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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귀엽고 이쁜 며느리도 이제는 아니구...낭자도 전혀 아니구..할머니라...
그렇지.. 나두 벌써 할머니가 되어있다는걸 새삼 느끼는순간,
나의 할머니가 생각났다..


나의 할머니....
작은 키,
작은 등치,
곱게 빗어 은비녀로 쪽찐 머리..


단아함이었을까?
어머니보다 더 먼저 가신 할머니지만 난 어머니보다 할머니를 더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눈이 펑펑내리는 날,
화롯불에 둘러 앉아 군밤과 고구마를 묻어놓으시구 기다리던
그 기다림 때문일까?


아니면 늘 요술방 같던 광(곶간) ...없는것이 없던 그곳..광!!
내 발자욱소리만 나도 광으로 달려사셔서 녹지근하게 익은 고염
한사발을 담아 오시던 그사랑 때문일까?


난 할머니 방은 광이라구 생각했다..
참으로 그방은 아무도 침범하지못하는 할머니만이 유일하게 방이었음을..
꼭 요술방같기도한 그광은
늘,
경이롭고 신비한 곳이었다.


그 곳에는 없는것이 없었다..
큰항아리마다 쌀이며 콩이며 온갖 잡곡과 과일이 항아리마다 그득 그득
담겨져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건 할머니 집 뒷마당에 웅장하게 버티고 있던
고염나무에서 달린 고염...
감항아리....고염항아리가 따로 따로 있엇는데 난 유달리 고염만
달라구 보챘다.


감맛하구는 구별이 쉽게 되진 않았는지 모르지만 난 왠일인지
감보다 고염을 좋아했다..
그 달콤하고 입에 착착 감기는 고염의 그 특유한 향에 반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달리 씨가 많았지만 난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옆에서 고염씨를 하나 하나 건져내어 주시는 할머니가 계셨으므로..
난 그렇게 씨가 많은줄도 몰랐다..
이다음 세뤌이 흘러서야 고염씨가 많았음을 알았다..


할머니...늘 군불지핀 아랫묵에 펼쳐논 이불같던 할머니...
언제나 따스하구.......
늘 폭은하고...
근심 걱정은 사르르 녹여주던 곳..


우리들의 고향같은 할머니...


난 우리들의 손자 손녀에게 나의 할머니같은 사랑을 줄수 있을까?
추운겨울 날,
아랫묵의 이불같은 사랑을 줄수 있을까?
지금 곶간도 없구...
화롯불이 꺼진지도 오래인데...난 무엇으로 그들에게 아름다운
사랑으로 기억될수 있을까?


내마음 한자락에 화롯불도 지피고..
곶간도 만들어놓고.
사랑의 열매로 곶간을 가득 채운후 나의 손자..손녀들에게
하나 둘 꺼내 줘야 할텔데....


오늘은 정말 기억 저편에 계셨던 할머니를 꿈에라도 뵈올수 있음
좋겠다..
은비녀로 쪽찐 할머니를....

유경선(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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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귀엽고 이쁜 며느리도 이제는 아니구...낭자도 전혀 아니구..할머니라...
그렇지.. 나두 벌써 할머니가 되어있다는걸 새삼 느끼는순간,
나의 할머니가 생각났다..


나의 할머니....
작은 키,
작은 등치,
곱게 빗어 은비녀로 쪽찐 머리..


단아함이었을까?
어머니보다 더 먼저 가신 할머니지만 난 어머니보다 할머니를 더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눈이 펑펑내리는 날,
화롯불에 둘러 앉아 군밤과 고구마를 묻어놓으시구 기다리던
그 기다림 때문일까?


아니면 늘 요술방 같던 광(곶간) ...없는것이 없던 그곳..광!!
내 발자욱소리만 나도 광으로 달려사셔서 녹지근하게 익은 고염
한사발을 담아 오시던 그사랑 때문일까?


