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드문드문 흘러간다. 둥근 달은 구름의 바다를 누비며 출렁이는 빛을 호수에 뿌린다. 교교한 달빛이 내려 앉은 숲속의 호수에 낚시를 드리우고 상큼한 숲의 향기에 취한다.
붕어는 태생이 슬픔 그 자체이다. 붕어는 겉보기에는 다른 물고기와 비슷하지만, 체형이 특이하므로 낚시꾼들의 집중적인 공략 대상어가 되어버렸다.
전체 체형을 살펴보면 배가 부르고 주둥이가 짧다. 많이 먹어야 하는 데, 주둥이가 짧고 배가 둥글다. 이것이 붕어에게는 비극이다.
잉어는 주둥이가 주름지고 길며, 배는 그다지 불룩하지 않은 유선형이라서 그냥 입을 쑤욱 내밀어서 먹이를 빨아들여 그냥 삼키면 된다. 그래서 잉어의 입질은 찌를 쑥 끌고 들어간다. 메기 장어 등 다른 물고기들도 이와 같다.
붕어는 짧은 입으로 입질을 하고서는 배가 불룩하여 머리를 위로 쳐들어야만 삼킬 수 있다. 물구나무 선 자세로는 먹이를 삼키기 어렵다. 이러한 까닭으로 붕어의 입질은 찌를 높이 솟구치게 하는 것이다.
이 환상적인 입질과 찌올림 때문에 낚시꾼들이 붕어를 선호하게 된 것이다.
옛날 중국에 한 새 잡는 사람이 있었다.
사방에 그물을 치고 거기 들어오는 새는 전부 잡는 것이다.
한 대부가 그에게 말했다.
"아무리 미물일지라도 도망갈 곳은 터주고 잡는 것이 자연의 도리이니
그물 한 쪽을 터놓고 말하시오"
새잡이가 물었다.
"뭐라고 말할까요?"하니
"새들은 들어라! 한쪽이 터져있으니 터진 쪽으로 날아가거라. 내 말을 듣지 않는 놈들만 그물에 걸려라"라고 말하라며 대부가 일렀다.
사람들은 그 대부를 인자라고 여겨 그 소문이 멀리 펴졌다.
황제가 이 소문을듣고 대부를 불러 정사를 맡겼다.
이 이야기가 생각나서 나도 흉내를 내어보는 것도 재미있다고 생각하여, 두개의 낚시 바늘 중에 은빛 바늘의 끝을 뭉퉁하게 잘라내고 미늘을 없에고 금빛 바늘은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는 떡밥을 달아 던지고는 주문을 외운다.
"금빛 바늘의 떡밥은 먹지 말고 은빛 바늘의 떡밥만 먹어라. 내 말을 어기는 놈들은 혼 날 줄 알거라."하고는 기다렸다.
드디어 어신이 온다. 찌가 쑤욱 솟아오른다. 챔질을 하니 걸리지 않았다. 아마 내 말을 새겨들은 붕어인가보다. 몇 번 솟구치는 찌를 감상하다보니 한번은 찌가 호수위에 벌렁 자빠진다. 챔질을 했다.
피아노 소리를 내며 낚시줄이 운다. 그 소리는 붕어의 내재된 슬픈 영혼의 소리다. 태생적인 슬픔이 줄을 통해 울고 있다. 나는 그 울음을 즐기며 먹이사슬의 최고봉에 앉아 있는 기쁨을 만끽한다.
손맛이다.
낚시꾼들만 아는 손맛, 이 손맛을 느끼려고 이 밤중에 홀로 앉아 있다.
안개를 타고 내려오는 풀향기가 주위를 감싸고 있다. 행복한 순간이다.
한참을 낚아내고 살림망을 들여다 본다. 거기에는 내 말을 듣지 않는 놈들이 주둥이가 하얗도록 살림망을 들이 박고 있다.
갑자기 엄숙해 진다.
붕어에게는 내가 자신들의 생사여탈권을 가진 절대권자이리라.
둥근 달이 버드나무에 걸렸다. 달을 쳐다보니 달 또한 좋다. 바람에 일렁이는 버드나무 가지 따라 달이 춤춘다.
붕어의 생사여탈권을 가진 절대자의 마음에 자비심이 싹트기 시작한다.
갑자기 붕어가 불쌍해 진다. 고소한 떡밥 미끼에 혹해 내 말을 듣지 않고 미끼를 물고 늘어진 붕어들이 미련하다는 생각이지만 불쌍한 생각이 든다.
하늘에서부터 물속으로 내려 온 보이지 않는 낚시줄, 그 줄하나가 붕어에게는 운명의 줄이다. 끝에서 갈라져 내려온 짧은 목줄 두개, 하나는 복이요 또 하나는 화이다.
중천에 걸린 달님이 웃는다. 너 또한 그러하노라고 하듯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처하는 인간들도 화와 복이 뒤엉킨 수 많은 운명의 실을 어찌 구별하겠는가. 복이라고 달려든 것이 화가 되고 화라고 생각하여 애써 피한 것이 복덩어리였음을 어찌 알겠는가.
살아가는 데 아무런 고통도 없는데, 재물을 탐하여 미끼를 덥썩 물었다가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이 어디 한 두 명인가.
명예를 얻으면 족한 것을 굳이 재물까지 얻으려 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권력의 최고봉에 올랐으면 그것으로 가문의 영광이며 최고의 명예이거늘, 그의 아들들은 가진 것 위에 더 욕심을 부려 미끼를 덥썩물었다가 감옥에 갇히는 사람도 있다.
인간이 미물이라고 없신 여기는 붕어보다 더 나을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붕어에게 내려진 줄은 붕어로서는 원초적 본능으로서의 슬픈 운명이며 사실은 붕어에게는 불가항력이다.
대개의 인간은 운명의 실체를 알 수 없어 운명의 늪에 빠져 허덕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요행과 세력과 금력의 힘을 믿고 미끼를 덥썩 물기도 한다.
미지의 운명은 인간에게 변명의 여지를 남기기도 하며 재생의 기회를 주기도 하지만, 결과를 뻔히 알면서 탐욕의 미끼를 삼킨다는 것은 운명을 우롱하는 것이며, 이것은 미필적고의에 의한 탐욕죄에 해당된다.
수천 수만 가닥의 실에 매어달린 운명, 화와 복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은 대자연의 속성이라고 하지만, 권력이 개입된 운명은 이미 그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그럼에도 자승자박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찌 붕어보다 낫다고 할 수 있겠는가.
둥근 달도 이제 서산에 걸렸다.
달이 밝은 밤의 낚시는 큰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살림망에 갇혀 있던 붕어들 다 풀어주고 다음에는 속지 말라고 일러주었다. 주섬주섬 살림을 챙겨 둘러매고 숲속길을 걸어 나온다. 휘적휘적 내 젓는 소매 끝에는 향긋한 바람이 일아나고 풀숲을 헤치는 발걸음은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