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나는 공주처럼 살고 싶었다.
헨델과 그레텔에 나오는 과자와 빵과 사탕으로 지은 집.
연분홍 얇은 레이스 커튼을 달아 리본으로 살짝 묶은 창이 있고
창가엔 치르치르와 미찌르의 파랑새가 새장 문을 제 맘대로 여닫으며 드나드는 집.


소공녀처럼 어느 날 아침 눈 뜨면, 난데없는 근사한 선물에 둘러싸여 흥분도 하고
사랑하는 가엾은 친구에게 아낌없이 가진 것들을 나눠주며 함께 즐거워하는 공상에도 잠겼엇다.
소공녀의 환상은 언제나 신비한 베일처럼
내 유년의 삶들을 늘 고운 빛깔로 물들여주고 포장해주는 마력을 지닌 채
내게 힘을 주고 꿈을 잃지 않도록 해 주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참으로 어려운 일들이 많았건만
어떤 경우라도 남을 원망하는 독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끊임없이 내 귓가에 들려오던 소공녀 세라의 속삭임이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제 세월이 흘러
어릴 적과는 또 다른 한 가지 소망이 돋아난다.
나는 野하게 살고 싶다.
산과 들판과 바다를 무시로 누비며 자연의 사랑스런 일부가 되어 살던
어린 시절의 때 묻지 않은 그 세계로 되돌아가고 싶다.


고무신에 진흙이 엉겨 붙어도 좋다.
하교 길에 빗물 불어난 도랑을 못 건너 발을 동동 구르다가 마중 나온 오라비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오던 그 때가 눈물겹도록 그립다.
옆집 누런 장닭이 시퍼런 꼬리를 곧추세우고 달려들면 소리조차 못 내고 자지러지던 그 시절
뒤뚱거리는 장닭의
깃발처럼 펄럭이던 그 찬란한 빛깔의
위세 당당한 꼬리 깃털이 다시 보고 싶다.


맨 발로 밟던 텃밭 흙의 촉촉하고 가슬가슬 부드럽던 감촉이 그립다.
푸성귀에 이슬젖어 기어 다니던 커다란 달팽이의 얇은 껍질을 잡을 때 손끝에 느껴지던 감촉과
행여 쥐면 깨어질세라 조심스럽던 기억이 새롭다.
누렁이를 데리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아침마다 오르던 앞동산이 그립다.


이제 정말 맘 놓고 야하게 살아보고 싶다.
마당 전에 채마밭이 딸린 집에서
흙바닥이 고스란히 드러난 헛간에 호미랑 삽이랑 들여 두고
처마 밑엔 시래기두름도 주렁주렁 걸어두면 좋겠다.
마당이 햇살세수를 할 때까지 곤히 잠든 초가지붕위로
밤새 반짝이는 별빛이 마음껏 쏟아져 내리도록 두리라.


청솔가지를 태워 밥을 지으면 솔 향이 온 집에 가득하고
굴뚝으로 모락모락 푸른 연기가 오르는 집에서
수탉이 목청을 돋우어 소리 지를 때 눈뜨고
암탉이 병아리를 품에 모을 때면 나도 일손을 거두리라.
봄이면 하얀꽃향기 진동하도록 찔레 울타리를 둘러야지,
한 켠에 감나무를 심고 아침마다 까치가 짓는 소리를 들을거야.


심심할라치면 바닷가에 나가 지천에 널린 굴을 따서
입가에 굴 딱지가 허옇게 앉도록 그 짭조름한 맛을 즐기리라.
유리알처럼 투명하고 통통하게 살이 여문 새우도 건져 보리라.
향내 나는 스킨로션도 썬 크림도 모자도 필요치 않은 야한 여자가 되어
눈썹 위에 손을 얹고 넘어가는 저녁 해와 노을도 맘껏 바라보리라.


한 벌 구두를 안 방 시렁 위에 얹어두고
아주 가끔씩 손질을 하리라.
몸뻬바지, 월남치마로 들과 산을 누비다가도
어쩌다 한 번씩은 거울 앞에서 립스틱을 정성껏 바르고 반듯한 양복도 걸쳐보며
하늘 아래 땅 위에
누구 앞에서도 꺼릴 것 없는 편안한 자연이 되어지고 싶다.

-하닷사-

(2003.1.2. 하닷사님이 쓴 글)










"막연한 기다림, 어쩌면 불안이었을 그런 과민함이 선연하게 밝아오는 아침의 빛 속에서 나를
주저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한참을 누운 채로 창문이 빛을 바라보았다. 마당으로부터 유리창을
넘어 오는 형수의 과장된 흥분과 단절된 마디마디의 외침이 눈부신 빛의 입자처럼 선명하게
나의 주저함 위로 쏟아져 내렸다."
(1988년 어느 신문 신춘문예 당선 소설 첫머리란다)

난 이런 문장을 보면 마음이 괜히 불안하다.
공을 들여 쓴 글임에 틀림없는 데,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니.....

