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은

타의적인 우연이다.

무신론적인 사람들은 운명이라고 말하고

종교의 믿음을 가진 나는 은총이라고 말한다.


어렸을적 우리가정의 주연은 조부님이시었고

나는 귀여운 조연이었다.

손에서 놓치면 깨질까,다칠까,

어른들의 사랑속에서 관심의 대상이었다.

사랑을 받기만 하는 유리곽속의 인형처럼,,,



조부님이 타계하시고 우리가정의 주연은

부모님들을 중심으로 모든 중심점이 잡혀갔다.

청년기가 되어 주연으로서의 나의 연습도 시작되었다.

책임과 의무에 대하여 실습이 반복되고,,,



결혼을 하고 사회에의 일선에서

깃발을 흔드는 선봉에서

책임과 의무를 두 어깨에 지고

있는 힘을 다하여 주연의 길을 달렸다.

모든 일의 선택과 결과의 賞과罰을 체득하면서

때론 힘들고

때론 행복속에서,,,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이 성장하고

가정은 아이들의 싸이클에 맞추어 돌어가고

첨단 지식을 습득한 후배들이 앞장서서

직장<천직으로 생각하는>의 선봉에서서

나보다 더 지혜롭고

나보다 더 이지적이며

나보다 더 합리적인 그들을 볼 때

그들처럼 행동할 수 없음은,,,



이제 지천명의 타이가

주름진 목을 더욱 깊게 파고들고

몇 달 전 친선 체육대회에서,

운동장에서 밀려나 스탠드에서

음료수나 마셔야하든 시각들,,,



이제 나는 느낀다.

주연은 끝났다.



그러나 내가 진정한 끝을 모르는

이 나의 연속극에서는

이 건강한 하루가

아픈이들의 희망의 하루임을 생각하면서

소중한 하루 하루를 보내야 하겠다.



나에게 다가온 현실을 겸허하게 수긍하며,,,





(2002.8.9. 한뫼님이 쓴 글)





빗소리 그치니 매미가 먼저 안다
귓전을 울리는 여름소리 들.

나를 유쾌하게 하는 소리 들이다

앞도 안보이던 어제는 간곳 없고
푸른창공은 새로움으로 다가온다

빛이 오면 어둠은 사라진다

언제부터인가 믿음은 적은 나이지만
마음속에 뿌리내린 한귀절.

그래

빛이 오면 어둠은 사라진다.
평범한 내용을 왜 몰랐던가.

난 나를 유쾌하지 않게하는
여러가지에 정면으로 도전하기로 했다.

우선 녹색 십자가 선명한 병원으로
향하는 일을 자신있게 행하기로 했다.

내게 아픔을 주는 일을 늘 겸손하라는
가르침(?)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늘 아프니 기분 나쁘고 아는 이들을
만나는 일을 기피하게 되었으니
의사선생님께 하소연을 하여서라도
이 아픔이 호전되게 해야 하는게 내 일이다.

우선 씩씩하게 정형외과를 두드려본다.

오십견이란다.

세상에.....
내나이 50이 돼가는거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니...

물리치료실...
누워서 곰곰 생각하니 참 오랫동안 나를 ,
아니 나의몸을 사랑하지 않은것 같다.

그렇다고 가정을 위해 뼈품팔고
목숨바쳐 살아온건 아닌데
아프다고 누워 있으려니 괜시리 미안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얼른 나아야지...

살아온 흔적들
그리고 살아가야할 많은 미래.

오늘은 그래도 망설임 없이
병원 문을 들어선 일을 참말로 잘했구나..
라고 나를 칭찬해 본다.











행운은 세 잎 클로버







오랫만에
부서지는 햇살을 주우려고
나의 경쾌차 덴뽈에 올랐다.

아파트를 뱅뱅 도는 건
내 머리까지 뱅뱅 도는 것 같아
건너편 개구리의 마을로
핸들을 돌렸다.

물 댄 논에
살랑살랑 물무늬가 춤을 추고
겨우내 논에 묶였던 벼의 발목은
바람결에 누운 채로
고호의 자화상을 그려낼 듯
논 끝에서 촘촘이 모여 있었다.

군데군데 웅덩이에 고인 벌건 황토물이
하얀 내 경쾌차에 얼룩을 그렸고
내 눈에 그려지는 건
비온 뒤 논두렁에 더욱더 새파래진
들꽃들의 선명한 자태였다.

