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을 자세히 보면 온통 상처투성이다, 다들 그 많은 상처가 생기게된 연유를 묻곤 하지만 나는 항상 (어릴 때...)하고 얼버무리고 만다, 하지만 세밀히 살펴보면 피부에 언뜻언뜻 묻혀있는 반점이 이빨 자국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그것은 모두 하나뿐인 여동생 빵숙이에게 물린 상처이다,
"오빠가 얼마나 못났으면..." 하고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실제로 난 못났고 졸장부이다, 빵숙이는 상당히 호전적이고 강압적인데 반해 난 타협적이고 복종적이며, 빵숙이는 우람한 덩치와 파워를 가졌는데 난 작고 약했으며, 그녀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옹고집을 철저히 물려받았는데 난 그렇지 못했으니, 싸움을 하면 지는 건 당연지사라 생각된다,
먹을 것이 생기면 엄마는 언제나 둘의 몫을 똑 같이 갈라준다, 빵숙이는 내 것이 많니 크니 하면서 바쁘게 먹어댄다, 눈 깜짝할 새 게눈 감추듯 흔적도 없이 먹어치우곤, 갖은 애교(?), 아양, 협박을 하면서 내 몫을 반 이상 뺏어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또 먹는 것이라면 칠야의 어둡고 차가운 밤이나, 장대같이 쏟아지는 우중을 뚫고서라도 기필코 사오는 열의를 보였고, 손님이 와서 (누가 동생이지?)하면 나의 어깨를 솥뚜껑 같은 손으로 쿡 찍으면서 (얘가 동생이고 제가 누나예요)하며 아주 능청스럽고도 노숙하게 대답한다,
나는 빵숙이가 치마 입은 모습을 한번도 본적이 없다, 활동적인 성격이 맞지 않아 선지? 여자 애들이 하는 공기 줍기나 고무줄넘기 보다는 딱지치기와 구슬치기, 특히 말타기에 아주 흥미가 있었다,
그래서 꼭 사내애들이 노는데 와선 끼워달라고 떼를 쓴다, 안 끼워주면 훼방을 놓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끼워준다, 이때부터 이건 독무대에서 리사이틀이나 하듯 냅다 괴성을 질러대며 그 삼겹살 덩이가 (붕~)뛰어 올라 탈 때는 짬뽕(말이 찌그러짐) 안 되는 얘가 없었다,
먼저 빵숙이의 살벌한 이빨과 찬란한 전적을 소개하고 넘어가야겠다, 첫째 입이 얼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엄청나다, 엄마가 빵숙이를 낳고 나서 얼굴을 보니 얼굴 전체가 입이라 (내가 사람을 낳았나? 새 새끼를 낳았나?) 생각이 들었다나?^^ 아무튼 빵 한 개가 아무 저항 없이 쑥! 들어간다고 빵숙이란 별명을 지어주었다,
대문니는 안으로 살짝 들어간 듯하며 날카롭기가 끌과 같고, 좌우의 송곳니는 아연도 박판을 쉽게 맞창을 낼 정도로 좀 과장해서 물렸다! 하면 살점이 덜렁덜렁해진다,^^ 또 그 강인한 이빨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인지? 용돈만 타면 그 먼 학교 앞 가게까지 쫓아가 먼지 앉고 말라비틀어진 오징어 다리를 사 먹었다,
빵숙이의 전성기에는 골목대장인 석이를 몇 차례 넉 아웃 시켜 끝내 이사를 가게끔 만들었으며, 우리 집 강아지를 물었다는 죄목으로 옆집 불독을 이빨 대 이빨로 맞붙어 조져버렸다,
더욱이 거지가 와서 행패라도 부리면 총알같이 날아가 개 대신 이빨 자국을 선사했고, 동네 애들이 구슬치기하면 빗자루로 몽땅 쓸어가도 누구하나 나서서 (내놔라!)하는 애가 감히 없었다, 심지어는 빵숙이네 담임선생님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뭐죠?)하니까 (빵숙입니다!)하는 소리가 나왔을 정도니 그야말로 이빨 하나로 온 동네를 제패한 실력자임엔 두말할 여지가 없다,
이러한 빵숙이의 행패에 엄마는 손이 발이 되게 빌고 다니기에 바빴고, 아무리 때리고 타이르고 했지만 막무가내였다, 조금만 수틀리면 얼굴이고 뭐고 닥치는 대로 물어뜯는 빵숙이의 제물인 나는... 그 더운 여름날 섧디 섧게 울면서 상처에서 흐르는 진물에 달라붙으려는 파리를 쫓기에 이력이 났었다, "오라비가 만날 동생에게 당해서 되겠냐!"하며 집에서 나를 태권도 도장에 보냈다,
