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시험, 인생의 출발선 ................../하늘빛 호수


내일이 수능 시험일이다

날씨는 예전보다 포근하다 하여 다행이지만
지금 이 시간도 잠 못 이루고 기도하는 부모들이 많을것이다
자녀들이 깊고 편안한 단잠을 자고
내일 아침 가쁜하게 기분좋게 일어나서 고사장으로 가길 원하며...

애들 셋을....
대학을 보내고
그도 막내딸은
갔던 대학이 맘에 안들고 적성에 안맞는것 같다고 다시 공부를 하고 또
수능을 봤으니 수능을 네번씩이나 치루어낸 엄마가 되었다.
그런데도 남들보다 편안한 마음을 가졌던것이 내게 신앙이 있었던것이 도움이 된듯하다.

오늘 저녁 교회에서 수능생을 위한 기도회가 있었다.
수능생과 그 부모들..그리고 교우들도 함께 나와
격려해 주고 기도해 주는...
나도 함께 참석하여 기도하고 격려했는데...

내가
어느새 얼마나 마음이
현재 학부모들과 괴리 되어 있는가를 느꼈다
한 다리 건너라고...
내 자녀들이 있을땐 그리 간절하더니...

내 자녀들 다 대학 갔다고
같은 마음으로 기도 더 많이 해 주지 못한 미안함에
기도 하는데 눈물이 핑 돌며 간절한 기도가 되었다

아들 딸들아...
수능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란다
낼 편안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지금까지 공부하고 익히고
애쓴 모든 것을 잘 적용하고 나타내서 좋은 결과들이 있길 바란다

혹여 만족한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또 다른길이 있고
인생은 성적순이 아닌 세상이 오고 있음을 알아
너희들이
가장 하고 싶은것
좋아하는것이 무엇인지 찾아
만족한 삶을 살아가는 새로운 출발선이 되면 좋겠구나.

늘 하는 선물들이
찹쌀떡이요,
엿이요,
초클렛들인데..
내가 보낸 따끈한 통닭은 맛있게들 먹었는지...

아쉬워서 다시 들려준 찹쌀떡의 그 접착력처럼...
너희들이 원하는 바들이 소원대로 다 이루어지길 바란다.

낼... 승리하거라

*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장 6-7절*

*
믿음은 바라는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것의 증거니라.
히브리서 11장 1절*

*
내게 능력 주시는자 안에서 내가 모든것을 할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장 12절*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이 땅의 모든 학부모들의 수고가 위로 받으며
이 땅의 모든 아들 딸들이 다 좋은 결과들이 있기를...

하늘빛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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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만의 반란. 그리고 휴가. ......... /글사랑


무언가 결단을 내려야 한다.
어딘가 떠나야 한다.


학원 휴가 날짜에 동그라미를 치며 반란을 모의하고 있었다

몸과 마음 모두가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쉬는 것만이 약'이라는 의사의 권고가 아니라도 쉬고 싶었다

직업상 책을 많이 읽어야함에 얼마나 가슴 설레였던가?
그러나 두 달에 오십여권의 책을 읽고 분석해야 하는 금년의 방학 준비 과정은 나를 두 번이나 응급실 신세를 지게했다.

15년이라는 세월에 방학 때면 의례히 거치는 행사였고 읽어야 할 책을 책상에 수북히 쌓아놓고 흥분마져 느끼지 않았던가?

한 권 한 권 읽으며 읽은 책을 옆으로 치울 때.
어느덧 읽은 책이 안 읽은 책보다 많아질 때 건방지게 지적 자부심까지 느끼지 않았던가?


그런데 금년은 달랐다.
'오월에 오월에 뻐꾸기가 울었다'는 왜 이리도 내용이 우중충 한가?
다른 때 같으면 '무겁긴 하지만 깊이가 있네.'했을텐 데.
내가 선정한 아니 특히 각 중등학교 필독 도서가 왜 이리 내용이 무거울까?
불평이 늘어났다.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시골에서 나를 기다리는 남편과 시댁이었다.
나의 휴가는 시댁에 들려 어른들께 용돈 드리고 모시고 바닷가 고향 돌아보고 농사 짓는 남편에게 가서
돌아오는 날은 손이 달달 떨려 운전을 하기 힘들 정도로 실수 투성이인 농사 일 돕는 그런거였다.

학생들 방학이 다가오자 남편과 시댁 형님은 나의 휴가 날짜를 확인한다.
시아버님도 시누이도 나의 의무에 익숙해져 있었다.


반란!
이제는 반란이다.
나도 나를 찾아야겠다
바닷가 콘도를 예약해 놓고 휴가를 기다리는 막내에게 전화를 했다.

"야! 너 그 콘도 나에게 양보해라."

전화 저쪽에서 놀라고 있을 막내의 표정이 떠 올랐다.
평소의 엄마가 아니였을테니까.
그것도 한창 성수기에 온천으로 바꿔놓으라고 했으니...
늘 같은 모습으로 나의 세상살이를 들어주시는 수녀님께도 전화를 드렸다.