난 할머니 방은 광이라구 생각했다..
참으로 그방은 아무도 침범하지못하는 할머니만이 유일하게 방이었음을..
꼭 요술방같기도한 그광은
늘,
경이롭고 신비한 곳이었다.


그 곳에는 없는것이 없었다..
큰항아리마다 쌀이며 콩이며 온갖 잡곡과 과일이 항아리마다 그득 그득
담겨져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건 할머니 집 뒷마당에 웅장하게 버티고 있던
고염나무에서 달린 고염...
감항아리....고염항아리가 따로 따로 있엇는데 난 유달리 고염만
달라구 보챘다.


감맛하구는 구별이 쉽게 되진 않았는지 모르지만 난 왠일인지
감보다 고염을 좋아했다..
그 달콤하고 입에 착착 감기는 고염의 그 특유한 향에 반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달리 씨가 많았지만 난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옆에서 고염씨를 하나 하나 건져내어 주시는 할머니가 계셨으므로..
난 그렇게 씨가 많은줄도 몰랐다..
이다음 세뤌이 흘러서야 고염씨가 많았음을 알았다..


할머니...늘 군불지핀 아랫묵에 펼쳐논 이불같던 할머니...
언제나 따스하구.......
늘 폭은하고...
근심 걱정은 사르르 녹여주던 곳..


우리들의 고향같은 할머니...


난 우리들의 손자 손녀에게 나의 할머니같은 사랑을 줄수 있을까?
추운겨울 날,
아랫묵의 이불같은 사랑을 줄수 있을까?
지금 곶간도 없구...
화롯불이 꺼진지도 오래인데...난 무엇으로 그들에게 아름다운
사랑으로 기억될수 있을까?


내마음 한자락에 화롯불도 지피고..
곶간도 만들어놓고.
사랑의 열매로 곶간을 가득 채운후 나의 손자..손녀들에게
하나 둘 꺼내 줘야 할텔데....


오늘은 정말 기억 저편에 계셨던 할머니를 꿈에라도 뵈올수 있음
좋겠다..
은비녀로 쪽찐 할머니를....

유경선(방울)
















< 사랑하는 제자 승수에게 >

사랑하는 제자 승수야!
네가 정든 모교를 떠나 서울로 대학에 진학한지도
벌써 6년이란 세월이 흘렀구나. 다시 한번 세월의
무상함을 절감해본다.
진달래꽃. 철쭉꽃이 만발하여 호수와 함께
어우러진 모교의 정경은 변함없이 한 폭의
그림처럼 여전히 아름답단다.
각설하고, 승수야! 너와 나의 인연은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1996년 3월 신학기에 내가 맡은
3학년 4반에 배정되어 온 너는 유난히 나를 긴장시켰었지....
너의 신상명세서 (이름은 이승수, 나이 19세, 인문계. 자연계를
통틀어 전교 수석늙으신 홀어머니 슬하의 막내.
40이 넘도록 결혼도 못하고 객지로 전전하는 형이
있음. 13평 임대 아파트에 거주. 어머님은 60이 훨씬
넘었으나 파출부로 생계를 유지. 너의 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물리학자가 되는 것)이것이 너의 전부를
알 수 있게 하는 자료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사시사철 자전거로 통학하는 싸이클 맨, 우리 학교에서
싸이클 맨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너였으니까.....눈길을 달려오다 넘어져 피투성이가 된
너를 데리고 병원에갔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구나!
언제나 때가 잔뜩 낀 교복차림. 겨울에도 플라스틱 도시락을
싸와 난로 위에 데워 먹지도 못했던 너!
이런 너의 모습이 안타까워 월급날에 큰 맘 먹고
보온 도시락을 사주었었지.
부끄러운 듯 씩 웃는 너의 모습은 천사의 미소!
바로 그것이었구나.
나는 너를 서울의 K대 물리학과에 꼭 보내리라고
굳게 다짐을 했었다.
가정환경도 좋지 않은 네가 네 꿈을 펼칠 수 있는
것은 그 대학을 가는 길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우리 학교는 고교 평준화가 해제되어
중위권 학교.중위권 학교에서 서울의 K대에 진학하는
것은 정말 어려웠었지...
그러나 기적이란 것도 있으니까, 너와 내가 최선을
다한다면 분명히
하늘도 우리를 도우실 거야......
"승수야! 힘내라! 너는 단순한 내 제자가
아니라 내 아들이란다.
아버지를 믿고 열심히 하렴”네가 어려워 할 때마다 널
불러 격려를 잊지 않았구나. 많은 사연과 추억을 남기면서
우리들의 고3은 그렇게흘러갔구나.
대학수학능력시험 결과가 발표되어 200점 만점에
155.7을 얻은 너였었지.

