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루미늄의 변색은 사과. 레몬 껍질로

알루미늄 냄비는 가격이 싸고 열전도율이 높은 장점이 있는 반면에 물을 끓이거나 계란을 삶으면 갑자기 거게 변색이 되는 단점도 있다. 알루미늄 냄비가 검게 변하는 이유는 자체의 보호 피막 때문인데, 이 변색은 인체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보기에 좋지 않다. 이렇게 냄비가 변색됐을 때는 사과 껍질이나 레몬 껍질을 얇게 썰어 물과 함께 10분정도 삶으면 원래의 색깔로 돌아온다. 알루미늄은 식초나 염분에 약하고 부식의 원인이 되기 때문에 냄비째로 요리를 보존하는 것은 피하는 게 좋다.



맛없는 과일의 이용법

시큼한 사과나 달지 않은 복숭아 같은 과일을 무리하게 그대로 먹거나 또는 버리거나 할 필요가 없다. 잘게 썰어 냄비에 넣고 큰 숟갈로 두세 숟갈의 물과 설탕 약간을 넣고 살짝 삶는다. 이것을 빵에 얹어서 먹거나 디저트로 먹으면 별미일 것이다. 다만 쨈처럼 푹 곤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래 보관해 둘 수는 없다.


사과의 변색은 연한 소금물로 방지

손님을 접대하려고 사과를 미리 깎아 놓으면 색이 누렇게 변해 버린다. 이것은 사과 속에 들어 있는 페노라제라는 성분이 공기 속의 산소와 더불어 화학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인데, 이렇게 되면 사과 속의 비타민C의 양도 급격히 줄어들고 만다. 이때는 껍질을 벗긴 사과를 연한 소금물이나 식초를 몇 방울 떨어뜨린 물에 담갔다가 내놓는다. 그렇게 하면 산화작용을 막을 수 있어 색도 변하지 않고 비타민C의 손실도 막을 수 있다.



딸기는 소금물로 헹군다

딸기는 정성스레 씻는 사람이 있지만 딸기의 거죽이 뭉크러지기 쉽고 세제가 배어 들어 맛과 향을 잃게 된다. 딸기는 큰 그릇에 소금물을 붓고 꼭지를 따서 한번 헹구기만 하면 된다.



생선을 곱게 굽는 비결

생선을 구울 때는 자칫하면 새까맣게 탈 뿐만 아니라 뒤집을 때 석쇠에 붙은 살이 떨어지는 등 곱게 굽기라 쉽지 않다. 생선을 곱게 잘 구우려면 먼저 석쇠를 잘 달구고 생선을 굽기 전 식초를 조금 바르는 것이 비결이다. 식초는 석쇠의 금속과 생선의 단백질 사이의 반응력을 끊어 주기 때문이다.


비린내 없이 생선을 보관하려면...

아무리 신선한 생선이라도 손질하지 않으면 비린내가 난다.
구입 즉시 창자와 아가미등을 뺀 다음 미지근하게 흐르는 물에 빨리 피를 씻어내고 다시 바닷물보다 약간 엷은 소금물로 창자부분을 정성껏 씻는다.
소금물의 농도는 물3컵,소금 1큰술 정도.소금물은 살균 효과도 있고,틈새의 피까지 빼준다.특히 창자부분을 정성껏 씻는 것이 중요하다.
냉장보관을 하는 경우에는 손질할 때 배부분에 칼집을 넣지만, 냉동할 때는 조리할 때 칼집을 넣는다. 냉동의 경우,특히 물기를 잘 닦아야 한다.
물기를 종이 타올 등으로 잘 닦은 후,랩에 싸고 다시 폴리백에 넣어 냉동한다. 금방 먹는 생선도 손질법은 같다



위생적인 생선 말리기

햇볕에 생선을 말리려고 내놓으면 어느 틈인가 파리가 모여들어 비위생적일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생선을 말릴 때 생선 표면에 참기름을 바르고 말리면 파리가 기름을 싫어하므로 모여들지 않아 아주 위생적으로 말릴 수가 있습니다.
파리는 자기 발에 기름이 묻으면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므로 기름이 있는 곳에는 모여들지 않습니다.



김을 구울 때

김을 한 장식 구우려면 거친 면을 한번만 굽고, 두 장을 겹쳐 구울 때는 매끄러운 부분이 안으로 되도록 하여 구우면 향이 사라지지 않는다.

돼지고기 누리내는 커피로 없애

돼지고기를 요리할 때 누린내를 없앨 때 생강, 파 등을 주로 이용 하지만 커피를 한 스푼 정도 넣어 주는 것이 더 확실한 방법이다. 누린내를 없애고 향긋한 냄새까지 나게 만든다.


질긴 쇠고기를 연하게 요리하려면

질긴 쇠고기도 조금만 연구하면 연하고 맛있는 요리를 할 수가 있다. 고기를 요리하기 한두 시간 전에 식초를 씻어 두었다가 쓰는 것이다. 또 도마 위에 헝겊을 깔고 그 위에 고기를 올려놓은 다음 빈 병으로 한참 두들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러면 고기의 힘줄이 파괴되어 살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특히 구이로 하려고 할 때는 이 방법이 좋다. 또한 조리하기 2~3시간 전에 샐러드 기름을 뿌려 두면 딱딱한 고기가 부드러워진다.



