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중부권 여섯고을 나들이, 블로거 팸투어 깜짝 이벤트 미션출사

 

아래 제시한 찾기 대상을 모두 찾아내면 굿 포토를 선정~~

에휴 어쩌나...덜렁대는 성격에...미션메시지를 잘 읽지도 않고 그냥 하던 습관대로 막 사진을 찍어 댔으니~

이 기회에 그런 습관들을 고쳐야겠다.  보다 더 신중하게~~

이렇게 포스팅하고보니 1박2일의 충북 중부권 여섯고을(청주, 철원, 진천, 음성, 증평, 괴산) 팸투어를 요약한 히스토리같다는 느낌...!!

(일목요연하게 나타내는 이 방법도 참 개안타!!)

 

1/찾기대상

1) 청주시 수암골 :울고있는 영지

2) 괴산군 산막이 옛길:손을 맞잡은 소나무

3)청원군 청남대: 책을 읽고있는 김대중 대통령

4) 음성군 큰바위얼굴공원 : 빌리진~♬ 팝의 황제

5) 진천군 보탑사 : 팔만대장경 영인본

6) 증평군 상그린마을 :오색빛깔 군침도는 오색떡

 

* 청주시 수암골도 비가 내렸다. 우중에 무슨 구경꾼들은 그리도 밀려드는지....인기 드라마의 힘은 위대하다. 우산쓰고 카메라 샷질은 정말 힘들다.

괴산군 산막이 옛길은 날씨 악화관계와 주차도 어렵다는 전갈에 패쓰~

보탑사로 향했으나 폭우속에 도착, 카메라에 덧옷을 입히고 사진 찍기에 애를 먹었으나 차차 날이 개었슴... 실로 천만다행!!

조각공원의 마이클잭슨을 찾는날은 구석진 14관 그나마 또 구석재기...뜨거워서 모두들 헉헉!!

비왔다가 뜨거웠다가 또 비왔다가....여름 출사 여행은 정말 다양한 날씨에 고역이다.

그래도 지나고 보니 이것 또한 지나간 추억이 되어버렸다. 벌써~~~

 

 

 

 1)청주시 수암골 :울고있는 영지

 수암골 벽화따라 골목 여행길에, 울고있는 영지를 만나다,

영지에게 좋은 친구를 그려주다.

 청주시 수암골은 sbs 드라마 카인과 아벨의 촬영지로 유명세를 띄고 산복도로 아래 수암골 마을을 그림으로 채웠다.

지금은  kbs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팔봉제과점이 있는 골목으로 드라마 시청율과 함께 인기있는 마을이 되었다. 주말이면 주차공간이 없을 정도!

팔봉제과점은 갤러리였는데 옛 시절로 거슬러가는 리모델링을 하고 정면에서 바라보이는 촌스러운 팔봉제빵점이 되었다. 옛시절의 빵 "단팥빵 ,소보루, 크림빵"이 추억의 3종 세트로 팔리는데 동이났다.

늦게야 도착한 빵을 구할 수 있었는데...아주 맛있었다.

"영지야 울지마~~맛있는 곰보빵 사줄께~~ "

  

 수암골 입구 'W 갤러리'가 제빵왕 김탁구의 '팔봉제빵점'으로 리모델링했다. (측면에 있는 공원 정저에 앉아서 바라 본 다른 모습)

 

 

 3)청원군 청남대: 책을 읽고있는 김대중 대통령

가신지 1주년~

24년전 이희호 여사와 주고 받았던 편지, '옥중서신' 을  읽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 책을 읽으며 평소 독서량이 방대하시다는 것을 알았다.  

청남대(靑南臺)는

남쪽에 있는 청와대란 이름에서 땄다고 한다. 충청북도 청원군 대청댐에 있는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의 별장이었다.

1983년 12월에 완공되었으며, 이후 계속해서 대통령들의 별장으로 이용되어 오다가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모든 관리권이 충청북도로 이관되었으며, 현재는 관광지로 이용되고 있다. 

 

 

청남대 골프장을 끼고 대청호반이 바라보이는 조깅코스에는  前 대통령들의 동상을  실제 크기에 각각의 포즈로 군데 군데 세워두었다.(上右골프장에서 右路)

 

4)음성군 큰바위얼굴 조각공원 : 빌리진~♬ 팝의 황제

미션 4/ 큰바위얼굴, 너르디 너른 조각공원 14관 제일 구석에 마이클잭슨이 숨어 있을 줄이야~ (아! 너무 더워~~)↗

 

큰바위얼굴 조각공원  충북 음성군 관성리 위치, 대리석 인물상, 돌조각 및 나무화석, 분재 전시 관람

인공적인 석상공원이라 얼핏 식상할지 모르지만 너른 조각공원안에는 호수와 숱한 돌확, 분재~ 그리고 자연이 숨쉬며 살아있었다.

공원 바로 인접한 숲에는 백로들의 서식지가 있었는데 무더위에 수많은 백로떼들은 잠시 활동을 멈추고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5) 진천군 보탑사 : 팔만대장경 영인본

 

 윤장대 [輪藏臺]란?

불교에서 경전을 넣은 책장에 축을 달아 돌릴 수 있게 만든 공예품을 말한책장의 일종으로 불교에서는 경전을 넣은 책장을 돌리면 경전을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을 쌓을 수 있다고 한다.

보탑사 3층에 올라가면 윤장대가 두 개가 있는데 이 곳 윤장대는 시선이 덜 가는 3층에 위치한지라 훼손을 우려해 돌릴 수는 없는 붙박이식으로 만들어졌다.

