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절, 소년.소녀들만 보세요.


새로 난 서해안 고속도로는 모양만큼이나 시원스레 뻗어있다.
주말이지만 늦은 시간이라 그다지 차량은 많지 않은 듯하다.


서쪽하늘이 벌겋게 물들어 있다.
해가 지는 모양이다.
서해의 낙조는 언제 보아도 장관을 이룬다.


7.3키로의 서해대교의 웅장한 자태가 한눈에 들어온다.
형형색색의 야간 조명장치로 인해 더욱 아름다움을 뽐낸다.
세계에서 네 번째로 긴 다리 - 바다위를 연결한 한국인의 의지가 다시금 뿌듯하게 느껴진다.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차를 세운다.
봄이 한창이지만 이상하리 만치 차가운 바람이다.

이곳에서 석양을 맞다니 !!!!

소녀는 정말이지 우리나라의 서쪽의 모습이 이토록 아름다운 지를 처음 알았다.
사실 서해안을 달려보긴 난생 처음이다.
소녀는 동쪽에서만 살아왔기 때문이다.


서해대교를 지나 바로 연결되는 송학램프로 차를 진입시킨다.
한적한 국도지만 4차선의 뻗은 도로엔 정말이지 고요할 정도로 통행차량이 뜸하다.


갑자기 차 속에서 숨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은 왠일인가?
옆에 있는 소녀의 얼굴이 어둠속에서도 상기되어 있음을 직감한다.
소년은 안심하라는 듯 조용히 소녀의 손을 잡는다.


송학 전망대는 안섬휴양지의 언덕위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서해안에서는 드물게 일출과 일몰을 다 볼 수 있단다.
소녀는 생각만해도 마음이 설렌다.

언덕에 올라서니 서해바다의 아름다운 자태가 한눈에 들어온다.
밤이라 바다는 보이지 않지만 밀물에 부서진 파도의 하얀 포말이 귓전을 울려 바다를 느끼게 하고,
그리멀지 않은 곳에 떠있는 고깃배의 휘황한 불빛이 바라보는 마음을 더욱 설레게 한다.


바다를 배경으로 소년소녀는 말없이 어깨동무를 한다.
서로 아무말이 없어도 그들은 무수한 언어로 속삭이고 있으리라.


아름다운 바닷가의 야경에 취해 두사람의 마음은 뜨거운 감동으로 젖는다.
두사람은 감격에 어린 눈빛으로 서로를 마주본다.


소녀의 두눈이 촉촉히 젖어있다.
소녀를 바라보는 소년의 눈동자도 이미 눈자위가 붉게 젖어있다.


그들은 왜 눈물을 흘리는 것일까?

소년이 가만히 소녀를 감싸안는다.
소녀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소녀의 온몸에 가벼운 경련이 인다.
가슴으로 전해오는 소녀의 심장소리.....


밤바다의 파도소리가 저 멀리서 아스라이 들려온다.
철썩, 처얼썩................................


소녀는 소년을 재촉하여 밤바닷가로 나갔다.
방파제 앞에서 파도소리를 들으며 한없는 행복감을 느껴본다.

아 !! 정말 꿈만 같다......
내 일생 이렇게 숨막히는 기쁨에 젖어 본 적이 있었는가?


소년은 조용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얼어붙은 달 그림자 물결 위에 차고
한 겨울의 거센파도 모으는 작은 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어느 틈엔가 소녀는 화음을 넣어 부르고 있었다.


소녀는 생각한다.
-그래, 오길 참 찰했어-

이 아름다운 추억의 순간,
어쩌면 내 인생 가장 아름다운 순간일지도 몰라.
정말 멋진 사람과의 추억의 밤 !!

사랑하는 그이와 함께 한 이 밤은 영원히 기억 될 거야.

저 멀리 어두운 뱃길을 비춰주는 등대의 불빛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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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부부동반으로 송학, 안섬휴양지에 다녀왔습니다.
서울에서 1시간 지근거리의 작고 조용한 마을 이었는데
정말이지 한폭의 소설이 씌어지는듯 감성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곳 이었습니다.
그래서 졸작이지만 한단락 엮어 보았습니다.
여러분, 소년소녀시절의 기분으로 한번 돌아가 보시지 않겠습니까?

















귀뚜라미 소리 들으며...





그대...

마음담아 보내주신 소식 고맙습니다.