육류의 보관 방법

고기는 잘게 썰면 썰수록 보존기간도 짧아진다. 얇게 자른 고기는 냉장실에서는 이틀정도, 냉동실에서는 두달 가량 보관할 수 있다. 진공상태로 포장된 제품은 뜯지 않은 채로 냉장실에 넣어두면 한 달까지는 이상이 없다.



육류의 변색은 식용유로 방지

쇠고기, 돼지고기 등의 육류는 공기와 접촉하면 변색되고 맛도 떨어진다. 이러한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고기표면에 식용유를 발라서 식품 포장지나 은박지에 싸서 냉장고에 넣어두는 것이 좋다.



쌀 보관 요령

종이포대로 포장된 쌀은 별도의 쌀독이나 쌀 통에 보관할 필요없이 그대로 보관해도 좋다. 그러나 비닐을 코팅한 종이나 은박지를 입힌 포장은 공기가 차단되어 부적당하다. 쌀의 수분이 날아가면 밥을 지었을 때 찰기가 없으므로 한번에 10일분 정도 구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쌀을 신선하게 보관하려면 사과를 넣어두고, 쌀벌레를 퇴치하려면 마늘을 넣어두면 효험이 있다. 쌀을 덜 때 물 묻은 그릇을 사용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쌀은 수분 함량이 수시로 변하면 변질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쌀은 밥을 지어보면 그 품질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더운 밥을 식힌 후 더울 때처럼 찰기와 윤기가 그대로 있으면 좋은 쌀이라 할 수 있다.


완두콩밥을 맛있게 지으려면

완두콩을 섞어 밥을 지을 때 더욱 맛있게 밥을 짓는 요령은 완두콩을 미리 까두지 말고 밥을 짓기 직전에 까서 넣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쌀을 절반쯤 안친 다음 거기에 완두콩을 넣고 다시 그 위에 쌀을 덮어 밥을 짓도록 하며 밥물은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이 잡도록 한다. 또 뜸을 들일 때는 평소보다 조금 더 시간을 들이도록 한다. 이렇게 하면 맛도 좋아질 뿐만 아니라 완두콩의 빛깔도 변하지 않아 먹음 직스럽다.


맛있는 국수의 국물맛은

국물의 맛을 제대로 내려면 멸치 뱃속에 있는 까만 똥을 빼고 물에 넣어 끓인 후 세 사람 분에 설탕 반 찻술, 술 반 찻술의 비율로 넣어 다시 끓이면 신기할 정도로 맛이 있는 국물이 된다.


김치를 시지 않게 하는 방법

계란, 조개 껍질을 이용하면 김치가 시는 것을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습니다. 김치 속에 군데군데 계란을 넣습니다. 계란 대신 계란 껍질을 깨끗한 가제에 싸서 넣어도 효과적입니다. 또한 김치가 시었을 때 조개 껍질을 넣으면 김치 맛을 손상시키지 않고 신맛을 없앨 수 있습니다. 조개 껍질을 깨끗이 씻어서 김치 속에 반나절 가량만 넣어 두면 됩니다.


야채는 신문지로 싸서 비닐 주머니에 넣어 보관

야채를 냉장고에 보관할 때는 먼저 야채를 신문지에 싼 다음 뿌리를 아래로 하여 비닐 주머니에 넣는다. 그러면 오랫동안 잎이 싱싱하게 살아있어 신선함을 잃지 않는다.


시금치는 빈혈에 좋습니다.

시금치 잎에는 철분이, 뿌리의 붉은 부분에는 조혈 성분인 코발트가 들어 있어서 위를 튼튼하게 하고 혈액 순환을 활발하게 하며 조혈작용을 하므로 빈혈을 치료합니다.
피가 부족하면 나른하고 어지럽습니다. 앉았다가 일어나면 현기증이 나고 귀가 울리며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찹니다.
계란, 탈지유, 기름기가 적은 생선, 두부, 콩, 김, 유부, 멸치, 간 등은 헤모글로빈의 생성을 높이는 식품입니다.



오이나 당근은 비타민을 파괴한다?

비타민을 섭취하기 위해 닥치는대로 야채를 먹어서는 안된다. 야채 중에는 오히려 다른 비타민을 파괴하는 성분을 포함하고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날 오이나 날 당근 같은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또한 샐러드를 만들 때도 오이나 당근은 식초에 담갔다가 쓰든지 살짝 데쳐서 써야 다른 야채에서 얻어지는 비타민이 파괴되지 않는다.


고구마를 빨리 맛있게 찌는 방법

제법 굵은 고구마를 통째로 찌는 데는 시간이 꽤 많이 걸린다. 전자레인지가 있다면 별 문제 없겠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엔 다시마를 조금 넣어 찌면 놀라울 정도로 짧은 시간에 맛있게 익혀진다. 다시마의 성분이 고구마를 한결 부드럽게 하는 데다 맛도 더해 주기 때문이다.


국이 오래도록 식지 않게 하려면?

손님을 초대했을 경우에는 국을 자주 데워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이럴 때에는 국을 끓일 때 녹말가루를 조금 풀면 국이 훨씬 오랫동안 식지 않는다. 왜냐하면 녹말가루로 인하여 국물이 끓는 온도 자체가 높아져 있는데다 그릇에 국을 퍼놓아도 그릇 안에서 대류작용이 잘 일어날 수 없어서 국이 잘 식지 않기 때문이다. 찌개를 끓일 때도 마찬가지이다.