 

보탑사 / 통일을 염원하는 보탑사의 통일대탑.  주변 산세는 마치 연꽃잎처럼 둘러싸였고  보탑사는 마치 연꽃의 花心같이 중앙에 위치해 있었다. 

산수가 수려한 곳에 황룡사 9층목탑을 모델로 지난 96년 8월 완공한 3층목탑으로 높이는 42.71m에 이르는데 이는 14층 아파트와 맞먹는 높이이며 목탑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은 모두 29개이다.또한 강원도산 소나무를 자재로 하여 단 한 개의 못도 사용하지 않고 전통방식을 고수하여 지어졌다해

전국적으로 유명한 사찰중 한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뚝 선 보탑사는 마치 연밥처럼 보였다,.... 

더욱이 고려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보물404호인 백비(비문을 새기지 않은비)가 있는 곳으로 흥무대왕 김유신장군 탄생지와 태실, 만뢰산 산책로 등과 최근 진천군에서 조성한 생태공원까지 연결돼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썩지않는 수박/보탑사 불전에 4월초8일 올려진 수박은 그 해 동지가 되도록 썩지 않는대서 신비롭다.

 

 

 6) 증평군 상그린마을 :오색빛깔 군침도는 오색떡

 누가 누가 더 예쁜 오색떡을 만드나?

주최측 농간이란 말도 나오고 주최측 아부형 떡도 나오고... 아무튼 재미있는 시시비비속에 떡은 익어가고~

증평군 상그린 마을 오색떡 만들기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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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도자기가 충북 청주에 있는지 몰랐다. 선물로 받은 녹차 컵에 찻물을 우리는 중, 집으로 가져온 오색찰떡을 팬에 구워 함께 세팅~~

 

 

 

청정도시 충북 보은에 들렀다. 

내 기억속의 보은은 애석하게도 짧다. 대추와 수학여행을 다녀 간 속리산과 법주사 뿐이다.

신호등이 없는 도시!!

기존의 신호등이 있긴하지만 점멸등으로 바뀌었다. 신호등이 없는 유일한 도시로 거듭났다.

자연그대로 청정지대를 품고있는 관광도시 보은, 넉넉한 인심과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사람들이 살고있는 풍족한 땅 보은.

 

보은이 자랑스레 내노라하는 법주사를 품고있는 속리산 국립공원은 안 다녀 온 사람이 없을 정도다.

서울 부산 등지에서 2시간대로 접근할 수 있는 관광도시 보은....또 다른 면모의 관광지

이번 여행길에는 여태껏 알지 못했던 삼년산성에 올랐다. 

일단 삼년산성에 대해 짚고 넘어가기로 하자!

박통 정권당시 헬기를 타고 지나치며 이런 모습(항공사진)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보신 대통령은 저기를 좀 알아보라고 하셨다한다.

이후 잊혀진 듯 방치되어 있던 삼년산성이 그 덕에  면모를 드러내고 그 진가를 뒤늦게 깨달아 드디어 사적으로 73년 지정되었다.

82년 큰물이 나자 석축이 일부 물에 쓸려 내려가면서 훼손되었지만 1m 넘게 땅 속에 묻혔던 서문지의 터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연구팀은 서문지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시작되고 새로운 사실에 국제적 관심을 끌자  재 복원을 하고 급기야 뒤늦게 세계문화재유산

등록을 신청하게 되는데.......

 

 

플레이스/삼년산성
홈페이지/http://www.tourboeun.go.kr/men...
소개/사적 제 235호로 지정된 신라시대 산성
주소/충북 보은군 보은읍 어암리 산1-1
카테고리/ 문화,예술 > 문화유적 > 산성,성곽

 

삼년산성 사적 제 235호

신라 자비마립간(慈悲麻立干)13년 (470)에 축성을 시작한지 3년만에 완성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1994년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으로 지정된 대표적 석축산성으로 성의 둘레는 약 1.7km이고, 성벽의 높이는 13, 폭은 8~10m에 이른다.

 

성벽은 납작한 판돌로 한 켜는 가로로 놓고 다음 한 켜는 세로로 놓아 우물 정(井)자처럼 엇물려 쌓았다. 특히 기초를 견고히 하여 하중을 잘 견딜 수 있게 했으며, 성벽이 높은 곳은 13m에 달한다. 동서쪽 성벽은 바깥쪽에 돌을 쌓고 안쪽에 흙으로 다진 내탁외축(內托外築) 방식이며, 남북쪽은 안팎에 돌을 쌓고 그 안에 돌을 채운 내외협축(內外夾築) 방식이다. 성문터는 동서남북 4곳에 있으며, 서문터에는 너비 165㎝ 간격의 홈이 패어 있어 큰 수레가 다녔던 것으로 보인다. 7개소의 옹성(甕城)은 대개 둘레가 25m, 높이 8.3m로서 지형상 적의 접근이 쉬운 능선과 연결되는 부분에 축조했다. 수구는 서쪽 성문 옆 계곡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오각형의 수문이 동쪽 성벽에 남아 있다. 우물터는 5개소가 있었는데, 그중 아미지(蛾眉池)라는 곳이 유명하다. 이 산성에서는 삼국시대 이후 고려·조선 시대에 걸친 기와·토기 등의 유물이 발견되어 조선시대까지 줄곧 이용되었음을 증명해준다.

산성에 오르기 전 문화해설사의 도움말을 듣다.

여기서  ③아미지는 무슨 뜻이며?  ⑧남동치성, ⑪서북치성, ⑩북동치성이 보인다.

치성(雉城)은 또 뭘까? 무척 궁금했다.

 

신라 자비마립간 13년(470)에 축조되었고 소지마립간8년(486)에 3,000명을 동원 대규모 수리를 하였다 한다.

