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자락에 앉아서.....
아침에 일어나서 마당을 나가니 살갗을 스치는 바람결이 한결 서늘한 것이
인정하기 싫어도 또 세월은 어김없이 흘러서 이제 여름의 끝자락에 와 있다.
소담스럽게 열려서 늘 뒷문을 열면 빠알갛게 익어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던
토마토 나무를 다 뽑아내면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며 그자리에 알타리무우를 심었다.
고집스럽게 화학비료와 농약을 안치고 끝까지 버텨왔지만 그 수확은 참으로 보잘 것이 없다.
아무도 이 초보 농부의 깊은 뜻을 알아주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무당벌레가 다 파먹은
토마토 잎사귀의 황량한 모습이나, 일찌기 나를 수확의 기쁨으로 떨게했지만
병충해를 이기지 못하고 말라가는 오이넝쿨을 걷어내면서도 꾿꾿이 농약의 유혹을 이겨내고 있다.
그렇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 고추다.
그 탐스럽고 푸짐하게까지 열리던 고추는 긴 8월 장마와 그 뒤끝의
화창하지 못한 날씨 때문에 결국 고추 최대의 적인 탄저병에 걸리고 말았다.
이 이쁘던 열매의 말라가는 모습이라니.....
파랗건 빨갛건 군데군데 썩어들어가며 나무에 달린 체 허옇고 꺼멓게 말라들어가는 것이
아침미다 저녁마다 출 퇴근길에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너무나 안타깝다.
처음의 탐스럽던 열매를 보며 한 열 근 정도만 따면 그걸로 올 김장을 하겠다고
들떠서 말하던 아내의 눈가도 그 고추를 보고 있노라면 슬그머니 붉어져 온다.
아마 그 희망하던 열 근이 안될 것 같은 서운함 보다는 농약을 치지않은
순 무공해 농산물을 얻는 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안타까움일 것이다.
이 작은 터에 소일거리로 심은 농작물의 병충해 피해도 이만큼
마음이 아프고 쓰라린데 이번의 집중폭우로 열흘넘게 물에 잠겨서
모든 일년의 농사가 수포로 돌아가버란 수해 농민들의 아픔은 어쩔 것인가?
여름의 끝자락에 앉아서 그래도 나는 그 토마토와 오이 넝쿨을 쳐내고
뽑아낸 자리에 또 한 겨울 반찬거리를 위한 준비로 알타리 무우를 심었다.
벌써 지난 주에 심어둔 김장 배추와 가을 무우는 싹이 돋아서 파랗게 자라간다.
아마 또 온갖 벌레들이 해충들이 이 배추와 무우들을 못살게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 갈등에 휩싸이고 그러다가 이번에는 농약을 칠지도 모르겠다.
배추란 놈이 너무나 병해충에 약한 식물이라서 그 이파리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온 밭이 구멍뚫린 배추 이파리
천지가 될 터인데 그 모습에 내 약한 마음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 이번에도 농약의 유혹을 이겨내려고 한다.
이 작은 밭에서라도 순수 무공해를 만들어 낼 수 없다면 우리에겐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물과 공기와 땅의 오염, 그 땅에서 자라고 사는 식물과 동물과 사람의 오염.
그리고 이제 미래는 모든 오염 투성이로 부터 벗어나지 못해서 돌연변이 천지의
이상한 식물과 동물들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에서 살아야만 하는 안타까움.
나 혼자만이라도 상상하면 소름이 끼치는 그 이상한 미래를
좀 더 더디게 오도록 순수 무공해 농산물을 만들어 내 보려고 한다.
햇빛이 반짝 좋았던 이틀 휴무를 서해안 한 바퀴 드라이브 하는 것으로
금년의 여름을 정리하고,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에
살갗에 스치는 마당의 공기가 여름의 끝자락을 느끼게 하여 주절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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