서울의 K대에 가기는 좀 어려운 점수였지만 본고사도
있으니까 여기서 만회를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본고사 준비를 위한 난관은 참으로 험난한 길이였구나.
본고사를 지도해 주실 선생님을 선정하는 게
참으로 어려웠었다.
모두가 꺼릴 수밖에 없는 게 선생님도 공부를
많이 해야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심청이 젖동냥하듯 여러 선생님을
찾아다니며 " 우리 승수 좀
가르쳐 주십시오”하고 애걸복걸하고 선생님을
선정하실 수 있었구나.
넌 수학과 영어를 아주 잘 봐서 좋은
성적으로 합격했었지....
그날의 감격을 어찌 글로 쓸 수 있겠느냐!

각고의 1년이 주마등처럼 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었다.
이곳 지방신문에서도 큰 관심을 가지고 보도해주었었지.
사랑하는 제자 승수야!
너의 합격을 필두로 우리 3학년 4반은 52명 전원이
대학에 합격하는 경사가 나기도 한걸 기억하겠지?
우리는 하면 된다는 굳은 신념아래 오직
앞만 보고 달려온 것이었다.
우리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 우리가 해냈다는
걸 보여주었구나.
이런 경사스런 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난관이 우리를 기다렸었지.
합격만 하면 모든 게 끝난 줄 알았는데.......
등록금 일백오십만원. 파출부 홀어머니의
수입으론 어림도 없는 액수였다.

내가 저금통장을 털어 100만원을 내놓고
동문들이 모금을 해서 50만원을 만들어
우선 등록을 했었구나.
졸업식장에서 내가 너에게 장학금으로
주었던 100만원을 전달하는 날,
너와 나는 사나이의 진한 눈물을 흘렸었지.
교직생활 27년 넘게 하면서 너처럼 있는 정, 없는 정 다
쏟아 붓기는 처음이란다.
사랑하는 나의 제자! 아니 나의 아들, 승수야!
졸업을 한 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업에
전념한다는 너의 소식은
늘 반가웠었다.
이젠 군에 가 으젓하게 군 복무를 하고 있을
너를 생각하면 참으로
대견하고 든든하구나!
사랑하는 나의 제자 승수야!
2002년 5월 15일 스승의 날에는 어떻게 휴가를 내어
우리 3학년4반에서
꼭 만나자! 이 못난 스승도 이젠 많이 늙었구나.
흐르는 세월을 뉘라서 막겠니?
옛날을 회상하면서 텁텁한 막걸리라도
한잔 마시면서 사제지간의 정,
아니 부자지간의 정을 나누지 않을래?
넌 단순한 내 제자가 아니라 내 아들이란다!
못난 스승, 아니 못난 아비는 오늘도
너를 위해 기도한단다.
우리 승수, 잘되게 해달라고...
국토방위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다시 대학원에 진학하여
훌륭한 물리학자로써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말이다.

- 다시 찾아오는 스승의 날 5월에, 교정에서 -




누가 '결혼'을 놓고 '미친 짓이다'라고... 또는,
그 반대의 개념으로 '결혼하지 않는 것은 미친 짓이다'라고 단정지어
말 할 수가 있겠는가..

