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글/이요조

2002/6/5(수) 14:13 (MSIE5.0,Windows98;DigExt) 211.222.168.163 1024x768


백진스키의 그림읽기








칼럼을 쓰면서.....절반을 팔아먹은 영혼을 그리고자 했다.

자...... 악령을 어떻게 표현한다?

난, 조카넘(에니메이터).....홈피에 들어가서..... 괴물 그림을 훔쳐다 써 볼까..잠간 생각 타가.....

어디까지나 내 영혼 문제이지 싶어 그냥 내키는 대로 그리기로 했다.

치졸한 낙서에도 못 미치지만.......

.............

善을.....돋보이게 하기위한 惡을 具現하는 법!

밝음을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상대적 음영법!

...............

세계문학 전집편에 일본 것을 읽었다.....

거의 20여 년 전에.... 작가도 잊었고...아마 일본에서 우리나라의 '이상'쯤으로 추앙 받는 작가로 기억된다.

제목은 무엇이었는지..... 기억에도 없고 地獄圖 라고 만 생각된다.

일본도 아주 헐벗고 굶주렸던 옛날의 이야기를 그렸다.

일본문학을 처음 접하면서.......그들의 劍 같은 차고도 냉랭한...정말 劍의 文化임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귀한 독서였다.

地主가.....그림을 꽤나 좋아했다.

그 당시...한 괴벽의 화가가 있었는데.....

그의 화실에는.....아마...구역질 날 정도의(아마 죽은 짐승들의 사체,,,뭐 그런 것이라 생각된다.)

이해가 되지 않을 이상한 광경들이 묘사되었던 걸로 기억난다.

어느 날 지주는 그 괴벽의 화가에게...지옥도를 부탁하고 그 화가는 그림의 소재를 묘하게도

사람을 죽이자고 주문하기에 이른다...

불붙는 꽃가마에..... 사람을 태워서 죽이는... 지옥을 더 이상 표현할 수 없는...

해서...드디어

제일 중요한 자리에 넣을 ...마지막 그림을 그릴 그 날이 다가 왔다.

꽃가마가 나타나고...이내 화염에 휩싸였다.

꽃가마 휘장이 불에 미친 듯 타 오르고...그 속에서 몸부림치는 입에 재갈을 물린 아리따운 처녀는

그 화가의 단 하나뿐인 혈육, 홀로 길러왔던 외동딸이였던 것이다

지주의 계략에 넘어 간 것이다. 아니 그림만 전부였던.....자기의 계략에 스스로 몰린 것이었다.

고통에 일그러져......짐승과도 같은 포효를 하며.....그림을 그렸다는 소설...

지금도..... 책장에 꽂혀있긴 하지만 꺼내어 확인하고 싶진 않다.

아무튼 나의 낙서 같은 악령그림을 그린 후, 나는 .......벡진스키의 작품을 만난다.

분명 으스스한... 그림인데도...... 우리는 그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이 그림을 그렸는지 알아야만 한다.

나도 예의 그 地獄圖같은 생각에만 미처 먼저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러나,

그가 어떤 사람인지......왜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그의 프로필을 알고 나자....

그의 그림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전쟁을 끔찍하게도 싫어하는 반전파임이 틀림없다.

난, 그의 그림에서..지구의 종말을 보는 듯했고......황폐의 고독 무서움,,,,,참을 수 없는 적막같은 것도

보았다.......소리가 사라진.....아니.......모든 것이 실종된....폐허의 잔재들......

얼마 전 무너져 악마의 얼굴로 불타오르는 화염에 휩싸인 쌍둥이 빌딩도 보았다.

부둥켜안고 있는 남녀의 유골에서는 봄페이 최후의 날을 보는 듯했고......

(봄페이 전시관에는 화산재에 뒤엉킨.....남녀의 부둥켜 안고있는 마지막 포옹이...조각처럼 된,

화산석에 쌓여 화석으로 된 것을 전시하고 있다 함)

오염된 환경으로 썩어 문드러지는 미래를 보았다.

마치 그의 그림은 지구종말의 히든카드처럼 우리에게 예시의 경고를 해주는듯 했다.