글은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기록방법인 글과 창작도구인 글이라.
만약 글이 없었다면 윗글과 같은 창작물은 나올 수 없었을 터.
글이 아닌 말로 한다면,
"아침에 게으름 피우면서 누워있었는데 마당에서 형수가 외치더군." 하는 정도일 게다.

난 발명과 창작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윗글을 쓴 이의 마음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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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마음이 약간 들뜬다. 정신이 한 곳으로 집중되면서도 좀 들뜬다.
"구상은 이미 다 해놨는데...... 왜 이리 질정이 안되지? 하긴...... 글의 첫머리란 건 항상 어려운 법이니까...."

그는 창조하는 사람이다.
그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지금 내가 만드는 것이 굉장한 것이다'하는 마음과,
'실패해도 다시 할 수 있다'는 마음이 필요하고,
그런 마음이 일도록 하는 화학물질을
끊임없이 스스로 공급할 수 있는 사람만이
창조를 할 수 있다.
"무조건 멋진 글을 지을 것이다",
그는 오로지 그 생각뿐이다.

그에게 기세가 충천해서
어떨 때는 세상이 돈짝만하게 보일 때도 있지.
그래 글짓는 건 재미있는 일이지.

그런데.............

"왜 문장이 자꾸 길어질까?"
"그건 그만큼 내 글에 내용이 많다는 뜻이지."

"왜 어려운 말이 자꾸 나올까?"
"그건 내 글이 의미심장한 것이어서 쉬운 말로는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지."

"왜 한 얘기를 또하고 또하고 그러지?"
"그야 중요한 내용이니까 강조하느라 그러는 거지."
-----------------------------


글짓기는 재미있다.
그렇지만 자칫 잘못하면 '이상한 나라'로 가게 되는 수도 있다.
'알맹이도 없이 껍데기에 치중하는 나라' ---- 그런 이상한 나라로 가게 된다.

별 내용도 없으면서, 이런 치장 저런 기교로, 길게 엮어놓은 문장,
괜히 어려운 단어를 갖다붙이고 어렵게 글을 써서 읽어도 모를 정도인 문장,
술취한 사람처럼 한 얘기를 자꾸 반복하는 글,

그렇게 글을 써 놓고도,
그걸 보고 스스로 감탄하고 으스댈 정도라면
'이상한 나라'에 깊숙하게 들어온 것이다.

그런 골치아픈 글보다는
현실 삶에서 우러난
그냥 수다가
얼마나 자연스럽고 듣기 좋으냐!



문화가산책 2003/01/01 작가:작은큰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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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미군 땡크- 여중생 사망 사건 진행을 보면서~

번호:476 글쓴이: 데니
조회:40 날짜:2002/12/04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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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2명의 꽃같은 소녀들의 미군 땡크에 의한 죽음을 애도하면서 이글을 씁니다.
그리고, 이사건의 진행과정을 보면서, 느낀점을 쓰려고 하다보니,
대부분의 국민적인 정서에 반하는것 같아, 그냥 조용히 있는것이, 중간은
될수 있는 상황이나 토론을 위한 주제로서 한 말씀올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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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15일 토론마당 번호 298번에서 본인이 주제로 올린
"미국/미군 그들은 이제 우리에게 무엇인가?" 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많은 분들과 토론한 일이 있었는데, 이어서
금번 미군 탱크에 희생된 여중생 사건을 보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미국은 세계 초강대 군사대국으로서, 이제 냉전도 끝나고 극한적으로
군사적인 대적할만한 능력을 가진 나라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러가지 정치적 국제적 상황 변화로 인해, 미국을 바라보는 시각도
특히 젊은층에서 인식 변화는 확연하다.

SOFA나 군사지휘관할권, 재판관할권, 국민적인 정서 등등 근본적으로
외형상 국가대 국가의 동등한 권리로서 주장하고 존중되야하는 권리
로서 행사를 할수없는 현실등을 차치하기로 하고~

단순하게 범위를 축소하여, 이번 여중생 사망 사건 하나만을 놓고 생각해보기로 한다면~.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본다면
만일 오래전에 월남 파병때나, 또 동티모르에 우리 군대가 UN군 자격으로
파병되어 있는데, 만일 정말 우리 군에서 현지 훈련(작전)중에
이와 유사한 사건이 났다고 가정한다면,

이때 또 만일 월남 정부에서, 해당 우리 군인들을 월남 재판정에서 재판
하고 처벌 하겠다고 주장한다면, 우리 정부나 국민들이 그대로 두고만
볼것인가!!??
또, 공감하고, 이해하고 그렇게 해야 한다고 병사를 넘겨줄수 있을까?