빵숙이로 인해 시작하고 그로 인해 끝냈지만 호신술이란 기본이념은 망각한 채 오로지 빵숙이를 뚜드려 잡겠다는 일념 하에 비지땀 퍽퍽! 쏟으며 열심히 수련했다, 두 달 정도 수련을 받고 청띠를 매고 보니 다리도 한창 풀리고, 몸이 근질근질 하던 차! 빵숙이와 일전을 겨루게 되었다, 방청소를 하다가 농 밑에서 연필이 한 자루 굴러 나왔다, 분명히 내 것인데 자기가 주웠으니 자기 거라며 우긴다, 평소 같으면 당연히 뺏기는데 태권도가 참질 못했다,
(너 오늘 잘~걸렸다, 오라비의 태권도 맛 좀 봐라!) 하며 신속하고도 절도 있게 딸딸이 전굴 자세를 취하며 (얍!) 기합을 넣었다, 빵숙이는 물어뜯으려다 상대가 예상외로 대차게 나오자 멈칫하더니 앙증스럽게 웃으며 (놀구 자빠졌어야~)하며 내 팔을 낚아챘다, 그 순간 (으라챠챠!) 좌회전 돌려차기로 빵숙이의 턱을 정확하게 가격했다,
실제로는 힘없이 갖다 붙인 상태였는데 그녀는 잽싸게 나의 거시기(낭심)를 꽉! 물어 버렸다, (엄마! 나죽어!) 하며 움켜쥐고 팔짝팔짝 뛰다가 뒹굴자, 비명소리에 달려온 엄마는 황급히 바지를 벗겨 내리고 감자 두개의 이상유무를 확인 또 확인 한참을 살피곤 안도의 긴 한숨을 쉬더니 (이년이 집안의 대를 끊을 년이네? 혼 좀 나봐랏!)하며 멀뚱하게 서있던 빵숙이의 종아리를 사정없이 때렸다,
하지만 고집대로 잘못했다는 말 한마디 없이 계속 맞고만 있다가 연방 날아오는 회초리 (앙~)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그 완 반대로 난 아픈 것도 잊어버리고 만면에 미소를 가득 머금고 번듯이 드러누워 나의 천적인 빵숙이의 괴로움을 즐기며 황홀경에 도취되어 가고있는 찰나!
(야 이XXX야! 너는 뭘 잘했다고 웃어!)하며 빵숙이의 육중한 몸이 내 얼굴을 덮친다 난 완강히 바동거리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역부족이다, 목덜미를 콱! 무는 순간 내 몸에서 피가 빨려 나가는 느낌과 함께 의식이 희미해져간다, (아- 드디어 나도 천당엘 가는구나? 근디...우째 천당엘 가도 피 빨려 죽으면서 가냐?) 하며 쓸쓸히 죽어 가는 것까지는 생각이 나는데...
몸서리치는 한기에 얼마 뒤 깨어보니 염라대왕이 아닌 엄마의 걱정스런 얼굴이 클로즈업 되어온다, (어 이상하다? 난 분명히 드라큘라에게 물려 죽었는데...)중얼거리자 엄마는 이마의 땀을 닦아주며 (또 그 소리야 이 세상엔 드라큘라가 없다니 깐! 너무 놀래서 헛것을 본 게야) 오라비의 흰창만 남은 눈과 게거품을 보각보각! 내는걸 본 후 빵숙이의 무시무시한 무는 버릇이 없어졌지만 근40년이 지난 지금도 어쩌다 보이는 그녀의 이빨을 보면 섬뜩해진다, 그 당시 노이로제가 상당히 심했나보다,
2. 나의 역전기
여동생이 있는 사람이 부럽다고요? 또 여동생이 귀엽다고요? 하기사 사람에 따라 경우에 따라 그런 분도 있겠지요, 그러나 저는 전혀 입니다, 오히려 왠쑤덩어린 걸요,
초등 학교 졸업 때까지 고양이 앞에 쥐 신세로 줄창 물어뜯기고, 허구헌날 얻어터져 눈탱이 밤탱이 되는디 그게 왠쑤지 동생인감유? 중학교 1학년 때! 빵숙이와 또 일전을 치르게 되었다, 모든 싸움이 그렇듯 기선제압이 승패의 50%를 차지하는데 그날도 (너 이년!) 고함은 질러놨으나, 가소롭다는 듯 차가운 미소 사이로 보이는 그녀의 이빨을 보는 순간 (오매 기죽어~~) 뭐랄까? 외나무다리에서 호랑이를 만난 개처럼 내 꽁지가 뱃가죽 밑으로 찰싹 달라붙은 듯한 느낌과 함께 오금이 저려왔다,
난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자신에게 최면을 건다(이러면 안돼! 무서워하지마! 이길 수 있어!)하는 순간 (짜샤 죽을래?)하며 내 팔을 낚아채는 빵숙이의 머리를 밀쳐내며 (엄마야!!!) 밖으로 도망쳤다,
엄마가 달려오시더니 나의 공포에 질린 모습과 빵숙이의 헝클어진 쑥대머리 사이로 번득이는 눈과 이빨을 보더니 (아이쿠 몬 산다 몬 살아! 저기 인간이가? 짐승이지! 쯧쯧) 내 손에 빗자루를 쥐어주며 당부한다, (니 오늘 저년 꼭 잡아라!)하며 둘을 방안으로 밀어 넣고 문을 닫아버렸다, 나를 향해 댓쉬하는 빵숙이를 빗자루 몽디가 부러지도록 패고 또 팼다, 코에 맞았는지? 코피가 흐른다? (어? 코피가...)
