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치자꽃







엄마의 치자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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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치자꽃 설화 116.7*91 2000//최현식



제목 : 엄마의 치자꽃
원작 : 노희경
각색.연출: 김원탁


<공연장 내외부 스케치>

어른들을 모시고 오는 여성분들.
팔짱을 끼고 오는 모녀 지간인 듯 다정한 모습.

머리칼이 희끗희끗한 여자 친구들끼리.
그 모습들이 너무도 아름답다.


극은 시작되었고.
여기저기서 훌쩍 훌쩍거린다.
본인들의 이야기가 어디엔가 담겨져 있어서 일까?
우리네 일상이 비슷비슷해서 감동해서 그랬을까?




<줄거리>

세 모녀의 삶을 엮은 일부분의 이야기.
주인공 강 부자님(엄마 역)위암 판정받는 장면부터 극이 시작된다.

병에 대한 갈등과 아픔도 잘도 참는다.
남편의 외도(학력의 차)로 충격받은 아이들과 아내.

그래도 12년 동안을 한결같이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
60년대 정도 유행하던 맘보 춤을 배워 외로움을 그 탈출구로 삼았다.


시무룩한 엄마를 보면 딸들도 같이 맘보춤을 추면서 웃는다.
전화통을 닦으면서 행여 남편일까?
기다리는 엄마(공방운영).
이혼하여 친정집에 머무는 큰딸 희수(기자).


희수는 온통 신경을 전 남편한테 쓰면서도 아닌 척 한다.
가정의 평안을 위해서
부부간의 미묘한 알력이나 자존심 싸움은 금물인 것 같다.

엄마는 떠나간 아빠를,
언니는 헤어진 형부를,
기다리는 모습에 남녀간의 사랑에 회의를 느끼는
둘째 딸 지수는 동성애로 향한다.

모녀간에 사랑과 성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며
서로의 아픈 곳을 찌르면서 한바탕 싸움으로 이어진다.


집을 들락날락 거리는 지수.


어렸을 적 엄마가 잠시 장독대로 나간 사이
엄마 마저 혹시 자기를 버리고 떠날까봐 불안 해 한다.
그 불안은 계속 잠재의식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아빠로 인정하지도 않고 미워 하면서도
그래도 엄마가 가 버리면 아빠를 찾아 가겠다
라는 말에 진한 가족 애를 느끼게 했다.


엄마가 키우는 노란 치자꽃.
그 향기는 모르지만,
식용색소로도 쓰고,
종이 장판 물감용으로 쓰던 때도 있었는데,
그것인지?


어느 날 지수는 엄마의 구토와 괴로와 함을 보게 된다.
병이 악화 되여 이세상에서 쉼을 함께 해 보려고
모든 일을 뒤로 미루고 바닷가 로 여행을 떠나는 모녀.

사람은 물에서 태어나 물과 더불어 살고 물을 그리워 하고
물을보면 생각이 깊어져서 바다를 찾게 되나 보다.

그들은 지난날을 회상하면서 이야기꽃을 피우다
자식들한테 마지막으로 저금통장을 건네주는 어미의 마음.
아이들은 바다 품에서
그간에 얽매였던 생활을 털어 버리고 있을 때
엄마는 고통 속에 잠든다.


아-
그의 남편은?
애들 아빠는?
어디에 있나?
나는 찾았다.


끝내 모습은 안보이지만,
그는 행복한 삶을 살까?
사람들은 세상을 사랑의 힘으로 살아야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빠진 가정 이지만,
엄마나 희수는 자기 일을 야무지게 잘하는 여성으로 비쳐 졌다.


으아!
곰은 이제야 감정이 북 바친다.


연출자 김 현탁 님은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진정으로 자아를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본인은 물론 누가 봐도
행복한 삶을 영위 할 수 있는 촉매제가 되었으면 하고 바랬다.




며칠 지난 후
우리 카페 문화가 산책 에서 소개된 셜리발렌타인을 모 tv 에서 볼 수 있었다.


김 혜자씨의 인터뷰를 겸한 주요 장면을 보여 주며 설명을 곁들였다.
모노드라마 형식 이였다.

그 작품 또한 45세 중년여인이 각자 사회활동하는 가족들을 기다리며
혼자만의 시간에 옆에 아무도 없으므로 자신은 누구인가?
알게되고 ,
가정에서 자기만 희생한양 남편을 비판하다
그리스 어느 바닷가로 여행을 하면서
그 비용도 남편이 마련해 준것......