미리 보는 지옥......

그 일본 문학의 지주가.....

그 때......벡진스키를 만났더라면...그 화가의 고명딸을 그림의 소재로 내어놓고

그 화가는 미친 듯 붓을 휘두르다가 죽어갔을,

그런 쓸데없는 노력은 안 했어도 되었을 것을.....

난, 그림을 대하면서 화가의 어린 시절 암울하고 무서웠을..... 그의 기억

戰後에는 건축가로 재건에 한몫하면서...그가 유달리 더 느꼈을.....전쟁, 참혹의 결과를...

극명하게 극단화시킨..... 포스트모더니즘.......그의 작품세계,

그가 만약에 살아있다면.....나는 정말이지 그에게로, 조용히 다가가서...
어머니처럼 가슴으로 그의 머리를 포근히 안아주고 싶을 정도의 깊은 연민이 끓어올라
온몸에 전율이 다 일어 날 지경이었다.

글/이요조



"Beksinski's powerfully unique paintings are such as I have never before seen"

H.R. Giger

2001.11.12

1929년 폴란드 남동쪽 샤녹에서 출생하였다.
어린 시절은 제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서 우울하게 보냈으며,
아버지가 측량기사인 것에 영향을 받아, 1947년 폴란드 독립 후 건축학을 공부하였다.
대학 졸업 후에는 교수로 취임하여 전후 폴란드 재건에 힘썼다.
전쟁의 와중에 많은 사람이 징용되고,
폴란드의 문화는 비천한 것으로 전락된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낸 영향으로 위기감과 상실감,
절망감을 작품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파스텔과 연필을 주로 사용한 드로잉은 인간의 형상을 왜곡시킨 것이 대부분이며,
그가 추구한 추상적 구조는 그의 정신세계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드로잉, 페인팅, 플라스틱 재료의 사용, 철판 조각과 석고 부조를 제작하였는데,
이것은 단순히 물성이 변형되어 자유로운 형태로 표현된 것에 그치지 않고,
전쟁으로 인한 파괴와 대지의 죽음, 황량한 도시의 이미지를 초현실주의로 표현한 것이다.

1950~1960년대의 작품은 볼펜과 잉크를 사용한 것이 많은데,
주제가 매우 에로틱하고 생생하다. 피부의 파괴를 통해 뼈와 살이 분리되는,
신체가 분해되는 과정도 묘사하였다.
이러한 벡진스키의 은유법은 대부분 삶의 단조로움을 표현한 것이며,
그가 나타낸 에로틱한 꿈과 상상력의 세계는 '환시 미술'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구축하였다.

(출처: 두산 세계 대백과 EnCyber)



BEKSINSKI 1973. Craie noire Black chalk
그라베 그 여자의 몸 속에는 그 남자의 屍身이 매장되어 있었다
그 남자의 몸 속에는 그 여자의 屍身이 매장되어 있었다
서로의 알몸을 더듬을 때마다 살가죽 아래 분주한 벌레들의 움직임을 손끝으로 느꼈다
그 여자의 숨결에서 그는 그의 屍臭를 맡았다 ......







































** 첨언: 난 내 글에다 음악을 즐겨 넣는다. 좋아는 하지만 그리 해박하진 않은 편이다.
이 번 벡진스키 그림에는 어떤 음악이 좋을까? 난...두어 번 짜 맞추기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종내는 베르디의 오델로중......아베마리아를 선택했다가 또 다시 [주기도문]으로 바꾸었다.
어쩌면...밝음과..어둠이...양존 하여 잘 조화되듯이..... 폐허의 그림 위에 이 음악이 절묘하게도
맞아떨어질지......미처 몰랐던 사실이었다. **





1929년-폴란드 카르파티아산맥 근처의 도시 "샤녹(sanok)"에서 출생

유년시절을 2차대전의 영향으로 암울함속에서 보냄.

Cracow에서 건축학을 전공.

졸업후 건축감독으로 몇년을 보내던 중 건축설계에 대한 압박감과 지겨움으로 건축일을 그만두고,예술작업에 뛰어듬

1958년-비평가들로부터 그의 사진작업들이 호평을 받기 시작함.