닦아 줄려고 다가가는 순간 잽싸게 나의 어깨 죽지를 물어버렸다 (어~엄마 나죽어!)비명소리에 창문으로 지켜보던 엄마가 쏜살같이 들어와 빵숙이의 머리채를 낚아채어 벽으로 패대기쳤다, 난 물린 어깨를 문지르며 (아이쿠 아파라~~) 울고 있는데, 그녀는 울지도 않고 지 이빨로 물어뜯은 나의 러닝 셔츠의 쪼가리를 물고 (으르릉)거리고 있다, 어느새 코피는 멎은 것 같다,
엄마는 귓속말로(니 오늘 저년을 잡지 못하면 평생 고생한다, 내가 있으니 걱정 말고 싸워라!)하곤 나가면서 빵숙이의 대가릴 사정없이 쥐어박으며 (꼴 좋다 이년아! 어데 감히 오라비를 이길려구) (자 이제 2라운드다 땡!)하며 문을 닫고 나갔다, 난 지금까지의 공격 패턴을 바꿔 중앙에서 싸우면 불리할 것 같아 방구석 코너에 등을 붙이고 싸우기로 했다,
그녀가 다가오면 빗자루론 얼굴을, 발로는 배를 공격한다는 계산인데 역시 막강한 파워를 앞세운 육탄공격이 들어온다, 잡히면 끝장난다! 란 각오로 죽을힘을 다해 계속 때리고 차고 하는데... 배를 차여 (욱! 욱!)거리면서도 탱크처럼 밀고 들어와 내가 잡혀버렸다, 그리고 둘은 안은 채로 넘어졌다, (큰일났다!) 난 딸리는 힘이지만 빵숙이의 머리를 힘껏 밀며 버둥댄다, 아~ 저 날카로운 이빨이 푸른빛을 내며 나의 연한 살점을 노린다,
그 와중에도 잔머리를 굴린다 (뭐 좋은 수가 없을까?) 마침 일이 될려니 방바닥에 굴러다니던 고무 야구공이 보인다 (맞아 바로 저거야!) 한쪽 팔을 빼며 고무공을 쥐었다, 그 틈에 빵숙이의 이빨에 내 목까지 바싹 다가왔다, 순간 젖 먹던 힘을 다해 (에라이 요년아, 이거나 먹어라!)하며 그녀의 그 큰 아가리 속에 쑤셔 넣어버렸다, (에 켁켁켁) 불시에 일격을 받은 빵숙이는 공을 빼내려고 나를 풀어준 순간 잽싸게 일어나 엉덩이를 발로 걷어찬다,
일어나려면 차고 또 차니 일어나는 걸 포기하고 공을 빼내려니 꽉 끼어 빠지질 않는다, 갑자기 애가 조용하다 왜 저러지? 입에 박힌 고무공에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엄마! 빵숙이가!) 엄마가 보더니 칼을 가져와 공을 찢어 바람을 뺀 후 끄집어내고 등을 토닥거리자 (휴~) 긴 한숨을 쉬더니 늘어져 버렸다,
그 사건 이후로 빵숙이의 공포에서 완전히 벗어나 내 생명을 유지할 수 있었고, 빵숙이가 상당히 고분고분해졌다.
거대한 몸체위에 놓여진 작은 티클같은 존재로 오늘을 납니다. 사라져간 많은 것들을 기억해 내려 안간 힘을 씁니다. 바람으로도 그 흔적들은 찾을 수 없습니다. 아주 작은 흙 먼지 속에서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다만 아스라히 남은 기억속에 잠겨있던 걸 꺼내려하지만 또렸하지가 않아요. 지나온 삶의 편린들이 되돌아 갈수 없는 영역에서 나를 부름니다. 다만 기억으로요. 그래서 거울 앞에 서 봅니다. 잃어버린 것들을 찾으려고요.
내가 스치고 지나온 많은 일들과 많은 것들을 찾으려 마음에 여행을 가끔 가지요. 신이시여! 나를 이 곳에 오도록 배려하신 신이시여! 어쩌면 방치되어 있다고 생각하며 외로워할 때가 더 많았나이다. 마음의 밭에서 자라는 나무처럼 생각은 꽃도 피웠다가 열매를 맺기도하고 더러는 병충해를 입고 고사하기도하고,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눕기도 하지요. 때론 폭풍우에 뽑혀 뿌리채 말라 비틀어져 죽어 버리기도하고요. 참으로 많은 변화와 곡절도 많았던 세월인 것 같습니다. 남기는 것은 내가 만들어 낸 상처 뿐. 그러나 그 흉터를 볼 수 있는 것도 납니다. 나만이 갖고 있는 내 거울에만 있는 흉터들 ㅡ
낡은 쇠를 용광로에 넣어 다시 새 쇠를 만들어 내듯. 가끔은 자신을 불 속에 쳐넣기를 마다하지않는 사람들이 있기도하지요. 쇠가 녹을 때 불순물은 모두 타버리거나 증발하여 순수한 것만 남아 새로운 탄생을 하듯이 우리에 삶도 때론 그렇기를 원합니다. 신이시여! 생명을 무엇이라 정의하시나요? 살아 움직이는 것입니까? 느낄 수 있는 마음입니까? 아니면 둘을 합하여야합니까?
