3개월 째 일이 없어 놀게 되었다.
결국 두 개의 사무실을 하나로 뭉쳐서 구조 조정을 했다.

오산에서 출퇴근하려니, 어쩔 수 없이 자가용을 이용하였다.
기름 값은 폭등하고, 주차비에 도로비에, 절반은 땅에 버리면서,
열심히 다녔다.

처 자식들 장래를 위해서 끝까지 버티겠다고 결심했다.
그 해 정월, 비장한 각오로 두개의 프로젝트를 해결하리라고 결심했다.
그래야만 우리 모두가 살 수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결국 30 여일을 철야를 했고, 한가지만 통과 되기를 빌었던 것이,
2월 중순에,
두가지 모두 통과되었다. 무려 30억을 딴 것이다.
기대 밖의 성과에 다른 직원들은 축제가 벌어지고,
나는 집에서 죽은듯이 밀린 잠을 잤다.

축하와 위로의 전화를 받으면서.....

그렇게 일어났는데.....

일간지에 직원을 모집하기에 이르렀다.
건축사 한명 뽑는데, 이력서가 수천장!, 가히 경제난을 알만 했다.

사장 입이 찢어졌다.
나는 그로써 만능인이 되어 버렸다.
관공서에까지 초대되어, 전산망을 휘젖기도 했다.

결국 40여명이던 직원이 300여명이 되었고, 사무실도 크게 이전했다.
꿈에 부푼 사장은, 합병도 하고 연구실도 차리고,
일본,독일,프랑스 유학파들과 석사급을 대거 기용했다.
방계 사업도 벌리고, 사장 식구들이 사업을 분담했다.
회장도 세우고, 부사장도 둘을 두고, 임원들이 즐비하게 되었다.
자동차도 고물 그랜져를 버리고 에쿠스로 바꾸었다.

바야흐로 전성기를 맞은 사장은,
오늘의 자기를 있게 해 준 직원들을 도태시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대망의 프로젝트들은 한해가 가고, 두해가 가도,
전혀 진척이 되지 않았다.

홀로 실장인 나는,
기라성 같은 건축가들 속에서 시달림만 받기에 이르렀다.
드디어 실적에 목마른 사장의 안달에,
정든 직원들은 하나 둘씩 떠나갔다.
결국 나 홀로 남아서 신입 사원들과 힘든 일을 해야만 했다.

사공이 많아서인지 뜻대로 되는 일이 없게 되었다.
언제부터인지 발언권도 없어졌고,
그저 로보트처럼 일만 했다.

과거에는 두어달씩 연구해서 하던 일들을,
언제부터인지 두어 주만에 처리해야만 하게 되었다.
심지어는 겹치기로, 이쪽 저쪽 사무실에서 계획한 일들도 하게 되었다.

그러기를 몇년, 드디어 인내의 한계에 이르렀다.
운전대에 앉을 수도 없을 지경으로 다리와 온 몸에 통증이 왔다.
진통제를 먹으면서 지팡이를 짚고서도 태연하게 일을 계속했다.

결국 쓸모 없는 퇴물 취급을 당하고,
물갈이를 하려 하면서도,
그래도 눈치는 보여서 함부로 하지를 못하더니,
명색이 공신인데...

결국 사장 입에서 생트집이 나오고 말았다.

병원에서도 오지도 말고, 경보를 많이 하란다.
바로 근골격증이다.
진단도 없고 산재도 안된다. 걸을 수도 없는데 환자가 아니란다.
백약이 무효이고, 오로지 운동을 해야만 하는데,

왜 그토록 미련하게 살았는지.....

그래서, 마침 후배들의 부탁으로 조금 편한 일을 하기로 했다.
일주일만 쉬라는 것을 뿌리치고 직장을 옮겼다.

쉽게 생각했던 일이, 몇명 안되는 직원들과 하려니까 어려워졌다.
시키지도 않은 일을 위해서, 강원도까지 택시보다 더 뛰었다.
그렇게 해서 4개월 만에 일은 성사되었다.

그런데.....

그 일은 그것으로 끝났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집사람이 오래도록 준비를 해서,
남에게 빠지지 않는 주단가게를 차렸다.

제법 장사가 되는 것 같더니,
월드컵에, 비수기가 닥쳐서 많은 적자를 내고 있다.

몇개월 쉬었지만, 여전히 몸에는 자신이 없다.
산책을 일삼다가 너무나도 무료해서,
법률서적도 뒤져보고,
사이버 공간에서 얼굴 모르는 제자들도 두어 보았다.

