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는 영이 있다.



오래전 나에게 가게 경영법을 배운다고 학교 후배가 2년

동안 근무한 적 있었다. 대학에서 응원단에서 맹활약하던

여인인데 내가 외출할땐 늘 손님들과 한 바탕 싸우고

씩씩 거리면서 "오늘은 쫄딱 망했다"는 말을 했다.

처음엔 그 말이 우습고 재미가 있었는데

말끝마다 그말이 붙어 다니니 나중엔 거부감이 생겨

삼가하는게 좋겠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날 그녀의 친정 어머니가 딸이 근무하는

곳에 와보고 싶었다며 케익을 사들고 오셨는데

첫마디가 "여길 오느라 오늘 스케줄이

뒤죽박죽이 되었으니 쫄딱 망했다고 했다.

난 희한한 모녀지간이구나 하고 의아해 했는데~~



그 얼마후에 행정고시 패스해서 경제기획원에 근무하던

남편이 왔는데 그의 입에서도 말끝마다

"쫄딱 망했다"를 연발했다.



내가 그녀가 말할때마다 나쁜 말은 습관적으로 반복하면

말 그대로 되는 징크스가 있다고 누차 말 했지만

그녀는 버릇처럼 그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그 후 남편이 국비유학을 2년간 가게 되어

그녀도 따라 갔다가 귀국해서도 다시 내게 와서

근무했다. 개업을 하려먼 더 익혀야 된다고~~



그런데 남편은 경력을 쌓기 위해 공무원 신분으로

모 대학교에 일주일 한번 정도 강사로 출강했다.

그게 불행의 시발점이었다. 그 남편은 공무원직도

잘해야 되고 학교의 강의도 잘해야 되니

늦게까지 서재에 있으니 열정적인 이 여자가

세일즈맨과 바람이 난 것이다.



그때('76년도) 나도 그녀 덕분에 거의 매주마다

스키타러 용평에 갔지만 내가 오랫동안 거래하던

세일즈맨들도 몇 명이 같이 다녔다.

원래 세일즈맨들은 어음 결재하는 날이면

나이트니 뭐니 하고 대접을 해 주니 별로 의심을 안했다.



그 이듬해 그녀는 개업을 했는데~~~

남편이 늘 책상에만 앉아 있다고 가게에서 자는

날이 많았는데 수상하게 생각한 남편이

낌새을 채고 경찰과 대동하고 가게 샷다문을

발로 차고 들어가니까 그 넘하고 옷벗고 있는걸

현장에서 들켜 바로 잡혀갔다.



재판할때 나도 갔는데 그녀의 남편은 치사할 대로

치사해 져서 친정에서 사 준 집과 미국에서 사갖고 온

전자제품도 몽땅 주어야 합의 해 준다고 했다.



7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세탁기가 있는 집도

별로 없을 때 그녀는 아르바이트해서 전자제품과

스키셋트를 사갖고 왔었다.



원래 친정이 건물임대업을 하는 엄청 부자였는데

부모님은 입에다 거품을 물고 치사한 넘이라

욕했지만 하나 있는 아이와 모든 것을 뺏기고

이혼 당했다.



다시 가게를 차리고 장사하면서 그넘하고 잠시

살았는데 다시 그넘 친구하고 눈이 맞아

교도소에 같이 갔던 넘 하고도 헤어졌다.



난 우리집에 있을땐 나와 성격도 맞고

취미도 같고 해서 굉장히 친했는데

일이 이렇게되고 보니 우리 옆지기한테

그런 사이코하고 같이 붙어 다닐때부터 알아봤다고~~~

그리고 나이가 더 먹은 사람이 그런 낌새를

알았으면 말려야지~~~나만 혼났다.

허지만 늘쌍 세일즈맨들과 잘 다녔으니

유부녀가 그런 행동을 하리란 꿈에도

생각 못했다.



암튼 이런 불상사가 있은 다음 부턴 계속 불행한

일이 일어 났다. 그녀의 친정 어머님은 그 많은

재산을 남기고 유럽 여행갔다가 뇌졸증으로

객사 하시고 그후 1년 후 아버지 마저 사고로

돌아 가셨는데 이혼한 남편도 후배보다 출세도

못하고 한직으로 쫓겨 났다가 사표를 냈다는 소문이다.

그것은 그 후배가 군수로 부임해 우리 옆지기에게

전화를 해서 안 사실이다.


그녀는 여러 사람과 섹스를 즐기다 보니 추하게 늙어

결국 미국에 갔는데 6년 전에 한국에 나와 나를

만나자고 했지만 옆지기가 못나가게 해서 지금까지

생사를 알길이 없다.

난 지금도 그녀가 미국에서 아르바이트해서 사다준

영국제 손거울로 화장을 한다.

