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어제는 고구마를 캤다. 해마다 회당터 밭에 고구마를 심는다. 땅이 사토라서 물이 잘 빠지고 가파른 뒷산에서 나뭇잎들이 바람에 날려와 거름이 되어주므로 별도로 비료를 주지 않아도 해마다 곡식들이 잘 자라는 좋은 밭이다. 그리고 고구마는 연작을 해도 잘 자라주며 병충해가 없어 농약을 전혀 사용할 필요가 없는 그야말로 자연 식품이다.

고구마를 계속 심는 까닭은 순전히 어머니의 고집 때문이다. 고구마는 봄에 심어 두고 수확 때까지 내버려 두어도 잘 자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수확량이 다른 작물보다 상당히 많은 것이 어머니가 고구마를 고집하는 까닭이다.
즉, 도시에 나가 살고 있는 형제들과 가까운 친척들에게 나누어주기에 다른 작물보다 후해 보이기 때문이리라. 참깨 같은 작물들은 선심을 써도 양이 적어 주는 입장에서는 면이 서지 않지만, 고구마는 몇 개 담지 않아도 한 자루가 되니 얻어 가는 사람은 먼저 그 부피에 우선 기뻐한다.
고구마를 나누어주고 나면 어머니의 살림 장에는 선물이 가득하므로 어머니는 얼굴에 화색이 가득하고, 그걸 바라보는 나도 기분이 좋다. 물론 내가 반 강제로 선물을 지정 해 주지만.

올해는 고구마가 예년에 비해 두 배정도 크게 자랐다. 이렇게 씨알이 좋은 해는 드물다. 굵은 놈은 어린애 머리만 하다. 4 등분하여 삶아 한 쪽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사람이 심었지만, 고구마는 자연의 섭리에 충실하게 따르며 자라난다. 어떤 해에는 씨알이 쥐 불알 만하여 어머니를 실망시키고 어떤 해에는 평년작으로 자라나고, 올해에는 엄청 크게 자랐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한갓 식물이지만 자연을 이해하고 자연의 이치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사람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고구마가 같은 땅에서 이처럼 크기가 해마다 다른 이유가 참 재미있다.
봄에 고구마 싹을 잘라 꽂아두면 뿌리가 내린다. 뿌리가 내릴 때에 물을 잘 주거나 비가 많이 오면 활착이 잘 되어 뿌리의 활력이 넘치게 된다. 그런 후에 날이 가물면 이 싱싱한 뿌리는 땅 속의 습기를 찾아 넓고 깊게 퍼져나간다. 즉 습기가 없어 목마름을 느낀 고구마는 살기 위해 뿌리를 있는 힘을 다해 땅 속을 파고든다. 살기 위한 에고이즘을 이 녀석들은 알고 있다.
이때 뿌리가 느끼는 것은 극심한 목마름이며, 배고픔이리라. 얼마나 주렸으면 깊은 땅 속으로 마구 기어들어 가겠는가. 이렇게 가뭄에 시달리며 습기를 찾아 뿌리가 무성해 진 후, 단비가 내리면 고구마는 '목마름과 주린 시절'을 잊을 수 없어 있는 힘을 다해 영양분을 축적해야 되겠다고 생각하며 그대로 실행한다. 힘차게 땅을 파고든 그 무성한 뿌리로 갈증과 주림의 기억을 되살려 영양분과 수분을 최대한 저장한다. 그 결과가 어린애 머리통 만한 고구마를 땅 속에 달고서는 어머니를 기쁘게 한다.
극심한 기아에 허덕이던 인간이 갑자기 먹고 마실 것이 생기면, 곡간이 터지도록 많이많이 저장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배움에 굶주린 사람이 책을 대하면 마구 지식을 머리에 저장하는 것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반대로 뿌리내릴 그 때, 비가 오지 않으면 뿌리는 약하다. 겨우 한 치 정도를 파고들어 간신히 버티고 있다. 이후에 비가 많이 와도 뿌리가 약해서 영양분을 많이 빨아들일 힘이 작다.
그래도 약한 뿌리로 어느 정도 씨알은 만든다. 이것은 평년작이며 보통은 이 정도에서 만족해야 한다.
사람도 어느 정도 기력이 있어야 먹을 것을 주어도 회복이 빠르다. 어릴 때 잘 먹지 못해 키가 작고 체력이 약한 사람에게 청년기에 갑자기 보약과 영양분이 풍부한 음식을 준다고 해서 키가 훨씬 커지고 힘이 세지는 것은 아닌 것과 같다. 오히려 부작용으로 고생을 할 뿐이다.

