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 높은 산정에서 찍은 사진같아 보이지만 적상산(1038m)의 거의 정상에 가까운 880m지점에 양수 발전소, 그 위의 전망대에서 찍은 사진이다.

그 위치에서 느껴지는 경이로움과 짙은 녹음에 둘러싸인 주변의 아름다움, 호수가에 설치된 전망대에서 첩첩이 늘어 선 산 봉우리와 능선들을 바라보노라면 우리나라 5대 비경 중 하나인 적상산의 모습을 한 눈에 둘러 볼 수가 있다.

가슴 속까지 탁 트이는 시원함을 주므로  각광을 받으며 관광지의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떠 올랐다.

 그런 양수발전소 전망탑위에서 찍었으니 그런들 뭐 어떠랴 눈 앞에 쫘악 펼쳐진 선과 그 사이로 난 길과 마을들...

 

 

점심을 먹고 적상산을 들어섰다 고불고불 산길에 겨우 버스가 겨우 지그재그로 올라간다. 그래서 위험한 이 길은  늦가을에서 이른 봄까지는 폐쇄란다.

엄청난 돌을  쌓아 만든 물막이 댐이 보이고  한가득 시퍼런 물이 고여있다.

적상호(赤裳湖)라고 명명된 인공 산정호수다. 

 

 

몇 살때인지 모르겠다. (중고등학생때 단체관람이었지 싶다)

영화를 보았다 신영균과 최은희 주연으로 두 사람은 마을에서 선각자적인 역활을 하는 젊은이들이었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굴을 뚫어 물길을 끌어 들여야 보다 나은 삶을 살수 있다는 것... 그 것 밖에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힘을 모아 굴을 뚫는 과정의 모든 역경과 반대를 무릅쓰고 드디어 마지막  굴이 뚫리는 날....쏟아지는 물줄기에 얼싸안고 부둥켜 울며 즐거워하는 동네주민들....

바로 그 영화의 실제 장소이지 그 실황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다.

그 때 어린 소견으로는 그냥...물은 생명처럼 필요한 것이니...농사든 뭐든 필요한 것이다 라고만 막연히 생각했던가보다.

 

산정호수에 물막이 댐 공사를 하고  적상산 밑으로 흐르는 상곡천의 물을 끌어올려 인공호수를 만든 후에 수직으로 도수(導水)터널을 뚫어 그 밑에 지하발전소를 설치하였다.그  속으로 물길을 만들어 낙차를 시도 전기를 얻어낸단다.

끌어올린 물을 공기를 이용  마치 주전자에 공기가 유입되어야  주둥이로 물이 콸콸 쏟아지는 이치를 생각하면 된다.  전망대 탱크의 속은 그런 구조란다.

공기를 주입 다시 흘려보내는 물의 낙차를 세계 만드는 곳이란다.

 

수력발전소는 관람을 하려면 사전에  열흘전에 관람신청을 해야하는데 발전소 측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 외국인은 불가하단다.

 시설용량 60만kw라는 이 발전소는 도수터널에 매립된 수압관로(水壓管路)를 통하여 589m의 낙차를 쏟아져 내리는 수력으로 전력을 생산하는데, 물을 양수(揚水)해 올리는 비용이 워낙 커서 단순 수지면에서는 적자일 수 밖에 없다는데,

하지만 한밤에 남아도는 전력은 저장이 안 되기 때문에 그대로 버리기 보다는 밤중에 남는 전력으로 물을 퍼 올렸다가 전력수요가 많은 한낮에 그 물을 쏟아 내리는 힘으로 전기를 생산 공급하는 것이 전체적으로는 이익이고, 전기의 질을 높이는데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버스로 오를 때는 몰랐는데 내려올때는 커브를 도는 곳곳에 방호벽에는 버스가 긁힌 자국들이 무수하다.

커브를 돌자 급히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 바로 오른쪽 벽을 들이받게 생겼다.

내리막의 커브를 도는 순간 브레이크를 밞음으로  속도 조절을 해야하는....어려움,

지인이 이 곳을 승용차로 오르려다가 귀가 먹먹하고 심한 어지러움에 도로 내려갔다더니 이해가 갈 정도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덕유산 향적봉이 바라보인다.

아!! 저기 저 곳에 올랐는데....새삼 여기서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도 감회가 깊다.

 

내려오는 길에 관광버스는 무수히 올라오고 있었다. 좁은 길에서는 경적을 울려가면서~~~~~~~

아마도 이 곳은 비만와도 오르기가 좀 어렵지않나 싶은 곳이다.  경관은 정말 빼어난 곳이다.

적상산, 붉을 赤 치마裳 山, 가을이면 그렇게나 단풍이 붉다는 이 곳, 가을에 오면 한 눈에 바라보이는 단풍이 분명 절경이리라....

저리도 빼곡한 수풀만 보아도 가히 짐작이 가는 일이다............................./이요조(2009,6,28)

 

 

 

 

 

 

 

 

 

 

 

 

 

 

 

 

 

 

 

 

 

 


 

 

 나제통문을 찾아가는 길, 무주 구천동에서 잠을 자고 아침 일찌감치 나제통문으로 향했다.

길이 얼마나 예쁜지 도저히 견딜수 없어 일어났더니 마지막 동영상 첫 사진 하나 달랑 건지고는 바로 통문길이다.

이왕 버스앞에 나선김에 연사로 찍어 모음 동영상을 만들어보았다.

지금은 관광버스가 드나들지만 예전에는 아주 좁은 동굴이었다 한다.

겨우 우마차나 지나갈 정도였을게다.

일제시대때 동굴을 더 크게 넓혔다는 설이 있다. 이 부근에는 금광이 많았다 한다. 금을 캐서 이 통문을 통과 운반했다고 한다.

무주구천동의 입구답게 덕유산자락 경관좋은 곳에 낮으막한 성벽처럼 누운 능선 그 능선을 뚫어 굴을 만들어 삼국시대의

백제와 신라의 경계를 삼았다 한다.

지금도 이 통문의 양쪽으로 위치한 무풍방면의 이남(伊南)과 무주방면의 새말[新村]은 행정구역상 무주군 소천리에 속하지만

언어와 풍속이 판이하게 다르다고 한다.

구천동 맑은 계곡물이 흐르고 초하의 풍경이 멋드러진 이 곳, 시원한 동굴안을 드나들어 보며〈삼국사기〉를 통해 추측할 수

있다는 신라와 백제 양국에게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점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해 본다.

나제통문은 인공터널로 높이 3m, 길이 10m의 인공동굴로 무주구천동(茂朱九千洞) 입구에 위치하며 덕유산국립공원에 있다.

 

 

 

 

 

 

 

 

 

 

 

 

 

 

 

 

 

 

 

일출이 멋있다는 향일암에서 바라본 바다!

여수 오동도를 거쳐 향일암에 오르다. 향일암 주차장에 차를 대려니 달려온 주차요원이 무척 친절하다.

형부가 운전을 하셨는데....주차비는 어르신들에겐 받지 않는단다.

셔틀버스가 있으니 타고 가시란다. 셔틀버스에선 젊은이들이 굳이 자리를 양보한다.

잠깐이면 갈텐데....<참 孝를 아는 곳>이란 생각에 흐믓하다.

 

여행을 다녀오면 밀린 사진을 정리 요약해서 올려놓지 않으면 차일피일 미루게 된다.

얼른 하고나야 다른 일이 손에 잡힐 것 같아 그저 번갯불에 콩 볶듯 블로그에 올리고 있다.

여행일기를 몇 년 뒤 보게되면 여행지 그 변화와 느낌의 차이등...그 모든 정보나 견해등 나름 유익해진다. 

 

 향일암을 오르는길은 두가지가 있는데....먼저 계단을 택하고 내려오는 길은 비스듬한 포장길을 택했다.

운동부족이었는지....뒷다리가 땡겼다. 은근히 힘든다. 그다지 멀거나 험하지는 않다.

 

 점점 바다가 내려다 보인다.

 향일암이 가까워진 곳에 이런 무인 찻집이 있는데,

마주 보이는 저 창문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바다를 내려다 보노라면....

 이런 경치가 눈에 들어온다. 참으로 멋진 바다로 향한 프레임이 아닌가?

 

좁디좁은 돌틈샛길로 들어서고....

 

초파일 연등이 겨우 걸리는 공간

 나 이외에는 들러붙은 잡념마저....따라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지막 계단을 오르면 향일암

 이렇게 다 올랐다.

 

 초파일 연등 때문에 대웅전 지붕모양을 담을 수 없어 한쪽 모서리 처머만 겨우 담았다.

 대웅전 팔작지붕의 모서리 처마 한 끝, 단청이 되지않았다. 겹처마형태다.

 대웅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니 십이지석이 보인다.

 이 공원 이름이? 줌인하여보니....

대웅전 뒤로 좁은 바위틈으로 올라가다보면 원효대사가 수도하였다는 암자가 더 있다.

바다를 향해앉아 참선했다는 원효의 좌선대 너럭바위가 있는데...참으로 참선이 절로 될 듯한 자리였다.