쉬고 싶다고...


이렇게 나의 반란은 시작이 되었고 반란에 동참할 동지까지 모였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금년 휴가는 좀 쉬어야겠습니다."

온천으로 수도원으로 간다는 나의 비장한 선언에 시댁에서는 볼멘 목소리만이 들려왔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쩔꺼야.이혼할꺼야?"


친구!
영화 '친구'는 관람을 하지 않았지만 나의 친구만은 못 하리라.
지칠대로 지쳐 온 몸이 늘어져 버린 나를 친구는 싣고 수안보로 달려주었다.

"나 쉬고 싶어.수안보 가자."
"그래? 가지 뭐."

우리에겐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하지 않았다.
늘 골골대던 한 친구는 지친 나를 보며 씩씩한 척 해주었다.
떠나던 날 아침에는 서울 지역에 호우경보가 내려져 있었다.
앞이 안 보일 정도의 세찬 빗 속을 친구는 농담까지 하며 운전을 하고 있었다.
친구들은 나의 반란에 놀라기도 하며 때론 안쓰러워 하기도 잠시 옛 얘기에 빠져들 땐 차를 갓길에 세우고 웃어야 할 정도로 즐거웠다.

2박3일의 온천 휴가는 날씨마져 우리 편이었다.
가는 곳마다 활짝 개인 날씨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곳곳마다 물난리 소식인데 비는 우리 뒤만 따라오는 듯 했다.
수안보의 온천에 몸을 담그고 문경새재 골짜기의 물에 발을 담그고 보낸 휴가는 지친 나에게 새로운 힘을 주었다.


이젠 힘들다고 불평하지 않으리라.

나의 반란에 선뜻 응해주는 친구들이 있는...
에미의 요구에 한 마디 질문도 없이 인터넷 앞에 붙어앉아 여행 일정을 맞추어 주고,
예쁜 옷도 사주고,
몰래 통장에 여행비도 입금 시켜주는 자식들이 있는데...

바다가 훤히 보이는 마산의 수도원으로 안내하여 마음을 씻게 해주시는 고마운 분들이 있는데...


일주일 간의 나의 반란은 끝을 맺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엄마! 전 언제나 엄마처럼 떠나봐요?"

세살 다섯살 남매를 키우는 딸아이가 전화로 묻는다.

"30년 더 기다려.나도 결혼 35년만의 반란이야."


글사랑...............................








첫눈


가끔은 우리 나이가 국화 꽃같은 나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그윽한 향기로 온 방안을 채울 수 있는 나이.
들녁 언덕에 노랗게 피어있으면 금방 닥아가고 싶은 나이,
바라만 보아도 향기를 느낄 수 있는 나이.


헌데 가끔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은 꽃이여!'를 잊지 못하기도합니다.
그래 지금 쯤은 거울 앞에 선 나이가 우리 나이 쯤이 아닌가?
생각하기도하고요.

거울 앞에 서면
나는 어디로 가고
늙은이가 떡 버티고는 비켜주지를 않아요.

비켜!

날 좀 보려 거울을 보는데 왜 방해를 하는 거지요?
소리를 지르고,
발을 구르기도 해 보지만
이 늙은이 고집이 얼마나 쎈지 비켜 줄 생각을 않아요.
왼쪽으로 가면 왼쪽으로,
오른 쪽으로 얼른 못 따라 올만큼 빨리가도
또 오른 쪽으로 나보다 먼저 와 있으니 속 상해 죽겠습니다.

누구 이 늙은이 말려 줄 사람 없나요?
내 앞에서 잠시라도 거울 보는 것 방해하지 못하게
꼭 붙들어서 비켜서게 해 주시면 후사하겠습니다.


어젠 꼭 생살을 뜯기는 아픔이 얼얼하데요.

한 녀석만 더 있어도 다음에는 잘 치루겠는데......
녀석이 손을 잡고 걸어들어가면서도
빙그시 웃는 것이 왜 그리도 얄미운지요?
도적 놈은 주례 앞에 서서 허옇게 질려있고요.
내, 눈 똑바로 뜨고 도적놈을 쏘아 보니 질렸나?
그래도 깊히 고개를 숙이고 달라는 데 아니 줄 수 없더라고요.

그렇게 하기로하고 사람들을 모아 놓았으니,

'못 줘! 아까워서 못 주겠다.'
하지도 못하고 냉큼 줘 버리고 털썩 앉는데
그 놈에 의자가 다리라도 부러져라 해도 그런 걸 알았는지
의자 만드는 사람이 좀 튼튼하게 만들었나봐요.

젠장 의자라도 좀 부실하게 만들지,
의자 다리라도 부러지면 그래서 무효하자고 할 수 라도 있으련만.........


