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나무 되 살리기...



미루나무님들~~

무더위에 안녕하세요.
많은 식구들이... 새로운 카페로...
운영자로... 그렇게...떠나들 가시고
너무나 조용하시군요.

저 역시나..
글이 ..그 못났지만..우스운 글이 씌여지질 않습니다.

제.. 향수를 불러일으킬.. 제 자리 탓이였던 것도 같아보여,
님들께...
이런 글, 용기내어 올립니다.

죄송합니다.

칼럼지기님들...

숲길로 글을 올려주셨으면 하는 부탁입니다.

지금 이 말씀 드리기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마음이 두근대고 ..글은 횡설수설입니다.

한달 간.. 동안,,,
귀하신 옥고를 찾아 가시기 바랍니다.
제가 숲길로 다 올리려니..
좀,,무린 것 같습니다.

한 달 뒤에... 정리 되는대로
미루나무 곧추 서 보겠습니다.

더운 날...
건강하시기를...바라며,

미루/이요조 드립니다.

2002년 7월11일 초복에

























































◎ 이름:엄마

2002/6/28(금) 14:29 (MSIE5.0,Windows98;DigExt) 211.222.168.49 1024x768



사랑하는 내 막내 아들..종열이 보아라  





click~☞이등병의편지



집 떠나와 열차타고 훈련소로 가는 날 부모님께 큰절하고 대문밖을 나설때
가슴속에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지만 풀 한포기 친구얼굴 모든것이 새롭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친구들아 군대가면 편지 꼭 해다오
그대들과 즐거웠던 날들을 잊지않게 열차시간 다가올때 두손잡던 뜨거운
기적소리 멀어지면 작아지는 모습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짧게 잘린 내 머리가 처음에는 우습다가 거울속에 비친 내 모습이 굳어진다
뒷동산에 올라서면 우리마을 보일런지 나팔소리 고요하게 밤하늘에 퍼지면
이등병의 편지한장 고이 접어 보내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이등병의편지 김광석 노래



종열아~

네가 입대하는 오늘 아침

늘 별렀지만 막상

이 엄마는

아무 것도 해 준 게 없구나...

기껏 고기 몇 점 구워준 것밖에...



할머니의 기도와

중언부언한 에미 기도,

그리고 오렌지 3개 건네준 것 밖에...



형,때도 그런 것처럼...

엄만 현관 배웅만하고

아빤...큰 길까지 따라 나서셨지

이넘아

아빤,,,역까지 걸어가는 너를

대로변에 서서 한없이 바라다 보셨다는데

넌, 친구들이랑 이야기에 빠져

뒤도 한 번 돌아 보지 않았다는구나.

못된넘~

지에미 닮아 무심한 넘~  



12시에 논산 도착해서 점심을 먹고 있다구?

그래... 엄마는 시각이 바뀔 때마다

온통 너, 생각 뿐이었다.



오후 한시...

모여서 점호 할테고,

오후 2시면....한참 차렷자세로

연병장 뙤약볕에 서서 지시를 받을테고

오후3시쯤 되면...그제사

연병장을 흩어지겠지 하는생각,

오후 6시면...부대에서 이른저녁을 배식받을 너...

음식이 입맛에나 맞을란가?



밤 10시가 되자  

난, 느그 아버지에게 말했다.

"여보 지금, 우리 종열이 소등하고 잠자리에 들 시간이네요"

피곤해서 곯아 떨어질 네 모습이 어른거렸다.

아버진 아무말씀 없으셨다.

시계걸린 벽쪽으로 멀거니 시선을 두신채,



오늘 아침... 일어나

네 텅빈 침대를 보며...

왜 그리 허전한지..

왼통 집이 다 비어버린 것만 같구나.



오늘 아침에 식탁에서 말이다.

니가 빠진 빈 자리에서

네가 언젠가 식탁 유리밑에 무심결에

끼우던 그 사진 말이다.



아빠가 꺼내실려고 하시는거다.

누나도, 엄마도 왜 거기다 그걸 넣냐고 나무랐던...

우표딱지만한, 네 증명사진 말이다.



엄마가 그랬단다.

"왜요? 나, 우리 종열이 보고싶으면 한번 보고,...

밥 먹으며...또 보고...나는 좋구만요"

했더니...



느그 아버지 말씀이

"유리 아래 깔려서 안쓰럽다시는구나"

아버지가 왜 그러셨는지...

넌 알 것이다.



외려 엄마 보다도

느그 아버지가 더 사랑이 많으시다는걸,

니는 알 것이다.



아버진.. 식사 때마다 네 생각에

목이 메이실 것 같아 그러실게다.





종열아,

엄마...

기도하듯 니 한테

부지런히 글 쓸란다.



3년전... 니 형이 군대 갔을 때에도

엄마는 장문의 편지를 종종 보냈다.

그런데... 너무 집 생각나면 안된다고

편지 보유기간이 일주일인가 열흘이란다.

그 이상 갖고 있음... 안된단다.

그래서 다 없앴다는구나.

저를 낳아 길러... 22년만에 처음으로 사랑한다고...

절절히 쓴 엄마편지를....

좀 서운하더구나



해서

난, 이제 보관도 할 수 있단다.

프린터로도 빼서 보내고도 영원히 남겨 둘 수도 있단다.

에미 편지 자주 보내마..

종열아...

오늘은 훈련 첫째날,

무척 힘들쟈?

그러나

넌, 내 아들~

화이팅!!! 이다.







2002년 6월 28일 엄마.








낯 선 손님들은 항상 손주냐고 물어보는 문제의 사진!
우리 종열이 아가 때,,,


이 엄마가 찰칵!! 순간포착!!

1982년 무더운 7/8일 생이니..태어난지가 아마 한달 쯤 됐나보다.

그 사진을 액자 채... 디지털 카메라도 어제 엄마가 또 다시 찰칵~



2002년7월 9일... 니 생일 담날... 종열이를 그리워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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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종의 "화첩기행" -藝의 길을 가다-를 읽고




*금강산도 느끼고 최북도 만나보고.....




