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 글/그림 /이요조

2002/8/3(토) 23:04 (MSIE5.0,Windows98;DigExt) 218.156.126.181 1024x768




고추잠자리  

















*가을하늘*


호된 열꽃의
여름 장마로 얼룩졌던
젖은 하늘 자락을 널어 말리려
농염한 햇살은
무르익고


헹궈낸
바람도 구름도 한 줄 빛살도
푸른 수의(囚衣)에 갇힌
한 장의 스틸(still),
정지(靜止).


호흡마저
건져내기 민망한
정적의 저 끝에
방자한 고추잠자리 한 놈,
빠알간 획을 그으며 날아 오른다.










Bethoven의 교향곡 제1번 다장조
작품 1








할머니의 초상화 (벌초를 다녀와...) ...... 그리고


얘 아범아~ ~ 할머님 뵈러 가자꾸나~ ~
얘 어멈아~ ~ 애들은 긴 옷 입혀 데려오려마~ ~
내 먼저 그 곳으로 떠나니
니들은 천천히 쉬엄쉬엄 오거라~ ~


개학을 코앞에 둔 손주놈들은
밀린 숙제, 일기 숙제 말도 못하고
궁시렁 궁시렁 차에 오르고
급기야는 즈덜끼리 공연히
티각태각 째려보며 눈 부라리고


장손의 눈꺼풀 누르는 무거운 숙취는
커피로 빈속을 채우며 등을 바로 세우고
분단장한 며늘아기 거울을 보다가
스치는 옛 생각에 가슴 아리다.


우리 손주며늘아기
이쁘다 고와라 하시던 할머님은
지금쯤....
얼마나 고운 흙이 되어 계실까....


큰놈 업고 만두 빚어 쪼르르 달려가면은
증손주놈 귓불을 부비며 돌아서
고무줄 고쟁이에 꼬깃꼬깃 모아둔
자식들의 효도용 쌈짓돈을
뉘 볼세라 몰래몰래 움켜 주셨었는데.......


6.25 .....
담배를 구하러 나가신 후
끝내 돌아오지 않은 지아비의
시신 없는 가묘 위에 난 쐐기풀 손수 뽑으시더니.....
삼베수의 반듯하게 갈아 입으시고는
자손들이 넣어드린 젖은 노잣돈 여며
꽃상여 타시고 먼길 가신지
어언 삼년이 다 되어가네....


할머님은....
야속했던 할아버님 곁에 나란히 누워
곱디고운 흙으로 사무처 내리고
묘의 분상은
만삭의 아낙되어 서러움 달래다
그 어느 곳에서
생명의 울음소리 들려주실까....


할애비된 아들이 붙여놓은 담배연기는
바람결에 안타까이 타들어 가고
새댁이던 며느리의 적삼은
손주놈 등살에 메뚜기 잡느라
허리춤 속살을 하얗게 드러내밀고


증손주놈 애비는 밀짚모 쓰고
무성한 떼 촘촘히 이발을 하고
증손주놈 에미는 갸우뚱 찡그리며
도장나무 미용을 한다.


파르라니 깍인 묘의
풋풋한 풀내음은 어디서
시원해진 가을바람 몰고와


늙은아들 주름에 숨은 탄식 떨어내주고
늙은며늘 가슴에 묻힌 한숨 쓸어내주고
손주놈 힘줄에 입김으로 다가가 주고
손주며늘아기 머리에 리본인냥 앉아있다가


이리뛰고 저리뛰는 증손주놈 소매를
붙잡다가 엉결에 간지러이 흘러내리는
달콤한 후손의 콧물을 훔치고
파르르 날아가 버린다.


얘 아범아~ ~ 너 오늘 애 많이 썼다
얘 어멈아~ ~ 너도 오늘 애 많이 썼구....
그럼 오는 추석에 다시 보자꾸나 ~ ~


어여 어여 가거라며
뒷짐지고 뒤로 물러서시며
아들손주며느리를 먼저 보내고
땀에 젖어 눅눅해진 담배에 불을 붙인다.


