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모니터에 비쳐진 이 사진을 보고

가슴이 찡했다.

불현듯 엄마가 생각이 나서~

내가 초딩 상급생이었는지....중딩 때인지 잘 몰라도

엄마는 카렌다에 여름계곡 그림을 떼어내기에 안타까와 하셨다.

<이 그림 잘라서 따로 액자에다 넣어야겠구나! 웬지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져~>

하시던 바로 그 그림과 흡사하다. 

 

그 날 밤에도 나는 숙소로 돌아와서도 내내 이 사진을 열어보며 엄마 생각에 잠겼다.

여름에 태어나 여름을 좋아하시다가 여름에 돌아가신 엄마....

여름이 오면 해수욕을 하기위해 어린애마냥 늘 먼저 준비하시던 엄마!

 수영을 곧 잘 하시던 엄마.....가신지 어언 30여년이 다 되어간다.

어느새 내 나이가 돌아가실적 엄마 나이를 훌쩍 넘어버렸다.

 

  

여즉지 엄마 살아계신다면 이런 데를 무척이나 좋아하실텐데...... 

치악산 계곡에 접어 들었다가 나는 하마트면 목놓아 울 뻔하였다.

경관이 하 좋다보니....별일이 다있다. 

물이 얕은데도 빛깔이 푸르고 맑은 옥수였다.  

 

구룡사 대웅전이 연못이었단다.

아홉마리 용들이 동해바다로 쫓겨 달아났는데

그 중 한마리가 눈이 멀어 가까운 용소에 숨어 들었단다.

바로 이 곳에서 살다가 승천했다는 전설이....

 

사람들은 용소를 쳐다보며...

<깊겠지? 소에서 헤엄치면 클난다는데...> 한다.

원래 소(沼)는  보이는 것보다 깊어서 오랜 세월 폭포로 닳고 닳아 아주 깊게 패인 곳이 조금씩 있어서

그 곳에서도 물이 솟구치면 소의 물 온도는 겉과 속이 다르다 한다.

개구리 실험에서 비이커 물에 개구리를 집어 넣고 물의 온도를 서서히 올리면

그냥 얌전하게 죽듯이...

사람도 소에서 헤엄을 치면 신체가(하체부분) 서서히 찬물에 마비증상을 가져와서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냥 말도 없이 꼬르륵.....익사하게 된단다.

해서 연이어 소에서 사고가 나면 앞서간 원혼의 물귀신이 당겼느니...어쩌느니 한단다.

오죽하면 소를 늪沼 로 쓸까?

 

(할)줌마의 노파심은...ㅉㅉ~

끝간데 없다. 

 

용소라고도 불리고 용(폭)포라고도 불린다는 이 곳!

....

구룡사의 원 九龍寺를 龜龍寺로 바꿔 부르고

사찰에 손님이 없자 거북이 돌을 깨어 부수었다한다.

그 후로 사찰이 다욱 위기에 처했다는 오랜 전설이 있는데....

 

 

 

▲ 내 눈에는 용소 벼랑을 기어 오르려 애쓰는

거북이 한 마리가 보인다. ㅎㅎㅎ(상상은 누구나 즐길 권리가...)

 

 

  

 

  

 

찰방찰방.....내를 건느고 

돌멩이 위로 아슬아슬....건너뛰고, 

가다가 맑은 물도 카메라에 담고  

  

풍덩 뛰어 들고도 싶지만 

 

 

 

 

 요렇게 푸르도록 시린 물가에 자리를 잡았다.

세수하느라...벗어둔 남편의 안경을 대신

쓰고 있는 돌멩이 

구룡사 절터를 막 벗어난 곳에 있는 용소에서 1,9km 더 올라가면 세렴폭포가 있다는데....

이만해도 족하다 싶던 차,  비님 오시길래 그만 발길을 돌렸다.

 

글:사진/이요조

 

 

 

.

