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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비가 다시 쏟아지네요.

 

 

무섭습니다.
우울이 다시 범람할까봐,
 
금욜, 경순왕릉을 찾아 나섰습니다.
찾아가는 한적한 길에... 군데 군데...원두막이 있어 내렸지요.
예전에 보던 개구리 참외는 아니어도..아마 이 게 '프린스메론'이던가요?
 
예전에 입맛이 슈가에 물들지 않았을 때... 개구리참외는 무척 맛있었지요.
모두들...강한 단 맛에 길들여져서는...
개구리 참외를 무시해버렸습니다.
 
원두막에서 깍아먹는 참외...노란 참외를 먼저 먹으면 아무 맛이 없는
'프린스메론'
 
제 입에는 굉장히 달더군요.
스마크 메론의 아식한 맛에 비하면 좀 무른 맛이 나지만....
 
괜스레.. 命? 길라고 얻어먹은 냉면 사진만... 잔득 올려놓곤...
오늘..참외 좀 깎아 내왔습니다.
 
[어여 와서  좀 드세요~~]
 
참외를 먹는 동안에...군인들이 훈련중인지.. 엄청나게 수 많은 탱크가 이동을 했지만
 
길 건너편에 세워둔 차에 카메라 생각이 간절했지만... 건너갈 수가 없었습니다.
요즘..탱크는 신종이라 그런지... 탱크  옆이 훤히 문이 열려 바람이 통하고....
그 안에는 내 아들넘 같은 젊은이들이...한 스무명씩,,, 기대어 앉아 있었지요.
 
참외를 먹으며..좀 무안하더군요.
건네줄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원두막 아저씨에게 [경순왕릉]가는 길을 물어보니 흙바닥에다.... 전면 그림을 그리는데...
 
38선을 지나고... 다리를 지나고..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서.. 또 다리를 지나고...
 
아마도 한탄강을 지나고....임진강을 건너끼고 달려간 곳,
 
군부대가 버티고 있는 곳, 그 앞길로 우회도로.... 근데...군인이 척 가로막지 않는가?
 
경례를 부치며 묻길래
 
경순왕릉을 찾아 왔다니, 이미 시간이 늦었다는군요.
그 곳은 군사보호구역이라...오후 4시 30분 까지 와야한답니다.
 
시간은 어언 오후 다섯시를 가르키고 있고...돌아서야지..원 ..별 수 있남요?
 
재미있는 것은 이 곳이 옛 고랑포구라는군요.
임진강물이 도도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하기사... 내 차로  지금..30 여분만 달리면 개성이라는데....
 
옛날... 소금등...생필품의 교류장소라는..임진강 고량포 나루,
남북으로 갈라지고...고랑포구는 제 빛을 잃고 영영 퇴색했나봅니다.
 
계속 비 온뒤라... 임진강 물이 제법 드세게 흐릅니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거슬러 흘러 들어가는 것 같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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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라...돌아나오다가 [더덕농장]이란 팻말을 보고 ..옳타구나... 더덕이 싸면 좀 사와야지...하며 들어선 길,
첨에는 더덕생채 무치는 법을 이야기하다가..어라...끝이 없는 소롯실을 만났습니다.
차 두 대가 와도 비켜 갈 곳도 없는....
 
정발장군 묘소가 나왔습니다.
경주정씨...제실도 나오고..경주정씨 문중의 황산공 묘소도 나오고,
경주 정씨라곤 아는 이 조차 하나 없는데...ㅎ~~
 
차라리 임진왜란 당시 부산을 지키려 애쓰시던 [정발장군]의 묘소나 내려서 참배해 볼걸...
 
아쉽지만... 동행이 있으니...(이럴 때 혼자 같았으면 반드시 가다말고 되돌아 설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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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 오는 길입니다. (한탄강)
올 때는 가던 길과는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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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탄강은 지각변동으로 생긴 절벽을 끼고 흐르는 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강입니다.

 

경순왕릉을 언젠가 다시 시도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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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검색

 

 

 

임진강 관광용 황포돛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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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 강바람타고 떠가는 황포돛배
황포돛을 올리고 임진강을 유람하는 황포돛배(좌). 배 안에서 바라본 석벽(우)

유유히 흐르는 임진강에 따사로운 봄 볕이 가득하다. 볕은 이미 봄이지만 바람은 드세다. 고 기 잡는 어부마저 찾아보기 어려운 한적한 이 강에, 누런 황포돛을 올린 나룻배 한 척이 떠 간다. 거센 바람 덕에 빵빵하게 부풀은 돛은 유람객들의 기대가 풍만하게 담겨있다. 2004년 3월 3일부터 운행되기 시작한 황포돛배 유람선. 유독 통일에 대한 열망이 크게 느껴지는 곳 이어서 일까… 유람객들이 부르는 '우리의 소원' 노랫가락이 임진강 강물과 함께 흐른다.


황포돛배는 구비구비 흐르는 임진강의 내륙지역인 두지리에서 출발한다.

분단의 강, 임진강 한국의 강들은 저마다 품고 있는 이미지가 있다. 서울의 번영을 상기시키는 한강, 순수한 서정의 섬진 강 등… 그 중 우리 민족의 통일을 떠올리는 강으로 임진강을 얘기할 수 있다. 함경남도 마식령에서 발원하여 남북한의 7개 시군을 통과해 한강으로 합류하는 임진강은 연장길이가 254km나 되는 한강 최 대 지류이다. 다만 강의 가운데를 삼팔선이 자르고 있어 우리에겐 반쪽으로만 인식되다 보니, 한반도 를 통틀어 7번째로 긴 강이라는 의의도 퇴색해버렸다. 하지만 뱃길이 끊기기 전, 6.25가 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임진강은 서해의 해산물이나 지역의 농산물 을 가득 실은 상선들이 한가롭게 왕래하는 평화로운 강이었다. 그 평화로움을 기억해내, 관광과 통일 염원이라는 두 가지 바램을 실어 나룻배를 띄웠다. 강바람이 부드럽게 황포돛배를 밀어주듯이 우리 민 족의 앞길에도 순풍이 불길 바랄 뿐이다.
두지나루터의 표지석(좌), 황포돛배 진수식 풍경(우)

두지리 나루터 황포돛배 유람선이 출발하는 파주시 적성면의 두지리는 매운탕으로 유명한 곳이다. 오염 없는 임진강 에서 잡은 깨끗한 민물생선으로 매운탕을 끓이면 그 맛이 담백하고 신선하다. 낚시꾼들이나 매운탕 애 호가들이 간간히 찾던 이곳에 황포돛배 유람선을 위한 나루터가 복원되었다. 복원된 나루터에서 처음 으로 황포돛배가 출항하는 날, 뱃놀이 여행객들의 차량이 몰려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다른 관광지들에 비해 조용하고 한갓지다. 적성면의 번화가를 벗어나면 두지나룻터까지 차선조차 그려지지 않은 시골 길이고, 길가에는 유명세에 맞게 매운탕 집들이 간간히 보인다. 선상유람 후에 두지리 매운탕으로 식 사를 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황포돛배 유람선에 탑승한 유람객들(좌), 선내에서 바라본 풍경

황포돛배, 조선시대의 모습으로 재탄생 길이 15m, 폭 3m의 몸체에 12.3m의 돛을 단 황포돛배는 조선시대 조운선을 모델로 전통방식대로 15개 의 공정을 거쳐 재현되었다. 누런 황토물에 광목을 넣어 황포를 만든 후 돛에 달아 사용하는 황포돛배 는 조선시대 한강을 왕래하는 서민들의 대표 운송수단이었다. 그때는 많고 많았을 것이 황포돛배 뱃사 공이었겠지만, 현재는 이 배를 조정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12m가 넘는 대형 황포돛을 바람에 자유자재로 조절하여 배를 움직인다는 것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임진강의 돛 배는 사실 외형만 전통 황포돛배고 동력으로 움직인다. 황포돛배는 바람을 거슬러 가는 유람 코스에서 역풍이 강하게 불면 돛을 내린다. 허나 순풍이 뒤를 밀 어주는 코스로 접어들자 황포돛을 올리고 기운차게 나아간다.
진수식에서 파주시민들로 구성된 풍물패가 황포돛배의 무사항해를 기원하는 연주를 하고 있다.

임진강 유람 두지리나루터를 출발한 유람선은 자장리석벽을 구경하며 3km를 내려가다 수심이 발목정도로 낮아지는 고랑포 여울목에서 배를 돌려 다시 두지리로 돌아온다. 왕복 6km, 40여분이 소요되는 비교적 짧은 유 람이다. 쇠기러기 등의 겨울 철새들이 하늘로 올랐다 다시 강에 내려앉았다 하면서 먹이를 잡는 모습 도 볼만하지만, 이 일정의 하이라이트는 적벽 관광이라 할 수 있다. 임진강을 따라 검붉은 수직바위가 벽처럼 이어지는 적벽은 10~40m의 높이로 형성되어 있다. 적벽의 재질은 제주도에서나 볼 수 있는 현 무암으로, 60만년 전 철원지역에서 화산이 폭발하면서 그 용암이 흘러 생겨났다. 임진강에 있는 총 11 개의 적벽 중, 유람선에서 보게 되는 자장리적벽은 비교적 짧은 구간이고 가장 높은 곳은 15m 정도의 높이지만, 절벽의 형상이나 경관이 다른 적벽들 보다 뛰어나다. 예로부터 이 지역 양반들은 임진강의 적벽을 구경하며 뱃놀이를 즐겨, 적벽 뱃놀이는 임진 8경 중 하 나로 꼽혀왔다. 당시의 모습은 겸재 정선의 '연강임술첩', '임진적벽도' 등의 작품 속에 재현되어 적 벽의 뱃놀이가 임진강 유람의 진수임을 깨닫게해준다. 배가 회항하는 고랑포 여울목에서 배를 내려 3km만 더 가면, 북녘 땅이라는 설명에 유람객들은 저마다 감회에 젖는다. 이렇게 가까운데… 언젠가는 저곳까지 여행할 수 있으리라는 소망을 담아 <우리의 소 원>을 부르기 시작한다.
유람객들이 배에 승선하고 있다.
유용한 정보▷황포돛배 유람선-요금: 성인 8천원, 소인 4천원(두지나루에서 승선) 성인 1만원, 소인 5천원(임진각에서 출발. 셔틀버스로 두지나루터로 이동)-운항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동절기 6회, 하절기 7회)-문의: 031-958-2557(두지나루 매표소) 031-954-2066(임진각 매표소)▷두지나루터 찾아가는 길자유로(23번)를 타고 계속 달리다 보면 임진각 바로 전에, 37번 문산 방향으로 빠지는 당동IC가 나온다. 여기서 37번 국도를 타고 문산, 파평을 지나 연천방향으로 계속 직진한다. 적성면 번화가에 도착하면 일흥약국 사거리에서 두지리매운탕 방향으로 좌회전한다. 3km 거리에 굴다리를 지나 장남교가 나오는데 장남교를 건너지 말고, 굴다리에서 나오자마자 좌회전한다.▷주변여행지 -임진각 통일안보여행의 대표적인 여행지로 허가절차 등의 번거로움 없이 언제든 관광할 수 있는 곳이다. '철 마는 달리고 싶다'의 멈추어선 기차, 자유의 다리 등 분단을 상징하는 유명한 기념물들과 함께, 바이 킹 등의 어린이 놀이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임진각 자세한 정보 보기 -용미리석불 장지산 기슭에 자리한 용암사라는 절 위에는 천연바위에 새겨진 석불 2상이 나란히 서있다. 바위를 몸 체 삼고, 그 위에 목과 얼굴이 올려진 이 석불들은 특이하게도 나란히 모자를 쓰고 있다. 토속적인 얼 굴과 특색 있는 모습은 17m가 넘는 웅장함까지 더해져 관광객들의 찬탄을 자아낸다. 용미리석불 자세한 정보 보기 -아쿠아랜드 자유로를 달리다 보면 망망한 서쪽 지평선을 바라보며 산 위에 앉아있는 하얗게 눈부신 범선 한 척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아쿠아랜드에서 운영하는 카페인데, 1만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대욕 장인 아쿠아랜드는 물안마, 한방약탕 등 다양한 사우나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아쿠아랜드 3층의 관람 대에서는 망원경으로 북녘땅을 볼 수 있고, 서해 낙조를 감상할 수 있다. 아쿠아랜드 자세한 정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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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관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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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산...
일상에 지쳐 잠깐 다녀오는 소요산도 내게는 엄연한 여행이다.
숲길로의 여행,

소요산을 다녀온 사람들은 내 글을 보고 웃겠지만,

아래에서 길을 잘 못 접한? 나는 아마도 엉뚱한 곳을 헤맨 듯

선녀탕,  0.4km가 헤매다가 헤매다가 보니..이정표엔 다시 0.3km니....

그 자리를 돌고 있었거나 (그 건 절대로 아닌 것 같은데)

아마도 곁길...(나중엔 아예 길도 없었음) 로 갔거나.....