파르라니 깍인 묘 뒤로
우뚝 서있는 소나무에서
매미의 애절한 쉰 노래소리가
늙은 아들 손끝에 매달려
가려는 아들 차의 시동을 늦춘다.


"이봐 망구~ ~"
"내달 추석에도... 저 매미가 .... 그때까지 울고 있을까?"


늙은 아들 귓전에
매미의 쉰 울음소리 남아


매 엠~ ~ 매 엠~ ~
매 엠~ ~ 매 엠~ ~


다가올 추석을 기다리는 거래나.........



2002. 8. 25. 시할머님 묘에 벌초를 다녀와서.....











우리는 참으로 하찮은 것으로부터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다.
오늘 그간 보지 못했던 드라마 "새엄마"의
마지막 부분에 속하는 두어 편의 드라마를 보았다.
우리가 일상 통속적이라고 말하는 드라마 속에서
나는 인간의 오묘한 감성의 아름다움을 듬뿍 느꼈다.

우리는 큰 것보다는 작은 것에서 민초들의 삶 속에서
그들의 애환을 보며 잔잔하고 진정한 인간애를 볼 때가 많다.
오늘 느낀 것도 그렇다

인간의 감성이란 어쩜 이리도 감미롭고,
안타깝고, 애처롭고, 사랑스럽고
또한 애틋하고, 감격스러운 것들을 세세하게 느끼게 하는지...,
신비스럽고 경이롭다

오랫동안 군림하며 칼날 같은 시집살이를 시켰지만 살아내면서
인간적인 연민의 정이든 시어머니와의 사별순간 장면에서
어쩜 5년 전 내 시어머니의 돌아가실 때의 사별 현장의 감정이
그대로 재현 될 수가 있는지...,

용서하면서 그 힘들었던 세월이 아름답게 느껴지며
유명을 달리하시는 어머니에게서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는
슬픔이 밀려옴은 지금 생각하면 사랑이라고 느껴진다.

인간의 감성을 색으로 표현하자면 어떤 색들일까?
아마도 상상을 초월케 하는 우주의 대 하모니 색깔...
혹은 대자연의 무궁무진한 모양새의 모든 색들...
아니 그보다도 더 깊을 것 같다.

오늘 내 마음속을 헤집어 놓은 감성들은
나도 그것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어느 구석에... 언제 내 마음속에 있었는지...
어쩜 이토록 유효 적절한 시기에 그 감정을 꺼내서 느낄 수 있는지...
.
.
그저 "인간이란 하느님이 지으신 아름답고 오묘한 동물"
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단 답만이 내 가슴속을 맴돈다.










새댁과 잔치국수 ......................... 이슬비


끝 간 데 없던 지난 겨울의 추위.
그 추위도 남녘의 화신에 밀려나고,
골짜기의 잔설도 따사로운 햇살에 점점이 사라지고 있다.

뜰에 화초삼아 심어 놓은 몇 그루 약초에
거름으로 덮어 두었던 낙엽들을 걷어 내니,
그새 새 살을 봉긋이 부풀리고 있는 생명들에서
선뜻 다가 온 새봄을 맞는다.

이렇듯 작은 뜰을 어루만지는 일로
아직 여린 봄 향기를 곱게 감싸 안아 본다.


아침저녁 상위에 오르는 묵은 김치에
차츰 입맛을 잃어가는 즈음,
입맛을 돋우는 음식이 뭐 없을까?...
이것저것 생각 하다가
오늘 점심에는 추억도 아련한 잔치국수를 준비했다.


오랫만에 남편과 맛깔스런 점심을 먹고 차 한 잔을 나눌 때,
문득 가녀리고 앳된 지난 날의 새댁의 모습이 스쳐왔다.