끝나는 순서에서 두 녀석들이 신부 측 부모에게 먼저 인사를 하데요.
일어 서서 두 녀석을 함께 끌어 안아
기여이 싱글 거리는 녀석들 울려놓고서야 괜한 내 심술보가 조금,
아주 쪼오끔 풀릴 듯 말 듯하데요.

이그,
이그,
부글거리는 속이 두 녀석들 머리통이라도 쥐어 박고 싶은 속이
꼭 생살을 뜯어 내는 것처럼
아프기도하고
상하기도하고
젠장이더라고요,
젠장,
젠장.


아직도 속이 부글거리는 것은 왠 일이지요?
싱가폴에 도착했다고 전화가 왔는데도 건성으로,

'좋냐?'
'예, 아주 좋아요!'
ㅡ좋기도 하겠다.ㅡ
'그래, 즐겁게 지내라!'
입에서는 이런 말이 나오고.
으유, 속 상해, 속 상해ㅡ

어제 뵈온 세분 감사드립니다.
상상에 모습과 꼭 닮으신 모습에 저 놀랐답니다.
아름답고 성실한 모습에 감탄했답니다.
바쁘신 시간을 할해하여 주신 점도 감사합니다.
황진이님,
연소심님,
열,마당쇠님 감사드립니다.


그득 술이 취해 청주까지 다른 이들이 제 차를 운전해오고
밤 늦은 시간에 산 속 제 굴을 찾아 들기 전에,
혼자 면소재지 노래방에서 12시가 넘도록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것인지
노래를 부른 건지
모르게 목을 혹사시켜 따끔거린답니다.


밖을 나와 보니 눈 발이 휘날려서
첫 눈인지,
뭔지를 맞으며
굴에 도착하니 불꺼진 어둠 속에 거기까지 눈이 따라오고,
술에 취한 눈으로 눈을 바라봤답니다.


왜?
이리도 허전하답니까?


편지요!
늦 잠 잔 날에 띄움니다.


참!
죽으면 늙어야한다니까요.
고운 책 감사히 받었답니다.
많은 님들의 주옥같은 글이
가슴에 꽃처럼 실렸는데 너무도 수고하셨습니다.
많은 님들 창간 기념호를 소장하시는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제8회 부산아·태장애인경기대회가 끝났습니다.





휘장/Emblem
스포츠를 통한 아ㆍ태인의 화합과
장애인의 극복의지를 전통적인 한국문양으로 나타내었으며,
개최도시 부산을 상징하는 파도와 함께
역동적인 형태의 태극과 횃불을 들고 질주하는 운동선수를 형상화 하였다.



마스코트/Mascot
마스코트는 거북이를 의인화 한 것이며
귀염받는 아이 "귀동이"로 명하였다.
귀동이는 거북(龜)을 일컫기도 한다.
거북이는 강한 생명의지를 지닌 대표적인 동물로
장애인의 불굴의 재활의지와 사회참여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승리의 V자는 이 대회가 인간승리의 축제임을 말해준다.




남자 마라톤




제8회 부산 아시아태평양장애인경기대회(FG)가
7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1일 막을 내렸습니다.



엄니랑 가족들이 함께 폐막식에 갔었지요.
2부제를 실시하는 날이었음에도,
홍보부족인지 관심부족인지 홀수번호의 차들이 많아
경기장으로 가는 길은 매우 혼잡했었지요.
제 식구들이 탄 차량은 경기장내의 주차장까지
다이렉트로 들어갈 수 있는 표시판이 있었기 때문에
노모를 조금 더 편하게 모실 수가 있었습니다.


출발하기전에 넉넉하게 이른 저녁을 먹었구요.
두툼한 겨울옷을 꺼내입고 보온병에 따끈한 커피도 끓여 넣었지요.
각자의 목에는
아.태 장애인 경기의 파란문양이 들어있는 머플러를 이삐게 매었습니다.
예전 '박스코'에서 장애인 올림픽 홍보에서 몇개 얻었었거든요.





‘평등을 향한 힘찬 도전’이라는 슬로건 아래 지난달 26일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번 대회는 21세기 첫 독립국인 동티모르가 참가하는 등
순수 스포츠 축제로서 뿐 아니라
FG 사상 처음으로 각종 기록이 국제장애인경기연맹의 공식기록으로 인정받아
의미있는 대회로 평가받고 있다더군요.


이번 대회에서는 육상 역도 사격 등에서
모두 21개의 세계기록과 50여개의 페럴림픽 기록이 쏟아졌는데...
이같은 기록에도 불구하고
쌀쌀한 날씨와 시민들의 무관심으로
대회분위기가 대체로 썰렁했다는 평을 신문기사에서 읽었고,

31일까지 아시아드 주경기장을 찾은 전체 관중은
9만5000여명으로 좌석 점유율이 40%에 머물렀으며,
17개 경기장 전체 관중 누계도 32만4100여명으로
좌석 점유율이 52%에 불과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은근히 걱정이 되었지요.
칭찬하고,
격려하고,
다함께 기쁨을 나눠야할 자리가 썰렁하면 어찌하나 하구요.