시작한지 3년만에 완공을 보아 삼년산성이라고 부르게 되었고, 신라가 서북지방로 세력을 확장하는데 전초기지로 사용되었다 한다.

이 삼년 산성은 여태껏 한 번도 함락된 적이 없으므로 옹성(=철옹성)이라고 전한다.

 

 삼년산성을 오르는 집인로에는 산봉숭아, 자두, 호두, 자귀꽃등....자연을 되살려 두어서 산성을 오르는 여행객들을 반겼다.

 

성벽은 납작한 판돌로 한 켜는 가로로 놓고 다음 한 켜는 세로로 놓아 우물 정(井)자처럼 엇물려 쌓았다. (해설사의 시연설명)

돌이 빠져도 그대로 견고하게 무너지지 않아 일부 빠지는 일이 있어도 허물어졌다가 아니라.. 튿어졌다고 한단다. 

뜨거운 날씨지만....많은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더 뜨거운 삼년산성.

 

 서문지(西門地)

 큰물로 드러난 서문터의 흔적!

 

서문의 돌 문설주로 볼 때 문은 성안에서 바깥으로 열렸다고 한다.  밖에서 안으로 미는 것 보다 방어성이 뛰어남

이런 연구결과를 일본에 가서 발표를 했는데, 일본에서는 안에서 바깥으로 문을 여는 게 자기네들만의 전통 건축양식이라고 굳게 믿고 있던 터라 아연실색!

그 이후 일본 사학자들의 이슈로 떠 올랐던 곳이 되었다 한다. 일본 사학자들의 관심이 깊어지자 우리나라는 뒤늦게 큰물로 훼손된 성을 복구하고 세계문화유산에 등록 신청을 하게 된다. 

 

 서문터에는 돌로 만들어진 문지방을 넘나드는 수레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너비 165㎝ 간격의 홈이 패어 있어 큰 수레가 다녔던 것으로 보인다.

그 당시 보통수레는 150cm정도였다 한다. 

 

삼년산성을 올라보다. 

산성을 올랐다.

한 걸음씩 올라갈 수록 한 눈에 들어오는 그 경관은 놀랍도록 점점 달라진다. 

 맨윗부분 돌출부분은 옹성이라고 한다. 성벽을 기어오르는 자들을 보기도 쉽고 활을 쏘기에 용이하게 만든 돌출형 성

  

옹성(壅城)이란 적군으로부터 성을 지키기 위하여 큰 성문 밖에 원형 또는 방형으로 쌓은 작은 성을 말한다.
성문의 주변에다 돌.벽돌을 짜임새있게 쌓으면서 적군의 침입으로부터 주성을 지키려는 목적으로 만들었다.
 성문을 보호하고 성을 튼튼히 지키기 위하여 큰 성문 밖에 원형(圓形)이나 방형(方形)으로 쌓은 작은 성.  ▼


 

옹성의 위용! 

 세계인들의 관심이 몰리자 큰비에 쓸려나간 성터를 재복원하기 시작했다 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석축산성으로 둘레 1,680m, 최고높이 22m, 폭 8~10m에 이르며,
동서남북 4개소에 문지와 다수의 건물터가 남아있고, 산성 인접지역에 대규모 고분군이 분포하고 있다.

 폭 8~10m로 웬만한 도로만하다.

 보은시가지가 멀리 내려다 보이고~

 삼년산성은 반원형 치성과 성내 배수를 위한 수구등 특이한 축성양식과 축성및 수리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남아있어 우리나라 고대 축성법 연구에 중요한 산성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단다.

더러는 너무나 맑은 햇돌을 가리기 위해 칠마저하는 행위를 서슴치 않았다하니...세계문화유산 등록에 어긋남이라~~

 

바로 눈에 보이는 이 사진들이 새로 축조된 성벽 윗부분 모습! 

이 일을 기화로 삼아 문화유산에 다시는 덧칠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아미지(蛾眉池) 에서 해자 배우다.

 서문 안쪽에 있는 아미1지 연못이다.

지금은 다소 형태가 변형되었는지 몰라도 눈썹처럼 생겼다는 연못!

적들이 성을 넘어오더라도 또 다시 연못이라는 난관에 봉착해서 둘러서 오는 사이 방어 시간을 주는 책략적인 연못이다.

산성에서 내려다 본 아마지 오른편 건물은 산성 관리사무소!!

서문 들어서자 오른편에 위치한 아미지와 돌에 새겨진 김생2의 글씨 아미지!

 아미지 인접 암각자 군에 옥필, 유사암, 아미지 등의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김생의 글씨체로 전해오고 있다.

 

 

 아미지는 늪지 생태식물로 가득차 있었다. 사초, 부들 등등~~

일본 사학자들이 와서 보고 말하기를 삼년산성의  숨은 호리(堀)라고 혀를 내둘렀다 한다. 우리말로는 해자라는 그 뜻은 무얼까?

 

 

해자(垓子)란 적과 동물의 침입을 방어하기위해 고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성의 주위를 파 경계로 삼은 구덩이를 말한다.

외호(外濠)라고 부르기도 한다..일본에서는 해자를 호리(堀)라고 부른다.

 

 산성안에 위치한 눈썹처럼 아름다운 ' 아미지' 연못의 숨은 용도가 이해가 된다.

 

 산성주변의 풍경

산성에 올라 바라본 보은의 지금은 잘 닦인 신작로가 가로지르고  오른편으로는 종합 운동장이 보인다.

  저 멀리 보은 시내가 한 문에 들어오는 곳!