바람이 불어 내 살갗을 스치고 지나갑니다. 그렇듯 내 살아온 모든 것들이 내 흔적이 지구의 어느 모퉁이를 스침니까? 그 것이 내 삶이였습니까? 생각은 어디에 머뭄니까? 흘러지나가 버린 것입니까? 지난 번 긴 장문에 연서 속에 당신께 바치는 내용이 많이 젖어 있습니다. 신이시여! 보셨나이까? 보셨나이까? 당신은 아시지요? 당신만은 아시지요? 아직도 당신께 다 못한 한이 있습니다. 신이시여! 당신은 아직 내 영혼에 한을 남겨놓으셨습니다. 당신은 이세상에 나를 내려 놓으시는 것이 아니였습니다. 왜냐고요? 뿌리 뽑지 못한 한을 아직 남겨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내 한에 뿌리를 뽑겨하여 주소서, 내 손과 내 마음으로 하여금 뽑아내게하여 주소서.
다만 이렇게 나를 내 속에 머물러 나를 드려다 볼 수 있게 시간을 할애하여주신 점에 대하여는 깊이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 깊은 바닥까지 샅샅이 뒤집어 볼수있을 때까지 시간을 주소서. 잃어버린 것을 찾을 때까지ㅡ
신이시여 궁국에는 사랑이라는 것은 압니다. 그러나 그 것이라는 추상적인 알음보다 내 것을 만들어 내고싶습니다. 그걸 알아내라 이곳에 내려 놓으셨지않았나요? 창조라는 물음에 해답은 사랑이라는 해답집에서 답을 외워 답안지에 쓰는 그런 사람 보다는 그 해답을 얻어내어 쓰는 진정한 답안지를 쓰고 싶습니다.
훈련기간에 마지막 대화가 되겠구나. 보내준 사진을보니 너의 번듯해진 자세가 흐믓하구나. 햇볕에 그을린 모습도 건장해 보이고... 한껏 자세를 잡아 본 모습인지는 몰라도 늙어 꼬부러 지도록 그런 자세가 필요하단다. 욕심을 부린다면 긴장하지 않아도 더 자연스럽게 반듯한 자세를 평생 유지하길 바란다.
훈련 시 죽이도록 밉게 앞뒤에서 독려하는 조교들은 너의 트레이너 일뿐 너를 해하지 않는다. 그들은 너의 극기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지시에 의하여 너를 단련시킬뿐이다.
그러나 네가 살아갈 세상의 도처엔 스스로 극복하지않으면 너를 함락시켜 좌절시키고 너를 파멸시킬 수 있는 복병이 도사리고 있단다.
한시적으로 마음껏 충족시키지 못하는 한끼의 식사나 시원한 물 한모금의 의미는 상대적으로 큰 의미가 있음을 깨닫기 바란다. 지금 훈련병은 모두 함께 훈련동안만 통제되지만 자유 경쟁의 사회의 일원이 되었을때 .... 일부사람이 하는것을 너의 능력부족으로 성취하지 못할때의 참담함을 꼭 상기하기 바란다.
훈련을 통하여 많은것을 느끼고 배웠다니 고맙다. 지금 너에게 공부하기 위한 시간이 절실하다는 생각은 훈련소 퇴소시 국방부에 반납하지도 말고 빛바래 퇴색되지도 잊어먹지도 말길 바란다.
그리고 네가 원하는 특기와 자대 배치는 잘 될것이다. 걱정하지 말고 지금 훈련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도록... 그러나 너의 필체 때문에 또 서러움 당할 것이다.
늦었지만 매사에 준비없는 영광은 없다는 것을 명심해라.
이제 본격적인 마무리 훈련을 통해 더욱 강건해져서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길 바란다. 배달되는 시간을 배려하면 시간이 촉박한것 같아 하고픈말 총총 줄인다.
몸과 마음 모두가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쉬는 것만이 약'이라는 의사의 권고가 아니라도 쉬고 싶었다
직업상 책을 많이 읽어야함에 얼마나 가슴 설레였던가? 그러나 두 달에 오십여권의 책을 읽고 분석해야 하는 금년의 방학 준비 과정은 나를 두 번이나 응급실 신세를 지게했다.
15년이라는 세월에 방학 때면 의례히 거치는 행사였고 읽어야 할 책을 책상에 수북히 쌓아놓고 흥분마져 느끼지 않았던가?
한 권 한 권 읽으며 읽은 책을 옆으로 치울 때. 어느덧 읽은 책이 안 읽은 책보다 많아질 때 건방지게 지적 자부심까지 느끼지 않았던가?
그런데 금년은 달랐다. '오월에 오월에 뻐꾸기가 울었다'는 왜 이리도 내용이 우중충 한가? 다른 때 같으면 '무겁긴 하지만 깊이가 있네.'했을텐 데. 내가 선정한 아니 특히 각 중등학교 필독 도서가 왜 이리 내용이 무거울까? 불평이 늘어났다.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시골에서 나를 기다리는 남편과 시댁이었다. 나의 휴가는 시댁에 들려 어른들께 용돈 드리고 모시고 바닷가 고향 돌아보고 농사 짓는 남편에게 가서 돌아오는 날은 손이 달달 떨려 운전을 하기 힘들 정도로 실수 투성이인 농사 일 돕는 그런거였다.
