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5월 18일,

추적추적 비 내리는 소리만 적막을 깨치는 깊은 밤입니다.

 

지난해 5,18 묘역을 다녀온 후, (5월 19일 참배)

가슴이 먹먹하여 못 다 쓴 글이 늘 시퍼렇게 날을 세우고 살아있었습니다.

애써 외면하려 할수록.....더 아파오는...

 

가슴 먹먹한 사연이야 제가 뭐라고 하겠습니까만...

이맘 때 쯤이면 묘역 입구에 하얗게 피어나는 가로수 ‘이팝나무’ 이야기나 할까합니다.

 

5월, 눈부시게 이팝나무가 흰 꽃으로 피어나는 계절입니다.

이팝나무는 물푸레과로 입하목(立夏木)으로 불렸다합니다.

이팝나무가 피면 여름으로 들어선다는 뜻입니다.

 

꽃말은 ‘영원한 사랑’에서 ....조금 의미가 바뀌어서 ‘충절’ 이렇게도 바뀌었다는군요.

먼데서 바라보면 보릿고개를 힘들게 넘기고 있을 사람들의 눈에는 마치

밥그릇에 소복히 고봉으로 담긴 이밥으로 보였겠지요!

 

제 생각에는 ‘입하나무‘ 라고 부르다가 입하, 입하가 구개음화되어 이파나무라 부르다가

허기진 시절.... 이밥, 이밥 하다가 이팝나무로 부르게 되지 않았을까? 싶지만 글쎄요!!

 

오늘 한 줄 뉴스에 박근혜 대통령이 이팝나무 꽃을 좋아한다네요.

그 에 덧붙여 이팝나무가 심어진 유래도 ...

 

1994년 11월 1일 신묘역(현 5.18국립묘지) 조성시 당시에는 진입로 주변에 가로수가 없었는데 5월을 상징하는 나무가 없는가?

고민하다가 전국적으로 5월에 꽃을 피는 나무를 찾아보도록 하여 고른 나무가 이팝나무였고, 1995년 봄에 이팝나무를 5.18국립묘지 진입로에 대대적으로 식재하여 오늘에 이르러 꽃을 활짝 피게 되었다”

 

..............

 

제 눈에도 마치 젊은 영혼들을 위로라도 하듯...

영령이나마 배불리고 싶은  아들을 잃은 어미의 마음과 정성처럼 이밥이 소복 소복히 담긴 듯...소담스런 흰 꽃이 피는 광경,

정말 적재적소에 잘 식재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팝나무꽃 몽글몽글 하얗게 피워올리는 5월!!

젊은 영령들이여 영면하시라!!

 

 

 

 

 

 

 

 

 

 

 

 

 

 


 

 

 

  


 

 

 

 

 

 

 

 

 

 

더보기

순국선열과 호국 영령의 차이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연일이와 관련된 뉴스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이들 언론 기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용어를 정학한 구별해 쓰기 보다는 적당히 혼용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광복회가 조사한 바로는 크고 작은 언론에서 순국선열에 대한 용어를 제대로 쓰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잘못된 유형은 크게 두 가지, 호국 전사자의 비석 사진을 찍어놓고 기사의 내용과 제목은 순국선열로 쓰거나. 사진과 기사 모두 호국영령에 관해 쓰이 있는데 제목에는 버젓이 순국선열로 뽑혀 있는 경우다. 두 경우 모두 순국선열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은 개념 자체가 분명히 다르다. 국어사전에는 순국선열의 사전적 의미를 나라를 위하여 싸우다 죽은 위대의 열사로 설명하고 있다. 이민족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자발적으로 독립투쟁을 벌이다가 전사, 옥사, 병사한 이들이 바로 순국선열이며, 이들의 숫자는 독립운동 참여자 연인원300만명 중 15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2003년9월 보훈처 국정감사 자료 참조)

이에 비해 호국영령의 사전적 의미는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킨 명예로운 영혼이다. 국가의 부름을 받고 전장에 나아가 적과 싸워 나라를 지키다 희생된 이들이다. 희생의 경을 논하는 것 자체는 난센스다. 하지만 나라가 없을 때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과 나라의 부름을 받고 비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은 분명 다르다.

