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촛불을





상큼한 바람이 옷깃 속으로 스며들어오는 시간입니다.
잠시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기고 싶은 목마름이 내 세포를 자극 합니다.

바람이 네 가는 길이 어디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을 할까요.
시간이 네 가는 길이 어디냐고 물으면 무어라 말할까요.
세상엔 계산도 설명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아주 많은가 봅니다.

바람은 스스로 존재할 수 없어서
눈에 보이는 사물을 불러 자신을 보이려 애를 쓰는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삶은 어느 만큼 길을 가다가 되돌아보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부지런히 걷고 있습니다.
비록 그 길이 만족스럽지 못 하다고 하여도 걷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삶이라는 길 위에 땀 흘리며 부지런히 어데론가 걸어가야 합니다.
먹기 위해 걸어야 하고
살아 남기 위해서 걸어야 하고,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서 걸어야 합니다.


동상에 걸렸던 대지가 해동이 되면
땅속에 생명들은 앞다투어 길을 나설 것입니다.

덕분에 군살이 박혔던 대지는
순식간에 부스럼이 나고 가려움증에 봄밤은 잠을 설칠 것입니다.
버짐이 피어오르는 대지는
생명을 탄생시키는 산고를 치르며 몸조리도 못한 채
모래 바람 앞에 우두커니 설 것이고,
아지랑이는 생명을 받아내는 산파인양
바쁜 걸음으로 부산을 떨어 댈 것입니다.
정신없이 깔깔대며 웃음을 참지 못하는 꽃들은
대지의 여왕 인냥 과시하며 한 계절을 마음껏 즐기다가
여름을 낚시하여 무더위를 끌어 올 립니다.

제철을 만난 천둥번개는,
바위틈에 생명의 자락을 내리는 나무들의 에너지원이 되기 위하여
온갖 호령을 하며 한 계절을 울리기도 하고요.
지구의 젖줄인 바다를 살리기 위하여
태풍은 돌기둥이 되어 깊이와 높이를 자랑하며
바닷 속에 산소 공급을 위한 인공 호흡을 시킬 것입니다.


그렇게 여름은 힘을 자랑하며
원초적 본능으로 사람들 되돌리기 위하여 바다로 유혹을 합니다.
바다는 제흥에 겨워서 숫한 몸놀림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들입니다.

이글대는 모래알은 열기를 하늘높이로 산화시키며
하늘을 높이기 시작 할 즈음
바닷가의 파도소리가
시어머니의 냉냉한 웃음소리로 응시 할 때
슬그머니 산으로 오르는 더위는 부지런한 걸음으로 등산을 시작할 것입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서
고단한 삶을 토닥거리며 걷고 또 걸어갑니다.
우리가 잠드는 시간에도
시간은 쉬지 안는 걸음을 걷는 것을 바라보며
먼길을 걸어온 것 같아 잠시 돌아보니
길은 보이지 안고 무중력의 공간만이 웃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돌아볼 여유도 없이 그저 부지런히 걷기만 했어요
그런 나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어둠이 서려 보이지 않아요.

칠흙 같은 어둠이 진을 치고 달 빛 마저 삼키려 해요.
이슬에 젖은 듯 한 눈 빛 만이 반짝 거릴 뿐입니다.


내일은 태양이 떠오르겠지만
지금 이 시간 남은 날들을 위하여
내 안에다 촛불을 하나 밝혀야 하겠습니다.










주말이면 시골에 갑니다.


'전화 효도'로는 어딘지 모르게 한계가 느껴지기에 말입니다.
어머니 혼자 계시는 집은 '혼자 내음'이 물씬 느껴져 방안에 들어서면 허함을 느끼고 맙니다.


지난 일요일 아침도 평일과 다름없이 눈을 떴습니다.
새들의 노래를 듣고는 그 소리에 가락을 붙이는 시늉을 하다가 벌떡 일어나 집 앞의 텃밭을 거닐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거닐어 나온 뒤 바지를 보니, 발목을 덮은 바지가랑이가 온통 젖어 있었습니다.


순간, 드는 마음이 이랬습니다.