그러나, 아직은 미련이 남았다.
이 시대에 컴퓨터디자인의 원조라는 자부심이 그것인데,
어느 분야 보다도 더욱 빨리 늙어야 하는 것이,
요놈의 직업인 줄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사무실을 개설하려고 보니까, 집사람이 선수를 쳐 버렸다.
셔터맨이나 하고 운전기사나 하면서 지내기에는,

진짜로 속이 터질 지경이다.
어디론가 날아가고 싶지만, 갈 곳이 없다.
저마다 살기가 바쁘니까, 시간이 없는 것일까?

그래서, 30년 만에 시골의 국민학교 스승도 찾아 뵈었고,
소꼽친구들도 찾아 보았지만,

아직은 내가 이럴 때가 아니다라는 생각에,

정말로 화가 치민다. 세상은 왜 이 꼴이고, 나는 왜 요 꼴인가?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를 읽고ㅡ 스펜서 존슨 지음 / 이영진 옮김


두려움 때문에 시작도 하지 못 하고 주저앉는 사람이 있다면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지난 여름은 정말 더웠다. 학생들의 방학과 함께 내가 읽어
야 할 책은 자그만치 60여권이나 되었다. 나이 탓인가? 늘 즐겨있던 책들
이 부담으로 내마음에 자라매김 할 즈음 이 책을 만났다.

모두 3부로 되어 있으며 1부는 동창들이 모여 힘든 삶을 이야기 하고 2부
는 짧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치즈를 찾아 떠나
는 두 명의 쥐 '스니프'와 '스커 리' 그리고 꼬마 인간 '허'와'햄'이다.
변화에 적응해 가는 인간형과 변화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행복을
찾는 사람과 변화를 제대로 맞지 못 하고 두려워 하는 인간형을 제시하며
스스로의 선택을 유도한다. 3부는 동창들이 이야기를 다 듣고 변화를 받
아드리는 사람과 받아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차이점.변화하지 못하는 근
본적인 이유.변화를 두 려워하지 않는 마음.변화해야 하는 이유.변화를
준비 할 때 필요한 것 등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

이 글을 읽으며 '나의 치즈는 무엇일까?'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가정에 안주하고 시간의 여유를 갖을 때 난 왜 직장 에서 팽팽
한 긴장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처음 나의 치즈는 노후 준비였
다. 연금의 개념이 없을 때 건강이 안 좋아 사표를 냈고 다시 직장을 갖
은 후의 모든 수입은 2남1녀의 교육비에도 늘 부족했다. 자식의 투자가
노후 대책이 되었던 우리 부모님들 처럼 나도 그렇게 생각하며 세 아이들
의 교육에 모든 수입을 투자했다. 덕택에 아이들은 모두 좋은 직장에 다
니고 걸맞는 배우자를 만났다.

그러나, 세 아이들 다 떠나보낸 후, 텅 빈 내 손을 보며 뒤늦은 후회가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노후대책' 이라는 단어가 꿈 속에서도 괴롭혔
다. 다시는 떠 올리고 싶지 않은 'IMF', 내가 소속된 분야의 학원 19개
중 14개가 쓰러졌다.학원생의 70%가 떠나는 현실 속에서 실의에 빠졌다.
'나도 문을 닫을 것인가?
차라리 자식들에게 생활비를 받을까?'

그러나, 치즈를 찾아서 미로를 달리는 것이 꼭 생존 자체를 위해서만이
아닌 그 자체적인 만족과 보람을 위한 것이라고 한 '허'처럼 나의 직장
생활도 꼭 빵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 도전이다. 다시 시작하는 거야.' 교사도 기사도 내보내고 모처럼
한가한 시간에 미친듯이 공부를 했다. 그리고, 성경을 읽으며 자신감을
가졌다.'하느님은 내 편이다.'라고. 3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가고 학원은
'IMF' 이전의 상태로 회복이 되었다.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도전을 두려워 하지 않았던 그때의 그 힘은 어디
에서 왔을까?' 하고. 이제 나는 그 물음에 분명히 대답할 수 있다. 전지
전능 하신 분이 나를 이끌어 주실거라는 신앙과 언제나 곁에서 나의 넋두
리를 들어주고 힘을 주었던 친구라고.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나는 책을 읽고 아이들과 같이 지내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허'에
게 치즈인 것이'햄'에게도 치즈일 수는 없듯이 각 개인의 가치관이 모두
다름을 또한 인정해야 한다. '도전' 을 두려워 하지 않는 삶을 원하는 분
들에게 나는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별장 [문화가산책] 번호:423 2002/03/15 00:56






소흔 일기

1. 반가운 아우 -2001, 4, 20.-

삐리릭
핸드폰이 오랜만에 울린다.
누굴까?