그런데,
폐막식장에는 아주 많은 이들이
장애체육인과 기쁨을 나누기 위해 모여있었습니다.

저희도 자리를 찾아 앉았습니다.
2층 N66블럭의 4열 13번부터가 저의 몫 좌석이었습니다.
바로 앞으로 전광판이 있어,
노모가 어린조카까지 대동한 저의 식구들에게는 안성마춤이었지요.


이윽고 폐막식 시작을 알리는 멘트가 있었습니다.


자국의 국기를 앞세운 선수단의 입장
(비장애인의 입장보다는 느린 움직임이었지만...
그들의 입장 광경을 보는 순간부터,
저 밑바닥에서 감동이라는 씨가 심어졌습니다)





유재건 조직위원장의 폐회사,
가주오 하타다 FG연맹회장의 폐회선언 등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린 이번 대회에는
40개국에서 2420명의 선수와임원이 참여해
17개 종목에서 435개의 금메달을 놓고 각축을 벌였는데...
한국은 중국에 이어 종합 2위의 성적을 거뒀고
태국과 일본, 홍콩이3, 4, 5위를 차지했지요.
이번 대회를 통해서 탄생한 스타도 적지 않았구요.
수영에서는 중국의 허준콴 선수가 6관왕에 올랐고
사격분야에서는 한국의 심재용 선수가 5관왕에 올라
대회를 더욱 빛냈답니다.





장애인 올림픽.
김동과 기쁨은 비장애인이 느끼는 것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이번 장애인 경기대회에서 제게 각인된 광경하나...


양팔이 없는 장애인의 수영경기에서 였습니다.
중국의 선수가 1위를 했었지요.
통상적으로 하는 요식행위처럼,
목에는 메달이 걸어지고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넘쳤엇지요.
꽃동이가 축하의 꽃을 들고 나왔습니다.
순간 장내가 고요해졌습니다.
"저를 어쩌지..."

그는 양팔이 없는 선수입니다.
꽃을 받아들 손이 없는게지요.
그는 아무런 표정 바뀜도 없이 꽃을 입으로 받았습니다.
순간 안도의 한숨과 함께,
눈물이 나오더군요.
너무 기뻐 나오는 눈물이라서인지...
그 맛이 달디달았습니다.


이번 장애인 경기대회에서 제게 각인된 광경 둘...

금,은,동메달을 시상하는 시상대의 높이입니다.
시상대의 높낮이의 구분이 없이 모두 같았습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계단이 잇으면 장애인들이 불편해서 였다구요.
수상자중에는 휠체어 장애인도 잇으니....라구요.

물론 그런 이유도 았었을겝니다.
그러나 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평등을 향한 힘찬 도전’이라는 슬로건에 걸맞는 시상대>> 였다는 생각이었지요.
시상대에 오른 선수도 그것을 지켜보는 참가 선수도,,,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그리고 임원들이
모두 보이지 아니하는 메달 수상자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또 다른 금메달수상자는 자원봉사자이겠지요.
대회를 성공으로 이끈 이들의 활약은 그저 대단이라고 표현되기보다는
솔선수범,,,이웃사랑의 본보기였습니다.
조카녀석 XX이도 힘들었다기보다는 <감동> 그 자체였었다며,
제 자신이 신통하고 대견하다며 어른스러운 말을 하더라구요.





식후행사는
‘사랑과 우정’을 소주제로
‘편견과 역경이 없는 세상’,
‘서로 더불어 사는 세상’ 등을
염원하는 전 세계인들의 축하메시지가
대형 전광판을 통해 방송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어 대회기가 다음 개최국인 말레이시아로 넘겨졌지요.
7일동안 대회를 밝혔던 성화 불꽃이 어둠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식후행사가 시작되었고,
스피커에서 <쿵따리 샤바라>가 크게 울렸습니다.
운동장 은 어둠으로 덮혔고,
정 중앙에 한 줄기 빛...
클론의 멤버 구준엽씨를 비추고 있었습니다.
간단한 인사말에 이어진,,,
왼켠으로 옮겨진 불빛사이로 강원래씨가 나타났습니다.

지난 2000년 11월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된 인기그룹 ‘클론’의 멤버 강원래씨와 부인 김송씨,
휠체어에 앉은 하반신마비 장애인,
재활을 다지는 그가
진정한 인간승리의 주인공인 각국 참가 선수들에게
희망의 이야기를 선사했습니다.
뜨거운 박수...
이어지는 박수들...


여성 장고 군무,
북 페스티벌,
리듬댄싱 등 화려한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인기가수 윤도현 밴드가 등장,
선수와 출연진, 관람객 등을 하나로 묶는
우정의 음악을 연주해 휘날레를 장식했습니다.





모든 선수들이 퇴장하고 난 후에도 저의 가족은 한동안 앉아 있었습니다.
엄니의 마음을 헤아려 가만히 앉아있었습니다.
막내가 지체장애 1급...그 사위도 지체장애 1급이니...
엄니의 마음속에는 만감이 교차했을겝니다.