카레를 데울 때는

먹다 남긴 카레를 여러 번 계속해서 데우면 뻑뻑해지는데 흔히 맹물을 넣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보다는 우유나 요구르트를 넣고 데우면 질척거리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카레 특유의 감칠맛이 그대로 살아 있어 맛을 더욱 돋우어 줍니다.
모처럼 만든 카레요리가 너무 짤 때는 물을 붓는 수가 있는데 그렇게 하면 카레의 제 맛을 살릴 수가 없습니다.
이럴 때 사과주스나 토마토 케첩을 넣으면 사과와 토마토의 단맛이 너무 짜게 된 카레의 짠맛을 중화시켜 주며 오히려 카레의 맛을 돋우어 줍니다.



먹다 남은 케이크, 꿀은 냉동실에 보관

생일 케이크 등이 먹다 남았을 때는 그 날 중으로 비닐 봉지에 넣어서 냉동시켜야 합니다. 이렇게 해두면 2,3일이 지나도 맛있게 먹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냉동시켜 둔 케이크는 먹기 한 시간쯤 전에 냉동실에서 꺼내 보통의 실내 온도에서 해동시켜 먹도록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요즘 케이크는 방부제가 많아 상하지 않더라도 수분이 말라서 맛있게 먹을 수가 없습니다.
꿀을 다시 쓰려고 꺼내 보면 겉 표면이 하얗게 되어 있거나 당분이 떨어져 있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어떻게 보관하면 이런 일을 방지할 수 있을까? 꿀을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냉동실에 보관합니다. 변해서 굳어지거나 엉키지 않고 오히려 빨리 녹일 수 있고 신선한 꿀을 먹을 수 있습니다.

밤에 라면먹고도 얼굴 안 붓는 방법

밤에 라면을 먹고 싶어도 다음 날 얼굴이 팅팅 부을까봐 섣불리 먹을 수가 없잖아요.그런데 라면을 먹고도 얼굴 안 붓는 방법이 있답니다. 아주 간단해요. 라면을 맛있게 먹은 후 남은 국물에 우유를 1/2컵 정도 부어서 섞어 마시는 거에요. 관광버스 기사아저씨들도 즐겨 쓰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마늘 입냄새 제거엔 녹차가 최고

마늘 냄새의 원인은 아리나제라는 효소이다. 마늘을 먹은 뒤 우유를 마시면, 단백질이 이 효소와 결합해서 냄새를 없앤다고 말하지만 효과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차의 잎을 입 안에 넣고 잘게 씹고, 나중에 양치질을 하는 편이 훨씬 효과적이다. 왜냐하면, 녹차 안에는 후라보노라이드라는 물질이 있는데 이것이 마늘 냄새를 흡수해 주기 때문이다.


옷에 립스틱이 묻었을 때

옷에 립스틱자국이 묻으면 의심을 받을 뿐만 아니라 잘 지워지지도 않습니다. 이럴 때는 물파스로 지우면 깨끗하게 지워집니다. 문제는 물파스 냄새가 심하니 많이는 바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오래된 커피의 맛을 되살리면

오래된 커피를 버리기 전에 조금 약한 불에 프라이팬을 놓고 볶는다. 향이 없어진 커피도 맛있는 커피로 되살아 난다.


보리차에 소금을 넣으면 향기가 일품

끓는 물에 보리를 넣고 소량의 소금을 넣는다. 그러면 향기가 좋아지며 맛도 부드러워 진다. 이렇게 10분쯤 끓이고 주전자체 물에 담구어 식히도록 한다.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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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낙엽낙엽봄봄.........................

(1) 작은새 (2) 별 리 크라식 : 슈베르트 의 (1) 로자문테 (2) 살베 레지나 D. 6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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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강















      청송민속박물관의 솟대/네이버




      청송 가는 길1


      정다운




      간밤엔 잠을 설쳤다.

      행여 깊은 잠으로 새벽에 일어나지 못하여 산행에 차질이 생길까봐서.....

      소파에서 자는 둥 마는 둥 겨울산행이라 조금은 여러 겹으로 중무장을 했다 .

      집합장소는 서울, 시간은 여섯 시, 조금 일찍 도착 선두 차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늘상 나는 1호 차를 탄다.



      새벽공기는 차가웠고 선두 차를 운전하시는 기사님은

      예정보다도 훨씬 늦은 여섯 시 15분에 도착

      나는 서늘한 아침공기에 30여분을 옹송거리며 기다리다 차에 올랐다.

      출발 6시 25분.



      새로운 기대감에 눈은 더욱 또렷해지고 여명이 밝아오는 도심의 아침은

      붉은 구름을 안고 먼 곳에서부터 서서히 밝아온다.

      한강 둔치..부지런한 이들은 이 신 새벽에 건강을 위하여 달리기를 하고

      강가엔 하얀 갈대들이 바람결에 일렁이며 새로운 날을 맞이한다.

      하늘도 맑고 날씨도 쾌청



      차내 공기가 서서히 따스해질 무렵 나는 곤한 아침잠으로 빠져들었다.

      얼마쯤 잤을까...

      두 번째 휴게소인 단양휴게소에서 눈이 떠졌다.



      중앙고속도로로 진입하면서 아름다운 단양의 높은 산들의 나무들은

      거추장스러운 옷들을 훨훨 벗어버리고 빈 몸으로 가볍게 서있다.

      산은 빈 듯 하면서도 왠지 모를 충만함으로 가득했다.

      난 겨울 산을 좋아한다.

      가감 없이 자신의 나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모습이 좋다.



      빈 들판은 하얀 무서리가 눈처럼 희고 맑게 반짝였다.