이 요조


책을 읽다말고
나는 가슴이 뜨뜻해져 왔다.
책을 덮어버리고 나는 한참을 속울음으로 울었다.

北은 나와 아무런 정말 아무런 연관도 없는 곳이다.
더구나 금강산도 아직 한 번 다녀오질 못했다.

남의 일인 것처럼 無心하게 살고 있었다.
그냥 그러려니하고 살고 있었다.

그런데 왜 글 한 귀절이 일순 내 가슴에 슬쩍 와 닿더니....
알지못할 슬픔으로 꾸역꾸역 밀려드는 것일까

책을 덮고도 한동안...그 어떤 슬픔에...
시야가 뿌우옇게....촛점이 잡혀 오질 않다가

내마음 내가 달랠 요량으로,
뭔지모를 썰물이 밀려나가듯 쏴한-
마음의 갯가에서 조갑지를 줍듯....그렇게 글을 줏는다.

그의(김병종) 글과 그림으로 옷 입혀진
화첩기행을 읽으며,
"그의 눈부신 감성은 놀라운 招魂의 능력을 지키고 있다"는 書評의 글이나..


(병실에서 이 글을 쓰며....쓰다가 말다가 끊기다가..
글의 맥락이...감정이... 잘 이어지질 않는다.
책을 읽고 난 직후의 느낌,
넘쳐나는 감정의 흐름을 다 담아내지 못하고 그냥 흘려 보내버리는 이 아쉬움~~)

금강산!
그 금강산에 대한 글을 단 몇 줄의 표현으로도....
그는 오랜세월, 단절된 더케의 아픔을
내게 단 몇줄의 글로 무겁도록 안겨주었다.

난,
최남단에서 전쟁이 터지던 그 해.
무더위가 시작된 그 달에 태어났어도...
北과의 피비린내나는 처절했던 전쟁의 상흔에 대한.....그 무감각의 무딤과..
작금에 희미해진 이데올르기의 상실시대에 살아오면서...
쓸데없이 보낸 우리 조국의 억울한 그 세월의 허망한 이념껍데기를 본다.

김병종님의 "화첩기행을 읽으며....藝를 다루는 사람들의 기인성과 천재성을 접한다.

광기는 때로 예술가의 힘이라 했던가?
광기와 천재성이 실로 함께 반뜩이는 예인들...
조선조 회가 최북, 이름을 破字 (北-七七)하여 칠칠이-칠뜨기라 자칭한 그의 기인성....
금강산 구룡연에서 몸을 날렸으나....살아남았던 그....

고흐는 자신의 귀를 잘랐지만 최북은 자기의 눈을 찔렀다한다.
화가에게 눈은 바로 생명이다.
그림을 그려주지 않는 최북을 위협하는 권세를 부리는 이에게
차라리 내눈을 내가 찌르고 말리라며.....
한 쪽 눈을 찔러 실명케 된 최북...

그는 그림도 그리지 않고 60이후를.. 빈궁하게 살다가...
만취한채 길거리에서 동사한 불운한 화가였다.




毫生館(호생관) 최북(崔北)의 '풍운야귀도上'와'공산무인도下'





스스로 '붓으로 먹고 사는 사람'이라는 호생관이란
호를 지은 것을 보면 낭만적 기질보다는 자조적 기질이 많았던 최북...


그 최북이 젊어서는
저자거리에서 그림을 파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었다
하며 신광수는 다음과 같은 싯구를 남기고 있다


"장안에서 그림을 파는 칠칠이를 보소.....문을
닫고 하루종일 산수화를 그려대네.아침에 한 폭 팔아 아침을 먹고,저녁에
한 폭 팔아 저녁밥을 얻어먹네....."


또 신광하 같은 문인은 '칠칠이의 그림은 싸다"라고
할 정도니 당시의 최북 그림은 예술성을 높게 인정받지는 못했던
모양이다.그러나 강한 개성의 소유자였기에 남들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초절한 작품도 상당히 있다.천성이 오만하고 수 많은 기행을
일삼었던 그도 그림만은 반대로 얌전한 작품이 많아 의아스럽기
까지 하다.


공산무인도...폭포와 마주하고 있는 정자

"빈산에 사람이 없으나, 물이 흐르고 꽃이 피네"
라는 왕유의 詩에서 따온 화제가 맵시있는 반행(半行)의
흘림체로 씌어있어 그 내용과 함께 일종의 선미까지 느끼게 해준다.
공허한 산속의 정취,왼쪽의 풍부한 농묵과는 반대로
정자옆에는 마른나무를 그리고 기이한 물안개까지 피어오르고...이같이
호쾌한 기상이며,"기이하면서로 예스럽다"는 찬사에 남김없이
값하는 명품이다.(참고도서;학고재 간,이태호 유홍준 편저,조선후기의
그림과 글씨 중에서)



숨겨진 예인들의 많은 이야기들을 새삼 다시 들으며....

그 분들이(우리 선조들의 藝人) 나, 즉 내 마음안으로 접목되어지는 듯.....
한결 가까와져 옴을 느낀다.

"문학과 미술의 용호상박이란다.
그의 손길이 닿으면..모든 것이..."
모든 무명의 기인들이 그의 손 끝에서 영혼이 다시 살아 일어 설 것만 같은,
그래 바로 그 것이였다.
김병종(현 서울대 미대 교수) 바로 그가 기인이었음에...
나는 그의 그림에 글에 매료되었다.

* 금강산의 예인들* 에서

그는 금강산을 뒤로 두고 떠나면서..이렇게 서술하고 있었다.


"금강산을 뒤로 두고 떠나야 할 시간이 왔다.
화구를 챙기는데 붓이 울고 있었다.
내 귀엔 그렇게 들려왔다.
불현듯 만물상을, 옥류동을 다시 보고 다시 그리고 싶었다.
한 번 그런 생각이 들자 피부에 불이 붙듯 그 감정은 절실해진다.
예기치 못한 일이었다.
평생 그리던 여인을 만나자말자 다시 헤어져야하는 것처럼 나는 안절부절 못했다.
묶으려던 붓을 다시 풀자 그것은 싱싱한 성욕처럼 일어서며 나를 부르르 떨게했다.
..................................