 큰물에 성벽이 뜯기워 흘러나가자 인근 주민들은 너도나도 반듯한 돌들은 구둘장 돌로 날라갔다 한다. 애석한일이다.

아마도 관리상 자동차가 올라다니는 듯.... 

길이 아름답다.

치성3에 대해서 다시 짚고 넘어가보자. 

 서문에서 맞은 편이니 지금 이곳 봉오리는 동쪽, 즉 동문지로 향하는 길이 되겠다.

능선으로 이뤄진 동쪽에는 치성이 여러개 있는데....

능선으로 들어오려는 적들로 보호하는 성을 쌓았단다. 능선 진입로의 길을 끊는 셈이란다.  

왜 치성이라고 불렀을까? 해설께 물었다.  평상시 어머님의 기도..즉 치성 같은 그런 뜻인가요? 하고 물으니 바로 맞단다.

집에 와서 검색을 해도 치城은 없다.  웹문서 중국어로는 좀  있었지만 해독불가 *.*);;

 

비록 적으로 부터 방어하고자 하는 뜻은 맞겠지만 이런 뜻을 내포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뜻글자 그대로 이어서~~ 

 

 

치성터[터] 신이나 부처에게 지성으로 비는 곳.
산치성[] 산신령에게 정성을 드리는 일

해서 내려본 결론은 산성을 지키면서  적의 침략을 안받기를 ...산성 지키미들의 무사고와 행운을 비는 두 가지의 역활을 하는 곳이었지 않았나 하는 어림짐작을 해본다. ㅎ~

 

 

 일행들이 얼른 오지 않아서 돌아보니...성을 내려오던길에 무더기로 핀 망초꽃과 도라지꽃에 넋들을 앗겼다.

그나마 무척 다행이다. 산성주변도 그렇지만 성내에도 역사가 살아 숨쉬는
천년고도 보은답게 청정하고 아름답게 자연은 잘 보존되어 있었다.

 

글/이요조 

 

 

해자(垓子)란 적과 동물의 침입을 방어하기위해 고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의 주위를 파 경계로 삼은 구덩이를 말한다. 외호(外濠)라고 부르기도 한다.

목차

[편집] 나라별 특징

[편집] 한국

[편집] 중국

중국에서는 대표적으로 해자가 있는 건물이 자금성이다. 또한 시안에 가보면 해자로 둘러싸인 건물들이 있다.

[편집] 일본

 

일본에서는 해자를 호리(堀)라고 부른다. 해자에 물을 채운 것을 미즈보리(水堀)라고 하며, 물을 채우지 않는 것을 가라보리(空堀)라고 한다.[1]

근세의 평성(坪城)에는 해자를 두었지만, 중세의 성곽이 대부분인 산성(山城)의 경우에는 빈 해자가 많았다.

산의 능선을 가르도록 만든 빈 해자를 호리키리(堀切), 일반적으로 가로로 조성한 빈 해자를 요코보리(横堀), 경사면을 따라 조성한 빈 해자를 다테보리(竪堀)라고 부른다. 여러 개의 다테보리가 가로로 연결되어 있으면 연속 다테보리(連続竪堀)라고 한다. 3개 이상의 연속 다테보리를 묘상[2] 다테보리(畝状竪堀)라고도 한다. 성의 구루와 즉 성의 한 구역을 중심으로 해서 방사선으로 배치된 다테보리를 방사상 다테보리(放射状竪堀)라고 한다.

해자 밑바닥에 따로 구덩이를 더 파거나, 해자와 해자를 구분직는 성루를 쌓아 장해물로 삼았다. 이런 장해물을 쇼지(障子)라고 한다. 쇼지가 있는 해자를 쇼지보리(障子堀)라고 부른다. 형태가 쇼지와 닮았기 때문에 쇼지보리라고 불렀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것은 잘못된 속설이다. 또, 일정 간격으로 연속된 쇼지가 있는 해자를 우네보리(畝堀)라고도 한다. 쇼지보리가 유명한 성은 야마나카 성이지만, 전국적으로 넓게 펴져있다. 이들 빈 해자의 효과는 해자 안을 타고 넘어야 되기 때문에 적 병사의 체력을 소진시키는 효과가 있다.

통상 해자는 평성에 많이 있는 물이 채워진 해자이다. 평성에 있는 성의 외측에 있는 해자를 소토보리(外堀)[3]로 부르며, 성 내측에 있는 해자를 우치보리(内堀)[4]라고 부른다. 그리고, 해자가 중간에 있으면 나카보리[5]라고 한다. 또, 성하 마을를 방어하기 위해 소가마에를 둔 성곽일 경우 소가마에의 해자를 소보리(総堀, 惣堀)라고 한다.

[편집] 유럽

영어로는 해자를 Moat 라고 한다. 주로 중세시대에 발전하였다. 성 주변의 연못을 말한다. 모든 성에는 해자가 있었다.

 

  1. [명사] 누에나방의 눈썹이라는 뜻으로, 가늘고 길게 굽어진 아름다운 눈썹을 이르는 말. 미인의 눈썹을 이른다. [본문으로]
  2. 통일신라 시대의 서예가.해동서성(海東書聖)으로 불렸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어려서부터 서도에 정진해 예서·행서·초서에 따를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안동 문필산(文筆山), 경주 경일봉(擎日峰) 석굴(石窟) 같은 곳에서 글씨를 힘써 공부하고, 충주 북진애(北津崖)에 있는 절에서 중이 되어 두타행(頭陀行)을 닦았다. 고려 사신 홍관(洪灌)이 송(宋)의 변경(汴京)에 체류할 때 김생의 글씨를 가져다 보이자 송의 한림대조(翰林待詔) 양구(楊球)와 이혁(李革)이 왕희지(王羲之)에 비길 만한 천하의 명필이라고 격찬했다. 그뒤부터 중국 사신들은 김생의 필적을 매우 귀하게 여겨 얻어갔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 東國輿地勝覽〉이나 〈미수기언 眉叟記言〉에 문필산·김생굴(金生窟)·김생사(金生寺) 등 그와 관련된 풍수유적이 전한다. [본문으로]
  3. 있는 정성을 다함. 또는 그 정성. 신이나 부처에게 지성으로 빎. 또는 그런 일. 치성을 올리다. [본문으로]
           

        충북 괴산호         

       '산막이 옛길' 트레킹~ .. ....... ...