심고 나서부터 줄곧 비가 많이 오면 어떻게 될까.
고구마를 심고 나서 계속 비가 잦으면 그 해는 고구마 농사는 망쳤다고 봐야한다. 처음부터 고구마는 고생을 모른다. 뿌리가 조금만 생겨도 빨아들일 수분이 많으므로 작은 뿌리로 만족하며 그 크기에서 성장을 멈춘다. 늘 수분이 곁에 있으므로 목마름과 배고픔을 모르는 고구마 녀석은 도대체 저장할 줄을 모른다. 하늘만 믿고 언제까지나 마실 것을 내려 주리라 생각하고, 마냥 게으름 피우며 지내다가, 그저 심은 사람의 노고를 생각한답시고 숟가락 만한 알맹이를 달랑달랑 달고 있을 뿐이다. 이런 해는 작황이 최악이며, 어머니 얼굴엔 수심이 가득하다.

돈 많은 집에서 호의호식만 하며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과 다를 바 없다. 스스로 노력하지 않아도 늘 배가 부르므로 힘써 일할 필요가 없다. 마음 속에 용렬한 자만심과 허영으로 가득 채운 채, 돈만이 말을 하는 부평 같은 세상을 살아 갈 뿐이다. 그러나 그 사람의 먼 장래를 바라보면, 비 많이 맞은 고구마와 같지 않겠는가. 고생을 모르고 자란 사람이 마지막에 거둘 수 있는 것은 비 많은 해의 고구마와 같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부자이면서도 자식 교육을 잘 시켜 이 사회를 성실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사람은 대개 훌륭하며 그런 사람은 대를 이어 부를 누릴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할 것이다. 부모와 자식은 주림의 고통을 알고 있는 것이다. 가뭄에 시달린 고구마 처럼.

우리는 어릴 때, 심한 고난을 격은 사람이 장성하여 큰 일을 하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다. 그리고 어릴 때 부모의 덕으로 고생을 모르고 호의호식하며 자라나서, 교육을 등한시하여 머리가 텅 빈 채, 부모가 물려준 재산을 일찍이 소진시키고, 아무 쓸모 없는 인간이 되어 배회의 인생을 살다가, 말년에는 남에게 아무것도 내보일 것이 없는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는 사람도 많이 보아왔다.

한 식물의 종일 뿐인 고구마의 삶이 우리 인생의 그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천채물리학자인 '칼 세이건'은 그의 저서 '코스모스'에서 '참나무와 우리 인간은 먼 친척이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고구마와 인간도 먼먼 친척임에 틀림없다. 자연계에서 이웃하여 함께 살아온 모든 생물들은 이토록 자연의 섭리에 스스로 순응하고 감응해 오는 동안, 진화의 과정에서 갈래갈래 갈라져 서로 조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을 뿐, 그 본성에는 별반 차이가 없다는 뜻일 게다.
이것을 두고 성현들은 '진리는 모든 것에 통한다'라고 했음이리라.

도연명의 시
'해와 달은 조롱 속의 새요, 우주 만물은 물위에 뜬 풀잎이라'라는 시가 참으로 옳은 말이다.

올해는 봄 가뭄이 심하다가 적시에 비가 많이 내렸다. 우리 고구마가 역경을 딛고 크게 성장한 것이 나에게는 무언의 교훈을 주는 것 같아, 한 입 베어먹고 가만히 내려다보니 못 생긴 것이 오늘은 나의 참 스승처럼 느껴진다.

내일이 주말이라서 고구마 가지러 몰려 올테니, 그만 먹고 배급 보따리나 싸 둬야겠다.













    겨울연가(1)


    무게만큼 가벼운 웃음을 싣고
    내리는 너의 얼굴들이
    젖은 발아래 숨는다.

    하얀 색으로 유혹하는가
    밤이 두려워 순백의
    옷을 입혀 보내는 하늘나라.