잎이 어찌나 크던지
클로버가 아닌 줄 알았다.
난 쪼그려 앉아 행운의 네 잎을 찾았다.
이쪽에도..
저쪽에도..
여기에도..
저기에도..
행운의 네 잎은 없었다.

그럼 그렇지
내게 행운이 그렇게 쉽게 올 수 있겠어?
아니야 네 잎은 기형이고
기형이 없는 크로바는
자연에게는 행운이지 ....

아파트에서 멀어지는 농로를 택해
끝까지 가볼 작정이었다.

몸뻬바지에 분홍 수건을 쓰신 할머니,
밀짚모자에 긴 장화를 신으신 할아버지,
노란 장화를 신고 쫄랑쫄랑 따라 다니는 사내아이,
그 아일 따라 다니는 누렁이......

지나칠 때마다 고개를 숙였다.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핸드폰을 목에 걸어서?
몸빼바질 입지 않아서?
아마 내가 그들을 구경하고 있다는
스스로의 생각일 거다.

폭폭폭폭 까만 연기를 품어 내며
물 속에서 오가며 흙을 뒤엎는
농기구 이름이 궁금했다.

농기계가 일함에도 불구하고
옆 논에서 손으로 연신 진흙을 퍼내어
논두렁에 올려 놓으시는
할머니?
아줌마?
뭐라고 불러야 하지?

"어머님....저쪽에 저 농기구 이름이 뭐예여?"

"트락타!"
"트 락 타!" 라고 하시며
빙그레 웃으신다.
"왜? 농사짓게?" 라며 되물으신다.

그저 고개를 숙여 미소만 지었다.
"트랙타" 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얼마나 또렷하게 말씀해 주셨던가
트락타! 라고.....

페달을 힘차게 구르다
두 다리를 밖으로 뻗어도 보고
자전거에서 내려
덜덜덜 끌고 걸어도 보면서.....

방 구석에서
들이 쉬고 내 뱉던 한숨이 아닌
긴 호흡을 하며
풀냄새를 마시고,
흙냄새 물냄새를 흠뻑 들이마셨다.

멀찍이서
오래 전에 아버지가 타셨던 것 같은
까만 자전거가 다가왔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그분의 뒷모습을 보았다.

타이어 바퀴로 가늘게 잘라 만든
까만 고무 끈 속에
물이 뚝뚝 떨어지는
곱게 씻은 녹슨 삽이 있었다.

농부의 자전거에서
삶의 아름다움이
농로 위에 뚝뚝뚝 떨어지며
어린시절의
향수어린 풍경을
농로에 그리며 멀어져 갔다.



2002. 5. 10 - 그리고의 경쾌차 여행기 1 -



















생각나는 할아버지


직장 근처로 이사 온 후에는
출퇴근시간이 짧아서인지 퇴근 때는 다른 길로 멀리 돌아가기도 한다.
더욱이 가끔씩은 생각도 하면서 천천히 걷기 때문에
10분 거리가 20분 넘게 걸리기도 한다.
나름대로 퇴근의 편안함도 느끼고
그나마 쫓기듯 사는 日常에서 마음의 여유를 찾는 나만의 방법이기도 하다.

며칠 전 임대 주공아파트 쪽으로 퇴근하는 길이었다.

작은 평수이고 임대 아파트라 그런지
그 곳 놀이터에는 아이들은 없고 할아버지 할머니들만 모여 있었다.
옆을 지나가는데 할아버지들의 얘기가 들렸다.
"담배 있어? 하나 줘. 없어!" 뭐 그런 얘기였다.
그냥 지나쳐 가다 마음이 걸린
나는 다시 돌아가 그 옆의 슈퍼에서 담배 한 보루를 사드렸다.
할아버지들이 처음에는 어리둥절하시더니 나누어 가지시면서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그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할아버지 한 분이 생각났다.
일산에 이사오기 전 인천에서의 일이다.