어쩜, 자재암을 벗어나자  난 사람 그림자조차 만나볼 수 없었다.

인적은 커녕 그 흔한 다람쥐 한 마리도 못 만났으니

[그래...즐기자]

되돌아 올 길은 알고 있으니... 길은 잃었다 치고 그냥  그냥 즐기기로 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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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조금만 더...

그러면서 꽤 깊이 찾아 들은 듯 하다.

선녀탕은 그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곳은 아닌데...내가 지금 걷는 길은 순전히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이라 광장히 미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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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를 찾아가는 길은 이리도 힘드나 보다. 군데..군데..이런 보조물이 없다면...

이 곳에서만 해도 평지를 걷는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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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그림자도 없고.... 계곡은 물이 흐르다가도,

그 물길이 땅밑으로 흐르는지....끊어졌다. 다시 이어지곤 하는 등산로,

과연 나는 옳은 길을 가고 있는지

틀린 길이라고 알 때, 즉시 수정을 해야되는 것인지...멘토가 아무도 없는 고독한 산행,

만약에 인생이 이렇다면 인간은 어떡해야 하는거지?

일단... 오르고 보는 수 밖에... 그렇게 길이 영 막힌듯한 곳은 아닐 것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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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희망이 있다.

이렇게 사다리도 놓여 있지 않은가?

사람이 다니는 흔적이다. 아주 반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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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물 소리가 나는 것 같다.

위에 사진, 중앙에 웅덩이가 있었다.

길이 없지만 기어 올라봤다. 역시 예상한대로 웅덩이가..거기 누어서 마치 나를 기다리는 듯 있었다.

발도 딛지 못할 곳 같은 곳,

겨우 작은 공간에 카메라를 얹어두고는 몸을 위로 이동시켰다.

그리고는 몸을 바위에 밀착시켜서..무게 중심이동을 시킨 뒤....살그머니 카메라를

찾아 들었다.

찍으려는 순간... 아!  카메라에 메모리 칩 공간이 없단다.

내려가기란 너무 어렵다.

바닥에 내려서면 메모리 칩이 더 있긴한데...

할 수 없이 아깝지만 좀 전에 찍은 큰 사이즈의 사진을 두어 개 지워냈다.

작은 싸이즈를 지우려니... 그 불안한 곳 위에서 삭제 작업을 하려니 좀 그랬기에...

 

아래 사진 둘은 그 웅덩이가 있는 곳이다.

호기심 많은 사람이 아니고는 아마도 모르고 지나칠 곳

딱 내가 누우면 안성맞춤일 것같은 바위욕조.

 

물이끼가 끼어있어서 그렇지...깨끗하다면..정말이지 그 유혹을 이기기 어려울 정도의..은닉된 곳,

선녀탕이 따로 있으랴

달빛 그윽히 교교한 밤이면... 이 곳이 바로 선녀탕일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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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사진 찍기 어려웠던 장소,

아무도 모를 것 같은  이 곳! 이 곳을 바라보며...무슨 보물찾기를 한듯 흐믓한 마음에... 무에든 은밀한 곳에 숨겨진...그에 따르는 내밀한 이야기가 있을 법한데....

그냥.. 내 마음에만 묻어두고 또,,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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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니.... 이런 등산 보조물 철책이 보인다.

그런데... 오르기가 장난이 아니다.

쌓인 낙엽은 썩어가느라 미끄럽고..하루살이는 우우~~ 단체로 날아다녔다.

난 하루살이가 요렇게 썩는 물이나.. 그런데 꾀는줄알았더니...

티뷔 퀴즈에서 하루살이는 입이 없으며..짧게는 4~6시간을 살며... 길게가.. 20여시간?

그리고 서식지는 공기가 맑고 청정한 곳이란다. 오잉?

썪는 하천이 아니고?? 가만 생각해보니... 정말 오염된 환경에서는 없다.

청정지역 습한 곳에 서식하긴 해도....

 

소요산

 

내려오는 길은 이 곳이 오히려 제일 어려웠다.

물에 미끄러지면  낭떠러지로.... 슬라이딩... 아야 소리한 번 못 지르고(질러도 들어줄 인적조차 없는..아예,)

 

정말..사진이 빠졌다.

나는 고소공포증은 없는대신 예리공포증이 있다.

이쑤시게 칼끝, 바늘 등... 생각만해도 좀 그렇다 많이 나아졌지만...

그리고 계단 공포증이 하나 더 있다.

엄마가 교통사고 났다는 말을 전해듣고 급히 나오다가 이층 계단에서 구른 적이 있고는.... 그래서 오르는 것 보다가 내려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오를 때는 힘들어서 못 찍었고 내려올 때는 솔직히 무서워서 못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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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간 중간 쯤... 시야기 탁 트인 곳에서

"아..조오타~~" 감탄이 나오고...되도 않은 싯귀가 떠 오르다.

무슨 연유인지 눈물도 찔끔....나다.

 

그리움이 滿月로 차오면 나 오르리라(山을) 

등산하다 문득 떠 오른 글귀,
심심산골에 묻혀 살고 싶다는 생각에, 사람이 그리우면? "그리움이 만월로 차면 나 내려가리라?"
이런 씰때없는 推敲를 불현듯,

 

...................................

 

이 때만 해도 행복했다.

 

이 계단을 돌아서니..또 난이도의 철제 사다리...그런데....어! 길이 없어졌다.

험한 바위만 앞을 턱 막아선다.

바위 뒷쪽으로 길이 있을 법한데...우회할 공간이나 틈은 전혀 없다.

다행이...손이나 발을 디딜만큼의 뾰족뾰족한 공간들이 있어

도전해보기로 했다.  록클라이머처럼 먼저 뾰족한 바위를 단단히 부여잡고 한 쪽발을 옮기도 또 손을 옮기고 하며.... 드디어 넘어갔다.

예상대로 길은 나있고... 물은 없는 습한 계곡이 나타났다.

한마디로 음습한 곳이다.

'도대체 선녀탕은 어디에 있는거야?'

'길 아닌 게 맞어.... 분명 길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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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축함...습기.....오싹함...그런 단어외는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데....

이상하다. 포근하다.

혼자서 타올을 깔고 드러누워도 보다가....앉아도 보다가.....별 짓.....다 했다.

아무도 없는 공간이 왜 이리 좋은거야,

그나저나 내려 갈 일이 걱정스럽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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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녀는 어딧는고야 대체,

어느 웅덩이에서 목욕을 했더란 말이냐...

선녀는 옥황상제를 도우는 도우미...즉 하늘나라의 공무원쯤 밖에 안된다는데....

나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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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릴 적 이모랑 목욕하던 그 웅덩이를 생각케하는 곳도 있네~~

다음엔 필히 다시 찾아 오리라~~

나...물을 왜 이케 좋아하지?

그러다가 이내 시무룩해졌다.

부산여자가 북쪽으로 옮겨 앉은지... 스므해가 다 되어가는데...

여태껏 맘에 드는 친구하나 없다니,  함께 다니던..부부가 있는데 그 남편은 병들었고 그 아내는 나보다도 훨씬 어리다.

얼마전 '시베리안 허스키'일로 속상했던 그녀의 언니다.

 

"물 좋아하는 사람들은 바람끼가 있대,

난, 생전가도 흐르는 물에 손도 담그고 싶지가 않아~~"

 

하던..결벽증의 깍쟁이 같은 그녀, 다른 것은 다 좋지만 말을 마구하는 그녀와 산행을 하고 싶진않다..(흐~~ 요즘 절교중)

왜? 마음 편히...즐기는 산행에서 흐르는 맑은 물에 손 한 번 적셔보고  싶지 않으랴?

그녀는 그래서 그런지... 산행을 하는 것을 전혀 보지 못했다.

늘 차로 이동하는 놀이 밖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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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석공주 궁지가 있는 곳 까지  다다라서 물 가로 내려갔다.

원효가 상류에서 세수를 하고...

그 아래 요석공주가 님을 늘 기다리며... 세수를 했을 계곡,

차디찬 물에 발만 담궈도 난 '요석공주'가 된다.

 

어디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요석공주는 아마도 이런 바람 한 줄기에도 그를 느끼며.... 자재암..이 아래에다

공주궁을 짓고 기거 했나보다.

 

선녀는 어디가고....

공주를 느끼는 물에  발을 담궈보다.

보는 누가 내 다리가 굵다고 하든지..말든지........................이요조

 

 

7월 1일이었지 아마....

그 다음날 부터..비는 엄청 쏟아지고 '민들레' 운운에....오늘에야 모처럼 날이 개다.

(7월 9일)

 

 

*요석공주 별궁지/비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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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고...외출, 경순왕릉을 갈지 모르겠습니다.

발길 가는대로 빼빼칼럼에 빼빼님 가까우면 좋으련만....

빼빼님은 명성왕후 생가를 다녀오고 또..맑은 날은 어디로 갈까....했었는데,

칼럼친구, 가까우면 얼마나 좋을까? 하기사 만 삼 년만에 만나보았으니.....

 

 

 

Hennie Bekk의 Memories

[폭풍우치는 바다에 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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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 문 잠긴 매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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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아머리 선착장.....써치라이트(탐조등)가 있는..계단 위에 올라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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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포말이 위에까지 날려오는...

 

 

여름이예요.

감정의 기복이 심한 것처럼, 날씨가 그런.. 여름,

난 그 게 더 좋습니다.

그냥..포근하고 따뜻해서 마냥 꽃이 피고 새 우는 봄보다는

천둥번개가 쳤다가..사막처럼 뜨거웠다가 지중해의 열기로 밤을 달구다가..

 

그런 여름,

우리 떠나보지 않으실래요?

바다가 손짓하는 ...저 검푸른 파도를 넘어서요.

 

어느 시인의 詩처럼,

'그 섬에 가고 싶다
아무도 없는 그 섬에 가서 딱 사흘간만 있다가 오고 싶다' 는...

그 詩句가..또 다른 잔영으로 가슴을 스칠 여행을 꿈꾸어 보지 않으실래요?

........................... 

 

내가 좋아하는 여름이다.
여름에 태어난 나는 여름을 유독 좋아한다.

다이나믹하게 생동감있는 여름... 더위야 오너라...내가 즐겨줄테니,


여름휴가기간 남편과 울릉도를 갈까 마음먹다.

울릉도 검색을 했다.
여름휴가 한 철 성수기엔..6월부터 예매를 해야한단다. 묵호항에서 출발하고,
선편 삯이 편도에 46000원,
민박료는 정확하게 나와있지 않고... 비싼 눈치다. 호텔은 40,000원으로 명시 되어 있지만...
정확한 (여행비)계산이 나오지 않는다.

울릉도를 다녀간 사람들 글을 여러편 골라서 읽다.
민들레가 소멸되었단다. 지중해성 저기압으로 바꿔었다고...한 차례 모진 소나기가 퍼붓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7월4일 (일) 오후 5시 집을 나섰다. 시화방조제를 따라 바람 쐬러 가보자고
실은 예전에 검색을 하다가 대부도 방아선착장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고 나가면
해당화가 피어있는 섬이 있다고 어디서 보았는데...당췌 그 섬 이름이 떠 올라야 검색이나 해 볼텐데... 
섬둘레는 10여Km...랬지? 아마?
아주 작은 섬이다. 차도 가지고 들어갈 수가 있단다.

방아선착장, 입구에 다다르니 ...출입금지 바리케이트가 가로막고 있었다.

선착장 방파제에는 아예,  헨스 출입문으로 닫겨져 있었다.

물론 들어 갈 수 조차 없을 지경으로 바다는 성난 파도로 굼실대고 있었다.

바다엔 폭풍우가 치고 있었다.

내가 어렸을 적 태풍만오면 부산, 남부민동 방파제를 구경나갔었다
집채만한 파도가 굉음을 내며 등대를 할퀴는 모습,
그 모습을 보면 왠지 짜릿 짜릿 전율을 느끼곤 했다.

 

봉고차 한 대가 파도를 고스란히 맞고 있다.
주인은 어딜갔을까?
이 태풍에 왜 짠 바닷물에다 세워놓았을까? 벼라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내가 들고있는 카메라에도 짠 바닷물 파도 포말이 튀어왔다.

 

그도 선착장에 가서는 구미가 당기는 모양이다.
며칠 더 연구해야겠다.

울릉도를 갈 것인가?
해당화 피는 작은 섬으로 갈 것인가?

그 섬 이름이 알고 싶은데...구경꾼 모두는 외지인인가 보다.

어떤이가 그런다.

섬으로 들어간 사람들도 꽤 있다는데...

 

시화방조제를 되돌아 나오면서 거리 첵크를 했더니...11.5Km다.
사람들은 12km라 하더만,

 

내 스니커어즈도 짠물에 절었나보다.

다음날 집에 오는 내내 발이 굽굽했다.