이 글을 읽으면서... 난 그의 감정이 나에게로 전이되어 옴을 느꼈다.
오죽 그리고 싶었음에...오죽하였으면...


다시 금강산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여기 그의 책에서...갑자기 내 마음을 뜨끈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의 글,
단 몇 줄이나마 들고나왔다.


"엊그제 꿈에는 비로봉을 보았다. 잘생긴 산이다. 꿈속에서 그렇게 생각했다.
잘생긴 산이야, 산이 생기려면 저 정도는 돼야지라면서 눈을 떴다.
서둘러 서재에 들어가 내가 그려온 <금강화첩>을 펼쳐보았건만 꿈에 본 그 산이 아니었다.
둔하고 못난 손. 이렇지가 않았어. 나는 애꿎은 손에만 짜증을 내었다.

폐일언하고, 나는 요새 '금강산 정(情)떼기'에 골몰하고 있다. 사람들이 물으면 무슨
억하심정 가진 사람처럼 이렇게 말한다.

"금강산 그거 갈 거 못돼요. 요사한 계집처럼 사람을 마구 홀리더라니까.
하마터면 화가 최북이도 거기서 죽을 뻔했잖소,...아무튼 쌍녀러산이야." 용서하시라.
민족의 성산(聖山)을 두고 마구 비속어를 쓴 나를.

그러나 금강산 유람 동안 버스의 옆자리에 동승했던 한 노인도 나처럼 그렇게 말했다.
버스가 온정리의 한 마을 가까이로 둥글게 돌아갈 때 말 없이 앉아 있던 노인은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 저기야. 저 산등성이 넘어 학교를 다니곤 했어. 알겠어? 저기라고, 저 고개말이야.
우리집이 저 고개너머야."

노인은 숫제 내 멱살을 잡을 기세였다. 차가 그곳을 멀리 벗어났을 때에야 노인은 털썩 앉으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거지같애. 별것아니면서...50년이나 못오게 하고...환장할 세월을 살았는데...거지같애."

나는 노인의 마른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물줄기를 못 본 척 했다. 말은 안해도,
바로 이 상처와 후유증이 무서워 차마 금강산에 가지 못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떠나온 그 세월이 너무 애달퍼 단 며칠 그 땅을 밟고 휭하니 되돌아올 수는 없는 것이겠기에,

그러기에 격한 마음 뜨거운 가슴 가진 사람들일수록 조심할 일이다.

금강산행을,





(오늘 이 글을 .....잠 오지 않는 밤에 단숨에 쓰곤 난 내일 후회할른지 모른다.
내 되잖은 글 솜씨에... 부끄러워 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난... 내일 쑥쓰러운 못난이 글이 될지라도.....
단 한 번의 추고를 거치지 못한 뒤죽박죽의 글일지라도....올릴것이다.
솔직한 내 마음을.... 내 느낌을 고스란히 전하고자, )




11월 17일 새벽에..


디지털 카메라로 처음 찍은 책...
유홍준의 화인열전 2
"여름날의 낚시"

(최북은 유흥준의 "화인열전" 도 참고했음)


















취화선 홈 門 ◎ 이름:글/이요조
2002/6/27(목) 17:24 (MSIE5.0,Windows98;DigExt) 211.227.69.191 1024x768
취화선/영화감상문




**이제는 보는 영화에서 가슴으로 느끼는 영화였으면....**




임권택 감독, 그는 분명 거장이였다.

좁은 한국은 이상하게도 예술가들을 보는 눈이 좁다한다.

외국에서 부터 먼저 알아주면 그제사 조금씩

인정해주기 시작한다.

이번 우리 축구선수들도 우린 그 실력들을 몰랐다고 한다.

아웃 사이더에서 먼저 인정을 받아야 하는 나라..

친구와 함께...테크노마트에서 취화선을 보았다.

6월 8일...오후 6시

큰 화면 가득...펼쳐지는 우리나라 풍광들....

무수히, 점, 점으로 까맣게 날아 올랐다가...흩어져 쏟아내리는 되새떼들...

감동의 그림이였다.

영상 예술이였다.

마치..우리나라를 잘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홍보로 보여주는 듯한...영상,

정말 우리나라가 이렇게 아름다웠을까?

영화의 줄거리는 장승업이 양반의 전유물인듯한 그림을

그들의 입맛에 맞게 중국풍으로 그려야 하는... 그,

술이 말술이였다는 그,

조선말기...그가 우리 곁을 떠난지는 겨우 100년 남짓,

조선왕조의 마지막 대화가 오원 장승업은 일자무식의 가난한 화가였지만

타고난 천재화가로 산수, 인물, 영모, 절지, 기명 등

다양한 방면에 좋은 작품을 남긴 명인이었다.

그는 주색을 매우 좋아해서 미인과 감미로운 술이 옆에 있어야 득의의 작품을 내놓았다.

오원이 도화서에 들어가 고종황제가 그에게 병풍을 그리라고 명하면서

하루 서 너 잔씩만 나누어주라고 엄명을 내렸다.

그렇지만 한 달을 못 넘기고 창덕궁을 빠져 나와 술집을 드나들다 걸려

왕의 진노를 샀던 일도, 종내는 도망쳐 나오는 이야기도

영화의 한 줄거리를 장식하고,

각본은 도올 김용옥님이 쓰셨다고 자막에 떠 올랐다.

큰화면의 웅장한 스케일에 떠밀려...

'장승업'이란 환쟁이가 예술혼을 앓는 기인 행세...대충 그런 줄거리였다.

그냥 그것 뿐이였다.

영화를 찍어내기에...엄청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걸로 알고

벼뤄서 보았는데.........기실은 아무것도 없다.

느낌이 없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영화란...낚시하는 줄거움에 비유하고 싶다.

감동을 낚고.... 생각을 낚고......철학을 낚고.....사상을 낚고

그래서 자기가 낚아서 뭉뚱그려만든... 고기망태를 기껍게 메고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잡아 놓은 물고기를 그냥...먹고만 온 기분이 드는 것은 웬일일까?