"가을~, 가을은 밤새 밤이 우는 계절이구나.
그래 잎사귀가 넘칠 듯이 눈물이 글썽글썽하구나" 하는 생각 말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나를 만나 좋다고 하는구나.
속에 든 것이 보일락말락하게 조금 바라져서 닫히는 모양으로
'발쪽'대면서 내 바지를 손수건으로 아는구나.
이슬 같은 눈물을 대신 쓰다듬고 있었던 잎사귀가 그 눈물을 닦았구나~'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 인기척 그리워, 그리워 하다가 스치는 흔적을 닦으려고 얼마나 아침 오기를 기다렸나'
싶어 다시 풀섶으로 들어가 이러저리 마구 돌아 다녀주었습니다.


내 발길이 지나간 자리는 이슬방울이 떨구어져
주변 풀들에 비해 말끔하게 세수를 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눈물을 훔치는 소리가 나는 듯했습니다.
물기 잔뜩 머금은 바지가 풀을 스칠 때마다 훌쩍이는 소리가 나는 듯 했습니다.
'배시시'한 웃음이 들리는 듯했습니다.


가을이면~
"어둠이 밤새 우는구나" 하는 생각,
잎에 내려앉은,
잎에 묻어 있는 이슬방울은
"밤새 울음 운 흔적"이라는 생각은 참으로 기특한 것이라 속으로 되씹으면서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다
"그래, 그 눈물을 감추려고 가을은 또 그렇게 아침나절이면 안개 자욱한가 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울어 부끄러운 나머지,
햇살에 눈물 시나브로 사라질 때까지 안개 속에서 눈물 감추려 그랬나 싶었습니다.


낮 동안 내리쬔 따가운 태양에 짓눌려,
눈 제대로 뜨지 못하다간,
이내 어두운 밤을 만나면 낮 동안 뜨지 못한 눈,
크게 떠 두리번거리다가,
어둠에 감추어진 추억 더듬다가 흘린 눈물 말입니다.
그 이슬 같은 방울이 깨끗한 것은 순수의 눈물이어 더욱 그렇게 보이는가 봅니다.
오늘밤은 그 우는 소릴 들어보아야 할 듯합니다.


자연이 우는 모습,
울었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여간 행운이 아니었습니다.
동물들의 울음, 웃음은 수없이 보아 왔지만
새삼 식물의 눈물, 그 이슬 맺힌 눈물이 아롱진 보석처럼 보여 한없이 고왔습니다.

식물들의 웃음은 '꽃피는 것'이라고 평상시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 웃음만을 보아왔는데,
오늘은 식물의 울음을 보면서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구나' 하는 반성을 하였습니다.

"꽃, 너~ 나에게 웃음을 줘. 그래 꽃피어 줘.
그래 그 웃음 가져다간 내 방에 놓을꺼야.
그래서 너의 웃음을 보면서 나 행복할꺼여"
그랬다 싶어 '못됐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내가 그 식물에게 준 웃음은 무엇이었을까.
아니 동물에게 또 준 것은 있었던가.
하기야 동물은 몸짓, 소리로 시늉이라도 하면서
즐거움을 표하기에 간혹 즐거울 수 있도록 머리 쓰다듬기, 맛있는 음식을 주기도 했지만,
식물은 쓰다듬기보다는 꺾어버림을 택했으니 얼마나 잔인한 애정 표현인가.


우리 인간의 웃음과 울음,
그 짓이 수없이 많은 것을 오늘 사전을 찾으면서 새삼 알았습니다.
눈가에 넘치려 삐죽 나오는 '글썽거림',
소리 없이 입만 벌리고 부드러운 눈인사를 던지는 '봉싯거림',
울상이 되어 금방이라도 눈물나올 듯한 애절한 '울먹임',
너무 좋아 흐뭇한 태도를 보이는 '해죽거림',
'흐느낌', 등등.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일부러 볼을 살짝 움직이며 지어 웃는 '살웃음'이 많은가 봅니다.
마음은 시쁘면서(마음에 차지 않으면서) 억지로 웃는 '쓴웃음'까지.