 

분명 여름은 까슬하다 못해 타들어가거나

축축하다 못해 푹 젖거나....자월도의 아름답게 가득한 달빛이나, 승봉도의 해당화나....

여름날  꿈 속의 그 형상을 찾아 내기가... 그리 수월치만은 않다.

 

 

이요조

 

 

 

대부도(시화방조제)오시는 길


서울 내부순환도로에서 성산대교- 목동-구로-자동차전용도로, 계속 직진-
 서해안 고속도로- 서서울 톨게이트- 나오자 마자 인천 방향으로 우회전- 월곳ic로 빠져 우회전
대부도 표지판 보임...시화방조제-끄트머리에 있는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

 

 


 

 

.

차 주인은 어디로 갔을까? 차는 짠물에 샤워하다 못해 바다로 밀려가게 생겼는데...

 

.

 

파도....매표소 옆...왠 소줏병??

.

 

큰 파도는 매표소 컨테이너 박스를 넘어 천막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흩 뿌려지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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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방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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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조제에서 바라 본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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찍긴 찍었는데... 차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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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문은 카메라 조작불능... 접사가 안되어서(as전) 판독불능

**자월도, 덕적도, 승봉도, 이작도?? (대이작도 소이작도)정도**

다른 (펌)글로 대신함/上 글/사진: 이 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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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펌글, 이미지

 

[승봉도]

 

(사진)해당화가 무리 지어 피어난 부채바위.꽃과 바다 사이에서 승봉도를 찾은 일가족이 산책을 즐기고 있다.

 

해당화가 곱게 피어나는 섬, 승봉도. 찾는 사람이 드문 해변은 검은머리 물떼새와 도요새 차지이다. 대부도의 방아머리 선착장에서 뱃길로 1시간20분 거리. 그리 길지 않은 바닷길 유람 끝에 만나는 승봉도는 이일레 해수욕장이라는 넓디 넓은 해변과 남대문바위, 부채바위 등의 절경들을 보유, 주말 여행객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전달한다.



<포인트1>해당화 감상


지금 승봉도(인천광역시 옹진군 자월면 승봉리) 해안 곳곳에는 해당화가 만발, 매일매일 갈매기들의 박수갈채를 받고 있다. 섬 북쪽의 부채바위 해안에서부터 동쪽 끝의 부두치 해안에 이르기까지 진분홍색 해당화는 무리지어 피어나 승봉도가 얼마나 아름다운 섬인지를 색채로 증명하고 있다. 가수 이미자씨의 ‘섬마을 선생님’이라는 노래로 하여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인 해당화. 그러나 몸에 좋다는 엉뚱한 말이 한 번 퍼지고 나서 해당화는 거의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해안 지방 여행 중에 좀처럼 만나보기 힘들었던 꽃이었으나 2003년 승봉도 바닷가에서는 지천으로 피어나 여행객들에게 놀라움을 안겨준다.


꽃의 지름이 평균 5cm를 넘는 해당화는 바닷가 모래땅에서 잘 자라며 오뉴월에 꽃이 핀다. 꽃잎은 분홍색, 진분홍색, 검붉은색 등 빛깔이 다양하고 때론 흰색도 있다. 다섯 장의 꽃잎 가운데에는 노란 꽃술이 튀어나와 벌과 나비를 꼬드긴다. 장미과 식물답게 줄기에는 가시가 무성하다. 향기가 좋아서 화장품 원료로도 쓰였다고 한다.


승봉도 해당화를 보려면 먼저 선착장에서 이일레 해수욕장 입구를 지나 섬의 동쪽 끝에 위치한 ‘부두치’라는 해변까지 가본다. 시멘트포장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비포장 숲길을 조금 더 달려 오른쪽으로 열린 길을 따라가면 부두치이다. 특별히 안내판 같은 것은 세워져 있지 않다. 모내기가 이뤄진 논과 해변의 경계를 이루는 길다란 둔덕에 해당화가 줄지어 피어있다. 그 사이사이로 갯완두, 모래지치 같은 꽃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부두치 북쪽의 삼형제바위 해변가도 해당화 밀집지대. 고운 연둣빛 잎사귀 틈바구니에서 살짝 고개를 내민 분홍빛 해당화, 황금색은 아니어도 누런 빛을 띤 모래해변, 다양한 형상의 해변기암 그리고 조약돌마저 보이는 파란 바닷물과 인천으로 향하는 외항선들. 승봉도가 아니고서는 만나보기 어려운 평화의 메시지들이다. 섬 북쪽 해변 중앙 부근의 부채바위 해변 역시 해당화가 집단으로 자라는 언덕이 논밭과의 경계를 대신해준다. 그 바닷가에서 주말여행에 나선 가족들은 동요 한 곡을 부른다. 장수철 선생이 노랫말을 쓰고 이계석 선생이 곡을 붙인 ‘바닷가에서’라는 동요이다. ‘해당화가 곱게 핀 바닷가에서/나 혼자 걷노라면 수평선 멀리/갈매기 한두 쌍이 가물거리네….’



<포인트2>섬 일주 트레킹



승봉도는 해안선 길이가 총 10km 가량 된다. 작은 섬이긴 하되 도로사정이 좋아서 차량을 가져가도 좋고 그냥 몸만 떠나도 괜찮다. 섬의 남쪽 해안에는 모래밭이 북쪽 해안에는 자갈밭이 발달했다. 승봉도의 인지도 1위 명소는 선착장에서 1.2km 남짓 떨어진 거리의 이일레 해수욕장. 진흙 개펄이 아니라서 바닷물은 깨끗하고 썰물 때면 넓디 넓은 백사장이 드러나 여름철 피서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곳이다. 길이가 1.3km를 넘는 해변의 서편은 갯바위지대로 주민들이 바지락을 캐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일레에서 나와 섬의 북쪽 해변으로 향하려면 시간을 넉넉히 잡도록 한다. 숲길과 비포장길, 시멘트포장길 등이 번갈아 나타난다. 한 쌍의 꿩 부부도 만나고 부두치 해변 입구를 지나면 삼형제바위 해변에 닿는다. 바다를 바라본 자세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촛대바위, 왼쪽으로 가면 남대문바위이다. 이곳은 자갈밭 해변이라고는 해도 굵은 모래가 해변을 뒤덮고 있어 한적한 시간을 보내기에 좋은 장소들이다.


촛대바위는 동해 추암 해변의 그것처럼 촛대 비슷하기도 하고 사람의 손가락 같기도 한 모습이다. 삼형제바위에서 촛대바위에 이르는 해안은 무인지대이고 촛대바위 뒤로는 깎아지른 해안절벽 지대라서 발걸음을 되돌려야만 한다. 남대문바위는 물이 빠져나간 간조 때에만 접근할 수 있는데 거대한 암석 한가운데에 구멍이 뻥 뚫려있어 울릉도의 공암을 연상케 한다. 주민들은 이 바위 주변에서 낙지도 잡고 소라도 줍는다. 남대문바위의 왼쪽으로는 부채바위가 있다. 부채바위나 남대문바위부터 찾아가려면 마을 한가운데의 농협슈퍼마켓 앞에서 왼쪽 길로 접어든 다음 언덕을 넘어가야만 가깝다.



<승봉도=글·사진 조선일보 유연태 여행작가 kotour21@hanmail.net>



●여행수첩(지역번호 032)


■문의처/옹진군청 관광자원개발사업소 880-2591∼2


■가는길

대부도 방아머리 선착장에서 대부해운(886-7813∼4)의 카페리를 탄다. 차를 싣고 갈 수 있다. 배삯은 어른 8000원, 어린이 4000원, 승용차 도선료 3만6000원. 대부도 방아머리선착장까지 가려면 영동고속도로 월곶나들목-시화방조제 코스 또는 서해안고속도로 비봉나들목-남양동-대부도 코스. 인천 연안부두에서는 원광해운(884-3391)의 승봉도행 배를 탄다.


■숙박

동양콘도(832-1818)는 객실을 150실 갖추었다. 바다쪽 객실에서는 대형 창문 너머로 낙조를 감상할 수 있다. 슈퍼마켓, 당구장 등의 부대시설을 보유. 이밖에 이일레해수욕장 입구에는 바다풍경민박(831-0305), 마을 안에는 황영민씨 민박(831-8844) 등.


■맛집=승봉도 선착장에서 마을로 가다 처음 만나는 선창휴게소(831-3983). 놀래미회가 요즘의 대표적인 먹거리. 1kg에 5만원선. 매운탕 국물도 입에 쩍쩍 달라붙는다.

 

조선일보 떠나자주말여행(2003.06.13)에서 발췌

 

 

[자월도]/달빛이 곱다는 자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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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과 등대기행 19] 자월도

자월도, 박상건, 박상건


- 달빛 고운 전통 농어촌 섬의 자태

인천 연안부두에서 남서쪽으로 54km 물길을 헤치며 쾌속선을 타고 가 닿는 섬이 자월도이다.
낮은 구릉의 포근한 섬이다.
고려 말 공민왕 후손이 이태조의 탄압을 피해 이 섬에 정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보름달이 유난히 아름다워 자줏빛 달이란 뜻의 자월도(紫月島)이다.
특히 국사봉 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마을은 참으로 평화롭고
천혜의 어촌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세상은 변해도 후한 인심만은 그대로 물결치면서 말이다.

국사봉은 청소년 학습장과 가족단위 야영장이기도 한데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국사봉에 서는 멀리 인천항, 그리고 덕적도, 대․소이작도, 승봉도 등
점점이 푸른 파도에 출렁이는 아름다운 섬들도 구경할 수 있다.

국사봉 아래 마을 장골은 조선 초기에만 해도 100여 가구가 살던 큰 마을이었다.
한 달에 여러 번 장이 섰다 하여 그리 부르고 있는데 산중턱에는
아직도 옛날 달구지가 다니던 길의 흔적과 물물거래 하던 흔적이 또렷하게 남아 있다.

전통 농촌과 어촌 풍경이 어우러진 섬
전통적 농촌 마을을 하면서 어촌 풍경까지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자월도의 풀모골은
대장장이들이 농기구와 쇠붙이를 풀무질하던 곳이고,
큰 마을 초등학교 쪽에는 연자방아를 6개소나 설치하고 방아로 보리 찧던 터가 남아 있다.
달보는재는 정월 보름날에 달맞이하며 소원을 빌던 곳이다.

쾌속선이 닿는 선착장에 달바위가 있다.
옛날부터 배가 달 수 있는 바위라고 해서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는 설과
실제 ‘다슬바위’가 있는데 그 발음이 변해서 달바위로 되었다는 설도 있다.
또 이곳 바위가 둥글어 마치 달과 같은 모양이라 하여
그리 불렀다는 이 마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도 설득력 있어 보였다.

자월도는 해안지대를 낀 섬이라서 유난히 바위와 관련된 지명이 많다. 안독바위는 장골해변과 큰 마을 사이 해안에 있는 바위이다. 사리 때 물이 휘어 도는 곳으로 바위모양이 안 쪽 독과 같다하여 그리 부른단다. 독바위도 있는데 안독바위 밖에 따로 떨어져 있어 큰 독과 같다하여 그리 부른단다.

아카시아 향기와 암반수 흘러내리는 해안의 여유
장골소공원도 볼거리인데 조경이 참 아름다운 곳이다.
사계절 야생화들이 만발하고 해당화 집단 서식처이기도 하다.
장골해변은 아카시아나무가 병풍처럼 둘려 퍼져 있다.
아카시아의 진한 꽃향기가 갯바람에 출렁이는 늦봄에서 여름까지는
산림의 향기와 툭 트인 바다의 풍경으로 절경을 이루는 곳이다.

나무 향기에 취했다가 파도소리를 들으며 걷는 해변에 서다보면
절벽 틈 사이로 암반수가 흘러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천연수를 받아 마시며 갈증을 풀고
자연의 여유로움에 빠져보는 사색의 공간 속의 나, 바로 자기와의 대화,
그리고 인간과 자연과의 대화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닌가 싶어진다.
그리고 물이 빠지는 시간에 갯펄로 나가 조개, 낙지, 게 등을 잡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자월도에는 해수욕장이 몇 군데 있는데 큰말해수욕장은 800m에 이르는 해변이
온통 금빛모래로 곱게 드러누워 있다.
해조음 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노을이 스러지는 아름다운 황홀경에 빠져든다.
여유와 넉넉함이 곳곳에 배여 있는 평화로운 어촌 자월도.
파도가 스러지는 그 찰나에 갯바람을 파닥이며 포물선을 그어 올라가던
갈매기들의 향연도 노을이라는 배경 속에서 가 없이 이국적인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해안의 경사가 완만하고 해변마다 해산물이 많고 농업도 병행하고 있는 자월도에는
 전국에서 몇 안가는 약용누에 재배농가가 있고
토종꿀, 흑염소, 포도 등도 특산품으로 생산하고 있기도 하다.

