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오는 날에는 난 오두막에 갇히고 싶다! ..../ 낭만


눈오는 날에는 갇히고 싶다.

마산에는 온종일 비가 내렸다.
그러나 인근 함안군에는 눈이 많이 온다고 했다
해서 첫눈을 맞으러 갔었다.

한적한 국도를 따라서 눈은 소리없이 팔팔 날리고 있더니
언덕을 지나 고개를 넘으러 하니 소복 소복 내리기 시작하고
온 산은 하얀 눈속에 묻히고
눈안개에 편안히, 포근히 앉아 있었고...
빈 들판은 하얀 편지지가 되어
겨울 낭만의 서정으로 이끌어 갔다.


산밑의 옹기종기 납작하게 엎디어 있는 시골집,
한적한 동물농장,
더욱이 더 한적한 곳에 자리잡은
군데 군데의 모텔들도,
기름진 갈비집들도,
오늘은 아름다워 보였다.


모두다 거기에서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고
포근한 겨울꿈을 꾸고있는것 같았다.


까만 겨울나무의 가지가지엔
하얀눈꽃이 목화송이처럼 풍성하게 꽃피우고
더러는 벌써 부터 낙화되어
뚝뚝!!
떨어져 내리는...

아! 첫눈 오는 산길.


차를 버리고 눈속으로 걸었다.
바람도 숨죽여 살며시 쉬어가는 눈오는 오후...
적막한 오솔길엔 나의 발자국만 찍히고,
행복했다

그러면서도 외로웠다.
이렇게 눈오는 날에는 깊은 산골 오두막집에 갇히고 싶다.
아무도 오지않고 ,
아무것도 먹지않고,
다만 화톳불 피워 놓고,
뜨겁고 뜨거운 커피 한 잔 마주하면서
눈빛으로 영혼을 노래할 그 누군가가 그리웁다.


눈은 소리없이 온 산하를 덮고
소복히 쌓여만 가는 그 순백의 편지지에
나는 띄우지 못하는 사랑의 연가를 쓴다.


허나 소리없이 하염없이
많이도
많이도 내리는
눈발 속에 그 마음...
그 사연....
그 노래는
지워져 간다 .
묻히어 간다.


아! 내 영혼은 눈오는 날
한 이틀 오두막집에 갇히고 싶다.


작가...../낭만


길을 가다가 사람을 만나면 ............./잠탱이


복도를 가는데 마주오는 사람이 둘 있습니다
두 사람 다 가운데를 비워두고 가장자리 쪽으로 비껴줍니다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하면서도 두 사람 사이로 걸어갔습니다.
그 두 사람은 일행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은 상사입니다

어려서 엄마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신 말씀
길을(어디든지 상관없는 길) 가다가 사람을 만나거든
-저 멈춰서 지나가거든 가거라
-길을 가다가 사람과 마주치면 어른에게 양보하라
-여자가 남자 앞을 지나가면 안되느니라
-아침에 여자는 남의 앞을 지나가면 안되느니라
-여자는...

엄마가 아무리 말씀하셔도
그 말씀 내용에 공감할 수 없기에 살짝살짝 어기기도 했지만
엄마 눈에 띄면 불호령이 내리시기에
어느새 습관으로 몸에 배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나이 어린 남자와 복도와 십자 형태로 마주쳤습니다
몸에 밴 습관이 나를 멈추게 했고
남자는 한참 연장자인 나에게 양보하여 멈췄습니다
내가 먼저 가라고 했더니 기어코 나보고 먼저 가라고 합니다.