참석한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대다수의 사람들이,
어떤 조건이었던지 간에,
장애인과 특별한인연이 있는 이들 이었습니다.
주로 복지재단 소속의 분들이 많더군요.
그곳에 살고 계시는 많은 이들...


그들의 땀과 눈물의 정수가 모인 곳,,,
이곳이 아시아드 주 경기장이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도우미 한 학생의 이야기로 마무리할까 합니다.
긴 글입니다만....읽어주시기를...



절영에서
옥이이모





****옥이이모 옮김****


장애인들이 오랫만에 기를 활짝 펼 기회였던 아.태장애인경기대회가 막을 내렸다.
여러가지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에는
애쓰고, 수고한 흔적이 눈으로 보이지만,
진실로 '장애인의, 장애인에 의한, 장애인을 위한' 행사였는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모든 경기에는 참석하지 못하였으나,
개막식과 폐막식에 참석하였는데 장애인이 주인공이되어 개최되는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성화 봉송과 선수선언등 몇가지를 제외하고는
식전행사와 식후행사 모두 장애인이 참석하여 표현된부분은 거의 없었다.

예를 들면,
경도 지체아의경우에는 시간이 좀 걸리기는 하지만
꾸준히 교육하면 왠만한 무용이나 율동은 충분히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운증후군의 아이들이나, 다른 장애영역도 마찬가지임.
장애특성별로 적절히 교육이 이루어지면
개성적인 내용의 율동이나 무용, 또는 다른 표현됨등을 통해
행사에 직접 참여하게 되고, 진행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일반학교의 학생들만을 식전, 식후 행사 모두에 배치시켰다는것은
분명히 지적받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되며,
아울러
행사 진행 순서지나,
안내지(브로슈어),
좌석 배치도(특히 티켓)등은
시각장애인들을 위해서 당연히 점자표기도 되어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쓰고있는 생활 소모품의 한가지인 샴푸와 린스에도
이 둘을 구분하기위해 점자표기가 되어있는 제품도 있는데,
하물며 장애인 대회장에
각장애 영역별로 적절하고 다양한 준비와 지원이 되어야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수화통역도 좀 어색하고 전체적으로 부자연 스러웠다.
표정이 너무 굳어있었고,
동그라미안에 있는 통역원이 너무 작게 카메라에 잡혔고,
초대 가수는 신나게 노래하는데,
수화는 너무 힘이없고,
통역이 힘이 없어보였다.

자막이 수화 통역을 가리기도 하였으며,

특히 김대중 대통령은 개막식은 국제적인 회의가 있었기에 이해하지만,
폐막식에는 당연히 참석할 줄 알았고,
참석했어야하는데 참석은 커녕 격려사 조차도 전달됨이 없었다
이것은 너무도 선수단과, 모든 장애인들에게 무례했다고 생각된다.
그럴 것 같으면 아예 장애인 경기를 하지않는 것이 애시당초 맞을 법도 하다.


그리고 무료 초대권의 의미는 무엇인가?
무료의 의미가 편안함을 가지고
부담없이
누구나 관람할 수 있게 함의 의미와
평소 소외당하는 삶을
농도짙게 살아온 장애인들에 대한 배려라는 점이라면 너무도 훌륭하다.

그러나 그 외의 더 큰 소외가 담겨 있다면
이 또한 김대중 대통령의 무례함에 동참하는 형상이라는 생각이다.


불꽃놀이는 참 아름다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 불꽃놀이 소리에 놀라서
위험을 느끼는 장애인 관랍객도 있다는 것을 살피어
행사를 준비하셨으면 하는 바램이다.


정상의 학생들이 열심히 준비함과
장애아동이나 장애인들이 함께 준비한 순서가 마련 되었더라면
개,폐막식에 참석한 장애아동의 부모님들은 참 많은 격려와 힘을 얻었을 것 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러한 귀함을 이번 행사에서는 제공하지 못했다.

"우리아이도 적절히 교육을 시키면 할 수 있겠다"는
최소한의 희망을 갖을 만한 기회를 앞으로는 꼭 주시기를 바란다.

정말 마음이 아팠던 것은
전광판에 행사 중간 중간에 보여준 평일 경기장의 관랍석이었다.
선수들의 열전하는 모습이 주였지만,
주위의 관람석은 1층 조차도 텅텅비어 있는 모습이 참 마음이 아렸다.

같은 말이라도 영어로 표현하는 말 보다는 우리나라 말로,
모국어로 표현될 때 마음에 먼저 와닿는 것이라 여겨 지는데...
전국에 장애인들이 그렇게도 없었나요?
관람석이 꽉차여 있지않음 또한 문제점이라고 생각된다.


'평등'이라는 말이 오히려
더 새롭고,
더 높고,
더 농도 짙은 장애에 대한 편견을 만들어 낸 것 같아서
애쓰고 수고하셨지만 서운하다.