독립유공자에 관한 법률 제4조 1항에 순국선열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내려져 있다. 순국선열:일제의 국권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8월14일까지 국내외에서 일제의 국권침탈을 대하거나 독립운동을 위하여 일제에 항거하다가 그 반대나 항거로 인하여 순국한 자로서, 그 공로로 건국훈장, 건국포장 또는 대통령 표창을 받은 자 대한민국 건국에 지대한 공헌을 한 건국공로자들이 바로 순국선열인 것이다. 언론은 순국선열과 호국 영령의 용어를 잘 구분해 써야 한다.

현충일이 호국영령들의 희생과 넋을 위로하는 날로 인식된 지 이미 오래다. 이렇게 된 데는 행사 주최측의 책임도 크다. 호국보훈의 달 행사가 다양하지 못하고 호국영령의 비석을 돌보는 행사 일색이기 때문이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근본 원인은 실선 학교에서 순국선열과 호국 연령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많다.

광복회는 최근 순국선열에 대한 용어를 잘못 쓰고 있는 해당 언론에 대하여 법률에 명시된 순국선열에 대한 올바른 정의와 함께 해당 기사의 제목을 수정해 줄 것을 요구하는 공문을 냈다.

6월은 독립운동 관련 기념일도 많기에 호국보훈만을 강조하는 달로 고착돼서는 안 된다. 6월1일은 국가지정 기념일인 의병의 날이고 6월7일은 독립군 대장 홍범도 장군이 일본군을

괴멸시킨 봉오동 전승일이며, 6월26일은 백범 김구 선생의 서거 일이다. 6월이 다 가기 전, 애국지사 묘역에 잠들어 계신 순국 선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 주면 좋겠다.

경남신문2012-06-28 광복회 울산 경남연합지부장 김형갑씨 글 옮김

 

맛 찾아 떠난  남도여행

 

10월도 저물어가는 28일 아침 맛을 찾아 남도 여행길에 올랐다.

김치축제가 있다기에 도대체 광주, 그 남도의 맛은 어디서 나올까 무척 궁금했다. 서울서 버스로는 4시간 ktx로는 2시간 50분이 걸렸다.

아침부터 안개는 얼마나 끼었는지...전날 밤 늦게까지 작업을 하고 잠에 곯아떨어졌다가 보니 고속도로도 안개가 자욱하다.

이런 날...스님 머리 벗겨지는 날이라더니 이 날 낮엔 얼마나 더운지...늦여름을 방불케 했다.

11시 30분경에 광주도착 지인과 만난 나는 점심을 먹으러 담양으로 나갔다. 금세 간다.

가는길에 담양 메타세콰이어길에 잠시 들러 사진 찍고....

 

 

담양 메타세콰이어 길 말고도 담양가는 가로수길은 모두 그랬다.

안내를 받아 간 곳은 "유진정" 청둥오리집이란 것만 알고 간 곳이다.

손씻으러 화장실을 가다가 허거걱!!!

마녀의 마법에 걸려서 나무가 된 왕자님이 지금 막 멋진 왕자님으로 풀려나는 중이다.

주인의 독특한 취미가 느껴졌다. 지금은 화장실 구석에 세워져 있지만....멋있다.

남도는 허수룩한 이발관에 가도 화가의 그림이 걸려있다더니...

이런 식당에도 예술의 끼가....마구 흐른다.  우선 마음에 든다.

처음보는 오리 요리다.

조금 특이하게 나온다.

청둥오리가 가라앉아 있다. 들깨가 듬뿍 든 탕?

담양산 죽바구니에 담겨 나온 야채! 탕이 끓으면 야채를 넣으란다.!!