노을에 빠져든 등대와 선창가 풍경, 그리고 그리운 무인도
선창 앞에 있는 등대가 노을 속에 빠져 드는 장면을 보고 감탄하며 서 있자
마을 어르신은 저 곳이 낚시 포인트이기도 하다고 일러주었다.
자월도에서는 5월~10월 우럭, 9월~10월은 농어와 망둥어,
6월~9월은 놀래미가 잘 잡힌다고 한다.
이밖에 광어, 장어, 도다리, 숭어, 장대, 돌돔이 많이 잡힌단다.
강태공들이 주로 찾는 시기는 5월~11월 중순경이다.

선창가에는 또 열녀바위가 있는데
바다가 나가 3일 동안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던 여인이
이곳에 남편 없는 삶은 희망이 없다면서
통곡하며 바다에 몸을 던졌다는
긴 이야기가 주물로 만든 열녀상에 구구절절 아로새겨져 있다.

마지막으로 먹통도 등대를 가려 했으나 인천으로 나가는 마지막 쾌속선이
뱃고동을 길게 울리며 선창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꼭 가보고 싶은 먹통도는 그렇게 다음으로 미뤄두고 승선했다.
 먹통도는 자월도 서북쪽 끝에 있는 무인도.
옛날 목수들이 먹줄을 치는 먹통같은 모양새라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무인등대가 있고 갈매기들이 서식하는 그 무인도에 대한 동경을 남겨 두고 온 탓은
자월도는 더욱 그리워지는 섬으로 남아 있다.

● 미니상식ꠛ
서해안 섬 여행 준비사항
서해안은 밀물과 썰물의 차가 크다.
따라서 서해안 섬으로 떠날 때는 물때를 알아두는 것이 좋다.
 수영 하러 갔다가 썰물의 바다만 구경하고 오거나 조개 잡으러 갔다가
밀물만 바라보고 오는 사람이 많다. 무작정 떠난 탓이다.

인터넷을 이용해도 되고 관할 관청이나 해운 회사에 문의해도 친절히 일러준다.
물때를 알아볼 때는 사리와 조금이 언제인가를 아는 게 급선무.
사리는 물이 많이 들어오고 많이 나가는 것을 말하고,
조금은 물이 적게 들어오고 적게 나가는 것을 말한다.
밀물이 가득 차 있을 때를 만조, 물이 최하로 나갔을 때를 간조라고 이른다.

물때를 숙지한 후에는 바다 생물들에 대한 간단한 특징을 알아두면 좋다.
망둥어 등 갯벌 생물들은 갯벌 위에서 먹이를 찾곤 하지만
물이 말라갈 때쯤에는 모래나 갯벌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생생한 해양체험을 위해서는 사전에 알고 가는 것이 여행의 맛을 더해준다.

특히 게들을 자주 보는데 조금만 더 신경을 써서 관찰해보면
 재밌는 생태학습을 즐길 수 있다.
농게는 수컷의 집게 다리 가운데 어느 하나는 매우 크고 붉은 색이다.
 밤게는 포피가 담갈색 원형의 딱딱한 딱지를 갖고 있다.
5~6월경이면 물이 빠진 뒤 짝짓기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보통 게는 옆으로 기는데 이 게는 앞뒤로 기어간다.
몸 뒤부터 모래 속으로 들어가는 신기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흔히 왕새우와 착각하기도 하는 쏙은 모래 갯벌에
Y자 모양의 깊은 구멍을 파고 살며 부유물질을 먹고 산다

조개나 게를 잡을 수 있는 호미, 모종삽, 맛소금, 면장갑,
외상약과 반창고 등을 준비하는 게 좋다.
섬 안에서 마을버스(보통 봉고 운행)를 이용할 경우 배 시간에 맞춰 운행할 수 있도록
기사 아저씨에게 미리 부탁해두는 것이 좋고 배 운행시간을
정확히 숙지해 두는 것이 필요하다.


● 자월도 가는 길
① 인천 연안부두에서 갈 경우
연안부두 여객터미널 → 자월도행 선편 승선(파라다이스호, 관광페리호) →
자월도 하선(1시간) →달바위 선착장에서 내려 도보로 3-4분정도.
(자월도는 마을버스가 운영되지 않고 민박집에 봉고를 운행함)
② 대부도에서 갈 경우
안산 월곶톨게이트 → 삼거리(좌회전) → 시화방조제검문소까지 직진 → 방조제끝에서 우회전 → 대부방아머리 선착장(자월행 대부고속페리호, 1시간) →
달바위 선착장에서 내려 도보로 3-4분정도이다.
③ 선박운행 문의
원광해운 032-884-3391/대부해운 032-886-7813/서해도서선편 자동안내 032-888-0116

 

2004/07/04 14:39

요석공원

 

 

 

 

[테마가 있는 소요산 산행 ]

 ① 당일치기 기차여행 ②선녀를 찾아서 ③ 들머리 풍광

 

입구, 소요역에서 내려 5분 거리가 입구다.

아름드리 푸라타나스 나무가 등산객을 반기는 주차장이 오른편에 있고 거기서 등산 진입로까지

10여 분을 걸어가야 한다.

 

자재암 들어서기 전 세 갈래의 등산길이 나오는데 오늘 나는 자재암으로 들어서는 진입로를 택했다.

 

하백운대..상백운대...선녀탕 이렇게 가야하는데... 거꾸로 올라간 선녀탕....

과연 찾을 수 있을런지...

난 언제나 소요산은 겉만보고 지나쳐왔다.

이 번에는 소요산 봉우리들을 차례 차례 다 섭렵해 보리라...마음 먹으며.....

 

산행기는 ④ 선녀탕에서............../이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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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고슨 원효와 요석공주]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617-686)의 부인이었던 요석공주(瑤石公主),

요석공주는 신라 제 29대 왕, 무열왕의 딸로서 일찌기 홀로된 몸으로 요석궁에 머물러 있었다.
이 때 약 30대 나이의 원효라는 스님이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아 다니면서
"그 누가 자루없는 도끼를 내게 빌려쥈는가? 나는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찍으리라"
는 노래를 부르고 다녔다.
당신 임금이었던 태종 무열왕이 이 노래를 듣고는 '이 스님이 필경 귀부인을 얻어서 귀한 아들을 낳고자
하는구나 나라에 큰 현인(현인)이 있으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하면서 요석궁에 홀로
있는 요석공주와 짝을 이루게 하여 훗 날~~
대유학자가 된 설총을 낳았다는 것이다.

 

 

 

[more]

 

원효대사와 요석공주

원효대사의 속세의 성은 설씨로, 압량군 남쪽 불지촌의 율곡 사라수 밑에서 태어났다.
불지촌이란 마을 이름으로서 살지촌이라고도 하며, 사라수(娑羅樹)라는 나무에는 이런 유래가 있다.

원래 원효의 집은 율곡의 서남쪽에 있었는데, 그 어머니가 만삭의 몸으로 마침 율곡의 밤나무 아래
를 지나던 길에 갑자기 진통이 와서 해산을 하게 됐다. 너무 급해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게 되자
할 수 없이 남편의 옷을 나무에 걸어좋고 거기서 해산 구완을 했다.

그래서 그 밤나무를 사라수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 나무는 열매가 보통 것과 달리 아주 특이해서
 지금도 그것을 사라율이라 부른다.

옛날 옛적에 어떤 절의 주지가 그 절의 노비들에게 하루 저녁 끼니로 한 사람 앞에 밤 두 톨씩을
나눠주곤 했다. 노비들은 불만이 쌓여서 마침내 관가에 주지를 고발했다.

관리는 이 말을 듣고, 주지스님이 그렇게 야박스럽게 굴 수가 있나 하고 밤을 가져다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밤하나가 그릇 하나에 꽉 찰 만큼 엄청나게 컸다. 관리는 이것을 보고 앞으로는 노비
한사람에게 밤 한 톨씩만 주라고 판결은 내렸다. 그때부터 그 밤나무가 있는 골짜기를 율곡이라
부르게 되었다.

원효는 출가하고 나서 자기 집을 절로 만들고 이름을 초개사라 했다. 또 자신이 태어난 그 밤나무
옆에도 절을 지어 사라사라 일컬었다.

원효의 어렸을 때 이름은 서당인데 집에서는 보통 신당이라고 불렀다.
그 어머니가 원효를 밸 때 별똥별이 품 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으며,
해산할 때는 오색구름이 땅을 뒤덮었다. 그때가 바로 진평왕 39년(617)이었다.

그는 날 때부터 남달리 영리해서 스승이 없이 혼자서 독학으로 공부했다. 그의 행적은 당나라
『승전』과『전기』에 자세히 실려 있으므로 여기서는 우리나라 전기에 실린 한 특이한 일만
기록하기로 한다.

원효의 이름이 이미 신라에 널리 알려졌을 때의 일이다. 어느날, 원효가 아침부터 미친 사람처럼
거리를 쏘다니며 큰 소리로 이런 노래를 불러댔다.

누가 내게 자루빠진 도끼를 빌려주려나.

내가 하늘 받칠 기둥을 찍어내리라.

사람들은 원체 이상한 행동을 잘 하는 원효대사가 이번엔 또 무슨 바람이 불어 이러나 하면서도
그 노래의 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런데 태종 무열왕이 대궐에서 이 노래를 듣고는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스님이 쉬부인을 얻어 훌륭한 아들을 낳고 싶은 모양이구나. 그런 분의 자식이라면 영특할 것은
 틀림없고, 나라에 훌륭한 인재가 생기면 그보다 좋은 일이 없지."

마땅한 여자가 없을까 궁리하던 무열왕은 마침 요석궁에서 혼자 살고 있는 공주를 떠올렸다.
무열왕은 됐다 싶어서, 즉시 원효를 찾아 요석궁으로 안내하게 했다.

관리들이 원효를 찾아나섰을 때, 원효는 이미 일이 그렇게 될 줄 알고 먼저 문천교 다리로 나가
기다렸다.

저 편에서 관리들의 모습이 보이자 원효는 모르는 척하고 다리를 건너오다가 일부러 발을 헛딛고
물에 빠졌다. 관리들은 허겁지겁 원효를 건져내서 요석궁으로 데려갔다. 원효는 젖은 옷을 말린다는
 핑계를 대고 옷을 벗고 궁에서 머물렀다. 요석공주는 처음엔 어이가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스님답지
 않은 자유분방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하여 둘은 함께 밤을 보냈다.

열 달 만에 요석공주가 아이를 낳으니 그가 바로 설총(薛聰)이다. 설총은 나면서부터 어찌나
총명하던지 어릴 때 이미 유학과 역사에 통달했다. 그는 이두문자(吏讀文字)를 만들어서 그때까지
중국어로만 통하던 중국과 우리나라의 문물을 우리 식으로 표현할수 있게끔 했다. 이런 공적 때문에
 설총은 흔히 신라를 대표하는 열 사람의 현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원효대사는 파계해서 설총을 낳은 후로는 가사장삼을 벗고 속세 사람들이 입는 옷을 입고 다니며
스스로 소성거사(小姓居士)라 했다.

어느 날 우연히 그는 광대들이 춤출 때 쓰는 커다란 뒤웅박을 얻었다. 이리저리 살펴보던 그는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라,

그 모양을 본따서 기구를 만들고 화엄경의 '일체 막힌 데가 없는 사람은 한 길로 생사의 길에서
벗어난다.'는 구절을 따라 그 악기의 이름을 '무애(無碍)'라고 지었다. 그리고 거기에 해당하는
「무애가」라는 노래를 만들어 불렀다.

원효는 이 기구를 들고 방방곡곡 수많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노래와 춤으로 사람들을 교화했다.
쉬운 노래와 춤으로 어려운 교리를 설명하는 원효의 독특한 방법 때문에 승려들 가운데는 눈살을
찌푸리는 이도 많았다. 하지만, 실상 산골 오두막의 목동들까지도 부처님의 이름을 알고
나무아미타불을 부르게 된 것은 그가 아니었으면 될 수 없는 일이었다.

스스로가 붙인 원효(元曉)라는 법명은 부처님의 세상을 처음으로 빛나게 한다는 뜻으로,
원래 우리 말의 '해가 돋는다'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원효가 이룬 업적을 생각할 때 참으로
그 이름대로 임을 알 수 있다.

원효는 이처럼 대중들에게 널리 부처의 가르침을 전했을 뿐만 아니라, 『화엄경』과『금강삼매경』
에 대한 해설을 써서 후세에 길이 도움이 되게 했다.

원효대사가 입적하자 아들 설총은 유해를 화장한 뒤 그 가루로 살아계실 때의 모습을 조각하여
분황사에 모셔 놓고 일생 동안 아버지에 대한 존경의 뜻을 표했다.

그런데 하루는 설총이 아버지의 소상(塑像)옆에서 절을 하는데 그 상이 갑자기 돌아다보았다.
그때부터 소상은 돌아본 채로 있다고 한다.