그러나
진심으로 행사기간동안
여러가지 봉사로 , 따뜻한 인사로,
맞이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대회가 폐막식
연주곡_바이올린-가곡-그리움















내가 벌써









내가 벌써




내가 벌써 가신님을
잊었는가 보다

십년세월 병석에서
자식이라고

하나밖에 없는
나를 보고 눈물 흘리시던

그님은 벌써
오년이란 세월을

구이팔 수복 때
먼저 가신 님곁에

그렇게 인연을 만들고 계신다
못다한 사랑을 만들고 계신다

날씨라도 흐려지면
마음이 편치 않은것은

살아생전 님께
못다한 불효 때문일까

나름대로 님을 위했것만
아직도 섭섭한것은

님에 대한 미련인가
님에 대한 회한인가

내가 벌써 그 님들을
잊으려 하는가

별빛 높아지는
이밤이 안스럽기만 하다.




* 추석이 가까워지면서 오년전 돌아가신
어머님이 그리워 몇자 적어봤읍니다.













내가 벌써









내가 벌써




내가 벌써 가신님을
잊었는가 보다

십년세월 병석에서
자식이라고

하나밖에 없는
나를 보고 눈물 흘리시던

그님은 벌써
오년이란 세월을

구이팔 수복 때
먼저 가신 님곁에

그렇게 인연을 만들고 계신다
못다한 사랑을 만들고 계신다

날씨라도 흐려지면
마음이 편치 않은것은

살아생전 님께
못다한 불효 때문일까

나름대로 님을 위했것만
아직도 섭섭한것은

님에 대한 미련인가
님에 대한 회한인가

내가 벌써 그 님들을
잊으려 하는가

별빛 높아지는
이밤이 안스럽기만 하다.




* 추석이 가까워지면서 오년전 돌아가신
어머님이 그리워 몇자 적어봤읍니다.




























영리한 여인과 질긴 여인!







 
영리한 여인과 질긴 여인!


어제의 일이다.
어느 좋은님의 생일잔치를 하느라 부부동반으로 합석하여
자연산 광어에 알콜내음 그윽한 음료수를 솔찬하게 들고 돌아왔다.

좋게 오른 기분을 꿈으로까지 이어가려 하는데 자꾸만 아내가 추근댄다.
이유는 운동을 하면서 땀을 빼자는 것이다.
다 좋은데 궂이 나가서 땀 빼며 운동을 하자고 하는지 참으로 불만이다.
단 두어 평의 침대에서도 얼마든지 땀 빼고 운동으로 심장박동 쿵쾅거릴 수 있는데...


며칠 전에 아내가 뜬금없는 제안을 내 놓는데 다른 생각 하느라
무심결에 대답을 하고 말았다.
이리하여 밤 11시면 무조건 앞마당으로 나가 트랙을 열 바퀴씩 돌아야만 했다.
음주 후 운동은 자칫 심장마비가 올 수도 있다는 등 갖은 핑계를 대봐도
천천히 산책이라도 하자며
다녀온 후 샤워를 해준다는 솔깃함에는 빠져나갈 도리가 전혀 없었다.

앞 마당이란 집 앞의 여고 운동장을 말함인데 들어갈 때 아무도 뭐라 안하니
나의 전용 앞마당이라 칭한지 이미 오래이다.
좋은 곳이기에 동네 사람들에게 더불어 즐기라 무료로 개방 하였음은 물론이다.


기왕 나온 김에 뛰다 걷다를 반복하는데 세 바퀴를 돌고나니 꾀가 났다.

"와! 벌써 네 바퀴나 돌았네!"
"무슨? 이제 세 바퀴고 네 바퀴째예요."

이궁, 대충 넘어가지 무슨 여자가 저리도 영리하여 숫자 개념이 철저할까...
그럭저럭 움직이니 이제 두 바퀴만 남았다.

"오늘은 여기서 끝내고 내일 두 바퀴 더 돌면 마찬가지니 그만하고 가자."
"한 번 꾀부리면 다음엔 하기 싫은 법이니 마저 도세요."

쬐끔만 봐주면 어떻다고 저리도 질기게 몰아치는지 모르겠다.


오늘의 할당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땀을 흘린 탓인지
저녁에 마신 술이 모두 깨어 달아나 버리니 괜한 서운함이다.
하는 수 없이 그녀에게 공약이나 지키라며 욕탕에 들어가
알몸의 큰 대자로 누워 놀고 먹는 베짱이의 기분을 만끽 하였다.

그러고 보니 가끔씩은 안나간다고 이깃장을 놓아볼만 하다.
연극연습 하느라 늦게 귀가한 옆지기 딸에게 말을 건네 보았다.

"오늘 보니 네 엄마는 참으로 영리하고 질긴 여자로구나."
"여태 그걸 모르셨어요?"


모전여전이로고.