또한 군사훈련(작전)중에는 항상 각종 사고가 날수도 있다.
물론 주의를 해야하고, 또 불의의 사고에 대해 신속하고 명확한 처리를
해야하는데, 미군측에서 이제까지의 습괸이나 관례처럼, 한국 국민
정서를 무시하고, 너무 일방적인 뻗뻗한 자세가 이번 사건을 이렇게
어럽게 만들어 간것 같다.

그들도 외형적으로나마 그런 표현 자세를 바꾸고, 나아가 마음속 자세
까지 바뀌려면 사간도 필요하고, 이번처럼 온국민들의 항의와 질책이
따라야 하고 이런 일에 대한 앞으로의 대응 태도를 바꾸는데는 많은
도움이 될것으로는 생각한다.


1950년 6,25 사변 전후해 한반도에 미군 상륙이후, 미국에 대한 국민감정
은 아마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는 것같은 현실을 보면서, 격세지감
을 금할수 없으나, 이제 한반도의 군사적인 도발 가능성의 감소등의
상황에서, 이제는 새로운 차원의 동반적 발전적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좀더 상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면서 개개인이 행동하고 , 대응하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사건 하나 그 자체만을 가지고,하나씩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고
그 사안외에, 직접 관련이 없는 많은 문제들을 한꺼번에 들추어 내고
선동하듯 하거나, 그때만 잠시 부화뇌동 하는듯한 인상과 너무 과격한
듯한 감정적 대응은 자제해야 될것 같다. 미국/미군 우리의 특성을 잘 알고있으므로~

협상이란 감정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실리적으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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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미군 땡크- 여중생 사망 사건 진행을 보면서~

번호:477 글쓴이: 멜론
조회:20 날짜:2002/12/06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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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님의 말씀에 많은 부분 공감하며

덧붙여 한마디 ....

성난 관중앞에 자국민을 내 놓을 나라는 절대 없을 것입니다.
미군을 우리 법정에 세우고 싶으신 여러분이 정말 계시다면 그리고
정말로 진실이 아시고 싶으시다면
아무런 감정이나 선입관이 없이 제3자의 시점으로 사건을 볼 수 있어야만 합니다.
침착하고 이성적인 면을 확고히 보이고 세계의 여론을 우리쪽으로 모아야 하는데
지금같이 이성을 잃고 감정으로 시시비비를 가리자고 한다면
세계 어느나라도 용의자를 성난 군중에게 내어 놓는 일이 타당하다고는
하지 않을 것이 자명한 일입니다.
이번 국민들의 경솔하고 격렬한 반응은 미국이 바라는 바이며 세계의 여론은
가해자인 미군을 동정하는 쪽으로 몰고 가게 됩니다.

실제 상황으로 가상해 봅니다.
한국법정에 내어 놓아 공개로 재판을 하였다면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법정은 반미 방청인들로 수라장이 되어 제대로 재판이 이루어 질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방청인 선정에 엄한 심사가 있을 것입니다.
재판소 앞에는 보도진과 방청요구를 거절당한 성난 국민이 반미 데모를 벌여
그것을 제압하려는 경찰과 몸싸움이 벌어 질 것입니다.
어쩌면 경찰을 밀치고 법정까지 쳐들어가는 사태도 발생하겠지요.

그리고 그 미군들 무죄를 받아서 분한 마음을 잘 알겠지만
그 미군들에게 사형 판결이 내려지지 않는 한 (사람을 둘이나 죽였으므로)
성난 군중들은 만족을 할 리가 없지를 않습니까?
그런 재판을 맡고 싶은 대한민국 판사가 어디에 있을까요?
그 어떤 판결을 내리든 사법부는 매도될 것입니다.
판사는 오명을 쓰고 법복을 벗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될것이 자명합니다.
자 그럼 성난 군중의 요구에 걸맞게 사형판결을 내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세계여론과 미국국민 여론또한 그냥 있을수 없으며 복수는 복수를 부르고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계 이민들에게 테러보복과 경제봉쇄등의 제제가 이루어지겠지요.

부디 냉정하고 침착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만이 우리가 이길 수 있는 길인데 왜 그걸 모르는지......