노랑색의 에이프런을 두르고,
새댁이란 호칭이 낯설게만 느껴지던 신혼 초의 어느 봄날이었지.


그새 20여 년이 지났다.
수줍은 듯 미소를 머금은 채
남편 옆에 다소곳이 앉았던 모습이 어제인 양 아련히 떠오른다.
참 곱기만 했던 순간들이었다.

신혼 여행지에서 돌아온 5일 째 되는 날,
새댁은 비둘기 집 같은 신접살림을 차리게 되었다.

친정에서 아기자기하게 마련해 간 살림살이는
시댁의 사랑방에 고이 모셔 두고
둘이 덮을 수 있는 이부자리와 수저 두벌과 그릇 두벌로...

신랑의 근무처 가까이에 단칸방을 마련하였기에
신랑은 점심식사를 집으로 와서 해결하고
다시 근무처로 돌아가곤 했다.
아마 나도 볼 겸해서가 아니었으랴 싶다.


그 때 그 일들이 한 단막극의 대사인 양 떠오른다.

어느 봄날,
넥타이를 단정하게 맨 신랑이 출근을 서두르면서 나에게 말했다.

"점심때는 국수 좀 삶아 줘. 잔치국수 말야..."
"알았어요. 잘 다녀와요..."

혼자 남은 난 점심 준비에 분주했다.
멸치, 양파, 다시마 등을 넣고 국물을 우려내고,
아껴둔 깨소금과 참기름을 조금 넉넉히 넣어 양념간장을 만들고,
파란색이 감도는 김을 구워서 잘게 부수고...
그리고는 몇 번 먹어 본 잔치국수에
계란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용케도 기억해 냈다.

멸치국물이 끓고 있는 동안
큼직한 계란 하나를 골라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계란후라이를 아주 그럴듯하게 준비해 놓고선
연신 대문을 들락거리며 신랑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에
신랑이 휘파람을 불며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다가 왔다.
맛있는 국수를 먹을 수 있다는 작은 사실에 행복해 하면서.

준비해 둔 국수 사리를 넓은 대접에 담고
두어 가지의 고명 옆에 계란후라이를 곁들인 뒤
부셔놓은 김을 살짝 얹어 알뜰히 마무리를 했다.
몇 번씩 조물거려 간을 맞춘 새콤달콤한 오이무침과
햇김치가 구미를 당기게 했다.

마치 우리의 사랑이
한 그릇의 국수에 다 담겨 있기라도 한 듯 흐뭇하기까지 했다.
물끄러미 상위의 국수를 바라보다가
한 그릇을 비운 신랑이 나의 손을 잡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이 바보야, 국수 위에 얹는 계란은 후라이를 하는 게 아니고
계란을 풀어 얇게 지단을 부쳐서 채 썰어 얹는 거야.
다음부터는 알았지?...."


아, 이 수모...
나의 밑천이 다 드러난 양 싶은 순간이었다.
일찍이 뉘 앞에 이렇게 부끄러워 본적이 없었거늘...

졸업하고 곧 바로 직장 다니네 하고
친정 엄마를 도와
밥 한 끼 제대로 해 본 일이 없었던 새댁으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가 아니였으랴.

신랑이 근무처로 돌아간 후에야
그 심각성을 알았고
그 날부터 몰래 요리책을 끼고 살다시피 했다.


생각해 보니
그날 이후 나는 잔치국수 알레르기가 생긴 듯 싶었다.

여름, 겨울 없이 정말 무던히도 국수를 삶아 내지만
그 일 이후 내가 먹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국수만 보면
행복해 하는 신랑의 모습에
철없던 이 새댁의 행복 지수도 높아만 갔다.


바람처럼 거침없는 세월은
곱기만 했던 새댁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어느새 중년고개의 지천명을 바라보는 즈음에
헛되이 보낸 세월은 아니었는지 때로 생각에 잠기곤 한다.