그날 이후
저는 양보하지 않고 상대방보다 내가 연장자가 된다면
주저하지 않고 남자이건 여자이건 상관없이 먼저 지나갑니다
가장자리로 양보하지도 않습니다
물론 연장자이거나 상급자인 경우에는 예를 지키죠

엄마가 이런 나를 본다면 뭐라 말씀하실지 모르겠지만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양보하고 포기하는 것은
후배 여자들을 위해 직무유기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아침에 차고에서 나가는 버스가 인도를 막고 서 있어
사람들이 지나가기 힘들게 하면
보무도 당당하게 그 앞으로 지나갑니다
길을 막은 사람이 잘못한 것이지
목숨을 걸고 차도로 지나가는 사람의 잘못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사실은 나처럼 버스 앞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가는 사람보다요

길을 가다가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하나
아직도 몸에 밴 습관이 나를 당혹스럽게하지만
많이 노력합니다.
비록 상대방이 남자일지라도 내가 먼저 가도 될만한 사람이라면
당당하게 앞질러 갑니다.





주사위는 던져지고.........../헤라


경남산청에 있는 간디고등학교에 딸을 입학시키려고 원서접수를 하고,
1차전형의 합격한 딸아이를
2차 면접을 위해 2박3일 동안 머무를 간디학교 기숙사에 떨쳐버리고 오던 날,
만감이 교차했었다.

과연 합격을 할 수 있을까?
엄청난 경쟁률이었고,
2차 면접을 위해 온 다른 아이들의 눈빛이 하나같이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져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과연 우리아이가 20명안에 들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한껏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실상 간디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1차 전형에 합격한 학생이 11명이니,
외부에서 원서를 접수한 학생은 결국 9명만 선발될 수 있다는 거였다.
2차 전형에 합격되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듯 정말 어려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2박3일의 기숙사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딸아이의 달라진 모습을 보니
설사 떨어진다 하더라도 좋은 경험을 한 것으로 만족하리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신문을 건성으로 읽던 아이가 신문을 정독을 하기 시작했고,
어려운 한자는 옥편을 찾아가며 읽는 모습,.
자신이 앞으로 해야 할 공부가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모습,
이것은 아이의 새롭게 변한 모습이었다.

2차 전형 때, 학부모 면접에서 이런질 문을 받았었다.
만약 아이가 떨어지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네명의 학부모가 같이 면접을 받았는데,
어떤 부모는 재수를 시켜서라도 보내겠다는 학부형도 있었고,
어떤 학부형은 그냥 포기하겠다는 분도 계셨다.

하지만, 난 그렇게 대답했다.
"어떤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까지는 여러 갈래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길이 직선이던 굽은 길이던 나름대로 다 묘용의 미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길이 직선이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서 남는 시간을 유용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고,
굽은 길은 굽은 길대로 돌아가기는 하겠지만,
또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으니, 그 또한 아주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랬다,
본인이 원했지만,
그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결코 실망할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생은 길고,
그 길고 긴 인생길에 어떤 경험을 하는 게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인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는 것이기에,
합격하던,
떨어지던,
나름대로 삶에 다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기에 그런 답변을 한거였다.

딸애한테도 그런 엄마의 생각을 전했고,
딸애 역시 설사 떨어진다하더라도, 크게 실망하지는 않노라고 이야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말을 하면서 마음여린 딸의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보니 내심 무척 기대하는 눈치였다.

정말로 본인이 절실하게 원하는 학교였기에 그랬으리라.
최종합격자발표를 기다리는 3일간은 그야말로 바늘방석이었다.

드디어 합격자 발표.
오후 5시에 홈페이지에 합격자 명단을 올린다고 했지만,
기다릴 수 없어 오전 10시부터 실시간으로 확인을 했다.

그러던 중 11시에 드디어 최종합격자 발표명단이 뜨는데, 가슴이 떨려서 열어보기가 사실 겁이 났다.

용기를 내어 합격자 명단을 클릭한 순간, 20명의 합격자 명단 속에 보여 지는 우리딸애 이름...
늘 진솔한 삶을 살라는 뜻에서 지어준, '진솔'이란 이름이 커다랗게 부각되어 보여지는 것이었다.