볼때마다 정말 예쁘고 똑똑하고 말 잘하고 영어 잘하고

어디 하나 나무랄데 없는 여인이 젊은 혈기로

나쁜 길로 접어 든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아득한 옛날 얘기지만~~~지금의 그녀도 60고개를

쳐다보고 있는 나이일게다.


★ 님들도 좋은 말만 하고 나쁜 말은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일 없기를 바래요.★



글/칸타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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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보의 집


.. 바보천재 운보 김기창화백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최근 들어 이 지역은 예측이
몇번째 빗나갔다.

해서 우산도 없이 전철을 타고 광화문에서 부터 걸었지.
빌딩숲을 구경하며 음~ 이 호텔은 그냥 그자리에 저 신문사 사옥은
새로 지었네.잘지었구만. 저 빌딩은 영자가 근무하던곳.

저쪽엔 국회의사당 별관 자리였구 이쪽은 본관이였지!
이곳은 원자력 병원입구였구.
에그머니나. 무서운 저 길은 12층에서 감사를 받던곳.

비가 떨어지네.
같은 지역인데도 궁안과 궐밖은 공기가 전혀 다르다.
새소리도 어찌도 그렇게 맑은지!
꽃향과 솔향이 코를 자극하네.
본관을 지나 미술관으로 직행.

우리 민요가 흘러 나왔다.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고유함.
예수의 생애를 그 님은 우리의 민속화로 그려 냈다.
처음보는 그림이였다.

그가 썼던 붓들과 약간의 수석모음.
저렇게 큰 붓이 있나?
설명을 보니 걸레를 뭉쳐서 표현 한것이라네.
기이한 그림들.

영 이해가 안가는 문자도.
멀리 맞은편에서 보니 글씨가 사람모양으로 보이네.
글자를 잘아는 사람이 이것은 무슨자 라고 써놓으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터인데......

우리생활에서 볼수있는 군밤장수.구멍가게.보리타작.십장생도.풍류도.
낚시터. 소나무. 대나무를 많이 그렸다.

본관에서는 궁중유물전시를 하고 있었다.
왕들의 서체 들이랑 이은의 어렸을적 글씨가 너무 반듯하다.
돌에 새겨진 글씨들.맘에 드는 글씨체를 따라서 써 본다.
달필.명필......
궁중 복식.음식.
시간 가는줄 모르게 감상을 했다.

어느임금님의 '가애죽림' 대숲은 사랑함직하다는 말은
오늘 대숲의 사진과 연관이 있어.그런대로 발걸음이 가뿐했다.
분수대 옆에 능수벚나무가 보기좋게 피어 앞에가서 팻말을 읽어보았다.

마로니에나무는 움트려하고 저쪽넘어 버드나무에 노란물이 올라
연두색으로 가려하고 만물이 소생하고 있네.

빨강.회색.초록.푸른.흰색.
푸른색에 금색.
옥색저고리에 자주빛고름. 연두빛당의.금박무늬.

다음엔 과천과 삼청동 쪽으로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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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날의 한 잔 술과 늦게 잠자리에 들다보니

새벽에 일어나기가 버거웠다.

아마 예약되어 있는 뱃시간이 아니었다만

조금만 더를 외치며 새벽 단잠을 즐겼으리라.

여러 사람과의 약속에서 자신 때문에 일정에 차질이 생기면 안되기에

망설임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어렵사리 일어난 후의 차가운 새벽공기는

언제나처럼 상큼함으로 대해준다.


동녘 하늘에서 아침 단장을 하는동안 서해안으로 달리니

그제서야 떠남에 대한 설렘으로 아이같은 마음이다.

단장을 마친 해가 모습을 보일 무렵 바닷가 해안도로로 들어 섰다.


언제나 예외없이 바다가 보이면 뛰는 가슴인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리.


비로소 졸던 일행들도 작은 환호와 함께

펼쳐진 아침바다 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부안 변산반도의 송포라는 작은 어촌.


빠짐없이 등장하는 갈매기의 안내를 받아 목적지에 당도 하여

아침식사를 주문했다.


그러나 미처 식사 준비를 못했다는 선장 내외의 당혹한 모습에

거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원래 맹수도 배가 고파야 사냥을 잘 하는 법이니 그냥 갑시다."

투덜거린다고 없는 밥이 생기는 것도 아니기에

아까의 기분 좋음을 유지토록 서로 독려하며 배를 탔다.


고깃배 치고는 제법 크다.

왁자지껄한 일행을 뒤로 하고 난간에 서서

주변 감상에 몰입해 보았다.

특별할 것도 없는 늘 생각하고 보던 것들,

그럼에도 항시 새로운 느낌이다.

넘실대는 바다, 바다와 어우러지는 맑은 하늘, 유유자적한 갈매기,

가을 하늘의 효과를 더 해주는 뭉게구름, 영상미의 작은 섬들,

그 사이에 비치는 고기잡이배등등.