그 세월은 성년의 두 아이를 둔 중년의 부인으로 나를키워 놓았다.
세월을 벗하여 눈가에 자리한 주름에
신경줄이 당기는 날도 더러는 있어 서글픔이 들 때도 있다.


무심한 세월에 변한 것이 있다면,
외적인 것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조금 느긋해진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봐 줄 수 있다는 것.

혹여, 변치 않은 것 하나 있다면
아직껏 시들지 않는 느낌표로 기억된
그 때 그 향기롭던 사랑...

밝고 환한 모습으로 한 송이 들꽃처럼 웃던,
노랑색의 에이프런이 썩 잘 어울렸던 그 새댁이
오늘 문득 그리워지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그 때 그 사랑의 향기를 안고
내일도 그 내일에도 잔치국수를 더욱 맛깔스럽게 말아 내리라.


그 풋풋했던 사랑을 오래토록 긷고 싶은 까닭에...




여름의 끝자락에 앉아서.....

아침에 일어나서 마당을 나가니 살갗을 스치는 바람결이 한결 서늘한 것이
인정하기 싫어도 또 세월은 어김없이 흘러서 이제 여름의 끝자락에 와 있다.

소담스럽게 열려서 늘 뒷문을 열면 빠알갛게 익어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던
토마토 나무를 다 뽑아내면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며 그자리에 알타리무우를 심었다.

고집스럽게 화학비료와 농약을 안치고 끝까지 버텨왔지만 그 수확은 참으로 보잘 것이 없다.

아무도 이 초보 농부의 깊은 뜻을 알아주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무당벌레가 다 파먹은
토마토 잎사귀의 황량한 모습이나, 일찌기 나를 수확의 기쁨으로 떨게했지만
병충해를 이기지 못하고 말라가는 오이넝쿨을 걷어내면서도 꾿꾿이 농약의 유혹을 이겨내고 있다.

그렇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 고추다.

그 탐스럽고 푸짐하게까지 열리던 고추는 긴 8월 장마와 그 뒤끝의
화창하지 못한 날씨 때문에 결국 고추 최대의 적인 탄저병에 걸리고 말았다.

이 이쁘던 열매의 말라가는 모습이라니.....

파랗건 빨갛건 군데군데 썩어들어가며 나무에 달린 체 허옇고 꺼멓게 말라들어가는 것이
아침미다 저녁마다 출 퇴근길에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너무나 안타깝다.

처음의 탐스럽던 열매를 보며 한 열 근 정도만 따면 그걸로 올 김장을 하겠다고
들떠서 말하던 아내의 눈가도 그 고추를 보고 있노라면 슬그머니 붉어져 온다.

아마 그 희망하던 열 근이 안될 것 같은 서운함 보다는 농약을 치지않은
순 무공해 농산물을 얻는 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안타까움일 것이다.

이 작은 터에 소일거리로 심은 농작물의 병충해 피해도 이만큼
마음이 아프고 쓰라린데 이번의 집중폭우로 열흘넘게 물에 잠겨서
모든 일년의 농사가 수포로 돌아가버란 수해 농민들의 아픔은 어쩔 것인가?

여름의 끝자락에 앉아서 그래도 나는 그 토마토와 오이 넝쿨을 쳐내고
뽑아낸 자리에 또 한 겨울 반찬거리를 위한 준비로 알타리 무우를 심었다.

벌써 지난 주에 심어둔 김장 배추와 가을 무우는 싹이 돋아서 파랗게 자라간다.
아마 또 온갖 벌레들이 해충들이 이 배추와 무우들을 못살게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 갈등에 휩싸이고 그러다가 이번에는 농약을 칠지도 모르겠다.