순간 그 누구보다 기뻐할 딸애의 환한 얼굴을 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2박3일 동안 같이 지낸 친구들 중에 떨어지게 생긴 애는 하나도 없더라는 말은
그만큼 1차 전형에 합격한 아이들 모두 개성이 뚜렷하고 주관이 뚜렷한 아이들이어서
조금은 자신을 잃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었는데...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했던 남편도 아이가 합격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조그마한 축하파티까지 열어주었다.
어쨌거나,
주사위는 던져졌고,
나름대로 본인이 어떻게 공부를 하느냐에 따라 자신이 원하던 꿈을 이루게 될 것이다.
자신이 원하던 공부를 하는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며,
결코 엄마, 아빠를 실망시켜드리지 않겠노라던 딸애가 믿음직스러워 보였다.

난 늘 아이들한테 그런 이야기를 하곤 했다.
너희들은 정말 잘하는 거라고,
엄마가 너희들만 할 때는 절대로 너희들만큼 못했노라고.....

그런 말로서 아이들에게 자신감을 키워주곤 했었다.
그랬던 이야기가 정말 다시금 실감이 났다.
나는 중학교 3학년 때,
결코 지금의 우리 딸애만큼 당차지도 못했고,
어떤 신념이나, 주관, 확신도 없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지금의 그런 확신과, 믿음, 자신감을 오래오래 간직해 주기를 바랄뿐이다.
(2002.11.18. 작가 헤라)






강물같은 노래를 품고 사는 사람은 알게되지
음 알게되지
내내 어두웠던 산들이 저녁이 되면 왜 강으로 스미어
꿈을 꾸다 밤이 깊을수록 말없이 서로를 쓰다듬으며
부둥켜 안은채 느긋하게 정들어 가는지를

으음-음--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본 사람은 알게되지
음 알게되지
그 슬픔에 굴하지 않고 비켜서지 않으며
어느결에 반짝이는 꽃눈을 닫고
우렁우렁 잎들을 키우는 사랑이야말로
짙푸른 숲이되고 산이되어 메아리로 남는다는 것을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이 모든 외로움 이겨낸 바로
그 사람 누가 뭐래도 그대는
꽃보다 아름다워 노래의 온기를 품고 사는 바로
그대 바로 당신 바로 우리 우린 참 사랑





야경-9704/6호 변형(40 x 35cm)/동판화(메조틴트)/1997




가끔은 이런 언덕배기에 살고 싶기도 하다.

늘 낮은 평지에서만 살았던..나.

내가 살았던 낮은 평지는

늘 하늘은 안정되어 있었고.

땅 또한 지진날 것 같지 않았다.



좀 자라서 설 친구집을 찾아 간다고

골목골목을 기웃거릴 적에

이 언덕배기를 만났다.

언덕에 골목길이 있다는 것에 신기했고

언덕에 집들이 층층이로 올라가면서도 있는 게

신기했다.



지진날 것 만 같아 맘 졸이면서

위태위태한 언덕배기로 올라간 나의 다리는

호들호들 내가 지진났지.

저 언덕배기 골목길

저 언덕배기 집들은

그저 무심히 안전하기만 하더라.



지진 난 내가 사는 평지가

되려 안전하지 않을 것 같아

언덕배기에 살고 싶기도 했다.

창 밖으로 보이는 밤하늘은 그냥 판떼기에

별 총총 그려 놓은 반듯함이 싫고

그냥 판떼기에 사연하나 없는 것처럼 서 있는

나무들의 반듯함이 싫었다.



어쩌면.

둥근 하늘일 수 있고

낙하산 모양처럼 둥그런 별 총총 빛나는 언덕배기의 하늘을

내 안으로 가져올수 있을 것만 같았고

어떤땐 하늘이 아래로 내려와 있어

손만 뻗으면 별들을 만질수 있을 것만 같아

언덕배기에 살고 싶었다.



그 후. 난 한번도 언덕배기에 한번도 안 살아봤다.









가을 밤의 콘서트 ( 달빛 쏘나티네 1)



나의 창가에
하얀 달빛이 찾아 와
침대 위에
여인처럼 누웠다.