 


[원효]661년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가던 도중, 밤중에 목이 말라 바가지
에 괸 물을 달게 마셨는데, 이튿날 아침에 그것이 해골에 괸 물이었음을 알고
한바탕 법석을 피우고서는 세상의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려 있으며 사물 자체
에는 깨끗함도 더러움도 없음을 크게 깨닫고 유학을 포기하고 되돌아왔다.
그 후 태종의 딸 요석 공주와 맺은 인연으로 설총을 낳게 되었는데 스스로
계율을 어긴 것을 뉘우치며 불교의 대중화를 위하여 전국을 돌며 불도를
전하고, 당나라에서 들여온 <금강삼매경>을 왕과 고승들에게 강론하여 신
라 최대의 승려로 존경을 받았다. 또한 여러 파로 나누어진 불교를 통일시켜,
우리 나라 고유의 불교로 발전시켰다. 저서에는 <대승기신론소>, <화엄경소>,
<법화경종요> 등이 있다.


[설총]설총은 향찰을 집대성, 정리하였는데, 육경을 읽고 새기는 방법을 발명하여 한문을 국어화하고
유학 등 한학의 연구를 발전시키는 데 공이 컸다.
또 신문왕 때의 국학 설립에 주동적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설총의 문적으로는 우화적 단편산문인 《화왕계》가 당시 신문왕을 풍간(풍자해서 말하는 일)
하였다는 일화로서 《삼국사기》 <설총열전>에 실려 있다.

고려 현종 때 홍유후의 시호를 추증받았다. 문묘 동무에 최치원과 함께 종향되었고,
경주 서악서원에 배향되었다.

 

..

입구. 요석 궁지앞  계곡 물

..

등산로 길,,우 편의 계곡물

.

나옹선사의 선시

.

속리교(俗離橋)를 지나 세심교(洗心橋)....그 뜻이 어찌 심오하지 않으리....

.

백운암?

.

자재암 올라가는 길...우 편

.

박쥐동굴인가?
.

거미줄을 걷어내고 다가서서~~

 

 

[ 소요산 ]

위 치 경기도 동두천시 상봉암동
높 이 585.7 m
경기도 동두천시 소요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수이북 최고의 명산이다.
규모는 작지만 산세가 특이하고 봄철 진달래와 철쭉이 장관을 이루며 가을 단풍 또한 유별나서 예부터 경기의 소금강이라 일컬어진다.
이곳은 원효대사가 고행 수도 하여 큰 도를 깨친곳이어서 불교 유적지로도 이름이 높다
자재암, 원효폭포등의 관광명소가 소재하고 있으며 입구에는 넓은 주차장이 있어 수도권지역의 일일관광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산세가 그다지 장쾌하고 웅대하지는 않지만 형상미의 극치를 보이듯 뾰족뾰족한 기암괴석이 절묘하게 봉우리를 이루어 놓아 만물상을 연상케하고,
심연의 계곡은 오묘한 정취를 발산한다.
산정으로 오르는 길목에는 소담스러우면서도 앙증맞은 청량폭포가 있으며 폭포위로 조금만 더 오르면 높이가 10m나 되는 원효폭포가 우렁찬 낙하의 절규를 토하며 시원한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다.
자재암의 일주문 안쪽과 주차장 뒤쪽으로 항시 솟아나는 약수가 있어 물통을 한두개쯤 준비해가도 좋다.
동두천시가 직접관리를 맡아 주변이 청결하고 질서가 있어 보기에 좋다.
국내명승지로 널리 알려져 있는 소요산은 경기의 소금강이라 불리 울만큼 아름다운 명산이다.
소요산의 유래는 서화담(서경덕), 양봉래(양사언)와 매월당(김시습) 이 자주 소요하였다 하여 "소요산" 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예로부터 소금강이라 하여 대자연의 많은 수림과 자연경관으로 매년 많은 관광객이 즐겨찾고 있다.

산행기점 찾기
산행기점은 소요산역을 나와 우측으로 200m쯤가면 좌측으로 소요산 들어가는 집입로가 있다.
주차장, 관리사무소, 매표소를 지나 일주문을 넘어가면 속리교 다리를 건너게 된다.
여기까지는 외길이고
속리교를 넘엄서자마자 길이 3군데로 갈리운다.
좌측 계단을 올라가면 자재암방향으로 하백운대로 가려면 이곳으로
가운데 직진은 구절터로 하여 능선에 올라 좌측은 의상대 우측은 공주봉 방향이고
바로 우측 능선으로 가면 공주봉으로 올라갈수 있다.

등산코스
관리사무소 → 하백운대 → 중백운대 → 선녀탕 → 관리사무소 : 1시간30분
관리사무소 → 하백운대 → 중백운대 → 상백운대 → 샘 → 관리사무소 : 2시간30분
관리사무소 → 하백운대 → 중백운대 → 상백운대 → 나한대 → 금송골 → 관리사무소 : 3시간
관리사무소 → 하백운대 → 중백운대 → 상백운대 → 나한대 → 의상대 → 관리사무소 : 3시간30분
관리사무소 → 하백운대 → 중백운대 → 상백운대 → 나한대 → 의상대 → 공주봉 → 관리사무소 : 4시간

교 통
전철 - 의정부역 - 경원선- 소요산역 통일호 이용(요금 1,110원)
의정부역(875-7788)에서 06:20분부터 22:20까지 매시 20분에 출발하는 경원선 열차(통일호)를 타고 소요산역(865-7788)에 내린다.
반대로 소요산역에서 의정부역까지는 매시 40분에 출발한다.(주차장 입구까지는 도보로 10분정도 소요)
버스 보다는 기차를 이용하는것이 교통 혼잡을 피하여 좋다.


전철 의정부 북부역 - 버스이용
전철을타고 의정부 북부역에서 왼쪽 출구로 나가 도로를 건너 반대편에서 39번, 136번 36번 버스를 이용한다. (40분 소요)

수유리, 쌍문동 -소요산
서울 수유동에서 136번 36번, 쌍문동에서 139번 버스가 20분마다 출발한다. 의정부역, 의정부 북부역, 동두천 버스터미널을 경유한다.
성남, 인천, 원당, 능곡에서 의정부와 동두천을 왕복하는 직행버스가 있다.

동두천 버스터미널 - 소요산(15분)
39번, 136번 36번 버스를 이용한다.

주변볼거리
자재암
1977년 관광지로 지정된 소요산에 위치한 자재암은 신라 무열왕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고찰로 원효대사와 요석공주가 기거했다는 전설 때문인지 무수한 승려들이 수도차 거쳐가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자재암은 거대한 바위산 협곡 위에 외롭게 위치하고 있어 수도처로는 더없이 좋은 곳이다.
자재암이 유명한 것은 이 곳에 귀중한 보물인 <반야바라밀다심경> 언해본이 전하기 때문이다.
1994년 암자의 서책들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된 이 반야심경은 현재 보물 1211호로 지정돼 있으며, 낙장 하나 없는 완벽한 언해본이다.

 


 
 
출 처 : [인터넷] http://www.sansan.pe.kr/ 

 

소요산

music : Naoyuki onda - Heartland
 
 
경원선

 

 

 

 

선녀탕

[나뭇꾼과 선녀]

 

------ 1차 갔던 하백운대

------ 2차 어제 헤맨 곳 어디쯤

 

 

.

 

 

2004.07.01


[나뭇꾼과 선녀]

 

------ 1차 갔던 하백운대

------ 2차 어제 헤맨 곳 어디쯤

 

동화책에는  나뭇꾼과 선녀라고 분명 되어있는데...

가수 김창남의 노래에는 선녀와 나무꾼이다.

이 것도 시대조류인가?

lady first~~   여자가 앞에 붙었으니...

 

7월 1일 첫 날,

경원선 기차를 또 탔다.  산에 올랐다.

 

소요산,

내일 부터 장맛비가 온다기에 ...일단 산을 오르기로 했다.

 

오르고 싶었던 [선녀탕]

길을 잘못 들었는지...

 

아무도 없는 슾지를 혼자 등반을 했다.

습기에 바위는 축축해서 미끄러웠고,

길도 없는 바위를 록 클라이머처럼 지나치기도...

 

아무래도 길을 잘 못 든 거 같았다.

나이를 생각해야지...

 

평길을 걸을 때는 기우뚱~ 잘 넘어지려 한다거나,,간혹 발을  접지르는 나,

근데..높은 산,,험악한 곳에서는 절대 그럴 일이 없을 것 같은...

잠자는 말초신경까지 깨어나서 죄 곤두 서있는..경계심......

이 팽팽한 긴장감의 짜릿함,

위기를 벗어난 뒤에 오는 릴렉스..그리고 또,,,,긴장감....

거대한 대자연 속에 실존감으로 뿌둣한 느낌의 팽배,

 

아무도 없는 ....혼자서 난코스를 산행하기 여러 번 째...

인생도 이렇게 정신 바짝 차리고 산다면 절대 추락할 염려는 안해도 되는 것인데....

 

할머니가 산 속에서 길을 잃다니...

나무꾼도 아니면서..무슨 선녀탕을 찾으려고? 뭐하려고 ?

중간 중간 비슷한 웅덩이를 발견...

옷을 벗고 목욕하고 싶은 욕망을 간신히...간신히 누르다....에효효~~

증말 참기 심들었슈~~

사진 보믄 알겠지만,

 

어제는 비가 곧이라도 올 듯 하늘은 어두워오며 우르릉 거려서....

진짜배기 外經의 선녀탕을 찾아가는 기분이 들었어여...

나, 어제는 비록

일단 후퇴했지만 다시 오르리라...필경은,

점심먹고 올라 간 산,  오후 6시에 하산하다.

아무도 없는 등반을 한다는 게 이상야릇하기도.......차암, 못 말려

해서 사진도 올릴겸... 노래를 찾으러.. 다니다가

 

검색하다 아주 우스운 이야기들을....

사이버의 다양한... 네티즌들의  변모한 시대를 대변하듯 하는 좀은 엉뚱스런 소리..소리들.....

 

이 글 쓰는 나도 생뚱맞은 짓꺼리를 하고 오질 않았던가?

크하하하~~~

정말 혼자였지만 선녀를 찾아가는 아주 재미있는 등반이었는데....

 

 

이요조

 

........................................................................................................../2차시도.....

 

소요산...
일상에 지쳐 잠깐 다녀오는 소요산도 내게는 엄연한 여행이다.
숲길로의 여행,

소요산을 다녀온 사람들은 내 글을 보고 웃겠지만,

아래에서 길을 잘 못 접한? 나는 아마도 엉뚱한 곳을 헤맨 듯

선녀탕,  0.4km가 헤매다가 헤매다가 보니..이정표엔 다시 0.3km니....

그 자리를 돌고 있었거나 (그 건 절대로 아닌 것 같은데)

아마도 곁길...(나중엔 아예 길도 없었음) 로 갔거나.....

어쩜, 자재암을 벗어나자   나는 사람 그림자,,아니 흔적조차 만나볼 수 없었다.

인적은 커녕 그 흔한 다람쥐 한 마리도 못 만났으니

[그래...즐기자]

되돌아 올 길은 알고 있으니... 길은 잃었다 치고 그냥  그냥 즐기기로 맘 먹었다.

 

.

 

조금만 더,,조금만 더...

그러면서 꽤 깊이 찾아 들은 듯 하다.

선녀탕은 그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곳은 아닌데...내가 지금 걷는 길은 순전히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이라 광장히 미끄럽다.

 

.

 

선녀를 찾아가는 길은 이리도 힘드나 보다. 군데..군데..이런 보조물이 없다면...

이 곳에서만 해도 평지를 걷는 행복이다.

 

.

 

사람 그림자도 없고.... 계곡은 물이 흐르다가도,

그 물길이 땅밑으로 흐르는지....끊어졌다. 다시 이어지곤 하는 등산로,

과연 나는 옳은 길을 가고 있는지

틀린 길이라고 알 때, 즉시 수정을 해야되는 것인지...멘토가 아무도 없는 고독한 산행,

만약에 인생이 이렇다면 인간은 어떡해야 하는거지?

일단... 오르고 보는 수 밖에... 그렇게 길이 영 막힌듯한 곳은 아닐 것 같으니....

 

.

 

아직은 희망이 있다.

이렇게 사다리도 놓여 있지 않은가?

사람이 다니는 흔적이다. 아주 반가운...

 

.

 

어디서 물 소리가 나는 것 같다.

위에 사진, 중앙에 웅덩이가 있었다.

길이 없지만 기어 올라봤다. 역시 예상한대로 웅덩이가..거기 누어서 마치 나를 기다리는

듯 있었다.

발도 딛지 못할 곳 같은 곳,

겨우 작은 공간에 카메라를 얹어두고는 몸을 위로 이동시켰다.

그리고는 몸을 바위에 밀착시켜서..무게 중심이동을 시킨 뒤....살그머니 카메라를

찾아 들었다.

찍으려는 순간... 아!  카메라에 메모리 칩 공간이 없단다.

내려가기란 너무 어렵다.

바닥에 내려서면 메모리 칩이 더 있긴한데...