앞으로는 망망대해가 바라다보이는 곳, 바다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소나무가지사이로 스치는 바람 소리는 들리는 그 곳!

애석하게도 사진을 못찍었다.

배터리가 다 되었다는 카메라 표시등, 카메라 가방을 대신 메어준 남편은 볼일이 급해 대웅전만 보고는 황급히 내려가버렸던 것이다.

향일암에 두어번 왔었다는 언니도 이 곳은 처음이라며...

그저 대웅전만 휙 둘러보고는 내려갔노라 했다.

향일암의 백미같은 그 곳을 놓치다니....사진을 못찍은 실수로 내내 안타까웠다.

 왼쪽이 주차장이다. 걷기좋을만한 거리지만...

 노약자를 위한 무료셔틀버스를 운영중이란다.

 

내려오는 길은 비탈길을 택했다.

해안가 마을의 모습이 정겹다.

 

마늘밭 고랑도 푸르고,

 향일암 오르는 길가엔 갓김치와 해산물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갓김치 3kg에 만원인데...거의 3,5kg을 만원에 샀다.

갓김치를 파는 곳 뒤란으로 올라가니...푸른 바다가 넘실거린다.

향일암에서 보았던 이 공원이

 

바로 이런 모습이다. 셔틀버스가 돌아나오는 길이기도 하다. 20분마다 한 대씩!

 셔틀버스 승강장도 있네~

 

 

 

 

셔틀버스에서 셔터를...

이제 향일암을 돌아나오는 길이다.

여행지를 알고싶어서 여수시청 홈페이지에 들렀더니 돌산읍 갓김치는 물론 황토염색 옷을 특산품으로 판매했다.

그리고보니 돌산읍이 온통 황토밭이다.

 황토밭 때깔이 곱다.

황토는 갓도 잘 길러내고 특산품 황토 염색도 하고...

 

 

 

 

 

 돌산대교를 다시 건너왔다.

 향일암, 다시 가고싶은 곳이다.

못다찍은 사진도 있지만.....향일암 해돋이를 꼭 보고싶다.

 

 

 

20080509  이요조

 

 

 향일암은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의자왕 19년(659) 창건하고 창건 당시의 이름은 원통암(圓通庵)이었다는 내용이 『여수군지』 및 『여산지』에 기록되고 있다. 이와 같이 향일암이 7세기 경의 원효와 관련되고 있으나 이 기록은 거의 신빙성이 없다고 하겠다. 그후 광종 9년(950)에 윤필거사가 이곳에 수도하면서 원통암을 금오암(金鰲庵)이라 개칭하였다고 하나 이 또한 믿을만한 자료라 할 수 없다. 조선시대에 와서는 임란을 거쳐 숙종 39년(1713)에 당시 돌산주민들이 논과 밭 52두락을 헌납하여 그로부터 3년 뒤인 숙종 41년(1715) 인묵대사가 현위치로 옮겨 향일암이라 이름을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특히 향일암은 금오산의 기암절벽 사이에 동백이 울창하여 남해의 수평선에서 솟아오른 일출광경이 천하일품이어서 향일암이라 명칭하였다 한다. 현재 사역내(寺域內)에는 대웅전과 관음전 칠성각 취성루 요사채 등이 있는데 이들 건물은 모두 1986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지붕으로 배흘림이 있는 기둥을 세우고 그 위로는 창방이 얹혀져 있으며 헛첨차를 결구하였다. 공포는 기둥 위에만 설치하는 주심포계이며 처마는 부연이 있는 겹처마이다. 관음전은 대웅전 뒤쪽 바위틈을 지나 50m 떨어진 커다란 바위 위에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초익공계이며 바람막이판이 달린 맞배지붕이다. 향일암은 비록 최근에 중건된 사찰이긴 하나 인근에 있는 은적암과 함께 이곳 도서 지역에까지 전파된 불교문화의 현상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예라 하겠다.

 

 

 

 

 

 오동도

동백열차표(편도500원)를 끊었지만...어디까지나 노약자를 위한 것이지...

아직은 아니라서 바닷바람 맞으며 걸어들어갔습니다.

여수 친구가 둘이나 있어서 자주 갔지만...한참 애기 키우고 나니 (여수모임때)남자들끼리 저들은 다 보았다고

<짜달시리 뭐 볼 게 있느냐고>묵살해버리던  가고싶었던 그 곳입니다.

오동잎을 닮아서 오동도라고 한다네요.

각종 나무들이 울울창창한 모습이 바다와 기암절벽과 어우러지는 무척 아름다운 섬입니다.

 

 오동도 입구에는 관광차에서 내린 초로의 노인분들이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돌아오는 동백열차에서 여쭤보니 순천에서 오셨다더군요,

 5월9일이라 어버이날 삼아 동네분들이 잠시 호미자루를 놓고 나들이를 나오신 모양입니다.

 여수 오동도라 바람이 시원합니다.

  동백열차가 나오네요~

 한 번은 걷고 한 번은 타고....그 게 가장 좋을 듯 싶습니다.

 공원을 돌다 나올 때 타야지~

했는데 노인분들은 그저 동백열차만 타고 왔다가 내리지도 않고 되돌아 나갑니다.

다리가 아파서들 못걸으신다고.... 

오동도 공원을 오르면서 거꾸로 찍은 사진입니다. 국립공원이라 입장료는 없습니다.

이 분들과 공원을 함께 돌았는데...

제 느낌이 틀릴지도 모르지만 재소자분들 같았습니다. 어버이날 모범재소자분들 특별나들이를 나온 듯....

바깥 봄바람에 아마도 더욱 더 괴로울 것이 아닐까 심히 우려되더군요.

 털머위 위에 내려앉은 동백꽃! 오월, 동백은 거의 다 졌지만 간혹,,,,,뒤늦은 지각생들이...생뚱맞다.

 데크길

 

 

 

 

 

 

 

 

 내려가는 길이 조금 상그랍다.

 가는날이 장날...등대가 보수중이라 올라가보질 못했다.

 

 

 

 

 

 

 

 

 

 

 흔히 <시누대>라고 불리어지는 이 대는 마디가 없다.

이순신장군이 화살로 만들어 적과 싸워 이겼다는 그 화살의 용도로 씌였다 한다.

 

 음악분수 밤에 보면 조명으로 아름답다는.....

 

 

 

  

아름다운  오동도, 구경 한 번 잘했습니다.

 

 

이요조

 

밀양에서 친구들과 헤어지고 창원으로 향했다.  기차로 40분거리~

그 곳에서 친정식구들과 합류했다. 총인원 5명,  고성에서 마지막 날에는 8명의 가족들이 모였다.

전라도땅으로 넘어가는 길이다. 벌써 산세가 달라보인다. 섬진강 줄기가 눈에 들어오고...(차 안에서 스치는 풍경)

 섬진강 휴게소

오늘 일정은 여수오동도를 돌고 향일암을 구경하고 일박을 하는거다.

 운전은 내가 안했으니 모르겠다. 금요일 오전 길이니 잘 뚫렸다. 물론 여수가는 길도 멋지게 잘 닦였고.....

 여객선터미널앞 건어물가게

 

여행을 떠나면 형부가 사전조사를 하는데는 철저하다.

식당과 숙박지를 알아오셨다. 여객선 터미널 부근 중앙로터리 부근이니 중심지였다.

맛집을 알아서 간 곳도 둘레둘레 다 중앙동이었으니....장소마저 딱 좋았다.

식당이나 모텔은 중앙동에서 길가는 사람을 잡고 물어봐도 다들 잘 알아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모텔이라...우선 선입견에 러브모텔을 떠올렸으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친정식구 여섯이 큰방에 들었다. 큰방 하나에 9명까지 가능하고 카드는 5만원 현금은 4만원이란다. 놀랄만큼 싼 가격이다.

침구 넉넉하고도 호텔처럼 희고 깨끗하고, 욕실에 바디샴푸, 헤어샴푸, 린스 충분하고....

깨끗한 타올충분하고 화장대에 화장품 구비에다 드라이기...찜질방 값으로 편하게 일박을 한 셈이다.

명함 이미지와 같은 신축건물이었다.

아침에 나오면서...인터넷에다 올려주겠노라고 하니 연세가 좀 있으신 두 부부가 마냥 좋아하신다.

타지에서 간 여행객들에게 너무나 편하고 깨끗한 잠자리를 마련해줘서 복 받으실게다.

찾아가려고 전화로 물어보니 이미 3년전에 없어진 중앙극장을 자꾸 얘기하시니...네비게이션은 물론 타지 여행객들이 알턱이 없다.

이젠 여객선 터미널 부근이라고만 말씀해 주세요 했더니,

이 곳 사람들은 중앙극장이라고 해야지 안단다.  여객선 터미널에서 간판도 바라보이고,,,,누구에게 물어도

<다이야모텔>은 잘 알고 있었다.

 

오동도 행일암을 보고나와서  중앙동 '노래미식당'을 찾았다.

로터리 부근이었다. 위의 그림은 노래미 식당에서 찍어온 일본그림인데 천에다 염색한 그림이라...음식과는 무관하지만

내게 필요할 것 같아서 한컷!!