왜 담양산이냐면? 국산은 바구니가 너무 예쁘다.

예전에 담양 죽공에 박물관에 들렀다가 이런 바구니에 홀딱 반해서 사온 게 아직도 있는데

너무 예뻐서 갖고 놀고 싶을 정도였다. 10년도 더 됐는데...아직도 새 것 같다.

중국산에 비해 마무리도 좋고 예쁘고 결이 아주 곱고 짱짱하다.

김치!!

오늘 김치축제 구경?(실은 취재)하러 왔는데 이집 김치는 흔들렸다.

맛집을 잘 추천하지 않는 난 이 사진을 찍을때도 그냥 건성 찍었었다.

그랬기에 그냥 놓여진 대로 그대로 찍었다.

깍두기는 좀 오래된 거 같아 조금 성의 없어 보였고

이때만해도 그저 건성....탐탁잖게 여겼던 식당이었다.

추천한 분이 미안시러 할까봐...아무런 내색도 못하고, 그저 좋게 좋게...

근데 땅콩이 나왔다. ㅎ`ㅎ` 이런게 아마도 남도지방 인심인가 보다.

무슨 횟집도 아닌데...땅콩이 왜 밥상에 올랐을까?

작년 영암 여행시 장뚱어탕집 사진이 있길래 찾아봤다.

ㅎ`ㅎ`ㅎ` 밤도 있고 야쿠르트도~  남도 인심은 확실히 후하다.

 야채와 고기를 건져서 또 들깨가 듬뿍든 얀념장에다 찍어 먹는단다.

맛이 좋았어요. 저...다른고기를 알러지 땜에 잘 못 먹어도 오리는 괜찮아서 잘 먹기에

나름 오리맛은 잘 안다고 자부!! 역시 남도라..양념장이 필요없이 딱 맞다.

맛있다. 먹느라 정신없는데...이런 이런, 우리 점심이 일렀는지 손님들이 자꾸 만 꾸역꾸역 몰려들기 시작한다.

일찍 식사를 끝내고 나왔다. 손님들이 속속 몰려오기 시작한다.

이런 방송에 나선 글 따위에 현혹되는 사람은 요즘 없을 것이지만....역시나....차별화된 맛이다.

마당에 나오니 역시 주인의 취향은 예술적이다. 혹 조각가?

자연스런 야외 미술관이다.

 평일 낮인데도 예약도 많고...세팅된 방을 슬쩍 엿봤다.

맛집으로 방송을 탔다는 액자보다.

쌀-국내산, 김치- 국내산 이라는 쪽지가 더 마음을 움직인다.

식사후 바깥에 나와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쳐다보이는 공간 모두 조각품들이다.

오른쪽 공터에는 너른 무배추 파밭이 있다.

이렇게 직접 기른 채소로 김치를 담아냈나보다.

좀전에 푹 익은 깍두기를 보고 성의없다고 생각한 게 미안해졌다.

무 배추밭을 보니 갑자기 이 식당에 관한 신빙성이 생긴다.

거기다가 청둥오리탕 마저 맛있지 않았는가?

그렇게 현란한 맛은 아니더라고 순수하고 겸손하고 그윽한 맛!!

먹고나서도 절대 불쾌한 맛 따위는 없는....마치 집밥을 먹은 듯한 편안한 맛!!

맛은 그런 게 아닐까?

광주로 돌아나오는 길 역시나...메타쉐콰이어 터널을 지나왔다.

무수한 가로수 길이다.

비록 담양까지 와서 오늘은 대나무 숲은 못보고 가지만

광주 '염주체육관'에서 열리는 김치문화축제...그 맛에다가 흠씬 젖었다가 올라가야 한다. 

 염주체육관이 멀리 보인다. 이 길도 메타세콰이어 길이다.

 

이날 나는 맛을 찾아 남도 여행을 한 셈이다. 광주 김치 문화축제장을 둘러보고....

