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잊혀져 가는 모든 것 ***







잊혀져 가는 모든 것이 사랑스럽습니다.

초가삼간 오두막에서
태어나 객지 생활 30여 년 지금껏 고향엘 다니건만
어느 날부터인가
초가삼간 간 곳 없고

지붕 위의 하얀 박꽃 함께 자취를 감추고
싸리나무 울타리 위를 기던 호박넝쿨 조차도
볼 수가 없습니다.

그저 마을 앞 강물을 그대로 길어 먹던 맑은 물도
어느 날부터 그 예전의 강물이 아닙니다.

골재채취로 없어진 강변의 모래밭과 자갈밭이
그 또한 땅버들만 자라고 있고 강변은 갈대로 덮여 있습니다.

굽이굽이 감돌아 흐르던 물길도
인위적인 제방으로 그 곡선의 아름다움을 잃고 말았습니다.

굴렁쇠를 굴리며 다니던 좁은 골목길도 시멘트로 포장되고
들녘으로 향하려 건넜던 개울의 징검다리도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나 어릴 적에 살든 고향의 모습은
빛 바랜 사진 속에서나 기억되고 아름답고 따뜻한
이웃 간의 정이 조금씩 멀어져가고 아름답기만 하던
고향의 기억이 조그만 아픔으로다가 섭니다.

꼴을 베어 담든 망태기도 나무를 지던 지게도 잠을 자고
집집마다 있었든 외양간과 돼지우리 또한
경운기나 트랙터의 차고지로 변하고 새벽을 알리던
닭 울음소리 들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둘씩 내 곁을 떠나 사라져 가는 모든 것들이
이 가을에 사랑으로 다가섭니다.
그리움으로 남습니다.

아름답게 이야기를 나누던 말들도 어느 사이 준말로 바뀌더니
이제는 좀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가 생겨났습니다.

이웃을 먼저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 또한 조금씩 아주 조금씩
잊혀져 가는 듯한 세상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잊혀져 가는 모든 것들을 다시금 생각하고 사랑하는
남은 삶이기를 이 가을에 생각해 봅니다.
모든 것은 사랑스럽습니다 아픔도 미움까지도.....

2002,10,14, 밤에.....

글/박해식

























- 방랑의 계절 -

동학사의 계곡 물소리는 벌써 차가운 안개를 뿌리며 중중거리고 흘러간다. 울긋불긋 곱던 단풍잎도 거의 지고 동학사로 들어가는 산길은 적막하기만 하다.

나는 누구를 찾아가는지 조차 모른 채, 힘없는 발길을 옮겨갔다. 스물 셋의 팔팔한 청춘이련만, 최근 1년여 동안 너무 많은 방황으로 기진해 있었는지 모른다.

학교를 다니다가 군에 지원 입영하였으나 훈련소에서 신검 불합격 판정을 받고 귀향하였다. 사실 나는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군 입대를 결심했던 것이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니 당장 갈곳이 마땅치 않았다. 시골 친척집을 여기저기 다니면서 추수 일을 거들고 약간의 여비를 얻어 이렇게 방랑 길을 헤매고 있는 것이다.

45킬로를 겨우 넘는 깡마른 체격에 의기 또한 소침해 있으니 그 초라한 모습을 어디에 비할까 ? 조정에서 추방당한 뒤 할 일없이 전원을 방황하던 중국 전국시대 굴원의 초췌한 행색에는 그래도 고결한 풍이 서려 있을법하고, 문전축객을 당하던 김삿갓에게는 시와 해학이 있지 않았나 ?

숲에서 울려나오는 목탁소리가 점차 가까워지더니 이윽고 작고 퇴락한 동학사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6·25 때 불타고 남은 건물은 옛 명성에 미치지 못하였다. 한 때는 길재, 김시습 같은 명인들이 머물며 고려유신과 사육신등의 원혼을 위로하기 위해서 기도하던 명찰이 아니었던가.

절 마당에 여승이 가끔 눈에 뜨일 뿐, 주변은 고요하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 스님을 찾았다. 잠시 후 나를 맞은 사람은 칠순이 훨씬 넘은 듯한 노승이었다.