    낮은 데로 향하는 입맞춤의
    향연에 취하는 산과들이
    백색노을에 젖는다.

    연인들이 찾아오고
    직립으로 사라지는 맑고 고운
    반짝임이 거부할 수 없이
    어머니의 황토밭에 안긴다.

    파란생명은 하얀 옷으로
    붉은 나무는 더욱 붉은 색으로
    덮어주기를 희망하는 강산,

    모든 만상이 저토록
    엶은 미소로 사랑하자고
    찾아온다면................


    2002.11.17.

    글/박종영
    music/눈이내리네/guitar solo/













소공동의 겨울


롯데의 치졸한 폭포가
산사 절집과
협곡의 물노래를 그립게 하는 밤


인종끼리
마음의 벽을 허물지 못하는
이 로비의 귀퉁이에서


나는 홀로
그대 마음에 얼어붙은
고드름을 녹이는 연습을 하고 있네


사랑하는 일.....
그 찬란한 아픔을 삭여
지리산에 묻고 왔건만


그대 만나기전
소공동의 낯선 이 돌집에서
나는 이미 오열하고 있네











가벼운 존재








    2000.11.13 밤에 대전 누이로부터 급한 전화가 왔다.
    시골 노모가 개한테 물려 병원을 다녀오셨다는 데 그후 전화를 영 안
    받는다는 전갈이었다. 깜짝 놀라 내가 시골에 전화를 걸어도 수신되지
    않았다. 혹시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은 방정맞은 생각조차 들었다.
    몇 차례의 시도는 실패. 한 삼십 분쯤 기다리니 오히려 노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월요일(11.13일) 아침 여덟 시경에 이웃집 개가 또 왔기에 개를
    붙잡아서 주인에게 '제발 개 좀 묶어 두라'고 하면서 건네다 줄
    요량이었단다. 작은 개도 늙은 노파를 얏 보았는지 손가락과
    손바닥을 세차게 물었다는 것이며, 노파 역시 '너한테 질소냐'하면서
    한번 움켜진 개를 악착같이 붙잡아 자루에 넣었단다.
    이 과정에서 물렸다는 것이다.


    무모한 행동. 피를 흘리는 것을 본 동네 사람들이 병원에 급히
    가야 한다기에, 차멀미를 심하게 하는 체질이라 버스를 타지 아니하고,
    십리 길을 걸어서 읍내에 나가 치료를 받았단다. 열 한시간이 지난
    일곱 시경의 밤인데도 노모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들떠 있었다.
    겁에 질린 목소리, 당혹감과 낭패감 그리고 분노에 떤 목소리였다.
    흥분한 노모의 목소리를 가라 앉혀야 했다. 자초지종 이야기를 들었다.


    동네에 개를 묶어 두지 아니하고 놓아먹이는 개가 너무 많다며 바로
    이웃집인 뽀족집의 황씨네로부터 싫은 소리를 들었단다.
    그게 마음이 걸려 하나뿐인 우리집 개를 묶어 집안에 가두었다는 소식
    일전에 들었다. 문제는 한 지붕 아래 두 집 살림을 하는 사람들이 개를
    열댓 마리나 키우는데 본집에서는 여덟 마리의 개중 큰 개 한 마리만
    묶어 두고 나머지는 놓아먹이며, 사랑채에 사는 사람 네는 여섯 마리를
    키우는데 다섯 마리를 놓아먹이는 바람에 이들이 온통 동네를 싸질러
    다니며 말썽을 피운다는 것이다. 그 집과 우리집의 거리는 불과 일 백 발자국.


    이웃집의 개들이 우리집 울안 뒤꼍까지 들어 와 糞尿를 퍼 지르는 바람에
    汚物로 집 안팎이 지저분하여 성가시다고 누차 말씀을 하셨다.
    심지어 한산 세모시의 재료인 모시를 햇볕에 바래는데 이 위에 똥을 싸고
    뭉갰단다. 또 노모는 한 마리뿐인 이쁜이 개밥을 끓이기에도 힘이 벅찬데도
    불구하고, 우리집 개는 입이 고급이라 먹이를 잘 먹지 않고, 대신 이웃집
    개들이 항상 울안으로 몰래 들어와 개밥을 훔쳐먹는 것을 못마땅했단다.
    더욱이 개 때문에 피해가 있다며 항의하는 이웃집 뽀족집(지붕이 뾰족함)
    으로부터 애매한 소리를 두어 차례 들었다는 억울함이 내재되어 있던
    차였단다. 그래서 우선 먼저 우리집 개를 묶어 두었으며, 그 후에 개구멍을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용케도 뻔질나게 울안에 파고 들어오는 얄미운 개를
    붙잡겠다는 옹심으로 그 기회를 노리고 계셨단다.