남편도 불쌍한 사람이라는 소중한 깨달음으로 돌아온다.
가정에서의 역할분담.

그 곳 관람객들 모습 역시도 중년여성들 이였다.

첫 모노드라마를 단행 했던 추송웅님의 빨간 피터팬의 고백
그님의 우스꽝스런 얼굴이 신문에 났던 모습도 떠올랐다.


중년여성의 시간활용 어떻게 할까~
하는 것도 없이 조급한 마음과 세월만 흐fmsek.


노오란 은행잎과
열매가 밟혀서 풍기는 역한 냄새와
노란 치자꽃을 본 하루였다.
















골목안 풍경...





출입문마다

우유아줌마가 걸어준

주머니가 메달려있습니다.


24시간,

생활터로 떠나는 가족들과

만나는 일이 어려운 시대입니다.


열심히 우유를 넣고

서로의 거래에 관한 일은

메모지가 대화로 통 했습니다.


요즘,

주머니 속엔 우유보다

광고물이며, 잡물들로 가득합니다.


아줌마가 떠나고

우유 주머니가 시달리고

골목길엔, 대형마트 잔해물...

빈 팩들이 난잡하게 나 둥글고 있습니다.


세월 따라 역사를 말해주 듯...


우유 아줌마들에 발자취도

어려운 시대의 가난을 이겨낸

자랑스런 모습으로 떠오릅니다.



최 이 섭 글














물난리




국민학교 시절,
학교는 집에서 시오리길이었다.
킬로미터로 환산한다면 6km
시오리가 조금 넘는 거리라고 했으니 6km가 넘는 셈이다.

집에서 학교까지 가는 길에는 도랑 둘과 시내가 하나 있었다.
여름에 큰 물이 지면 도랑과 시내에는 흙탕물이 사람을 삼킬 듯 넘실거렸다.
어린 학생들은 어른들이 업어서 건네주었다.
물론 물이 사람이 건널 수 있을 정도였을 정도에 한해서다.
이상하게도 우리가 학교에 다니지 못할 정도의 큰 물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것은 아마 새마을 운동 덕분일거라는 나름대로 추측이다.


비가 많이 오고 큰 물이 도랑이나 시내를 넘실거리면 아버지들이 업어서 건네 주었다.
그렇지만 몇 개씩이나 되는
도랑과 내를 아버지 혼자서 건네 주기에는 멀고도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도랑이나 시내에는 가까운 동네 젊은 남자들이
학교에 가는 아이들을 업어서 건네 주기도 하고
유달리 힘 센 장정들이 따라와 건네 주곤 하였다.


오빠가 6학년이고 내가 2학년이었던 해였다.
그 해도 비가 내리고
어른들은 학교를 가기 위해 나온 아이들을 업어 시내를 건네 주었다.
어른 혼자서 건네 주기에는 아이들이 많았기에 아이들 수 만큼 어른들도 나왔다.
가장 영향력을 많이 발휘하는 집의 아이가 먼저 건너고 그 순서대로 건넜다.


그런데 그 해는 비가 좀 많이 왔던지
물살이 세고 물의 깊이도 어른의 허리가 잠길 정도였다.
아이를 업은 어른이
내를 바로 질러 건너지 못하고 사선으로 떠 내려가 건너편 둑에 아이를 내려 놓았다.
다 건너고 오빠와 나만 남았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우리 남매를 건너편 둑으로 건네 주려 하지 않았다.
어른들은 서로 눈치만 보면서 몸을 사리는 것이었다.

오빠가 등을 내밀었다.
키가 크고 덩지가 크다고 하지만 오빠는 겨우 6학년이었다.
나 역시 6학년인 오빠가 업기에는 컸다.
건너면서 떠내려 가면서 책보 두개를 비와 물에 적시지 않고 우리 남매는 시내를 무사히 건넜다.

그 때 어른들은
떠내려 가면서도
학교에 가기 위해
시뻘건 물이 몰아치는 내를
동생을 업고 물을 건너는 오빠와
그 어린 오빠의 등이 얼마나 안전하다고 오빠의 목을 감고
학교에 가겠다고 매달린 나를 바라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지금도
소용돌이 치며 벙벙하니 흐르는 여름철 강물을 보면 그 때 그 생각에 잠긴다.


그 이후로 우리는
여름철에 비가 많이 와도 위험을 무릅쓰고 물을 건너지 않아도 되었다.
오빠는 중학생이 되어 나와 함께 학교에 갈 일도 없었고
어른들도 그 이후로는 빼놓지 않고 다 건네 주었으며
곧 이어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어 다리들이 여기저기 놓인 것이다.

