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자락에 앉아서.....

아침에 일어나서 마당을 나가니 살갗을 스치는 바람결이 한결 서늘한 것이
인정하기 싫어도 또 세월은 어김없이 흘러서 이제 여름의 끝자락에 와 있다.

소담스럽게 열려서 늘 뒷문을 열면 빠알갛게 익어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던
토마토 나무를 다 뽑아내면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며 그자리에 알타리무우를 심었다.

고집스럽게 화학비료와 농약을 안치고 끝까지 버텨왔지만 그 수확은 참으로 보잘 것이 없다.

아무도 이 초보 농부의 깊은 뜻을 알아주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무당벌레가 다 파먹은
토마토 잎사귀의 황량한 모습이나, 일찌기 나를 수확의 기쁨으로 떨게했지만
병충해를 이기지 못하고 말라가는 오이넝쿨을 걷어내면서도 꾿꾿이 농약의 유혹을 이겨내고 있다.

그렇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 고추다.

그 탐스럽고 푸짐하게까지 열리던 고추는 긴 8월 장마와 그 뒤끝의
화창하지 못한 날씨 때문에 결국 고추 최대의 적인 탄저병에 걸리고 말았다.

이 이쁘던 열매의 말라가는 모습이라니.....

파랗건 빨갛건 군데군데 썩어들어가며 나무에 달린 체 허옇고 꺼멓게 말라들어가는 것이
아침미다 저녁마다 출 퇴근길에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너무나 안타깝다.

처음의 탐스럽던 열매를 보며 한 열 근 정도만 따면 그걸로 올 김장을 하겠다고
들떠서 말하던 아내의 눈가도 그 고추를 보고 있노라면 슬그머니 붉어져 온다.

아마 그 희망하던 열 근이 안될 것 같은 서운함 보다는 농약을 치지않은
순 무공해 농산물을 얻는 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안타까움일 것이다.

이 작은 터에 소일거리로 심은 농작물의 병충해 피해도 이만큼
마음이 아프고 쓰라린데 이번의 집중폭우로 열흘넘게 물에 잠겨서
모든 일년의 농사가 수포로 돌아가버란 수해 농민들의 아픔은 어쩔 것인가?

여름의 끝자락에 앉아서 그래도 나는 그 토마토와 오이 넝쿨을 쳐내고
뽑아낸 자리에 또 한 겨울 반찬거리를 위한 준비로 알타리 무우를 심었다.

벌써 지난 주에 심어둔 김장 배추와 가을 무우는 싹이 돋아서 파랗게 자라간다.
아마 또 온갖 벌레들이 해충들이 이 배추와 무우들을 못살게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 갈등에 휩싸이고 그러다가 이번에는 농약을 칠지도 모르겠다.

배추란 놈이 너무나 병해충에 약한 식물이라서 그 이파리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온 밭이 구멍뚫린 배추 이파리
천지가 될 터인데 그 모습에 내 약한 마음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 이번에도 농약의 유혹을 이겨내려고 한다.
이 작은 밭에서라도 순수 무공해를 만들어 낼 수 없다면 우리에겐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물과 공기와 땅의 오염, 그 땅에서 자라고 사는 식물과 동물과 사람의 오염.
그리고 이제 미래는 모든 오염 투성이로 부터 벗어나지 못해서 돌연변이 천지의
이상한 식물과 동물들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에서 살아야만 하는 안타까움.

나 혼자만이라도 상상하면 소름이 끼치는 그 이상한 미래를
좀 더 더디게 오도록 순수 무공해 농산물을 만들어 내 보려고 한다.

햇빛이 반짝 좋았던 이틀 휴무를 서해안 한 바퀴 드라이브 하는 것으로
금년의 여름을 정리하고,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에
살갗에 스치는 마당의 공기가 여름의 끝자락을 느끼게 하여 주절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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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완성**


"뭉크"의 그림 중에서
다 그리지 않았으되 전혀 미진한 점이 없는
오히려 덜 그려서 완성도가
높아진 그림이 많습니다.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도 생각해 봅니다.
미완성이어도 괜찮습니다.



이조백자의 미도 사실은
마무리가 매끄럽지 않음으로해서
덜된 여운을 남긴 덕에
그 미적 가치가 높다고 합니다.