성당에서 회의를 마치고 밤에 돌아와

차를 세우고 우리 작은 둥지로 들어 올 때,

귀뚜라미 한 마리의 맑은 소리가

제 마음의 귀를 노크하였어요.



장마 때 보다 더 궂게 오는 비때문인지

말복도 입추도 지난 시기이건만

별로 느끼지 못하던 가을이,

약한 안개비 속에서 들린 맑은 한 마리 귀뚜라미 소리에

밀물처럼 왈칵 내 마음에 와 닿았지요.





가을.

아! 가을인가...?



서녘에서 하늬바람 불어오면,

가을을 채촉하는 비구름도 걷히고

맑은 하늘, 맑은 별, 깨끗한 은하수, 쪽 빛 바다 펼쳐지겠지요.



서녘 하늬바람 더 불어오면,

푸른 잎은 울긋 불긋 단풍으로 물들고, 오곡 백과 여물어 무르익겠지요.





가을.

아! 진정 가을인가...?



어린 시절 고향 초가 지붕엔

여름부터 하얀 박꽃 피어, 박이 주렁 주렁 달렸었지요.



가을이 되어,

소슬한 가을 달밤에 핀 하이얀 박꽃은

어린 내 마음을 어이 그리도 시리게 하였던지요?



무서리 내려 박꽃은 지고,

그 잎새도 마르고,

덩굴도 시들 무렵이면,

우리 둥지에선 박을 따 톱질하여 바가지를 만들었지요.

어린 우리 동기 네 남매는

학교에서 배운 흥부전의 행운을 기대하며 아버지 하시는 톱질을 도왔었구요.



어머니는 설익은 박 속으로

박나물을 만들어 가을 밥상에 올리시면,

물컹하고 무덤덤한 맛에 맛 없다 투정하던 우리 네 동기들의 천진한 모습...





이런 것들이 이 밤 귀뚜라미 소리 들으니,

되살아난 그 옛날 가을의 한 풍경이었어요.





그대,

이 가을엔 마음 비우는 연습을 하고 싶군요.

외로움이 아닌 고독을 통해, '텅 빈 충만'을 맛보고 싶어요.



가을 하늘처럼 푸르게 시리고,

가을 은하수 별처럼 맑고,

앙상한 가지에 소슬 바람부는

늦가을 황혼처럼 아름다운



'텅 빈 충만!'....



이 가을은 그런 가을이고 싶어요.



하여, 이렇게 기도합니다.



이 가을엔 고독하게 하소서!

이 가을엔 비우게 하소서!

내 마음 모두 비워 그 누구, 그 무엇이건 담을 수 있는



'텅 빈 충만'을 누리게 하소서!





그대...



제가 무척 욕심장이이지요?

그래요. 욕심장이 랍니다.



"사랑하는 이여 ~

영원의 향기는 고난중에 발산된다는 사실을 묵상해봅시다 " 하신 말씀처럼

이 가을엔 고독한 비움의 고난 길을 걸어

가을 향기,

'텅 빈 충만'의 향기,

영원으로 이어지는 향기를 내고 싶어요.



건강한 가운데 사업 번창하시고,

기쁜 나날 되소서!



안녕!





보니 드림.

...
















하늘에는 검은 구름이 드문드문 흘러간다. 둥근 달은 구름의 바다를 누비며 출렁이는 빛을 호수에 뿌린다. 교교한 달빛이 내려 앉은 숲속의 호수에 낚시를 드리우고 상큼한 숲의 향기에 취한다.

붕어는 태생이 슬픔 그 자체이다. 붕어는 겉보기에는 다른 물고기와 비슷하지만, 체형이 특이하므로 낚시꾼들의 집중적인 공략 대상어가 되어버렸다.
전체 체형을 살펴보면 배가 부르고 주둥이가 짧다. 많이 먹어야 하는 데, 주둥이가 짧고 배가 둥글다. 이것이 붕어에게는 비극이다.

잉어는 주둥이가 주름지고 길며, 배는 그다지 불룩하지 않은 유선형이라서 그냥 입을 쑤욱 내밀어서 먹이를 빨아들여 그냥 삼키면 된다. 그래서 잉어의 입질은 찌를 쑥 끌고 들어간다. 메기 장어 등 다른 물고기들도 이와 같다.

붕어는 짧은 입으로 입질을 하고서는 배가 불룩하여 머리를 위로 쳐들어야만 삼킬 수 있다. 물구나무 선 자세로는 먹이를 삼키기 어렵다. 이러한 까닭으로 붕어의 입질은 찌를 높이 솟구치게 하는 것이다.
이 환상적인 입질과 찌올림 때문에 낚시꾼들이 붕어를 선호하게 된 것이다.