다리를 얼마나 많이 놓느냐에 따라
그 지역 국회의원의 능력과 새마을 운동이 잘 진척되고 있다는 성적표였던 것이다.


부실공사로 수없이 새로 놓기도 했지만
지난 해에 건넜던 그 다리는 무너질 염려는 없어 보였다.
다리 놓는 기술이 발전했고
냇물이 줄어들어 장마철에도
어렸을 적 만큼의 물이 흐를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가끔은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 운동 덕을 본 적이 있다면서
그 때 아슬아슬했던 이야기를 하며 쓰게 웃기도 한다.


우리 집은
고조할아버지께서 대원군도 허물지 않은
파 시조 할아버지의
사당이 있는 고향을 등지고 타향살이를 시작하면서
우리 집은 몰락한 양반가문이 되었다.

외가집 동네도 아니고
외가집과 같은 파가 사는 동네에
더부살이를 하면서 살았기 때문에(외가집 세력이 만만치 않았지만)
여름에도 보리밥을 먹지 않을 만큼 재력이 있어도 우리는 타성받이였다.

그래서 오빠가 나를 업고 떠내려 가면서 물을 건너야 했다.
어른들은 타성받이를 위해 목숨을 내놓기 싫었던 것이다.


올 여름 아직까지 노원구에는 큰 수해가 없다.
그럼에도 텔레비젼 뉴스에 나오는 강물에
왜 그때 그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학교가 파하고는 어른들이 물을 건네 주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엄마가 사 주신 리본 고무신을 물에 떠내려 보내고 혼났다.
리본이 달린 고무신은 아무나 신는 신발이 아니었다.


가끔 학교에 갔다가
아니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내를 건너야 하는데
그 곳은 항상 다리가 무너져 없거나
부서진 나무다리를 건너다
내가 떠내려 가거나 하는 꿈을 꾼다.

그 이후
길가 집 생활을 10년이 넘게 하면서
그 냇가에서
빨래도 하고 머리도 감았건만
그 때의 장면은
나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모양이다.


아직도 꿈속에서 물을 건너기 위해 애쓰고 있는 걸 보면.

꿈 속에서 나는 그 내를 한번도 건너지 못했다.











가을애상





♡ 가을 애상 ♡ -炅秀-

깊어가는 가을!

외롭게 떨고 있는

애절한 빈 가슴속

스산한 바람만이

가을을 저만치로 밀어낸다.


흩어지는 갈 바람에

애원이나 하듯

한잎 두잎 낙옆만이

지친듯 지천을 흔들며

애잔한 마음을 더욱 짓누른다.


갈바람에 코끝을 스치며

쓸어 내리는 지난날의 애상은

지척없이 흔들리는 실바람에

알 수 없는 진한 향내음되어

가슴속 젖은 마음 달래준다.


희미해진 지난날의 추억은

외롭게 떨고있는 달빛에

별들만이 옹기 종기 모여 앉아

쓸쓸함을 달래주듯

밤하늘에 등불되어 이밤을 밝혀준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은

소중한 내 마음속 곱게담아

차가워진 가을날의 달 그림자

훈풍으로 곱게 단장하고

가을속으로 흘러만 간다.


오늘도 그렇게 흘러만 간다...


2002.10.6











내 안에 촛불을





상큼한 바람이 옷깃 속으로 스며들어오는 시간입니다.
잠시 눈을 감고 명상에 잠기고 싶은 목마름이 내 세포를 자극 합니다.

바람이 네 가는 길이 어디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을 할까요.
시간이 네 가는 길이 어디냐고 물으면 무어라 말할까요.
세상엔 계산도 설명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아주 많은가 봅니다.

바람은 스스로 존재할 수 없어서
눈에 보이는 사물을 불러 자신을 보이려 애를 쓰는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삶은 어느 만큼 길을 가다가 되돌아보면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부지런히 걷고 있습니다.
비록 그 길이 만족스럽지 못 하다고 하여도 걷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삶이라는 길 위에 땀 흘리며 부지런히 어데론가 걸어가야 합니다.
먹기 위해 걸어야 하고
살아 남기 위해서 걸어야 하고,
부족한 것을 채우기 위해서 걸어야 합니다.


동상에 걸렸던 대지가 해동이 되면
땅속에 생명들은 앞다투어 길을 나설 것입니다.