배추란 놈이 너무나 병해충에 약한 식물이라서 그 이파리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온 밭이 구멍뚫린 배추 이파리
천지가 될 터인데 그 모습에 내 약한 마음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 이번에도 농약의 유혹을 이겨내려고 한다.
이 작은 밭에서라도 순수 무공해를 만들어 낼 수 없다면 우리에겐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물과 공기와 땅의 오염, 그 땅에서 자라고 사는 식물과 동물과 사람의 오염.
그리고 이제 미래는 모든 오염 투성이로 부터 벗어나지 못해서 돌연변이 천지의
이상한 식물과 동물들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에서 살아야만 하는 안타까움.

나 혼자만이라도 상상하면 소름이 끼치는 그 이상한 미래를
좀 더 더디게 오도록 순수 무공해 농산물을 만들어 내 보려고 한다.

햇빛이 반짝 좋았던 이틀 휴무를 서해안 한 바퀴 드라이브 하는 것으로
금년의 여름을 정리하고,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에
살갗에 스치는 마당의 공기가 여름의 끝자락을 느끼게 하여 주절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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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완성**


"뭉크"의 그림 중에서
다 그리지 않았으되 전혀 미진한 점이 없는
오히려 덜 그려서 완성도가
높아진 그림이 많습니다.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도 생각해 봅니다.
미완성이어도 괜찮습니다.



이조백자의 미도 사실은
마무리가 매끄럽지 않음으로해서
덜된 여운을 남긴 덕에
그 미적 가치가 높다고 합니다.



일본의 도자기나 greece의 도자기는
너무나 흠없는 완성도를 지향한 탓에
오히려 기계적인 차가움이 느껴진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도 그런 것 같습니다.
아쉬움은 항상 남게 마련입니다.
그 아쉬움을 마저 채운들
마음이 흡족해지진 않을 것이기에
그냥 아쉬운대로 살아갈 뿐입니다.



아쉬움이 남아있을 때가
우리가 누릴수 있는 최상의 감정일 것입니다.
아쉬움을 마저 채워 아쉬움 없게된 다음에는
나태하고 평범한 그런 감정만 남을 뿐 입니다.



(2002.2.17. 수련님이 쓴 글)


**고독이 좋다고 말할수 있는 친구**



나는 고독이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좋습니다.
우리의 모든 본능처럼 고독이라는 본능도
특수한 목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범인들 생각으로는
그들이 속세와 어울리지 못해서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무능하도록
되어 있다고 간주하지만,

사실은
그들이 지적인 추구에 있어서
최고의 경지에 이르러 있는
사람들일지도 모르지요.



만약 Shelly(영국시인)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면 그의 삶과 사고의
독창성은 덜 완벽했겠지요.



희귀하고 미묘한 본능을 가진 그들을
범인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고독이라는 본능일 것입니다.



(나도 한번은 고독이 좋다고
식구들에게 말했다가
본전도 못찾은 적이 있습니다.
"그럼 엄마가 Shelly?"
어처구니 없어하는 그들의 눈빛 때문에
고독이라는 단어는 언감생심
입에 담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2002.2.15. 수련님이 쓴 글)







새댁과 잔치국수 ......................... 이슬비  (0) 2002.08.29
여름의 끝자락에 앉아서..... .....................남도사랑  (0) 2002.08.27
친구의 붉은 하늘............................임담사  (0) 2002.08.25
님도 만졌을까?.............................魚來山  (0) 2002.08.22
친구와 손님-------------------------편지  (0) 2002.08.20




어릴 때 우리는 누구나 맑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저 하늘 끝엔 뭐가 있을까?
하는의문으로 한 마리 새가되어 마음껏 상상의 날개를 펼치며 날아보았을 것이다.
때로는 붉게 타는 저녁놀을 바라보며 그 고운 빛에 흠뻑 젖어도 보았다.
그러나 내 어릴 적 친구의 하늘은 언제나 검붉은 고통과 절망의 하늘이었다.
친구의 붉은 하늘...