옛날 중국에 한 새 잡는 사람이 있었다.
사방에 그물을 치고 거기 들어오는 새는 전부 잡는 것이다.
한 대부가 그에게 말했다.
"아무리 미물일지라도 도망갈 곳은 터주고 잡는 것이 자연의 도리이니
그물 한 쪽을 터놓고 말하시오"
새잡이가 물었다.
"뭐라고 말할까요?"하니
"새들은 들어라! 한쪽이 터져있으니 터진 쪽으로 날아가거라. 내 말을 듣지 않는 놈들만 그물에 걸려라"라고 말하라며 대부가 일렀다.
사람들은 그 대부를 인자라고 여겨 그 소문이 멀리 펴졌다.
황제가 이 소문을듣고 대부를 불러 정사를 맡겼다.

이 이야기가 생각나서 나도 흉내를 내어보는 것도 재미있다고 생각하여, 두개의 낚시 바늘 중에 은빛 바늘의 끝을 뭉퉁하게 잘라내고 미늘을 없에고 금빛 바늘은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는 떡밥을 달아 던지고는 주문을 외운다.

"금빛 바늘의 떡밥은 먹지 말고 은빛 바늘의 떡밥만 먹어라. 내 말을 어기는 놈들은 혼 날 줄 알거라."하고는 기다렸다.

드디어 어신이 온다. 찌가 쑤욱 솟아오른다. 챔질을 하니 걸리지 않았다. 아마 내 말을 새겨들은 붕어인가보다. 몇 번 솟구치는 찌를 감상하다보니 한번은 찌가 호수위에 벌렁 자빠진다. 챔질을 했다.

피아노 소리를 내며 낚시줄이 운다. 그 소리는 붕어의 내재된 슬픈 영혼의 소리다. 태생적인 슬픔이 줄을 통해 울고 있다. 나는 그 울음을 즐기며 먹이사슬의 최고봉에 앉아 있는 기쁨을 만끽한다.
손맛이다.
낚시꾼들만 아는 손맛, 이 손맛을 느끼려고 이 밤중에 홀로 앉아 있다.
안개를 타고 내려오는 풀향기가 주위를 감싸고 있다. 행복한 순간이다.

한참을 낚아내고 살림망을 들여다 본다. 거기에는 내 말을 듣지 않는 놈들이 주둥이가 하얗도록 살림망을 들이 박고 있다.
갑자기 엄숙해 진다.
붕어에게는 내가 자신들의 생사여탈권을 가진 절대권자이리라.

둥근 달이 버드나무에 걸렸다. 달을 쳐다보니 달 또한 좋다. 바람에 일렁이는 버드나무 가지 따라 달이 춤춘다.
붕어의 생사여탈권을 가진 절대자의 마음에 자비심이 싹트기 시작한다.
갑자기 붕어가 불쌍해 진다. 고소한 떡밥 미끼에 혹해 내 말을 듣지 않고 미끼를 물고 늘어진 붕어들이 미련하다는 생각이지만 불쌍한 생각이 든다.

하늘에서부터 물속으로 내려 온 보이지 않는 낚시줄, 그 줄하나가 붕어에게는 운명의 줄이다. 끝에서 갈라져 내려온 짧은 목줄 두개, 하나는 복이요 또 하나는 화이다.

중천에 걸린 달님이 웃는다. 너 또한 그러하노라고 하듯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처하는 인간들도 화와 복이 뒤엉킨 수 많은 운명의 실을 어찌 구별하겠는가. 복이라고 달려든 것이 화가 되고 화라고 생각하여 애써 피한 것이 복덩어리였음을 어찌 알겠는가.

살아가는 데 아무런 고통도 없는데, 재물을 탐하여 미끼를 덥썩 물었다가 패가망신하는 사람들이 어디 한 두 명인가.
명예를 얻으면 족한 것을 굳이 재물까지 얻으려 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권력의 최고봉에 올랐으면 그것으로 가문의 영광이며 최고의 명예이거늘, 그의 아들들은 가진 것 위에 더 욕심을 부려 미끼를 덥썩물었다가 감옥에 갇히는 사람도 있다.
인간이 미물이라고 없신 여기는 붕어보다 더 나을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붕어에게 내려진 줄은 붕어로서는 원초적 본능으로서의 슬픈 운명이며 사실은 붕어에게는 불가항력이다.
대개의 인간은 운명의 실체를 알 수 없어 운명의 늪에 빠져 허덕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요행과 세력과 금력의 힘을 믿고 미끼를 덥썩 물기도 한다.