일본의 도자기나 greece의 도자기는
너무나 흠없는 완성도를 지향한 탓에
오히려 기계적인 차가움이 느껴진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도 그런 것 같습니다.
아쉬움은 항상 남게 마련입니다.
그 아쉬움을 마저 채운들
마음이 흡족해지진 않을 것이기에
그냥 아쉬운대로 살아갈 뿐입니다.



아쉬움이 남아있을 때가
우리가 누릴수 있는 최상의 감정일 것입니다.
아쉬움을 마저 채워 아쉬움 없게된 다음에는
나태하고 평범한 그런 감정만 남을 뿐 입니다.



(2002.2.17. 수련님이 쓴 글)


**고독이 좋다고 말할수 있는 친구**



나는 고독이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좋습니다.
우리의 모든 본능처럼 고독이라는 본능도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범인들 생각으로는
그들이 속세와 어울리지 못해서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무능하도록
되어 있다고 간주하지만,

사실은
그들이 지적인 추구에 있어서
최고의 경지에 이르러 있는
사람들일지도 모르지요.



만약 Shelly(영국시인)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면 그의 삶과 사고의
독창성은 덜 완벽했겠지요.



희귀하고 미묘한 본능을 가진 그들을
범인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고독이라는 본능일 것입니다.



(나도 한번은 고독이 좋다고
식구들에게 말했다가
본전도 못찾은 적이 있습니다.
"그럼 엄마가 Shelly?"
어처구니 없어하는 그들의 눈빛 때문에
고독이라는 단어는 언감생심
입에 담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2002.2.15. 수련님이 쓴 글)







새댁과 잔치국수 ......................... 이슬비  (0) 2002.08.29
여름의 끝자락에 앉아서..... .....................남도사랑  (0) 2002.08.27
친구의 붉은 하늘............................임담사  (0) 2002.08.25
님도 만졌을까?.............................魚來山  (0) 2002.08.22
친구와 손님-------------------------편지  (0) 2002.08.20




어릴 때 우리는 누구나 맑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저 하늘 끝엔 뭐가 있을까?
하는의문으로 한 마리 새가되어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펼치며 날아보았을 것이다.
때로는 붉게 타는 저녁놀을 바라보며 그 고운 빛에 흠뻑 젖어도 보았다.
그러나 내 어릴 적 친구의 하늘은 언제나 검붉은 고통과 절망의 하늘이었다.
친구의 붉은 하늘...

어릴 때 내 꿈은 칠장이였다. 꿈이란 게 누구나 어떤 계기나 자극에 의하여
수시로 바뀌는 거지만, 난 특별히 생각나는 게 없다.
초등 학교 1학년 때는 하늘 높이 흰줄을 그리며 날아가는 B29를 보면서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고, 4학년 때는 만화에 빠져
만화가가 되어 볼 까도 생각했었다.

별 재주 없는 중생이라 그런지 확고하게 뭐가 되어야겠다 라고 생각한 게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칠장이는 상당히 오랜 기간 내 꿈으로 머릿속을 점유했었다.
지금의 간판은 재료가 다양해서 아크릴로 만들어 그 속에 형광등을 넣기도 하고,
유리에는 여러 색깔의 테이프로 글씨를 만들고, 휘황찬란한 네온까지 설치를 하지만,
옛날 60년대의 간판이란 각목으로 틀을 짠 후 함석으로 덮고, 하얀 페인트로 바탕을
칠한 후 그 위에 빨강, 파랑, 검정 색의 페인트로 글과 그림을 그리는데 한두 해가
지나면 함석이 부식되면서 페인트가 벗겨진다,

그러면 칠장이가 사다리를 대고 올라가 다시 칠한 후 작품을 만들어 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첫째: 페인트의 냄새가 좋았고,
둘째: 높은 사다리 위에 올라가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셋째: 칠장이의 모자와 옷에 묻어있는 형형색색의 페인트 자국이 멋져 보였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붓이 움직일 때마다, 흰 바탕에서 살아나는 글자와 그림이
너무 좋아서 맞은 켠 잘 보이는 곳에 쪼구려 앉아 끝날 때까지 지켜보는 게 큰
즐거움이었다.