정나미가 떨어지는 웃음보다는 오히려 실큰 우는 모습이 더 고울 때 있습니다.
"그래 실큰 울어라, 울면 더 나을 거야~"


예사로운 일에 자주 부끄러워하는 '잔부끄러움'과
은근하고 진실한 정분으로 아롱진 '속정'이 있는 사람이 흘리는 울음,
그 흘린 눈물에는 진한 애정이 느껴지기에 그런가 봅니다.
흘리고 싶은 눈물,
그 눈물을 오늘은 정말 실큰 흘리고 싶습니다.


한 정에 깊은 정을 붙이면 그에 딸린 것까지 사랑스럽게 여겨지는 '덧정'이 오늘따라 생겨납니다.
아침결이면 이제부터 손수건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일산 호수공원*


      특별한 스케줄이 없는 토요일 오전에는
      저는 어김없이 호수공원을 찾습니다.


      우선 탁트인 40여만평의 호수가 그렇구요.
      일에, 공해에, 사람에 시달려온 나의 삶들을
      다시한 번 정리해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공간 이거든요.


      몇 번 같은 시간에 오다보니
      이 시간대에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이 한정 되어 있습니다.
      서로 모르는 분들이지만 왜 그런지 정감이 가더군요.
      그냥 말이 걸고 실을 정도로 말입니다.


      어느새 가을은 깊이 들어 왔더군요.
      달리는 얼굴을 스치는 가을 바람이 제법 상큼해요.


      가을 바람이 호수위를 스쳐가면
      호수는 가벼운 파문으로 화답을 하더이다.
      자연속에 흐르는 그들만의 아름다운 대화..........


      푸르렀던 이파리들은 서서히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더군요.
      은행나무 잎이며 마로니에 잎사귀, 그리고 플라타너스의 갈색이파리.....
      차츰차츰 형형색색의 단풍으로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한때 장미꽃이 만발했던 장미원은
      이미 자신의 역할을 국화에게 넘겨준 듯
      을씨년 스럽게 몇 몇 송이만 자리를 지키고 있더이다.


      노오란 국화꽃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노오란 색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기 위해
      포엔세치아의 빨간 잎으로 조화를 이루게 한
      호수공원 가꿈이의 예술적 감각을 잠시 느껴보기도 하였습니다.


      곳곳에 배치한 아름다운 미술작품들과
      정말 아름답게 배치한 소나무군(群)은
      일산 호수공원의 품위를 더욱 높여주고 있습니다.


      화장실 문화관이라는 특이한 곳도 있습니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화장실이라고나 할까요?
      일반적인 화장실의 개념을 바꿔버린
      발상의 전환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더이다.


      호수를 들러치고 있는 낮은 울타리는
      서부시대 O.K목장의 결투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친숙함이 배어 있답니다.


      열린마당님들 !!
      일산 호수공원에 호젓한 시간대에 한번 와보세요.

      아마 많이 감탄 하실걸요?


      글/엘더




아침마다 횡단보도를 건너야 한다.
저녁에도 마찬가지다.
가끔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고 사무실이나 집으로 가는 날도 있다.
서울특별시 외곽지대에 살다보니 커다란 대로보다는
중간정도 넓이의 도로를 건너는 일이 더 많다.


신호가 떨어지기를 기다려 길을 건넌다.
아침에는 길을 건너는 사람이 별로 없다.
거의 대부분의 날들이 나 혼자 건넌다.

사람의 왕래가 별로 없는 길이기도 하려니와
사무실쪽은 직장들이 몰려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길은 대부분은 물받이를 위해 가운데가 높고 가장자리가 낮다.
황단보도임을 표시하기 위한 흰색표지 페인트가 제법 두꺼워 길 가운데 서면 무대에 선 기분이 든다.

관객은 차안의 운전자들이다.
신호를 기다리면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본다.
의미가 있던 없던 본다.
볼 것이 없으면 맞은편 사람을 빤히 쳐다본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치면 어색하여 고개를 돌리거나 당황하여 어찌할바를 모르기도 한다.