미지의 운명은 인간에게 변명의 여지를 남기기도 하며 재생의 기회를 주기도 하지만, 결과를 뻔히 알면서 탐욕의 미끼를 삼킨다는 것은 운명을 우롱하는 것이며, 이것은 미필적고의에 의한 탐욕죄에 해당된다.

수천 수만 가닥의 실에 매어달린 운명, 화와 복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은 대자연의 속성이라고 하지만, 권력이 개입된 운명은 이미 그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그럼에도 자승자박하는 사람들을 보면 어찌 붕어보다 낫다고 할 수 있겠는가.

둥근 달도 이제 서산에 걸렸다.
달이 밝은 밤의 낚시는 큰 기대하는 것이 아니다.
살림망에 갇혀 있던 붕어들 다 풀어주고 다음에는 속지 말라고 일러주었다. 주섬주섬 살림을 챙겨 둘러매고 숲속길을 걸어 나온다. 휘적휘적 내 젓는 소매 끝에는 향긋한 바람이 일아나고 풀숲을 헤치는 발걸음은 가볍다.




내가 아는 개그맨


사람의 가치...
세상에 아무리 볼 품 없는 사람 이라도
진가를 발휘하는 구석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화가의 그림 솜씨...
소설가의 글 솜씨...
가수의 노래 실력....등등...많다...

개그맨이라는 직업인.
남을 웃기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다.
그들의 비애를 우리는 잘 모른다.
그들은 겹겹이 쌓인 감정의 두께를 잘 드러내야(조절) 무대에 설수있다.
한,두시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든지
치고받고 싸웠든, 통곡을 하고 울었든,
무대에선 남을 웃겨야만 한다.

내가 아는 몇몇의 개그맨 중에 한 명.
故양종철.
불의의 교통사고로 짧은 생을 살었다.


몇년전,
미국에서 온 내 친구를 위하여 서울친구들이 술 파티를 벌였다..
강남의 호텔,나이트에 합석을 하면서 알게된 그들은
내가 아는 어떤 사람들보다 똑똑하고 명쾌한 사람들이었다.

또래 개그맨 몇 명과 우리 일행들, 모두 열명이었다.
술자리가 한참 흥이 날 즈음에
집에서 자살 소동을 일으키는 와이프의 전화를 받고
부리나케 달려가는 어느 유명 개그맨이 있었다.
모두들 찬물을 끼얹은듯 숙연했었다.
그들도 여느 사람과 다를바 없는 일상을 산다.


그 중 양종철氏는 미국친구의 남편과도 친분이 있었다.
서로가 새벽에도 꺼리낌 없이 부르고, 불러내는 선후배였다.
양종철氏의 진가가 어김없이 발휘되는 때는 물론 노는 자리였다.
춤과 노래실력을 겸비한 분위기 메이커였었는데...

돈 욕심이 전혀 없는 그는 소위 말하는 셈이 약하다.
숫자 개념이나 돈에 대한 욕심은 철부지 수준이란다.


코메디언, 故이주일氏의 부음 앞에 숙연해 진다.
배고프던 무명의 시절도 있었고
14대 국회의원도 지냈던 영욕의 세월을 접었다.

그 못생긴 사람이 무대 위에서 받은 사랑은 가히 눈 부시다.
그의 가치를 사람들이 알아 본 까닭이다.


거목 개그맨의 부음을 접하며,
그 밝고 순진했던 양종철이 생각이 함께 났다.
인생무상을 느낀다.

오늘 사는 우리들 목숨.
내일 보장은 아무도 못 하는것을...

...





..





























네모 카페



글/그리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이렇게 작은 네모 안에서
그렇게 많은 생각들을
그렇게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작은 카페에서
이렇게 작은 마음으로도
그렇게 큰마음을
이렇게 주고받는다.



작은 네모 카페엔
작은 네모란 사연이
많은 사람들과 모여
커다란 그물이 되고
작은 네모 카페엔
커다란 동그라미가 인다.



작은 네모 카페엔
작은 소인들이 모여
커다란 거인을 만들고
그렇게 작은 네모 안에
이렇게 작은 내가 있다.

