노승의 안내로 나는 툇마루에 좌정하고 경내를 둘러보면서 이마에 땀을 닦았다.
" 스님, 여기서 공부할 방 하나 얻어볼까 하고 왔는데요. 형편이 어떠신지요 ? "
노승은 내 표정을 여러 모로 살피더니 입을 열었다.
" 이 절에는 모두 여승들만 있어요. 사내라곤 나하고 나무하는 사람 단 둘이지. 여기는 젊은이들이 있을 데가 못돼요. 좋은 세상 놔두고 뭣하러 이런 데를 찾아와요 ? 사람 사는 데는 어디든 마찬가지랍니다. 절간에 들어온다고 별 다른 게 있나요 ?"

노승은 아마 내가 불도를 공부하러 절에 오려는 줄 알았나 보다. 나는 더 이상 사정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잠시 후 앳된 여승이 검정 칠을 한 작은 밥상을 들고 와서 살며시 놓고 합장을 한다.
" 손님, 편히 드세요. "

저런 고운 여인이 어쩌다가 중이 되었을까? 햇볕도 모르고 이 산중에 갇혀 젊음을 보내다니 ……, 저 여승은 오히려 지금 나를 부러워할는지도 모르지. 혼자 잠시 공상을 하다가 노승의 말에 놀랐다.
" 식기 전에 드시지요. "
보리가 섞인 밥에 산채 몇 가지였으나 따뜻한 김이 오르는 밥은 꿀맛이었다.

식후에 노승을 따라 절을 한 바퀴 돌았다. 여승들의 글 읽는 소리가 낭랑하게 울렸다. 여승만 있는 동학사에서 노승은 불경을 가르치는 강사 일로 소일한다고 했다. 불경은 모두 한문으로 돼 있기 때문에 불경을 배우려면 먼저 유가의 사서삼경 같은 것을 배운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노승은 나에게 불경 이야기는 한 마디도 비치지 않았다. 자신도 어쩌다가 불문에 들어와 속절없이 늙었다는 회한 어린 얘기뿐이다.

나는 노승을 하직하고 중문을 나섰다. 나무하는 중년 남자가 골방 문지방에 걸터앉아 낫자루를 맞추고 있었다. 나는 후원 감나무 밑에 잠시 앉아 생각에 잠겼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소중한 것은 무얼까 ? 정신이냐 물질이냐 하는 원론적인 고민에 빠져있던 나는 드디어 만유는 물질에서 비롯한다는 결론을 다지고 있었다. 도를 닦는다며 10년이나 산촌에 칩거하시던 아버지는 뒤늦은 후회를 안고 다시 서울로 가셨다. 지금 얼마나 뼈아픈 시간을 보내고 계실까 ?

서늘한 늦가을의 산바람이 스산하게 느껴진다. 감나무에서 물은 홍시가 바위에 떨어지는 소리에 놀라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 지금은 비록 어둡고 괴로운 길을 걷고 있지만, 세월이 가면 나에게도 꽃피는 봄날이 찾아오겠지 ! 흥진비래요 고진감래라 하지 않았던가 ?"

골짜기엔 벌써 계룡산 그늘이 길게 덮이기 시작하였다. 나는 절에서 내려와 다시 무작정 걸었다. 공주군 반포면 어디쯤이었을까 ? 들에는 볏가리가 무리 지어 늦가을의 풍요를 연출하였다. 붉은 노을이 서녘 하늘을 빨갛게 물들이고, 초가 지붕에는 저녁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저물기 전에 잠자리를 마련하기 위하여 낯 선 집 사립문안으로 들어가서 하룻밤 묵기를 청했다.
" 미안하지만, 저기 저 집으로 가 보셔유. 이장님 댁 이니께유. " 이장 댁 사랑방엔 석유 남포등이 무척 밝게 빛났다. 한 눈에 부농 티가 났다. 낯선 나그네를 아무 거리낌 없이 들이고 저녁 대접까지 하던 그 농부의 인정이 지금도 그립다.