사람도 없는 횡단보도를 혼자서 걷는 기분은 무대에 올라 관객을 웃겨야하는 개그맨이 된 기분이다.
옷을 돋보이게 해야 하는 모델이 된 기분이다.
몇십년동안 횡단보도를 건넜으면서도 언제나 긴장한다.
차안의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유한마담으로 보일까
순진한 아줌마로 보일까
깍쟁이로 보일까
지적이고 우아한 센스있는 여자로 보일까
섹시한 여자로 보일까
새 핸드폰을 구입한 날은 핸드폰을 줄만 잡고 건넜다.
나도 컬러핸드폰임을 자랑하기 위해서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어느새 길을 다 건넜다.
무대에 섰다는 생각에 걸음걸이는 부자연스럽기 마련이다.
가뜩이나 엉성한 걸음걸이가 우스꽝스럽게 변한다.
왜 나는 날마다 무대에 서야하는 것일까.
무대에서 사는 사람들은 무대에 서지 않으면 병이 난다고 하던데 나는 아직도 어색한 것일까.


주인공이 되고 싶어서
조연보다는 주연을 하고 싶어하면서도 막상 무대에 혼자 서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른다.

싫던 좋던 인생이란 무대에서 나는 주인공이고 주연이다.
주인은 자기를 지켜키고 가꾸어야 할 의무가 있다.
주연은 드라마를 연극을 영화를 빛내야 할 의무가 있다.


주어진 의무를 다 하지 못하면 직무유기가 된다.
해야할 일을 하지 않은 유기가 되는 것이다.
직무유기는 어떤 벌이 있더라

나는 내 인생의 무대에서 제작자이고 주연임에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항상 변방에서 주위만 맴돌다가 인생의 삼분의 이를 살았다.
내 삶에 대한 직무유기를 한셈이다.


하루에 두 번씩 서는 무대에서조차 자신있게 걷지 못한다.
시선을 한 군데로 두지 못하고 이리저리 굴린다.
이제는 자신있게 살아야 하는 나이임에도
자신이 없어야 할 나이 때보다 더 자신이 없다.


8월 어느 날...잠탱이
.....................................................................................................................................













*** 잊혀져 가는 모든 것 ***







잊혀져 가는 모든 것이 사랑스럽습니다.

초가삼간 오두막에서
태어나 객지 생활 30여 년 지금껏 고향엘 다니건만
어느 날부터인가
초가삼간 간 곳 없고

지붕 위의 하얀 박꽃 함께 자취를 감추고
싸리나무 울타리 위를 기던 호박넝쿨 조차도
볼 수가 없습니다.

그저 마을 앞 강물을 그대로 길어 먹던 맑은 물도
어느 날부터 그 예전의 강물이 아닙니다.

골재채취로 없어진 강변의 모래밭과 자갈밭이
그 또한 땅버들만 자라고 있고 강변은 갈대로 덮여 있습니다.

굽이굽이 감돌아 흐르던 물길도
인위적인 제방으로 그 곡선의 아름다움을 잃고 말았습니다.

굴렁쇠를 굴리며 다니던 좁은 골목길도 시멘트로 포장되고
들녘으로 향하려 건넜던 개울의 징검다리도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나 어릴 적에 살든 고향의 모습은
빛 바랜 사진 속에서나 기억되고 아름답고 따뜻한
이웃 간의 정이 조금씩 멀어져가고 아름답기만 하던
고향의 기억이 조그만 아픔으로다가 섭니다.

꼴을 베어 담든 망태기도 나무를 지던 지게도 잠을 자고
집집마다 있었든 외양간과 돼지우리 또한
경운기나 트랙터의 차고지로 변하고 새벽을 알리던
닭 울음소리 들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둘씩 내 곁을 떠나 사라져 가는 모든 것들이
이 가을에 사랑으로 다가섭니다.
그리움으로 남습니다.

아름답게 이야기를 나누던 말들도 어느 사이 준말로 바뀌더니
이제는 좀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가 생겨났습니다.

이웃을 먼저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 또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잊혀져 가는 듯한 세상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잊혀져 가는 모든 것들을 다시금 생각하고 사랑하는
남은 삶이기를 이 가을에 생각해 봅니다.
모든 것은 사랑스럽습니다 아픔도 미움까지도.....

2002,10,14, 밤에.....

