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념과 관점의 차이 ***
어느날의 話頭
관점이란 흐르는 江물이다 그 물이 푸르고 깊은지 물살이 쎈지......
관념은 강 바닥 모래펄 속에 깊이 숨겨진, 좀 채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아도 아무리 거센 와류 속에서도 그대로 존재한다.
관점은 늘 새롭게 바뀌어도 관념이란 푹 패여진 깊은 곳에 박히 듯 있어서 꿈쩍을 않는다.
나는 식탁을 차릴 때 큰 접시를 즐겨 쓴다. 웬지 넓직한 접시가 안정감도 있고 약간의 테이블셋팅의 효과까지 기대하는.. 소량만 담아내서 먹을 것만 필요로 하는 .. 그런 생각을 가졌었다.
어느 날 어느 댁에 애기 돌 잔치에 갔었다. 음식을 만드신 것도 차려내신 것도 할머니 솜씨인 듯 하였다. 어쩌면 작은 그릇에 그렇게 소담스럽게 담으셨는지….. 수북이도 고여 담으셨는지…..
물론 그 많은 음식을 반에 반도 우린 다 먹어내질 못했지만
그런데… 갑자기 왜 기분이 좋아지는 걸까?
늘 식당 문화에 절어 아주소량의 반찬만 대하다가 어느새 우리 식탁까지 그 문화가 전파되어 잊혀진…..
아~~ 저 정성의 푸짐함….. 정말 융숭한 대접을 받은 것 같은…….
소복 소복 담은 그 모습 오래 전 잊혀졌던 옛 모습을 다시 보는 듯 하였다. 실로 오랜만에 情이 담긴 밥상을 마주하는 느낌,
우리는 조상을 모실 때(제사 때) 제기를 쓴다. 제기란 아랫 부분 굽이 달려 있어…… 서양 접시와는 격이 다르다. 한마디로 받들어 모신다는 효의 예가 그릇에도 나타냈었다. 받들어 모시는 고임을 의미하는 …… 그냥 앉은뱅이 쟁반을 이용하지 않고 받들어 고여놓는 음식들…….
한 동안 그 분 댁의 융숭했던 그 고임의 상을 받고……. 난 관념과 관점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었다. 왜 오늘은 음식 얘기를 꺼냈을까? 비록 접시였지만 음식으로 고임의 느낌을 전해 주었던 그 손길 그 생각에 젖어있던 나는, 오늘도 역시 산을 올랐다. 늘 가는 산길 공원 안에 오두막 집이 하나 있다. 아마 기존의 건물 이였고…… 보수공사가 불가한 점도 있을 것이다.
그 산에 있는 큰 절은 학교까지 설립한 재단이며…… 명성 못지않게 재력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이는 사찰이다.
비구니 사찰로서……. 승용차를 타고…..이 오두막 앞을 왕래하는 스님들……
오두막 아주머닌 아침마다 병아리에게 모이를 주고 강아지 밥을 준다.
어마한 절은 여전히 건물을 신축하는 공사로 한창이고… 큰 돌로 축대 쌓기에 분주하다.
오두막 지붕위로 기어오른 호박넝쿨은 꽃을 피우느라 한창이고 아주머닌 아침마다 짐승들 돌보느라 분주하다.
닭 몇 마리에다 병아리, 오리 몇마리……그리고 토끼, 강아지는 이른 아침을 먹느라 정신없이 행복하다
아주머니 집은 뒤로는 내가 흐르고…… 어디서 끌어왔는지. 오두막 추녀아래로……. TV 안테나 선, 전화 선, 전기 선, 가스 선이 키 낮은 집안을 고개 숙인 채 기웃거리며 들어간다.
보였다 내 눈에는 …… 그 전화선과 전기선을 통해 쪼르르르 흘러 들어가는 행복이……
내 관념을 흔들어 놓는 초라하고도 평범한 풍경화 한 점과 멋스럽지 않지만 기교는 빼고 정으로 차려 낸 밥상과 그 두 가지 話頭 앞에 어중간하게 서 있는 나,
반드시….. 홍진(紅塵)에 묻힌 세상사라고… 또는 빈한하다고 다 힘 든 것은 아니었다. 다 힘든 것만은 아니었다. 저 가녀린 선을 타고 세상 소식이 늘 전해오는 내일이란 희망이 있으므로……..
神은 오묘하시다. 우리 삶의 해답을 언제나 가까이 숨겨두셨다. 우리가 미처 못 보고 못 깨달았을 뿐....
어쩌면 이 앞을 지나치는 스님들도 같은 생각을 일순 해 보았으리라,
글/이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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