덕분에 군살이 박혔던 대지는
순식간에 부스럼이 나고 가려움증에 봄밤은 잠을 설칠 것입니다.
버짐이 피어오르는 대지는
생명을 탄생시키는 산고를 치르며 몸조리도 못한 채
모래 바람 앞에 우두커니 설 것이고,
아지랑이는 생명을 받아내는 산파인양
바쁜 걸음으로 부산을 떨어 댈 것입니다.
정신없이 깔깔대며 웃음을 참지 못하는 꽃들은
대지의 여왕 인냥 과시하며 한 계절을 마음껏 즐기다가
여름을 낚시하여 무더위를 끌어 올 립니다.

제철을 만난 천둥번개는,
바위틈에 생명의 자락을 내리는 나무들의 에너지원이 되기 위하여
온갖 호령을 하며 한 계절을 울리기도 하고요.
지구의 젖줄인 바다를 살리기 위하여
태풍은 돌기둥이 되어 깊이와 높이를 자랑하며
바닷 속에 산소 공급을 위한 인공 호흡을 시킬 것입니다.


그렇게 여름은 힘을 자랑하며
원초적 본능으로 사람들 되돌리기 위하여 바다로 유혹을 합니다.
바다는 제흥에 겨워서 숫한 몸놀림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들입니다.

이글대는 모래알은 열기를 하늘높이로 산화시키며
하늘을 높이기 시작 할 즈음
바닷가의 파도소리가
시어머니의 냉냉한 웃음소리로 응시 할 때
슬그머니 산으로 오르는 더위는 부지런한 걸음으로 등산을 시작할 것입니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서
고단한 삶을 토닥거리며 걷고 또 걸어갑니다.
우리가 잠드는 시간에도
시간은 쉬지 안는 걸음을 걷는 것을 바라보며
먼길을 걸어온 것 같아 잠시 돌아보니
길은 보이지 안고 무중력의 공간만이 웃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리 바쁜지 돌아볼 여유도 없이 그저 부지런히 걷기만 했어요
그런 나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어둠이 서려 보이지 않아요.

칠흙 같은 어둠이 진을 치고 달 빛 마저 삼키려 해요.
이슬에 젖은 듯 한 눈 빛 만이 반짝 거릴 뿐입니다.


내일은 태양이 떠오르겠지만
지금 이 시간 남은 날들을 위하여
내 안에다 촛불을 하나 밝혀야 하겠습니다.










주말이면 시골에 갑니다.


'전화 효도'로는 어딘지 모르게 한계가 느껴지기에 말입니다.
어머니 혼자 계시는 집은 '혼자 내음'이 물씬 느껴져 방안에 들어서면 허함을 느끼고 맙니다.


지난 일요일 아침도 평일과 다름없이 눈을 떴습니다.
새들의 노래를 듣고는 그 소리에 가락을 붙이는 시늉을 하다가 벌떡 일어나 집 앞의 텃밭을 거닐었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거닐어 나온 뒤 바지를 보니, 발목을 덮은 바지가랑이가 온통 젖어 있었습니다.


순간, 드는 마음이 이랬습니다.


"가을~, 가을은 밤새 밤이 우는 계절이구나.
그래 잎사귀가 넘칠 듯이 눈물이 글썽글썽하구나" 하는 생각 말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나를 만나 좋다고 하는구나.
속에 든 것이 보일락말락하게 조금 바라져서 닫히는 모양으로
'발쪽'대면서 내 바지를 손수건으로 아는구나.
이슬 같은 눈물을 대신 쓰다듬고 있었던 잎사귀가 그 눈물을 닦았구나~'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 인기척 그리워, 그리워 하다가 스치는 흔적을 닦으려고 얼마나 아침 오기를 기다렸나'
싶어 다시 풀섶으로 들어가 이러저리 마구 돌아 다녀주었습니다.


내 발길이 지나간 자리는 이슬방울이 떨구어져
주변 풀들에 비해 말끔하게 세수를 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눈물을 훔치는 소리가 나는 듯했습니다.
물기 잔뜩 머금은 바지가 풀을 스칠 때마다 훌쩍이는 소리가 나는 듯 했습니다.
'배시시'한 웃음이 들리는 듯했습니다.