어릴 때 내 꿈은 칠장이였다. 꿈이란 게 누구나 어떤 계기나 자극에 의하여
수시로 바뀌는 거지만, 난 특별히 생각나는 게 없다.
초등 학교 1학년 때는 하늘 높이 흰줄을 그리며 날아가는 B29를 보면서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고, 4학년 때는 만화에 빠져
만화가가 되어 볼 까도 생각했었다.

별 재주 없는 중생이라 그런지 확고하게 뭐가 되어야겠다 라고 생각한 게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칠장이는 상당히 오랜 기간 내 꿈으로 머릿속을 점유했었다.
지금의 간판은 재료가 다양해서 아크릴로 만들어 그 속에 형광등을 넣기도 하고,
유리에는 여러 색깔의 테이프로 글씨를 만들고, 휘황찬란한 네온까지 설치를 하지만,
옛날 60년대의 간판이란 각목으로 틀을 짠 후 함석으로 덮고, 하얀 페인트로 바탕을
칠한 후 그 위에 빨강, 파랑, 검정 색의 페인트로 글과 그림을 그리는데 한두 해가
지나면 함석이 부식되면서 페인트가 벗겨진다,

그러면 칠장이가 사다리를 대고 올라가 다시 칠한 후 작품을 만들어 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첫째: 페인트의 냄새가 좋았고,
둘째: 높은 사다리 위에 올라가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고,
셋째: 칠장이의 모자와 옷에 묻어있는 형형색색의 페인트 자국이 멋져 보였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붓이 움직일 때마다, 흰 바탕에서 살아나는 글자와 그림이
너무 좋아서 맞은 켠 잘 보이는 곳에 쪼구려 앉아 끝날 때까지 지켜보는 게 큰
즐거움이었다.

4학년 때 가정통신문 조사를 하는데 장래 희망란에 대통령, 의사, 선생님, 군인,
대신 '칠장이' 라고 기재를 했다가 엄마에게 적잖이 혼나고, 그날로부터 만화 보는
것을 금지 당했다. 그래도 난 만화를 마음껏 볼 수가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 내 그림
솜씨를 따라올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확대하여 원그림과 똑같이 그리는
기술을 아는 친구들이 만화의 멋진 장면을 접어와선 그려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5학년 때 강력한 라이벌을 만났다. 정확히 말해 라이벌이라기보다
그림에서만큼은 나와는 게임도 되지 않는 친구에게 나의 일방적인 참패로 끝난
한판 이였는데...당시 그 충격은 내 작은 가슴으로 받아들이기에 너무나 큰 아픔이었다.

난 그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 이것은 비단 나만이 아니라,
우리 반 아이들 모두 같은 실정이었다. 단지 아는 것이라면 그가 다리를 심하게
저는 것과 아주 못산다는 것!
뒤에 들은 얘기지만 그의 아버지는 육이오 때 한쪽 다리를 잃어버린 상이용사이고,
엄마는 안 계시며, 꼬부랑 할머니와 함께 산다는 것 이외는...

그래선 인지 그는 언제나 어두운 얼굴에 말 한마디 없었고,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았다.
짝꿍까지도 말 한마디 못해봤다는데. 가까이 가려해도 외면해 버리니 그 누구도
다가가지 않았고, 그는 점점 자신을 울안에 가두고 철저한 외톨이로 살아갔다.
즐거운 점심시간이면 삼삼오오 모여 앉아 도시락을 까먹는데, 그 친구는 원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친구라 그가 점심을 먹는지 사라지는지 아무도 몰랐다.

하루는 반장 엄마가 도시락을 갖다 주러 오다가 수돗가에서 수도꼭지를 빨고 있는
그 친구를 보고는 다음 날부터 두 개를 싸 보냈는데 그 친구는 먹지도 않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우린 첫날이라 그러려니 하였는데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먹지를 않고,
집에 갈 때 반장의 가방에 슬며시 넣어주었다.