4학년 때 가정통신문 조사를 하는데 장래 희망란에 대통령, 의사, 선생님, 군인,
대신 '칠장이' 라고 기재를 했다가 엄마에게 적잖이 혼나고, 그날로부터 만화 보는
것을 금지 당했다. 그래도 난 만화를 마음껏 볼 수가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 내 그림
솜씨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확대하여 원그림과 똑같이 그리는
기술을 아는 친구들이 만화의 멋진 장면을 접어와선 그려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5학년 때 강력한 라이벌을 만났다. 정확히 말해 라이벌이라기보다
그림에서만큼은 나와는 게임도 되지 않는 친구에게 나의 일방적인 참패로 끝난
한판 이였는데...당시 그 충격은 내 작은 가슴으로 받아들이기에 너무나 큰 아픔이었다.

난 그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 이것은 비단 나만이 아니라,
우리 반 아이들 모두 같은 실정이었다. 단지 아는 것이라면 그가 다리를 심하게
저는 것과 아주 못산다는 것!
뒤에 들은 얘기지만 그의 아버지는 육이오 때 한쪽 다리를 잃어버린 상이용사이고,
엄마는 안 계시며, 꼬부랑 할머니와 함께 산다는 것 이외는...

그래선 인지 그는 언제나 어두운 얼굴에 말 한마디 없었고,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았다.
짝꿍까지도 말 한마디 못해봤다는데. 가까이 가려해도 외면해 버리니 그 누구도
다가가지 않았고, 그는 점점 자신을 울안에 가두고 철저한 외톨이로 살아갔다.
즐거운 점심시간이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도시락을 까먹는데, 그 친구는 원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친구라 그가 점심을 먹는지 사라지는지 아무도 몰랐다.

하루는 반장 엄마가 도시락을 갖다 주러 오다가 수돗가에서 수도꼭지를 빨고 있는
그 친구를 보고는 다음 날부터 두 개를 싸 보냈는데 그 친구는 먹지도 않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우린 첫날이라 그러려니 하였는데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먹지를 않고,
집에 갈 때 반장의 가방에 슬며시 넣어주었다.

반장이 투덜댔다. (바보! 주면 못이기는 척하고 먹을 것이지. 또 울 엄마에게 뭐라고
말하지? 저러고서는 밖에 나가 물로 배를 채우면서...) 우리가 뛰어 놀 때 그는
언제나 교실 앞 느티나무에 기대앉아 아무 것도 없는 하늘만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6월초 미술시간에 육이오에 대한 그림을 그리란다. 주제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평소 만화로 단련된 머리라 재까닥! 떠오르는 장면을 정신없이 그려댔다.
맨 위에는 "상기하자 6. 25!" 라고 쓰고, 북괴군의 탱크가 철조망을 깔아뭉개며
내려오며 하늘엔 비행기가 폭탄을 퍼붓는 장면인데, 20분도 안되어 완성하였다.
킥킥킥 내가 봐도 참 잘 그렸다. 친구들이 (와~ 잘 그렸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비슷하게 그려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친한눔의 것 두 장을 비슷하게 윤곽을
잡아주고는 그눔 쪽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아까부터 선생님이 그 친구 옆에 붙어 서서 꼼짝도 않고 계신다.
아주 팔짱까지 끼고 근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신다. 이눔이 무슨 대작을
그리고 있나? 살며시 다가가 보았더니 (에계 계~ 저게 무슨 그림이야!)
저절로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냥 온통 검붉은 색깔뿐이다. 좀더 다가가
자세히 보니 저 밑에 조그맣게 그려진 탱크가 박살이나 검은 연기를
내고있었고 찢어진 철모하나, 그리고 한쪽 구석엔 할머니가 하늘을 바라보며
울고있는 그림이었다.

그런데 저 그림이 뭐가 좋다고 선생님이 저렇게 뚫어지게 쳐다보고 계실까?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그 친구는 색깔이 마음에 안 드는지 칠했다가는
다시 손톱으로 긁어내고 다시 칠하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칠하고 또 칠한다.
칠을 하더라도 우리처럼 조심조심 하는 게 아니고, 마치 황칠하듯 격렬한
손길로 칠하는 모습은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저눔이 미친것이 아닐까?
생각되면서 갑자기 내 가슴을 세차게 때리는 듯한 북소리가 (둥~둥~둥~) 들렸다.
붉고, 검고, 흰색의 소용돌이가 빙글빙글 돌아갔다.
바로 그것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우리 집 마당에 굿판을 벌렸을 때,
온 마당이 비좁다며 미친 듯 춤을 추는 무당의 모습이었다...