    결국 붙잡았으나, 남의 집 개한테 물린 분함과 狂犬病에 걸릴지도 모른다는
    염려와 아들한테 꾸중을 들을 일이 걱정이 되었던 모양 이였다. 다행히도
    의사가 '걱정을 안 해도 되겠다'며 노모를 위로한 모양이고 또 이틀 후에
    병원에 다시 한 번 오라고 했단다.



    포획하여 포대 자루에 가둔 개를 주인에게 돌려주고자 마을會館의 마이크로
    방송하였어도 개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단다. 정작 개 주인이라고 짐작되는
    아랫집의 여편네는 "자기네 개가 아니다"라고 발뺌을 하였으나 그의 姻戚은
    의뭉스럽게도 "개를 어서 풀어 주라. 그렇지 않으면 벌받는다"고 했단다.
    그러나 동네의 多數意見은 당연히 주인이 나타나야 개를 인도해 주는 것이지
    개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 상태에서 개를 풀어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더욱이 사람을 물은 개는 죽여도 된다는 것이다. 이웃집의 한 노파는
    그런 벌이라면 당신이 대신 받겠다며 노모를 감쌌다 한다.


    불과 일 백 발자국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야랫집(아랫집의 사투리)의
    개라고 여겨지는데도 병원비를 부담할까 싶어서 '자기네 개가 아니다'라고
    짐짓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노모는 개 주인이 개한테 사람을 물으라고
    시킨바 가 아니므로 개 물림에 대해서는 당신의 불찰이라고 분명히 알고
    계셨다.


    문제는 개 임자가 묶어 두지 아니하고 많은 개를 놓아먹인 것
    (그것도 일곱 마리)에 대한 사과와 앞으로 어떻게 많은 개를 단속할
    것인지를 약속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평소에 제 어머니의 또래에 달한
    이웃집 노파에게 악살을 부린 이웃 아낙에 대한 응징이 될 모양이다.
    제 시어머니도 때려 주었다는 고약한 여편네에 대한 미움이 숨겨져 있었다.


    아내는 화요일에 급히 시골로 내려갔다. 서울 사는 며느리가 읍내에 와
    있음을 먼저 발견한 동네 사람이 노모에게 전화로 이 사실을 알려 드렸단다.
    이에 노모는 서울의 아들에게 전화를 거셨다.
    "너희가 그렇게 걱정을 하면 自盡해서 더 못 살겠다"는 투의 가벼운 꾸지람
    속에는 은근히 며느리가 대견하다는 의미가 숨겨져 있었다.

    며느리가 익일 수요일 아침에 노모를 모시고 읍내의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할머니. 요것 때문에 서울시는 며느리 내려오라고 했어요?'라면서
    우스개 소리를 했단다. 면구스러워 狂犬病 때문에 걱정하였다는 노모를
    의사는 따스한 말로 부담을 덜어 주었단다. 아내는 수요일 오후 차로 귀경했다.


    문제는 포획한 개를 어찌할 것인가 하는 難題다. 서울시는 아들은 단호히
    그 개를 餓死시키라고 말씀 드렸다. 평소에는 사소한 생명조차 소중히 여기는
    성미였으나 사람을 문 행위는 응징을 해야 하므로 포획한 개에게 먹을 것을
    일체 주지 말라고 일렀다. 作爲가 아닌 不作僞로도 너끈히 개를 처단하는
    방안이었다. 개가 죽거든 나무뿌리 아래 구덩이를 파고 그 속에 死體를 묻어
    버리라고 말씀을 드린 터였다. 이는 개 주인에 대한 無言의 示威였다.