학생들 방학이 다가오자 남편과 시댁 형님은 나의 휴가 날짜를 확인한다. 시아버님도 시누이도 나의 의무에 익숙해져 있었다.
반란! 이제는 반란이다. 나도 나를 찾아야겠다 바닷가 콘도를 예약해 놓고 휴가를 기다리는 막내에게 전화를 했다.
"야! 너 그 콘도 나에게 양보해라."
전화 저쪽에서 놀라고 있을 막내의 표정이 떠 올랐다. 평소의 엄마가 아니였을테니까. 그것도 한창 성수기에 온천으로 바꿔놓으라고 했으니... 늘 같은 모습으로 나의 세상살이를 들어주시는 수녀님께도 전화를 드렸다.
쉬고 싶다고...
이렇게 나의 반란은 시작이 되었고 반란에 동참할 동지까지 모였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금년 휴가는 좀 쉬어야겠습니다."
온천으로 수도원으로 간다는 나의 비장한 선언에 시댁에서는 볼멘 목소리만이 들려왔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쩔꺼야.이혼할꺼야?"
친구! 영화 '친구'는 관람을 하지 않았지만 나의 친구만은 못 하리라. 지칠대로 지쳐 온 몸이 늘어져 버린 나를 친구는 싣고 수안보로 달려주었다.
"나 쉬고 싶어.수안보 가자." "그래? 가지 뭐."
우리에겐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하지 않았다. 늘 골골대던 한 친구는 지친 나를 보며 씩씩한 척 해주었다. 떠나던 날 아침에는 서울 지역에 호우경보가 내려져 있었다. 앞이 안 보일 정도의 세찬 빗 속을 친구는 농담까지 하며 운전을 하고 있었다. 친구들은 나의 반란에 놀라기도 하며 때론 안쓰러워 하기도 잠시 옛 얘기에 빠져들 땐 차를 갓길에 세우고 웃어야 할 정도로 즐거웠다.
2박3일의 온천 휴가는 날씨마져 우리 편이었다. 가는 곳마다 활짝 개인 날씨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곳곳마다 물난리 소식인데 비는 우리 뒤만 따라오는 듯 했다. 수안보의 온천에 몸을 담그고 문경새재 골짜기의 물에 발을 담그고 보낸 휴가는 지친 나에게 새로운 힘을 주었다.
이젠 힘들다고 불평하지 않으리라.
나의 반란에 선뜻 응해주는 친구들이 있는... 에미의 요구에 한 마디 질문도 없이 인터넷 앞에 붙어앉아 여행 일정을 맞추어 주고, 예쁜 옷도 사주고, 몰래 통장에 여행비도 입금 시켜주는 자식들이 있는데...
바다가 훤히 보이는 마산의 수도원으로 안내하여 마음을 씻게 해주시는 고마운 분들이 있는데...
가끔은 우리 나이가 국화 꽃같은 나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그윽한 향기로 온 방안을 채울 수 있는 나이. 들녁 언덕에 노랗게 피어있으면 금방 닥아가고 싶은 나이, 바라만 보아도 향기를 느낄 수 있는 나이.
헌데 가끔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은 꽃이여!'를 잊지 못하기도합니다. 그래 지금 쯤은 거울 앞에 선 나이가 우리 나이 쯤이 아닌가? 생각하기도하고요.
거울 앞에 서면 나는 어디로 가고 늙은이가 떡 버티고는 비켜주지를 않아요.
비켜!
날 좀 보려 거울을 보는데 왜 방해를 하는 거지요? 소리를 지르고, 발을 구르기도 해 보지만 이 늙은이 고집이 얼마나 쎈지 비켜 줄 생각을 않아요. 왼쪽으로 가면 왼쪽으로, 오른 쪽으로 얼른 못 따라 올만큼 빨리가도 또 오른 쪽으로 나보다 먼저 와 있으니 속 상해 죽겠습니다.
누구 이 늙은이 말려 줄 사람 없나요? 내 앞에서 잠시라도 거울 보는 것 방해하지 못하게 꼭 붙들어서 비켜서게 해 주시면 후사하겠습니다.
어젠 꼭 생살을 뜯기는 아픔이 얼얼하데요.
한 녀석만 더 있어도 다음에는 잘 치루겠는데...... 녀석이 손을 잡고 걸어들어가면서도 빙그시 웃는 것이 왜 그리도 얄미운지요? 도적 놈은 주례 앞에 서서 허옇게 질려있고요. 내, 눈 똑바로 뜨고 도적놈을 쏘아 보니 질렸나? 그래도 깊히 고개를 숙이고 달라는 데 아니 줄 수 없더라고요.