 

 노래미회덮밥, 노래미탕으로 점심을 시켰다.

별 다른 맛은 모르겠으나, 이 집만 노래미를 전문으로 한단다.

낚시할 때 노래미는 그닥  귀한 손님은 아닌데....자연산이라니....

나는 탕을 시켰는데...맛은 고소한게 깊었고 회덮밥도 맛있었단다. 중앙동 로타리 뒷골목의 ,노래미식당>도 지역민들에게

잘 알려진 맛집으로 명성이 자자한 곳이란다.

 

 노래미회덮밥

 노래미매운탕

 

 

다이야모텔에 여장을 풀고 저녁식사도 해결할 겸해서 산책을 나갔더니 바로 부근에 수산시장이 있다.

<여수수산시장>  여수의 명소라네~~

 

 회를 떠서 이층으로 가면 된단다. 이층에서는 1인당 2,500원이면  먹도록 준비가 되고....

 먼저 아이쇼핑을 한 후, 먹고싶은 것을 고르기로...

 봄 도다리를 먼저, 도다리는 세꼬시로 먹어야....

 도다리 요만큼이 3만원

 돔 한 마리 3만원

 감오징어가 좀 비싸다 한 마리 2만원,

 갑오징어란 늠은 전투적이라 무섭다. 자칫 잘못 건드리면 먹물세례다.

화가나서 벌떡거린다. 나도 간이 작아 놀랬는지...카메라 흔들렸다.

 

저기 끝부분에 서대 말린 것도 보인다.

 

 이층 남원집으로 올라가니.....모녀의 인심이 부드럽고 좋다.

 두 접시가 나왔다.

 6명이 두 접시를 놓고 ...1/5을 남기다.

아무것도 깔지 않았으니 그 양이 엄청 많았던가 보다.

 요즘 제철이라는 이 작은 게장이 부드럽고 달큰한 게 꿀맛이다.

 매운탕도 맛나고....

 

다음날 아침 수산시장부근에 새벽장이 선다기에 아침 7시에 시장구경을 나섰다.

개천부근으로 시장이 꽤나 크게 현성되어있었다. 사람들 먹고 산다는 게 다 그거고 그거지만...

바닷가에 오니 조금은 별다르다. 싱싱한 어물이 많다.

 

 

 

 초입이자 끝부분만 나오면서 기념으로 찰칵!!

이제 아침을 먹으러 가야지....중앙동이니 진남관 앞 로터리부근에서 구백식당을 찾으란다.

전화번호 마지막자리가 0900번이었다.

그렇게 화려한 식당은 아니지만....아침부터 열렸고 보아하니 이력이 제법 탄탄한 식당이다.

아구(귀)탕과 생선구이를 시켰는데.....아귀탕에는 애를 그대로 넣어 역시 구수했다.

경산도 바닷가 음식은 지리처럼 담백한 맑은탕을 잘 끓인다면 이 곳은 매운탕인데...내장을 있는대로 다 넣어 진미를 살렸다.

 

 이집은 특징이 서대회무침이라는데...

지난 밤 회에 질려서 생략했더니 두고두고 후회가 된다. 딱 하나만 (서대회.만원) 더 시켜서 맛이나 볼껄.,...

 

세끼니를 먹었는데 공통된 점은 돌산갓김치는 물론이거니와 갓물김치가 나왔는데...

꺼룩하니 담아낸 물김치 맛이 좋았다(워낙에 물김치광이니.,..)

 

 마치맞게 익은 갓 물김치,(노래미식당)

 

 폭 익어도 맛이 좋은 갓 물김치(구백식당)

 

서대회를 먹었어야 했는데.....

 

 

중앙로터리부근/노래미식당/노래미전문점

진남관 아래 로터리 부근/구백식당/서대,아귀,구이전문

회는 / 수산시장 풍물거리

구 주앙극장 뒤편/다이야모텔

 

 

 

 

 

 

 

 

 

이제야 새움트는 지각쟁이 덕유산(德裕山)

 

이름 그대로 덕스럽고 넉넉하니 부드러운 母山!

소백산맥 줄기를 타고 내리다가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며 완만한 육산으로 드러누웠다.
좌로는 장수와 무주를 끼고 우로는 거창과 함양군을 끼고 동서를  가르고 엎디었다.

 

30여년 전에 산악회원으로 남쪽일원 명산은 다 타고 다녔건만.....

세월이 흘러 곤돌라가 설치되어 그냥 내처 오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산이 정말 낯설다.

나도 그만큼 년식이 오래되었나보다.

 

곤돌라에 내려서 향적봉까지 오르는 길에도 그냥 스적스적걸어 오르는 남편을 따라 가느라...

사진을 찍다가 달리다가? 기관지가 다 막혀왔다.

 

요즘은 운동부족이지만...왕년의 산아가씨라 경험상 모자에 핀을 꼭 찌르고 정상에 올랐더니~~

그랬는데 그 모자 마저도 홀라당 제껴지고 만다.

웬걸...갑자기 드쎈 바람에 낭떠러지 계곡 아래로 그만....모자를 날리는 사람도 있다.

 

정상은 지금 겨울이다.

덕유산은 사시사철 다른 모습으로 좋다.

봄에는 철쭉으로,

여름에는 계곡으로,

가을에는 단풍으로,

겨울에는 설경으로.......어느 누구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의 대단한 장관의 내공을 품고 있다.

 

그런데....덕유산은 두 계절을 공유한다는 것이다.

오늘 확실히 보았다.

지금 아래에서는 철쭉이 만발인데...철쭉은커녕.....나무들 잎새도 움틀 생각을 않는다.

버들강아지가 겨우 눈을 틔우고 있는 겨울이다.

 

상상은 두었다가 뭐에다 써먹누....

나는 고사목과 주목을 보면 설경을 떠올렸고

산 능선에서 내려다보며 온 산이 붉디붉게 신열이 돋은 것처럼 번져나는 철쭉의 장관을 떠 올려 보았다.

 

작은 싸이즈의 사진 3장은 덕유산 홈페이지에서 빌려왔습니다. 철쭉 붉은 덕유산은 아쉽게도 없더군요,

 

 

 덕유산의 삼공지역은 해발 약620m(GPS측정치)로 타 지역보다 꽃이 늦게 피어서 늦게 지는 편입니다.

봄은 오는데 때아닌 눈이 내려 경이로운 풍경이 연출 되었습니다.

 

 

 

 

 

철쭉 사이로 난 길을 걷는다고 상상하며 걸었습니다. 덕유산 철쭉제는 5월 말경이나 되어야 된다는군요.

 

 

마치 비행기를 타고 상공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입니다.

 

 

 

 

 

 

 

역시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설천봉의 설경입니다.

 

 덕유산이 빼어난 설국(雪國) 이루는 이유는 겨울철 황해를 지나며 수증기를 잔뜩 공급받은 대기는 내륙으로 진입한 뒤 덕유산맥의 산자락을 타고 강제 상승하면서 많은 눈을 만들며 덕유산을 설국으로 만든다. 
덕유산은 사시사철 아름다움이 묻어나는 산이지만, 특히 덕유산의 겨울은 작은 히말라야를 연상케 할 만큼 시리도록 아름다운 설경을 자아낸다. 향적봉에서 중봉에 이르는 구간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구상나무와 주목에 피어난 설화는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낸다. 무주리조트 스키장이 말해주듯이 덕유산 일대는 우리나라에서 눈이 많은 곳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이처럼 덕유산 일대에 눈이 많이 내리는 이유는 바로 백두대간의 일부로 한반도 남부의 한복판을 동과 서로 가르며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겨울철 시베리아 고기압의 확장으로 황해를 건너며 수증기를 흠뻑 머금은 대기는 빠른 속도로 내륙으로 진입하게 된다. 이때 높은 장벽을 이루는 덕유산맥의 산사면을 타고 강제 상승한 대기는 단열·팽창(斷熱 膨脹)하여 냉각됨으로써 눈이 되어 내리는 것이다.
한편, 덕유산맥은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어 서쪽의 무주를 중심으로 하는 호남과 동쪽의 거창을 중심으로 하는 영남 지역으로 자연스럽게 양분하고 있다. 덕유산맥이라는 자연적인 장벽으로 인하여 두 지역 간에는 교통에 큰 지장이 있어 왔으며, 언어와 생활 습관 및 풍토 등에 있어서도 상당한 차이가 나타났다. /검색

 

 

 

 

 

향적봉입니다.

 

 

 역시 향적봉의 설경입니다. 군데 군데 주목과 고사목이 많아서 태백설경 못잖게 아름다운 곳입니다.

 

 

 

 

 

아예 야생화 군락지입니다.

 

 현호색박새군락지더군요.

 

 

버들개지가 이제서야~~

 

 바람이 드쎄더군요.  정상 꼭대기 바위 뒷편으로 가시는 분...모자 조심하세요~~

몸무게 가벼운 분도....조심!!

 

덕유산 지도 큰그림으로 보세요!!

 

 

 

 

 

 

철쭉대신입니다. 무슨 나무인지,,,몰라도 붉은 꽃을 대신해줍니다.