할 수 없이 아깝지만 좀 전에 찍은 큰 사이즈의 사진을 두어 개 지워냈다.

작은 싸이즈를 지우려니... 그 불안한 곳 위에서 삭제 작업을 하려니 좀 그랬기에...

 

아래 사진 둘은 그 웅덩이가 있는 곳이다.

호기심 많은 사람이 아니고는 아마도 모르고 지나칠 곳

딱 내가 누우면 안성맞춤일 것같은 바위욕조.

 

물이끼가 끼어있어서 그렇지...깨끗하다면..정말이지 그 유혹을 이기기 어려울 정도의..

은닉된 곳,

선녀탕이 따로 있으랴

달빛 그윽히 교교한 밤이면... 이 곳이 바로 선녀탕일수도....

 

.

 

정말 사진 찍기 어려웠던 장소,

아무도 모를 것 같은  이 곳! 이 곳을 바라보며...무슨 보물찾기를 한듯 흐믓한 마음에...

무에든 은밀한 곳에 숨겨진...그에 따르는 내밀한 이야기가 있을 법한데....

그냥.. 내 마음에만 묻어두고 또,,위로 향했다.

 

.

 

내려오니.... 이런 등산 보조물 철책이 보인다.

그런데... 오르기가 장난이 아니다.

쌓인 낙엽은 썩어가느라 미끄럽고..하루살이는 우우~~ 단체로 날아다녔다.

난 하루살이가 요렇게 썩는 물이나.. 그런데 꾀는줄알았더니...

티뷔 퀴즈에서 하루살이는 입이 없으며..짧게는 4~6시간을 살며... 길게가.. 20여시간?

그리고 서식지는 공기가 맑고 청정한 곳이란다. 오잉?

썪는 하천이 아니고?? 가만 생각해보니... 정말 오염된 환경에서는 없다.

청정지역 습한 곳에 서식하긴 해도....

 

소요산

 

내려오는 길은 이 곳이 오히려 제일 어려웠다.

물에 미끄러지면  낭떠러지로.... 슬라이딩... 아야 소리한 번 못 지르고(질러도 들어줄

인적조차 없는..아예,)

 

정말..사진이 빠졌다.

나는 고소공포증은 없는대신 예리공포증이 있다.

이쑤시게 칼끝, 바늘 등... 생각만해도 좀 그렇다 많이 나아졌지만...

그리고 계단 공포증이 하나 더 있다.

엄마가 교통사고 났다는 말을 전해듣고 급히 나오다가 이층 계단에서 구른 적이 있고는....

그래서 오르는 것 보다가 내려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크다,

 

오를 때는 힘들어서 못 찍었고 내려올 때는 솔직히 무서워서 못 찍었다.

 

.

 

난간 중간 쯤... 시야기 탁 트인 곳에서

"아..조오타~~" 감탄이 나오고...되도 않은 싯귀가 떠 오르다.

무슨 연유인지 눈물도 찔끔....나다.

 

그리움이 滿月로 차오면 나 오르리라(山을) 

등산하다 문득 떠 오른 글귀,

심심산골에 묻혀 살고 싶다는 생각에, 사람이 그리우면? "그리움이 만월로 차면

나 내려가리라?"
이런 씰때없는 推敲를 불현듯,

 

...................................

 

이 때만 해도 행복했다.

 

이 계단을 돌아서니..또 난이도의 철제 사다리...그런데....어! 길이 없어졌다.

험한 바위만 앞을 턱 막아선다.

바위 뒷쪽으로 길이 있을 법한데...우회할 공간이나 틈은 전혀 없다.

다행이...손이나 발을 디딜만큼의 뾰족뾰족한 공간들이 있어

도전해보기로 했다.  록클라이머처럼 먼저 뾰족한 바위를 단단히 부여잡고 한 쪽발을

옮기고 또 손을 옮기고 하며.... 드디어 넘어갔다.

예상대로 길은 나있고... 물은 없는 습한 계곡이 나타났다.

한마디로 음습한 곳이다.

'도대체 선녀탕은 어디에 있는거야?'

'길 아닌 게 맞어.... 분명 길이 아니야~'

 

.

 

.........

 

축축함...습기.....오싹함...그런 단어외는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데....

이상하다. 포근하다.

혼자서 타올을 깔고 드러누워도 보다가....앉아도 보다가.....별 짓.....다 했다.

아무도 없는 공간이 왜 이리 좋은거야,

그나저나 내려 갈 일이 걱정스럽네, 정말,

 

.

 

선녀는 어딧는고야 대체,

어느 웅덩이에서 목욕을 했더란 말이냐...

선녀는 옥황상제를 도우는 도우미...즉 하늘나라의 공무원쯤 밖에 안된다는데....

나 참, 

 

.

 

아!  어릴 적 이모랑 목욕하던 그 웅덩이를 생각케하는 곳도 있네~~

다음엔 필히 다시 찾아 오리라~~

나...물을 왜 이케 좋아하지?

그러다가 이내 시무룩해졌다.

부산여자가 북쪽으로 옮겨 앉은지... 스므해가 다 되어가는데...

여태껏 맘에 드는 친구하나 없다니,  함께 다니던..부부가 있는데 그 남편은 병들었고

그 아내는 나보다도 훨씬 어리다.

얼마전 '시베리안 허스키'일로 속상했던 그녀의 언니다.

 

"물 좋아하는 사람들은 바람끼가 있대,

난, 생전가도 흐르는 물에 손도 담그고 싶지가 않아~~"

 

하던..결벽증의 깍쟁이 같은 그녀, 다른 것은 다 좋지만 말을 마구하는 그녀와 함께

산행을 하고 싶진않다..(흐~~ 요즘 절교중)

왜? 마음 편히...즐기는 산행에서 흐르는 맑은 물에 손 한 번 적셔보고  싶지 않으랴?

그녀는 그래서 그런지... 산행을 하는 것을 전혀 보지 못했다.

늘 차로 이동하는 놀이 밖엔....

.

 

요석공주 궁지가 있는 곳 까지  다다라서 물 가로 내려갔다.

원효가 상류에서 세수를 하고...

그 아래 요석공주가 님을 늘 기다리며... 세수를 했을 계곡,

차디찬 물에 발만 담궈도 난 '요석공주'가 된다.

 

어디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요석공주는 아마도 이런 바람 한 줄기에도 그를 느끼며.... 자재암..이 아래에다

공주궁을 짓고 기거 했나보다.

 

선녀는 어디가고....

공주를 느끼는 물에  발을 담궈보다.

보는 누가 내 다리가 굵다고 하든지..말든지........................이요조

 

 

7월 1일이었지 아마....

그 다음날 부터..비는 엄청 쏟아지고 '....오늘에야 모처럼 날이 개다.

(7월 9일)

 

도대체 선녀는 어딨는고야??

 

 

2004년 글입니다. ★경고/소요산 섣불리 덤볐다간 큰 코 다칩니다!

 

 

 

 

.........................................................................................................

 

선녀와나무꾼

 

 

 

 

 

 

230189 선녀와 나뭇꾼에서 착한선녀는 왜 하늘나라로 도망갔나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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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회 : 642   답변 : 4

답변이 완료된 질문입니다.(2003-10-13 18:35 작성)

선녀는 착한 사람이고 대략 시대를 조선시대로 설정한다면
지아비는 한사람만 섬겨야하거늘;
애까지 딸린 선녀는 왜 그렇게 살다가 하늘로 도망갔죠;?
선녀라면 착한여인네인데
가난하고 무능력한;나뭇꾼이 측은하게 느껴져서라도;
같이 살아주며;;;
살아가야하는게 아닐까요;?



질문자가 선택한 답변
답변입니다. 이의제기 (1)
(2003-10-19 16:46 작성, 2003-10-19 16:48 수정)


질문자 평 : 재밌는 답변@ 

먼저 가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만..

어떤 고사나 구전에서도 선녀= 착한 사람 이라고 정의 되어있지는 않습니다.

천사라면 천사= 선 이라는 개념은 정립되어있지만 선녀가 착한지는 아무도 모르죠.

요는 선녀도 착할수도 있고 나쁠수도 있다 입니다. 선녀는 사실 옥황상제가 있는

하늘나라의 공무원으로 추정할수있습니다. 비서와 같은 존재죠. 심부름하고 높은사람

들 뒤치닥거리하고 눈요기 거리가 되어주며 일하는 계층이 아니었을까..라고 사료됩니

다. 번외입니다만 저승사자도 비슷한 직종의 다른일을하는 소속이 다른 하늘나라 공무

원이라고 생각됩니다. 상근애들처럼 예비군 훈련통지소 돌리는것 처럼 말입니다. 죽은

사람들 데리고 배달하는거죠.

소속이 틀린데 조선의 이상적인 여인상의 잣대로 재기는 무리입니다. 티벳의 일처다부

제인곳에 길들여진 여자한테 한남자하고만 살기를 바라는거나 아랍의 부인 11명씩 데리

고살던 남자한테 결혼 한번만 해라 라고 하면 미친놈 쳐다보듯이 바라볼겁니다.

그렇습니다! 요컨데 나무꾼과 결혼한 선녀는 그다지 착한 선녀가 아니였던것입니다.

게다가 가난하고 무능력한 나무꾼이 짜증이나서 틈만 나면 도망가려고 했을지도 모르

죠. 호시탐탐 도망가려고 건너마을 부잣집 도령을 유혹하고 있었거나 이웃집 김씨아저

씨를 꼬셔 야반도주를 계획하고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찰라에 멍청한 나무꾼이 날

개옷을 꺼내준거죠. 선녀는 아싸! 대박이다 로또당첨 인생역전이다 라고 생각하고

바로 입고 애데리고 날른겁니다. 나무꾼에게 측은함은 느끼지만 함께 측은함을 당하고

싶지는 않았던거겠죠. 지가 나은 애들을 버리고 갈수는 없어 데리고 간걸껍니

다. 나무꾼이 능력이 없으니 애들 놔두고 가면 굶겨죽이겠다..라고 생각했을수도 있겠

지만..암튼..선녀는 하늘나라 올라가서 재혼해서 잘살았을꺼라고 추정할수있습니다.

재혼이 깐깐하다면 굳이 하늘나라로 도망가려고 하지않았겠죠. 요컨대 하늘나라는 사

회복지제도와 미혼모의 육아편의시설의 정비가 완비되어있고 재혼을 이상한 눈으로

안바라보는 사회시스템이었다는것을 추정할수있겠습니다. 또 모르죠 선녀가 그동안 일

해서 적금부어놓은게 꽤되거나 적금 만기일이던가 해서 일수도 있고..암튼 지상보단

하늘쪽이 살기편했으니 갔다고 봐야겠죠? 굳이 지금이랑 비교하자면 아프리카에 여행

갔다가 비자랑 여권 잃어버리고 오지에서 헤매이다 여기는 오지라서 나갈수가없다라고

속인현지인 남자랑 결혼했는데 남편이 감추었던 비자랑 여권을 찾아서 공항가는 지도까

지 받아들고 애데리고 한국으로 귀국한 거랑 비슷하지 않을까요? 우리나라 여자중 누

가 그런 오지에서 평생 살려고 할까요? 답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그럼 답변 꾸~~욱 눌러주시길..^^;

 내용추가 (2003-10-22 19:14 추가) 이의제기 내용 보기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가 여러가지 버젼이 있나보죠? ㅡㅡa 제가 알고있는 선녀와 나무꾼의 설화는 대략 이렇습니다.

나무꾼이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인지 노루인지를 숨겨주죠. 그래서 사슴으로 추측되는 동물이 은

혜를 갑겠다고 나무꾼에게 선녀탕의 위치와 선녀옷을 뽀리는 법 그리고 선녀가 하늘로 못튀게 애셋날때까지 날개옷을

돌려주지 말라는 충고&조언을 해줍니다. 나무꾼이 이 동물의 말을 믿고 선녀탕에 잠입 옷뽀리기와 애둘낳기까지는 성공

했지만 조언과 충고를 무시한채 둘째아이까지만 생산하고 날개옷을 돌려주죠. 그러자 선녀가 날개옷입고 양쪽에 애들 들고

하늘나라로 토꼈고 뒤늦게 이를 본 나무꾼은 사슴으로 추정되는 동물의 충고를 어긴것을 땅을 치며 후회했다..라고

끝을 맺습니다. 여기서 교훈은 남의 조언을 쌩까면 후회한다 겠죠. 유독 우리나라 설화는 해피엔딩이 많은데 이 설화는

나무꾼에게는 배드엔딩으로 끝납니다만.. 나중에 일부의 부분별한 동화작가와 출판사가 짜고 이 설화를 아이들 교육상

좋지않다고 착각, 나무꾼을 하늘나라로 데려간다는 에피소드를 추가한 업그레이드 선녀와 나무꾼의 동화책을 출판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그런 업그레이드 버젼이라면 할말이 없습니다. 뭐 그게 아니라면 나무꾼이 죽은뒤에는 하늘나라에

갔겠죠. 무릉도원이나 뭐 기타의 동양 설화에 근거해볼때 하늘과 지상은 시간이 다르게 흐른다는 사실을 유추해볼수있으니

나무꾼이 늙어 죽었을때도 선녀는 하늘나라에서 잘살고있다가 늙어죽어올라온 나무꾼을 만나 다시 행복하게 살았을수도

있지만 거기까지는 아직 밝혀진바가 없는걸로 알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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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들

선녀와 나무꾼 이의제기
(2003-10-13 18:46 작성)
생각해보세요. 선녀가 나무꾼과 좋아서 살았을까요?