 







사랑이 꽃피던 시절



세상에는 행복하고 타고난 복이 있는 사람도 많은데, 나는 왜 박복하여 물지게 지고
하루살이 허덕이며 죽지 못해 사는 가난한 집안의 자식으로 이 세상의 빛을 봐야
했는지, 입술을 깨물며 하늘을 원망하며, 그렇게 자살을 하려했던 청춘의 아픈 추억을
가진 철부지 시절도 있었답니다.


내 처지에 무슨 사랑이고, 내 사정에 무슨 연심이련만, 나는 열여덟 살이라는 나이에
고무신공장의 동료 여공인 이름 모를 청순가련형의 갸름한 얼굴의 소녀를 마음속으로
부터 좋아하고 있었습니다.


나이가 어리다고 한때 공장에서 쫓겨났던 나는 겨우 공장에 다닐 나이가 되어 다시
일터로 돌아왔을 때, 그녀는 잊지 않고 두 손으로 나를 반기며 좋아했지요.
난생 처음 잡아본 이성의 손길인 그 소녀의 손을 나는 꼭 잡고 홀딱홀딱 뛰면서
반갑다는 그 말밖에는 할말이 특별히 생각나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남자다운 또 다른 일을 찾아 조금 더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다른
공장에 금새 취직이 되어 만나자마자 이별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할지 배우지 못한 나는 그저 손만 흔들었고, 소녀는 오랫동안 공장
입구에 서서 서러운 모습으로 미소를 짓고 서 있었는데, 그 때 그 모습이 그녀를
마지막 보게된 얼굴이었습니다. 지금은 어느 하늘아래 살고 있을까,
중년의 길목에서 나는 희미한 추억의 그녀를 생각해 봅니다.





삐리리가족, 돈맥경화증 남자



다른 남자들은 중년이 되면 고혈압이다, 당뇨다 하면서 성인병이 걱정이라는데
나는 그런 것은 걱정 없고 돈맥경화증에 걸려 엄청 고생이 심하지요.
도대체가 호주머니에 돈이 돌지 않아 막혔으니 우야몬 좋을까요.

듣자니 가관이요, 보자니 꼴불견이더군요.
『엄마! 제발 부탁이요, 책상 위에 돈 좀 놔두지 마요,
난 돈 필요 없다고요, 돈 많이 주면 자식 버린다 구요』
『남들에게 꿀리지 말고, 돈 좀 갖고 다녀 인석아!』
아들놈과 마누라의 대화는 나의 염장을 질렀지요.

『그 돈 나주라! 이발해야 돼, 고맙데이』 하면서 그 돈을 집어드는 순간
덥석 돈을 낚아채며, 마누라가 홱 하니 빼앗아 가버리는 거 있지요. 완전히 소림사
권법을 방불케 했습니다. 저 사람이 나의 본처 맞나요? 대한의 건아! 하늘같은
남편인 나에게만 인색한 이유는 무엇인지? 나는 이렇게 구박받는 찬밥 신세랍니다.


이종 조카딸의 결혼식 날이었지요.
마누라가 봉투에 십만 원을 넣어서 부좃돈으로 주더군요.
언제 조카딸이 나에게 인사 한 번 다녀간 일이 있나, 웬 십만 원이래요?

현명한 이 몸이 싹뚝 반을 잘라 인 마이 포켓 했거들랑요. 나중에 그 것이 들통이
나서리 엄청 다투었지요.
아! 돈맥경화증 남자! 불쌍한 이 사람 위로해 주셔요.









나의 이기심

남혼 여가는 어느 종족에나 공통된 삶의 모습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는 번식 수단으로서 암수의 교접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이것은 하나의 자연법칙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이러한 자연법칙에 순응하여 나의 조상이 살아왔고, 또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세상에는 혼인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란 말이 나돌면서 독신주의에 공감하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다.
혼인을 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 하는 질문에 대해선 나도 할 말이 없다.


아들이 혼인을 하고 싶다고 서둘기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여기저기 혼처를 알아보았다.
그러면서도 혼인을 하지 않겠다는 딸에 대해서는 굳이 결혼을 권하고 싶지 않다.
아무래도 이 문제만은 본인의 자유의사를 존중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남자는 혼인을 하면 좋은 것이 많다.
젊음의 욕정을 아름답게 연소하는 기쁨이 있고,
중요한 의식을 제공해 주는 아내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여 여자에겐 기쁨에 비하여 감내해야 하는 고통이 너무나 크다고 생각한다.
(요즘엔 많이 변하긴 했지만,)


특히 여자가 아이를 출산해야 한다는 역할은 끔찍한 일이다.
평생 자식들을 위하여 희생을 감수하면서
남편과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은 성자만이 가능한 고행으로 여겨진다.