      차는 쉬지 않고 계속 달렸다................





      청송 가는 길2




      안동을 지났다.

      여기서부터는 국도로 진입했다.

      청송.... 청송 가는 길은 안동부터는 국도를 타고 간다.

      가을걷이가 끝난 빈 들판엔 아직 겨울 김장을 위하여

      남겨둔 배추들이 밭에서 농부의 손길을 기다리며 오도카니 앉아있다.

      통통하게 속이 꽉 찬 부른 배를 지푸라기에 매인 채...



      얼마쯤 갔을까....

      들판에 두 팔을 넓게 펼치고 하늘 향해 서있는 사과밭들이 길 양 켠에 즐비하게 그득하다.

      이제는 온몸 가득하게 매어 달려있던 분신들을 수고한 농부님들에게 다 내어주고

      가벼운 몸으로 고단한 몸을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마지막 남겨 논 까치를 위한 두어 알의 분신과 함께 넉넉한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산길로 접어들면서 나지막한 산과 높은 산등성이에

      그리고 산아래 에 가득한 사과밭 봄이 오면 저 산야에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하얀 사과 꽃들이 온산과 골짜기에 가득하리라.

      얼마나 아름다운 장관일는지...



      강원도 같은 산길은 험했다.

      굽이굽이 돌아가며 차는 산 속으로 들어간다.

      높은 산을 넘자 내리막길엔 계곡 물을 막아놓은 작은 호수와 천수답과

      고산배추밭이 보였고 햇빛은 너무도 포근하고 따스하여 마치 봄날 같았다 .



      작은 산을 하나 더 넘으니 작은 터널이 나온다.

      청송터널...

      이윽고 나타난 조용하고 평화로운 작으마한 산골읍내 청송읍..

      그리고 우린 다시 마지막 종착지인 주왕산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주왕산과 대전사/네이버



      아...주왕산!




      우리의 종착지는 주왕산이었다.

      우리는 아름다우나 험한 산길을 굽이굽이 넘어 마침내 먼길을 왔다...

      주왕산 주차장에서 첫발을 내디디고 바라본 그 산은 정말 멋졌다 .

      바위산...매끄러운 회색 빛 거대한 암산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위풍당당하게

      하늘을 향해 솟아 있었다



      혼잡하지 않은 주차장과 등산객을 위한 진입로의 주점과 음식점들

      투박하고 정겨운 어느 아낙의 인사말...

      아직은 구수한 인심을 잃지 않은 청송의 인심이 고마웠다.



      특이한 것은 대전사.....

      오래된 고찰이 산 중턱에 있지 아니하고 입구를 막 들어서니 보였다.

      그 이유를 알았다.

      대웅전인 보광전의 등뒤에 기암인 연화봉이라는 아름다운 기암연봉이 있었고

      그리고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들이 불사가 있기에 충분한 좋은 자리였다.



      입구에서부터 시작된 맑은 계곡과 나무와 바위들은

      나의 입에서 등산객들의 입에서 연이어 탄성을 자아냈다.

      바위들은 특이했다

      붉은 바위, 짙은 회색 빛, 옅은 회색 빛, 검은 바위, 흰 바위,

      그리고 파스텔 톤의 은은한 색채의 바위...... 문양이 있는 아름다운 바위.

      울퉁불퉁한 모양, 매끄러운 고운 모양, 심한 균열로 다양한 형채의 모양,

      거대한 바위 ,작은 바위...



      고운 조약돌로 이루어진 계곡

      계곡은 투명하고 맑은 옥색의 물빛을 띄우며 조용하게 흐르고 있었다





      주왕산2




      아름다운 계곡을 따라 30여분....거대한 바위가 높은 산허리쯤에

      깎아지른 듯 급경사를 이루며 하늘에 걸쳐 있다.

      이름하여 급수대

      그 아래에는 주왕굴 입구가 나무 사이로 언뜻 보인다.

      주왕굴은 마장군의 군사를 피하여 주왕이 숨어살았다는 굴

      그 아래 낭떠러지의 계곡 물을 올려 먹었다 하여 그곳을 급수대라고 한다 하였다.



      계곡을 돌아드니 연이어 보이는 두개의 암산 하나는 학소대고 또 하나는 시루봉이다.

      학소대는 오랜 옛날에 그 바위산에서 청학과 백학이 의좋게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

      지금은 상서로운 까마귀들이 그 수십 길 천혜의 절벽 위를 제 집 인양 놀이터인양

      유유자적 노닐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시루봉의 얼굴이 보였다.

      측면에서 바라본 그 거대한 바위는 흡사 사람의 얼굴을 닮았다.

      정면의 모습은 떡을 찌는 시루를 닮았다 하여 시루봉

      사실 그 아래에서 불을 때면 실지로도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는

      그 거대한 바위를 연기가 감싸안고 피어오른다고 한다.



      그리고 천혜의 바위산이 요새를 이룬 듯

      신선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문인 듯이 바위산과 바위산 사이로 길이 나있다.

      협곡사이 그 좁은 길 안쪽은 계곡 물이 바위를 돌아 하얀 포말을 이루며

      바위에 소를 만들고 아름다운 폭포를 만들어 흐르고 있었다.

      폭포수가 떨어지는 앞쪽은 작은 모래밭과 자갈밭이 형성되어 있다.



      제1폭포이다.....

      천년이끼가 두텁게 끼인 바위산 바위틈에 자생하는 구부러진 나무들.