그후, 그는 드로잉(drawing)작업에 심취함.

그의 극사실적인 묘사와 난해한 작업이 시작됨.

폴란드 현대예술의 대표주자가 됨

1977년 - 가족과 함께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Warsaw)로 이주.

폴란드를 비롯,유럽에서 수많은 전시회를 함.

1990-새로운 매체인 컴퓨터그래픽 작업 시작.

















>







































하단부 이미지는 연소심님 올린것을 한 데 모아 보았습니다./이요조











    *폭풍우 치는 밤이오면*

    바다와
    하늘은
    맞닿아 하나 된

    슬픔이
    자맥질 하는
    바다는 배 아파하고

    눈물과 바람의
    범벅으로
    폭풍우 어둠이 오면
    하늘은 신음으로 포효한다

    난파선 같은 추억은
    하나씩 둘씩
    망각이란 이름의 포구에
    닻을 내리고

    세상을 뒤집어
    삼킬듯한
    폭풍우 치는
    칠흑의 밤이 내리면

    포구로 돌아와
    정박한
    한 데 묶인 배처럼

    육신은 그렇게 두고
    검푸른 바다도 그렇게 두고

    나는
    번개의 섬광을 따라
    훌훌이 갈 것이다.

    비린내
    벗어던지고
    나는 그렇게
    포구를 떠나 갈 것이다.

    황금빛
    비늘을...
    별 가루 뿌리듯
    벗으며, 벗으며,

    나는
    그렇게 가볍게
    떠나 갈 것이다.

    그렇게...
    훌-훌~`

    글/이 요조











◎ 이름:이요조

2002/10/9(수) 21:00 (MSIE5.0,Windows98;DigExt) 211.195.197.249 1024x768



쉽게 사랑을 하는 자 쉽게 잊을 터이니  
















    오리

    '누가 쉽게 사랑한다 말하는가?'

    17년 전 어느 화창한 봄날,
    이사를 와서는 아는 사람도 하나 없고 너무나 무료해서
    다섯살 난 막내와 함께 오일장터에 나가서
    오리 한 마리와 병아리 한 마리를 사왔다.

    갓 사와서는 방에다 두었더니
    병아리는 무조건하고 사람만 쫓아다니는데..
    오리는 절대 그러지 않는다.

    좀체 곁을 주지 않는다.
    혼자서 자꾸만 구석으로 피해 다니며 숨는다.
    저러다 내가 살릴 수는 있을까?
    은근히 걱정이 앞섰다.

    어느덧
    두 마리는 중병아리 중오리로 자라나는데
    병아리는 이제 엄마처럼 따르던 사람을 잊었다.

    간혹 배가 고프면 나를 알아보는지..
    어쩌는지는 모르지만
    집 앞.. 공원에서 놀다가 밤이면 집이라고 찾아드는 것 뿐,

    그런데
    무심결에 알아차린 놀라운 사실하나,
    오리가 병아리의 보호자 역할을 해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 찾으러 나서고
    어느새 닭이 되어 높은 곳을 훌쩍 뛰어 넘으면..
    위험하다고 꽥꽥거리는 간섭마저도 마다 않았다.

    모래더미가 있으면..
    닭이 올라앉아 모래 헤집기를 하노라면..
    저도 모래더미 위에 멀거니 함께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고
    둘이 꼭 친구처럼 붙어 다니기를
    이웃사람들이 보고 웃기를 시작하였다.
    "마치 부부 같다고"


    내가 외출했다가
    택시에서 내리면..
    놀던 우리 아이놈들은 힐끗 보고는 하던 놀이를 계속하는데
    오리는 뒤뚱대며 쫓아 나와 반긴 줄도 알았다.
    "허허~~ 테레비젼에 한 번 나와도 되겠는걸?"
    기사 아저씨들이 꼭 한마디씩 하셨다.