이 책은 문장이 무겁지 않아서 그런지 참으로 쉽게 읽혀지는 책이었다
어느 날인가 마음만 먹으면 한 순간에 주욱 잃혀지는 그런 책..
다 읽고나서 뭔가 허전함이 느껴져 나는 작가의 후기를 다시 읽어보았다

.나는 모든 독점적인 것, 권위적인 것, 성스러운 척하는 것이라면 어느 것이든
어느 계층이든, 웃음과 농담의 대상으로 삼아보고 싶다. 나는 그들을 웃기거나
비웃어주고 싶다'

작가 이만교,
그는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과정을 밟고있으며 올해 서른 여섯(67년생)인
기혼의 젊은 작가다.

이 책을 통해 그는,
편협한 도덕론에 묶이거나 거짓으로라도 미화시키려는 결혼생활의 환상을 깨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책에는 다양한 결혼생활(결혼관)들이 등장한다.
이런 소재를 통해 작가는 결혼의 불완정성을 말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나, 마지막 책장을 넘겨닫으며 나는 왠지 공허한 마음이다.
세상 어느 누구의 결혼생활이 완벽할 수 있겠는가마는..
결혼이 모든 잘못된 사생활의 청산을 의미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어야한다고는
말할 수 없을지라도..

그래도 결혼은,
조금쯤은 신비롭고 황홀한 감정이 싹틔워 자랄 수 있도록 성스럽고 순수한
것이라고 말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현실적 손익계산서가 너무 분명한 그런 것이 아닌..사랑...적어도
서로에게 마음으로부터의 충성을 맹세하는......

2001년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이라 그런지(?) 오늘날 우리 젊은이들의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사고의 개념과 또 그로인한 변화된 결혼관(동거도 포함)이
너무도 선명하게 잘 그려져 있는 듯하다.

그런데 한가지,
작가 후기 끝부분에...무엇보다 아내에게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어서
기쁘다는 그의 말은 참으로 재밌다. 그가 붙인 소설의 제목과는 너무도
모순적인..그러나..참 따뜻하게 전해져오는 말이었다.

모든 따뜻한 인간관계의 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곧잘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가족적이다' 라고..

나는 그래서..
결혼은 가족을 만드는 가장 기초적인 작업이고,
그 행위는 '인간의 가장 따뜻한 짓이다' 라고 말하고 싶다.
그 과정에서야 비록, 견딜수 없는 추위를 느끼게하는 순간 수 많이 있을지라도..

결혼은, 미친 짓이다? 후후~


솔향






Untitled Document











나는 잎이외다.

피는 새싹이든...
지는 꽃잎이든...

아무튼 나는 잎이외다.

언젠가는
홍차빛으로 퇴색하여
끝없이 추락하고말....

그러나
난 당연한 일이었노라
말 할 거외다.

내가 꽃잎이었다면
씨방을...
영글게 했고

내가
나뭇잎이였다면
뿌리나 줄기에게
영원의 호흡을 실어다 날랐고

내가
한해살이
풀잎이였다면
새 잎을 돋게 할
기꺼운 몸짓이었음을...


2002년 5월13일에
이요조









바람이 지나간 뒷 자리 *소요산*





지난 여름 폭퐁우 후


2000년 여름 '토네이도' 큰 바람 스친 후,


그 산으로 들어가는 들머리엔
키가 큰 프라타나스가 얼마나 듬직하게 서 있는지 언제나
입구서 부터 마음이 넉넉해 진다.
하늘이며,산, 나무, 모두가 세수를 하고 나선 모습이다.


큰 비, 큰 바람이 몰고 간 뒤의 소요산.....

일상에 지쳐 잠간 다녀오는 소요산도 내게는
엄연한 여행이다.
숲 길로의 여행, 혼자서, 그것도 여자 혼자서 산 길을 찾는다는게,
여느 사람의 눈에 그렇듯 평범하게는 보이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잘 찾지 못 하던 곳이었다.