      바람마저도 숨을 죽이는 바위산을 올라서니 그 위엔 아름다운 평평한 계곡이다.

      들판이나 강가에서나 봄직한 그런 나지막한 계곡

      흐르는 물은 고요했고 낮은 나무들이 그 물가에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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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왕산/네이버




      주왕산 3



      주왕산은 신비롭다.

      우리나라 어느 산에서도 만날 수 없는 바위와 계곡, 독특한 산세와 산형..

      약 4키로의 긴 계곡을 끼고 걷노라면 마치 중국 무술영화에나 나옴직한

      엄청난 제1폭포의 협곡과 부드러우나 높이가 엄청나서 위압적인 힘을 느끼게 하는

      기암적벽이 병풍처럼 둘러 쌓인 천하의 절경을 만날 수 있다.

      변화무쌍한 암석들....기기묘묘한 풍광은

      자연이 만들어 놓은 비경과 신에 대한 외경을 절로 느껴지게 하는 명산이었다.



      태백산맥의 지맥 수많은 암봉과 깊고 수려한 계곡

      그리고 옷을 벗은 나목들 사이에 독야청청 푸른 청송들

      그것은 한 폭은 거대한 동양화였으며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자연의 도도함이었다.






      주왕산 4




      산길은 그리 험하지 않았다.

      길은 돌길이라 울퉁불퉁 했지만 길은 가파르지 않았다.

      오르막 산길에서 나는 길가에 즐비한 나지막한 수달래 무리들을 보았다.

      봄이면 이 산에만 지천으로 피어난다는 진달래를 닮은 꽃

      수달래...이름도 예쁜 꽃.. 꽃은 보지 못했지만 반가웠다.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 갈 때마다 변화무쌍한 절경 앞에

      숙연해지는 마음과 경이로움 바위산 나목들 사이에 우뚝우뚝 서있는

      푸른 소나무들은 푸른 하늘아래 더없이 청정했다.

      절개와 소신을 꺾지 않는 군자의 모습이랄까...

      위풍당당한 기암연봉과 푸르고 곧은 소나무들 물감을 풀은 듯한 로얄블루의 하늘빛

      청송은 이름처럼 아름다운 곳이었다.



      산길을 오르다 우리는 다시 제3의 폭포를 만났다.

      높은 산 정상에서 조용하지만 힘있게 흐르다 수십 길 아래로 물보라를 일으키며

      떨어지는 폭포수는 쑥빛 깊은 소로 잠수한다.

      여름의 폭포와는 대조를 이룬다.

      군자의 도량처럼 조용하고 심연 깊은 곳으로 침잠하다.

      조용히 흘러가는 폭포수....







      내원마을/네이버





      내원마을..




      제3폭포에서 30여분 끊기지 않는 계곡을 따라 산허리를 몇 번 돌아가니

      길은 돌길에서 질퍽한 흙길로 바뀐다.

      평평한 분지다 산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조용히 흐르는 계곡 물가에 너른 분지가 보인다.

      심산유곡...소나무 숲과 갈대밭 사이를 지나니 그곳에 작은 분지마을

      화전민들이 살았음직한 작은 마을..



      9가구 15명이 산다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내원마을이다.

      가장 큰 건물이 오래 전에 세워진 분교 학교 안에는 졸업생들의 사진과 난로.. 풍금도 있었다.

      이제는 배우는 학생이 없어 폐교이지만 소나무 껍질로 만든 아름다운 분교였다.

      등산객들에게 민박과 식당업, 약초를 캐어 팔아 근근히 살아가지만

      그분들의 자유스러움이 부러웠다.



      징검다리와 함석집..

      소나무장작...그리고 광솔의 향내음...소나무 장작 안에서 처음 본 굼벵이..

      낙엽송 타는 냄새, 다래순 나물, 쌉싸름한 도토리. 감칠맛 나는 시원한 동동주..

      무지랭이 배추로 담근 시큼한 김치의 맛...양철로 만든 바람개비..

      옥수수찐빵...맑은 약수...뒷다리가 하나 없는 커다란 순둥이 흰 개...



      내원마을에서 내가 만난 이름들이다.

      지금도 내 눈과 마음속에 가득히 그려지는

      청송....

      그리고 주왕산...



      하산 길...

      학소대의 기암적벽에 유유자적 나르던 까마귀들.

      시루봉 꼭대기 늙은 고사목 위에

      독수리처럼 의연한 모습 멋진 포즈로 앉아있던 까마귀들.



      그곳은 오염되지 않은 우리 땅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아름다운 조국의 금수강산이었다.










      상철이네 집


      내칭구의 집 마현화랑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서 두물머리에 이르러면
        제 놈이야 흉칙하지만 그래도 기특하게

        제 뒤로는 제법 그럴싸한 물덤벙을 하나 만들어 놓고 있는데
        알량한 서울사람들 별볼일 없이 왔다 가곤하는 곳. 팔당댐 팔당호.

        그 호반에 썩쭈구리한 화랑 하나 열어 놓고 그림도 팔아묵고
        커피도 팔아 밥바까 묵는 중학교 동창늠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친굴 "어이 제사장!"카는데

        "야! 내가 제가라 할 말은 없는데 어쩨 로마시대극에 나오는 늠 같다야~"

        "그래 알서 제사장, 아니.. 제관장!!ㅎㅎㅎ"

        이 친구는 일견 무슨 산적 졸개 같이 생겼거나,나뭇꾼 내지는
        옛날 지겟꾼 같이 생겼다 아닙니까...하긴 뭐 대학나온 멀쩡한 놈이
        대청봉 산장에 지게짐 져주고 한 세월 보냈으니..