 

 

능선이...뱀처럼 구불구불 이어집니다.

 

 

 고사목과 리프트탑,,,,, 스키 고급반이 맨 정상 차지, 상상만해도.....경사도가 아찔!!

 

 

 

 

 

 

능선이....드러누운 여인의 허리처럼 아름다운 곡선입니다.

 

 

 

설천봉 레스토랑에서 차라도 한 잔~~

 

 

 

이 곳 화장실에서 손을 씻는데.....완전 얼음물이다.  뼛속까지 아려온다.

 

 

 

15분 동안 곤돌라를 탑니다. 지금은 거의 다 내려왔는데도 주변 녹음 색갈이 달라집니다.

 

이제야 싹을 틔우고....

 

산벚꽃은 오스스 추위에 떨며 피었습니다.

 

 거의 다다랐는데....이제 연둣빛 봄이 완연합니다.

 

 

 스키장 안내지도/클릭하시면 큰사진을 보실 수가.... 

 

 

덕유산 자연생태 식물 군락지(설천봉~ 향적봉)

 

구간내 아고산대 야생화종류,  백두대간 주요경관조망 등 아고산대의 특성인 식물등....

제가 스쳐본  나무만해도 주목과 구상나무, 사스래, 노린재,홍괴불나무, 고로쇠, 시닥나무, 백당나무, 고산에만 산다는 엄청나게 다닥다닥 많이 붙어 기생하는 겨우사리, 현호색 박새 군락지 등...

이루 다 헤일 수 없이 많습니다.

아직 덕유산은 초봄이었습니다.  아직도 빈가지인 채로 서있는가하면 버들강아지가 이제야 눈을 틔우고

귀룽나무만 겨우 뾰조록하니 새순을 달고 있었습니다. 그런 빈가지인 모습들이니... 그 나무가 그나무 같습니다.....일단은 그냥이라도 찍었지요 뭐..(파이 이미지) 5월 5일...글:사진/이요조

 

 

 

덕유산 삼공탐방지원센터  위치 전북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 418-24 우)568-814 문의전화 063)322-3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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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찾아가시는 길

 

 
 고속버스/시외버스
 
 
서울 서울남부터미널->무주(3시간소요)->구천동행버스->삼공주차장하차(40분소요)
대전 대전->대전동부시외버스터미널->무주(1시간소요)->구천동행버스->삼공주차장
대구 대구->북대구터미널->무주(3시간30분소요)->구천동행버스->삼공주차장(40분소요)
부산 부산->대전(영동)->버스이용
광주 광주->광천터미널->무주(4시간소요)->구천동행버스->삼공주차장(40분소요)
 
 
 
 기 차 
 
 
서울 서울->대전역(2시간소요)->대전동부시외버스터미널->삼공주차장(1시간20분소요)
 
대전 대전->대전동부시외버스터미널(버스로이동)
대구 대구->영동역(1시간20분소요)->영동터미널->삼공주차장(1시간30분소요)
부산 부산->영동역(2시간40분소요)->영동터미널->삼공주차장(1시간30분소요)
광주 광주->서대전(2시간20분소요)->대전동부시외버스터미널->삼공주차장(1시간40분소요)
 

 
 승용차
 
 
서울 서울경부고속도로->무주IC->19번국도-49번지방도(2시간30분소요)
대전 대전~통영간고속도로->무주IC->19번국도->49번지방도(1시간10분소요)
대구 대구경부고속도로->서대구IC->30번국도->37번국도(2시간30분소요)
부산 부산남해고속도로->진주IC->덕유산IC->19번국도->49번지방도(3시간30분소요)
광주 광주88고속도로->남장수IC->19번국도->49번지방도(2시간30분소요)
 

 

 

이제야 새움트는 지각쟁이 덕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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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말(땅끝)에서 보길도로 윤선도의 발자취를 따라서~

 

해남하면 남도여행,

남도여행하면 해남이 일번지가 아닌가 싶다.

그런 해남을 한가한 여행이 아닌 업무차 볼일로 와서는 실로 바쁘게 기둥에 손만 짚어보고 떠나온 형국이라

내심 안타깝고, 글을 쓰는 내내 미진한 마음 끊이질 않아 시간이 나면 꼭 다시 여행을 해 볼 요량으로

가는 방법, 그리고 자료들을 검색하다 보니 어떻게 여행글이 엉성하게 만들어 지고...

 

해남의 녹우당, 고산 윤선도의 발자취를 따라서 가보는 여행에 앞서  다분히 역사적 인물이야기라....

보길도에 직접 와서보니 그 느낌이 조금 다르고 다시 짚어보니 그에 대한 견해도 달라졌지만 어디까지나 그 건 개인 생각일 뿐, 나는 그저 쉬운대로 여행이야기나 쓰련다. 

글을 쓰는 사람의 실력이 있어야겠지만,  특별한 전문가가 아니니 어림잡아 사려깊은 마음으로 읽어주시길 바라면서....

 

해남-갈두리 토말(땅끝)은 1시간걸리며 요금은 3,700원이며 30분간격으로 운행하며, 땅끝(갈두리)에서 땅끝전망대-땅끝탑을 돌아 보려면 원점회귀로 한시간정도 소요.
갈두리(땅끝)에서 보길도는 선박이 08:20-17:30까지 1일 2시간간격으로 7회운항하며 요금은 편도 7,300원.

 

 

서울 용산역에서 KTX를 타고 광주도착 ▶ 광주에서 해남(녹우당을 거쳐) ▶ 땅끝, 토말(갈두리)까지 버스 ▶ 갈두리에서 ▶ 보길도(1박) ▶ 완도(서울행타면 여행종료이지만)▶ 청산도를 거쳐 ▶ 완도 ▶동서울터미널(버스로 돌아왔다.)

 

tip

 

섬으로 연계해서 여행을 다닐 경우에는 차를 두고 현지 택시를 이용하면 싸다.

여행자들과 함께 어울려 택시를 이용하면 싸게된다. (대략 시간당 만원꼴)

 

해남버스터미널에서 땅끝(토말)까지 승차권! 회수한다기에 아쉬움에 찰칵!

 

 

남녘의 봄은 동백으로 피어나고,

 

 

보길도를 가려면 봄에나 갈 일이다.

방풍림 동백이 흐드러져 지천이다.  봄이 먼저 오는 곳,

보길도는 봄이 먼저 온다.

늦은 4월 무르익은 봄에도 늦게까지 피고지는 동백꽃은 윤선도의 세연지를 붉게 물들이며 감돌아 흐른다.

청보리가 푸르고 마늘이 푸르다. 붉은 동백은 어느 시인의 눈물처럼 떨어져 누웠고....

어느 뉘라서 노래가..시가 나오지 않으랴~~

푸른 물 위로 떨어진 붉은 동백꽃은 바람이 불면 작은 배처럼 한가롭게 연못을 떠다닌다.

 

여름 보길도는 너무 유명하여서 차를 가지고 들어가기에 힘든단다.

줄이 어디까지 이어졌고....힘들여서 섬에 들어가면 성수기 민박은 예약이 아니라...아예 현금예약을 해야하고,

들어갈 때 고생한 만큼 나올 때 또 줄을 서야하는 번거로움이 있단다.

그냥 차를 두고 떠나 택시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버스도 있고,

 

걷기에는 너무나도 좋은 길, 길들~~트래킹하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화창한 봄이었다)

 

 

해남 버스터미널 화단에 핀 겹동백(한 나무 한 몸에 이렇듯, 알록달록이가 함께 핀다. 신기하고 예쁘다)

 

서울(용산역)에서 KTX로 광주로 와서 해남행 버스를 탔고 해남에서 토말(땅끝) 갈두리까지 왔다.

갈두리에서 보길도 가는 배를 기다린다.

배는 작아서 차가 몇 대 못 싣게 되어있다. 여름 휴가철에 보길도에 차를 가지고 들어 간다는 것은 족쇄를 차고 들어 가는 꼴이다.

들어가고 나갈 때....몇 시간을 줄을 설 각오가 돼있다면 모를까~~

 

▲보길도 승선티켓

 

▼ 갈두도에 도착, 배를 기다리며, 

전망대가 있었다, 다녀오는데만 딱 30분 빨라도 40여분이 경과하고 배는 40분 뒤에 출발하고 선선히 전망대를 포기했다. 모노레일도 유혹하고 전망대에 올라가면 토말, 갈두리항의 전경을 한 눈에 다 바라볼 수가 있을 터인데....

 

 

▼ 바위 이름이 '맴암'? 이었지 싶다.

카렌더에도 많이 나오는 일출사진

지금은 밀물때라 밉지만 썰물에 이 바위의 사이로 해가 떠오르는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많다.

포토포인트라고 안내팻말이 씌어져 있다.

 

 

바위 사이로 해가 뜨는 모습!! 많이들 보셨을 이미지....상상만으로도 ...멋지던,

좀은 엉뚱한 장소에 생뚱스런 자태여서....그 얄망궂은 모습에....은근한 친근감이 더하던...ㅎㅎㅎ

 

 

드디어 보길도를 들어 갈 배가 들어 오고  보길도에도 두 군데로 나뉘어 출항했다. (둘러가는 배, 직항하는 배)

 

아마 이 배가 아니고 저 뒤에 들어오고 있는 배를 탔을 성싶다.