운동신경이 둔한 내가 그나마 할 줄 아는 것은 수영이었고,
토요일은 퇴근 후 오후 3시쯤에 수영장에 가곤 했다. 가는 길목에는 2동만 있는 5층의 허름한 아파트가 있었고,
그 아파트 정문 수위실 문턱에는 늙고 초라한 할아버지 한 분이 늘 앉아 있었다.
7∼80여세쯤 되어 보였다.
그런데 수영을 끝마치고 오는 시간은
3시간이 지났을 터인데도 그 자리에 꼼짝도 안하고 앉아 계시는 것이었다.
"아니? 이 무더위에 오랫동안 뙤약볕에?" 그 모습이 무척 마음에 걸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은 무척이나 더웠고 수영장 가는 길에서
수위실 문턱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그 할아버지를 또 보았다.
너무나 늙고 초췌한 모습이었다.
곧 돌아가실 것만 같았다.
옆으로 지나가는데도 지린내가 났다.
왠지 모르지만 내가 속상했다.
수영을 끝마치고 오는 그때까지도 그 자리에 앉아 계시는 것이었다.
마음이 여린 나는 일부러 다른 곳을 보며 지나갔다. 마음이 걸렸고 그런 내가 너무나 비겁하게 느껴졌다. 나는 오던 길을 되돌려 할아버지에게 갔고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 이 더운데 왜 나와 있어?"
(죄송하지만 나이든 할아버지에게는 큰소리로 약간 반말로 짧게 해야 더 잘아 듣는다)
지린내 냄새가 확 풍긴다.
"누구여?" 할아버지는 내 손부터 잡는다.
"왜 나와 있냐구요?"
"며느리가 나가 있으래"
"매일?"
"그려"
"그럼 언제 들어가?"
"저녁밥 먹을 때 불러"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아침 먹고 나와서는 그 자리에 있다가 저녁때나 되어야 들어간다.
왈칵 분노와 함께 눈물이 났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래서인지 잘 걷지 못한다.
"뭐 먹고 싶어?"
"담배"
"몸에 안 좋아"
"아녀... 난 꽁초 주어 펴"
나는 또 감정이 확 복받쳤다.
슈퍼에서 담배 한 보루 사서 드렸다.

그 뒤로 나는 할아버지와 친해졌다.
아니 자세히 말하면 나 혼자 친한 것이다.
할아버지는 날 모른다.
다음에 만나 "할아버지!" 하면....
그때마다 "누구여? 난 몰러" 하신다.
'아니? 그럴 수가? 만날 때마다 담배 사 드렸는데....'
약간 섭섭한 생각이 들어
"나? 담배 사준 사람! 그래도 기억 안나요?" 하면...
할아버지는 고개를 그냥 끄떡이며 "응....몰러. 난 잘 몰러" 하신다.

약 3년 동안 만날 때마다
담배 한 보루씩 사드렸으니 많이 사드렸음에도 날 몰라본다.
할아버지에게는 치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덕분인지 나는 그 동네 다른 할아버지에게는 인기(?)가 많이 있었다.

문득 그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마 돌아가셨을 것이다.
인생이 뭔지.....
속절없이 가을은 또 가고.......
내가 좋아하는 시 <나그네>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 누가 오래서 온 것도 아닌 목숨
살고 싶어서 사는 것도 아니면서......」
잠깐인 세상에서...
가진 것은 없지만 그래도 있는 것 다 털어서 인심이나 쓰고 살면 어떨까?





하늘에 묻어둔 사랑 이야기

언제부터인가 나는 하늘을 자주 보게 되었다.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제일먼저 하늘을 본다
베란다 쪽 창문을 열면,
하늘이 내 아파트 아래에서 곧 바로 보인다.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하늘을 보면서,
두 팔을 벌려 그 하늘을 가슴에 안아본다.
그리고 넓은 하늘을 가슴에 끌어 안고 긴 호흡으로 들이 마신다.
살아온 동안 노쇠한 내장이 새것으로 바뀌는 느낌이다.

하늘을 바라보는 때에는
세상에 모든것을 다 잊어버린다.
해와 달과 별과 그리고 구름만 보이는 하늘인데도
아득히 먼 그곳을 보노라면 기분이 좋아진다.
아무 생각, 이유 없이 하늘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며 훓어본다.
검은 비구름이 잔뜩 차있는 변덕스러운 여름날의 하늘,
깊은 땅속의 향기를 맡고 있는 생명을 주는 봄 하늘,
그 하늘에서 딩굴고 싶은 마음을 주는
진주알 같은 맑고 깨끗한 가을하늘,.
가을날 드높은 하늘에 하얗게 두선을 남기며
날아가는 호죽기도(군 비행기) 보면 심심하지가 않다.
온세상이 쉼으로 안주하는 곳에 엄숙하게 잠을 재우는 겨울하늘,
볼거리 생각거리가 많은 사계절의 하늘은 볼수록 신비하다.