가을이면~
"어둠이 밤새 우는구나" 하는 생각,
잎에 내려앉은,
잎에 묻어 있는 이슬방울은
"밤새 울음 운 흔적"이라는 생각은 참으로 기특한 것이라 속으로 되씹으면서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그러다
"그래, 그 눈물을 감추려고 가을은 또 그렇게 아침나절이면 안개 자욱한가 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울어 부끄러운 나머지,
햇살에 눈물 시나브로 사라질 때까지 안개 속에서 눈물 감추려 그랬나 싶었습니다.


낮 동안 내리쬔 따가운 태양에 짓눌려,
눈 제대로 뜨지 못하다간,
이내 어두운 밤을 만나면 낮 동안 뜨지 못한 눈,
크게 떠 두리번거리다가,
어둠에 감추어진 추억 더듬다가 흘린 눈물 말입니다.
그 이슬 같은 방울이 깨끗한 것은 순수의 눈물이어 더욱 그렇게 보이는가 봅니다.
오늘밤은 그 우는 소릴 들어보아야 할 듯합니다.


자연이 우는 모습,
울었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은 여간 행운이 아니었습니다.
동물들의 울음, 웃음은 수없이 보아 왔지만
새삼 식물의 눈물, 그 이슬 맺힌 눈물이 아롱진 보석처럼 보여 한없이 고왔습니다.

식물들의 웃음은 '꽃피는 것'이라고 평상시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그 웃음만을 보아왔는데,
오늘은 식물의 울음을 보면서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구나' 하는 반성을 하였습니다.

"꽃, 너~ 나에게 웃음을 줘. 그래 꽃피어 줘.
그래 그 웃음 가져다간 내 방에 놓을꺼야.
그래서 너의 웃음을 보면서 나 행복할꺼여"
그랬다 싶어 '못됐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내가 그 식물에게 준 웃음은 무엇이었을까.
아니 동물에게 또 준 것은 있었던가.
하기야 동물은 몸짓, 소리로 시늉이라도 하면서
즐거움을 표하기에 간혹 즐거울 수 있도록 머리 쓰다듬기, 맛있는 음식을 주기도 했지만,
식물은 쓰다듬기보다는 꺾어버림을 택했으니 얼마나 잔인한 애정 표현인가.


우리 인간의 웃음과 울음,
그 짓이 수없이 많은 것을 오늘 사전을 찾으면서 새삼 알았습니다.
눈가에 넘치려 삐죽 나오는 '글썽거림',
소리 없이 입만 벌리고 부드러운 눈인사를 던지는 '봉싯거림',
울상이 되어 금방이라도 눈물나올 듯한 애절한 '울먹임',
너무 좋아 흐뭇한 태도를 보이는 '해죽거림',
'흐느낌', 등등.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일부러 볼을 살짝 움직이며 지어 웃는 '살웃음'이 많은가 봅니다.
마음은 시쁘면서(마음에 차지 않으면서) 억지로 웃는 '쓴웃음'까지.

정나미가 떨어지는 웃음보다는 오히려 실큰 우는 모습이 더 고울 때 있습니다.
"그래 실큰 울어라, 울면 더 나을 거야~"


예사로운 일에 자주 부끄러워하는 '잔부끄러움'과
은근하고 진실한 정분으로 아롱진 '속정'이 있는 사람이 흘리는 울음,
그 흘린 눈물에는 진한 애정이 느껴지기에 그런가 봅니다.
흘리고 싶은 눈물,
그 눈물을 오늘은 정말 실큰 흘리고 싶습니다.


한 정에 깊은 정을 붙이면 그에 딸린 것까지 사랑스럽게 여겨지는 '덧정'이 오늘따라 생겨납니다.
아침결이면 이제부터 손수건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일산 호수공원*


      특별한 스케줄이 없는 토요일 오전에는
      저는 어김없이 호수공원을 찾습니다.


      우선 탁트인 40여만평의 호수가 그렇구요.
      일에, 공해에, 사람에 시달려온 나의 삶들을
      다시한 번 정리해 볼 수 있는 유일한 시.공간 이거든요.


      몇 번 같은 시간에 오다보니
      이 시간대에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이 한정 되어 있습니다.
      서로 모르는 분들이지만 왜 그런지 정감이 가더군요.
      그냥 말이 걸고 실을 정도로 말입니다.


      어느새 가을은 깊이 들어 왔더군요.
      달리는 얼굴을 스치는 가을 바람이 제법 상큼해요.


      가을 바람이 호수위를 스쳐가면
      호수는 가벼운 파문으로 화답을 하더이다.
      자연속에 흐르는 그들만의 아름다운 대화..........