 

 

먼저 여기 보이는 이 택시를 흥정(도서지방은 택시가 모두 4륜구동)4시간 선회에 4만원으로~~

 

여행자 tip

 

택시를 이용하면 득이 되는 이유는 기사분이 아주 좋은 가이드가 된다는 것입니다.

지역주민으로 더 이상 바랄 것 없는 가이드를 대동하는 셈이라 아주 좋습니다.

 

 

그냥 바다가 아니라....완전 양식밭이예요!

보길도 들어가는 배를 타고 깜짝 놀랐지요, 겨우 뱃길만 도로처럼 조금 열어놓고는...

양식밭에 뜬 부표들이 마치 사월초파일 연등처럼 울긋불긋 바다를 수놓고 있었습니다.~

 

 

보길도 섬 전체를 선회하는 관광이다.

 

사진에는 잘 나타나 보이지 않지만 바다가 양식밭이었다.

 

전복, 미역, 다시마, 등 양식과 관광객의 수입으로 고소득을 올리고 있는 부자들이란다.

택시아자씨의 말을 빌자면....보길도 주민 전체가 알부자라는데...ㅎㅎ

 

▼산위에서 바라보니 영락없는 새카만 자갈밭, 해변이었다.

 

예송리해수욕장

 

내려와 보니 위에서 보이던 새카만색은 아니었다. 그냥 차돌멩이 빛깔이다.

 

 

혹시 차동맹이 사이로 구르는 파도소리를 들어보신 적 있으신지?
차르륵- 차르륵- 이보다 더 멋진 바다의 교향시가  어디에 또 있으랴싶다.

 

 

춘백은 떨어져 누워 붉게 물들고,

 

미역을 말리고 있는 아저씨를 찍자  바쁘던 일손을 잠시 멈추고 짐짓 포즈까지 취해 주신다.

역시 보길도는 주민들 모두가 관광객을 위하나 보다 했더니, 기사 아저씨왈

"제 친한 친구넘이예요. ㅎㅎㅎ "

그럼? 친구의 손님을 위해서 .....부지런한 손길을 잠시 멈추고 이런 모델포즈를 ? ㅎㅎㅎㅎ~~

(우리가 셋이었으니~~카메라도 셋? )

*여기서 셋이라 함은 여행지에서 만난 카메라를 든 두 젊은 도반(道伴)들이다.

"감사합니다아~"

 

 

그 시커먼 자갈마당에 또 이런 시커먼 미역을 널어 말렸으니....당연 시커멓게 보일 밖에~~

 

 

미역이나 다시마를 사가라고 동네 할머님이 말씀하셨지만...이제 막 보길도 관광 시작인데 ~~ 죄송!!

 

내 카메라만 그저 휴대용 디카 익서스....

에혀, 경관은 좋더러먼...거의 입체감 하나 없는 평사진들로만.....

 

 

망끝전망대에서, 동백숲을 끼고,

 

 

흐린 날 오후, 하염없이 혹시나 구름속에서 나타날지도 모를 일몰을 기다리느라....

좌측 숲은  동백숲이다. 방품림으로 둘러처진 아름다운 동백나무가 꽃을 피우는 곳!!

 

 

 

무심한 일몰  그 석양은, 바다 물빛만 약간 발그레 적시다 말곤 황망히 사라졌다.

 

 

바위 절벽을 잘도 오르내리는 염소 가족들

 

 

포카스가 동백에 꽂히지 않았군요. 이런 일이....우째?

 

▼ 멀리 보이는 뾰죽산 그 앞에 가면...지금 한창 공사중이네요.

 

 

뾰죽산 부근에는 지금 제주도를 오고갈 선착장을 만드는 중이랍니다. 제주도와 아주 가깝다네요.

 

 

▲ 보이는 뾰죽산 바로 뒤를 돌아가면 짜잔~~!!! 

이런 돌이 지천인 해변이 있습니다. 이름하여 공룡알 해변

 

 

공룡알 같이 보이지요? 큰돌이든 작은 돌이든 죄다 공룡일처럼 아주 크고 동글동글한게 인물이 훤합니다.

밀물이 되면 공룡알 해변은 더 커지며 계단식으로 되어있다네요.

저 섬까지 바닷속 전체가 다 이보다 더 둥근 돌로 층층이 덮혔다는데 물이 많이 빠지는 날, 보게되면 장관이라네요...거 참!!

섬만 아니라면 슬쩍 안아오고 싶도록  동글동글해서 예쁜 돌!!

 

 

 

 

◈유배가던 송시열이 쓴 글씐 바위

 

 

 

 

 

 

 

송시열이 제주로 귀양 가던 중 풍랑을 만나 보길도에 상륙하게 되었는데, 이때 섬 동쪽 끝 백도리 해변석벽에 자신의 심경을 한시로 새겼으며 택시에 내려서도 동백나무 울창한 숲을 10여분쯤 걸어가면 푸르른 남해와 기암절벽이 만나는 곳에 글씐바위가 있었습니다.

 

 

 

다음은 우암, 송시열의 글씐 바위를 찾아가는 길입니다.

 

 

이런 절벽을 지나야 해요.  아찔하지요?

 

 

송시열의 안각시문을 찾아 나 선 길은 절경이었지요.

 

귀양도중에 배가 풍랑을 만나 잠시 머물었던 곳 이라는군요.

우직한 충정을 바위에다  새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약을 받아 죽임을 당했다지요?

우암과 고산...그  두사람의 느낌이 확연히 다른......여러 각도에서 마음이 착찹했지만 역사가도

또는 그 무엇도 아니기에 그저 눈으로 풍취나 즐기다 떠나는 한 낱 민초일 뿐....

 

 

흔적이 애매해서 지나쳤다가 막다른 길에서 다시 되돌아 나오며 발견했지요.

얼핏보면 모르고 지나치기 딱 좋습니다.

 

 

송시열상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유학자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반신좌상(半身坐像) 초상화이다. 송시열은 평생 주자학 연구에 몰두한 조선의 대표적인 성리학자로 호는 우암(尤庵)·화양동주(華陽洞主) 등이며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그는 1633년 생원시(生員試)에 1등으로 합격한 후 이조판서·좌의정 등을 역임한 인물로, 힘있고 논리적인 문장과 서체에 뛰어났으며 율곡 이이의 학통을 잇는 기호학파의 주류였다.

 

충정을 바위에 새긴 게 아니라....하늘에다가 새기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과격한 성격의 그는 고산을 공격하고 둘 사이는 좋지않게 됩니다.

고산이 물론 20년 연배인 셈입니다.

고산은 낙향하여.... 세상을 외면했고, 송시열은 강직한 성격에 부러짐을 당한 거라는 개론을 펼쳐봅니다.

고산의 유토피아인 보길도에까지 우연찮게 흘러와서 이렇게 암각화를 만든 그 아이러니가 무척 흥미롭습니다.

 

 

 

보길도 하면 떠오르는 윤선도, 그는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본관 해남(海南). 자 약이(約而). 호 고산(孤山) ·해옹(海翁). 시호 충헌(忠憲). 1612년(광해군 4) 진사가 되고, 1616년 성균관 유생으로 권신(權臣) 이이첨(李爾瞻) 등의 횡포를 상소했다가 함경도 경원(慶源) 등지에 유배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풀려나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가 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낙향, 여러 관직에 임명된 것을 모두 사퇴했다. 1628년 별시문과(別試文科) 초시(初試)에 장원, 왕자사부(王子師傅)가 되어 봉림대군(鳳林大君:孝宗)을 보도(輔導)했다. 1629년 형조정랑(刑曹正郞) 등을 거쳐 1632년 한성부서윤(漢城府庶尹)을 지내고 1633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 문학(文學)에 올랐으나 모함을 받고 파직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왕을 호종하지 않았다 하여 영덕(盈德)에 유배되었다가 풀려나 은거했다.

1652년(효종 3) 왕명으로 복직, 예조참의 등에 이르렀으나 서인(西人)의 중상으로 사직했다가 1657년 중추부첨지사(中樞府僉知事)에 복직되었다. 1658년 동부승지(同副承旨) 때 남인(南人) 정개청(鄭介淸)의 서원(書院) 철폐를 놓고 서인 송시열(宋時烈) 등과 논쟁, 탄핵을 받고 삭직당했다. 1659년 남인의 거두로서 효종의 장지문제와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상문제(服喪問題)를 가지고 서인의 세력을 꺾으려다가 실패, 삼수(三水)에 유배당하였다. 치열한 당쟁으로 일생을 거의 벽지의 유배지에서 보냈으나 경사(經史)에 해박하고 의약 ·복서(卜筮) ·음양 ·지리에도 통하였으며, 특히 시조(時調)에 더욱 뛰어났다. 그의 작품은 한국어에 새로운 뜻을 창조하였으며 시조는 정철(鄭澈)의 가사(歌辭)와 더불어 조선시가에서 쌍벽을 이루고 있다. 사후인 1675년(숙종 1) 남인의 집권으로 신원(伸寃)되어 이조판서가 추증되었다. 저서에 《고산유고(孤山遺稿)》가 있다.