그렇게 하기로하고 사람들을 모아 놓았으니,
'못 줘! 아까워서 못 주겠다.' 하지도 못하고 냉큼 줘 버리고 털썩 앉는데 그 놈에 의자가 다리라도 부러져라 해도 그런 걸 알았는지 의자 만드는 사람이 좀 튼튼하게 만들었나봐요.
젠장 의자라도 좀 부실하게 만들지, 의자 다리라도 부러지면 그래서 무효하자고 할 수 라도 있으련만.........
끝나는 순서에서 두 녀석들이 신부 측 부모에게 먼저 인사를 하데요. 일어 서서 두 녀석을 함께 끌어 안아 기여이 싱글 거리는 녀석들 울려놓고서야 괜한 내 심술보가 조금, 아주 쪼오끔 풀릴 듯 말 듯하데요.
이그, 이그, 부글거리는 속이 두 녀석들 머리통이라도 쥐어 박고 싶은 속이 꼭 생살을 뜯어 내는 것처럼 아프기도하고 상하기도하고 젠장이더라고요, 젠장, 젠장.
아직도 속이 부글거리는 것은 왠 일이지요? 싱가폴에 도착했다고 전화가 왔는데도 건성으로,
'좋냐?' '예, 아주 좋아요!' ㅡ좋기도 하겠다.ㅡ '그래, 즐겁게 지내라!' 입에서는 이런 말이 나오고. 으유, 속 상해, 속 상해ㅡ
어제 뵈온 세분 감사드립니다. 상상에 모습과 꼭 닮으신 모습에 저 놀랐답니다. 아름답고 성실한 모습에 감탄했답니다. 바쁘신 시간을 할해하여 주신 점도 감사합니다. 황진이님, 연소심님, 열,마당쇠님 감사드립니다.
그득 술이 취해 청주까지 다른 이들이 제 차를 운전해오고 밤 늦은 시간에 산 속 제 굴을 찾아 들기 전에, 혼자 면소재지 노래방에서 12시가 넘도록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 것인지 노래를 부른 건지 모르게 목을 혹사시켜 따끔거린답니다.
밖을 나와 보니 눈 발이 휘날려서 첫 눈인지, 뭔지를 맞으며 굴에 도착하니 불꺼진 어둠 속에 거기까지 눈이 따라오고, 술에 취한 눈으로 눈을 바라봤답니다.
왜? 이리도 허전하답니까?
편지요! 늦 잠 잔 날에 띄움니다.
참! 죽으면 늙어야한다니까요. 고운 책 감사히 받었답니다. 많은 님들의 주옥같은 글이 가슴에 꽃처럼 실렸는데 너무도 수고하셨습니다. 많은 님들 창간 기념호를 소장하시는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휘장/Emblem 스포츠를 통한 아ㆍ태인의 화합과 장애인의 극복의지를 전통적인 한국문양으로 나타내었으며, 개최도시 부산을 상징하는 파도와 함께 역동적인 형태의 태극과 횃불을 들고 질주하는 운동선수를 형상화 하였다.
마스코트/Mascot 마스코트는 거북이를 의인화 한 것이며 귀염받는 아이 "귀동이"로 명하였다. 귀동이는 거북(龜)을 일컫기도 한다. 거북이는 강한 생명의지를 지닌 대표적인 동물로 장애인의 불굴의 재활의지와 사회참여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승리의 V자는 이 대회가 인간승리의 축제임을 말해준다.
남자 마라톤
제8회 부산 아시아태평양장애인경기대회(FG)가 7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1일 막을 내렸습니다.
엄니랑 가족들이 함께 폐막식에 갔었지요. 2부제를 실시하는 날이었음에도, 홍보부족인지 관심부족인지 홀수번호의 차들이 많아 경기장으로 가는 길은 매우 혼잡했었지요. 제 식구들이 탄 차량은 경기장내의 주차장까지 다이렉트로 들어갈 수 있는 표시판이 있었기 때문에 노모를 조금 더 편하게 모실 수가 있었습니다.
출발하기전에 넉넉하게 이른 저녁을 먹었구요. 두툼한 겨울옷을 꺼내입고 보온병에 따끈한 커피도 끓여 넣었지요. 각자의 목에는 아.태 장애인 경기의 파란문양이 들어있는 머플러를 이삐게 매었습니다. 예전 '박스코'에서 장애인 올림픽 홍보에서 몇개 얻었었거든요.
‘평등을 향한 힘찬 도전’이라는 슬로건 아래 지난달 26일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번 대회는 21세기 첫 독립국인 동티모르가 참가하는 등 순수 스포츠 축제로서 뿐 아니라 FG 사상 처음으로 각종 기록이 국제장애인경기연맹의 공식기록으로 인정받아 의미있는 대회로 평가받고 있다더군요.
이번 대회에서는 육상 역도 사격 등에서 모두 21개의 세계기록과 50여개의 페럴림픽 기록이 쏟아졌는데... 이같은 기록에도 불구하고 쌀쌀한 날씨와 시민들의 무관심으로 대회분위기가 대체로 썰렁했다는 평을 신문기사에서 읽었고,
31일까지 아시아드 주경기장을 찾은 전체 관중은 9만5000여명으로 좌석 점유율이 40%에 머물렀으며, 17개 경기장 전체 관중 누계도 32만4100여명으로 좌석 점유율이 52%에 불과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은근히 걱정이 되었지요. 칭찬하고, 격려하고, 다함께 기쁨을 나눠야할 자리가 썰렁하면 어찌하나 하구요.