“형님, 저 여유.”
형님 아우하며 지내는 열린마당 친구다.
요즈음 신학대학 다니랴
사과 장사하랴
옆지기 병간호하랴
무척 바쁜 그다.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도
해맑은 웃음을 늘 간직하고 사는
그를 보면 내 마음마저 즐거워진다.

“지금 학교가 끝났는데
집에 가도 돼요?”
“당근이지.”

얼마 전 그의 집에 가서
한참이나 사과 장사를 같이 했었다.
작년에 농사지은 무라며 한 자루 주기도 하고
김을 서해안 가서 갖고 왔다며
주어서 잘 먹고 있다.

“저녁은?”
“집에서 라면 하나 먹고 왔어요.
밥을 차려 주어야 할 텐데
옆지기가 마침 외출 중이어서
커피 한잔씩 놓고
웃음꽃을 피우고 있는데
옆지기가 들어 왔다.

옆지기 왈 “저녁은요?”
“네, 먹었시유.”
“밥 있나?”
“있긴 있는데 찬밥이라…….”
“괜찮아, 차려오지.”
없는 반찬에 그것도 찬밥을…….
그러나 그는 맛있게 먹는다.

“형수님, 밥 더 있시유?”
거뜬히 두 그릇을 …….
우리 내외는 찬밥을 먹게 해서
미안해 죽겠는데
그런 눈치를 채고는 아주 맛있게 먹어 주니
이 얼마나 고마운가?
그러곤 열한시가 넘어서 갔다

“형수님, 한 번 놀러 오세요.”
“네, 꼭 갈게요.”
사과가 다 떨어져서
이제는 원두막 짓고 수박장사를 할 거란다.
그 땐 또 가서 같이 팔아 줘야지.

*****

2.고양이와 전쟁 -2001, 5, 27.-

며칠 전에 우리 집 지붕에
고양이가 새끼를
다섯 마리나 낳았습니다.

처음엔 지붕위에서 쳐다보는 놈들 눈망울이 예뻐서
그래 같이 살자 하며
드나들며 지붕을 쳐다보곤
눈을 마주쳐 왔는데,

근데 요놈들이 좀 크니까
천장 속이 지네들 운동장처럼
뛰어다니는데 우당탕 쿵탕
이게 장난이 아닙디다.

하여 이제 나가 살라고
추방작전 개시했지요.
우선 천장으로 들어가는 테라스와
지붕 사이에 틈새를 완전 봉쇄하고
천장엘 못 들어오게 한 채,
지붕 위에서 그놈들과 대치.

막 쫓으니까 어미란 놈이
새끼들 내 팽개치고는
저만 담을 타고 줄행랑 쳤어요.
지붕 끝에서 불안에 떠는
어린놈들 눈망울이 애처롭더라구요.

그래 일단 작전상 후퇴를 하고 말았는데
요놈들이 또 다시
천장에서 쿵탕거리는 거예요.

결국 다시 지붕에 올라가
한 놈을 잡았는데
아 글쎄, 캬~~아악! 하더니만 할퀴잖아요.
얼떨결에 내동댕이를 쳤더니 땅으로 떨어졌지요.
퍽 소리가 나기에 내려다보니 꼼짝을 안 해요.

에고 죽었나보다 하고 얼른 내려와 보니
휘리릭 도망을 가더이다.
다행이다 싶어 작전을 종료 했는데,
밤이 깊어가니 계속 야옹거리며
애처롭게 울어 대니 어쩌면 좋대요?

오늘밤
잠은 다 잔 것 같군요.
허 그것 참....... .

-대청에 오른 글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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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났습니다.


아이들 봉숭아 꽃물을 들이려고,
운동장 한 바퀴를 돌아 꽃잎을 따 모았습니다.
워낙 땅이 거칠어 봉숭아 키가 10 ~ 15cm나 될까요?
꽃잎은 기껏 한 두 송이...
그래도 모으니 한 됫박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론 턱도 없지요.
내일은 꽃잎 채취에 시간을 써야 되겠습니다.