반장이 투덜댔다. (바보! 주면 못이기는 척하고 먹을 것이지. 또 울 엄마에게 뭐라고
말하지? 저러고서는 밖에 나가 물로 배를 채우면서...) 우리가 뛰어 놀 때 그는
언제나 교실 앞 느티나무에 기대앉아 아무 것도 없는 하늘만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6월초 미술시간에 육이오에 대한 그림을 그리란다. 주제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평소 만화로 단련된 머리라 재까닥! 떠오르는 장면을 정신없이 그려댔다.
맨 위에는 "상기하자 6. 25!" 라고 쓰고, 북괴군의 탱크가 철조망을 깔아뭉개며
내려오며 하늘엔 비행기가 폭탄을 퍼붓는 장면인데, 20분도 안되어 완성하였다.
킥킥킥 내가 봐도 참 잘 그렸다. 친구들이 (와~ 잘 그렸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비슷하게 그려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친한눔의 것 두 장을 비슷하게 윤곽을
잡아주고는 그눔 쪽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아까부터 선생님이 그 친구 옆에 붙어 서서 꼼짝도 않고 계신다.
아주 팔짱까지 끼고 근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신다. 이눔이 무슨 대작을
그리고 있나? 살며시 다가가 보았더니 (에계 계~ 저게 무슨 그림이야!)
저절로 비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냥 온통 검붉은 색깔뿐이다. 좀더 다가가
자세히 보니 저 밑에 조그맣게 그려진 탱크가 박살이나 검은 연기를
내고있었고 찢어진 철모하나, 그리고 한쪽 구석엔 할머니가 하늘을 바라보며
울고있는 그림이었다.

그런데 저 그림이 뭐가 좋다고 선생님이 저렇게 뚫어지게 쳐다보고 계실까?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그 친구는 색깔이 마음에 안 드는지 칠했다가는
다시 손톱으로 긁어내고 다시 칠하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칠하고 또 칠한다.
칠을 하더라도 우리처럼 조심조심 하는 게 아니고, 마치 황칠하듯 격렬한
손길로 칠하는 모습은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저눔이 미친것이 아닐까?
생각되면서 갑자기 내 가슴을 세차게 때리는 듯한 북소리가 (둥~둥~둥~) 들렸다.
붉고, 검고, 흰색의 소용돌이가 빙글빙글 돌아갔다.
바로 그것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우리 집 마당에 굿판을 벌렸을 때,
온 마당이 비좁다며 미친 듯 춤을 추는 무당의 모습이었다...

그로부터 보름 후 전교 조회시간에 시상식이 있었다, 그는 가작! 나는
입선이었다. 선생님은 그림에다 리본을 달아 교실 뒤에 나란히 붙여두었다.
그림이라면 난데...자존심이 무척 상해 쳐다보지도 않았다. 내 그림 보다
훨씬 못한 저 그림이 가작이라니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치맛바람을
일으키는 엄마라도 있었다면 그나마 이해를 하겠지만 시는 선생님의
그림자도 못 밟던 시절이라 여쭤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시간 나는 대로
그의 그림을 보고 또 보았다. 암만 잘 봐 줄려고 해도 내 눈에는 그림이
아닌 황칠로 밖에 보이지를 않았다

그로부터 일주일 후...
우리 분단이 당번이라 청소를 마치고 점검을 받으려니 선생님이 안 오신다.
교무실에 가봐도 안 계시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오늘 선생님은 옥수수빵을
나누시는 당번이셨다.(옥수수빵! 이것은 미군 구호물자인 옥수수가루를 쪄서
가난한 가정의 자녀에게 방과후 갈라주었다) 그 옥수수빵을 갈라주느라
늦으시는 모양이다... 생각하며 창 밖을 내다보니 그 친구가 옥수수빵을
먹으며 절뚝절뚝 걸어가고 있었다.