"늬 딸이 아니니까 그런말을 할 수 있는거다. 늬 새끼라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한번보자"

이런말씀 하시는 분도 계시겠지요.
당연히 제자식이라면 그런말 못합니다. 저라면 상대방을 죽이기위해 골몰할 것입니다.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복수를 생각할 것입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그 부모님께 냉정해라 그래야 이긴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이글을 읽는 당신도 제3자이기에 가능한 것 입니다.
온 국민이 당사자의 기분이 되어 이성을 잃고
끓어 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상태가 지속되는 이즈음
소란만 피우고 결국 손해는 혼자 다 보고마는 우리 한국사람이
너무 바보스러워서 분통이 터집니다.

불쌍한 피해자인 여학생.... 부디 정치에 이용되는 도구는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두 아이들은 조용히 잠들게 해 주시고,
그가족 되시는 분들은 미국군부를 상대로 거액의 위자료를 요구하시어 그 대가를 치루게 하시고
(돈으로는 어떠한 위안도 보상도 않되는 줄은 압니다마는)


미국과의 안보조약에 관한 규약의 개정과 협정은
이번 사건과는 별도로 재 검토 해야만 할 것 입니다.
냉철한고 끈기있는 협상은 시간과 이성이 요구될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율을 최대한 줄여야 할것인데
그에대한 범 국민적인 합의와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부담해야할
부담액도 구체적으로 토론되어야 할 것입니다.

미군을 이땅에서 쫓아 내려면 북한과의 한판 승부도 서슴치 말고
어느쪽이 되더라도 한반도의 긴장상태에 종지부를 찍을 각오를 하던가
북한의 핵 개발 실태를 한국에서 직접 파악하고 그 핵개발 기지를 폐쇄시켜버리는 것인데
그것도 그리 쉽지는 않다는 걸 모두들 잘 알고 있습니다.

미국과의 안보조약에 관한 규약의 개정과 협정을 인내와 끈기로 풀어가든,
북한과 결판을 내든... 잘 생각해서 판단을 해야 될 것 입니다.


다시 생각 해 봐도 데니님 말씀 백번 옳습니다.

>그리고, 사건하나 그 자체만을 가지고,하나씩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고
>그 사안외에, 직접 관련이 없는 많은 문제들을 한꺼번에 들추어 내고
>선동하듯 하거나, 그때만 잠시 부화뇌동 하는듯한 인상과 너무 과격한
>듯한 감정적 대응은 자제 해야 될것 같다. 미국/미군 우리의 특성을 잘 >알고있으므로~

>협상이란 감정적으로 하는것이 아니고 실리적으로하는것 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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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미군 땡크- 여중생 사망 사건 진행을 보면서~

번호:478 글쓴이: 줄리아
조회:27 날짜:2002/12/0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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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님의 말씀에 공감하는 마음으로....

'...미군측에서 이제 까지의 습관이나 관례처럼, 한국 국민
정서를 무시하고, 너무 일방적인 뻗뻗한 자세가 이번 사건을 이렇게
어럽게 만들어 간것 같다.... '
그것또한 자연스런 현상같습니다만.... 요즘 가진자가 고개숙이는것 보지 못했습니다만...(가슴이야 아프지만...이해못할것도 없는듯...)


멜론님 말씀에도 공감하는 마음으로...

'...저도 이글을 읽는 당신도 제3자이기에 가능한 것 입니다...'에서
그것또한 맞습니다만... (우리는 하나...우리는 하나인 입장에서들...)


줄리아의 덧부침은
국제법도 법이며, 각 자국에도 법이 있는고로, 냉철하게 악법도 법인면에서...
이제 한반도의 군사적인 도발 가능성의 감소등의 상황에서, 이제는 새로운 차원의 동반적 발전적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좀더 상대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면서 개개인의 행동하고 , 대응하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공감대를 형성...)
사실 그들이 그렇다면 그런 것입니다... 그런입장에 와 있다면 그런것입니다.
자고로 대자연의 완전함의 고개숙임은 보았어도 인간의 완전함의 초연함은 보지못했습니다 아마도 지구상에는 없을 듯 합니다...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일들이 다 그런것 같습니다...
우리도 잘못한것 없고, 미국그네들도 나쁘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저는...
단... 말씀처럼 냉철하게...자숙하자는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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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나의 참모습은 무엇입니까
나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나의 고유한 성질은 무엇입니까
내가 누구인지 알고싶습니다.
당신에게 내가 어떤 사람임을 말해주고 싶기 때문입니다.

나는 내가 되기 위해 배우고있습니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배우고있습니다.
변화할 수 있는 당신이 좋습니다.
나를 알고 난 후부터 변화해 가는 당신의 모습을 보고있으면 즐겁습니다.
끊임없이 변화해 가는 당신을 존경합니다.

아름다운 나를 찾고있습니다.
나의 착한 마음을 찾고있습니다.
착한 마음의 질과 양을 늘리고싶기 때문입니다.
나의 착한 마음을 확대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나를 변화시키고있습니다.