그런데, 폐막식장에는 아주 많은 이들이 장애체육인과 기쁨을 나누기 위해 모여있었습니다.
저희도 자리를 찾아 앉았습니다. 2층 N66블럭의 4열 13번부터가 저의 몫 좌석이었습니다. 바로 앞으로 전광판이 있어, 노모가 어린조카까지 대동한 저의 식구들에게는 안성마춤이었지요.
이윽고 폐막식 시작을 알리는 멘트가 있었습니다.
자국의 국기를 앞세운 선수단의 입장 (비장애인의 입장보다는 느린 움직임이었지만... 그들의 입장 광경을 보는 순간부터, 저 밑바닥에서 감동이라는 씨가 심어졌습니다)
유재건 조직위원장의 폐회사, 가주오 하타다 FG연맹회장의 폐회선언 등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역대 최대 규모로 열린 이번 대회에는 40개국에서 2420명의 선수와임원이 참여해 17개 종목에서 435개의 금메달을 놓고 각축을 벌였는데... 한국은 중국에 이어 종합 2위의 성적을 거뒀고 태국과 일본, 홍콩이3, 4, 5위를 차지했지요. 이번 대회를 통해서 탄생한 스타도 적지 않았구요. 수영에서는 중국의 허준콴 선수가 6관왕에 올랐고 사격분야에서는 한국의 심재용 선수가 5관왕에 올라 대회를 더욱 빛냈답니다.
장애인 올림픽. 김동과 기쁨은 비장애인이 느끼는 것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이번 장애인 경기대회에서 제게 각인된 광경하나...
양팔이 없는 장애인의 수영경기에서 였습니다. 중국의 선수가 1위를 했었지요. 통상적으로 하는 요식행위처럼, 목에는 메달이 걸어지고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넘쳤엇지요. 꽃동이가 축하의 꽃을 들고 나왔습니다. 순간 장내가 고요해졌습니다. "저를 어쩌지..."
그는 양팔이 없는 선수입니다. 꽃을 받아들 손이 없는게지요. 그는 아무런 표정 바뀜도 없이 꽃을 입으로 받았습니다. 순간 안도의 한숨과 함께, 눈물이 나오더군요. 너무 기뻐 나오는 눈물이라서인지... 그 맛이 달디달았습니다.
이번 장애인 경기대회에서 제게 각인된 광경 둘...
금,은,동메달을 시상하는 시상대의 높이입니다. 시상대의 높낮이의 구분이 없이 모두 같았습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계단이 잇으면 장애인들이 불편해서 였다구요. 수상자중에는 휠체어 장애인도 잇으니....라구요.
물론 그런 이유도 았었을겝니다. 그러나 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평등을 향한 힘찬 도전’이라는 슬로건에 걸맞는 시상대>> 였다는 생각이었지요. 시상대에 오른 선수도 그것을 지켜보는 참가 선수도,,,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그리고 임원들이 모두 보이지 아니하는 메달 수상자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또 다른 금메달수상자는 자원봉사자이겠지요. 대회를 성공으로 이끈 이들의 활약은 그저 대단이라고 표현되기보다는 솔선수범,,,이웃사랑의 본보기였습니다. 조카녀석 XX이도 힘들었다기보다는 <감동> 그 자체였었다며, 제 자신이 신통하고 대견하다며 어른스러운 말을 하더라구요.
식후행사는 ‘사랑과 우정’을 소주제로 ‘편견과 역경이 없는 세상’, ‘서로 더불어 사는 세상’ 등을 염원하는 전 세계인들의 축하메시지가 대형 전광판을 통해 방송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이어 대회기가 다음 개최국인 말레이시아로 넘겨졌지요. 7일동안 대회를 밝혔던 성화 불꽃이 어둠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식후행사가 시작되었고, 스피커에서 <쿵따리 샤바라>가 크게 울렸습니다. 운동장 은 어둠으로 덮혔고, 정 중앙에 한 줄기 빛... 클론의 멤버 구준엽씨를 비추고 있었습니다. 간단한 인사말에 이어진,,, 왼켠으로 옮겨진 불빛사이로 강원래씨가 나타났습니다.
지난 2000년 11월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된 인기그룹 ‘클론’의 멤버 강원래씨와 부인 김송씨, 휠체어에 앉은 하반신마비 장애인, 재활을 다지는 그가 진정한 인간승리의 주인공인 각국 참가 선수들에게 희망의 이야기를 선사했습니다. 뜨거운 박수... 이어지는 박수들...
여성 장고 군무, 북 페스티벌, 리듬댄싱 등 화려한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인기가수 윤도현 밴드가 등장, 선수와 출연진, 관람객 등을 하나로 묶는 우정의 음악을 연주해 휘날레를 장식했습니다.