    내가 외출할 때면.. 어느새 알고 달려와서는 길바닥에 넙죽 엎드린다.
    쓰다듬어 주고 가라고...
    절대로 그냥 가면 안 된다.
    비가 와서 질펀할 때도 엎드린다.
    등을 한 번 건드려 주기라도 하고 가야한다.
    모른 척 그냥 가면.. 어느새 내 앞으로 얼른 와서는 다시 엎드린다.
    또 모르는 척하면..
    심술궂게 "깩깩~"거리며... 죽어라 양보를 않는다.
    그냥은 절대로 못가게 한다.
    몸만 더럽지 않다면..꼭 안아주기라도 못할까?

    밥을 먹으라고 공원언저리에 놀고 있을 오리를 부르면
    그러면 언제나 닭도 나타나므로

    "오리야~~~~~~~"

    조금만, 정말 조금만 있으면..
    어디서인지 나타나는.....마치 보잉 707처럼..날개를 좌악 피고는
    발이 채 땅에 닿지도 않고
    날아오듯이 오는 오리.

    추운 밤이면..
    지하실.. 연탄 보이러 있는 곳에 가서 닭이랑 잠이 드는데
    우리 남편..
    아무리 술이 취해도 지하실 입구까지 가서
    오리를 불러봐야 성에 찬다.

    "오리야?"
    " 꽥꽥( 아빠..전 여기 잘 있어요 에구 아빠 약주 많이 드셨군요 어서 들어가서 주무세요)"
    "그래 잘 자라~~ 오리야"
    "꽥꽥~ (그래요 제 걱정 마세요 여긴 따뜻하고 좋아요 아빠~)"

    *♪오리♬ click~*
    꼭 그래야만 들어오는 남편,
    내가 좋아하는 꽃나무를 위해 한 트럭이나 갖다 부려주는 남편,
    내가 좋아하는 짐승들을 더 잘 챙겨 봐주는 남편,
    나를 좋아해 주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더 잘 챙겨주는 남편,
    마누라가 좋아하는 것 하나라도 챙겨 준다는 것,
    관심 기우려 준다는 것, 사랑의 감동이다.
    나는 솔직히 그럴 때 남편이 가슴 뭉클하도록 좋다.

    내가 시조를 하게끔..
    서울로 나다니며 공부하게 도와 준 것도 남편,
    지금 이렇게 컴퓨터와 친하게 허용하는 것도 남편,
    열린마당 출판 일로 P님과 만나..다른님을 마중가는(버스정거장)길이였다.
    책발간 일 때문에 싸구려를 하나 마련한지 얼마 되지않던 핸드폰인데... 삐리릭~ 울린다.
    운전중이라 옆자리에 앉은 P님(남자 분)더러 좀 받아달라고 했다.
    버스 타고 부랴부랴 오는 y님인 줄 알고 대신 받으시라했다.
    '이런! 남편이다'
    모든 일을 그래도 날 믿어주고 성원해 주는 남편이기에
    난, 뭐든.. 그에게 숨길 필요가 없다.

    그래, 사랑은 그런 것이다.
    쉽게 곁을 주지 않아도 한 번 주면..믿고 끝까지 가는 것,

    요즘은 조금만 좋아해도 사람들은 쉬 사랑한다고 말해버린다.
    병아리 사랑이다. 그리고는 쉽게 잊어버린다.

    오리는 절대로 곁을 잘 주지 않는다.
    반면...한번 섬기면..목숨이 다하도록 섬긴다는 것을 알았다.

    아마도 오리도 집을 지키는 거위처럼 상당한 지능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왜? 나와 연(緣)이 닿는 모든 짐승들은 한결같이
    평범하지가 않은지 모르겠다.
    작은 새들마저도....

    우리 집 그 오리는 어느 날..
    지나던 아이들의 돌팔매에 머리를 맞아 죽었다.

    동네아이들의 호들갑에 나가보니..
    머리에 정통으로 맞은 상처엔 피가 흥건하고 검은 눈만 날..바라보는 듯 했다.
    눈물이 내비친 것도 같았다.


    동네 아이들도
    동물병원 데리고 가라고 아우성 이였고
    우리아이들은 울기 시작했다.
    동물병원에 데리고 가기에
    이미... 아니었다.