당신의 참모습을 찾고있는 당신이 좋습니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당신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일에 전념하는 당신의 모습이 자랑스럽습니다.
당신을 생각하면서 일에 빠져드는 나를 발견합니다.
당신과 나를 위해 일에 몰입하는 내가 좋습니다.

사랑이란 두 사람이 아름답게 변화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에게 내 마음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당신과 나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 사랑인가 봅니다.
당신과 내가 인간미가 넘치는 사람으로 되어 가는 과정이 사랑입니까
참다운 당신과 나를 찾게 이끌어주는 것이 사랑입니까
참다운 당신과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사랑입니까

너와 나의 관계 속에서
배우는 사랑보다 더 귀중한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참다움, 착함, 그리고 아름다움을 배우고있습니다.
사랑을 배우고있습니다.
사랑하면서 사랑을 배우고있습니다.
사랑 속에서는 부족함도 부족함이 아닙니다.
부족함이 있다고 해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직 넘치는 사랑이 모든 것을 안아주기 때문입니다.


(꽃불님이 2002.12.24. 지은 글)


12월 19일 밤, 우리는 제16대 대통령 선거의 개표 방송을 지켜보다가 당선자 확정 소식을 듣고 환호하는 무리와 낙담하는 두 무리의 상반된 표정을 동시에 보았다.
당선자 쪽의 열광하는 장면을 보노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기쁨과 감동이 복받쳐 올랐고 낙선자 쪽의 침통한 표정을 보노라면, 연민이랄까, 통분의 아픔에 빠져드는 것 같이 느껴졌다. 결정적으로 어느 한 쪽을 지지한다는 생각이 당초 결여되었던 탓이었을까 ?

다음날 20일 오전, 노무현 후보가 선관위에서 당선자 증서를 받을 무렵, 이회창 후보는 눈물의 정계은퇴 선언을 하였다. 고락을 함께 하던 당원들을 버려 두고 홀연히 정계를 떠나갔다. 특히 정계은퇴를 선언하는 기자회견장에서 이 후보와 그 측근들이 함께 흘리는 눈물의 현장은 많은 국민들도 애석한 정을 금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인생은 부단한 승부 경쟁의 연속이 아닌가. 지난 가을 아시안 게임에서 우리가 보았던 치열한 경쟁과 무수한 승부의 희비와 함께 각종 선거전 역시 그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식해 볼 때,너무 비감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모든 경기가 그렇듯이 많은 경쟁자들 가운데 1위 승자는 언제나 하나 뿐이다. 내가 이기면 다른 상대가 눈물의 고배를 마셔야 하고, 다른 경쟁자가 이기면, 내가 패배의 눈물을 흘려야 하는 승부 세계의 이 냉엄한 현실을 예상하지 않고야 어찌 싸움터에 출전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공적 선거- 특히 대선은 개인의 승부욕을 충족하는 경쟁이기 이전에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봉사할 지도자를 선정하는 순수 공익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사람이 낙선했다고 해서 눈물을 흘리면서 전격적으로 정계은퇴를 결행하는 모습은 자신을 지지했던 국민들에게 너무나 실망스럽게 비쳐진다. 이겼다고 열광하는 승자 보다는 실패에 의연할 수 있는 패자가 더욱 훌륭하다.

물론, 정치인이라 해서 인간의 희로애락 본능조차 절대 억제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대선 후보자라면 낙선 결과도 예상할 줄 알아야 하고, 또 낙선 결과에 불구하고 정치적 투지를 견지하며 의연히 대처하는 자세도 중요하리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 후보는 과거 8년의 정당생활에서 당을 이끌어왔던 지도자가 아닌가. 진정 용기있는 지도자라면 먼저 선거 패배 후 당원들을 위로하며 전열을 정비하고 사기를 진작하는 데 마음을 써야 한다. 정치 지도자에게는 항시 개인의 기분에 앞서 공적 책무를 앞세우는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많은 승객을 싣고 달리던 기관사는 갑자기 기관차에서 내릴 자유가 없는 것이다. 원내 과반을 훨씬 넘는 거대 정당의 전국 당원과 한 번의 협의도 없이 전격적으로 정계은퇴를 선언한 것은 정치를 너무나 이기적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의 여지가 있다고 한다면 너무 심한 말이 될까 ?. 그의 정치적 소양이 의심스럽다. 정치가 어디 개인의 소유물인가 ?