글/박해식

























- 방랑의 계절 -

동학사의 계곡 물소리는 벌써 차가운 안개를 뿌리며 중중거리고 흘러간다. 울긋불긋 곱던 단풍잎도 거의 지고 동학사로 들어가는 산길은 적막하기만 하다.

나는 누구를 찾아가는지 조차 모른 채, 힘없는 발길을 옮겨갔다. 스물 셋의 팔팔한 청춘이련만, 최근 1년여 동안 너무 많은 방황으로 기진해 있었는지 모른다.

학교를 다니다가 군에 지원 입영하였으나 훈련소에서 신검 불합격 판정을 받고 귀향하였다. 사실 나는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군 입대를 결심했던 것이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니 당장 갈곳이 마땅치 않았다. 시골 친척집을 여기저기 다니면서 추수 일을 거들고 약간의 여비를 얻어 이렇게 방랑 길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

45킬로를 겨우 넘는 깡마른 체격에 의기 또한 소침해 있으니 그 초라한 모습을 어디에 비할까 ? 조정에서 추방당한 뒤 할 일없이 전원을 방황하던 중국 전국시대 굴원의 초췌한 행색에는 그래도 고결한 풍이 서려 있을법하고, 문전축객을 당하던 김삿갓에게는 시와 해학이 있지 않았나 ?

숲에서 울려나오는 목탁소리가 점차 가까워지더니 이윽고 작고 퇴락한 동학사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6·25 때 불타고 남은 건물은 옛 명성에 미치지 못하였다. 한 때는 길재, 김시습 같은 명인들이 머물며 고려유신과 사육신등의 원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기도하던 명찰이 아니었던가.

절 마당에 여승이 가끔 눈에 뜨일 뿐, 주변은 고요하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 스님을 찾았다. 잠시 후 나를 맞은 사람은 칠순이 훨씬 넘은 듯한 노승이었다.

노승의 안내로 나는 툇마루에 좌정하고 경내를 둘러보면서 이마에 땀을 닦았다.
" 스님, 여기서 공부할 방 하나 얻어볼까 하고 왔는데요. 형편이 어떠신지요 ? "
노승은 내 표정을 여러 모로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 이 절에는 모두 여승들만 있어요. 사내라곤 나하고 나무하는 사람 단 둘이지. 여기는 젊은이들이 있을 데가 못돼요. 좋은 세상 놔두고 뭣하러 이런 데를 찾아와요 ? 사람 사는 데는 어디든 마찬가지랍니다. 절간에 들어온다고 별 다른 게 있나요 ?"

노승은 아마 내가 불도를 공부하러 절에 오려는 줄 알았나 보다. 나는 더 이상 사정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잠시 후 앳된 여승이 검정 칠을 한 작은 밥상을 들고 와서 살며시 놓고 합장을 한다.
" 손님, 편히 드세요. "

저런 고운 여인이 어쩌다가 중이 되었을까? 햇볕도 모르고 이 산중에 갇혀 젊음을 보내다니 ……, 저 여승은 오히려 지금 나를 부러워할는지도 모르지. 혼자 잠시 공상을 하다가 노승의 말에 놀랐다.
" 식기 전에 드시지요. "
보리가 섞인 밥에 산채 몇 가지였으나 따뜻한 김이 오르는 밥은 꿀맛이었다.

식후에 노승을 따라 절을 한 바퀴 돌았다. 여승들의 글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울렸다. 여승만 있는 동학사에서 노승은 불경을 가르치는 강사 일로 소일한다고 했다. 불경은 모두 한문으로 돼 있기 때문에 불경을 배우려면 먼저 유가의 사서삼경 같은 것을 배운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노승은 나에게 불경 이야기는 한 마디도 비치지 않았다. 자신도 어쩌다가 불문에 들어와 속절없이 늙었다는 회한 어린 얘기뿐이다.

나는 노승을 하직하고 중문을 나섰다. 나무하는 중년 남자가 골방 문지방에 걸터앉아 낫자루를 맞추고 있었다. 나는 후원 감나무 밑에 잠시 앉아 생각에 잠겼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소중한 것은 무얼까 ? 정신이냐 물질이냐 하는 원론적인 고민에 빠져있던 나는 드디어 만유는 물질에서 비롯한다는 결론을 다지고 있었다. 도를 닦는다며 10년이나 산촌에 칩거하시던 아버지는 뒤늦은 후회를 안고 다시 서울로 가셨다. 지금 얼마나 뼈아픈 시간을 보내고 계실까 ?