생각 할 수록 신비스러운 하늘의 수수께끼는 많다.
이 지구상에는 내놓으란 유명한 과학자들이 많다.
과학자들은 지구 상에서의 수많은 문제들은 잘 해결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천문학자들은
하늘에 숨겨진 신비의 비밀은 아직도 시원히 풀지를
못하고 있다.
문제를 풀어 보려고 무던히도 노력하고 애쓰지만
저 먼 하늘의 수수께끼는 영원히 풀지 못할 것 같다.
아마 그것은 기독교에서만 말하는 절대자의
영역이리라 생각이 든다.
그렇게 인정 하는것이 편하다,

끝이 어딜까?
저 안 보이는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끝이 궁금 하기만 하다,
아니! 세상의 이치는 시작과 끝이 있다고 하는데,
과연 하늘엔 끝이 있을까?참으로 알 수 없는 수수께끼다.
그 궁금증이 더 하늘을 보게 된 것 같다.


낮에보는 하늘보다 밤하늘은 더 좋다
별이 졸고 있는 밤하늘은 밤새도록 보고 싶다
마구 지껄여도 하늘은 내 가장 편한 친구가 된다.
여름날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즐거움이란
영원히 싫지 않은 나의 무언의 연인이 됐다.
세상의 연인과는 비길 수 없다는 표현이 솔직한 고백이다.

오늘도 하루를 마감할때,.나는 그 하늘을 본 후에 잠자리에 든다..
그리고 하늘을 잠시 잊은 채 잠을 잔다.

새날이 되어 날이 새면 하늘을 또 만나게 된다.
하늘 문을 열면 아름답고 활기찬 새날이 온다.
맑고 환하고 용기를 주는 신나는 하늘을 다시 또 본다.
하늘을 보며 소망을 갖는다.
역시 삶은 아름답다고 생각하면서
내일도 하늘을 본다는 소망이 있어서

그 신비하고 멋지고 아름다운 하늘을,
나는 그 하늘을 사랑한다. 즐겁게..

섬강.2002.1.1





고무나무와 라일락

바람이 쌀쌀해 지고
수은주가 영하 삼도로 내려가면
어김없이 집안 구석을 차지하는 고무나무가 있다
나는 초겨울날 아침 고무나무를 바라보며 상념에 잠긴다.
이 나무가 우리 집과 인연을 같이한 것은 딸아이 젖먹일 때이다.
방 세개에 베란다 난간을 화강석 돌로 치장한 집을 지었을 때이다.


방 두개에서 살다가 어머님방 부부방 아이방 따로 장만하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다.
아이 엄마는 잠이 다 오지 않는 단다...
전에 살던 집이 방이 두개라 늘 불편해 했던 아내다
그 집에 이사하면서 친구가 이 화분을 선물했다. 무성하게 자라고..
가지가 두개로 뻗고..
싱싱한 파란 잎이 마음에 들었다..


나는 그 뒤로 이 화분을 잊고 살았는데..
중곡동으로 이사 오기 위해 집을 수리하는데 이 화분이 눈에 띄었다.
공사중 다칠세라.
차고에 들여놓곤 했는데. 키가 커서 차고 천장에 닿아
이 화분을 간수하느라.
공사를 하는 기간에 애를 먹었다.


공사를 마무리하고
정원을 하면서 정원사가 "나무를 고르러 가시지요 "하여.
정원사를 따라가 보니 나무 값이 만만치가 않았다
향나무, 과일나무, 단풍, 꽃나무 몇 가지를 샀다.


나무가 잎도 별로고
볼품 없는 나무를 정원사가 들고 오며 가지고 가잔다.
하는 말이, "이 꽃나무 향이 좋고요 이름이 라일락이라고 합니다"
나무를 다 심고 정원 석도 쌓았다.
놓는 방법에 따라 모양이 달라 보인다.

잔디를 입히고 길도 다듬고 화분들도 거실 앞에 가지런히 늘어놓고
정원일 이 끝이 났다.

볼품 없는 그 라일락은
좋은 자리는 향나무 뒤에 구석 외진 곳에 심어졌다.
이놈은 괴이하다. 나무 이름이 부르기 좋은 개나리, 백일홍, 목련이니,
연산홍이니 고유한 토속적이고 이름도 얼마나 정감이 가는 이름들인가.
그러나 라일락은 외국어에다 부르기도 생소하고 모양새도 정원수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고무나무는 거실 앞에 놓고 커지기 전에 가지를 자를 것을
아내가 말리는 바람에 못 자르고 키만 키웠다.
겨울에는 거실에 들여놓고 고무나무 위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한다.
열대식물에 그리스-머스 트리를 장식하니, 얼마나 웃음 나는 일인가.
잎이 어렸을 적 먹어본 식은 개떡같이 두껍고 뻣뻣하며 잎 한 개도
전지 가위로 잘라야 한다.
비가 오면 저 혼자 비를 떠받을 양으로 투박한 잎으로 받아낸다.