그로부터 보름 후 전교 조회시간에 시상식이 있었다, 그는 가작! 나는
입선이었다. 선생님은 그림에다 리본을 달아 교실 뒤에 나란히 붙여두었다.
그림이라면 난데...자존심이 무척 상해 쳐다보지도 않았다. 내 그림 보다
훨씬 못한 저 그림이 가작이라니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치맛바람을
일으키는 엄마라도 있었다면 그나마 이해를 하겠지만 시는 선생님의
그림자도 못 밟던 시절이라 여쭤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시간 나는 대로
그의 그림을 보고 또 보았다. 암만 잘 봐 줄려고 해도 내 눈에는 그림이
아닌 황칠로 밖에 보이지를 않았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우리 분단이 당번이라 청소를 마치고 점검을 받으려니 선생님이 안 오신다.
교무실에 가봐도 안 계시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오늘 선생님은 옥수수빵을
나누시는 당번이셨다.(옥수수빵! 이것은 미군 구호물자인 옥수수가루를 쪄서
가난한 가정의 자녀에게 방과후 갈라주었다) 그 옥수수빵을 갈라주느라
늦으시는 모양이다... 생각하며 창 밖을 내다보니 그 친구가 옥수수빵을
먹으며 절뚝절뚝 걸어가고 있었다.

우리 선생님이 당번이셔서 특별히 많이 주었는지 가슴에 4개를 안고,
오후 내내 굶주린 배를 채운다고 부지런히 빵을 뜯어먹으며 간다.
아마 가슴에 안은 빵은 집에 계신 할머니와 아버지께 드리라고 주신
모양이지 하고 생각하니 불쌍한 마음에 울먹해졌다.

또 그의 그림을 바라본다. 하늘을 가득 채운 저 검붉은 황칠이 뭘까?
또 슬피 울고있는 할머니는? 순간 내 머리는 망치에 얻어맞은 듯 핑 도는
느낌과 함께 나도 모르게 끄응 하는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맞아 바로 이 것이야! 이런 것이 그림이야!
똑 같은 전후 세대인 우리였지만 육이오에 대한 느낌은 천양지차로 난
그냥 말로만 듣는 육이오였고, 그에게는 피부로 겪는 아픔이었다.
그는 저 그림에서 아버지의 잘려나간 다리와, 엄마의 가출, 할머니의
울부짖음, 또 자신의 장애와 불우한 환경이 바로 전쟁이었다는 것을
토해내며 혼을 담아 그렸던 것이다.

저 검붉은 기운이 밀물처럼 내 몸을 덮친다.
난 다시 그를 찾았다.
그는 후문 밖으로 긴 그림자를 끌며 힘들게 절뚝절뚝 걸어가고 있었다.
난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울고 있었다...




통도사 대명광전



오후 2시,
얼굴이 맑은 스님께서
"님만 님이 아니고 기른 것은 다 님이다"라는
만해(卍海)의 말씀을 남기며 합장하고 조용히 일어선다.

포동포동하게 살찐 함박꽃 문살을 살며시 밀고
대웅전을 나와 가을 햇살 가득한 절 마당에 내려선다.

옛 향로(香爐)
그 속에 가득한 온기 없는 재,
어쩌면 그 재들이 인연(因緣)의 줄을 맺게 할 지도 모르는 일.

자꾸만 언어(言語)의 그물에 잡혀 들어간다.
그물코마다 구슬이 달려 서로를 비춘다는
제석천궁(帝釋天宮)의 보물 인다라(因陀羅) 그물.
무한(無限) 겹겹의 비춤이 있는 그런 그물이면 좋으련만,
어떻게 이 그물을 비집고 헤어날 수 있을까.

아, 라울라(障碍)
바람같은 세월 산바람을 타고 흩어지는
낭랑한 풍경(風磬)소리
뎅긍...

천년(千年)을 울리고 돌아 와
다시 천년(千年)으로 되돌아오는 고요
마음은 적막공산(寂寞空山)
둥둥...

하늘이 처음 열리듯
우주(宇宙)를 두드리는 법고(法鼓)가 울린다.
뭇 생명(生命)을 깨우치는 목어(木魚)가 운다.