 

 

보길도의 관광 백미인 고산 윤선도 부용동

 

고산의 초상화

 

완도로부터 12km 되는 거리에 있는 보길도는 일찌기 고산 윤선도가 배를 타고 제주도로 가던 중 심한 태풍을 피하기 위해 이곳에 들렀다가 수려한 산수에 매료되어, 이곳 동명을 부용동이라고 명명하고 머물 것을 결심했던 곳이다. 10여년을 머물면서 세연정, 낙서재 등 건물 25동을 짓고 전원 생활을 즐겼으며, 그의 유명한 작품  "어부사시사"도 이곳에서 태어났다.

부용동이라 명칭한 것은 연꽃을 부용이라고 부르기도 하므로, 부용동이라 명칭을 한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해봅니다.

이 둘을 구분하기 위해 연꽃은 수부용(水芙蓉), 부용은 목부용으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한자 사전에서 보면 보길도의 甫는 클보 크다는 뜻이고, 吉은 길할 길 자로 옛날 풍수지리(風水地理)에의한 길지의 섬(樂書齋)이라는 뜻이다.

다른 이야기는 십용십일구(十用十一口)라는 글로써 보길도 내에 명당자리가 11군데가 있는데 10군데는 이미 사용 되었고 나머지 1군데도 쓸 사람이 정해졌다고 하여 이 섬을 보길(甫: 十用,  吉: 十一口)도라 하여 불렀다 한다.

 

남녁의 봄은 동백으로 피어나고

 

윤선도의 보길도
 주소 : 보길면 부황리202외
규모 : 25,268평(83,532㎡)
시대 : 조선시대(17세기말)
내용 : 병자호란으로 제주로 향하던 중 보길도 절경에 취하여 머물렀으며 어부사시사등 주옥 같은 한시가 창작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정원 양식을 취하고 있는 곳으로 고산 윤선도 선생이 조그마한 세 채의 기와집을 동쪽과 서쪽, 그리고 중앙에 각각 짓고 주자학을 연구하는 등 주로 기거하던 낙서재, 낙서재 바로 건너 산 중턱 절벽 바위 위에는 한칸집의 조그마한 정자인 동천석재, 세연지와 회수담 사이에 있는 세연정, 반반한 자연석으로 내부가 비도록 세워 만든 것으로 일명 굴뚝다리라고도 하며 세연지에 물을 저장하였다가 회수담으로 흘려 보내는 역할을 하였다는 판석포 등이 옛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봄이 가장 먼저 온다는 땅끝....해남하고도 보길도 망끝~~

동백이 피고지고 늦봄까지도 지천으로 떨어져 누운 붉은 동백꽃을 만나 보게된다.

 

 

그 당시에도 단청을 입히지 않았을까?

고산 윤선도의 흔적은 부리던 노비들의 난동에 의해서 모조리 전소되고...그나마 옛사람들의 전언에 의해서 다시 복원되었다지만,

외로운 섬, 그 한가운데 350여년이 지난  작금의 시선으로 보아도 은폐된 아방궁같았음을 뉘라서 모르랴~~

 

 

세연정은 노비들의 방화로  소실되어  고증에 의해 다시 설립한 것이라 한다.

문들이 올려져 있지만...겨울난방을 위한 아궁이도 비치되어있었다 한다.

 

 

고산 윤선도는 개인적으로 굳이 짧은 지식의 느낌으로 부언하라치면 그냥 '예술가'라 칭하고 싶다.

청치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부잣집의 아들, 예술가에 가까웠던 것 같다. 시문이 특출한 인평대군의 사부였었고  정치적 시련을 몇 번 겪고는 낙향하여 섬을 낙원으로 꾸미고... 세연지를 바라보며 나 읊었던 선비이며 세상의 시시비비가 싫었던 자유주의자! 로맨티스트였던 것 같다.

 

 

세연지 여기에다 작은 배를 띄워놓고 부용정에서 내다보며 어부사시가를  완성한...

 

세연지의 돌 모양도 예전과는 많이 틀리다 한다. 악동들이 그 위에서 악기를 다루기도 했다는데,

 

 

보길도를 한바퀴 돌아 보면서 부용정의 앉은 곳은 연꽃의 화심인 형태였다.

보길도의 산들은 부용정을 중심으로 연잎처럼 둥그런 곡선으로 감싸안고 있었다.

택시 기사분의 설명을 듣고보니...과연 그랬다.  풍수지리상으로도 아마 명당자리였던게지~

 

 ▲판석보/판석보를 넘쳐 흐르는 물

 

보길도의 물은 거의 부용정 으로 모이게끔 되어있단다.

늘 넘치지도 않고 그렇다고 모자라지도 않고....판석보는 돌과 흙으로 막아져서 물이 가물때는 농삿물로 유용했다한다.

 

 

▼ 흑약암/세연지와 칠암은 제각각 이름을 다 갖고 있다.

 

동쪽 산등 너럭바위 옥소대에서 관현악을 연주하면 반원형으로 생긴 서쪽 토성벽에 부딪쳐 소리가 세연정쪽으로 몰아준다.  북쪽에 마련된 동대와 서대에서는 기생들이 춤을 추고 못에서는 동자가 연심을 따고 있으며 세연정에서 낚시를 드리우고 밖을 내다보면 선경이 멀리 있지 않고 바로 이곳이다.

 

 

보길도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새벽 완도행 첫 배에 오르기 전, 흐린 날씨에 잠깐 나온 일출을 만나다.

 

 

어부사시사 (윤선도 作)

 

 

春詞(춘사)


앞강에 안개 걷고 뒷산에 해 비친다
배 뛰워라 배 뛰워라
썰물은 밀려가고 밀물은 밀려온다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강촌에 온갖 꽃이 먼 빛이 더욱 좋다

 

날씨가 덥도다 물 위에 고기 떴다

닻 들어라 닻 들어라

갈매기 둘씩 셋씩 오락가락 하는구나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낚싯대는 쥐고 있다 탁주병 실었느냐

 

동풍이 잠깐 부니 물결이 곱게 인다

돛 달아라 돛 달아라

東湖를 돌아보며 西湖로 가자꾸나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앞산이 지나가고 뒷산이 나온다

 

우는 것이 뻐꾹샌가 푸른 것이 버들숲가

배 저어라 배 저어라

어촌의 두어 집이 안개 속에 들락날락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맑은 깊은 연못에 온갖 고기 뛰논다

 

고운 볕이 쬐는데 물결이 기름 같다

배 저어라 배 저어라

그물을 넣어 둘까 낚싯대를 놓으리까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漁父歌에 흥이 나니 고기도 잊겠도다

 

석양이 기울었으니 그만하고 돌아가자

돛 내려라 돛 내려라

물가의 버들 꽃은 고비고비 새롭구나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정승도 부럽잖다 萬事를 생각하랴

 

芳草를 밟아보며 蘭芷도 뜯어 보자

배 세워라 배 세워라

한 잎 조각배에 실은 것이 무엇인가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갈 때는 안개더니 올 때는 달이로다

 

醉하여 누웠다가 여울 아래 내려가려다가

배 매어라 배 매어라

떨어진 꽃잋이 흘러오니 神仙境이 가깝도다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인간의 붉은 티끌 얼마나 가렸느냐

 

낚싯줄 걸어 놓고 봉창의 달을 보자

닻 내려라 닻 내려라

벌써 밤이 들었느냐 두견 소리 맑게 난다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남은 홍이 무궁하니 갈 길을 잊었더라

 

내일이 또 없으랴 봄밤이 그리 길까

배 붙여라 배 붙여라

낚싯대로 막대 삼고 사립문을 찾아보자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어부의 평생이란 이러구러 지낼러라

 

 

夏詞(하사)


궂은 비 멈춰가고 시냇물이 맑아온다
배 띄워라 배 띄워라
낚싯대를 둘러메고 깊은 흥이 절로난다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산수의 경개를 그 누가 그려낸고

 

蓮잎에 밥을 싸고 반찬일랑 장만 마라
닻 들어라 닻 들어라
삿갓은 썼다마는 도롱이는 갖고 오냐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무심한 갈매기는 나를 쫓는가 저를 쫓는가

 

마름잎에 바람 나니 봉창이 서늘하구나
돛 달아라 돛 달아라

여름 바람 정할소냐 가는대로 배 맡겨라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북쪽 개와 남쪽 강 어디 아니 좋겠는가

 

물결이 흐리거든 발 씻은 들 어떠하리
배 저어라 배 저어라
오강에 가자 하니 子胥怨限 슬프도다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楚江에 가자 하니 屈原忠魂 낚을까 두렵다

 

버들숲이 우거진 곳에 여울돌이 갸륵하다
배 저어라 배 저어라
다리에서 앞다투는 어부들을 책망 하랴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백발노인을 만나거든 舜帝 엣 일본을 받자

 