오늘처럼 태풍이 한차례 몰고 간 뒤,
산은 정갈하게 몸을 씻고 일어선다.
폭풍우로 하여금 고난을 견뎌 낸 의연함이 당당해 보이기 조차 한다.

모진 바람에 그 한 몸, 견디지 못하고 와지끈 부러져서
아픈 허리를 드러내 놓고 누워있는 나무도 보인다.
나무 등걸이 버짐 핀 것 같다고 해서 붙여진 우리 이름 ‘버짐나무'
무엇이든 이렇게 장구한 세월 오래 자라나면 볼만하구나 생각하며
그 듬직하고 장한 나무를 손으로 어루 만져 보았다.

여름 장마가 가는 듯 하더니 곧 이어 태풍이 왔다.
얼마나 무섭게 불어대는지.... 공포를 동반한 번개.....
폭우.... 오늘 아침만해도 태풍의 여파로 비가 간간이 뿌렸는데..
지금은 거짓말처럼 맑아졌다. 침수된 곳도 더러 생겨나고....
모처럼 사람들은 분주해졌다.
그런데 나는 갑자기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폭풍우가 지나간 뒷자리를 지켜 보고 싶었다.

무시 땐 한 번 오기가 주차비에..입장료에...
별 것 아닌 것에 선뜻 내키지 않는 곳이었는데....
오늘은 그 사실이 외려 고맙다는 생각마저 든다.
꼭 필요한 사람에게만 자연으로의 여행을 허락함으로 이나마 깨끗한
모습으로 보존되어 나를 품어줌이....

구경꾼은 정말 아무도 없다.
아~~ 이 고즈넉함이 너무나도 좋다.
산과.. 나무들이 어려운 역경을 마악 벗어난 후즐그레한 모습이다.

그러나 부러진 나뭇가지를 치우는 공익 요원들 마저 돌아가고
아무도 없는 골짜기엔 지금부터 아무도 모르게
숲속 요정이 다시금 활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폭풍우가 괴로운 것이 아니라,
폭풍우로 하여금 다시 놀라운 새 얼굴로 변신하는
숲속의 마술이 시작되고 있었다.
'어치' '딱따구리' '?'등의 보호조류 구역이기도 하다.
새들도 바람에 며칠 동안 놀란 가슴을 달래느라 그러는지
더 수다스러워졌다.


매월당 김시습이 시를 읊으며 소요(산책)했다고 해서
이름하여 소요산이라 불린다.
요석공주의 궁터 앞을 지나며 나는 요석공주가 되어본다.
원효가 공주에게 보낸 연서(戀書)중 "... 그대의... 도끼 자국에... 나의...
기둥을 받치게 해주오..."가 있었다고 하니,
요석공원에 입구 안내판에..도끼 운운이 있었지만...
그 것을 알고 새겨듣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원효가 요석을 사랑할 때 그 문제의 도끼 꿈을 꾸었다 한다.
그 얘기를 전해들은 ?? 가 말하기를 이 나라에 곧
큰 인물이 태어날 증조라고 했다는데,
그래서 과연 '설총'이 태어났나보다.


그리운님을 지척에 두고 들머리 이 곳에다 움막을 짓고 기거하면서 님을 기렸을,
님이 쳐다 볼 하늘, 달, 별, 구름, 바람까지도 가까운 곳에서
느껴보는 것 만으로 잠 못이루는 밤을 삭여 내야만 했던 그 사랑을,
요석 공주의 사랑이 묻어나는 계곡, 앓던 사랑을 식혀주던
그, 바람이 분다. 아주 감미롭게......