    나는
    이렇게 숱한 동물과의 숨겨진 이별 이야기가 많다.
    사람에게서 해야할 업 (業) 의 고를 어쩌면
    짐승과의 관계에서나마 풀고 사는 것이나 아닌지...
    감사해야 할 일일까?


    글/이요조


    요즘...컴퓨터 단말기 증후군(VDT 증후군)으로 몹시 힘이 듭니다.
    오늘역시나 그런데...

    게임프로그램을 제 좋아 즐겨 만드는 프로그래머들은 전혀 이런 증후군이 없다는군요

    해서 증후군...계속 이어 글을 쓰지 않고
    제가 즐기는 동화처럼.. 좀 슬프지만 옛 이야기에 젖어 봅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 전 언제나.. 기분이.. 정화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글/이요조



    *♪오리♬ cl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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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숭아 꽃물  


연주곡_바이올린-가곡-그리움

추고/2연에/아이들처럼//아이처럼?/작은 여자 아이처럼?/소녀처럼?



width="70%">



























*봉숭아 꽃물*



소슬한 갈바람에
봉숭아 꽃잎을 따 모아서
백반이랑 콩콩 찧어
지난여름.. 기억 저편의
냉동실에 넣어두자

초겨울 바람이
전신주를
윙-윙- 몰아치는 날...
가슴 한켠이 스산해 지는 날,
아이들처럼...
약지 하나만이라도 부여잡고
꽃물을 들이자.

내,
서걱이는 마음에도
꽃물이 스며들게끔,
예쁘게 정성껏
꽃물을 들이자.

눈이 펑펑 내리는
겨울밤에는
잘려져 나간
손톱 끄트머리에
그렁이는 눈물만큼 남은
봉숭아 꽃물을 보며
옛 추억을 떠올리자.

손톱 끝자락에
반달로 떠서 웃고 있을
봉숭아 꽃물은
모세관 현상으로
내 마음을 빠알가니 물들이고
종내는 내 뺨까지도
발그레
꽃물을 들이겠지.



이요조
2002년 9월22일 아침,








봉숭아 꽃물은 어떻게 해야 잘 들까


























size="3"> 봉숭아 꽃물은 어떻게 해야
잘 들까

미루칼럼



























봉숭아 꽃물이 잘 드는 조건에 대해 알아보고, 봉숭아
꽃의 부위별 차이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width="100%">



꽃, 잎, 줄기, 뿌리, 백반, 비닐, 실



width="100%">



1. 봉숭아 꽃잎을 말린 후 백반과 혼합한다.

2. 꽃잎과 백반의 비율은 3:1로 한다.

3. 절구공이에 혼합물을 넣고 잘 찧는다.

4. 핀셋을 이용하여 손톱 위에 봉숭아를 얹고 비닐로 감아준다.

width="100%">



봉숭아 꽃물은 봉숭아의 어떤 부위를 사용해도 같은
색깔을 보인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재료는 꽃잎이며,
최적온도는 15-25도, 물들이는 시간은 4시간이 적당하다.

























광화문 부근에서 차가 올 스톱일 때..사이드 밀러에 비친 하늘빛이 고와서 찍었는데...

사진이 영..아니네요.





**인생에 정답이란 없다**


인생에 있어서 정답이란 없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추석..
모든이들은 귀향길에 오릅니다.

고향이 없는 사람들... 남북이 분단되어 가지 못하는 사람들,
이 모습 저 모습으로 남들이 즐거운만큼,반면에 외로운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추석 전 업무가 끝난 19일날 저녁 6시~7시경.. 저녁 광화문 앞에서...
홍수처럼..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차들로 도로가 마비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연휴가 시작된 귀가길 차들은 40분도 더 되게 길바닥에 꼼짝없이 묶여 있었습니다.

교통경찰이.. 아무리 신호가 수십번 바뀌어도 보내주질 않는 것입니다.

이유는 삼청로로 가는길이나... 종로 경찰서 쪽이나 좌회전이 소통이 안돼 막혔다는군요.
4차선도로에서 꽉꽉 막힌 차들이 클락션으로 시위를 해댔습니다.