        녀석이 생긴거완 다르게 멀쩡한 미대 나와 롯데미술관장 하던 늠이지요.
        하는 짓거리도 등산에 낚시에 바둑에 그림에 음악에 ..
        돈 버는 거 빼곤 다 잘하는데 요즘은 돈에도 슬 눈뜨는 거 가토요..ㅎㅎ

        사진에 나오는 곳은 팔당호반 다산기념관 모랭이 돌아 능내역 가는 덴데
        녀석이 대학졸업도 안하고 장가드는 대신으로
        낚시한다며 이미 30년 전에 자리 잡은 곳이랍니다.

        아 이 친구집엔 언제가도 좋지만 마로니에 잎사귀가 서걱대는
        가을에라도 들릴라치면 야외 스크린에 프로젝터로 영상음악을 틀어주는데

        틀었다하면 뭔 말짱 오페라의 무신 아리아 아니면 취급을 안하지요.
        무식하게 생긴 늠이...쩝~
        하긴, 그 집 인수하기 전엔 마현화랑이 아니라 고전음악실였지요.

        지금이사 많이들 듣게 돼 다소 식상한 면도 있지만
        그 왜 있잖아요.. 오카리나라고..

        한 3,4년 전에만 해도 그걸 가끔 LDP로 틀었지요.
        야외스크린에 당시로는 귀하던 프로젝터로 틀어주면

        소설가 이외수 말총머리 기름기 빠진 꺼칠한 안면
        영판 그 양반 상호 닮은 멀쩡한 왜사람 하나 나와 불러재끼던 오카리나

        '대 황하'든가 하는곡. 장중하나 슬펐던 가락~
        3 천년을 관류하는 슬픈 흙피리 소리가 애븝 괴한지요이..


        듣고 계시죠? 시방..
        녜~에,,,좋다는 분은 좋다실꼬예요..ㅎㅎ


        눈이 온 날 아님, 겨울비라도 추적추적 내리는 날
        이 친구집 마당귀에 앉아 호반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엄청 샌티해져요.

        제관장 말로는 쌩띠몽딸 해진다고 카데요..
        오죽하면 방방 뜨는 이 몸이 사흘을 죽치며 있다 오기도 했을까요..

        시간나시면 함 가보셔요,
        가셔서 제 말씀하고, 본인 돈 내고 커피 사드셔요,ㅋㅋㅋ


        *오카리나: 석기시대부터 존재해 아시아, 남미, 유럽, 아프리카 등
        모든 지역에 분포하는 점토나 도자기로 만든 취주 악기

        *들리는 곡은 소지로의 오카리노 연주로 듣는 '대황하'




      요즘 아이들. 1.

      축제가 끝났다.
      1년 365일,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하라는 소리만 듣던 아이들이라
      비록 이틀 동안의 축제였지만 그 준비는 대단했다.

      1학년은 합창경연대회를 했고
      우리 학년에서는 반별 발표회가 있었다.

      1학년들도 참 대단했다.
      합창대회인데도 간단한 의상을 저희들이 직접 마름질하여 해 입고는
      어른 뺨치게 지휘도 잘 했지만 입,퇴장 하나에까지 온갖 신경을 다 썼다.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문제는 우리반이었다.
      원래 내가 아이들을 닦달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 영향도 없진 않겠지만

      별난 개성으로 학교에서 소문난 놈들이 좀 있어
      우리반은 늘 자유분방하고 시끄럽다고 정평이 나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살아있다고 좋게 보시는 선생님들도 계셨다.

      하여튼, 다른 반들은 모두 댄스를 준비했는데
      바로 옆반인 3반과 우리반은 연극을 준비했다.

      정말 열심히 준비했고 내가 봐도 참 잘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옆반에게 근소한 점수 차이로 지고 말았다.

      옆반에 진 것도 진 것이었지만 아이들이 화가 난 건
      대본짜기에, 의상마련에, 무대배경그리기에, 대사외기 등등
      그렇게 여러 가지 준비를 많이 한 연극보다
      단순한 댄스에 후한 점수를 준 선생님들 때문이었다.

      게다가 우리반이 옆반에게 진 이유는
      마지막에 곁들인 댄스가 노출이 심했기 때문이었다는 뒷소문이 있었다.
      어쨌든, 첫날은 그렇게 지나갔다.


      이튿날, 체육대회.
      4종목을 했는데 불행하게도 3종목은 초반에 다 탈락하고 말았다.
      내가 지기만 하면 국물도 없다고 엄포까지 놓았던 줄다리기마저 지고 말았다.

      마지막 한 종목은 열 명이 함께 넘는 '긴줄넘기'였다.
      1차 시도에 42번을 넘었다.

      1등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아이들도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2차 시도에 한 놈이 엉뚱한 곳을 보고 있다가 '시작' 소리를 듣지 못했다.
      1번도 넘지 못하고 줄이 걸리고 말았다.

      아이들은 미처 준비가 안 되었으니 다시 하게 해달라고 애원했지만
      심판을 보신 선생님은 냉정했다.
      다른 심판관의 눈도 있고 어디까지나 시합은 시합이라는 거다.
      나도 같이 사정을 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사실 나도 많이 서운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한두 놈이 울면서 교실로 들어가기 시작하더니
      잠시 뒤엔 모든 아이들이 그만 다 교실로 들어가고 말았다.
      나까지 운동장에 서 있지 말고 들어오라고 마구 잡아당겼다.