 

 

옛글에 "仁者는 樂山하고 智者는 樂水"라 하였으니 山水를 두루 갖춘 곳!

그 것도 요즘 트레킹이 유행인 산길을 내내 걸으면서 물을 즐긴다면 그 누가 마다 할 것인가?

그런 곳을 찾아내어 수변을 가꾸고 길을 낸다면 새로운 관광명소의 인프라로 떠 오르기에 합당 할 것이다.

 

    

산막이 데크길

 

언제 적부터인지 몰라도 나는 별스럽게도 길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

여러 번 글에서도 등장하지만 어릴 적, 여름방학이면 아예 제 집마냥 시골 외가로 향하던 길! 

더운 여름 한 낮을 낙동강을 끼고  걷노라면 시원한 바람도 가끔 불어오고 어느새 따라오던 강은 사라지고 작은 내가 흐르고,

산길이나 들길을 혼자 한참을 혼자서 뚜벅뚜벅 걷노라면 길은 언제나 말없이 묵묵하지만 어린 내게 숱한 이야기들을

건네 왔다. '말이 없는 것'과의 대화, 돌멩이, 벌레,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흘러가는 구름, 내 머리카락을 간질대던 바람마저도 작은 가시내인 내게는 좋은 길동무가 되어주던... 그런 느낌을 즐기고 있었다면 너무 조숙했을까? 또는 이모네 집으로 향하던 지열이 후끈거리고 지루하던 모랫길 잡초 무더기 뚝방길도 어린 내게는 아무시랑 않았던  길- 길들의 추억이다. 

 

증평 들노래 축제에 갔다가 비만 흠씬 두들겨 맞고는 오후에는 괴산 산막이 옛길로 향하던 길이었다.

어느새 비는 그쳤고, 산골짜기 구석구석에서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구름은 산등성이를 스멀스멀 기어 올랐다.  

비가 완전히 그치려나보다.

 

 

 

들어서는 초입부터 예사롭지 않은 아름다운 물길과 산길을 모두 갖춘 산막이 옛길, 초행길 그 아름다움을 구석구석

다  보고 오지못한 아쉬움에 나는 또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 달려 갈 준비를 하고 길을 또 나설 것이다.

 

 

충북 괴산과 충주를 적시는 달천은 오누이의 애틋한 전설에 따라 달래강, 물맛이 달다고 해 감천,

수달이 많이 산다고 수달내 등으로 불린다. 괴산 칠성면 달천 중류에는

수려한 군자산(948m)이 병풍처럼 두른 산막이 마을이 있다.

 

 

 

언제부턴가 산막이마을로 통하는 오솔길은 그 이름도 관광명소로 자리매김 하면서 ‘산막이 옛길’로 바꿔 부르고 있다.

산막이 옛길은 2009년 10월 괴산군 칠성면 외사리에 총 길이 2.5km, 폭 2m 규모로 조성한 산책로이다.

인근 산막이 마을 주민들이 다니면서 자연스레 생겨난 길 위에 일부는 황토길로, 또 경사가 급하거나 위험한 구간에는

안전을 위한 데크 산책로가 그리고 나머지는 기존의 흙길을 그대로 보존하여 조성한 길이다.

 

 

 괴산군은 최근 괴산호 산막이 옛길의 단조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옛길과 함께 할 수 있는 유실수를 심어

열매 길을 조성하고 수변 근처에 진달래, 철쭉 등을 심어 수변경관을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하더니 드디어

수변을 따라 조성한 산막이 옛길이 전국적인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하고 내·외지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한다.

 

 

인터넷에서는 제주의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3대 길로 소문이 나서,

주중에는 300-500명, 주말에는 1000명에서 12-300명의 관광객이 전국 각지에서 찾아오고 있다고 한다.

 

 

산막이길 주변은 남한에서 우리 기술로 만든 최초의 수력댐인 칠성댐으로 만들어진 수변경관을 끼고 있어

풍경은 가히 한 폭의 산수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전해오는 이야기를 형상화한 고인돌쉼터, 앉은뱅이 약수터,

소나무 출렁다리, 산딸기 길, 진달래 동산 등 19곳의 명소를 꾸며 놓았고, 또 얼마 전에는 아들의 장원급제를 위해

100일간 등잔불을 켜놓고 빌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450m 높이의 등잔봉 등산로까지 개발하여 다양한 관광객을

불러 들이고 있다.

 

 

마을까지 조성된 2.5km의 길로 호수를 보며 걷을 수 있는 산막이 옛길 괴산군 칠성면의 괴산호를 끼고 호수를 보며

걷다 보면 소나무 산림욕을 즐길 수 있다.

 

 

머리가 맑아지고 향긋한 소나무향이 전해진다.

산막이 옛길 괴산의 괴강을 막은 칠성댐(괴산댐)이 만든 물길을 따라 조성된 산책코스다.

 

                             

                                        물만 보면 넉넉해지는 仁者의 마음도 배운다. 