김대중 대통령도 한 때 대선에서 낙선한 뒤에 전격으로 은퇴를 선언하고 부랴부랴 영국으로 출국하여 은둔한 적이 있었다. 이번 이회창 후보의 경우도 마치 이런 무책임하고 옹졸한 선례를 뒤따르듯 결행되었다는 점에서 유감천만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인생사가 그렇듯이 승부는 무상한 것이다. 실패를 모르고 승리만 즐길 줄 아는 사람은 훌륭한 정치가가 아니다. 무덤에 들기 전에는 아무도 인생을 승리했다거나 패배한 것으로 결론 지을 수거 없는 것이다. 오늘은 이겼다가 다음엔 패배하기도 하고, 오늘은 졌다가도 다음엔 승리하는 일이 허다하다.

설령, 내가 영원히 승리하지 못한다 해도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좌절당하지 않는 지도자야말로 훌륭한 정치가이다.
변화부쌍한 권력의 세계에 뛰어들어 결전에 임한 장수는 목숨까지도 기꺼이 버릴 용기와 각오가 있어야한다. 당장은 세상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훌륭한 정치인으로 국민들의 기억에 남는 그런 지도자를 우리는 바라고 싶다. *






2002년의 12월도 끝나간다.
세월 가는거....
나이 먹는거.... 정말루 나는 싫다.

나이 먹으면 아는것두 많구 이해심도 많아지구??얼씨구~
싫타!!그래두 난 나이 먹는거 싫타구!!
온갖 선인들의 좋은 말씸 다 들먹여두 나는 싫타구여!!!엉엉엉엉~

시냇물 같은 쪼잔한 가슴팍이 파란 동해안이 된다해도.....
너그러움이 차고,넘쳐 부처님을 닮는대두.....
또 한해가 저무는 이맘때면 우울하다,슬프다,억울하다,괴롭다.

아니 도대체 내가 뭘 했다구 일년이 휙~~ 가버리구...
아니 도대체 내가 얼마나 살았다구 벌써 40+7 이나 되는지......
귀가,코가,눈앞이~ 다 막히는구만.......

나처럼 싫다는 넘은 나이 안 먹으면 안되나??
얌죤히~사양 하구 싶은데 어쩌지?
밥 안 먹어도 배 부른것두 아니구......

알고싶다, 먹은 나이 어디 반납하는데 없는지?....
넙죽넙죽 해 만 바뀌면 나이 먹는거 정말 싫은데??ㅋㅋㅋㅋ

사람같잖게 산 이 아줌씨같은 사람은 나이를 한살씩
깎아야 되는거 아닌가?? ㅋㅋㅋㅋ
벼룩도 낯짝이 있지~
철이 안 들어 깝죽대는 나 같은 뇨자의 나이는 뺏아 가야 된다구~
어떻게 공평하게 똑같이 나눠 주시는지? 나원 참~

대신,착하고 이뿌게 산 사람들은 두어살씩 듬뿍듬뿍 주고 말이다.
그래야 빨리빨리 그 좋아들 하는 노인공경!"어른"이 될 테닌까~~~~히

아아아아~~~~~~악~
12월도 13일 남았다!

40중반에 접어드니 사람꼴이 아니,여자꼴이 영 말씀이 아니건만......
40대 초반엔 쉰살이란게 아득한 달나라 같더구만.....
나이가 쉰이 다 됐다구??
어쩌면 좋다냐......ㅋㅋㅋㅋㅋ
50이 머언~별나라가 아니구 바로 코 앞이라니??......

그래,그랬지......
어릴땐 난 "나이 많은 여자"가 되질 않을꺼다!
짧고,굵게 살다가 서른이 되면 죽으리라.......
멋지구,아름답구,짧게,치열하게 살다 서른이면 죽으리......

그래,그러구선 이 나이까지 왔지 않은가?ㅋㅋㅋㅋ
쫌 더 나이 먹어 볼까나??
골고루 사이좋게 나눠 먹는데 억울할거야 없지 않은가??

12월도 끝나 간다.......
이렇게 철이 부족해 빈혈에 시달려 헛소리만 해 대는데도
한 살 더 먹어야 하는 시간은,세월은 가는것을........
,,
,,
,,
이마에 열이 제법이네?
쉰소리,미친소리 그만하구~
약 한알 먹구~~ 나가는 정신을 챙기자,그려!!!!!~~~~~~~~


(2002.12.19. 화성여자님이 지은 글)


제16대 대통령이 선출되었습니다. 흔히들 축하한다고 말 하지만, 결코 축하할 일이 아닙니다. 엄청난 땀과 고초를 떠 넘겨받아야 하는 고난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보다 나은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를 간절히 바라는 국민의 마음을 읽을 줄 안다면, 어찌 대통령 당선을 영광으로만 여기고 좋아할 수 있겠습니까?