빵빠빵..빽...빵..방방~~빠~~~

시끄러워서 차창을 올렸지만... 모두는 바쁘기도 하고 몹시 화가 나있었습니다.
내가 그날은 별로 바쁘지 않았는지..막힌 차 안에서도 느긋했습니다.
그래서 차안에서 모두 클락션으로 데몬스트레이션을 하는그들을 보는 것으로 즐겼습니다.
내 눈에 비친 그들이 무지 행복해 보였거든요.

내게 가족이 없는 것도 아닌데...
짜증내고 신경질을 내는 사람들을 보노라니..
어딘가 꼭 가야 할 데가 있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기에 마음이 바빠서 짜증들이 난 것이지요.


종암동 앞길을 지나치며, 그 곳에 있을 많은 젊은 여자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고향집에 가고 싶어도 못가는 아가씨들,
어쩌다 인생이 꼬여서 제 몸하나 자유가 없는 그녀들은 얼마나 가슴이 미어질까요?

실로 오랜만에 친구 simon님이 멜을 보내 왔습니다.
추석이라.. 고향에도 올 수 없는 그 심정을...
자식이 그러할진대.. 그 부모님 마음이야 오죽할까요?

내 아이가 다리가 아파.. 수술을 하고 입원중일 때...
병원으로 가는 길 동부간선도로를 달리다가 젊은 폭주족을 보았지요.
스므살이 갓 됨직한 아이들...
뒤에 탄.. 여자 아이나 오트바이를 모는 아이나..머리는 염색을 했고
딸아이는 배와 등어리가 다 드러나는 아주 불량스런 차림새였습니다.
순간.. 왜 그 아이들마저 제 눈에 왜 그렇게도 부러워 보였는지...

아마도 그 아이들..부모님은 늘... 그랬을 것입니다.

"귀신은 뭘하나 몰라.. 저런것 안잡아 가고..." 그런 욕을 즐겨 들을 애들 같았습니다.
병원으로 가는 내눈에는 그들의 건강이 그들의 건각이.. 얼마나 눈물나게 부러웠는지요.

TV 드라마 게임 같은데서 보았을 것입니다.
어느 돈많은 집..부인이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자기에겐 전혀 애정이 없었답니다.
그녀는 내세에 태어나면.. 돈은 없어도 좋으니..
알콩달콩 사이 좋게 살아 보았으면..하는 게 소원이였지요.

모 신문 까십란에는 아들의 운동회날.. 새 운동화를 하나 사주기 위해
도둑질을 하다 잡혔답니다.
아마도 그 엄마의 소원은 또 다를 것입니다.
까짓.. 서방이야 바람을 피던 말든..무슨 상관이람..돈만 많이 갖다주면..
난, 아무 소리도 않고 아이들이랑 잘 살겠네~
모르긴 몰라도 그렇게 답을 내렸을 것입니다.

그런가 봐요.
사람이란.. 어떤 상황에 따라서.. 그 소망은 다른 각도로 나타난다는 것을요.

시골에 계시는 저희 친정 작은 아버지 이야기를 할까해요.

사촌언니는 정말이지 아주 착했어요.
그동네.. 총각이랑 연애를 했습니다.
사실을 아신 작은 아버지는 노발대발하시고 언니를 감금시키고...대단했었습니다.
그 총각이 조금,,껄렁댄다는 것을..큰 흠을 잡았습니다.
"못된넘이여...그넘은 본데도(가정교육) 없이..."
종내는 작은 아버지의 완고하신 반대로 ..둘은 결국 갑돌이와 갑순이 처럼..각자의 길을 갔습니다.
언니는 시집간지..얼마되지 않아 형부는 사고로 죽어 버렸습니다.
사촌언니는 아이만 둘 데리고 평생을 여지껏 혼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작은 아버지가 더 괴로운 것은.. 그렇게 반대하던..
그 약간은 불량스러운 청년이 사업가가 되어서
그 시골 동네에서 그 옛날..승용차 귀할 때, 포니를 끌고 오는 멋쟁이가 된 게,
너무 심사가 언짢으셨습니다.