    우리집의 개 발발이(이뿐이라는 촌스러운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영리하여
    평소에 주인인 노모가 먹이를 주려고 접근을 시도해도 動物의 警戒心을
    발동하여 항상 이삼 메타의 거리를 두어서 노모의 접근을 결코 허용하지
    않았다.
    금번에는 노모에게 붙잡히는 수모를 당했으나 결코 주인을 물지 않았다.
    그러나 이웃집 개는 이웃집 노파에게 붙잡히는 과정에서 손가락 손바닥 및
    팔뚝을 물었다는 罪名으로 조만간 생명을 빼앗기게 될 처지에 놓여 있다.
    평소에 동. 식물을 사랑하는 나도 이번 일에는 어쩔 수 없다.
    사나운 것은 淘汰되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비록 말 못하는 짐승이라고 해서 동정을 베풀어야 할 하등의 이유 없다.


    아내는 포대 자루를 들어보았더니 가벼운 무게였다며 안쓰러워 했으나 단호한
    시어머니의 결심에 감히 제 의견을 제시하지 못 하였다고 했다. 개를 가둔지
    나흘째 밤 목요일에 아내는 '가벼운 존재'인 개를 풀어 주라고 나에게 간청하였다.
    아내의 말을 좇아 노모에게 풀어 주라고 전화를 하였건만 노모의 대답은 단
    하나였다. 오히려 가슴이 멕힌다는 것이었다. 가슴 멕힌 것이 개 물림의 후유증과
    직접 연관되는 것인지를 알 수 없다. 노모가 '아프다'는 이유라면 '가벼운 존재'는
    어쩔 수 없는 죽음뿐이다(제 어미의 말에 대해서 논리적으로 파고드는 것은
    불효이므로 노모의 말을 믿어야 하는 아들의 입장임을 해량하기 바란다).


    노쇠하여 파리해진 노모의 건강이 점점 얇아진다. 하나의 생채기가 되어 客地에서
    사는 아들의 마음을 찢는다.


    2000.11.17(금)바람의 아들 최윤환








다음 대통령에게 바란다




당신을 대통령으로 선택한 사람들에게 꿈이 있기에,
아마도 당신은 나보다 좀 늦게 이 세상에 나왔거나,
아니면 나보다 훨씬 젊게 이 세상을 살아 왔겠지요.

당신은 꿈을 가지셔야 합니다.
당신을 선택한 그들에게는 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꿈은 그들 자신을 사랑함 입니다.
그것이 그들의 꿈이기에,
당신도 그들과 같이,
당신 자신을 사랑함을 꿈으로 가지십시오.

의학적인 필요 외의 일체의 성형수술을 금지 하십시오.
왜 우리 예쁜 한국의 딸들의 얼굴에 칼자욱을 냅니까?
왜 우리 고운 한국말을 하도록 생긴 혀에 칼자욱을 냅니까?
허영에 찬 부모들이 돌을 던지면 그까짓 것 맞으십시오.

일체의 초, 중,고교 과목에 관한 과외를 금지하십시오.
초중고교 성적을 우수미양(ABCD)으로 단순화 하십시오.
일체의 대학입시제도를 없애십시오. 이제 더 이상 쓸모
없는 가치측정의 방도입니다. 대학입시는 앞으로 적어도
10년간은 제비뽑기보다 그저 조금 타당한 방법을 쓰십시오.
사회의 엘리트들이 돌을 던지면 그까짓 것 맞으십시오.

초중고교 아이들에게 건설적으로 노는 방법을 가르치십시오.
이것이 얼마나 귀중한 삶의 경험인가를 알려줄 수 있는
학교 교육 방법을 개발하십시오. 그 방법은 40대 미만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개발되게 하십시오. 크고 작은 학교
오케스트라, 각종 밴드, 예술, 취미, 운동 프로그램을
국가에서 학교에 직접 지원하십시오. 기업체의 도움도 좋지요.
노는 학교라 하여 학부모들이 돌을 던지면 그까짓 것 맞으십시오.

남녀 대학생들에게 일러주십시오.
그들이 행복하기 위해선 모 그룹의 사장일 필요가 없음을.
그들의 부모들이 자기 허영에 그걸 바란다면 거침없이 떠나라고.
그들의 삶은 오직 그들의 것일뿐,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라고.
그들이 원하고
그들이 행복한 삶이 그들의 삶이라고.
자식 기대에 찬 부모들이 돌을 던지면 그까짓 것 맞으십시오.