라일락은
가지를 마구 쳐서 심었는데 제법 어울리게 가지와 잎이 나왔다.
잎도 상추 잎처럼 연하고 적은 비가 내려도 싫은지 잎들이 흔들어 댄다.
비가 그치고 따뜻한 봄날 라일락이 꽃을 피웠다..
붉은 색이 많은 보라색이고 꽃도 작아 눈길을 끌지못하나 소박한 모습이다.

꽃도 한 송이 우송이 나눌 수 없이.수십 송이가 하나로 뭉쳐 핀다.
놀란 것은 향이 강하지도 않고 연한 향이 특이하다.
보잘것없었던 라일락이 느낌이 달라 보인다.
향은 집합에도 이웃에도 길가는 사람도 한마디씩 풍기는 향을 칭찬한다
집안에까지 향으로 가득하다

고무나무는.......
그 뒤로 도저히 크는 키는 강당할수 없어 두 가지를 모두 잘랐다
자른 곳에서 우유빛의 피를 흘리며 아픈 모습이다
무성하던 성장은 멈추고 잎도 감나무 잎처럼 작아지고
볼품이 없이 되었다.
지금은 오래 전에 이 집으로 이사오면서.........
모든걸 잊고 살았는데.

오늘아침 옛 생각 속에 빠져든다.

지금도 옛집에는........
라일락은 겨울 날 봄에 꽃을 피우기 위해.......
추운 겨울을 밖에서 추위를 견디며 준비하겠지?
두나 무가 우리네 삶을 닮았다.

라일락은 천대받았으나 큰 변화 없이
봄에는 향기를 내며 제 주변을 즐겁게 하고 있겠지 !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그러나 딸아이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헤어져 만날 수 없다
지금도 향나무 뒤 외진 곳에 있는지?

거실에서 사랑 받던
고무나무는 아이들 손끝에 추리를 달고
사진을 찍던 화려했던 옛날을 잊은 체 지금은 거실에 천덕꾸러기로
가족의 무관심 속에 떠나 있다.
아이 엄마가 종종 물을 주고 보살핀다.
그래도 우리 가족의 지난날을 간직한 체 가족과 같이 살고 있는 것은
고무나무뿐이다.

오ㅡ랜세월
소식은 없어도 가슴에 남아있어 영원히 기억되는 친구가 그립다......
처음에 화려하고 같이한 친구가 가까이 살지만 있는지 없는지
무관심 속에 떠나있는 이는 없는지.........
이 아침 고무나무를 바라보며 마음이 아프다.


중곡동썬입니다 (2001.12.11.)








내가 어릴적에 고향집 마당에는


아주큰 무화과나무 두그루가 있었다....




울엄니, 아부지가 외갓집에서 한그루씩 얻어와서


우리집마당에 옮겨 심었는데....


아주 잘 자라서 나무의 그늘은


커다란 평상위를 아주 시원하게 만들어 줬었다.....




마당이 있었던 우리집은 동네애들 집합소 였는데.....


그당시 상고를 다니던 울오빠는 국민(초등)학교 다니던 나에게


반강제로 주판알 튕기는걸 가르쳐주곤 했었는데.....




때론 으름짱으로....때론 먹을걸로 유인해 가며 나를 붙잡아앉혀


그 주판실력을 전수하고싶어 안달이 났었던 울오빠....




여름내내 널따란 평상에 나란히 배를 깔고 엎드려서


오빠랑 쉬운 더하기,빼기를 배웠는데.....


흥미가 없었던 울언니는 코방귀만 뀌구 달아나고~~~~~




그립다.....


무화과 익는계절....


고향집 마당이 그립다.....




학교에 갔다오면 나는 가방을 마루위로 휙 집어 던지고는


잽싸게 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간다.....




튼실한 가지하나 골라잡아 앉고선


잘 익어서 빠알갛게 툭 벌어진 무화과를


단내 솔솔 풍기며 서너개 따먹곤 했었다.....




나의 어릴적 여름은 그렇게 익아가고....


마당을 내려다보며 한참을 나무에 걸터앉아 놀았는데.....


이젠 가고없다....




7월부터 익기시작하면 첫물따기,두물따기,세물따기.....


이렇게 처음익은걸 다 먹을때쯤 되면 작은놈들이 익기 시작한다...