그 언니 밑으로 제 사촌 여동생들이... 네명 더 있었는데...
아버지가 그 때..언니에게 하신 것을 보고 무서워서 연애도 못하고,
그렇다고 작은 아버지께서는
"이제 너들은 연애해라"는 말씀도 속시원히 못하시고
그랬던 적이 있었습니다.

작은 아버지께서는.. 같은 동네에 사는 그 청년을 명절때면...늘..온가족 앞세워
나타나면..얼마나 속이 괴로우셨을까요?

이 세상, 인간사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simon님.. 지금은 고국에 오실 수 없어도
이 곳에 살아도 산 것같지 않게 사는 불쌍한.. 패잔병 중년가장도 수두룩하다는 것
상기하시면..좀 도움이 되시겠는지요?

먼.. 고국땅에서..기껏 이런 글로나마 위로의 말씀 전할 따름입니다.

늘..건강하시기를...

이요조




시몬님을 위해 차린 상




제목 아! 추석...
보낸날짜 2002년 09월 18일 수요일, 새벽 04시 11분 27초 +0900 (KST)
보낸이 "Simon" 주소록에 추가 수신거부에 추가
받는이
思母曲

새벽 1시
모레 새벽 서울 가는
K 부부와 마주 앉았다

자정 무렵 그의 막내딸이
자주색 크라이슬러 밴을 몰고
아버지 모시러 온 걸
네 대신 어머니 오시라고 돌려세웠더니
새벽 歡送宴이 되었다

北漢山 자락 불광동에 계시는
老母 그리워서
秋夕 전에 떠난다는 韓國방문
육십 넘겨다보는 나이에도
처자식 보다 어머니가 더 보고 싶은지
소풍 앞 둔 어린아이 마냥 수다가 길다

산을 좋아하는 그가
함께 베낭 메고 북한산 골짜기를
누벼 보자는 그 말이
송곳처럼 가슴에 박힌다

나보다 열흘 먼저 태어난 그
산 이야기가 나오면 밤을 새고
30사단 출신인 거 하며
노모가 한국에 계신 것까지
술은 즐기되 담배는 못하는
얼치기 교인인 것까지도
닮은꼴이다

지금쯤 울 어머니는 커 가는 달을 보시며
명절에도 못 오는 못난 자식
얼마나 야속 하실까
어무이 예서는 추석이 아니고
생크스 기빙데이라오
이 말 알아듣기나 하실라나

돌아오는 차안에서
라디오 볼륨을 높이며
한없는 서러움에 뜨거워지는 두 눈
안경조차 벗어 놓고
밤길을 재촉한다

9-17-02 12:08
시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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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이요조/사진

2002/9/18(수) 21:22 (MSIE5.0,Windows98;DigExt) 211.222.189.157 1024x768



명절이라 다 모인 가족  







































仲秋佳節



















추석명절이라
전화네 가족이 함께 모였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께 손자녀석이 응석을 부립니다.
오랜만에 가족이 다 함께 모였습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가족은 역시 함께
어우러져 살아야하나 봅니다.
여러분들...즐거운 명절 되시기를....

이요조拜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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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휴가*  















*사흘 휴가*



그래,

떠나자

아무도 없는 곳에

딱 사흘만 딱 사흘간만 혼자가서 실컷 울다 오자.



정체된 내, 자아를 위하여..

내, 카타르시스( katharsis) 를 위하여,



소나기 울음이 흘러 내(川)가 되고

다시 모여 푸른 강(江)이 될 때까지



한 발 차이로 헐떡이며 다가 선 눈 앞에서

문을 닫고 막 출발하는 차디찬 전동차에 먼저 올라 탄 내 허상을 위하여,

도덕에 쫓겨 익사하고만 늦게 배달된 내 사랑을 위하여,

희죽거리며...웃다 말.. 만신창이가 된 내 모든 이상을 위하여,



강가에 벗어둔 신발이 물에 잠겨

슬그머니 둥둥~흘러가듯

내 슬픔 그리 떠나 보내고 싶다.



딱 사흘간 딱 사흘간만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가서



내 속에 서린 푸른 울음을

모조리 훑어내어

강물에다 꺽꺽~ 풀다

오고 싶다.



그래,

딱 사흘간만,







글/이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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