-북극성














한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필라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서정주님의 <국화 옆에서>는 한 송이 국화가 피어나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있어야 했던 아픔과 어려움 들을 통해
성숙한 삶의 깊은 뜻을 노래하고 있다.
난 이 시를 무척 좋아한다.
이 시에는 노력해서 얻은 자의 피와 땀과 그리고
눈물이 내재되어 있어 난 늘 내 삶의 지표로 삼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고통 뒤의 성숙한 삶을
떠 올려 보았다.
북풍 한설 몰아치고 대지가 꽁꽁 얼어붙은 날에도
난 장갑을 끼고 귀를 막은 채 아스팔트 위를
달리고 또 달렸다.
마치 이것이 내 삶의 전부인양 말이다.
온 산하가 진달래. 개나리로 만발한 봄날에도
그 봄이 가고 여름이 오고 이제 아스팔트 가에는
코스모스가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그 무더운 여름의 끝자락에서 내 삶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난 비지땀을 흘렸던 것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서 말이다.

각설하고 작년 조선일보 마라톤대회에서 동료교사들이
골인하는 것을 격려하기 위해 종합운동장에서 기다리면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결승점에 골인하며 그들만이
느끼는 환희와 감격에 난 많은 호기심과 매력을 느꼈었다.
그래! 나도 한번 해보는 거야!
운동이라면 나도 자신이 있지....
그리고 인내심과 끈기의 꽃이라는 마라톤!
충분히 도전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 매력 있는
운동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완주해보자고 굳은 결심을 했다.

마음의 결심을 굳게 한 바로 다음날부터
헬스장에 등록하여 꾸준히 기초체력을 다져왔다.
주로 지구력과 하체의 힘을 기르기 위한 운동을
집중적으로 실시했다.
달리기. 자전거 타기. 무거운 것 들어 올리기. 줄넘기 등
오래 달리는 데 필수적인 것은 뭐든 가리지 않고 했다.

이 훈련은 무더운 7월까지도 계속되었다.
체력훈련과 병행하여 실전감각을 익히기 위해서
춘천에서 열리는 각종 마라톤대회에도 참여했다.
충주에서 열렸던 국제 마라톤대회에도 참여하여
많은 경험을 쌓기도 하였다.

8월부터 본격적인 달리기 훈련에 들어갔다.
3일 간격으로 20Km를 꾸준히 달렸다.
9월부터는 마라톤 동호회 회원과 합동으로
주말마다 실제 마라톤 코스를 뛰어 실전감각을
익히기도 했다.

끝없이 펼쳐진 아스팔트 위를 달리면서 내 인생을
내 삶을 반추해봤다.
좌절과 울분과 슬픔으로 가득 찬 내 삶의 긴 여정!
난 내 스스로 내 인생을 못 터진 Dynamite라고
생각해본다.
난 내 젊음의 열정을 공부하는 데 다 바쳐왔었다.
내 인생에서 공부를 빼놓으면 아무것도 한 게
없을 정도이다.
대학원 최고학위 과정까지 수료하고 우리나라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서울대학교에서 발간된
학술지에 10편 이상의 논문을 수록했다.
그러나 내 인생은 내 삶은 달라지지 안 했다.
교직에서도 승진의 마지막 열차가 도전 한번
못해보고 이미 오래 전에 그렇게 허무하게
내 곁을 떠나가고 말았다.
초라한 시골 훈장으로 끝날 내 삶!
그저 마음이 슬프고 외로울 땐 한없이
달려야만 잊을 수 있다.

사랑하는 마누라여! 그리고 나의 딸, 아들아!
너희가 아느냐?
마지막 잎새처럼 남은 처절한 그 희망을.....
아스팔트 위를 달리면서 내 삶의 좌절과 울분을
푸른 저 하늘에 날릴 수 있어 적어도 이 순간만은
난 늘 행복함을 느낀다.

부지런한 세월은 또 그렇게 흘러 10월20일 조선일보 마라톤
D데이의 날이 밝았다.
가벼운 흥분 탓인지 새벽에 잠이 깨었다.
마누라가 해준 밥을 먹고 집을 나섰다.
종합운동장 입구의 만남의 광장에는 벌써 동료 교사
들이 기다리고 계셨다.
기념촬영을 하고 서로 선전을 다짐하며 강고 파이팅!
강고 파이팅!을 외쳤다.
그래도 우리는 강원고등학교를 대표해서 출전하는 것이다.
1600여명의 건각들이 질서정연하게 모여 11시 5분부터
출발이 이루어졌다.
기록 순에 의하여 A그룹에서 K그룹까지 시차를 두고
출발하였다.

나는 I그룹에 속해 11시 20분에 출발점을 밟고 지나갔다.
이제 42.195Km , 약 105리의 긴 레이스가 펼쳐지는 순간이다.
평소에 연습하던 코스라 오버 페이스가 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을 하고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앞으로 달려나갔다.
5Km를 지나면 왼쪽은 삼악산 오른쪽은 의암호이다.
산과 호수가 어우러져 정말 멋있는 풍경을 자아낸다.
벌써 붉은 옷으로 갈아입은 아름다운 삼악산.
아름다운 강변 길을 만끽하며 수없이 많은 군중 속에
파묻혀 내가 가야할 길을 달린다.