ㅇㅇ들과 함께 걱정하며 어떻게든 한 줌씩만 따 오면...
일곱 줌은 되지 않겠습니까만,
어디 제 맘 같아야지요.
ㅇㅇ에게 맡겨 놓고 나왔지만
돌아오는 목요일은 어떤 모양일지....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서...


이 여름날은 어떻게 보내고 계시는지요?
이런저런 상상은 해 봅니다만 짐작 가지는 않네요.


논바닥이 환히 보이도록 듬성했던 모들이,
이젠 제법 자라서 목이 길고...

깃이 흰,
그 새들을 만나기가 모 심을 그 무렵 같지는 않습니다.
이제 그들 키만큼 자란 벼로 인해,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으로는 도저히 그 자태를 볼 수가 없거든요.
다행히 서행을 하거나 신호를 받고 있을 때면
가끔 머리를 들어 주어서
희고 가느다란 목만 잠깐 보여 줄 뿐
다시 먹이 찾기에 바쁜 그들인 것을요.
제발
먹지 말아야 될 것은 안 먹어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남은 별것도 아니라는데,
미물들이라 하는데,
왜 저는 소중하며 애착이 가는 것인지요?

금붕어...
실내에 방역을 하느라고
잠깐 딴 곳에 옮겨 놓았던 것을
오후께야 주검으로 내 눈 앞에 가지고 왔습니다.
좁은 용기와 더워진 물 속에서
속절없이 맞았을 그들의 최후가 그려집니다.
사람은 그 생명을 책임지지 못햇습니다.

숨 막힐 환경이었고 그 환경은 사람이 준 것이었죠.

"뭐! 아침에는 멀쩡했다고? 그게 말이나 되나!"
"지금까지 무려 몇 시간이 지났는데 이제사 찾았나!"
"여름 오후가 되기까지 그 用器 속이 얼마나 더워졌겠어."
"여태까지..."

"........"

"물이 더우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도 몰랐어!"
"개울물 수초가 우거진 곳에
물고기가 모인다는 것도 몰랐어!"
"정신 나간..."

그렇게 고함쳐도 속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별것도 아닌 것을'
'사람보다도 더 좋을까'
이런 소리들도 들리는 것 같아서 말이지요.


그러나 아닙니다.
벌써 아이들은
"금붕어는 어디 있어요?"
아침마다 수면 위로 오르는 금붕어에게 먹이를 주며
한 식구로 마음으로 눈으로
이야기를 주고 받았던 아이들이
그 예쁜 것들을 찾고 있슴은 당연한 것이지요.


아무 일도 아닌 것을
또 대단한 것처럼 이러는 나는 도대체 누굴까....


이 아침, 저는 또 저 바깥 세상을 탄식하며
괜히 화를 부추겨 보았습니다

이제 봉숭아꽃이나 따러 나가 보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님들.


2002. 7. 17 울타리



대청 번호:52121





늙음과 낡음*

곱게 늙어가는 이를 만나면,
세상이 참 고와 보입니다.
늙음속에 낡음이 있지 않고,
도리어 새로움이 있습니다.
곱게 늙어가는 이들은 늙지만, 낡지는 않습니다.

늙음과 낡음은
글자로는 불과 한 획의 차이밖에 없지만
그 품은 뜻은,서로 정반대의 길을 달릴 수 있습니다.

늙음과 낡음이 함께 만나면
허무와 절망 밖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늙음이 곧 낡음 이라면
삶은 곧 '죽어감'일 뿐입니다.
늙어도 낡지 않는다면 삶은 나날이 새롭습니다.

몸은 늙어도
마음과 인격은 더욱 새로워 집니다.
더 원숙한 삶이 펼쳐지고
더 농익은 깨우침이 다가옵니다.

늙은 나이에도 젊은 마음이 있습니다.
늙었으나 새로운 인격이 있습니다.

젊은 나이에도 낡은 마음이 있습니다.
젊었으나 쇠잔한 인격입니다.

겉은 낡아 가도
속은 날로 새로워지는 것이 아름답게 늙는 것입니다.
겉이 늙어 갈수록
속은 더욱 낡아 지는것이 추하게 늙는 것입니다.

새로움과 낡음은
삶의 미추를 갈라 놓습니다.
글자 한 획만 다른 것이 아닙니다.
삶과 인격이 다른 것 입니다.


시작하는 월요일
하루하루 예쁨있는
좋은 나날 되소서....semo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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