 

 

수변을 따라 생겨난 산길에는 흙길 냄새도 좋고, 소나무향도 좋고 바람도 좋고..

 

 

 앞사람과 뒷사람과의 간격은 5m를 유지~~ 

고의로 너무 흔들거나 가까우면 출렁거림이 심해지기 때문이다. 

 

 

조금 걷기 애매한 곳은 데크목 이나 출렁다리길로 연결해 놓은 센스있는 배려~ 

이런 재미가 바로 트레킹의 묘미가 아닐까 한다.  길을 걷다가 잠시 동심으로 돌아가는 곳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댐이 한 눈에 들어온다.

물빛은 면경지수로 깊고 푸르고 잔잔하다.

 

요즘에는 등산팀보다도 트레킹팀 결성이 잘 된다고 한다. 무턱대고 따라갔던 산막이 옛길,

그 진가를 알고나니 다시 한 번 더 가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기만 하다!

 

물길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더욱 더 장관일 것 같은...

조만간 산막이 물길 여행도 그 인기가 치솟을 것 같다. 승선료 5,000원

 

사진은 괴산 산막이 옛길 선착장 나루터 가는 입구길

www.bbvill.com 

 

글/이요조

 

 

제천 역전장날(3,5일) 

참으로 편리한 장터다.

이렇게 직접 와보기 전에는 제천장이 그렇게 큰지 몰랐다.

이름하여 역전 장터! 제천역에 내리면 오른쪽 바로 그 곳이 장터 시작이다.

역광장에는 제천 마스코트 '박다리와 금봉이'가 있고 그 뒤로 오른쪽이 역전 장터이다.

 

 

고객지원센터 건물도 멋지고 대단하다.

 

 장터에 가면 꼭 있다 분위기 UP! 각설이 엿장수

 각설이 분장만 했지 아저씨는 멋쟁이!

사진찍기에 바쁜 일행들 

와우~ 땅콩엿! 

 엿 한무더기에 2,000원!!

 두 사람이 조를 이뤄~ 엿장사도 사업인 듯~

  

각설이는 순수한 우리말, 삐에로

쪽지를 홀깃보니 

장터 상인들의 노래자랑도 곧 있을 모양

이만하면 장터 '분위기 맨 '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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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또 한 사람, 큰 장터에 가면 떡메치는 아저씨!!

어라! 그런데....정선취떡이란 팜플렛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아! 정선에서 본 그 아저씨~~ 맞다.

정선 떡메치기 아저씨, 알아봐줘서 고맙다며 반가워한다.

 ▼정선장터에서 만난 아저씨 사진~

▲ 이 사진은 2007년 6월, 정선 장날 방문에서 찍은 떡메치기 아저씨 인증샷!!

 순간 장돌뱅이란 단어가 떠 오른다.

아저씨나 나나,,,장 따라 취재를 다니다 보니 ㅎㅎ 이런 인연도....

우선 떡메치기 아저씨네는 인심이 푸짐하다.

맛뵈기로 떡 한 두개는 그 자리서 맛볼 수가 있다. 

장터 손님들은 아저씨의 떡메치는 현란한 솜씨에 

한번씩 머물다가 떠나가고... 

 

 

정선가서 이 취떡을 맛보고는 잊지 못했는데.... 

당장 취떡을 샀다

 

   두어개 맛뵈기로 더 건네니 배가 부르다. ㅎ~

아저씨~ 다음은 우리 어느장에서 만날까요?

 

 

오래된 이상한 물건들 

마치  서울 황학동 물건 같다.

아는 물건도 있고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 모르겠는 것도 부지기수~

 

 

 

▲ 신기해서 한참을 드려다보다가  앗! 저 벼루는??!!

 

아무리 낡고 이상해도 임자가 다 있는 모양이다.

 내가 이 물건의 임자가 될 줄이야!!

첫 아들의 태몽/ 중간에 홈이 파인 벼루를 산신령?님이 주시는 걸 받았다.

그리고 말은 없었지만.... 따라오라더니 솟을대문을 밀고 들어가신 집에서 종이를 펴고는 난을 치신다.

그 후로 우리 장남 태명은 딸인 줄 알고 항렬 鐘(종)짜를 붙여 鐘蘭(종란)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33살이 된 아들에게 < 옛다! 네 태몽에 보던 벼루> 하고 내어주었더니 씩 웃는다. 

 

누가 돌을 깎아 직접 어눌한 솜씨로 벼루를 만들었는데...얼마나 사용을 했으면 앞뒤로 얇아져서 

구멍이 뚫어졌습니다. 누구 것인지 모르지만 열심히 공부를 한 벼루임에 틀림없으렸다.

지금은 잘 닦아져 기름칠 좀 하고 새카맣고 반들반들해져서 우리집의 보물로 돌아왔다.

만원 달라는 걸....7,000원주고 구입

 

 

 이것 빠지면 서운하지요! '장터먹거리'

 

장터는 모처럼 잘날에서 보는 지인들끼리 만남의 장소다.

사돈도 만나지고, 친구들도 만나지고, 분가한 아우, 형님도 만나지고  사위도 만나지는 날!

당연 막걸리에 파전이 없으면 서운하다

도토리묵, 잔치국수가.....잡채,순대, 김밥이..... 

 왕사탕,옛날과자가 향수에 젖게한다.

 

 

 

 

 

 

 

 

 

 

 

 

 

농심(農心)

모종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묘목도, 씨앗도,  꽃이 핀 화분도 나왔다.

직접 캔 쑥도...농장에서 가져온 계란....

약령 도시답게 수많은 약초들....