원효 폭포까지 이르는 너른 산책로는 늘어 난 물로 아예 작은 시내가 되어 흐르고 있다.
잔잔한 물 여울을 끊임없이 그리며 흘러내리고 있는 특별난 모습....
끊임없이 끊임없이 줄지어 흘러내린다.
여름이라 가벼운 신발을 신은 내 발을 흠씬 적셔 주면서....
내딛는 발자욱마다 양옆으로 갈라지는 작은 물여울들.....
난 때아닌 어린아이마냥....발끝에 닿는 물을 느끼며...
마음 가득.. 세상의 묵은 찌거기의 눅진함도 함께 흘러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폭풍우가 지나간 뒷자리에 계곡은 넘쳐 나도록 많은 물들로
골짜기마다 얼굴을 달리하고 흘러 내렸다. 잔잔하다가... 우람차다가,
요염하기도 해서, 그만 꾐에 빠져 계곡으로 내려간 나는
치마를 걷고는 종아리까지 간지럽히는 물살을 느껴본다......

그(원효)의 체취가 용해된 듯해서
두 손 모아 가득히 물을 담아 ‘요석’의 심정이 되어도 보다가.....
원효마저 그리워해 보다가......
계곡은 오랜만에 갈증을 풀고 만족한 소리로 흘러내린다.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계곡의 생김새나 그 바닥의 각기 다른 돌들로 하여 빛갈 마저도
달리하고 흐른다.
소리도 다르고 흐름도 다르다. 파란 청석이 깔린 곳은 정말 쪽빛으로...
흰 돌이 깔린 곳은 너무도 물빛이 투명해서 햇빛마저 아프도록 부서지고 있었다.

천천히 산책로를 따라 오르며....
나는 계곡의 이야기 소리를 엿듣고 그들의 모습을 훔친다.

물 가에 선 한 나무 등걸이 온통 푸른 이끼로 덮여있다.
아주 자세히 드려다 보면 거기엔 작고도 여린
실 같은 빨간 버섯이 돋아있다.
너무 여려서 가까이 코를 대고 보지않으면 보이지 않을.....
조금 있다가 해가 나고 또 마지막 여름날 태양이 작열하면
버섯은 감쪽같이 모습을 숨길 것이다.
녹색 융단에...꽃술을 박아 놓은 듯한,
보석처럼 영롱한 빠알갛고 아주 쬐그만 .......

또 한껏 물 머금은 칡꽃은 조금만 건드려도
보라색 꽃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다.
벼랑 위에 걸린 물푸레 나무도 부채살처럼 활짝 핀 가지마다
흰 꽃을 탐스럽게 달고 뻗어있다.
단아하게 생긴 청 단풍은 정수리에 벌써 붉은 화관을 쓰고
맑게 세수를 끝내고 서 있었다.

자연은 계절마다 얼굴을 달리한다지만
더 은밀히 지켜보면 시시각각으로 얼굴을 달리한다.
자연이 내려 비추는 조명에 따라....
어느 곳은 연녹색으로 화사하다가 또 어디는 필력 좋은 화가의 강렬한
유화 한 점을 보는 듯하다가 또 한켠의 어둠침침한 숲 사이론
숲속 정령이 깃든 듯 마치 엄숙해서...
산란했던 마음의 옷깃을 여미며 숙연해 지기조차 한다.

콸콸 소리내며 흘러내리는 원효 폭포 앞에 다다르면
소, 한 켠은 정작 시침 뚝 떼고 면경지수로 침묵하고 있다.

등산로로 따라 자재암을 향해 다리를 건느려고 보면 이름하여 俗離橋다.
나름대로 해석은 속세를 이별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 다리를 건느면 속세가 잊혀질 정도의 경관이 펼쳐 진다고 보아도
아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무언가 세상의 무거운 짐을 이 순간이나마
벗어놓고 이 다리를 건느고 싶다.

속리교를 건너 폭포를 휘감아 돌 듯 가파른 계단을
힘겹게 오르면 마치 신선이 된 듯,
폭포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아래를 가파르게 내려다 보게 된다.
눈 앞에 그 정경은 정말 자연의 심오한 예술이다. 갑자기 세상이
속되게 느껴진다. 진정 속리교를 건너 왔음인가?
괜스레 한 송이 꽃으로 낙화하고 싶으리만치 절벽의 절경이 묘하게도
가슴에 와 일렁인다.