 

 유형문화재(145호)인 보광루를 바라보며

 

사천왕문

 

 

구룡사

백두대간의 주맥이 오대산을 거쳐 서쪽으로 태기산을 지나, 국동의 명산 치악산에 이르고 거기에 영서의 대찰 구룡사(龜龍寺)가 자리잡고 있다.
풍수지리적으로 “천년이 지난 신령스러운 거북이 연꽃을 토하고 있고, 영험한 아홉바다의 용이 구름을 풀어 놓는 형상을 한 천하의 승지”인 치악산에 구룡사는 서기668년(신라 문무왕8년) 의상대사께서 창건하셨으며 나말려초 도선국사의 비보사찰중의 하나로 수많은 고승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구룡사는 원주시 소초면 학곡2리 치악산(1288m) 국립공원에 자리잡고 있으며 황장목(금강송)숲길의 일주문(원통문)을 지나 사천왕문에 들어서 구도의 계단을올라 문화재인 보광루밑을 나오면 대웅전이 자리잡고 있다

 
단 : 대한불교조계종
전화 번호 : (033)732-4800
소재 주소 :

220-830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 1029번지

 

 

 

 

 

8월 14일이었다.

원주 치악산 구룡사에 들린 날은

비가 간간히 내리다가 멈추다가를 반복하는 더운 날이었지만 치악산 계곡은 엄청스레 시원했다.

원래 명산은 좋은 사찰들이 다 자리하고 앉았다지만 치악산 입구에 구룡사가 버티고 있다.

아마 진입 경관도(치악산중에서) 제일 나으리라.

처음엔 사찰이 치악산 입구를 가로막아 입장료 2,000원을 내라기에 투덜대었는데....

점점 깊이 들어가면서 그런 생각은 반감되었다.

<음...이 정도면 (청소)유지비로도 그렇게 받아야 하겠는 걸....너무 싸서 아무나 아무렇게나 사용한다면

망가질 꺼 같애> 하는 생각마저 들었으니.....나두 차암~~

구룡사는  마침 <템플스테이>하기 수련중이었다.

구룡사라기에 얼핏 9룡을 생각했으나 거북 龜자였다. 구룡사에서 긁어 온 이름 전설이 재미난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끊고 한참 걸어올라가면 구룡교가 나온다.

다리 양 난간으로 용이 용트림을 하고....거북이도 중간에 보인다.

약수를 한모금 마시고 함께 걸어보실까요?

차례대로 찍었습니다.

 

 

일주문 이름이 원통문이군요.

 

여기서부터 황장목 숲길인 금강송길이다. 

 

 부도가 보이고

 

고령수 은행나무가 입구에서 반깁니다. 

가을, 은행잎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비오는 어느날....

후드득..떨어져 쌓였을 때 다시 오고싶어지는 곳입니다.

지형이 그런지라

계단식으로 지어진 게 특이합니다. 

 보광전(좌)아래로 난 계단으로 올라가면 대웅전이 있다.

아래에서 바라보는  지붕의 서늘이 곱습니다.

 

 

 

 

▼ 

 ▲ 삼장탱화 및 복장유물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36호

 

자세히 보니 유리로 덧문을 대었군요. 무척 단아한 형태입니다. 

나리꽃 루드베키아... 여름꽃이 정겨운 화단

 

불자가 아니라서 백등은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으나...

 

용다사 동종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33호 

천왕문이 까마득한 언덕 아래에 있군요 

건물 하나 하나가 거의 계단식으로  되어있습니다.

입구에서 보면 까마득합니다.

키가 큰 소나무가

잘 버팅기게 받쳐주는 것 같습니다. 

 이요조/글,사진

 

 

 

 

 

치악산에 (처음으로)갔습니다. 

악자가 들어가는 산이니 치악산은(큰산岳)

큰 山임에 분명합니다.

 

큰 산답게 삼림도 역시

울울창창 하더군요! 

 

 

나무들이 예사롭지 않아 보입니다. 

 

 

치악산 입구,

1주차장에 있는 자연보호헌장입니다.

 

 

제1주차장 右편 계곡쪽으로 눈을 돌리면

개인소유의 요렇게 예쁜 꽃농장도 보입니다.

 

 

입장료를 내는 곳입니다.

대인 2,000원 조금 비싼 듯 합니다.

2007년 1월1일부터 국립공원 입장료는 없어진 대신

사찰 입장료가 꽤 비싸졌습니다.

주차료 4,000원에다 입장료에다 좀 비싼 것 같다했더니...

<그 돈을 마치 내가 착복하는 것 처럼 내게다 대고 으르렁대는 사람들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부아가 끓는답니다>

 

 

매표소에서 들어가자 20m도 안되는 곳(좌)에 황장금표 표식돌이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벌목금지 표식인 셈입니다.

 

 

조선시대에 설치한 것으로

황장목을 보호하기 위해 벌채를 금하는 표식인데 황장목이란 속이 누런 빛깔을 띠며 재질이 단단한 소나무로

뗏목을 만들어 서울로 운반하기 좋은  섬강과 남한강을 끼고 있고

치악산 소나무가 특별히 좋다고 전한다.