      푸르렀던 이파리들은 서서히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더군요.
      은행나무 잎이며 마로니에 잎사귀, 그리고 플라타너스의 갈색이파리.....
      차츰차츰 형형색색의 단풍으로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한때 장미꽃이 만발했던 장미원은
      이미 자신의 역할을 국화에게 넘겨준 듯
      을씨년 스럽게 몇 몇 송이만 자리를 지키고 있더이다.


      노오란 국화꽃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노오란 색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기 위해
      포엔세치아의 빨간 잎으로 조화를 이루게 한
      호수공원 가꿈이의 예술적 감각을 잠시 느껴보기도 하였습니다.


      곳곳에 배치한 아름다운 미술작품들과
      정말 아름답게 배치한 소나무군(群)은
      일산 호수공원의 품위를 더욱 높여주고 있습니다.


      화장실 문화관이라는 특이한 곳도 있습니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화장실이라고나 할까요?
      일반적인 화장실의 개념을 바꿔버린
      발상의 전환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더이다.


      호수를 들러치고 있는 낮은 울타리는
      서부시대 O.K목장의 결투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친숙함이 배어 있답니다.


      열린마당님들 !!
      일산 호수공원에 호젓한 시간대에 한번 와보세요.

      아마 많이 감탄 하실걸요?


      글/엘더




아침마다 횡단보도를 건너야 한다.
저녁에도 마찬가지다.
가끔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고 사무실이나 집으로 가는 날도 있다.
서울특별시 외곽지대에 살다보니 커다란 대로보다는
중간정도 넓이의 도로를 건너는 일이 더 많다.


신호가 떨어지기를 기다려 길을 건넌다.
아침에는 길을 건너는 사람이 별로 없다.
거의 대부분의 날들이 나 혼자 건넌다.

사람의 왕래가 별로 없는 길이기도 하려니와
사무실쪽은 직장들이 몰려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길은 대부분은 물받이를 위해 가운데가 높고 가장자리가 낮다.
황단보도임을 표시하기 위한 흰색표지 페인트가 제법 두꺼워 길 가운데 서면 무대에 선 기분이 든다.

관객은 차안의 운전자들이다.
신호를 기다리면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본다.
의미가 있던 없던 본다.
볼 것이 없으면 맞은편 사람을 빤히 쳐다본다.
그러다가 눈이 마주치면 어색하여 고개를 돌리거나 당황하여 어찌할바를 모르기도 한다.


사람도 없는 횡단보도를 혼자서 걷는 기분은 무대에 올라 관객을 웃겨야하는 개그맨이 된 기분이다.
옷을 돋보이게 해야 하는 모델이 된 기분이다.
몇십년동안 횡단보도를 건넜으면서도 언제나 긴장한다.
차안의 사람들에게 내가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유한마담으로 보일까
순진한 아줌마로 보일까
깍쟁이로 보일까
지적이고 우아한 센스있는 여자로 보일까
섹시한 여자로 보일까
새 핸드폰을 구입한 날은 핸드폰을 줄만 잡고 건넜다.
나도 컬러핸드폰임을 자랑하기 위해서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어느새 길을 다 건넜다.
무대에 섰다는 생각에 걸음걸이는 부자연스럽기 마련이다.
가뜩이나 엉성한 걸음걸이가 우스꽝스럽게 변한다.
왜 나는 날마다 무대에 서야하는 것일까.
무대에서 사는 사람들은 무대에 서지 않으면 병이 난다고 하던데 나는 아직도 어색한 것일까.


주인공이 되고 싶어서
조연보다는 주연을 하고 싶어하면서도 막상 무대에 혼자 서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른다.

싫던 좋던 인생이란 무대에서 나는 주인공이고 주연이다.
주인은 자기를 지켜키고 가꾸어야 할 의무가 있다.
주연은 드라마를 연극을 영화를 빛내야 할 의무가 있다.


주어진 의무를 다 하지 못하면 직무유기가 된다.
해야할 일을 하지 않은 유기가 되는 것이다.
직무유기는 어떤 벌이 있더라

나는 내 인생의 무대에서 제작자이고 주연임에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항상 변방에서 주위만 맴돌다가 인생의 삼분의 이를 살았다.
내 삶에 대한 직무유기를 한셈이다.


하루에 두 번씩 서는 무대에서조차 자신있게 걷지 못한다.
시선을 한 군데로 두지 못하고 이리저리 굴린다.
이제는 자신있게 살아야 하는 나이임에도
자신이 없어야 할 나이 때보다 더 자신이 없다.


8월 어느 날...잠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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