가보고 싶어서 갔다가  점점 더 깊이 들어가는 김치에 대한 여러가지 전시 목록들...김치박물관에서 댓시간을 충분하게 관람 지체하고

김치축제의 한 프로그램인 직거래 김치마켙에 무수히 나온 김치를 찍어보고 맛을보니 100여개가 출품되었다면 소수만 빼고는 거의다가 달디단 국적불명의

그런 저런 물엿과 설탕과 미원맛의 범벅이었다.  고수나 명인들이 출품한 묵은지나 진짜배기 맛을 담은 작품들은 그림의 떡이었다.

상경하기 전 광주역 앞, 평범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나온 김치를 한 점 먹다 말고 <그래, 바로 이 맛이야!!> 평범한 식당아주머니의 손 맛!!

역시 남도 맛의 근원은 축제장에만 있는 게 아니고 군데 군데..혹은 집집마다 도사린  대대로 전해지는 우리 어머니의 어머니,,,그 어머니의 손 맛이었다.

 

글/이요조

 

 

죽향골 청둥오리 전문점 유진정

본점/전남 담양군 금성면 석현리 469-2 금성중학교 옆 ☎061) 382-5888

금호점/광주광역시 서구 금호동 ☎062) 372-5289

 

 

 


남도여행기 첫째 날에
 
광주를 거쳐, 해남에 왔더니 동백이 지천~

▲ 2006년 4월 14일  ‘해남’
 
 

해남에서 쓴 편지

 

 

급한일로 떠나왔다. 집안일의 출장길인 셈이다.

배낭하나 달랑메고, 해남땅을 밟아보기는 난생 처음이라...약간은 두렵고 또는 아름다운 남도의 첫 여행길이다.

일단 광주까지 KTX로 내려왔다.  난생 처음 낯선 곳으로  미지의 세계로 혼자, 떠난 여행인 셈이다.

용산서 광주까지도 말만 ktx 지 시간은 그저 그런 거 같았다. 부산까지가 2시간 40분 광주는 15시 15분에서 17시 45분 도착이니 2시간 30분 소요된다.

부리나케 오늘 안으로 해남으로 가야하는데...가는 도중에 조금 변동이 생겼다. 내일 아침까지 도착해도 될 것 같았다.

 

어차피 밤시간이고 여유시간이 좀 생긴 나는 도착 15분 전 쯤 동안 감감하게  잊고 살았던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역에 픽업하러 먼저 나와있었다.  정말 몇 년만인지, 친구와 마지막 본지는 여러해 되었지만 친구의 식성이 기억이나서 고깃집으로 향했다.  광주 신시가지는 둘 다 잘 몰랐지만 시청 부근을 중심으로 순회하여 고깃집을 골라 앉았다.


시청을 중심잡아 돌았더니 그럴싸한 식당이 하나 보였다.  여행길에 낯 선 타 지방에서 음식점이나 고깃집을 찾으려면 큰 관공서를 끼고 있는 곳을 찾으면 대체로 틀림이 없다.


우리가 식당에 들어갈 시간은 초저녁이었고 주차장은 거의 휑하니 비어있었다. 친구는 꽃등심이나 안심을 좋아라했는데, 오늘은 좋은 게 없으니 갈비살로 권했다.(물량이 딸려 그러는지?)그저 권하는대로 먹기로 하고, 나는 별 시장끼가 없어서 그간 어떻게 살았는지 이런저런 얘기로 꽃을 피우는데 웬걸, 무심결 씹고 있는 입안에 든 고기맛이 깔끔하다.

반찬도 그런대로 맛깔지고 특히 고기를 먹고난 뒤 냉면대신 누룽지탕을 시켰더니 속이 편안했다.

이야기 하느라..고기를 제대로 먹었는지, 말았는지 아무튼 기억에도 없다.
가격은 둘이 먹고나니 50,000원 남짓이다. 그런데 웬걸 나와보니 주차장에 차가 중첩으로 주차되어있었다.