그 두물따기를 하고나면 또 다른 작은놈들이 익어가고......




여름이 다 가도록....


참 많이도 열렸는데.....


초여름에 열린 첫물딴 무화과는 제법큰 주먹 만해서


석류처럼 쩍~ 벌어지믄 그 단맛이 꿀맛보다 더 좋았다....




세물따기한 무화과는 단맛이 좀 떨어진다....


해서 오빠와난 잘씻은 항아리에 소주를 붓고선 무화과가 익기만하면


그속에다 풍당퐁당 갖다 담았다....




식구중에 누구도 술마시는 사람이 없는데도 그렇게


"무화과주"를 만들었던 유년의 기억들......그걸다 누가 마셨지??




감나무보다 컸던 무화과나무가 보고싶다.....


그후론 가지가 가느다란 무화과나무 밖에 못 봤는데.....


우리집 마당에 있었던 무화과나무는 어디에도 없다.....




여름이오면....여름이 다가도록....


난 이렇게 입에 쫙쫙붙던 그 무화과가 먹고싶다.....


하얀 진이 내손을 괴롭혔던 무화과나무.....




몇년전에 뻐스터미널 입구에서 팔고있는 무화과를 봤는데


색깔도 별루구...크기도 작은귤만하다....


반가워서 낼름 열개를 사긴 샀는데...




세상이 그시절이 아니니....그맛이 영~아니다.....


혀끝에 남아있는 그때의맛은, 기억에 생생하기만 한데.....







그립다...무화과 익어가던 고향집마당...... *^^*












(2002.8.3. 화성여자님이 쓴 글)





그대...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기억하고 계시군요.
그리고, 사랑하시는 군요.

얼마 전 갑자기 "우리를 슬프게 하는것들"이 보고싶어
한 권 있는 '안톤 슈낙'의 산문 집을 컴퓨터 옆에 갖다 두었습니다.

제일 앞에 있는, 그 옛날 국어책에 실린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낭송하며,
그 까까머리 시절의 낭만으로 돌아갔었지요.

"...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 아무도 살지않는 고궁. 그 고궁의 벽에서는 흙덩이가 떨어지고,
창문의 작은 나무위에는 '아이쎄여 내너를 사랑하노라...'는
거의 알아보기 어려운 글귀가 씌어 있음을 볼 때."

"... 공동 묘지를 지나갈 때. 그리하여 문득
'여기 열 다섯의 어린 나이로 세상을 떠난 소녀 클라라 잠들다.'라는
묘비명을 읽을 때. 아, 어린 시절 그녀는 나의 단짝친구 였지."
... ...

그 어느 한 단어, 한 구절도 놓지고 싶지 않는 '안톤 슈낙,의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나도 사랑합니다.

젊은 날 부터 "나는 언제 '안톤 슈낙'과 같은
산문을, 수필을 쓸 수 있을까...?"하는 마음만 가지곤
늘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면서 살아왔지요.

그대...

"늘 고독했으면서도 가난한 영혼을 꿋꿋이 지켜오지 않았느냐"구요?

그래요.

늘 고독하면서도 가난한 내 영혼이었어요.
바람에 날리는 갈대처럼 언제나 바람을 탔지만,
갈대처럼 생각하며, 그 바람을 견디려했었구요.
내 가난한 영혼을 지켰는지의 여부는 나로서는 모르겠습니다.

이제 내 영혼은 '그대'란 실존을 만나
서로 보듬고,
서로기대며,
서로 안식 할 수 있음을 느끼고 또 봅니다.

진솔한 이야기를, 처철한 영혼의 외침을
글로 표현하지 않겠느냐고 권하신 그대의 말씀, 진정 고맙습니다.

불씨마저 끄지려던 내 깊은 마음의 소망을
일깨워 주시고, 불붙여 주심을 헛되이 하지 않도록 살아보렵니다.
나 능력은 없으나, 그대 통해 오시는 영감을 믿으며,살아내보렵니다.

그대...

그대도 이미 밝히고 계신 예술혼을
나도 함께 더 밝게 빛내시리라 믿습니다.
친구로서,
동지로서,
연인같은 길벗이되어 안톤 슈낙과 같은 세계로 우리 함께 가실까요?

그대...

맞아요. 깊은 영혼의 일치를 나누는
친구 있으니. 나도 이 가을이 행복합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가을에는 홀로 있게 하소서. 가을에는 진실하게 하소서.
가을에는 착하게 하소서. 가을에는 아름답게하소서.

이 밤...
아름다운 꿈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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