다음날 아침, 외로운 가을 나그네는 주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못한 채, 마을을 떠나 유성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몇 해 지나서 동학사의 노승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노승이 길에서 주어다 키운 양녀가 27년 만에 동학사 승방을 뛰쳐나가는 바람에 노승이 크게 실망했었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내가 하룻밤을 묵었던 이장댁, 저녁 노을이 빨갛게 불타던 그 마을을 나는 지금 다시 찾아가 보고 싶다. * -바람과달








보내기만 하는 편지








보내기만하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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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계신지요...
내가 보내는
그리움을 받고는 계신지요.


가끔은 무엇인가에 몰리어
잊고도 지냅니다.
그러나 언뜻 언뜻 그리움이 찿아 지곤 합니다.


오랜 침묵이
어쩌면 그리움을 삭이는 묘약처럼
이제는 담담함이
오히려 약이 됩니다.

이제는 아주 오랫동안 지나가는
한줄기 바람처럼.
스치는 기운으로만으로도
지켜 가는 힘이 되어 줄것 같습니다.


침묵으로
미소를 머금어 봅니다.
그 미소로
잠시의 행복을 드리워 보면서
저 먼하늘을 그리워 해 봅니다.

너무 멀어서 갈수 없는
하늘의 별이라 여기며.
그렇게 그림움 한번 보내 봅니다.

이렇게 달리는 마음이
삭이어지고
대신하는 미소가
가슴에 스며 드는 날입니다.


내가 드리우는
작은 마음이
아름다운 나무가
드리우는 그리움과
다르지 않음을 믿으며
가슴에 담아 봅니다.


아직도 맑은 이야기가
건네어 지는
아름다운 나무와
같이 나누는 맑은 그리움을
맑은 마음으로
드리우려 합니다...

같이 나누는 그리움으로
행복한날이길 항상 바래 봅니다.


아름다운 나무에게
작은친구가 쓰는 편지입니다...
항상 향하는 아름다운 나무에게.












알록달록 금사가 들어간 색동비단으로 만든 골무가 하나.
자주 비단에 보랏빛 테를 두른 골무가 두개.
그리고 제일 만만하여 자주 끼었더니
뾰족한 바늘귀에 등짝이 헐은 가죽골무가 하나.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는, 그 언젠가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골무들을 무슨 보석이라도 보는 양 들여다본다.

나는 다섯 살 즈음부터 어머니 곁에서 바늘과 오색비단을 가지고 놀았다.
그 시절 온 고을이 다 아는 선비이신 우리 아버지는 웬만한 집안일은
거들 떠 보지도 않으시는 분이셨고 적지 않은 농사일에
맏이도 아니셨지만 할머니께서 굳이 둘째 아들과 함께 살기를 원하시는 바람에
크고 작은 손님은 늘 그치질 않아 손에 물기가 걷힐 사이 없었던 어머니는
일에서 떠나 한가히 쉬시는 모습을 뵙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아버지는 이를테면 동네에서 가장 어려운 어른이셔서
모든 동네의 행사 기획은 아버지께 먼저 보고가 되었고
축문을 지어주시거나 이웃 간의 송사라도 생기면 중재자가 되어 시비를 가려주시기도 했고
사주단자에 넣을 혼서지를 써 주시거나 글 모르는 아주머니가 군대간 아들의 편지를 들고
이슥한 저녁 찾아와 읽어주기를 청하면
구성진 음성으로 곡조를 넣어가며 그 편지를 읽어주시기도 하고
뭐라고 답장을 써달라고 하면 그 자리에서 막힘없이 편지를 써서 읽어주시곤 했다.

때로는 동네에 불량한 아들이 있어 술 먹고 부모님에게 행패를 부리거나 하면
꼼짝없이 불려와 무릎을 꿇고 일장 훈시를 들은 다음
다시는 안 그러겠노라는 다짐을 하고 돌아가기도 하는 그런 일들이
나는 당연히 아버지의 몫인 줄로 알았었다.