기대한 만큼...아무리 둘러 보아도 ....이,영화감상문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냥 잘 보았다. 좋은 영화였다. 그랬었다.

아무런 생각이 없다. 그걸로 끝이였다.

글로 써 두어야지 벼루다가 달을 넘기게 되었다.

영화를 보고나서 나는 장승업이 뜯어 제끼던 백숙이 떠 올라서...

그의 리얼한 먹는 연기가 떠 올라서....나도 마트에서 닭고기를 사고

팥시루떡을 산 것 외에는...

가슴으로 느껴지는 영화는 없을까?

가슴으로 파고드는 감동의 전이,

인간 내면의 갈등을 전해 받을 그런 모티브를 줄 순 없을까?

짧은 표현에서도 몸짓..눈짓 손짓 하나로도

미천한 신분의 미묘한 갈등과

그가 웅혼의 필치로 그림을 그렸듯....

번뜩이며...고뇌하는 예술혼의 진수...그 이상의 무엇,

영화를 보는 관객, 스스로의 몫으로 생각하게끔

유인하여 만들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저..망연히 영상만 보고 나왔다.

무지한 소인배인 내가, 너무 펌하했을까?

그러나 무지의 소치에서 나온 혹평도 평은 평이다.

최민식의 열연도 열연이지만...

왜? 나는 '파이란'에서 파락호로 보여지던 그가 자꾸만 오버랩 되는걸까?

욕심같아서는 무언가..많이 아쉽다.

한정된 시간안에 다 담기에... 무리였을까?

왜냐면... 그 작품은 수준작이므로... 칭찬은 덧칠일 뿐이다.

이 기회를 빌미로 나는 장승업을 알기위하여....무수한 웹 검색을 했다.

본연의 인간 장승업 보다

한국 고전 미술사의 인물1 쯤으로 분한 인간, '장승업'

암울했던 조선조 말기

장승업의 회화는 초월적 예술정신의 발현이자

시대를 밝힌 찬란한 예술혼으로서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을

영상화한 "취화선" 영화야말로 이즈음에

미술사적 고찰이란 넓이로는 볼만한 귀한 영화였다.

취화선(醉畵仙) 제목 그대로 그림에 취한 신선(神仙),

막상, 말년의 그를 아무도 보지 못했다 한다.

더러는 논두렁을 베고 죽었다 하고 아니면 신선이 되었다 하고

영화속에서는 도자기 가마 속으로 스스로 육신을 사르는 것으로 나온다.

그는 정말 신선이였을까?

말년을 은둔하는 그의 뒷 모습이 더 아름답다.




취화선 스틸컷을 옮겨다 놓으며
글/이요조











*스틸사진을 클릭하시면 큰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장승업의 일대기/취화선/에피소드*





축구를 외면한 감동의 날!  




지난 2월 28일서부터 시작한 오페라 유령  6월 26일 200회로 막을 내린단다.

6월 22일 한 달전 예약한 오페라 유령,  아이의 입원 퇴원 반복으로 미뤄왔던  그 게 왜 이렇게 날자가 겹치는 것일까?

하기사 토요일 그 날..   시청앞 부근에 예식장을 예약해 둔 신랑 신부도 더러 있다는데,

시간 PM 3시00분,

뷔이아피석 오페라 유령을 포기 할 것인가?

4강을 겨루는 대한민국 대염원을 기릴 것인가? 하지만  모성강한 이 에미 군말없이 역삼동으로 차를 몰았다.

오페라 유령,

책은 읽다가 재미 없어 엎어버렸지만...내용은 익히 알고 있다.

음악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어부지리로, 헌데...딸아이 운전중인 엄마에게 씨디를 틀어줘가며...노래를 찾아가며..시놉시스와 노래와의 줄긋기로 상세하게도 일러준다.

"이 노래는요....유령에게 끌려가며..안개낀 강, 다리위에서 크리스틴이 부르는 노래예요"

"이 노래는요..노래 속에 유령과 크리스틴 두사람의 사랑을..몽환적으로 나타낸 노래예요."

"이 노래는요 크리스틴에게 배역을 주지 않고 무시하는 단원들에게 본때를 보이고자...칼로타의 목에서 두꺼비 소리가 나게 만드는 것이구요"

이 나이에 상상력은 풍부해서리...영동대교를 막 건느며  "걍 집에 갈까? 내 상상력이 더 근사할 것 가토" 두 모녀는 웃는다.



아...엘지 아트센터엔...맨 여자들 뿐이다.

제 1막이 끝나고 나오는 사람들..한결같이 눈이 반짝반짝해서 안내원들에게 묻는다.

"어떻게 됐어요?"

너 나 할 것없이 한결같은 질문에  출입구에 서 있는 안내원들의 이어지는 앵무새 멘트,  "0:0 입니다."

2부를 보는 순간에도 오페라 유령 머리가  축구공으로 보인다.

'으이그... 괜히 왔네 그랴'  '아까운 돈!!'  근데 이상한 것이 오페라 관람하러 오면서도

다들 붉은 악마옷을 입었다. 흐~~

뭔가 마려운 듯한 기분에 빨리 끝나기를 고대하는 기다리던 관람 종료!!

역시 고마운 멘트..."아직 0:0 입니다"     " 곧이어 연장전 들어 갑니다."

순간... 건물이 무너지는듯한 함성?  오잉?? 한 꼴 넣었나?

사람들은 두리번 거려도 소린 어디서 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엘리베이터를 갈아 타는 곳...

왁자지껄한 함성이 들리던 곳, 티브이 앞에...진을 치고들 있었다.

역시 그곳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도 붉은 물결이 넘실댔다.

선동자도 없는데...그넘의  "대애한민국"이다.

누가 지었을까?

아마 학생이랬지?  처음엔 다들 '이게모야' 면서 비웃었댔지?

맞어!  대애한민국... "愛" 자 하나 더 들어 가는거야.

그러면 응원가가 되는거야. 가슴이 후끈하다. 늙고 낡은 내게도 그 열기가 옮겨붙나보다.



차에 앉자마자 라디오를 켰다. 이런,~~~  소리가 끊긴다.