      가 보니 모두가 울고 있었다.
      좋은 말로 아무리 타일러도 소용이 없었다.

      할 수 없어 다시 교무실로 내려왔더니
      심판을 보신 젊은 최선생님이 아무래도 자기가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교실에 가 보시겠다고 했다.

      한 10여 분이 지나도 내려오지 않기에 교실에 올라가 봤더니
      최선생님은 계속해서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계셨다.
      내가 미안할 정도였다.

      그래도 아이들은 쉽게 화가 풀리지 않았고 계속 원망의 말만 쏘아붙였다.
      내가 그만하면 됐으니까 내려가시라고 권했다.
      선생님은 할 수 없이 그냥 내려가셨다.

      그러던 중에
      최선생님을 좋아하던 아이 하나가 선생님에게 손전화로
      '죄송하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최선생님에게서 바로 답메시지가 왔다.
      '난 너희들을 사랑한다. 정말 미안하다.'고...

      잠시 뒤, 미리 마음먹고 있기도 했었지만
      아이들의 화를 풀기도 할 겸 내가 점심으로 자장면을 쏘겠다고 했다.
      쉽게 풀어질 것 같지 않던 아이들이
      그 소리에 한두 놈씩 풀어지며 웃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 아이가
      "야, 우리 최선생님도 모시고 자장면 같이 먹자."고 제안을 했고
      아이들은 '그래, 그러자' 하고 찬성을 했고 교무실로 선생님을 모시러 갔다.

      하지만 먼 곳에서 통근을 하시는 최선생님은
      토요일이라 이미 가고 안 계셨다.

      한 아이가 다시 제안을 했다.
      "야, 우리 모두 선생님에게 메시지를 보내자!"

      난리가 났다.
      전화기가 없는 아이들도 다른 아이의 것을 빌려 메시지를 보냈다.
      최선생님에게 몹시 미안했던 나도 그제서야 웃을 수 있었다.

      잠시 뒤,
      "야, 메시지 왔다!"
      "나도 왔어! 우릴 사랑하신대!"
      "어, 나도 왔네! 우리반이 좋다고 하시네!"

      올해의 축제와 체육대회는
      나도, 우리반 아이들도,
      또 최선생님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정가네







         

          동백 너의 열정에 산다




          글 / 박종영


          꿈이 영글때마다 별빛이 찾아와
          꽃술에 수를 놓았었지.

          동박새가 몰래 날아와
          깊숙이 넣은 꿀샘은
          조매화(鳥媒花)
          네 웃음으로 자지러지고.

          청록의 그늘이 싫은 봄나비가 탐내어
          긴 더듬이로 얼굴을 문지르네
          하얀 것보다
          붉은색이 고운 동백의 열정
          꽃댕기 사주라던
          그대가 얼굴 붉히던 날.

          툭툭 눈물처럼 지는 네꽃잎 주어모아
          목에 걸어주었지.

          추억이 그려진다 얼굴에
          다소곳이 입술 내미는 동백꽃 한송이.




          2001. 11. 15.
          music : Helene / le miracle de la mour







      홍시곶감








        맛있는 홍시곶감~



        옛말에 어린이가 울 때
        곶감 줄께하면 울음을 그쳤다고 할 만큼
        곶감은 맛이있는 것이리라.

        정말 옛날 어릴 때 시골에서 할아버지가 감 몇 개를 깎아 처마에 매달아 두시고,
        요렇게하면 곶감이 된다고 하셨던 기억이 있으며~,
        그 후
        하얗게 분말로 씌워진 부드러운 곳감을 씹으면 향긋한 감내와 함께
        단맛이 어울러져서 싶을수록 깊은 맛이 느낄 때마다 그 기억이 새롭다.

        곶감은 그냥 먹어도 좋으나, 겨울에 시원한 수정과 속에 담궈져
        적당히 부드러워진 살이 혀에 녹듯하는 달콤 하면서도 계피향과
        어울리는 향과 맛은 일품이며 갈증을 씻어주는 효과가 있다.

        이제 가을 곶감이 이미 시작되는 계절이된 것 같다.
        그러나, 최근 중국 곳감이 들어와서,
        모양만 비슷했지 고유의 옛 맛을 내지 못하고,
        일부 음식점에서도 식사후 수정과라고 내주나 그 맛이 너무
        원래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깝기만 하다.

        요즘 애들에게는 곶감이나 수정과는 맛있는 음식이라는 생각 안하고 있다.
        이는 다른 맛있는 음식이 많이 나와서라기 보다는 이름만 우리 전통 음식이라고 하면서,
        너무 상업적으로 성의없이 엉터리로 만들어 지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大長今 이란 연속극을 통해 우리 전통 음식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고급스럽고 맛있다는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지난 주말 대둔산 모임을 통해, 농지기님의 농장을 방문했다가
        난생, 처음으로 "홍시곶감"이란 걸 먹어 보았는데~

        곶감 외부는 말랐으나, 내부는 홍시 상태로서 곶감과 홍시의 두 가지
        맛이 절묘하게 조화되어 단맛을 내고있었다.
        아~ 곶감이 이렇게 맛있을수도 있구나! 하는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설명을 들어보니. 이제 까지는 유통 및 보관 운송상의 문제로 이러한
        맛있는 상태로는 출하를 못했으나, 최근 포장 및 유통 기술의 발달로
        이제 가능하다고 한다.