손재주가 뛰어나신 어머니는
동네 처녀들이 시집을 가거나 회갑잔치가 있거나 할 때면
옷감을 들고 와 옷을 지어달라고 사정하는 이웃아주머니들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호롱불 곁에서 밤 이슥토록 새색시가 입을 한복을 곱게 지으시곤 했는데
그 때마다 자투리 천에 모란이나 원앙을 수놓은 예쁜 베개모를 만들거나
올망졸망 골무도 만들고 붉은 천으로 꽃송이를 만들기도 하고 고운 복주머니를 지어
함께 선물을 하시곤 했다.

비단 천 냄새와 감촉, 매혹적인 색과 광택.
때때로 화로에 꽂힌 인두로 바늘땀 솔기들을 잠재우시던 익숙하고 차분한 손놀림.
신중한 표정 간간히 흘러나오던 가벼운 한숨소리......
반듯하고 하얀 가리마와 은비녀. 지금도 눈에 선하다.

추석과 설에는 반드시 할머니와 아버지와 나의 옷을 새로 지어주셨는데
내가 한복을 입고 나가면 동네 아주머니들이 저고리 앞섶을 만져보고 들여다보고 하며
어머니의 바느질 솜씨를 칭찬하곤 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내게 바느질을 가르쳐 주려하지 않으셨다.
내가 나도 바느질을 하겠다고 조르면
“너는 이런 거 하지 말고 살아라.”하셨다.
어머니 말씀이 -바느질은 눈이 빠지는 일-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정말 끝까지 한복 짓는 일은 가르쳐 주지 않으셨다.

나는 자동모터가 달린 신식 재봉틀을 산지가 15년째다.
남편이 생일 선물로 사 주었는데 한창 홈패션이 유행할 때여서
이웃집 아낙들이 사들고 오는 천으로 식탁보며 테이블보며 아이들 가방이며
심지어는 갓난 애기의 옷까지 만들어 주며 즐거웠었다.
위층도 아래층도 옆집도 내가 만들어준 소품들이 중요한 자리는 다 차지하고 있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 그런 일을 안하는 지도 꽤 되었다.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가끔씩 나는 바늘을 잡는다. 그리고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골무들을 손가락 끝에 끼어본다.
원래는 세 개쯤 더 있었는데 얼마 전에 큰언니에게 몇 개를 주었더니 얼마나 기뻐하는지.

머리가 하얀 우리 어머니는 머리가 하얀 아버지와 지금도 오순도순 지내신다.
가끔씩 뜨개질이라도 해보고 싶은데 이젠 돋보기를 써도 잘 안 뵈서 그조차 맘대로 안 된다고
서운 해 하시면서.........

너무 늦기 전에 어머니께 골무박는 법만이라도
제대로 배워 둬야 겠다.

2002, 4, 23.-하닷사-



그저 나와 느낌만 같아도
난 잘 우는구나.
왜 네 슬픔이 내슬픔으로 전이되는지......


비 온뒤끝의 개울은 어찌나 맑은지 몰라
손가락새로 달아 나는 물이지만 자꾸
움키다 보면 이쁜 물고기 등이라도
훑어 지날것만 같아......


강물처럼 도도한 사랑이 가슴을 쓸어 갔어
네 눈엔 가을 하늘보다 맑은 강이 있어
짐짓 모른척 외면한 엄마의 눈동자가
꼭 너와 같지 뭐니 ......


고사리 손가락이 옷 섶을 여는 모습.
그것은 사랑.
저 만치 사라진 시간이라 하자.
내 가슴에 강물 한 줄기 쓸어
내려 간것을 ......


잘 자길 바래
행복한 하루이길 바래
건강하길 바래.
눈물 만큼은 날 위해
쓸수가 없어
그건 사랑의 몫으로 남겨두겠어 ......

...............................................................................................................................






      풍년가도 흥겨워라.





      글/서호





      아득한 황금 물결

      온 들에 하나 가득

      서늘한 바람 따라

      파도 처럼 일 즈음

      홀연히 나 홀로

      가을맞이 떠난다네.