지하주차장을 나오며....유턴에 또 유턴을 해야하는 테헤란로,

6시 6분?10분?경...

아니...이럴수가?

차가 하나도 없다.

사람도 없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다. 어쩌다..정말 어쩌다 나 같은 차량이

빈-거리를 질주하고 있었다.

유턴이 아니라 바로 좌회전 ,  또 좌회전...

혹 이글을 읽는 분...

나를 나무라지 마시기 바란다. 정말... 아무 것도 없는 도로니까...

비스듬한 비탈도로를 미끄럼타듯  신나게 코엑스까지 왔는데...

이젠 응원물결과 차들이 간간이 있었다.

좌회전이 안되므로 피턴으로 차를 돌려오며..

그 시간에...패널드킥으로 승부를 가리는 순간이였나보다.



길거리 가로수들 조차도 숨을 죽이고 있었다.

다시 거리엔...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정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손에 땀을 쥐는 순간이였다.



나도 덩달아 천천히 차를 몰고 있는데

기름 계기가..빨간 금으로 하락하고 있어..자동차 기름을 넣어야 겠고..

아무도 가들떠 보지도 않을 것 같다.

영동대교 남단 마지막 주유소에다 차를 살그머니 갖다 댔다.

바깥에 티브이를 내어놓고 10여명 앉아서 호흡마저 죽이고 있다.

고맙게도 한 청년이 쫒아왔다.

난 미안해 하며...기어드는 작은 목소리로

"좀 있다 넣어요"

"괜찮아요"

바로 그 때 였다.

스페인의 4번째 꼴을 이운재가 막아낸 순간이였나 보다.



"와아~~~~~~~~~~~~~~~~~~"

젊은 아이넘들 댓명이 박차고 일어나더니...생각할 겨를도 없이 차 한대 없는 빈-거리를 뛰쳐 나간다.

태극기를 마구 흔들었다.

언제 준비한 건지 패트병을 탁-탁-탁- 맞부딪치며.. 마구 강아지들처럼...빈차도를 겅중겅중 날뛰며 뱅뱅거리기를....

아~~ 덩달아 치솟는...터져나오는 이 희열~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축구경기 티브이 화면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딸아이도 벙싯 벙싯 웃고 앉았다.

그때사 보니 아이의 빨간 쉐타가 눈에 들어온다.

"야 너 옷 벗어... 창틈에다 끼우고 달리자."

"엄만,,ㅎㅎㅎ"



뻥 뚫린 동부간선도로를 달려오며...상계동 쯤 오니...차가 슬슬 모여들기 시작했다.

정말 멋진 날이였고  멋진 드라이브였고  멋진 경기였다.



나에겐...

그 텅-빈 거리의 광경이  잊지 못할 역사적 찰라였다.



내가

머리가 하얗게 세고  보행마저 불편할 지경의 파파할머니가 되면...우리 손자들에게 전설같은 얘기를 전해 줘야지

오늘,  내 눈으로 본  텅빈..거리의 느낌을.    그 전율들을....




글/이요조





 





◎ 이름:이요조

2002/6/25(화) 08:26 (MSIE5.0,Windows98;DigExt) 211.227.69.213 1024x768


내,어린날의 상처(방관자로서)  




*위 사진은 내용과 무관한 것임*





오늘은 '육이오'

난 부산 토박이지만...

아래는 부산으로 피난온... 그 당시 태어난 내 친구들...

그리고 둘 다 부모님은 이북 분이셨습니다.

난 늘 걔들의 도시락 반찬 가자미 식혜를 좋아했었지요.

내 것이 아니어서 엉뚱하지만,

아련한 향수가 일만큼....





누구에게나 그런 짐 하나씩 있는 모양입니다.

어릴 적... 그것을 뭐라 ? 명명한 것을 분명 어디에서 읽었는데..

잊었습니다.



전 자랄 때부터 뚱했습니다.

말이 없이...가만 있는 아이였습니다.

고집이 쎄서 입학하기 전 공부를 가르칠 엄두도 못내셨답니다.

해서 언니랑 함께 학교를 보내기로 하셨답니다.

안되면 2년을 하실 각오를 하시고는...7살에 입학



(실은 제가 위로 똑똑한 언니 컴플렉스에 빠져 언니 잘 하는 것은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歌舞를 무시하는 것 그때..영향이라고 봅니다)



겨우 10까지 쓰고 제 이름 석자 배워 학교에 보냈더니

뒷전에서 섞이질 않더랍니다.(유치원도 그래서 포기)



차렷,열중쉬엇은 하는데..율동이나 노래가 나오면 굳어버리는 아이였답니다.

얼르고 달래도 막무가내....뒤로 빠져 나오더랍니다.

(그래서 얻은 내 별명이 선비)

짝꿍이 정해졌습니다.



내 짝꿍은 ...

그 때 무용가 황무봉(부산피난시절)선생님의 무용연구소(학원/충무동에 있는)을 다녔었고...

그 당시.....부산에 역시 김백봉 선생님 무용연구소도 있었고...

각 음반회사... 우리 동네에는 (공장겸)지구레코드사.....

(1950~~ 1960대 말까지...)

피난길로 내려온 예술인들이 양군데에 거점을 둔,,,어중간한 시절이였으므로,

때아닌 무용붐이 일었댔습니다.

언니도 발레복을 입고 무용을 했었고...

학예회 사진 뒤쪽엔 미군들이 서 있었고..

우리는 학교에서 주는 전지분유를 큰 밥통으로 타 와서는

알미늄 도시락에 넣고는 쪄서

딱딱하게 굳힌 우유과자를 지겹도록 먹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피난통에 그나마 제일 경기가 활성화 된 부산에다 왜

그런 혜택을 주었는지...



그 아이가 황무봉 무용학원 갈 때... 몇 번 따라 가 본 나는 그냥 구경만 했을 뿐,,,

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는 않았지요.

여태도 에어로빅문전도 못가 보았으니....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부산극장에서 무용발표회 때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에서 '백설공주'를 하던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는 1에서 1000도 잘 썼고,

예뻤고... 엄마도 우리 엄마보다 젊고 세련되었고...옷이나 구두, 이상하게 머리 땋기, 가방

어디서 구하는지... 정말 백설공주처럼 하고 다녔습니다.