        중국 등 저가의 수입 농산물이 판치는 어려운 시기에도,
        아직 우리 농촌을 지키시며, 기술적인 발전과 유통개선 및 경영 현대화,
        무공해 식품 개발등을 통해 경쟁력 확보를 위해 힘쓰시는 분들이 계신 것에 마음 든든함을 느꼈다.

        금주말쯤 부터야 출하가 가능하다 하시어, 택배 발송을 부탁드리고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어 드렸는데,
        요즘 그 택배가 언제나 도착하려나 하며~ 기다려진다.



        글/데니/ 11월11일:20:28.









        꼬리말쓰기




        농지기/ 감사합니다 넘 칭창을 해 주시니 몸둘 곳이 없네요..

        연 4일 비가 온 관계로 며칠 더 바람 좀 쏘여 18일에 발송하여 19일에 받으시도록 하겠읍니다.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내내 평안하소서 [23:08:42]




        黃眞伊/ 바닥에 드러누워서 찍은 홍시곶감 사진에다가... 데니님 글 부쳐서 열린칼럼으로

        갖고 갈랍니다. 농지기님~~ 정말... 꿀맛이였어요... [23:17:04]




        여백/ 꼴깍~~!!.. [23:19:22]






















      대학을 졸업하면서 나는 좀 이른 결혼을 했다.
      결혼이 급했던건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고
      결혼 다음 해 부터 연년생으로 두 아이를 낳고 키우다 한숨 돌리게 되던 어느날,
      갑자기 공부가 더 하고 싶다는 너무도 강한 욕망에 시달리기 시작했구
      해야겠다는 목표가 정해지면 그것이 무엇이던 지체할 수 없는 성격때문에
      큰아이가 다섯살, 작은아이 네살 되던 해 나는 대학원이라는 곳에 등록을 했다.

      그때 남편은 고등학교 평교사였고 남편의 월급만으로 내 학비 부담까지는
      좀 벅찬 생활이기에 당연히 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음대 지망생 몇명을 개인지도 하면서 호텔 커피숖과 고급 레스토랑에
      재즈 피아니스트로 일을 했었던 것.

      30대 초반의 아이 둘을 가진 유부녀였으나 대학원생이라는 신분이 아무런 의심없이
      나를 20대 후반쯤의 처녀로 믿어주게 했던 것같다.

      물론 남편은 아직까지도 그 시절 내가 그런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다.
      단지 학생들의 개인지도만을 한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뿐...
      (이 사실은 아마 죽을 때 쯤 털어 놓을까? 말까??^^)

      어쨌건 그렇게 1년반 정도를 지내면서 그곳 종사자들이
      슬그머니 내게 붙여준 별명이 하나 있었다.

      여자 종업원들이야 자연스레 언니, 언니, 하면서 호칭에 별 무리가 없었지만
      남자 웨이터들에게는 호칭이 좀 애매했던 모양이었다.
      나이들이 거의 스물두 셋, 많아야 스물다섯 정도이니 당연히 내가 연배였고
      그렇다고 누나라고 부르기는 어색하고 미스 아무개라는 호칭으로는
      내 분위기라 아니라고 했다.(무슨 분위기를 말하는지는 잘 몰랐지만
      아마 미스라는 호칭이 직업 여성들에게 쓰이는 호칭쯤으로 해석되어서가 아닌가 싶었다)
      선생님은 너무 거리감이 있고..... 어쩌구 쑥덕거리기에
      "그냥 할매라고 불러라" 한마디 했더니 슬그머니 그게 별명이 되어버렸고
      별명이 호칭처럼 되어 버렸었다.

      격일로 저녁 7시30분부터 30분 간격으로 두 타임,
      그러니까 중간에 30분 쉬는 시간이 있었고 내게는 쉬는 방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첫 타임 연주 끝내고 방으로 들어오면 테이블 위에는 언제나 약간의 간식거리가
      마련되어 있었고 때로 몇 통씩의 팬레터가 있을 때도 있었다.
      고백컨데 데이트 신청도 부지기수였고......^^

      '데이트도 안하고 시집은 언제 가요? ' 라는 질문을 그 얼마나 많이 받았었던가..
      그리고 유혹들은 또 얼마나 많았었는지.........ㅎㅎㅎ

      연탄불이 꺼지지나 않았을까 불안해 하면서 내일 아침 식단을 걱정해야하는,
      아이가 둘이나 있는 유부녀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은 채
      마치는 시간이 무섭게 '땡'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가 그들 유흥업소에
      종사하는 사람들 눈에는 대단히 단정한 사람으로 보였던 모양이었다.

      불우한 환경속에서 정말 불우하게 생활하던 그 사람들의 눈에
      자신들과는 전혀 별개의 세상에 살고 있을거라는 작은 환상을 갖게 해 주면서
      그러나 정말은 전혀 별거 아니던 나는 할매라는 호칭에 애정을 담아 불러주던
      그 마음들이 어쩌다 가끔은 그리워지기도 한다.

      이렇게 가을이 깊어가는 그런 날...........
      지금은 그들도 중년의 나이로 아름다운 삶을 꾸리고 있을거라 생각하면서....

      혹시 계십니까??

      1980년대 초,
      최상급으로 꼽히던 부산 대아호텔 커피숖에서 피아노 치던 그 여인을 알고 계시는 분??

      그게 바로 저 였답니다... ^___^


      2003.11.4. sesil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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