산은 가득 차 있고 산은 비어 있다.
차고 비어 있음은 마음 두기에 달려 있는 일
오는 것도 마음.
가는 것도 마음.
모두가 업(業)을 따라 오가는 것을.

그 날,
님이 서 계시던 자리
휘어진 노송(老松) 앞에 내가 서 있다.
가을 볕 아래 뻗은 가지를 가만히 만져본다.
님도 만졌을까...

소중한 것은
작은 인연(因緣)으로 오는 것
아주 작은 것이 이토록 귀(貴)하고 아름다운 것을.

선가(禪家)에서는 시절인연(時節因緣)이 오면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된다고 했다.
어느 날 문득,
탑(塔)돌이 중에
님은 화사한 모습으로 가만가만 오실까.

운문사(雲門寺) 가지산에 해가 진다.
범종(梵鍾)의 자비(慈悲)가 우주(宇宙)를 품어 안는다.

마음은 적막(寂寞) 하늘은 침묵(沈默),
솔숲 위로 아득한 무욕(無慾)의 하늘이 푸르다.





쌍계사 대웅전 분합문























북적 북적,

오늘은 평소에 5분이면 갈 거리를 30분이 걸려도 겨우 갈동말동.

어디서 쏟아 부어버린 걸까?

순회(?)조차 포기해 버린 날.

나조차 나서면 그 것이 민폐.



알아 찾아오는 사람 맞기로 하고,

사진기 맨 녀석 독촉하여 옥양폭포나 다녀 올까?

잽싼 녀석이 오늘따라 실탄없는 전투참가!

눈알 부라리며

내가

독촉하여 잊었다고 매운 주먹으로 때려데며 필림노릇 하란다.

사진기에 몇장 국건데기 말라 비틀어진 것같이 남아

파리 앉다 턱에 걸린 시레기같은 몇장으로 찍다보니

약이 바짝 올라 필림이야 아무데나 사대면 되지만,

녀석 작가라고,

100짜리 필림은 아닐꺼구

못 들은 척 하려니 가슴이 찡하다.



산골 물골 찾아 들었으니 구하기 포기하는 내 맘 알기나 알았을까?

심통나 뽀루퉁 한게 여간 속 상해 하는게 아닌갑다.

ㅡ 오늘만 날이니? ㅡ

곁으론 암 말않고 전투병 잘못이라 우기고 말았다.



내가 안내한 곳이 작품 가치 있는 절경이긴 절경인 갑다.

속으로 우쭐한 재미에

마음 달래고 하산.

덤으로 따라 온

너댓 명 거기 떼놓고

사유지인지라 노장 주인께 은근 슬쩍 떼밀어 자리 달라 놀게하고,

남은 사람들께 추워 감기 걸려도 못 책임진다 엄포 놓고.



내 굴로 돌아 오는 길 더더욱 엉망진창 ,

길이 전부 주차장이라!

약 3km 거리

왕복 2차선에 길 양쪽으로 세워진 주차 전쟁.

이것 저것 전쟁인가?



길섶 물가엔 벗고 뛰는 하동(?)들 길옆에서 부끄럽지도 않나

애,어른 다들 벗고 젓고 난리법석.

상.하행 교대로 빠지려니 교통정리 포졸님들 넋잃은 표정.

그러거나 말거나 실탄 못 챙겨 아쉽다고

실탄없는 총쟁이 작가는 뽀루퉁.

사진기 만든 과학자 누구야!



오늘은 채운사 주지 방에 "하마선도" 기웃거려 볼까 작정했더랬는데.

포기.

국도변이 이 모양이니 계곡 안이야 말해 뭐 하겠나?

친구들 보여 주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우선 눈 앞에 삼삼한게 내 부터 보고싶어 안달인 맘 달래려고 가슴 쓸어 내리는데....



고개 넘어 내 굴 찾아드니 여기 또 마음 쓰게 하는 일 널려있다.

잽싸게 왔다 갔다.

친구 녀석 맘 안 상하게 히죽거리면서...

그래도 친구녀석 곁에 있으니 손님 아무리 북적여도 녀석 어디 불편하지않나 걱정이 먼저다.

녀석 방안에 처박혀 단단히 삐진 모양.

다시 가서 작품 건지고 싶은데

내가 움직여 주지않으니 밉어 죽겠나 보제?