서늘한 늦가을의 산바람이 스산하게 느껴진다. 감나무에서 물은 홍시가 바위에 떨어지는 소리에 놀라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 지금은 비록 어둡고 괴로운 길을 걷고 있지만, 세월이 가면 나에게도 꽃피는 봄날이 찾아오겠지 ! 흥진비래요 고진감래라 하지 않았던가 ?"

골짜기엔 벌써 계룡산 그늘이 길게 덮이기 시작하였다. 나는 절에서 내려와 다시 무작정 걸었다. 공주군 반포면 어디쯤이었을까 ? 들에는 볏가리가 무리 지어 늦가을의 풍요를 연출하였다. 붉은 노을이 서녘 하늘을 빨갛게 물들이고, 초가 지붕에는 저녁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저물기 전에 잠자리를 마련하기 위하여 낯 선 집 사립문안으로 들어가서 하룻밤 묵기를 청했다.
" 미안하지만, 저기 저 집으로 가 보셔유. 이장님 댁 이니께유. " 이장 댁 사랑방엔 석유 남포등이 무척 밝게 빛났다. 한 눈에 부농 티가 났다. 낯선 나그네를 아무 거리낌 없이 들이고 저녁 대접까지 하던 그 농부의 인정이 지금도 그립다.

다음날 아침, 외로운 가을 나그네는 주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못한 채, 마을을 떠나 유성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몇 해 지나서 동학사의 노승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노승이 길에서 주어다 키운 양녀가 27년 만에 동학사 승방을 뛰쳐나가는 바람에 노승이 크게 실망했었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내가 하룻밤을 묵었던 이장댁, 저녁 노을이 빨갛게 불타던 그 마을을 나는 지금 다시 찾아가 보고 싶다. * -바람과달








보내기만 하는 편지








보내기만하는... 편지..


width="480" height="390" border="0">



잘 계신지요...
내가 보내는
그리움을 받고는 계신지요.


가끔은 무엇인가에 몰리어
잊고도 지냅니다.
그러나 언뜻 언뜻 그리움이 찿아 지곤 합니다.


오랜 침묵이
어쩌면 그리움을 삭이는 묘약처럼
이제는 담담함이
오히려 약이 됩니다.

이제는 아주 오랫동안 지나가는
한줄기 바람처럼.
스치는 기운으로만으로도
지켜 가는 힘이 되어 줄것 같습니다.


침묵으로
미소를 머금어 봅니다.
그 미소로
잠시의 행복을 드리워 보면서
저 먼하늘을 그리워 해 봅니다.

너무 멀어서 갈수 없는
하늘의 별이라 여기며.
그렇게 그림움 한번 보내 봅니다.

이렇게 달리는 마음이
삭이어지고
대신하는 미소가
가슴에 스며 드는 날입니다.


내가 드리우는
작은 마음이
아름다운 나무가
드리우는 그리움과
다르지 않음을 믿으며
가슴에 담아 봅니다.


아직도 맑은 이야기가
건네어 지는
아름다운 나무와
같이 나누는 맑은 그리움을
맑은 마음으로
드리우려 합니다...

같이 나누는 그리움으로
행복한날이길 항상 바래 봅니다.


아름다운 나무에게
작은친구가 쓰는 편지입니다...
항상 향하는 아름다운 나무에게.












알록달록 금사가 들어간 색동비단으로 만든 골무가 하나.
자주 비단에 보랏빛 테를 두른 골무가 두개.
그리고 제일 만만하여 자주 끼었더니
뾰족한 바늘귀에 등짝이 헐은 가죽골무가 하나.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그 언젠가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골무들을 무슨 보석이라도 보는 양 들여다본다.