다시 계단을 거슬러 내려 가며 자재암 초입으로 들어가는
또 하나 자그마한 다리...
이름하여 洗心橋, 아~ 마음마저 닦으란다.
산을 오르느라 조금은 힘들어 버거워 하는 사람들에게
고려 때 나옹선사의 시가 팻말로 한켠에 조용히 비켜서서
맞으며 한 글자 글자 마다 속세에서 지친 心身을 달래어 준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잡고 티없이 살라하네.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세월은 나를 보고 덧없다 하지 않고

우주는 나를 보고 곳없다 하지 않네.

번뇌도 벗어놓고 욕심도 벗어놓고

강같이 구름같이 말없이 가라하네.



아~ 그렇게 마음마저 씻고 건느란다.
계곡은 점점 깊어지고...
주위의 풍광은 수려하다 못해........점차 신선경계로 접어드는 듯하다.
(이상이 산책로에서 가벼운 등산로까지의 이야기였습니다.)


.... 바람이 휩쓸고 간 뒷자리.
아무도 즐겨 찾아 주지도 않는 그곳으로, 당신도 지금 달려 가 보십시요.
뜻밖에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입니다. 사람의 일도 예외는 아니지요.
※얼마 전에 가 보니 세심교의 단아한 다리 난간이 없어졌다.
별, 보수공사도 아닌 것 같았는데...너무나 아쉬웠다.


경기도 동두천시 북동쪽에 위치한 소요산은 규모는 작으나,
예로부터 경기의 소금강이라 불리울 만큼 산세가 수려하고 수목과 폭포,
봉우리가 그득해 서울 근교의 산행지로 인기를 얻어 왔다.
또한 1981년엔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어 산 입구에 주차장과
식당, 여관, 야영장등의 편의 시설이 갖춰져 있다 .

소요산이란 이름은 매월당 김시습이 자주 소요를 했다고 해 붙여졌으며,
원효가 수도했다는 원효대,
산 정상인 의상대 옆에 있는 공주봉
(원효가 요석공주를 두고 지은 이름),
요석공주가 머물렀다는 별궁터 등 곳곳에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에 얽힌 전설이 담겨 있는 곳이다.

소요산에 오면 꼭 들러봐야 할 곳이 산중턱에 있는 자재암이다.
이 곳은 원효대사가 도를 깨친 곳으로
요석공주와 인연이 있은 후 이곳을 찾아와
수행하다가 지은 절이라고 하는데,
수행도중 관세음보살과 친견하여 자재무애의
수행을 쌓았다하여 자재암이라 했다고 한다.
자재암 주변엔 원효폭포, 옥류폭포, 청량폭포, 선녀탕 등의
폭포와 자연 석굴인 나한전과 금송굴 등 볼거리가 많다.










이 요조.







그 때는..

산발머리 위 헝겁떼기
나빈줄 알았네


허리 조여든
형형색색 고운 빛 무리
꽃 무덤인 줄 알았네


얼굴에 앉은 꼬장물
문신인 줄 알았지


덩실 넘나들던 춤사위
흥이나마 나와 같아
쪼그린 다리 아파와도
손바닥 부벼댔지


아우성대는 돌 팔매 속
바가지로 거부하며

단 하나 너의 편
날 안아줬는데
무서움에 울어버린 여렸던 나..