얼마나 많은 차들이 몰려와 있는지....아무튼 손님이 많이 끓는 집은 재료 자체가 신선하니 더욱 좋다.

역시나 잘 골라 선택한 식당이 틀림없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셈이다. 

 

격조했던 동안 친구는 어머님도 돌아가셨고 삶의 변화가 무척 많았다.

식사 후 어디 따로 갈 데가 마땅찮아 바라보이는 곳, 콜롬버스시네마 가까운 곳으로  슬슬 이야기꽃을 피우며 이동했다.

나는 괜스레 멀리 떠나왔다는 야릇한 흥분의 피곤함도 풀겸, 그저 멜로물같은 편해서 좋을 것 같아 선택한 "연리지"라는 영화였다. 참으로 제작비도 얼마 들이지 않은 게으른 영화였다.

단지,  조금 이름났다는 여배우 하나 꼭두각시로 앞세워 놓고....영화는 그저 그랬다.

 

영화를 보고 돌아나오는 빌딩의 계단이 나무 계단이다.

우르르 빠져 나가는 뭍 사람들의 구두 발자국 소리가 나무계단을 울리는....소리, 또각또각 꽤나 수선스럽다기 보다 명쾌한 듯 들리는 그 소리는 어느덧, 잠자는 저 기억 뒤편의 기억들....높은 하이힐을 신고 마지막 상영 영화관을 황급히 벗어나던...

나의 젊은 시절 그 때는 통금이 있어서 ....구두소리 또각거리며 바삐 귀가길을 재촉해야 했던, 그런 잊혀진 소중한 기억들이

망막에 보퉁이 한 끝,  매듭이 풀려나 듯 비쳐쳤다

 

친구는 이 시간에 해남을 가도 어차피 숙박할거면 그 곳은 시골이니 집에서 자고 가라고 말렸지만...한 발이라도 앞 당겨 놓을 욕심에 부지런히 터미널로 향했더니 막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 기다렸다가 10시 5분 마지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친구는 무척 서운했나보다. 터미널을 빠져나오도록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미안했다. 맞벌이 직장만 아니라믄...

나랑 함께 남도여행을 떠나보면 좋을텐데....

흔들리는 어두운 버스에서 더듬거리며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이리 바삐 갈꺼믄 뭐다러 왔다냐?"

"뭐다러 왔다냐~"는 친구의 볼부은 말이 내내 가슴에 얹혀서 한동안 먹먹하게 막혀있었다.

친구는 함께하지 못하지만 청산도를 꼭 둘러보라는 말만 거듭 다짐시켰다.

 

 

해남가는 막차에는 손님도 거의 없었고 나는 배낭을 베고 누워서 휙휙 스쳐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보름인가? 휘영청 보름달이 계속 날 따라오고 있다.  먹구름속에 가렸다가 다시금 빼꼼히 얼굴을 내비쳤다가...하기를....

박목월님의 나그네 시가 자꾸만  입에서 뱅뱅 감돌아 외워졌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버스가 정류장에 설 때마다 기사 아저씨가 큰 소리로 일러주는 지역이름들....

사람들이 하나씩 간간히 타기도 하고 내리기도 하는  어둔운 밤의 낯 선 고장들!

조금씩 그 이름들을 들어보았던 작은 소읍, 소도시들을 지나고 또 지나...밤 11시가 다 되어 해남땅에 도착했다.

 

해남터미널이래서, 다 왔다고 그래서 내리고 보니 시골처럼 캄캄하다. 나 역시 모든 게 캄캄하다.

잠자러 혼자서 모텔을 찾아들기도 그렇고... 택시가 줄줄이 대기중이길래 일단 올라탔다.

 

"아저씨~ 가까운 찜질방 좀 찾아 주세요~"

"바로 저긴데..."

하며 차를 슬슬 움직이는 아저씨...작은 로타리만 돌자마자 내려주고는 1,800원이다.