그 아이는 나를 좋아했습니다.

우린 반편성 한 번 없이... 육년을 그대로 있었지요.

순수 여학생 반으로,



일학년 시험 볼 때,

아이는 나에게 자꾸만 보고 쓰라고 답안지를 보여줬습니다.



보았지요.

그랬더니... 걔가 100점 전 95점을 받더라구요.

선생님...칭찬에...상장에....(시험 볼 때 마다 주더군요)

몇 번을 그러다가 제 스스로 도를 깨우쳤습니다.

묵묵히 공부를 했습니다.



둘 다 100점이였습니다.



그렇게 4학년까지 그 아이는 급장 전 부급장 이였습니다.

실제 그 아이 성적이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아~ 왜 둘은 계속 짝꿍이였냐구요?

두 엄마의 치마 바람이 그나마 있는 사람이였거든요

그렇지만 판이하게 다른 두 어머니의 생활양식

제 어머니는 고전적이라면...그애 어머니는 신식여인)



도시락을 보아도

그 아이 도시락통까진 생각나진 않군요

제꺼요?

말씀마세요.

아마 지금 갖고 있다면..

진품명품에도 나갈 수 있을 겁니다.

동그랗고 둔박한 나무통인데요...앙징맞게 귀여웠어요.

위에는 분리된 찬통... 옻 칠기처럼 번쩍 거리진 않는데...

무광으로 붉었어요.

사각 나무 찬합하고는 틀렸어요 일인용이니....

둥글고 불룩한 뚜껑을 보면...통나무로 깍은 것 같았지요.

어느 날..그 나무원통 도시락을 계란말이 넣어 달라고

메다 꽃는 통에 그만 뚜껑이 트는 금이 가 버렸습니다.

다른 형제들...다..이런 도시락 안 쓴 걸 보면...

제가 좋아해서 여기다가 싸달라고 특별 주문한 것 같기도 하고...아무튼

제 반찬은 주로 큰 굴비(그 때는 흔했음)가운데 알(卵)든토막

아니면... 된장에 박았던 깻잎 장아찌...엄마가 만든 단무지....

주로 그랬던 것 같은데(제일 싫어한 것이므로)

그 아이가 계란 말이(계란이 굴비보다 귀했음)를 사오는 게 얼마나 보기 좋았던지요.

그 아이가 3학년 때...빨간 다후다 점퍼를 입으면..그 걸 사 달라고 졸라서

사입으면...내 옷의 디자인이 맘에 들지 않았었고

그 아이 신은 샌들이 너무 좋아 엄마를 몇 날 며칠 졸라서 신발 가게를 갔더니

내 발이 너무 커서 없다는 말에 얼마나 서운하던지요.(비닐샌들)

그 당시엔 애기들 것이나...숙녀들 것만..있었습니다.

물론 나보다 발이 작은 걔,

아마 멋쟁이 걔 엄마는 그 신발을 어디서든 구해 올텐데, 알고 계실텐데,







이야기가 다른데로 갔지요?

시험을 볼 때면 늘

보여달라고 했지요

제가 누군가요

가르쳐 주긴 했지만..

그 아이의 점수는 언제나 차등이였습니다.



그아이가 교문에 떴다하면..

물론 집에까지 가서 책가방 들고오는 시녀가 따로 있지만

교실에 있는 아이들이 우르르 다 뛰쳐 나갑니다.



가히...장관이지요.

와...소리를 지르며...

그냥 나가냐구요?

손에 손에는 제일 귀한 것들을 다 들고 있지요.



연필..먹을 것,,, 귀한 것...

심지어 돈까지도,



난, 언제나 못 마땅했지만...

덤덤했습니다.

왜냐면 그 아이는 나에게 언제나 절반은 나눠 주니까요.

싫어 싫어 하면서도

못이기는체 받아왔습니다.



4학년 2학기 뜸 되어서

분위기가 이상해졌습니다.

묘했습니다.

아니 이제사 자아가 형성되었다고나 할까요?



수런수런..

그아이의 안티 세력이 합세하여 늘어났습니다.



학교에서 못다한 나머지 이야기를

우리집에 몰려 와서 하곤 했습니다.

전 언제나...

가만 지켜보았습니다.



드디어

D-데이를 정하더군요.



학급회의가 열리는 날입니다.



누구누구를 오늘은 성토하겠습니다.

누구는 시험 볼 때마다 괴롭힌다.

늘 컨닝을 한다.

어떤 비리기 있다.

아무튼 아이들이였는데도 당찼습니다.



그 아이는 게거품을 물고 실신했습니다.

손발이 뻣뻣해졌습니다.



학급회의서부터...

얼굴이 질렸지만 손을 쓰지 못할 만큼 드쎈 아이들 기에

억눌렸던 선생님께서는 급기야

얼굴이 새하얘지셔서

물,,가져 오라고 고함을 치셨습니다.



제가 물을 갖다 드리자

팔다리를 부지런히 주무르고 계셨고

벌써...심부름 보낸 아이의 어머니는 사색이 되어 달려왔습니다.



그 때부터...

그 아이는 다른 아이였습니다.

멍해졌습니다.

그 예쁜 얼굴이 살이 디룩디룩 붙으며 멍-해졌고...

왕 여드름 마저 툭툭 불거지는 미운 아이가 되었습니다.



그 날이후와 5,6학년 급장은 당연히 제가 했지요.

그렇게

아이들의 저마다 개성이 뚜렷해지고 자아가 발달하고

중학교를 가면서 헤어졌습니다.



전 부산여중을 갔고

그 반란의 주동자는 경남여중을갔었고

(훗날 왜 서구관내에서 먼 그학교 갔냐니까?

세라복이 예뻐서 그랬데요 ㅎ~)



바로 그 아이는 모여중을 갔습니다.

그리고 전설의 그 아이는 잊혀져갔습니다.



외모도.뛰어날 것도 아무 것도 없는 평범한 아이로.