긴 날이 저무는 줄 흥에 미쳐 모르도다
돛 내려라 돛 내려라
돛대를 두드리며 水調歌를 불러 보자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뱃소리 가운데 만고의 수심을 그 뉘 알꼬


석양이 좋다마는 황혼이 가까웠도다
배 세워라 배 세워라
바위 위에 굽은 길이 솔 아래 비껴 있다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푸른 나무숲 꾀꼬리 소리 곳곳에 들리는구나

 

모래 위에 그물 널고 배 지붕 밑에 누워 쉬자
배 매어라 배 매어라
모기를 밉다 하랴 쉬파리와 어떠하냐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다만 한 근심은 桑大夫 들을까 두렵다

 


밤 사이 바람 물결 미리 어이 짐작하리
닻 내려라 닻 내려라
사공은 간 데 없고 배만 가로놓였구나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물가의 파란 풀이 참으로 불쌍하다


작은 집을 바라보니 흰구름이 둘러있다
배 붙여라 배 붙여라
부들부채 가로 쥐고 돌길 올라가자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漁翁이 閑暇터냐 이것이 구실이다

 

 

秋詞(추사)


物外의 맑은 일이 어부 생애 아니던가
배 뛰워라 배 뚸워라
漁翁을 웃지 마라 그림마다 그렸더라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사철 흥취 한가지나 가을 강이 으뜸이라

 

강촌에 가을이 드니 고기마다 살쪄 있다
닻 들어라 닻 들어라
넓고 맑은 물에 실컷 즐겨 보자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인간세상 돌아보니 멀도록 더욱 좋다

 

흰 그름 일어나고 나무 끝이 흔들린다
돛 달아라 돛 달아라
밀물에 西湖 가고 썰물에 東湖 가자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흰 마름 붉은 여뀌꽃 곳마다 아름답다

 

기러기 떠 있는 밖에 못 보던 강 뵈는구나
배 저어라 배 저어라
낚시질도 하려니와 취한 것이 이 흥취라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석양이 눈부시니 많은 산이 금수 놓였다

 

크다란 물고기가 몇이나 걸렸느냐
배 저어라 배 저어라
갈대꽃에 볼을 붙여 골라서 구워 놓고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질흙병을 기울여 바가지에 부어다고

 

옆 바람이 곱게 부니 다른 돗자리에 돌아
돛 내려라 돛 내려라
어두움은 가까이에 오되 맑은 흥은 멀었도다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단풍잎 맑은 강이 싫지도 밉지도 아니하다

 

흰 이슬 비꼈는데 밝은 달 돋아온다
배 세워라 배 세워라
宮殿이 아득하니 맑은 빛을 누를 줄꼬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옥토끼가 찧는 약을 快男兒에 먹이고저

 

하늘 땅이 제각긴가 여기가 어디메뇨
배 매어라 배 매어라
바람 먼지 못 미치니 부채질하여 무엇하리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들은 말이 없으니 귀 씻어 무엇하리

 

옷 위에 서리 오되 추운 줄을 모르겠도다
닻 내려라 닻 내려라
낚싯배가 좁다 하나 속세와 어떠한가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내일도 이리 하고 모레도 이리 하자

 

솔숲 사이 내 집 가서 새벽달을 보자 하니
배 붙여라 배 붙여라
空山 落엽에 길을 어찌 찾아갈꼬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흰 구름 따라오니 입은 옷도 무겁구나

 


冬詞(동사)


구름 걷은 후에 햇볕이 두텁도다
배 띄워라 배 띄워라
천지가 막혔으니 바다만은 여전하다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끝없는 물결이 비단을 편 듯 고요하다

 

낚싯줄대 다스리고 뱃밥을 박았느냐
닻 들어라 닻 들어라
瀟湘江 洞庭湖는 그물이 언다 한다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이때에 고기 낚기 이만한 데 없도다

 

얕은 개의 고기들이 먼 소에 다 갔느냐
돛 달아라 돛 달아라
잠깐 날 좋은 때 바다에 나가 보자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미끼가 꽃다우면 굵은 고기 문다 한다

 

간 밤에 눈 갠 후에 景物이 다르구나
배 저어라 배 저어라
앞에는 유리바다 뒤에는 첩첩옥산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仙界인가 佛界인가 人間界인가 아니로다

 

그물 낚시 잊어두고 뱃전을 두드린다
배 저어라 배 저어라
앞개를 건너고자 몇 번이나 생각하고
찌거덩 찌거덩 어여차
공연한 된바람이 혹시 아니 불어올까

 

자러 가는 까마귀가 몇 마리나 지나갔느냐
돛 내려라 돛 내려라
앞길이 어두운데 저녁눈이 꽉 차 있다
찌그덩 찌그덩 어여차
거위떼를 누가 쳐서 (자취)를 씻었던가

 

붉은 낭떠러지 푸른 벽이 병풍같이 둘렀는데
배 세워라 배 세워라
크고 좋은 물고기를 낚으나 못 났으나
찌그덩 찌그덩 어여차
孤舟에 도롱 삿갓만으로 흥에 넘쳐 않았노라

 

물가에 외롭게 선 솔 홀로 어이 씩씩한고
배 매어라 배 매어라
험한 구름 원망 마라 인간세상 가린다
찌그덩 찌그덩 어여차
파도 소리 싫어 마라 속세 소리 막는도다

 

滄洲가 우리 道라 옛부터 일렀더라
닻 내려라 닻 내려라
七里灘에 낚시질하던 嚴子陵은 어떻던고
찌그덩 찌그덩 어여차
십년 동안 낚시질하던 강태공은 어떻던고

 

아 날이 저물어 간다 쉬는 것이 마땅하다
배 붙여라 배 붙여라
가는 눈 뿌린 길에 붉은 꽃이 흩어진 데 흥청거리며 걸어가서
찌그덩 찌그덩 어여차
눈달이 西山에 넘도록 松窓을 기대어 있자

 

고산 윤선도(효종 2년, 1651년)

漁父四時詞 어부사시사

 

 

이해와 감상
고려 때부터 전하여 온 어부사를 중종 때 이현보가 어부가 9장으로 개작하였고, 이것
을 다시 고산이 후렴구만 그대로 넣어 40수로 고친 것이다.

 

이현보의 어부가에서 시상을 빌어 왔다고 하나, 후렴만 떼고 나면

완전한 3장 6구의 시조 형식을 지니면서, 전혀 새로운 자기의 언어로써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는 시조이다.


봄 아침에 어부들이 고기잡이 배를 띄우고 강촌을 떠나가는 광경을 노래한 것이다. 앞
포구에는 안개가 걷히고, 뒷산에는 햇살이 비치며, 밤 사이의 썰물이 물러가고 밀물이
밀려온다. 생기가 돋고 희망에 넘치는 분위기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이윽고 배가
바다로 밀려 나가자 멀리 보이는 강촌의 경치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봄이 돌아오자 산과 들은 파랗게 물들기 시작하고, 싱그렇고 맑은 대기 속에서 제일
먼저 우는 것은 뻐꾸기다. 이 뻐꾸기는 신록이 한창 우거질 때까지 계속해서 우짖는
다. 어촌의 춘경을 노래하되, 첫 구절에 뻐꾸기를 등장시켜 어촌(그것은 농촌이라도
좋다의 봄 풍경을 노래한 것은 작가만이 나타낼 수 있는 예리한 감각이다. 특히 문장
에 도치법을 써서 표현의 모를 더욱 더 살려 놓았다. 그리고, '안개 속에 나락들락하
는 어촌의 두어 집','온갖 고기가 뛰노는 맑은 소' 등 티끌 세상과는 완전히 절연한,
선경과도 같은 어촌으로 부각해 놓아,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하게 한다. 끝 구절
첫마디에서 '맑은'으로 하지 않고 '말가한'이라고 한 것은 매우 적절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심화 자료
연강첩장도시
'연강첩장'의 뜻은 안개 낀 강과 첩첩이 겹친 산봉우리로 중국 북송 때 왕 진경이 그
린 '연강첩장도'를 보고 소 식이 찬으로 쓴 시. 그 시에 '강위에는 수심이 깊었고 산
은 첩첩인데, 공중에 높이 뜬 푸른 봉우리는 구름인가 운애인가'라는 구절이 있다. 소
식은 그림 속의 풍경을 시로 나타냈고 마침내 이 아름다운 그림 속의 사람이 되어 산
속으로 돌아가자는 감상으로 이 시를 끝맺었다.
천년노도
오 자서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고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 자서는 춘추 시대
때 초나라 사람으로 이름은 원이다. 아버지와 형이 평왕에게 죽임을 당하자 오나라로
가 오나라를 도와 초나라를 쳤다. 이 때 초나라 평왕의 무덤을 파고 그의 시체를 300
번이나 매질했다. 그 뒤 오나라가 월나라를 치자, 월왕 구천이 용서를 청하여 옴으로
오왕부차는 이를 허락하였다. 그러나 자서는 이의 불가함을 충간하다가 도리어 재상의
참소로 자결하라는 명을 받게 되었다. 이에 오 자서는 사인에게 이르기를 '내 눈을 도
려 내어 오나라 동문 위에 걸어 놓아라. 훗일 월나라가 쳐들어와 오나라가 멸망하는
것을 보겠노라.'라고 하였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오왕은 그의 시체를 가죽 부대에 넣
어 오강에 띄워 버렸다. 이 때에 강물이 노하여 큰 파도가 일어났다고 한다. 그로부터
9년 뒤 그의 말대로 월나라에 의하여 오나라는 멸망하였다. '천년노도'란 여기에서 생
긴 말로 오 자서의 충성심을 이르는 말이다.
어복 충혼
중국 춘추 시대에 초의 굴 원이 지은 어부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굴원의 본명은 평으
로 초나라 희왕때 삼려대부가 되어 임금의 신임이 두터웠다. 그러나 참소로 인하여 왕
이 멀리하므로 '이소'라는 노래를 불렀다. 그 뒤 경양왕 때에 다시 참소를 받아 양자
강변으로 유배되었다. 이 곳에서 어부사를 지어 충성심을 밝히고 멱라수에 빠져 목숨
을 끊었다. 그의 어부사 속에 '차라리 상수에 가서 강물에 몸을 던져 고기 뱃속에 장
사를 지낼지언정 어찌하여 이 결백한 몸에 세속의 티끌과 먼지를 둘러쓴단 말가'라는
구절이 있다. 여기에서 어복 충혼이라는 말이 생겼는데, 충신의 절조를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사진,글/이요조(초록글씨)