터미널 방향에서 고개만 조금 쭈욱-내밀면 보이는 위치다.

 

택시가 줄줄이 대기 줄을 섰으니...할 수 없는 노릇이란다.

아저씨도 난생처음 가까운데 내려줘 보신다하고. 나도 택시를 가장 최단거리로 타 봤다며 그냥 그냥 웃어주고 내렸다.

 

지금시각 1:07분 낯선 고장에 와서 나는 낯 선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날이 밝으면 해남 볼 일을 끝마칠 수 있으려나?

옛날부터 가보고 싶었던 보길도나 들어 갈 수가 있을지 모르겠다.

부활절 주일은 꼭 올라가야 하는데...마음이 그리 넉넉하진 않다.

 

 

그만 자야겠다.

건조증에 눈이 무척 슴벅거린다.

 

 

4월14일 새벽, 이요조 (사진은 며칠 뒤 집에 가서 올리겠음) 

 

▲ 2006년 4월 13일  ‘광주’

 

▲ 2006년 4월 13일  ‘백화원’ 갈비살 구이

▲  ‘물김치’

 

▲ 맑은 선지국

 

▲ 쌈

 

 

▲ 머위나물

▲ 돌나물 오이무침

 

▲ 김자반

 

▲ 김치찜

▲ 고춧잎김치

▲ 멸치볶음

▲ 알타리김치

▲ 누룽지탕/연이어 카메라 흔들림

 

 

▲ 그냥 비디오 한 편 본 느낌!

 

 

 

▲ 해남 터미널 앞 정원에 핀 접동백/한 나무에 두 가지 빛깔의 꽃이 피어난다.

 

 

 

 

남도여행이 아니라 동백여행이다. 아니 춘백여행이다.

난 말로만 접동백 소리를 들어보았지 여지껏 산다화를 접동백이라 부르는 줄 알았다.

 

해남 들어서면서 부터 동백은 얼마나 숱한지,

예전에는 홑동백보다 접동백이 더 알아주던 때도 있었단다 (일명, 카네이션동백)

접동백이 훨씬 육감적이다.

 

허나 홑동백의 단아함, 그리고 열정을 숨긴듯한 매무새!

홑동백은 절대로 활짝 벙글어 피지 않는다.

미소를 입가에 빼 문 처자들(아가씨)처럼 반쯤 입을 열었다가 시들기 전에 툭! 하고 떨어진다.

불현듯 피었다가 불현듯 진다. 홑동백은....

 

접동백은 화려하고 육감적이다. 대신 나무에서 가지에서 시들어 있는 걸 종종보게된다.

접동백의 만개후 시듦이 허무하다면 홑동백의 낙화는 애처로움이다.

 

요즘엔 다시 홑동백을 쳐준다며(알아준다는) 이야기 한다.

(볼일을 마친 후, 얼마간 해남 안내를  자처하신분 말씀이...)

 

툭-툭- 떨어져 쌓이는 동백처럼 내 일도 그렇게 애처로움 속에 마무리져 졌다.

일일히 열거하여 이야기 할 수 없는 일이지만....혼돈속의 미망이다.

 

일을 마무리한 나는 이제 남도 여행을 떠나야 한다.

 

 

혼자....

 

혼자다.

 

 

마치 남쪽으로 화사하고 밝은 꽃마중을 나온 듯 하다.

 

 

 

 

 

 

2006년 4월 14일 이요조 해남에서,

 

 

접동백/해남에는 집집마다 정원에 거의 접동백을 즐겨 심었다.

 

 

 

 

 

▲ 접동백

 

 

 

 

▲ 홑동백신초

▲ 홑동백

 

단풍

청목 새순

 

▲ 할미꽃 ....(영동할미꽃?)

 

 

 

 

 

▲ 칼라 프리쟈

 

 

 

▲ 식물원 온실 종묘장


▲ 식물원 사이로 개울물은 졸졸....겨울엔 꽁공 얼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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