서울서 오기로한 형 소식만 묻는다.

내 속알 딱지나, 저 속알 딱지나!

속으로 씨익 웃으면서도 곁으로 어벙벙한 표정으로

"글쎄? 오려나 말려나?"

형이야 약속이 폭탄인데 않 오실리 없지만 저 약 올라 자꾸 묻지만 난 나 몰라다.

ㅡ 용용 죽겠지? ㅡ



땀 뻘뻘 흘리며 오늘 같으 날 고속도로까지 주차장인데

뛰다 . 날다. 기다, 걷다

다리려 온 형,

보자 말자 얼른 가잔다.

숨도 돌리지 않고 막혀 죽으라고?



땍끼 놈에 아우야 이 글 보고 들랑 울어라!

나 말고 너 욕해 줄 사람없는 세상 좋은 세상!

그래서 나는 더 좋은 세상.

아하

널보고 울어랄 수 있는 내 심술이 신난다.



그래도 둘이서 컴에 머리 맞대고 신나 낄낄 거리니 공연히 셈난다.

요게 내 심술 통이라.



포도주 한잔에도 사실 낮 술은 나를 팽그르르 취하게 하는데 그 기운에 이곳 저곳 돌아보고 또 드려다 보며 헤헤 거린다.

손님과 친구에 차이

있어서 든든한게 친군갑다.



가버린다고 나서며 싱글거리는 얼굴이 미운게 그 탓인가보다.

젠장,

또,

젠장,

혼자 버려지는가 보다.

제일 보기 싫은게 떠나는 사람 뒷 모습이다.

근데

지금 내 눈에선 왜?

물이 흐르지?

글씨가 않보여.



그러다 보니

난 아주 나쁜 친구가 하나 있다.

이 놈 아주 고약한 놈이다.

뭐?

나더러

여성학도 모르는 놈이라고?

세상에 날보고 빵점이란 놈이 다 있어?

짜식!

넌 갈 때 간다고 인사 한마디도 않고 간 놈이 잖아?

내가 젤 싫어하는 뒷 모습조차 제대로 보여주기라도 했니?

너 그렇게 고약하게 굴다간 천 년 쯤 살고 벽에 똥 바르다 못해

그 똥에다가 "아지노모도" 처서 먹어라.

못 된 놈!

자식 넌 사람이 뭔지 알기나 하니?



천 년은 살아라.



형아!

아우아!

너 말고.



지금 쯤 잘 도착하여 꿈 속에 있겠지!



친구야

잘자라.

그래도 친구 너 보고잡다,

형아도,

아우도.


가을!

가을인가?
하기야 立秋가 이미 지났으니....

지난달 찾았던 덕유산
연록의 능선에 흐드러지게 핀 산나리
그 아름다움이 제것인양 그 위를 한가히 날던 고추잠자리떼....

그저 山中이어서려니 했더니만
그게 바로 찾아오는 가을을 예고함이었나보다.

오한에 눈이 뜨인다.
침대보로 온기를 되찾는건 금방 한계에 부딪친다.
마지못해 일어나 닫는 베란다 창 밖으로
대모산 초입의 네온 불빛이
파르라니 빛나는건 아마 가을의 냉기탓이 아닐까?

그래
가을은 가을인가 보다.
오늘 아침 어느 신문에 윤동주시인의 序詩가 올라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부끄러워했다."

왜일까?
나는 여기서 왜 가을하늘을 연상했을까?
평생을 가지고 다니는 내 닉이 된 가을하늘을 말이다.

이 가을의 초입에서
다시 접하는 서시를 음미하며
나는 올 한해의 나를 뒤돌아본다.

한해를 열며
참으로 많은걸 갈망했고
그리고 많은걸 베풀어 보리라 다짐했었다.

그러나..........
돌아보는 지금
내 희망과는 너무 많이 동떨어져 있다.

이 가을이 가면
하얀 겨울이 오고...
또 한해가 시작되겠지?
그럼 또 다시 새로운걸 희망하면서....

얼마 남지 않은 올 한해
남은 시간만이라도 최선을 다하는 내가 되어야겠다.