귀뚜라미가 물레 앞에 앉아
이 여인을 위해 비단의 긴 실을 뽑는 아름다운 가을 밤,

어둠에 취해
달빛인지 여인인지 몰라
함께 잤다.





가을 밤의 콘서트 ( 조수미와 함께 이 밤을... )



벌써
가을이 왔지만
여름은 아직 떠나지 않았다.

가을은
여름을 가라고 하고
여름은
기다리라고 한다.

여름이 아픈가 보다.

거리에 쌓아 둔 따가운 햇볕과
산과 들에 풀어 둔 더운 바람과
내 침실의 후끈한 무더위를
이고 떠나는 등 뒤로 해가 지면

서늘한 바람이 행복한 이 가을 밤

나의 창가에는
오늘도 귀뚜라미가
조수미와 함께 찾아 왔다.

가을 밤은 아름답다.

*
조수미의 천사와 같은 목소리와 티없이 맑고 영롱한 귀뚜라미의 노래가 환상적인 실황공연이 펼쳐진
내 조그만 침실은
들뜨고 격한 현장감 넘치는 사운드로
밤이 일어나 어둠을 환하게 불로 태우고 있었다.





가을 밤의 콘서트 ( 안드레아 보첼리...)



여름의 뉘앙스가 묻은
가을 저녁 하늘을
별들이 깨끗히 닦아 놓고
서로 반짝이며 채팅하는 밤을 보라.

보았으면 아래를 보라.

오늘도 어둠이 환한 나의 창가에는
귀뚜라미가 안드레아 보첼리보다도 더 고운 목소리로
가을연가를 부르고
밤은 음표들의 속삭임으로 휘날려
조그만 나의 침실은
고독이 천사의 옷을 입고 누웠다.

가을은 누구에게나
쓸쓸한 바람이겠지만
그래서 밤새 가슴이 아퍼 휘몰린다 해도
귀뚜라미가 내 창가에 찾아 와
노래 부르는 날의 가을 밤은
눈부시게 하얗다.





가을 밤의 콘서트 ( 자 화 상 )



서늘한 가을 밤
아무도 없는 택시 정류장에
60대 초반의 허름한 아저씨가 서 있다.

늙지 않으려고 청바지에 붉은 티를 입었지만
키는 작고 몸은 북어처럼 마르고
얼굴은 번데기처럼 주름 투성이다.

어둠 속에서 어디를 가려고
택시를 기다리나 보다.

이 아저씨가 바로 나이 50 의 나다.





가을 밤의 콘서트 ( 달빛 쏘나티네2)



어제 밤
공원에서
가족과 함께
달 구경을 했습니다.

둥근 달 속에서
토끼 두마리가
떡 방아를 찧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우리 가족은
달빛 아래서
비단을 깔고
토끼가 가져 온 떡을
맛 있게 먹었답니다.

해마다 추석이 오면
우리 가족은 손을 잡고
공원으로 가
토끼가 빚은 송편을
하얗게 먹는 답니다.





가을 날의 콘서트 ( 강 )



이른 새벽
나의 집 앞에는
강이 흐르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밖을 나서면
오색 단풍으로 무장한 자동차들이
거대한 중국의 양자강이 되어
가로수를 삼킬듯 흘러
집 앞은 벌써 아수라장이 되었다.

자동차들의 물결이 사나운 강으로 변해
뿌연 홍수가 도시 전체를 휘감고
나를 삼킬 듯 덤비는 파도는
온 종일 이성을 잃고 불로 출렁거렸다.

강을 바라보면 강을 건너야 하는 책임이 무서워
강은 미친듯 폭우를 동반해
우리들을 향해 거센 물줄기를 틀어
놀라 갈 곳을 잃고 강뚝에 않아
오늘도 그저 가쁜 심호홉을 하면서
강 멀미를 앓고 있을 뿐이었다.