 

 

왼편 언덕위로 5~6m 위치에 있었다.

 

 

우측에서 씌여진 황장금표 

 

 

 

치악산 입구에는 사찰 구룡사가 자리잡았는데....

소나무가 우거져 있어 그 경관을 더 보탰다.

다행인 것은 소나무 재선충은 오지 않았나보다.

 

우리의 소나무  적송은 금강송으로 불린다.

겉은 붉고 속은 황금색이고....

금강송이 소나무 중에는 으뜸이란다.

 

 

소나무 껍질이

마치 거북이 등껍질처럼 되려면 좋이 200년은 넘어야 한단다.

옛말에 굽은 소나무가 선산지킨다는 말은

일제강점기 때 쭉쭉곧은 소나무를 일본인들은 벌목해서 저희들 나라로 날랐다고 한다.

그러자니 자연 등이 굽은(좋은 목재가 될 수 없는)소나무만 버혀지지않고 남았던 것이다.

 

 

쭉쭉뻗은 소나무가  많았다. 

유난히 키가 큰 소나무가 많다. 

속된 말로는 잘 빠진 소나무 들이다.

 

 

꺽어진 (솔)가지도

죽었지만 사후에도 제 소임을 다하고 있다.

늘어진 채 이끼를 한껏 달고는 인고의 세월을 대변하려 한다.

  

 

사슴의 뿔, 녹각같은 형태다.

 

 

아직 본체는 살아있다.

굽은 소나무로....

비록 목재로는 아닐지언정,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은 제일 많이 받지 않을까?

 

 

죽은 소나무다.

소나무는 이렇게 죽은채로 100년이 지나도

목재로 좋다고 한다.

 

 

궁궐이나  사찰의 큰기둥...그대로인 모습으로 곧다.

손으로 한 번 쓸어 어루만져 보았다.

아! 부드럽다.

어느 목수의 사포질이 있어 이렇게 부드러울 수가 있으랴?

오랜세월 비바람에 시달려도  누런 황장목 그대로다.

 

 

 

소나무가 아니지만 은행나무다.

수령은 200년이지만 얼마나 단아하게 잘 자라났는지

500년된 은행나무 못지않다. 

 

 

보호수림이다.

구룡사를 지키려 버티고 선

수문장 같다.

 

 

강원도 지형이라

절간을 보는 내 눈에는 이상했다. 언덕 저 아래로  천왕문이 있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오면 대웅전이 있고 평지에 조화롭게 지어진 아기자기한 맛은 없어도

마치 마추피추에 세원진 건물처럼 따로 따로 지어져 있는 게 재밌다.

이런 소나무가 버티고 있기에 버팀목이 되어서 언덕을 지키나보다.

 

 

소나무는 이식(移植)이 어려운 나무다.

겉으로는 얼른 표시가 나지 않아 나름대로 자리잡느라 애쓰는 게 몇 년, 서서히 죽어가는 게 몇 년,

한 십년 넘어야 겨우 이식에 성공했다고 보는 나무란다.

 

요즘엔 정원에 많이 심어지는 나무는 일본에서 수입해오는 나무가 대부분이라는데....

 

산행을 하면서 보니

어린 소나무가 발아를 해서 자라나는 게 더러 더러 보였다.

소나무들은 계속 자라나고 있었다.

치악산 품이 더없이 좋나보다.

소나무 저들에겐...

 

 

글,사진:이요조

 

 龜龍寺 일주문 뒤로 금강송(적송)이 그나마 조금 보이는군요.

 

금강소나무

한국 민족의 정서와 기질에 큰 영향을 준 소나무는 솔나무라고도 부르는데,
이 때 '솔'은 '으뜸' '우두머리'를 뜻하는 말로 나무 중에 우두머리란 뜻입니다.
금강소나무는 줄기가 곧고 마디가 길며 껍질이 얇고 나무 속이 붉은 것이 특징입니다.
이곳 치악산의 금강소나무는 질이 좋아 조선시대부터 나라의 보호를 받아왔으며,
주로 궁궐을 지을 때 사용하였습니다.
금강소나무는 조선시대 궁궐의 황장목(黃腸木)으로 사용되어 일반인의 벌목을 금지하는
황장금표(강원도 지방 기념물 제30호)가 표지로 남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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