곡식,과일, 심지어는 바빠서 물주기가 잘못된 할머니의 발이 긴 콩나물도 보이고

모종을 몇 개 가져다 놓고 팔아볼 심산인 농부의 마음이 차마 감질난다. 

 

 

 

 

 

 

 

 

 

 

 

장터풍경

 

장터에는 서울멋쟁이 못잖은 멋진 패션의 옷도 보입니다. 

패션모자도, 패션벨트도, 요실금 팬티도 재미납니다.

산낙지 3마리 만원,

가마솥 통닭은 TV에 잠깐 소개되었던 것도 같아요!! 

간고등어에 빨래비누에 칼국수에 청국장에 없는 것 빼놓곤 제천장터에 다 있답니다. 

ㅎㅎ 현금식당 간판도 보인다.

혹 그 식당안에 들어가면 오늘은 현금! 내일은 외상! 이렇게 바람벽에 붙여놓으신 건 아닌지....^^* 

 

 

 

 

 

 

 

 

 

역전장날(3,5일)

끝간데 없이  동네 골목 골목으로 이어진다.

여인숙도 보이고 해장국집, 역전 철물전기, 중호네식당은 프래카드도 새로이 내걸었다.

제천 재래시장,  역전 장날!

기차역에서 내리면 바로 그 곳이니 옛 장터 구경하시러~

 기차타고 훌쩍 떠나보셔도 좋을것 같다.

 글/이요조

 

 삼한시대 조성된 '제천의림지' 제림 (堤川義林池와 堤林)

<충북 제천시  모산동 241번지 외>  에 있는 저수지. 김제의 벽골제, 밀양의 수산제와 함께 삼한 시대 삼대 수리 시설의 하나이다.

 제천의림지와 제림 (堤川義林池와 堤林) 대한민국의 명승 제 20호다.(2006,12.4)

제천 의림지와 제림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대 수리시설 중의 하나인 의림지(義林池)와 그 제방 위의 제림(堤林) 그리고 주변의 정자 및 누각 등이 함께 어우러져 매우 아름다운 경관을 연출하는 역사적 경승지이다.

 

2000년의 역사와 함께 지금도 농영용수로 쓰이고 있다는 의림지!!
의림지 (義林池)는 충청북도 제천시 모산동 241번지 일대에 있는 삼한 시대의 인공 저수지 이다. 둘레는 약 1.8km, 수면은 약 158,677m², 수심은 8~11미터이다.

밀양 수산제, 김제 벽골제와 함께 역사가 오랜 저수지로, 삼국사기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世宗實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등에 기록되어 있으며, 여지도서(輿地圖書), 제천현지도(堤川縣地圖), 청구도(靑邱圖),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 등 조선시대 고지도에도 자세히 나타나는 곳이다.

자연유산, 명승지, 문화경관,  조망경관으로  빼어나 문화재에 등록 되었으며  제천 의림지와 제림은 오랜 역사를 지닌 전통적인 명승지로 주변의 영호정(映湖亭), 경호루(鏡湖樓) 등 정자 및 누각과 연자암, 용바위, 홍류동, 홍류정지 등 전통적인 요소들이 함께 어우러져 경관적·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경승지로 알려져 있다.

조선후기 산수화가 이방운(李昉運)이 그린 서화첩「사군강산참선수석(四郡江山參僊水石)」에 나오는 명승지 8곳 중의 하나로, 예로부터 단양사군(丹陽四郡 : 청풍, 영춘, 단양, 제천) 지역의 대표적 명소로 알려져 있다

 

충청도를 호수의 서쪽이라 하여 호서지방이라고도 부르는데,

여기서 말하는 호수는 바로 의림지를 가리킨다.

그만큼 의림지는 오래되고 유명한 저수지였다

 

                   #철도여행객이 뽑은 최고 명소 

 

                  의림지는 제천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유서깊은 곳이기도 하지만 주변 경관이 아름다워 제천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호감으로 다가선다.

말로만 듣던 우리나라 최고(最古) 수리시설 의림지에 첫발을 내딛었다. 날씨는 봄이라지만 꽤나 쌀쌀하던 4월이었다.

더디오는 봄으로 벚꽃이 만개하던 중순경~~제천으로 여행을 떠났다.

제천 10경중 제 1경인 이 곳은 송림이 적절히 어우러져 더욱 운치를 보태고 보는 이들은 탄성을 자아내었다.

 

축조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구전에는 신라 진흥왕(540~575)때 악성 우륵이 용두산(871m)에서 흘러내리는 개울물을 막아 둑을 만든 것이 이 못의 시초라 전한다.

그 후 700년이 지나 현감 '박의림/이 4개 군민을 동원하여 연못 주위에 돌을 3층으로 쌓아 물이 새는 것을 막는 한편 배수구 밑바닥 수문은 수백관이 넘을 정도의 큰 돌을 네모로 다듬어 여러 층으로 쌓아올려 수문 기둥을 삼았고 돌바닥에는 박의림 현감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고 한다.

 

명승지답게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축조를 든든하게 잘 쌓아둔 곳에는 봄을 캐는 아낙네들이 여기저기~~

봄맞이 나온 아가씨들

수변 데크 산책길

 의림호의 총 둘레는 대략 2km 정도로 30여분이면 둘러볼 수가 있다.  쉬엄쉬엄 조망하면서 걷기엔 넉넉하게  4~50분 가량 소요된다.

물속에서도 잘 자라는 느티나무가 기특하고....

제 몫을 하느라 가녀린 가지로도....멋진 반영을 그려낸다.

물바람이 싱그럽다.

물속에서 뿌리내린 느티나무들~~

찰방찰방 물이 가득찬 데크위를 걸으며....봄을 느낀다.

