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밑에 문주란이 방망이 만한 꽃대를 내밀기 시작했다.
" 야 ! 문주란이 또 꽃을 피우려나봐 ! 올해엔 세 번째 아냐 ? "
설흔 살이 넘은 늙은이, 덩치만 커서 이리저리 발길에 차이며 언제 쓰레기로
처리될 지 모르는 가련한 신세로 전락했던 문주란 -
이 문주란은 내가 제주도에 전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반출 단속을 무릎쓰고
숨겨 가지고 온 거다. 형제들에게 기념으로 한 그루씩 분양했지만,겨울철 관
리가 불편하고 잎이 무성하여 이사다니다가 모두 버림을 받고,지금 나에게만
한 그루 남아있다.
어머니가 보살필 때에는 해마다 한번 씩 꽃을 피우고, 그 진한 향기를 떨치
던 것이 요즘 몇년은 천덕꾸러기가 되고 말았다. 겨울에는 베렌다에 방치되여
동해를 감내해야 했고, 비료는 고사하고 물도 잘 못 얻어 먹으니 그 초라한
모습이 흡사 병든 늙은이 꼴이다.
더군다나, 덩치가 커서 공간을 많이 점하고 다른 화초를 덮는다고 미움을 받아
왔다. 그래도 큰 아들하고 나이가 같고, 어머니가 보살피던 것이라 해서 차마
내버리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지난 봄 화원에 드나들면서 특수 비료를 만들어 시험삼아서 몇몇
나무에 시비를 하였는데, 그 성과가 두어달만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수년 동안 보지 못하던 꽃대가 한꺼번에 두 개나 삐죽이 솟아났고, 얼마 뒤 환상
적인 꽃다발이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니는 물론, 가족 모두가 신기하게 바라보
며 찬사를 보냈다.
봄이 이지러지며 문주란 꽃도 시들어 갔다. 그 장대한 꽃대를 칼로 잘라내며.
나는 만유의 흥망성쇠를 연상하였다.
그런데, 엇그제 물을 주다가 살펴 보니 꽃대 하나가 슬며시 솟아나고 사흘만에
꽃봉우리를 터뜨렸다.
" 올해는 무슨 경사가 생기려나봐 ! 세번 째 꽃이 피어났어 ! "
나는 소리쳤다.
나는 비료의 효과를 잘 알면서도 그것이 집안에 상서로운 일이 생길 징조라고
믿고 싶었다. 만일 나에게 지금 천복이 내린다면, 나는 무엇을 선택할까? 돈?
명예 ? 권력 ? 골라잡을 것이 없다. 지금 이대로면 족하다. 다만, 환란만 없이
지낼 수 있다면 감사할 뿐이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한 것이다. 이제부터는 문주란을 구박하지 말고 시골 화원
으로 옮겨서라도 잘 보호해 주어야지 .어머니의 사랑이 담겨 있는 문주란을
내가 할 수 있는 날 까지 간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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