안일하게 임기만 무난하게 채우고 떠나는 대통령이 아니라 무언가 현재의 사회적 정치적 병폐를 무리없이 개혁해 나가는 대통령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첫째, 정치인의 귀족화 내지 귀족정치를 고쳐야 합니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를 한다면서 근래 우리정치는 개인 영달의 도구로 변질되어왔습니다. 국회의원이나 하다못해 지방의회까지도 사회적 출세 영달의 길로 변질되면서 봉사하는 민주정치가 아닌,신관료주의로 정착한 느낌입니다.
모든 공직자는 국민을 위한 진정한 희생 봉사자로 돌아가야 합니다.

둘째, 청치가 치부의 수단으로 부패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일체 선거의 공영제를 실시하여 선거비용을 줄이고, 청치자금 모집이나 재벌 헌금도 근절하지 않으면 정경유착이나 부패정치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현재의 틀을 깨야 합니다.

셋째, 청치인의 청렴성을 뿌리내려야 합니다. 재물 욕심 나는 사람은 사업을 하고 정계로 들어오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처럼 정치인이 수십억 정치자금을 떡고물 처럼 주무르는 세상엔 결코 부패 권력은 근절되지 않을 것입니다.


끝으로 , 성장도 중요하지만 다수 대중의 생활향상을 위한 분배정책에 더 큰 관심을 기우려 주기 바랍니다. 국민은 어제의 마음이 어쨌던 지금 부터 한마음으로 새 대통령을 충심으로 성원하여 21세기 우리의
자유와 행복과 평화를 다져 나갑시다.*


인식(認識)의 한계(限界)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몇 퍼센트나 진실이며 얼마나 정확할까? 나의 인생관, 가치관, 국가관은 과연 올바른 것인가? 내가 신봉하는 종교의 경전과 교리와 교주에 대한 과대평가와 과대포장은 없는 것일까? 내가 믿는 이념에 과연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허상은 없는 것일까?

우리가 지성인이라면 자기 종교, 자기 민족과 국가, 자기 이념이 과연 올바르고 정확한 것인지 한번 쯤 객관적으로 심사숙고해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종의 한계
민족과 국가의 한계
종교의 한계
이념의 한계를 벗어나서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평소에 보고 듣고 배운 것 외에는 새로운 정보와 지식에 대하여 배타적인 인식의 한계에 둘러싸인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한 청년이 있어 제아무리 자본주의를 선호한다할지라도 만일 저가 북한에 태어 났더라면 소리 높여 공산주의를 찬양할 것이 아니겠는가?

나의 고향마을은 매우 시골이었는데도 어린 코흘리개 시절에 내가 아는 것은 오직 그 마을뿐으로 이 세상의 중심지 정도나 되는 줄로 알았었다. 그런데 여덟 살 때인가 엄마의 손을 잡고 논산 읍내를 가보니 거기에는 평소에 보지 못했던 건물과 사람들이 많은 거리가 있고 자동차가 있고 기차가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그놈의 화장실 문을 여는 방법을 몰라서 한참동안 갇혀있다 엉엉 울기도 했지만 아무튼 논산의 모습은 내게는 그때까지 겪어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였던 것이다. 나의 인식의 한계가 확장되기 시작한 셈이다.

나는 젊은 시절부터 교회에 다니면서도 이런저런 갈등이 많았는데 20 세기의 석학이라는 토인비는 과연 기독교를 어떻게 보는지 알아 보기로 큰 마음을 먹고는 서점에 가서 그가 지은 세계사(부제-인류와 어머니 되는 지구)를 구입하여 그 두툼한 책을 단숨에 읽어 내린 적이 있었다. 오래전 일로 내용은 거의 모두 잊어 버렸지만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 나의 종교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준 구절이 하나가 있다.

기독교는 모든 일을 성경을 통하여 해석하려고 하지만 이 세상에는 성경으로 해석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 토인비의 견해였다. 아 ! 토인비는 기독교를 그렇게 보고 있구나! 그 후 나의 인식은 교회의 담을 넘어 다른 종교에 대하여 배타적인 마음은 갖지 않게 되었으니 다행으로 생각한다.

나는 이력서를 쓸 때면 취미와 특기란 에서 한참동안 펜을 움직이지 못하는 주변머리가 없는 사람이면서도 마음속은 온갖 세상 염려와 근심으로 항상 복잡하다. 그러니 스트레스가 쌓이고 병이 날 수 밖에 더 있으랴 ! 몇 년 전부터 건강에 이상 신호가 오더니 급기야는 운명의 여신으로부터 커다란 선물(?)을 받았다. 그래서 투병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 인식의 일대 전환을 시도하여 즐겁게 생활해 보리라고 혼자서 단단히 다짐을 했다. 헬스도하고, 등산도 하고, 카페에 가서 맥주도 마셔보고, 여자친구도 사귀고, 근무도 더 열심히 했다. 가정생활도 더 충실히 하며 어휴 ! 바쁘게 되었다. 그동안 철옹성같이 사수해오던 원리원칙 주의의 인생관, 가치관을 좀 수정하여 사물을 자유롭게 인식하자는 것이 요즘 나의 주장이다.