거기에 아직 집에 가지 않은 하현달이

중천에서 빙긋하며 같이 하고 있었다.

이 모든 걸 가슴에 담아 보려 애를 썼으나

'좋다'라는 단 하나의 생각외에는 그냥 멍한 즐거움이다.

이미 낚시가 시작 되었음에도 한참을 주변 정취와 함께 하였다.

실은 낚시를 해 본적이 없기에 별반 관심도 적은 게 사실이다.


여기 저기서 터져 나오는 탄성 소리에 슬며시 구미가 당긴다.

고기를 낚어봐야 세월도 낚으리라는 생각을 하며 자릴 잡았다.

모두들 몇 수씩 하는 동안에도 초보자를 희롱함인지

내게는 통 소식이 없다.

얼마가 지난 후 드디어 내게도 소식이 왔다.

제법 묵직한 느낌이 오기에 '이런 게 손맛인가 보구나.' 생각하니

첫 포획에 작은 떨림으로 전해오는 느낌이다.


첫 수 치고는 엄청 큰 게 걸렸는지 촛자인 나로서는 감당키 어려워

선장을 불렀다.

낚시를 건네 쥔 선장이 찡긋하며 말한다.

"낚시 바늘과 추가 바닥에 걸렸어요."


일행들은 그 모습에 재밋어라 웃는데 난 심각해졌다.

생애 처음으로 드리운 낚시에서 지구를 낚을줄이야.

이제 당기기만 하면 지구는 내 것이라 큰소리로

초점없는 넓은 곳에 외쳤다.

그러나 이를 어쩌랴!

지구는 홀로 소유하기엔 희생 당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은 것을.


그리하여 세상 모든 이들과 공유 하기로 마음 먹고

과감히 바늘과 추를 포기 하였다.


이상하다.

아마도 그 날은 지구가 내게 정복 당하고픈 강한 욕구였나보다.

낚시를 드리우기무섭게 거푸 거푸 지구만 걸리니

갸륵함에 대한 인내심 테스트라 여기며 계속 놓아 주었다.


잡고 놓아 주고를 연속적으로 다섯 번이나 한 통 큰 낚시 뒤

줄을 걷어 올렸다.


바늘과 추를 계속 희생시키는 미안함도 있었으나

얼굴 간지럽히는 해풍과의 대화가 차라리 좋았기에.

조금 후 부르는 소리에 가보니 즐거운 선상 파티가 벌어졌다.

한 쪽에서는 밥 익는 소리와 매운탕 끊는 소리가 장단을 맞추며

군침 도는 흥을 돋구고 있었다.


잡으라는 고기는 한 마리도 못 잡고 지구만 가지고 놀다 온 나에게도

자격이 부여됨을 감사하며 파티에 동참 하였다.

웃음이 끊이지 않는 정겨운 모습이나 자연과 함께 하는 멋스러움은

지난 날의 '타이타닉호' 선상파티가 이만 했으랴.


바닷 바람과 함께 한 만찬이 끝날 무렵 1시부터 물 때이니

많이들 잡으라는 선장 소리에 모두들 다시 자릴 잡고 앉았다.

실적없이 공술과 공밥을 먹은게 미안하기도 하고

또 이왕 나온 김에 몇 마리 잡아 볼 요량으로 다시 낚시줄을 드리웠다.

희안하다.

선장의 말이 맞는지 자리가 좋은 탓인지

모두들 넣기만 하면 줄줄이 사탕이다.

잠시만에 낚시 문외한인 본인도 무려 다섯 마리의 우럭을

잡아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그리곤 또 거두었다.

한꺼번에 많이 잡으면 씨가 마르니 나중에 와서 또 잡겠노라 너스레 떨며

이리 저리 해찰만 하고 다녔다.


의외로 많이 잡혀 두어시간 앞당겨 철수키로 하고

꾼들의 2차 소주 향연까지 곁들였다.


돌아오는 뱃길에서 다음에 또 볼 수도 있으련만 떠나면 아쉬울 듯한

풍광을 가슴 가득 담아보며 그리운 이들을 생각하는 즐거움이었다.

다시금 해안 도로를 들어서니 맑은 하늘이 언제였냐는 듯

갑자기 소나기가 내린다.

비!

어려서부터 사랑하는 친구, 변함없는 내 좋은 친구인 비가 내린다.

하루의 즐거움을 축하하며 세파의 덜 씻긴 찌꺼기가 남았거든

마저 씻으라는 배려일게 틀림 없다는 생각으로

달리는 내내 비와 함께 하였다.

슬며시 차창을 열고 서로의 얼굴을 부비면서.

2001. 09. 20

-북극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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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 김수철 - 깊은물 (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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