난, 미안하다는..부담감...늘 남모르게 지니고 살았습니다.

걔가 그런 것은 내 탓이라고 늘 찜찜하게 맘속으로 괴로워했습니다.



고등학교는 나중에...야간인지..아무튼 이름없는 학교밖에 못갔다는 말만 풍문으로 들었습니다.



늘 가슴 한 구석..

또아리 틀고 있는 ..내 최초의 배신감으로

난 괴로워했습니다.

그 고운 아이를 평범으로 몰 고 간

내가 저지른 범행같았습니다.



사느라고...바빠서...아이 셋에다

시집살이에다, 병치레 잦은 한넘에다

또는 성장지를 멀리 떠나 온

이질감에다

난 나를 정말 잊고 살았습니다.



인터넷 세상이 오고 난 친구를 만났습니다.

주동자..

김 영희,

몇 년전...우린 극적으로 만났는데..약속을 하고



우려했지요

못 알아 볼까봐서...



그런데...기우였습니다.

그얼굴 그대로였습니다.

그애도 그런 말 했습니다.

우린 동시에 알아보고 껴 안았습니다.



영희, 그애는 형제가 별로 없어서 그런지

우리 집 언니 동생 이름까지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우리 집에 걸린 그림까지도 기억해냈습니다.

"아~ 맞어,그랬었구나...나도 잊었는데...너가?"



그날...우리의 만남 장소는 잘못 선택되었습니다.

바로 모텔로 직행했어야 하는데...

해서 푹신한 물침대위에 나란히 누워서

끝간데 없는 이야기를 했어야 했는데...



초저녁에 만난 우리의 수다는 장소를 옮겨가며 밤 2~3시까지 이어졌습니다.



드디어..

그 말을 꺼낼 시간이 왔습니다.

"얘, 걔 말이야 소식 아니?"

"응 ...미국살어...올 때마다 나 만나는걸"

"맙소사...이럴 수가?"

"아니 네가 걔에게 그래놓고선?"

"뭐 어때,,,어릴 때 일인걸..."

"걔는 몰라?"

"걔, 암 것도 몰라...ㅎㅎ 이상해...푼수가터...

미국에서 잘 사나봐..그러니 job도 없이 맨날 빈둥거리며...

비디오만 보다가 심심하면 고국에 날라들지..

걔, 골 아픈 얘기는 전혀 듣지도 못해..."

"아~ 어쩜........"

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억울해서....쓸데없는 것에 얽매여 왔던 내가 억울해서,,

'난 평생을 죄의식에 억눌려 살아왔는데...

난..얼마나 그 일로해서...괴로와 했는데...'



"요조야, 잊어...ㅎㅎ..니도 참 우낀다야~~"



"담에 오면 연락해줘? 같이 만나?"



"싫어, 됐어."



추억은 추억대로 묻어두는 것입니다.

아마 난 똑부러지고 잘난 언니 둔 덕에

그열등감을 내심 걔에게 만회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난 영희를 만났다는 반가움보다

그 날 이후~

그 아이가 잘 산다는 게 얼마나 고마웠는지...정말 반가운,

해서, 내 마음을 밝게 하는 창을 한 켠에 뚫어논 기분이랍니다.

















◎ 이름:이요조

2002/6/21(금) 13:39 (MSIE5.0,Windows98;DigExt) 211.198.117.143 1024x768


엄마의 러브레터 그림일기4






**LUCKY~ 7 이다.**


할머니 말쌈이
항상 기도하고....
>
임맛 엄따고 굼찌말고
구미 땡기능거 머 쫌 사 묵꼬...

또 기도 마이 하고
그라고
우야든동
건강하란다.

야야
그나저나....
토욜날...
4강 스페인전인디...
우린 아무리
오페라 유령인가
귀신인가
뷔아피 석이라 한들...
아무리 거금을 드렸다 한들...
대한민국의 그 뜨거운 열기
4강만 하겄냐?
참말로
갈뜽 때리는구마...

시간도 딱 고 시간이네...
문디 가스나...
예약도 팔짜로 해 났다 아이가.

우야믄 존노?
어이?

금욜,
내일 데불러 갈꾸마...
대충 그리 알고 있을 꺼구마...

날씨 함 조타...
비 온뒤라
바람 한 번 션-하고,

모처럼 엄마 기분도 구우시다.

오바다.


에고~ 이자뿔뻔 했따.
온 아침...출근은 우예했노?
비오는데?



아침에 비 별로 안왔어요..
우산을 써야되나 말아야 하나..할 정도로만..

금요일 저녁에 집에 갈수있도록 해볼께요..
토요일날 휴무한다고 눈치봐서 말해야지..
결과는 전화로 내일 알려드리지요
가져갈 짐도 좀 있구요..(헤헤 빨래..등등)

하필..오페라 유령과 8강 경기가 겹치는 불운..을 기뻐해야할런지
슬퍼해야할런지..

그럼 이만..

종인





>
5시 반에 퇴근합니다..
회사앞에서 집으로 바로 갈까 생각해봤는데
방에서..집에가져갈 여러짐들을 회사로 가져올 엄두가 도저히 안나서..
(사실 챙겨놓지도 않았음..--;;)
그냥왔어요..
회사에서 방에 들러 짐가지고 가야할듯..
참..그리고..
분홍색 자켓말예요..
지금 드라이 맡겨줄수 있으세요?
내일 오전에 찾을 수있다면..
그거 입고 가게요..

그럼..또 연락합지요..

종인



핀지
다 날리따...
따운이면 받아먹지나 말지
꿀꺽 먹고는(임시 보관함) 읍네
커서도 꼼짝 않는 악질 동결 따운이라서 고마
벨 수 없이 상납했따.

번갯불에 콩볶나?
드라이가 무신...지 할배집이라도 안되겄다.

오늘...
니 데부러 가야는데..
아빠랑 약속했다.

토욜 한달 전.. 예약해 노코
Y아줌마랑...
"난 언제든 굉일" 이라고 큰소리쳤따.

니 엄마...
딱 하나만 알고
두 개만 쥐어줘도 헷갈린다.

니도 그리 알고 대처해라.