우리는 과거의 일제침략과 6.25 전쟁시 미군의 양민학살에 대해서는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면서도 월남파병시의 우리의 과오에 대한 반성은 거의 없음을 본다. 물론, 이 말은 국가의 부름에 따라 만리타국의 전선에서 순직한 영령들의 희생을 폄하하고자 함이 아니다. 월남전은 프랑스의 식민지배로부터 해방하려는 월남민족의 독립전쟁으로서 프랑스와 바톤터치를 한 미국이 개입했다가 결국은 패전한 무모한 전쟁에 우리도 말려들게 된 것이다. 민족이나 국가의 한계를 초월하여 생각해볼 때 우리도 우리의 잘못을 월남민족에게 사과하고 보상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요즘 붐을 이루고 있는 한류(韓流)문화를 들고 떳떳하게 월남으로 갈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가끔 언론을 통하여 북한의 소식을 들으면서 나는 남한에 태어난 것을 천만다행으로 생각한다. 사회체제는 붕괴되고 식량과 물자의 부족으로 2000만 동포들을 생지옥으로 몰아 넣고 있는 북한의 지도자들을 보며 공산주의에 의식화되고 인식의 한계에 사로잡힌 무리들이 얼마나 끔찍한가를 배운다. 오래전에 캄보디아의 공산혁명을 소재로 한 영화 킬링필드의 장면 중에서 총칼을 든 나이 어린 아이들의 모습 또한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나는 어릴 적에 미국의 서부개척 영화를 보면서 징그럽게 생긴 인디언들이야말로 악마의 화신쯤으로 알았었다. 그런데 지금 한번 생각해 보자. 이루 헤아릴 수없이 많은 아무런 죄도 없는 인디언들이 소위 개척자, 민주주의의 선봉, 정의와 인권의 주창자이며 사랑의 기독교를 주로 믿는 미국인들에 의거 참혹하게 멸족을 당한 역사의 가슴 아픈 뒤안길을! 어려서 듣고 배운 미국에 대한 무조건 좋은 나라로서의 인식의 한계를 벗어 났기에 이런 비판이 가능할 것이다.

지금도 무소불위 최강의 미국이 테러조직의 소탕을 위하여 지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 아프카니스탄에 항공모함과 폭격기에 정의의 폭탄을 가득 싣고가서 쏟아 붓고 있지만, 생각해보라 과연 무엇이 정의인가를 ! 2000년 동안 아니 창세 이래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땅을 이스라엘에게 빼앗기고 난민이 되어 떠돌아야 하는 팔레스타인 민족의 억울함을 풀어 줄 정의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힘이 없으면 흑인노예처럼, 인디언처럼, 태즈메이니아인처럼, 팔레스타인처럼, 일제 하의 한민족처럼, 나치하의 유대인처럼, 영국 지배하의 인도인처럼 살아야 한다면 과연 정의의 기준은 무엇인가 ?

중동 이슬람 문명권의 지도자들이나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의 지도자들이 모두 참다운 지성인들이라면 21세기 초두의 인류를 테러의 공포와 전쟁의 함정으로 몰고 가서는 아니 될 것이다. 아랍민족을 적으로 보는 인식에서 일대 전환을 하여 팔레스타인의 한을 풀어주는데 서방국가는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며 배고프고 고달픈 생활을 하는 저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지 않고서는 중동의 문제는 해결이 요원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소리 없이 억누르고 있는 인식의 한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물을 인식을 할 수 있을 때 자기 자신은 물론 상대방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으며 민족, 종교, 이념 간에 상호갈등을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인식의 한계를 핑계 삼아 불가사의로 묻어 두려는 것들이 있다. 고대문명의 흔적들과 UFO 에 관한 정보들이 바로 그렇다. 나는 누가 뭐라고 해도 고대 문명과 UFO 의 실체를 믿는다. 지구상에서 고대에 현 인류 이외의 문명이 존재했었고 지금도 인류 외에 어느 행성에 다른 고도의 문명체가 있어 인류와 교류를 한다고 생각 해보자. 지금까지의 인생관, 가치관, 종교관, 내세관 ~~~ 그야말로 우리의 인식체계가 완전히 뒤바뀌어야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혹시 특정한 정보기관들이 이런 저런 사유로 UFO 실체를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우리들의 인식의 한계가 우주 끝까지 확장되기를 기다리면서......,

잠실 베레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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