이것 뿐입니다.
여기에 당신의 꿈을 담으면 당신은 좋은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잊히지 않는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당신은
돌을 맞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 2002,11,9 작가:EEZZ





나는 애첩 기질인가? 본처 기질인가?



..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가까운 가족 친지,친구등등 주변 사람들에게
약간은 코 평수를 늘리고 달콤한 목소리로 대화 한적도 없고,
돈 드는것도 아닌데 칭찬 또한 인색했다.

특히 가족에겐 더 심했었는데
남편은 나보다 더 잘난줄 알까 걱정 스러움이였고,
아이들은 교만해질까 하는 걱정과 칭찬받지 못할 위치에 서게 되었을때
환상에 빠져서 이겨내지 못할까 하는 우려섞인 마음이 다소 있었다.
본인 자신에게는 어느모로 봐도 뾰족히 잘난 구석이 없었으니
참 잘한거야.... 하는 자찬은 해 보질 못했다.

하긴 맘속에 욕심이 가득하여 남의것만 좋아보이고
내것의 비하하는 심보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생활이 3년전까지 이어져 있었다.

그런 고약스런 성미를 뜯어고칠려고
신께선 작은 채찍을 드시고 신체의 일부기능을 변형시키고,
마음 또한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신후 지금은 기다려 주신다.

지은죄가 있어서 마음과 몸을 동시에 고치려 노력하는중인데
요즘 만나는 사람들 중에서 고운말과 고은글을 쓰고
매사에 긍정적인 눈을 가지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사람을 만났다.

그녀는 나와 통화를 할때 목소리가 아름답다고 한다.
세상에 고운 목소리가 얼마나 많은가 마는
인사성 발언이라도 몇마디 말로 상대를 행복하게 해주는 그녀를 보고
더 고운 목소리로 대화하려 조심을 한다.
잔기침도 몇번 하여 목소리를 가다듬으면서.....

신이 보낸 선생님이신것 같아서 하나씩 심보를 고쳐 나간다.
나이들어가는 탓도 있겠지만,
요즘은 모든것이 좋아 보인다.

이젠 약간은 코맹맹이 소리로 날카롭고 딱딱한 대화에 기름칠도 하고,
늦은감이 있지만 칭찬도 해보고,
늘어가는 남편의 주름살위에 작은 애교라도 부려 봐야겠다.

이숙영의 수필집에서본 제목이 생각 난다.
애첩기질 본처기질....
난 어느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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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고 어두운 별의 저편 /詩/김규봉 ♣



어둠을 간구하는
절실함의 표상으로
합일의 아름다운 미로를 위하여 -
이제 새로운
아담의 탄생과 이브의 축복을 맞이하자


가능한 모든 슬픔이
빛으로부터 멀리 떠날 수 있도록
무화과 잎새로 월계관을 만들고
사과향 그윽한 입술로
마주 선 눈빛을 흡수하자


푸르고 어두운, 별의 저편
무념의 영원한 편린이
에덴의 공동추방을
환호하며 은하를 건널 때
우리는,
조용히 눈을 감고
서로의 신화가 되자


무지개빛 우주의 적막이
비수의 열망을 감싸며
안식을 느낄 때
아,
그 생명의 치밀한
접촉을 살아갈 때 -

우리는
순결히 동반소멸을 타오르자,


별의 저편 -
푸르고 어두운, 별의 저편 -
불의 광염이 살결을 태우며
이카루스의 추락을 방관할지라도
억겁 속 순간의 숨결이
하나 되는 찰나를 위하여
우리는, 불꽃이 되자 불꽃이 되자


강렬한 태양의 폭풍 속으로
장렬히 들어서며 들어서면서...

(순수창작심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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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月 마지막 가을 날에 .........../魚來山



    깊은 가을 날
    붉고 붉은 단풍잎이
    발밑에 굴러다니면, 허리를 숙이고
    단풍잎을 줍는다.

    끝도 모를 그리움이 밀려들어
    콧잔등이 시큰해진다.

    이제 빈몸으로 떠나야할 때
    그 찬란했던 또는,
    슬펐던 삶을 다시 한번 인식하라는
    자연의 속삭임인가..