      아득한 지평선에

      끝 없이 펼쳐진

      황금빛 찬란한
      고개 숙인 보배여!



      여름의 햇살을

      넉넉하게 담아 두고

      은총 받은 무게만큼

      일렁이며 속삭이네.





      들판의 외로운

      인형 같은 허수아비

      황금들을 지키기

      그처럼

      겨웠던고!

      참새들 불러 모아

      친구하며 놀고지고....





      농부는 흥에 겨워

      풍년가를 부르나니,

      어께춤도 얼시구나

      절로 절로 신 나네.

      아낙네 허리춤에

      강아지는 꼬리춤...

      곱게 익은 벼이삭은

      번쩍이는 황금춤...

      흐르는 솜구름만

      한적하게 웃고 있네.





      저녁 노을 빗기는

      풍년으로 가득 찬
      찬란한 황금들

      알알이 익어 가는

      금빛 일색 만다라!

      석양에 꽃물 드니

      타는듯이 고울시고......



      가을 바람 차거운데
      벼이삭들 합창하네.

      추수제촉 푸념인가
      농심을 부추기네.



      올 겨울 나기가
      넉넉한 농부야!
      마음을 가을 같이
      하늘을 바라며

      추수 감사 올리리.


      ....................................................................................................................................








어둠 속에서.......동주


거대한 불덩어리가
바다 속으로 잠기고
뜨거운 열기를 견디지 못한
바다의 몸부림이
해변가로 밀려온다.


바다는 빛을 삼켜 버리고
서서히 내려앉는 어둠은
바다를 삼켜버린다.


하늘과 바다를 가르는
수평선조차 사라진
어둠의 바다


멀리 보이는 해변의 가로등과
그 너머로 보이는 별들의 속삭임이
들려온다.


어둠 속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가 되었다
가로등과
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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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로 화답합니다...................옥이이모


해는 구름사이에서 부끄럼으로 붉다. 2002. 5.12


어둠속에서 파도소리를 듣는다.
떠나보낸 님 그리워 멍든 파도소리,

창을 여니,
창밖의 아카시아 향은 멀미가 난다.

파도소리와 아카시아향으로 하얗게 새우는 밤.
파도도 향내도 하얀 밤이다.

핏발 선 눈으로 통통선 동무하여
길 떠나는 님 배웅하고,
이견대에 오른다.

안개가 많다.
대왕암이 안개를 맞아 거무스름하다.

달려오던 파도가 해안을 만난다.
갈퀴를 세운다.

해는 안개와 구름에 가리웠다.
해는 보이지 않는다.

잠시후
해는 구름사이에서 부끄럼으로 붉다.

구름위에서 불덩어리를 토해낸다.
또 다른 붉음으로...
바다가 답한다.

하루가 열렸다.
불덩어리는 호미곶까지 따라와 내 옆에 선다.
생생한 손이 나를 반긴다.
검푸른 바다에서 생경하게 튀어나와
뭍의 또 다른 손과 연합하여
아폴론을 받쳐든다.

내친김이다.

씁쌀한 악수,
헤어지기 싫어하며 내민 손,
배인 눈물,

영일만 약수는 씁쌀한 악수의 맛,
그 맛 찾으려 헤메고 헤메이다 길 잃는다.

호미곶에서 포스코로,
포스코에서 강구까지...

풍경은 그대로이나,
길잃고 헤메이다,
고만고만한 해안,
비슷한 풍광들...
<그대 그리고 나>
강구에서 길을 접었다.


절영에서
옥이이모.









- 검 무(劍 舞) -


검은 하늘
소리 없이 내리고

물 빛 피는 강가
달 빛 담은
네 혼의 검(劍)이 춤을 춘다.

그대 신검(神劍)이
천공(天空)의 벽(壁)가르고

물 빛 허공에
찬란하게 수놓은

달 빛 검무(劍舞)가 펼쳐질 때마다
너울대는 무아의 선(線)은

살 빛 비수 되어
황홀한 그대 가슴에 떨어진다.

천의(天衣)자락에 감춘
싸늘한 검광(劍光)이
네 눈의 날 끝에 맺혀 빛난다.