혼인은 이러한 길을 여는 의식이므로 아주 엄숙하고 비감한 사건일 수도 있으리라.
小學이란 책에 보면,
婚禮不賀는 人之序也라 는 말이 있는데,
옛 사람은 이와 같은 의미에서 혼인에 축하한다는 인사말을 서로 건네지 못한 것이 아닐까 ?


어찌되었건,
혼인에서 남녀의 손익계산을 굳이 한다면,
여자의 희생이 더 크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딸 보다 아들을 선호하는 부모의 심정도 이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런 줄 알면서 나는 아들과 혼인 할 규수를 유혹하려 든다.
며느리로서 고행을 감당할 여인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시집가지 않겠다는 딸에겐 자유의 길을 은근히 돕고 있는 것이다.
나는 분명, 자기 모순과 이기심에 푹 빠진 속인임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특별한 인연


누구나 살면서 자신의 삶의 획을 그을 만한 사람을 만나기 마련이다.
평생지기일 수도 있고, 학교 은사님일 수도 있고, 또는 어떤 책이 되기도 한다.

나는 고 2때 그런 특별한 만남이 있었다.
고2 수학여행을 설악산으로 갔을 때였다.

우리만 해도 교복세대라서 수학여행이라 해도 교복 아니면 체육복을 입고 가야했다.
전혀 사복이 허용이 안되던 때였다.

하지만 우리 학년은 얼마나 드셌는지 각 반의 반장들이 교장실로 찾아가, 우리 사복입고 가게 않해주면 몽땅 수학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협박과, 공갈과, 애원을 곁드려서 겨우 빨간티에 청바지로 통일하는거로 해서 겨우 사복으로 수학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획기적인 거였다.
다른학교는 모두 체육복 차림이었으니. 당연히 우리학교 학생들은 인기가 캡이었다.

다른학교에서 수학여행온 남학생들로부터 쪽지가 오고가고 정말이지 한껏 들뜬 수학여행이었다.
설악산행을 마치고, 저녁식사후 자유시간이 주어져서, 우린 경포대 바닷가를 구경을 갈 수 있었다.

끊임없이 밀려오고 밀려가는 바다를 보며 마냥 즐거워 하는 우리를 웬 노신사분께서 부르셨다.

다가가니, 어디서 왔느냐, 몇학년이냐? 무슨생각을 갖고 공부를 하느냐?
등 보통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질문을 하셨다.

별 관심없는 아이들은 그냥 바다쪽으로 가버렸고, 나와는 꽤 오랜시간 대화를 나누었다.

나중에 헤어질때, 명함을 한장 주셨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큰 회사를 경영하는 회장님이셨다.

그때만 해도 그런것이 크게 와 닿는것이 아니라서,편지를 꼭 하라는 말씀과 함께그냥 명함만 받아들었고 그냥 그렇게 오랜시간 많은 대화를 나누고 그렇게 헤어졌다.

편지를 쓰겠다는 약속 때문에 시작한 편지는 대학졸업때 까지 이어졌다.
내가 안부편지 한장쓰면 그 분은 장문의 편지를 보내주셨다.

너무 지루한 내용이어서 그냥 건성 읽었는데, 사람이 어떤 목표를 갖고, 어떻게 살것인가에 대햔 내용이었던것 같다.

그 인연으로 해서 그 분이 경영하시던 회사에 입사를 하게되었고, 그분 가까이서 일을 배우게 되었다.

자수성가하신 분이라, 배울점이 많았다.
실제로 나와같이 근무하던 비서실장은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계신다.

수학여행가서 만난 특별한 인연으로 여느 직장과는 아주 다른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지금 93세로 아직 생존해 계신다.
작년까지만 해도 골프도 치실만큼 정정하셨는데, 올해는 작년만 못하신것 같다. 안부전화 드리면, 아직도 나를 기억해 주시는것을 보면 정말 정신이 맑은 분이시다.

나에게 많은 본보기를 보여주신분이고, 삶의 지표를 가르쳐 주신 분이기도 하다.

그분과의 특별한 만남은 내 인생에 있어서 큰 전환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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