Tears in Heaven/Eric clapton


감히 한 말씀................./멋진 머슴


어제 경기도 일산 호수공원에서 한국 사이버 농업인 연합회가 주최하는 농산물 판매장에 참여했다..
이번 행사는 판매보단 사이버농업인 창립 홍보를 겸하고,
회원들 간의 얼굴 익히기,
그리고 한국 최고의 농산물 공급을 위한 결의대회 성격도 있다.
날씨 탓인지 계획했던 참여농가가 일부 빠지고
생각했던 매출은 기대 이하로 조금 맥이 풀렸다.

오랜 월급생활에 젖어있던 나이었기에 된장 판매란 쉽지 않았다.

판매방법도 그렇고 모든게 어설프고 어색한데다 날씨까지 춥다보니
조그마한 부스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나의 몸은 물론 마음까지 서글프게 했다.
태어나 처음 해보는 된장 판매는 큰 기대는 안했지만
찾아오는
고객들은 없고 하니 더더욱 마음 한구석엔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갖가지 생각들이 맴돌았다.
간혹 찾아오는 고객 또한 가볍게 툭툭던지는 한마디 말들은 더욱 맥을 풀리게 했다.

아니 너무 화가 나기도 했다.

이곳에 참여하는 분들은 대한민국에서 각 분야별로 최고라는 농가다.
유기농 농법을 고집하며 각종 언론에 오르내리는 등
최고의 농산물을 만들어 백화점과 사이버 등등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
한데 1년여 동안 정성들여 가꾸고 만든 배, 귤 등등
많은 농산물을 왜 이리 비싸냐며 30-50% 깍아 내리니 조금 아쉽다.
이것은 이해할 수 있다.

농산물을 파는 사람은 무식하고 옷차림도 허름하여야 하는지.
아니
고객들에게 조금 무시를 당해야하며 함부로 취급당해도 참아야 하는가.
아쉽기만 하다.

고객이 된장을 구경하면서 하시는 말
"뭐가 이리 비싸"
"아저씬 농사꾼처럼 안보여".
"만원이면 만원이지 9,900 이 뭐야".

갑자기 눈물이 핑돌았다.

얼마 전까지 조금은 화려했던 직장생활의 한부분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 갔다.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리려하기에 고객에게 말했다.

“난 된장을 파는게 아니라 인격과 작품을 판다고 생각합니다.
농산물을 안 사셔도 좋으니 이 추운 날씨에 마음과 몸이 차가운 농사짓는 저분들에게 상처주는 말씀은 삼가해주시라“고 부탁했다.

시중에 파는 커피는 몇 천원일까...

전 된장을 판매한지는 얼마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세상 어느 곳보다
그나마 비교적 바르고 순박한 분들이 농사를 하고 있는 분들이라고 감히 한 말씀 하고 싶습니다.
전 사랑하는 농사를 짓는 이분들과 평생을 함께할 것이며
그 어느 곳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된장파는 농군으로 반듯하게 살아 갈렵니다.




꿈꾸는 노인...꿈 내리는 노인


햇살이 따사로운 가을날
공원 벤취에 한 노인이 꾸벅 꾸벅 졸고 있다.

그는 바람보다 가벼운 새 털 마냥
세월을 거슬러 꿈을 꾸고있다.
아니 꿈을 서서히 내리고 있다.


볼연지 수줍던 새 각시
윗저고리 살며시 벗기던 첫날밤의 새 신랑이 된다.

첫 아들 놓고 새끼줄에 빨간 고추 매달면서
히죽 히죽 마냥 웃던 청년이 된다.

회갑잔치에 아들 딸 며느리 손자손녀
절 받으며 허허허 웃던 흐뭇한 아버지 할아버지가 된다.

허나 이제는 다 떠나버렸다.
아니 다 떠나보내었다.
그래서 새 털 보담 더 가벼운 바람 같은 몸으로 남았다.


가을이 되었다.
가을은 풍요의 계절이면서
옷을 벗어버리는 계절인 것이다.