검광(劍光)이 비천(飛天)을 그려내고
검혼(劍魂)이 울적마다

토혈(吐血)하며 내닫다
귀천(歸天)한 등신불(等身佛)처럼

파르라니 떠는
해탈(解脫)한 네 검 끝엔
아릿한 옛 진혼(鎭魂)의 상흔(傷痕)만 흐른다.

어쩌다 서러워진 세월
조각조각 떼어내는
담아(淡雅)한 자줏빛 영혼 살갑다.
.
.
.
..... 10/1(화) 오전에...
..... 서울하고도 내자동에서...
..... 조직의 검무(劍舞)에 醉하여.... / 장 기성 /







신윤복:검무(劍舞) 또는 검기무(劍器舞)


*알아볼까요*

칼춤을 추는 미인에게//정약용


계루고 한 소리에 풍악이 시작되어 온 좌중이 가을 물결처럼 고요해라.
촉석루 아가씨 꽃같은 그 얼굴에 군복으로 분장하니 남자맵시 되었구나.


보랏빛 쾌자에 푸른 전모 눌러쓰고 좌석에 절한 뒤에 발꿈치를 돌렸네.
부드러운 걸음 박자 맞추어 걸으니 쓸쓸한 듯 걸어가다 기쁜 듯이 돌아서네.


날아갈 듯 선녀처럼 살짝 내려앉으니 발 밑은 고운 빛에 가을 연꽃 같아라.
한참 몸을 기울여 물구나무서면서 열 손가락 뒤쳐 뵈니 뜬구름 같아라.


한칼은 땅에 놓고 또 한칼로 춤추니 푸른 뱀이 칭칭 서려 가슴을 휘감는 듯.
홀연히 두 칼 잡고 사뿐히 일어서니 사람은 뵈지 않고 안개구름만 자욱해라.


이리저리 휘둘러도 칼끝은 닿지 않고 치고 찌르고 뛰고 굴러 눈앞이 무서워라.
회오리바람 소나기가 겨울 산에 가득한 듯 붉은 번개 푸른 서리가 빈 골짝서 다투는 듯.


놀란 기러기처럼 안올 듯 날아가다가 성난 매처럼 감돌며 노려보네.
쨍그랑 칼던지고 사뿐히 돌아서니 예처럼 가는허리 겨우 한줌 남짓해라.


서라벌 여악(女樂)은 우리 나라 으뜸이어서 황창무 옛 곡조가 아직껏 전한다네.
칼춤배워 성공하기 백에 하나 어려워서 살진 몸매 늘어진 볼에 노둔한자 많았는데.


너 이제 젊은 나이에 묘한 재주 지녔으니 옛날 이르던 여협(女俠)을 오늘에 보는구나.
얼마나 많은 사람 너 때문에 애태웠나 때때로 미친 바람, 장막 안에 불어 드네......


윗글의 정약용 선생께서 검무를 예찬한 글귀를 보면,
누구나 두려워하는 검의 기운을 그림처럼 환상적인 모습으로 그려내어
아름다우면서도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표현된 것은 그만큼 검무의 동작이 현란하고 화려하며,
때론 물이 흐르듯 때론 급격히 돌아 쳐 나아가듯
하는 劍舞者의 몸놀림에 생명을 불어넣어 준 것이다.


" 황창무의 옛 곡조가 아직껏 전한다네"라는 이 부분에서도
신라인들의 검무가 조선에까지 한 장르로서 전승되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검무에 관한 기록을 보며 나름대로의 추리와 사고를 하여 보았지만
현대적 의미의 검무와는 명확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볼 수 있었다.


이렇듯 옛 古事 많은 곳에서 검무에 관한 기록이 대두되고 있다.
전쟁터에서 어전에서 혹은 저자거리에서의 검무등 다양한 기록들을 보아도
검무에 관하여 조명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특히 다산 정약용의 시에 나오는 "칼춤 추는 미인에게"라는 글을 보면
이것이 劍舞에 대해 예찬한 글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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