사람을 직업이나 신분으로 판단해선 안 되지만, 어쨌든 선녀는 하늘나라 사람이고 나무꾼은 하계의 미천한(?) 남자일 뿐인데, 옷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하늘로 돌아가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같이 살게 되었을 뿐입니다.

게다가 잃어버린 줄 알았던 옷은 사실 그 나무꾼이 일부러 숨긴 거고요.

선녀 입장에선 속아서 애까지 낳고 살았던 겁니다.

뭐, 그동안 살아온 세월이 있으니 정이 들었을 수도 있지만, 선녀로서는 배신감에 치를 떨 일이 될 수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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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이의제기
(2003-10-15 22:46 작성)
선녀가 날개옷을 잊어버렸으니깐 하늘로 못올라가잖아요.

선녀옷이업으니깐

날이밝으면 사람들한테들킬게뻔하고

입을옷도없고

그때 맘씨좋게 생긴 나뭇꾼을 만난거져

선녀한텐 이게 왠떡이냐 하면서 따라갔겠죠

갈데도없었는데 잘됐네 하면서.

구래서 날개옷의 출처를 알아낸 선녀는

나뭇꾼에게 뻥을치고 날개옷을입고 하늘나라로 도망친거같아여.

내용출처: 내생각 내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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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하하... 이의제기
(2003-10-21 20:16 작성)
님아 님이 만일 선녀라몇스면
어떻슬가여
생가을 해보새요
나무꾼만 좋아했지
선녀는 몰르져
만일 하늘나라에
자식을 두었을수도있져

재가 tv에서 본게잇는대여
어떤사람이 여자를 잡아두면서
일을 시켯서여
그러다가
어떤 여자와 사랑해서 그녀만 박에나오게했서여
하지만 그녀는 몰래도망가서 신고를 했져
그래서 그사람은 잡혔고 갇혀있던
여자는 풀려낮져

몰래도망 가서 신고한 여자가 선녀라고 생각 하면되곘내엽

내용출처: tv와 내가쓴거

지식iN 의견 의견쓰기

[다른의견]  captainlsh  (2003-10-13 20:33)
선녀니까 그정도였죵, 요즘 여자같았으면 재판걸고 위자료청구하고 아예 껍질을 홀랑 다 벗기지 않았을까요?^^ 

 

케이블로 간만에 은비까비 옛날옛적에를 보다가 궁금한점.

선녀와 나뭇꾼 이야기에서 제일 잘못이 큰 사람은 누구인가요.
비극으로 치닫게한 결정적 인물.

1. 선녀옷 훔치고 애기 넷 낳을때까지 보여주지 말라던 사슴과의 약속을 어긴 나뭇꾼.

2. 애를 셋이나 낳고도 도망가고. 천방지축 성질급한 천마를 준 선녀.

3. 선녀옷을 보여주라고 해서 도망가는데 기여를 하고 뜨거운 호박죽을 줘버린 할머니.

-_-;;

근데 애를 넷을 낳아도 도망갔을것 같은데여. 하나 업고 둘은 팔에 끼고 나머지는 다리사이에...



질문자가 선택한 답변
젤 나쁜 넘은 이의제기
(2003-03-28 16:24 작성)


사슴 아닐까요?
어머니에게 효도하고 잘 살던 총각 그냥 살았으면 어디선가 남는 색시 잡아서 남들 처럼 살수 있었을 지도 모르잖아요.
괜히 도와 준답시고 멀쩡한 총각을 관음증 환자로 만들지 않나,금품강탈에 사기결혼까지....
아주 못됐죠.
하지만 그렇게 치면 사슴을 쫓던 사냥꾼이 더 나쁠지도 모르겠네요.
사슴과 사냥꾼이 조우할 기회를 만들어 줬으니....
아니야,그 사람은 그저 자신의 직업에 충실한 한집의 가장 이었을뿐이다.
집에서 아빠가 사슴을 잡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배고픈 마누라와 자식이 있었을지도 모르죠.
그저 사슴이 자신의 운명에 순응해서 사냥꾼에게 순순히 잡혔더라면 이런 비극은 안 일어났을지도 모릅니다.
또 도와줘서 은혜를 갚고 싶으면 딴 얘기에 나오는 것 처럼 산삼이 자라는 곳이나 알려주던가 자신의 뿔을 잘라 '녹용입니다.가져다 파시던지 어머님께 드리시던지 하세요'하면 좋잖습니까?
맞아요.역시 사슴이 나쁩니다.
모든 악의 원흉이야.

(선녀와 나뭇꾼은 제가 싫어하는 이야기중 하나 입니다. 나뭇꾼이 너무 불쌍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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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들

답변 이의제기
(2003-03-28 05:01 작성)
에.. 질문 하신분이 답변 안 해 준다고.. 쿨럭. ^^;;;

일단은 나뭇꾼이 잘못을 했죠..

자신이 그 옷을 훔침으로써 그 선녀에게 어떤 불행이 올줄 몰랐다고는 하나

그 옷을 훔침으로서 선계로 갈수 없게 되엇지 않습니까?

부모님이랑 평생을 볼수가 없는데 말이죠..

정도 및 부녀자 성폭행인듯 하네요..

하지만 머 애도 놓고 했으니 사실혼 관계 이니

그 죄는 작아 진다고 볼수 잇죠..

여하튼 나뭇꾼이 잘못을 했어여..

나쁜넘.. 남자욕 먹이다니.. 쿨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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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제기
(2003-03-28 05:02 작성)
그게 이야기가 계속되죠
나뭇군이 하늘로 가서 같이 살게된답니다 옥황상제가 허락해서 -_-
따라서 비극적인 이야기가 아니므로 무효

그리고 아이뒤로 업고 앞으로 업고 양손에 하나 4명된답니다

아니면 첫아이가 좀 크면 그아이한테 하나더 업혀서 5명까지 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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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의제기
(2003-03-28 05:33 작성)
애...넷나을때였어요?

셋 아니었나 -_-;

음... 우선 나무꾼에게는 절도, 공갈협박, 계약위반-_-;; 등등... 죄가 있을거 같구;

애 낳고 살림하다 도망간 선녀는... 가정파탄의 죄가 있을것 같두...

할머니는... 단순 과실치사 쯤 될듯;; 흘흘 -0-ㅋ

근데 생각해보면 선녀도 힘 어지간히 좋은듯 -_-ㅋ

지상과 하늘의 높이를 가만했을때 그 높이까지 올라가면서

애 셋을 들고 날랐다는건...... 어머니의 힘인가 -_-ㅋ

핫 -0-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1)

몰랐었다.

훔친 그녀의 옷이 그렇게 비쌀 줄은…

그리고 그 할부 용지가 우리 집으로 오게 되리란 걸…

옆에서 코를 고는 선녀 마누라를 보며

 

애꿎은 옥황상제만 죽도록 원망했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2)

폭포수에서 확인했어야 했다.

옷을 훔칠 때 똑바로 봐 뒀어야 했다.

사이즈가 엑스라지인 줄 그 누가 알았으랴...

가뜩이나 비좁은 방.

 

그녀가 들어온 후엔 두레박만 봐도 왠지 눈물이 난다.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3)

나한테 뭐라고 하지 마쇼.

선녀가 담배 피운다 하면 당신인들 믿겠소.

꽉 찬 그녀의 재떨이를 갈아주며 자식이 생긴다면 분명히 가르칠거요.

행여 어떤 싸가지 없는 사슴이 너에게 숨겨 달라고 오면…

고놈 발모가지를 뿐질러 라이트 훅을 날린 후에 포수에게 넘기라고.

지상이건 천상이건 이제 선녀다운 선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 선녀(탕)를 찾아서 사진은 내일 올리겠습니다.

 

소요산

마음이 울적하면 기차를 타고 떠나라

.

 

 

[마음이 울적하면 기차를 타고 떠나라]

 

 

며칠을 집에 갇혀 지내던 나는  오늘은 정말 아니겠다(강아지가 죽을 것 같아) 싶어
핑계 김에 가벼운 산에 오를 준비를 하고 나섰다.
마침 방학중인 아들 녀석도 외출을 안 한다니.
집을 나서 김밥 두 줄을 사서 색에 넣고...경원선 기차를 탔다.

12시 55분 소요산 역에 내리다.
난 언제나 혼자 가는 산행을 즐긴다.  여럿이 가면 산을 접해도 도무지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가 없다.
무조건하고 함께 헉헉대며 올라야되기 때문이다.

날씨는 무척 더웠지만.. 우선 내 코에 배인 듯 한 강아지의 배설물을 잊을 것 같았다.
땀이 났다. 쉬파리가 귓가에서 앵앵거리고 크지도 않은 눈에 벌레가 두 번이나 들어갔다.
눈물이 찔끔 새어나왔다.

언제부터 오르고 싶은 산이었는데...도전에 실패 만하던 산,
언제나 자재암 조금 더, 오르다가 포기하던 산,
300고지쯤 오르기까진... 별스런 경관이 나타나지 않았는데.... 400이르러서야 드디어 등산하는 맛의 진수를 보여주는 풍경들....

소요산

 

울적하던 가슴이 확 뚫려나는 느낌,

소요산...
일상에 지쳐 잠깐 다녀오는 소요산도 내게는 엄연한 여행이다.
숲길로의 여행,
 
매월당 김시습이 시를 읊으며 소요(산책)했다고 해서
이름하여 소요산이라 불린다.
요석공주의 궁터 앞을 지나며 나는 요석공주가 되어본다.
원효가 공주에게 보낸 연서(戀書)중 "... 그대의... 도끼 자국에... 나의...
기둥을 받치게 해주오..."가 있었다고 하니,
요석공원에 입구 안내판에..도끼 운운이 있었지만...
그 것을 알고 새겨듣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원효가 요석을 사랑할 때 그 문제의 도끼 꿈을 꾸었다 한다.
그 얘기를 전해들은 ?? 가 말하기를 이 나라에 곧
큰 인물이 태어날 증조라고 했다는데,
그래서 과연 '설총'이 태어났나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던 혼란한 시기에 생존하였던 원효

           (元曉 617 -686)는

           의상과 더불어 당나라에 유학하려 두차례(34세, 650년 및
           45세, 661년)나 시도하였으나 자신의 마음밖에 따로 법이 없음을
           깨닫고 혼자 되돌아와 보편적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왕성한
           저술,선교활동을 펴,그 사변력, 통찰력과 문장력에 대한 명성이 항간
           에 자자하였다. 그는 광대들이나 쓰는 무애박을 치고, 무애가를 부
           르며, 무애춤을 추며, 광대, 백정, 기생, 시정잡배, 몽매하고 늙은사람들
           사이를 방방곡곡 떠돌며 춤추고 노래하며 술마시고 거문고를 켜며
           무수한 대중에게 불법을 전하였다. 코흘리개 아이까지도 부처에 대해
           알게 되었다.

           김춘추의 둘째누이인 요석공주(瑤石公主)는  첫남편을 백제전투에서
           잃고 홀로 되었는데 불심이 깊었던 공주는 인격이 고매하고 화랑시절
           백제전투에도 참가했던 원효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원효는  667년 문무왕 7년경(51세) 부왕인 태종
           무열왕의 과부공주인 요석과 만나 얼마후 설총을 낳고 이후 스스로
           소성거사(小性居士, 小姓居士)라 하며 무애의 보살행을 행하였다 한다.

           결혼전 원효는 거리에서 다음과 같이 외쳤다고 한다.
            "누가 자루빠진 도끼를 주겠는가? 내가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깎으리라." 

           이를 귀부인을 얻어 어진 아들을 낳고 싶다는 원효의 결혼에의
           관심으로 보는 견해도 많지만 새 시대의 지평을 열어보이리라는
           사상사의 선언으로 보는 견해가 더 우세하다.
           소요산에 가면 원효가 과연 어떤 생각을 했는지를 알 수 있는 자취가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

 

소요산


그리운 님을 지척에 두고 들머리 이 곳에다 움막을 짓고 기거하면서 님을 기렸을,
님이 쳐다 볼 하늘, 달, 별, 구름, 바람까지도 가까운 곳에서
느껴보는 것만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을 삭여 내야만 했던 그 사랑을,
요석 공주의 사랑이 묻어나는 계곡, 앓던 사랑을 식혀주던
그, 바람이 분다. 더워서 헥헥대는 내게 아주 고맙고도 감미롭게~~~

 

중나리

 

산길을 오르다가 숲길에서 중나리도 만나고
야생화 사이트에서 익힌 앵초과의 까치수영도 만나보고....사진도 찍어보고...