오늘 아침...
밥맛이 없어...
(실은 배가 아파)
할머니만 먼저 차려드리고

인자사 아침 먹는다고
답장 좀 늦었다.
것도 두 번이니...

더 먹을까 하다가
도끼눈으로 토시고 앉은 니가
맞은 편에 앉았다 생각하고
고마,숟까락 놔부럿따

치과도 몬갔고...
나가믄서..마트에도 가야허고
일찌감치 서둘러야것따.

우리공주
기다릴라.

ㅎㅎ
또 다운!
허지만 두번은 안당하지~
내가 누군데...
胃大한 너그 엄닌데...




컴만 자꾸 다운되는게 아니라..
어무이 편지도 다운직전이구먼요..
긍게..
아빠랑 약속은 뭐구
Y아줌마랑 약속은 또 뭐대요..
그럼..
둘다 취소하고..
날 데리러 오신다는 말쌈?

험..몰겄다..
알아서 와!!
아님 낼 데리러 가마..
이거 아닌지 몰라..

종인..

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


ㅎㅎ~
그리도
헷깔리더나?

경기지사가 아니고

당연지사제.
(설사약 아님)

지둘려라
이,에미가 나가신다!

오바






















◎ 이름:이 요조

2002/6/19(수) 13:43 (MSIE5.0,Windows98;DigExt) 211.227.96.189 1024x768







"감자 먹고싶쟈?"












*사설/종열이~ (막내 군대 갈넘)

미국하고 싸울 때 광화문 가서 재미보고는

포르투칼 전, 벡줴, 동대문 운동장 가더니 잼 없어 성에 안찬단다.

해서 어젠 다시 광화문 응원전 간다기에

누나 있는 곳에 먹을 것 좀 갖다주랬더니

임무완수했다.

역시 우리집 심부름멘임이 틀림없다.



딸아이

짐 옮기는 날...거들어 준다고 함께 간

막내넘 얼굴을 그 때 보아서 잘 아는지(텔,지기)

열쇠를 내어주길래 방, 냉장고에다 잘 넣고 응원하로 간다네...(텔레퐁)

에구 이쁜넘~`












*딸/글쎄..들어올수있을려나 모르겠어요..

내가 없으면 방으로는 못들어오는거구..

냉장고에 넣는것두..

입실허가..확실치 않음..뭐..주방쯤이야 잘 들어가겠지..

안되면 데스크에 맡겨놓으라고 하세요..

어떤 접시에 담아가는데요?

냉장고서 찾을수 있을런지..

밥잘먹고 있음..

다만 청소가 귀찮아 내버려두니..

방에서 갑갑한 냄새가 나는듯도 함..



걱정마세요..

전화 자주안해도..

다만..오늘 축구를 소리지르면서 못본다는게..--;;

참..전화비가 걱정스럽구만요..아침엔 하지마세요..



씩씩하게 잘사는 딸올림.



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



*에미/잘 지내냐?

모든거이

?????

요거다.

다리는 어터카고 있냐?

우리집

맴 조은 넘,(심부름멘)

누야 퇴원 할 때

사다준

카라, 50송이 시들었네

버려야 쓰것다.



오메 아까운거...

그넘..

돈 깨나 쓴 꽃다발인디...

동생 맴을 봐서라도 언능 낫꺼라이~



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





*딸/부추김치였나?

냉장고 열때마다 냄새가 진동해서

참..냉장고 열기가 꺼려져요..

김치..너무 많이 보내지 마세요..

방에서 먹는거 금지되어 있어서

김치는 먹기가 곤란해요..

그렇다고

목발하나 짚고서 그 반찬들 바리바리 들고

주방가는건 더 불가능하구..--;;

어제는

12시 넘어

여기 고시텔서

치킨에 생맥주 시켜다가 파티했대요..

했대요! 라는 말을 쓰는건

그거 한다고 다 주방으로 모이라고 하는데도..

안갔기 때문..

밤새 밖에선 대~한민국!!

그래도 응원하느라 애써서인지 깨지도 않고 잠은 잘잤지요..

다만..침대가 너무 좁아서

옆으로 잘수가 없어요..

옆으로 돌렸다가

잠결에 바로 누우려고 뒤척이면 떨어지기 쉽상..

그래서 일까..

다리는..안아픈데..

별로 걷는것도 없으면서

등산한사람처럼 고관절 수술부위를 제외한 허벅지..

종아리..등..에

뻐근한기가 있어요..

꼼짝마! 자세로 자는 후유증..

많이 자고..푹쉬니까..

별로 피곤하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아요..

걱정마세요..



세원이가 자기 먹는 선식있다구 사다준대요..

그녀석 취향이야 믿을만하니까..

아침에 출출하면..

회사서도 자주 먹을려구요..





그럼..오늘 보고 끝.



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8






*에미/내가 보낸 미수가루 그거이 그거~

절반은 선식!(섞었니라)



어제 말이다.

우리가 선취꼴 내줬을 때...



엄마는, 너거들

기분 상해하는 어두운 모습이

얄라궂게도 먼저 떠 오르능기라...



골든골로

역전승을 확인하는순간...

에민 마치 너그들이 넣은 것처럼 좋았다.



웃으며 신이 나 환한 얼굴로 들어 올,,,

빨간 샤쓰의 니 동생넘들..



엄마는,그래서 더욱

먹먹...흐믓~...빙긋....행복해 하는데,
느그 아부진..

얼라들처럼 생각읍씨 펄떡~펄떡 뛰능기라

"아이구 됐소 고마...집 무너지요"

이게 우리집 어제 밤 풍경이니라

야야

축구 야그는

인자 고마 각설하고,




ㅎㅎㅎ~~

고거이 참말로

쌤통이다~~

이 에미

병원 보조 침대에서 잔거이...

예사 일이 아닌줄 알것째?

것따다 비하면 공주 침대제...암먼,




과일 사다가 넣어얄텐디...

모,

콩 하나라도 먹을라 하믄 니가 걸리네



지금 찐감자

후라이팬에 다시 노릇허니 지지는중~



흐~`

묵고싶쟈?





오바다!


















*감자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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