찢어진 버선 위로
닭똥 같던 눈물 내릴 때
니가 안스러워
밤 꼴딱 새웠었지


배 안의 모성땜에
주린 뱃속으로 삼키던
깨진 바가지의 물


느닷없이 봄 밤에,,
금달래 니가
그냥 보고싶다






(대구를 떠돌던 미친 여자 금달래,,를 그리워하며)



미치광이풀/가지과


다산초당                                 자료출처:강진사랑

음악듣기-청솔의 恨




차를 마시며 글/송희석


연전에 동료 교사인 소설가. 수필가등 지인들과 남도 여행을
다녀왔다.
경상도 지역은 수학여행이나 신혼여행때 들러본 곳이
많지만 정작 고향인 전라도 땅은 그렇지 못했다.
멀리만 느껴지던 남도의 산수도 그렇거니와 말로만 듣던
전라도 풍물을 직접 보고 확인한다는 자부심도 대단해
줄곧 가슴이 설레였다.

남도의 본고장 목포의 유달산과 남농기념관을 거쳐
고산 윤선도 선생이 < 어부사시사>를 남긴 보길도
부용동까지 배를 타고 찿아들었다.
연일 계속되는 고된 여정에다 그고장 해산물로 독주를
마신 까닭에 몸은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파도소리에 밤잠을 설친 우리들은 날이 밝자 마자 첫배를
타고 보길도를 빠져나왔다.
완도에서 아침 해장을 하고 곧바로 남해안 국도를 타고
순천이나 여수쪽을 향해 달렷다.
예정에도 없던 이정표가 눈앞에 다가왔다.
강진 2키로미터를 남겨둔 지점에 <다산초당>입구가 나타났다.
다산 정약용 선생.....순천이나 여수가 일정에 있던
목적지도 아니었다.가다가 쉬고 싶으면 쉬고 머물고 싶으면
목로집을 찿는 그야말로 발 닿는 대로의 여행이였기에 일행의
의견만 맞으면 여정이 되었다.



다산 정약용

하늘을 치솟는 대나무와 해송! 우거진 산자락도 에사롭지
않았다. 여기가 18년 유배지라니.....도무지 믿기지 않을
만큼 산세가 순하고 풍광이 다사로웠다.
다산초당은 자라등같은 섬과 섬사이의 바다를 내다보고
앉아 있엇다.귀한 손님들이 찿아주었다며 산지기 노인이
직접 녹차를 달였다.

우리들은 차가 알맞게 다려질 동안 <목민심서>를 집필하고
<시경강의>와 <아언각비>를 구상했다는 외채와 정자를
두루 살폈다.선생이 직접 차를 재배한 차밭도 초가 뒤켠에
있었다.다산초당을 내려와 노인과 작별할 무렵이었다.
설친 잠때문에 머리를 짓누르던 두통이 어느새
가시었다. 계속되는 과음과 여독에 찌들었던 몸이
가벼워진 것은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 보니 초당에서 거푸 석잔이나 마신
녹차였다. 다산선생이 직접 차를 재배하여 달여 마시던
그 터밭에서 나온 녹차닢에 묻어나던 은근한 바람소리....
여행을 마치자 나는 요선동에 있는 불고문화원을 찿아가
찻잔과 녹차를 샀다.녹차 마시는 내모습을 알고
중국 여행길에 녹차를 선물하는 선배도 있었다.

여동생이 일본산 녹차를 가져오기도 했다.
어떤 선물보다 소중하고 넉넉하게 느꼈다.
그러나 내가 직접 차를 고르고 비싼 대가를 치르는
수고야 말로 가장 차맛이 우러나는 사실도 알았다.
다향과 차맛을 알기까지 10여년!
아직도 다산초당에서 느낀 입안 가득 흐르던 고요를
잊을 수 없다.





다산초당 현판

오늘 새벽에도 차를 달여 마시며 이글을 썼다.
창밖에는 다산초당에서 캐어다 심은 청죽이 강릉
오죽과 함께 나란히 나를 쳐다보고 있다.
차를 마시며 다향과 함께 썼던 내 논문들이
그래도 대학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음을 생각하면
마음은 늘 부자이다.
다향과 함께 하는 독서도 내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영랑 김윤식 시인>






모란꽃밭 너머의 영랑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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