나는 다섯 살 즈음부터 어머니 곁에서 바늘과 오색비단을 가지고 놀았다.
그 시절 온 고을이 다 아는 선비이신 우리 아버지는 웬만한 집안일은
거들 떠 보지도 않으시는 분이셨고 적지 않은 농사일에
맏이도 아니셨지만 할머니께서 굳이 둘째 아들과 함께 살기를 원하시는 바람에
크고 작은 손님은 늘 그치질 않아 손에 물기가 걷힐 사이 없었던 어머니는
일에서 떠나 한가히 쉬시는 모습을 뵙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를테면 동네에서 가장 어려운 어른이셔서
모든 동네의 행사 기획은 아버지께 먼저 보고가 되었고
축문을 지어주시거나 이웃 간의 송사라도 생기면 중재자가 되어 시비를 가려주시기도 했고
사주단자에 넣을 혼서지를 써 주시거나 글 모르는 아주머니가 군대간 아들의 편지를 들고
이슥한 저녁 찾아와 읽어주기를 청하면
구성진 음성으로 곡조를 넣어가며 그 편지를 읽어주시기도 하고
뭐라고 답장을 써달라고 하면 그 자리에서 막힘없이 편지를 써서 읽어주시곤 했다.

때로는 동네에 불량한 아들이 있어 술 먹고 부모님에게 행패를 부리거나 하면
꼼짝없이 불려와 무릎을 꿇고 일장 훈시를 들은 다음
다시는 안 그러겠노라는 다짐을 하고 돌아가기도 하는 그런 일들이
나는 당연히 아버지의 몫인 줄로 알았었다.

손재주가 뛰어나신 어머니는
동네 처녀들이 시집을 가거나 회갑잔치가 있거나 할 때면
옷감을 들고 와 옷을 지어달라고 사정하는 이웃아주머니들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호롱불 곁에서 밤 이슥토록 새색시가 입을 한복을 곱게 지으시곤 했는데
그 때마다 자투리 천에 모란이나 원앙을 수놓은 예쁜 베개모를 만들거나
올망졸망 골무도 만들고 붉은 천으로 꽃송이를 만들기도 하고 고운 복주머니를 지어
함께 선물을 하시곤 했다.

비단 천 냄새와 감촉, 매혹적인 색과 광택.
때때로 화로에 꽂힌 인두로 바늘땀 솔기들을 잠재우시던 익숙하고 차분한 손놀림.
신중한 표정 간간히 흘러나오던 가벼운 한숨소리......
반듯하고 하얀 가리마와 은비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추석과 설에는 반드시 할머니와 아버지와 나의 옷을 새로 지어주셨는데
내가 한복을 입고 나가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저고리 앞섶을 만져보고 들여다보고 하며
어머니의 바느질 솜씨를 칭찬하곤 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내게 바느질을 가르쳐 주려하지 않으셨다.
내가 나도 바느질을 하겠다고 조르면
“너는 이런 거 하지 말고 살아라.”하셨다.
어머니 말씀이 -바느질은 눈이 빠지는 일-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정말 끝까지 한복 짓는 일은 가르쳐 주지 않으셨다.

나는 자동모터가 달린 신식 재봉틀을 산지가 15년째다.
남편이 생일 선물로 사 주었는데 한창 홈패션이 유행할 때여서
이웃집 아낙들이 사들고 오는 천으로 식탁보며 테이블보며 아이들 가방이며
심지어는 갓난 애기의 옷까지 만들어 주며 즐거웠었다.
위층도 아래층도 옆집도 내가 만들어준 소품들이 중요한 자리는 다 차지하고 있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그런 일을 안하는 지도 꽤 되었다.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가끔씩 나는 바늘을 잡는다. 그리고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골무들을 손가락 끝에 끼어본다.
원래는 세 개쯤 더 있었는데 얼마 전에 큰언니에게 몇 개를 주었더니 얼마나 기뻐하는지.

머리가 하얀 우리 어머니는 머리가 하얀 아버지와 지금도 오순도순 지내신다.
가끔씩 뜨개질이라도 해보고 싶은데 이젠 돋보기를 써도 잘 안 뵈서 그조차 맘대로 안 된다고
서운 해 하시면서.........

너무 늦기 전에 어머니께 골무박는 법만이라도
제대로 배워 둬야 겠다.

2002, 4, 23.-하닷사-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