20Km 지점까지 달리는데 2시간 40분이 소요되었다.
평소의 연습하던 것과 오차 범위 내에 있는 시간이었으니
별 무리 없이 잘 달려온 것이다.
20Km지점을 지나 춘천댐을 눈앞에 두고 무릎에 통증이
오기 시작한다.
잠시 뛰는 것을 멈추고 무릎과 발목에 물파스를
뿌리고 맨소래담으로 근육 맛사지를 하고 다리 근육통을
푸는 운동을 5분간 계속했다.

40-50m를 걷다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춘천댐을 지나 28Km지점에 이르니 1학년의 보형이. 유석이. 동명이가
우리 교사들을 응원하기 위해 여기까지 자전거를 타고 와
몇 시간을 기다린 것이다.
동명이 녀석은 카메라까지 준비하여 포즈까지 취하라고 권한다.
기념사진을 찍는다고..........

녀석들이 준비한 바나나와 이온음료는 배고픔과 탈수로
기진맥진해 있는 나에게 커다란 활력소를 제공했다.
짜식들! 그래도 남자라고, 의리는 있어 가지고..........
눈물겹도록 고마운 녀석들의 정성이 담긴 바나나를 먹으면서
30Km지점을 향해서 달리고 또 달렸다.
30km지점에 다달았을 때의 소요시간은 4시간 8분이었다.
연습 때보다 8분 정도 늦은 시간이었다.
앞으로 12.195Km가 남았으니 1시간 30분을 더 뛰어야 한다.
이제부터는 정신력으로 뛰어야 한다. 체력이 다 소진되었고
근육통도 더욱 심해져 간다.

너무 힘이 들어 땅만 보고 달리고 또 달려 37Km지점까지 왔다.
소양2교를 지나는 데 왼쪽 허벅지의 근육통의 예비 신호가
오기 시작한다. 근육이 서서히 뭉쳐오며 통증이 전달된다.
이건 예비 신호이다. 나에게 경각심을 주는 신호로
더 이상 뛰었다간 통증에 쓰러져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게 된다.
달리기를 멈추고 다시 왼쪽 허벅지와 무릎의 혈액순환을
촉진하는 운동을 5분간 지속했다.
길옆에서 맨소래담으로 근육을 푸는 사람한테 달려가
맨소래담을 손바닥 가득히 담아 양쪽 허벅지에 바르고
문질렀다.

아픈 다리를 이끌며 참으로 많은 상념에 쌓였다.
고2때 뺑소니차량에 치여 두 달 동안 생과 사를
오락가락 하였던 딸!
마음씨 착하고 유난히 공부를 잘하여 이 아빠가 이루지
못한 꿈을 잇게 하려고 하였는데........
부산으로 서울로 병원을 옮기며, 우리 딸 살려달라고
애원과 기도와 당부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
내 인생의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알았다.
더 이상 흘릴 눈물도 말라서 없었다.
아침에 밝은 태양이 뜨는 게 싫었고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지 <신>에게 따지고 싶었다.

지금까지 난 정말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학교. 마누라. 가정. 딸. 아들> 내가 아는 것의 전부다.
우리 부부 같은 학교에서 만나 학생들 몰래 연애하여
결혼하고 같은 학교에서 4년간 근무하고 , 지금은
학원에서 애들을 열심히 가르치고.........

<신이여!> 우린 정말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5여년 전 우리 부부 자동차를 타고 가다
10미터의 절벽으로 떨어졌지만 우린 털끝하나 다치지 않았습니다.
그건 어린애들을 잘 키우라는 당신의 자비가 아니었던가요?
그런 당신께서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주마등처럼 스치는 내 인생의 여러 환영들.......

저만치 종합운동장의 스탠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 42.195Km여! 105리의 긴 여정이여!
난 5시간 40분에 걸쳐 그 긴 길을 달려 이제
결승점에 다달은 것이었다.
눈에선 하염없는 눈물이 흐르고 또 흘렀다.
난 슬플 땐 혼자 산에 올라가 운다.
눈물아! 쏟아지렴, 장마의 소나기처럼.....
기적처럼 두발로 병원 문을 걸어 나왔던 딸을
보았을 때도 오늘처럼 눈물이 이렇게 쏟아졌다.

사랑하는 나의 딸. 아들아!
비록 이 아빠가 성공한 삶은 아닐지라도 너희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왔고 또 그렇게 살아갈 거라는 것을 너희들은
꼭 느껴주길 바란다.
너희들이 그렇게 느낄 수만 있어도
이 아빠의 삶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닐 것이다.
<내일엔 어김없이 태양이 또 뜨듯 난 또
아스팔트 위를 숙명처럼 그렇게 달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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