우리 선생님이 당번이셔서 특별히 많이 주었는지 가슴에 4개를 안고,
오후 내내 굶주린 배를 채운다고 부지런히 빵을 뜯어먹으며 간다.
아마 가슴에 안은 빵은 집에 계신 할머니와 아버지께 드리라고 주신
모양이지 하고 생각하니 불쌍한 마음에 울먹해졌다.

또 그의 그림을 바라본다. 하늘을 가득 채운 저 검붉은 황칠이 뭘까?
또 슬피 울고있는 할머니는? 순간 내 머리는 망치에 얻어맞은 듯 핑 도는
느낌과 함께 나도 모르게 끄응 하는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맞아 바로 이 것이야! 이런 것이 그림이야!
똑 같은 전후 세대인 우리였지만 육이오에 대한 느낌은 천양지차로 난
그냥 말로만 듣는 육이오였고, 그에게는 피부로 겪는 아픔이었다.
그는 저 그림에서 아버지의 잘려나간 다리와, 엄마의 가출, 할머니의
울부짖음, 또 자신의 장애와 불우한 환경이 바로 전쟁이었다는 것을
토해내며 혼을 담아 그렸던 것이다.

저 검붉은 기운이 밀물처럼 내 몸을 덮친다.
난 다시 그를 찾았다.
그는 후문 밖으로 긴 그림자를 끌며 힘들게 절뚝절뚝 걸어가고 있었다.
난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울고 있었다...




통도사 대명광전



오후 2시,
얼굴이 맑은 스님께서
"님만 님이 아니고 기른 것은 다 님이다"라는
만해(卍海)의 말씀을 남기며 합장하고 조용히 일어선다.

포동포동하게 살찐 함박꽃 문살을 살며시 밀고
대웅전을 나와 가을 햇살 가득한 절 마당에 내려선다.

옛 향로(香爐)
그 속에 가득한 온기 없는 재,
어쩌면 그 재들이 인연(因緣)의 줄을 맺게 할 지도 모르는 일.

자꾸만 언어(言語)의 그물에 잡혀 들어간다.
그물코마다 구슬이 달려 서로를 비춘다는
제석천궁(帝釋天宮)의 보물 인다라(因陀羅) 그물.
무한(無限) 겹겹의 비춤이 있는 그런 그물이면 좋으련만,
어떻게 이 그물을 비집고 헤어날 수 있을까.

아, 라울라(障碍)
바람같은 세월 산바람을 타고 흩어지는
낭랑한 풍경(風磬)소리
뎅긍...

천년(千年)을 울리고 돌아 와
다시 천년(千年)으로 되돌아오는 고요
마음은 적막공산(寂寞空山)
둥둥...

하늘이 처음 열리듯
우주(宇宙)를 두드리는 법고(法鼓)가 울린다.
뭇 생명(生命)을 깨우치는 목어(木魚)가 운다.

산은 가득 차 있고 산은 비어 있다.
차고 비어 있음은 마음 두기에 달려 있는 일
오는 것도 마음.
가는 것도 마음.
모두가 업(業)을 따라 오가는 것을.

그 날,
님이 서 계시던 자리
휘어진 노송(老松) 앞에 내가 서 있다.
가을 볕 아래 뻗은 가지를 가만히 만져본다.
님도 만졌을까...

소중한 것은
작은 인연(因緣)으로 오는 것
아주 작은 것이 이토록 귀(貴)하고 아름다운 것을.

선가(禪家)에서는 시절인연(時節因緣)이 오면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된다고 했다.
어느 날 문득,
탑(塔)돌이 중에
님은 화사한 모습으로 가만가만 오실까.

운문사(雲門寺) 가지산에 해가 진다.
범종(梵鍾)의 자비(慈悲)가 우주(宇宙)를 품어 안는다.

마음은 적막(寂寞) 하늘은 침묵(沈默),
솔숲 위로 아득한 무욕(無慾)의 하늘이 푸르다.





쌍계사 대웅전 분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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