    내 둘레 달무리만한
    정성으로 불지펴 놓고

    가을도 만나고 보면
    또 떠나는 아픈 인연(因緣)..

    창(窓)너머 잠든 뜨락에
    몰래지는 홍엽(紅葉)입니다.

    하늘이 높고 깊어져갑니다.
    스산한 바람결 따라
    단풍은 제 몸을 저리 아름답게
    불태우고 있습니다.

    온몸으로 일제히 빨간 손
    간절한 마음을 흔들고 있습니다.
    화려하게 치장하고
    또 한번의
    열애를 꿈꾸는 것일까..

    뜨겁게 타오르며
    찬란히 연소하는 그 모습으로
    아무리 열렬해도 미쳐 다할 수 없는
    사랑의 삶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건듯 바람결에
    한 잎 두 잎
    모두 다 우수수 떨군 그 자리엔
    청초하고 푸른 속살의 부활이
    약속되어 있겠지..

    마른 겨울 나무의 속살에도
    수액은 저리 땅에서 하늘로
    조용히 솟구치고 있지 않습니까.

    아직 많이 남은 날의
    그대의 삶과
    사랑 또한 이와 같겠지요.

    사랑이 지나간 자리가
    아름다운건
    그 사랑이 진실했기 때문이다.

    귓가에 서성이는 말 한 마디가
    때로는 별빛이 되고
    때로는,
    깊은 흠집이 될 수도 있지만..

    그 모든 사랑의 말들은
    가슴에서 돋아나는
    불씨같은 아름다움이기도 하다.

    이제 11月 가을의 끝 날,
    사방에서 이별의 소리가 들려온다.
    말 못하는 초목들도
    가벼이 손을 흔들며 이별을 손짓한다.

    어떤 나무는
    다 벗은 맨몸으로 서서
    저 매서운 동토(冬土)의 찬바람을
    홀로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이때쯤이면 누구나
    자신을 돌아보고 불현듯
    자기의 나이를 떠올려 보게 된다.

    그리고 쓸쓸함에 젖는다.
    사람들은 나이가 사람 안의 불꽃을
    꺼뜨린다고 생각한다.

    표표히 불어오는 갈바람 소리
    홀연히 떨어지는 나뭇잎,

    외로움..

    지난 여름
    그토록 붉고 향기로운 꽃들은
    모두 다 어디로 갔을까..

    시간과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되물어보게 된다.

    가을 햇살은 또 한 잎,
    낙엽을 떨구면서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한다.
    아니,
    좀더 외롭고
    더 가벼워지라고 속삭인다.

    저만치,
    시간을 읽을 줄 모르는 철부지들이
    나무 아래 수북이 쌓였다가
    찬바람에 우르르 쓸려가고 있다.

    그것이 슬퍼서
    세월이 지금 창 밖 가득히
    우수의 눈빛으로 떨며 바라보고 있다.

    나는 그 세월 한 자락을
    내 온몸 사지를 우그러뜨려
    깊이 안고 싶으다.

    마지막 가을 밤
    달빛은 쓸쓸한 빛깔이다.

    불면증을 앓는 밤엔
    쓸쓸함이 짙어 아주 외로운 빛깔이 되고
    그 속엔 그리움이 흥건히 고인다.

    희부연 달빛이
    산과 강에 조용히 내리고 있다.

    가을이 자꾸 돌아보며 돌아보며
    저만치 걸어가고 있다.

    이제는 하늘울음도
    그만 울어야 하겠다.
    그동안 참으로
    많이도 울며 살아온 것 같다.

    울음에 젖은 옷
    여기 다 벗어놓고 산으로 간다.

    꽃피고 새우는 봄 날
    새 옷을 입고서
    여기 다시 올 것이다.
    내일 아침이면 "하늘울음" 벗어놓고
    깊은 산으로 간다.

    흰눈이 펑펑내리는
    먼 곳으로 짚신에 감발하고
    눈길을 걸어
    겨울 산 양지 바른 곳

    푸른 솔 마른 가지에
    내 마음 걸어 말리고 싶어서 간다.

    청머루의 고향,
    어래산 魚來山으로 간다.
    안녕히 ..


    훠어이,

    훠이..


    .. 魚來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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