2002.8.14






 





◎ 이름:박대성/열마당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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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lee1233.x-y.net/tech_img/image/userimage/basistitle2.gif align=absmiddle border=0> 어른이 읽는 동시  































































◎ 이름:박대성/열마당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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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읽어야 할 동시


 














제목;우리 놀이터




1



툇마루,토방은 우리 놀이터

소꿉장난 할때는 꼭 놀지요

동네 아이들 모두 모여서

사금파리 줏어다 솥단지 걸고

마른흙 모아서 밥을 하고요

봄나물 뜯어다 반찬 만들어

이웃끼리 골고루 나눠 먹지요.



2



냇가 다리밑은 우리 놀이터

비가 오고난뒤 꼭 놀지요

동네 아이들 모두 모여서

대소쿠리 가져와 휘휘 저으면

검정고무신에 가득 차지요

미꾸라지 잡아서 구워 먹어요

솔개들 뱅뱅돌며 입맛 다시죠.



3



마을 어귀 논바닥은 우리 놀이터

추수가 끝난뒤 꼭 놀지요

동네 아이들 모두 모여서

말뚝박기 놀이도 신이 나고요

딱지치기,자치기 재미있어요

해가 서산에 걸릴 때 까지

고추 잠자리 빙빙빙 같이 놀지요.



4



앞동산,뒷동산은 우리 놀이터

눈이 온날은 꼭 놀지요

아이들,어른들 모두 모여서

워워워-워워워-소리 지르면

꿩들이 훨훨훨훨 날아 가고요

토끼들이 후다다닥 도망 가지요

눈오는 겨울날이 신이 납니다.





































아버지와 겨울 부채






"아버지 저 왔습니다."
"왜 이리 더디 왔느냐."

추석에 뵈온 친정아버지를 며칠 전
구정이 코앞으로 다가올 즈음에서야 뵈오러 갔었다.

문을 밀치며 반가워하시는 여든 일곱의 아버지.
어머니를 먼저 보내신 지도 어언 5년여...
모습을 뵙는 순간 마음속에서 아릿한 아픔이 일렁이며 일어났다.

같은 서울에서 내 차를 몰고가면 30분이고 지하철도 바꿔타지 않고
1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출가외인 딸년은 앉자마자 치밀어 오르는
더운 목젖을 가라앉히면서 찾아 뵙지 못한 변명을 있는 데로 늘어놓고 있었다

이야기를 다 들으신 아버지께서
"그래...그 병풍 내가 꼭 한번보고 싶구나.
네가 그렇게 오랫동안 애를 써서 글씨를 쓰고
더 더욱 그 어른의 글이 내용이라면, 그런데 내가 가서 볼 수도 없고."

혹독하리 만큼 딸들에게 특히 엄격했던 아버지 그렇게도 호랑이시던 옛모습은
간 곳이 없고 어지럼증을 호소하시며 차를 타고 하시는 외출도 손과
다리를 떨 정도로 건강이 쇠잔해 지셨다.

한참을 뭉그적거리시더니 윗목에 있는 장롱의 서랍을 여시고는,
'어느 문중의 碑文을 지어주었더니 약간의 사례비와 함께 선물로
보내왔다는 전주 합죽선 부채 두 자루'를 꺼내놓으시더니...
"여기에는 蘭(난)을 치고 ...
이곳에는 "制外 安內 (제외 안내)라는 ...글을 써서 완성해 오려므나."

"蘭(난)을 친 부채는 너의 향기가 날것이니 내가 지닐 것이고
制外 安內 (제외안내: 밖의 일을 잘 제어하면 집안도 편안해진다 라는 뜻)
글씨를 쓴 부채는 정서방(남편)을 줄 것이니라." 하시면서
이 두 가지를 만들어서 곧 가져오라 하신다.

"아버지 천천히 해서 여름이 되면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라고 말씀드리니
아버지께서는 "내가 그때까지 살려나 모르겠다." 라고 하신다.

아버지가 주신 숙제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아버지의 여생이 아주 조금 남았음을 일러주는 듯 했다.

지금 나는 매일 부채를 만지며 하루라도 빨리 숙제를 해야 한다는
부담을 안은 채 부채에 그릴 난과 글씨 연습에 하루를 바친다.
이 딸자식의 향기가 담긴 겨울부채를 가슴에 하루라도 빨리 품고
싶으신 아버지의 간절한 눈빛을 읽고 왔기에....
아버지~~!!!!!!!!


윤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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