 

 

 

땅끝~보길도 / 완도~보길도 운항시간표  

땅끝~보길도 (해광운수)

    땅끝출발     보길도 출발      선박명
    07:00     07:00

해광훼리5호/장보고호

    08:20     08:20 장보고호/해광훼리5호
    09:40     09:40 해광훼리5호/장보고호
    11:00     11:10 장보고호/해광훼리5호
    12:40     12:40 해광훼리5호/장보고호
    14:20     14:20 장보고호/해광훼리5호
    16:00     16:00 해광훼리5호/장보고호
    17:30     17:30 장보고호/해광훼리5호

    구분     일반인     학생     경로     소아
    일반인      7,000원      6,300     5,600     3,500
    도서민     5,000원      4,600     4,000     2,500

    구분(차량)     보길-땅끝     땅끝-노화(산양)
    승용차,1톤      20,000      14,000
     9-12인승     22,000      16,000
     17-25인승     77,000      66,000
    45인승 버스     132,000      110,000

 

 

완도~보길도

2005년 04월 01일 ~

항차 보길(청별)발 소안발 노화(동천)발 완도발 버스시간표
1 6:30  3.5  6:50  3.5  7:00   3.5 6:40   3.5  6:20
2  8:20  3.5  8:40  3.5  8:50  3.5  7:30  1  7:10
3  9:40  1  10:00  1  10:10  1  8:40  3.5  8:20
4  11:00  3.5  11:20  3.5  11:30  3.5  10:10  3.5  9:50
5  12:20  3.5  12:40  3.5  12:50  3.5  11:30  1  11:10
6  13:40  1  14:00  1  14:10  1  12:50  3.5  12:30
7  14:40  3.5  15:00  3.5  15:10  3.5  14:10  3.5  13:50
8  16:00  3.5  16:20  3.5  16:30  3.5 15:20   1  14:50
9  17:00  1  17:20  1  17:30  1  16:20  3.5  15:50
10  18:00 3.5   18:20 3.5  18:30 3.5  18:00  3.5  17:40

 

 

 

구 분 화흥포 / 동천 화흥포 / 소안 화흥포 / 중리,이목,청별
차 종 공차시 적재시 공차시 적재시 공차시 적재시
오토바이 8,000   8,000   9,000  
경차 12,000   14,000   18,000  
승용차,경운기,1톤이하 봉고 14,000   16,000   20,000  
3.5톤 이하 20,000   22,000   30,000  
5톤 이하 30,000 35,000 32,000 37,000 35,000 40,000
25인승 이하 버스(콤비) 50,000 50,000 55,000 55,000 60,000 60,000
35인승 이하 버스 70,000 70,000 75,000 75,000 80,000 80,000
45인승 이하 버스 100,000 100,00 110,000 110,000 132,000 132,000
구 분 (일반인) 화흥포 / 동천 화흥포 / 소안 화흥포 / 중리,이목,청별
여객 4,500 5,500 7,000
중고생 개인, 군인,
보훈, 일반단체
4,100 5,000 6,300
중고생 단체, 장애(3-4급),
노인(만 65세 이상)
3,600 4,400 5,600
소아, 초등생, 장애(1-3급) 2,300 2,800 3,500

 

현지교통 : 1) 보길여객(061-553-7077)에서 버스가 보길면소재지이자 선착장이 자리한 청별리
              에서 수시로 출발
              예송리행은 5회, 중통리행은 5회, 정동리와 보옥리행은 5회씩 운행(15회 운행)
              ※ 휴가철(7월 25일 ~ 8월 15일) 30분 간격으로 운행   
           2) 보길택시(061-553-8876)소속의 영업용과 개인택시(061-553-6262) 이용.
              대부분 갤로퍼와 같은 지프형 택시이며, 요금은 구간별 정액제


정보제공자 : 1) 보길면 관광안내소 061-553-5177
             2) 537-850 전남 완도군 보길면사무소 061-553-7001
 

 

 

여행자 TIP

 

갈 곳의 여행지가 정해지면 그 곳 어디 어디를 둘러보겠다는 철저한 계획이 세워져야

한다.

낙서재는 그 터만 남아있다지만 동천석실을 그만 빼 먹었다. 택시가시분도 깜빡 잊은 듯~~

 

 

 

동천석실

제법 가파른 곳을 이십여분 헉헉대고 오르면  고산,윤선도의 독서를 위해  산위에 지어진 아주 작으마한 별실, 동천석실을 만날 수 있다한다.  책과 사람만 겨우 자리잡을 수 있는 작은 정자라한다.

그 곳까지 음식을 나르는 운반기(케블카식)가 있었다고  전한다. 아쉽게도 과학적인 유물은 흔적도 없이 불 타버렸다고 전한다. 동천석실도 다시 복원된 것이지만,

 

 

잔 들고 혼자 안자

                                - 윤선도 -

 

잔 들고 혼자 안자 먼 뫼흘 바라보니
그리던 님이 오다 반가옴이 이러하랴
말삼도 우움도 아녀도 몯내 됴하하노라

 

**잔 들고 혼자 앉아 먼-산을 바라보니

그리던 님이 온들 반가움이 이같으랴

 말씀도 웃음도 없어도 못내 좋아하노라**

 

고산 윤선도의 시 세계는 자연과 자아가 혼연일체가 되는 데에 있다.

 

사색과 독서를 위한 작은 공간, 바라다 보이는 보길도의 자연풍광이 가히 멋지다.

빌려온 이미지/동천석실에서 바라다 보이는...보길도의 산들이 마치 연잎처럼 둥그스럼하게 둘러쳐진 모습, 일부분이나마 볼 수 있다.

불타고 아직 복원을 하지못한 낙서재 터가 가장 좋은 양택지라고 한다. 세연정이 놀이의 공간이었다면 낙서재 부근은 강학하고 독서하면서 즐거움을 얻고 은둔하고자 하는 선비의 생활공간이었다.

 

 

동천석실 부근에 석간수를 모아둔 작은 못 이름도 蓮池,

부용정 앞 연못도 세연지....

고산은 보길도의 지형이 연꽃임을 알고 연꽃 화심속에 머물렀으니~~

둘러 선 산자락 안에서는 바닷일을 까맣게 모를 정도라, 뭍이 뭐 별 다르랴?

 

그림속 상상만이라도 눈에 바라보이는 이 곳!
동천석실에 앉아  蓮池, 석간수 물 한모금에도 이 세상 어떤 茶보다 그 맛이 덜하랴 싶다.

 

-이 바위에 앉아 차를 즐겨 마셨다 전한다-

 

가히 천상의 그만을 위한 무릉도원이 아니었던가 싶다.

명문대가 부잣집 아들(입양)로~  멋과 덕의 조화를 이뤄졌든들,,,싶은 아쉬움만 배낭 무게만큼 무거워져 돌아왔다.

보길도에서....

 

 

 

 

 

돌아오는 여행길은 언제나 깨달음을 하나씩  얻어오는 그 맛으로

힘든 여행에 도전할  꿈을 또 꾸나 봅니다.

 

 

 

 

 

배낭하나 달랑메고, 해남땅을 거쳐 보길도를 밟아보기는 난생 처음이라...

약간은 두렵고 또는 아름다운 남도의 첫 여행길이었다. 

이 나이에 불쑥 용기내어 난생처음 먼-길 혼자하는 여행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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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백이 떨어지는 봄날 다녀온 여행기를 간추려 생각하며

장마진  어느 여름날,  쓰다.  이요조(초록글씨)

 

 

 

 

 

 

 

특산물 먹거리 정보

보길도에가면 전복을 먹고오자!

 ☞ click~  http://blog.daum.net/yojo-lady/7603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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