다 비어버린 몸이고 마음이라서
가을햇살도,
가을바람도
이토록 행복한 꿈을 꾸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노인의 등허리에 쓰러져 가는 가을햇살이 아름답다.
떨어져 내리는 단풍잎 하나 아름답다.

인간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세월 따라 변하고 늙고 죽어갈 수 있음이 아닐까?


무릇 세상만물이 그러하듯이....


그래서 졸고 있는 노인은
아름답다.
꿈마저 내려버리는 노인은
더욱 아름답다.




돌아오지 않는 요일


"제발, 이러시면 안 돼요.
이런 곳에서는 할 수 없어요.
당신의 불타는 마음과 기분은 이해하지만..."

아그네시카는 약간 저항하며 불만섞인 몸짓으로 청년의 손을 떼어 놓고 켜 올려진 스커트 자락을 내리며 옷매무새를 고쳤다...(中略)...

"사랑하는 아그네시카여,
왜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나눌,
사랑을 속삭일 오직 세쪽만이라도 막힌 방이 없을까요?"...


학교시절 읽은 폴란드의 플라스코라는 작가가 공산학정의 절망속에서 살아가는 민중의 생활상을 그린 <第8曜日> 에 나오는 장면으로 기억된다.


게오르규의 <25시>가 1970년대 젊은이들에게 많이 읽혀진 작품이라면, <제8요일>은 1960년대에 공감하던 그 시절의 생활상이 담겨진 작품이었다.


우리 나라의 현실도 중산층이상에서는 의식주문제가 겨우 해결되고 있지만 주거환경은 형편없이 낙후되어 있다. 그래서 가장 걱정되는 생활의 현실이 주택문제이다. 곧 세쪽만이라도 막힌 방의 문제 - 즉 집이라는 큰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우리의 주거문제는 단순히 먹고 자고 쉬는 공간일 뿐만이 아니라, 그 가정의 전체 재산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집이 중산층이하의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주택문제 해결에는 단순한 안식처에다가 재산증식의 역활까지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주택의 개념을 소유라는 인식에서, 안락하면서 두려움없는 주거개념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려면 국가나 공공기관에서 주택문제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하고,또 실제에서는 그렇게 많은 이 드는 일에 선듯 나설 수 있는 형편이 못 되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리의 젊은 세대나 커가는 자식들의 장래를 바라보는 세대 모두가 이 문제에 신경을 곤두 세우게 되는 것이다.


우리 열마 카페 회원 여러분께서는
이 글이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실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말은 필자가 어느 대학에서 주관한 주부와 새로운 가정을 이룬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통합 세미나에서 그 당시 대학로에 있던 카톨릭학생회관에서 한 강의의 첫 서두부문이다.


왜 이 글을 썼느냐고 묻는다면 요즈음의 사람들은 이런 귀한 나의 안식처이면서 내 재산인 우리 아파트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은 다른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내 자신이 이번에 아파트 문제에 뛰어들어 과거에 집을 옮겨 다니면서 재산을 늘여 나가고, 또 아이들이 친구를 사귈만하면 이사를 다니게 된 일이 몹시도 자식들에게 죄스러움으로 점철되기 때문이다. 아들애가 하던 말 "아빠, 우리 또 이사가야 돼요?" ("미안하다, 아들아" - 조용히 고백하는 능력없던 아버지의 말)


새벽 2시반에 웬 이상한 사람이 2,3번이나 전화해서 잠을 깨워 놓고는 나를 또 아파트문제에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혼자서 괜히 옛날 생각하고, 또 그 시절 살아오던 어려움과 즐거움을 되뇌이면서 우리 아파트의 여러 난관들이 잘 풀리기만을 바라고 있다.


그리고 같은 또래의 사람들이 대부분 컴맹 내지 넷맹이라 더욱 외로워 지는지도 모른다. 우리 사랑하는 입주민 모두가 이번 기회로 더 많은 관심
과 성원을 보내 주셔서 고마운 마음이 그지 없다.


글을 쓰다보니 초점이 흐려졌는지도 모른다. <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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