모든 선수들이 퇴장하고 난 후에도 저의 가족은 한동안 앉아 있었습니다. 엄니의 마음을 헤아려 가만히 앉아있었습니다. 막내가 지체장애 1급...그 사위도 지체장애 1급이니... 엄니의 마음속에는 만감이 교차했을겝니다.
참석한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대다수의 사람들이, 어떤 조건이었던지 간에, 장애인과 특별한인연이 있는 이들 이었습니다. 주로 복지재단 소속의 분들이 많더군요. 그곳에 살고 계시는 많은 이들...
그들의 땀과 눈물의 정수가 모인 곳,,, 이곳이 아시아드 주 경기장이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도우미 한 학생의 이야기로 마무리할까 합니다. 긴 글입니다만....읽어주시기를...
절영에서 옥이이모
****옥이이모 옮김****
장애인들이 오랫만에 기를 활짝 펼 기회였던 아.태장애인경기대회가 막을 내렸다. 여러가지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에는 애쓰고, 수고한 흔적이 눈으로 보이지만, 진실로 '장애인의, 장애인에 의한, 장애인을 위한' 행사였는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모든 경기에는 참석하지 못하였으나, 개막식과 폐막식에 참석하였는데 장애인이 주인공이되어 개최되는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성화 봉송과 선수선언등 몇가지를 제외하고는 식전행사와 식후행사 모두 장애인이 참석하여 표현된부분은 거의 없었다.
예를 들면, 경도 지체아의경우에는 시간이 좀 걸리기는 하지만 꾸준히 교육하면 왠만한 무용이나 율동은 충분히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운증후군의 아이들이나, 다른 장애영역도 마찬가지임. 장애특성별로 적절히 교육이 이루어지면 개성적인 내용의 율동이나 무용, 또는 다른 표현됨등을 통해 행사에 직접 참여하게 되고, 진행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일반학교의 학생들만을 식전, 식후 행사 모두에 배치시켰다는것은 분명히 지적받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되며, 아울러 행사 진행 순서지나, 안내지(브로슈어), 좌석 배치도(특히 티켓)등은 시각장애인들을 위해서 당연히 점자표기도 되어 있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쓰고있는 생활 소모품의 한가지인 샴푸와 린스에도 이 둘을 구분하기위해 점자표기가 되어있는 제품도 있는데, 하물며 장애인 대회장에 각장애 영역별로 적절하고 다양한 준비와 지원이 되어야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수화통역도 좀 어색하고 전체적으로 부자연 스러웠다. 표정이 너무 굳어있었고, 동그라미안에 있는 통역원이 너무 작게 카메라에 잡혔고, 초대 가수는 신나게 노래하는데, 수화는 너무 힘이없고, 통역이 힘이 없어보였다.
자막이 수화 통역을 가리기도 하였으며,
특히 김대중 대통령은 개막식은 국제적인 회의가 있었기에 이해하지만, 폐막식에는 당연히 참석할 줄 알았고, 참석했어야하는데 참석은 커녕 격려사 조차도 전달됨이 없었다 이것은 너무도 선수단과, 모든 장애인들에게 무례했다고 생각된다. 그럴 것 같으면 아예 장애인 경기를 하지않는 것이 애시당초 맞을 법도 하다.
그리고 무료 초대권의 의미는 무엇인가? 무료의 의미가 편안함을 가지고 부담없이 누구나 관람할 수 있게 함의 의미와 평소 소외당하는 삶을 농도짙게 살아온 장애인들에 대한 배려라는 점이라면 너무도 훌륭하다.
그러나 그 외의 더 큰 소외가 담겨 있다면 이 또한 김대중 대통령의 무례함에 동참하는 형상이라는 생각이다.
불꽃놀이는 참 아름다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 불꽃놀이 소리에 놀라서 위험을 느끼는 장애인 관랍객도 있다는 것을 살피어 행사를 준비하셨으면 하는 바램이다.
정상의 학생들이 열심히 준비함과 장애아동이나 장애인들이 함께 준비한 순서가 마련 되었더라면 개,폐막식에 참석한 장애아동의 부모님들은 참 많은 격려와 힘을 얻었을 것 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러한 귀함을 이번 행사에서는 제공하지 못했다.
"우리아이도 적절히 교육을 시키면 할 수 있겠다"는 최소한의 희망을 갖을 만한 기회를 앞으로는 꼭 주시기를 바란다.
정말 마음이 아팠던 것은 전광판에 행사 중간 중간에 보여준 평일 경기장의 관랍석이었다. 선수들의 열전하는 모습이 주였지만, 주위의 관람석은 1층 조차도 텅텅비어 있는 모습이 참 마음이 아렸다.
같은 말이라도 영어로 표현하는 말 보다는 우리나라 말로, 모국어로 표현될 때 마음에 먼저 와닿는 것이라 여겨 지는데... 전국에 장애인들이 그렇게도 없었나요? 관람석이 꽉차여 있지않음 또한 문제점이라고 생각된다.
'평등'이라는 말이 오히려 더 새롭고, 더 높고, 더 농도 짙은 장애에 대한 편견을 만들어 낸 것 같아서 애쓰고 수고하셨지만 서운하다.
그러나 진심으로 행사기간동안 여러가지 봉사로 , 따뜻한 인사로, 맞이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