 

까치수영

 

이정표를 보니 어느새 해발 440이다.

조금 더 욕심내어 오르다가 사잇길로 빠졌다. 어쩌면 더 늦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내가 혼자라는 사실이 문득 느껴졌다.
난 내 산행 페이스를 알았다. 토끼처럼 날쌔진 못해도 거북이 스타일이다.
혼자서 꾸벅 꾸벅 묵묵히 오른다. 가다가 지치면 쉬고,
바위 위에 앉아서 이런 저런 생각에도 빠져 보다가... 참 이상한 것은,  산 위에서 생각하면  뭐든지... 가슴이 넓어진다는 사실~~
"그래~~ 까지 꺼... 뭐 그다지 중요한 것이라고..."
아등바등 거리던 것이 산아래 세속적인 것으로 여겨져서 참 좋다.
하산할 때는 흘려버린 땀만큼 마음이 개운해져서 참 좋다.
몸과 마음이 가뿐해져서는 다시 새로운 힘이 솟아남을 느낀다.

 

이정표

 

짊어진 색이 축축했다 마르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발이 갑갑해서 양말도 벗어 버렸다.

1시쯤에 쉬엄쉬엄 출발한 산행이...산 위에서 혼자 아래를 내려다보며 김밥 먹고 물 마시고
또 쉬었다가 가고...또 산 너머 다른 산을 훔쳐보다가 내려오니 거지반 5시다.

 

등산로

 

집 부근에 다다라서 전화를 했더니, 강아지가 곧 죽겠단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무슨 죽음이든 지켜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죽는다는 것,
사람이든 미물이든..죽고 나면 내내 뇌리에 각인되어 한 번씩 떠오를 때마다
가슴을 찌르며 힘들게 했다.

이번엔 안보리라...  그러면 기억에서도 빨리 지워지고.. 시간이 지나면 쉬 잊혀지리라
다리가 아팠지만 괜히 혼자서 정처 없이 걸었다.
여기저기 꼬불꼬불 걸어서 거리가 얼마인지 모르겠으나 택시를 탔더라면 돈 만원 어치는
족히 걸었을 것 같은...

내가 생각해도 신기하다.

어디서 무슨 힘이 나서?

늦은 김에 더 늦게 가려고 냉면 한 그릇으로 저녁까지 때우고 집에 당도하니... 8시 30분이다.
예상 대로다.

근데..울 엄니 코끝이 빠알갛다.
아직 저녁, 전이라 신다. 민망해서 황급히 채려드렸으나... 안 드신단다. 아니 못 드시겠단다.
못된 나... 저 혼자 쏘옥 빠져서 기차 타고  저 혼자 산에 바람 쐬러 갔다 온,
아주 나쁜...

 

2004,6,24

 

 

동굴

 

[안내참고]

 

경원선

전철 1호선 의정부 역에 하차

의정부->신탄리
06:20부터 22:20분 까지 매시 20분 출발

가볼만한 곳: 한탄강역(한탄강유원지 도보 5분), 소요산역(소요산 도보 15분),
신탄리역(고대산 도보15분)

요금:의정부->신탄리 까지 1,200원

소요산역에는 매시 55분도착
소요산-> 의정부 매시 50분 출발

 

폭포

 

****

 
☆ 투표  1. 물에 빠져 죽을래 2. 불에 타 죽을래 3. 맞아 죽을래
이중 무언가 하나를 선택해야 한단다. 그리고 그 선택의 책임은 내게 있다고 한다.
선택을 포기해도, 다른 다수에게 선택된 하나에 대한 책임도 내게 있다고 한다. 이래 죽든, 저래 죽든, 내가 선택한 하나로 죽는 게 
덜 비참할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무효표가 되지 않을 만큼 흐리게 흐리게 찍으련다.(펌/유머치곤 좀은 서글픈,)
조개구이
투표 날, 남편이 집에 안온다기에 얼른 투표를 끝내고 위문공연차 스케줄을 꼬아 각별히 지내던 부부를 특별손님으로 정중하게 모시고 집을 나서서 중도에 남편을 픽업해서는 제부도로 향했다.  어차피 술을하게 되면 운전은 불가하니까~

남편끼리는 개띠동갑 그녀는 한참 아래 원숭이띠,그 집은 나이깨나 차이가 나는 집이다.그녀의 남편은 악당(악성당뇨)에다 근간에 온 뇌경색증으로 말도 어눌할 뿐더러 가끔 한번씩 접촉 안 되는 전구처럼 깜빡거린다. 우리들에겐 아마도 이번 여행이 마지막인 듯.. 좀 무리다 싶게 그는 뒷좌석에 아예 누워 버렸다. 출발 전 나는 인터넷으로 뒤져서 간조와 만조시간을 알아내고 서해안고속도로에서 빠져나가는 비봉IC와 306번 309번 국도를 익히고...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잘 찾아가긴 했는데...

제부도 근처에 다 왔지 싶은데서 차가 영 빠져주질 않는다. 으레 정체되는 곳에 보이는 뻥튀기 아저씨를 불러 뻥튀기를 하나 팔아드리며 물었다. "왜 이리 안가지요?" "아~~ 물길이 곧 트이면 곧 이예요 곧~~" 정말 그랬었다. 근데.. 잡지에서나 예전 tv에서 보던 제부도 풍경이 전혀 아니다. 바다로 난 길, 도로가 생겨 다리난간에 다닥다닥 붙은 굴 딱지만 없다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바닷길
네 사람 모두 제부도 길엔 초행이었다. 한 십 여년 전,두 집 가족이 여름휴가로 막 알려지기 시작한 제부도를 함께 가고자 화성군청에다 전화를 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그 당시 군청직원 응답이 너무 웃겼었다. "여기요? 오지 마세요. 뭐 볼 것 있다고... 개펄밖에 없어요." 그 군청직원 아마도 제부도 부근 땅은 한 자락도 차지 못했을 터라며 우린 배를 잡고 웃었다. 아무 것도 없다던...십 여년 전과는 달리...행락 인파로 길이 메이는 관광지로 변모해 있었다. 미리 알아둔 공영주차장에 차를 두고는 조개구이와 바지락 칼국수 집을 찾아 들었다.
바닷길

차일을 치기 위해 피켓을 박아둔..줄에 넘어질까 두려워 그녀의 남편을 보살피며 뒤 따르는 내 남편,

어둔한 그녀의 남편을 바라보며 "아..마지막 여행이구나"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한 이십 년 가까이 마치 친동기간처럼 지내온 우리 두 부부들...

약간의 취기가 오르자.. 그런 자리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나는 그 곳을 나왔고 바닷가에서 볼 수  있는 해당화와 분꽃나무를 렌즈에 담아보다가 ..일몰에 접어드는 하늘을 보다가...어느새 물이 많이 빠져나간 뻘을 보며 감기기운이 좀 있었지만...들어가고 싶었다. 멀리 보이는 드러난 작은 바위섬..꼭대기 그 위에 진달래가 한 무더기 을씨년스럽게 붉디 붉게 얹혀있었다.

 

바위섬

 

오늘은 밤늦게 까지 계속 간조상태란다,  물이 빠져 있으니.. 개펄에서 놀다가 좀 있다 가면 좋을 텐데... 남편은 걱정해주는 듯 "당신은 감기기운 있어서 안 된다"고 지레 못을 박는다.

난, 그 곳으로 가고싶은데...뭔가 맞지가 않다.

분위기만 형성되면 애주가가 되는 내 남편.....늘 운동부족이라 약만 올리지 말고 이럴 때..함께 동행해준다면 좋을 텐데, ....그냥...혼자 저기를 가버릴까?

아무도 운전 할 사람 없으니.... 그냥 혼자 가버려? 혼자 그런 갈등 속에..아쉬운 시간만 다 보내버렸다. 모두를 (낙조도 모르는 환자와 취객들)담아 싣고 나오는 길에 눈물겹도록 멋진 일몰의 장관이 막 시작되는데... 난, 어쩌지 못하고 지는 석양만 아쉬운 듯 뒤돌아 보며...보며,,,나와야 했다.

 

낙조, 서해안

 

제부도,
물 빠진 포장된 도로를 잘 달려서 갔다 나오니..당췌 실감이 나질 않는다.
다음엔 필히 기다렸다가 모세의 기적, 홍해처럼 갈라지는 바다를 두 눈으로 확인하리라~
............................

등산보다는 산행이 더 좋은 나,  과정을 더 즐기려는 나,
사실..나는 언제나 자극적인 것은 무엇이든 싫다.
온화, 부드러움...그런 것이 더 좋다.
남편도 그래서 선택한 사람이지만...딸도 하나 없는 고명아들인지라,
외려 언제나 보호받고 위로 받으려드는 그,  그 아내인 나는 매사가 무지 힘든다.
한 이태 전,  어느 날 자다가 다리에 쥐가 났다.
누워서..자고 있는 남편 모르게.. 끙끙대다 이내 괜찮아졌다.
분명 쥐는 아닌 것 같고 그 다음부턴 좀 힘이 들 때마다 한번씩 잊을라치면 그런 증세가 왔다.

그 주기는 짧아지고 통증은 조금씩 길어졌다.
아플 동안은 왼쪽 무릎이 오그라진 채 펴지질 않는 것이다.
지난 가을 대둔산 갈 때, 별 것 아니라도 준비하느라 신경이 쓰였는지...
새벽에 그런 증상이 왔다.
그 때서야 나는 비로소 그 게 탈골이 아닌가 생각되어졌다.
집을 나서면서 그제야  얘길 했더니.. 남편왈, "그러게 평소에 운동 좀 하지~"
단 한마디 뿐~막내 넘은 그래도 낫다,
"엄마, 그래서 산에는 어떻게 가신다고 그래요?"
그리고는..또 잊고 있었는데.. 4월 초순 연휴에 계주가 되어서 시골집에 가서 친목계를 하려고 모든 준비를 해서 떠나려는 날 아침... 5분간의 통증이 있었다.
일어나서 아침상을 차리려는데.. 등으로 아주 심한 담이 붙어서 수저도 들 수 없었다.

그날, 길 나서서 여섯시간의 운전에 난, 아픈 몸으로도 두 시간을 보태야만 했다.

친구들만 만나면 너무 좋아서 그런지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그를 위하여....

계속.. 일이 많아 좀 무리를 한데다가 4월17일 토요일 날은 아주 햇살이 좋아 ..이사 전 바빠서 그냥 넣어둔 돗자리 두 개를 꺼냈다.
하나를 씻고 두개 째 시작하고 얼마 안 있어 탈골이 되었다.
쪼그리고 앉아 탈골은 처음인지라... 아이들이 놀라 달려왔지만 아무에게도 손 못 대게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오른쪽 발은 쥐가 나고...아이들은 119를 부를까 했지만... 엉거주춤해서 아무렇게도 움직일 수 없는 자세~~아이들 말로 딱 15분간이라 한다.
어찌 어찌하다 보면 거짓말처럼 다리가 펴진다.
나는 너무 힘들어서 씻던 돗자리 비눗물 위에 누웠다.
정신을 차린 후에야 아이들 등쌀에 못 이겨 병원에 실려갔다.
옷은 대충 갈아입었지만 얼굴은 울어서 엉망이고...
"선생님.. 저, 습관성 고관절 탈골인 것 같아요"
"예 맞군요, 그러나 정밀 검사를 해야합니다. 왜 그런지.. 자주 그런 일이 있으면 수술도 해야합니다."
근육이완제, 매우 아픈 주사 한 대 맞고 왔는데도 담날 아침 여지없이 등에 그닥 반갑지도 않은 담이 붙는다.

그 사실을 늦게 안 남편, "그러게 진작에 살 좀 빼라니깐~~"
예약된 2차 진료 병원도 오늘 늦게 출발한데다.. 사고로 차가 막히는 바람에 오전 진료를 놓쳤더니...

이젠 그 박사님(고관절).. 학회가시고 2주 후에나 오신다네,
"으이그..한 보름동안 살살 아껴 쓸 수 밖에"
남편, 그래도 걱정은 되는지.. 여러 번 전화에, "더 큰 다른 병원에 가봐~"


정말 두 집 부부들이 서로 이렇게 안 어울릴 수가?
체구는 작지만 다부지고 건강하고 술을 좋아하는 그녀와 내 남편,
크지만 물컹한, 화투에 빠진 그녀의 남편과 컴퓨터에 빠진 나,
부부는 성격이 같으면 다툼이 많다고 했던가?

아니 아니.. 그러게~ 이 게, 더 잘 어울리는 것인가?

 

저요? 그냥 이케 살다 죽을래요.

 ㅎㅎ~ 

낙조

음악 (Secret Garden - prom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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