의림지 솔밭공원의 한가로운 풍경

 시원한 인공폭포길

인공터널길을 통과해봅니다.

 인공폭포 사이로 얼핏얼핏 보이는 의림지의 봄!

쉬어가는 정자도 되고 조망대도 되는 일석3조의 배수장입니다. (저수지 물의 수위를 조절하는 곳)

  82년도 대홍수때 둑이 무너지고 다시 수리가 되었다 한다.

배수장 곁에 위치한 30m 자연 폭포의 낙차 물소리가 굉음으로 들린다.

 의림지에서 낙차하는 폭포가 장관이다.

마치 한 폭의 수묵화 같은...(ㅎ~ 실은 카메라 모드가 잘못설정)물이 위에서 흐르듯 보이는데 실은

다리위에서 내려다 보고 찍었으므로 물은 사진의 아래에서 위로 흘러내리는 셈이다.

현재는 수리시설보다 유원지로 더 유명해진 곳!

 수백년을 살아온 소나무들이 의림지의 운치를 더한다.

물그림자로 비친 제 모습을 보려다 물로 들어가게 생긴 '나르시스' 소나무~~

  '영호정'

영호정(映湖亭) 제천향토문화자료 (제12호) 영호정은 제천시 모산동 의림지 남쪽 제방 위에 위치하여

조선 순조 7년(1807년) 이집경이 건립한 후 6.25 전쟁으로 파괴된 것을 그 후손인 이범우가 1954년에 중건하였다

 

우륵정 

우리나라 3대 악성의 한 분이며 가야금의 대가인 우륵 선생이 노후에 여생을 보낸 곳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가야금을 타던 바위,  

우륵대,(일명 제비바위,연암, 용바위)와 마시던 물인 우륵정이 있는데 우륵정을 재정비 할 것이라 한다.

 특히 겨울철과 해빙기에 잡히는 공어(빙어)는 담백한 맛의 회어로 각광받고 있다.

게다가 순채는 임금의 수라상에 올릴 만큼 유명했으나 1914년 의림지 보수 이후 멸종되어 현재 농업 기술센터에서 복원연구 시험 재배중에 있다.

 

* 공어회:

의림지의 명물인 공어는 산채로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회 어로서 관광객에게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먹을 때는 꼬리와 머리를 휘어 잡고 초고추장을 찍어야 옷을 버리지 않습니다.
일년생 물고기로서 겨울철 및 해빙기에 알을 낳기 위해 수면 가까이로 올라와 잡을 수 있는 공어는 4월 이후에는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 그 맛을 볼 수 없습니다.
10cm안팎의 담회색으로 옆구리에 검은 빛과 은백색 줄무늬가 있으며 전체적으로는 반투명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순채요리:

환경보호식물 제5호로 지정된 순채는 호수(연못)에서 자생하는 여러해살이 물풀로 맑고 투명한 우무같은 한천질(점액질)이 두텁게 감싸고 있는 독특한 식물로 임금님 수라상에 올렸다
는기록이 있습니다. 순채는 당뇨를 치료하고 열을 풀어주며 장과 위를 두텁게 해주고 백가지 약독을 풀어준다 하며, "약초지식"에는 순채요법으로 위암을 치료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순채를 이용한 요리에는 순채요리, 순채전골, 순채 오미자차, 순채 불고기, 순채립스틱(갈비), 순채장국수등 다양한 음식이 있습니다.

 

 의림지는 제 1,2로 나뉘어 있었다. 제 2의림지 역시 송림이 울창한 곳이었는데

잠시 제 2의림지 입구에만 둘러보았다. 오히려 젊은이들 MT나 놀이에 더 어울림직한 좀 자유스러운 곳이다.

제 2의림지는 수로 축조공사가 한창이었다.

 의림지의 전설
옛날 의림지가 생기기 전에 이곳에 부자 집이 있었다. 하루는 이집에 스님이 찾아와 시주할 것을 청하였다.
그런데 이 집 주인은 탐욕스러울 뿐 아니라 심술도 또한 사나왔다. 한동안 아무 대꾸도 없으면 스님이 가버리려니 했는데 탁발스님은 가지 않고 목탁만 두드리고 있는 것이었다.

심술이 난 집주인은 거름 두엄에 가서 거름을 한 삽 퍼 다가 스님에게 주었다. 스님은 그것을 바랑에 받아 넣고선 머리를 한 번 조아리더니 발길을 돌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을 집안에서 보고 있던 며느리는 얼른 쌀독에 가서 쌀을 한바가지 퍼 다가 스님을 뒤쫓아 가 스님에게 주며 시아버지의 잘못을 빌었다. 스님은 그것을 받더니 며느리에게 이르는 것이었다.

조금 있으면 천둥과 비바람이 칠 터이니 그러면 빨리 산속으로 피하되 절대로 뒤돌아보면 안 된다고 하였다.
이 소리를 듣고 며느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랬더니 집안에서는 집주인이 하인을 불러 놓고 쌀독의 쌀이 독이 났으니 누구의 소행인지 대라고 호통을 치고 있는 것이었다. 며느리는 시아버지에게 자기가 스님이 하도 딱해 퍼다 주었다고 아뢰었다. 시아버지는 크게 노하며 며느리를 뒷 광에 가두더니 문에 자물쇠를 채워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해 버렸다.

그런데 갑자기 번개와 천둥이 울리고 세찬 바람과 함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며느리는 광속에서 안절부절 못하는데 더 요란하게 번개가 번쩍하고 천둥이 치더니 잠겼던 광문이 덜컹 열리는 것이었다. 며느리는 탁발승의 말이 생각나 얼른 광속을 빠져나와 동북쪽 산골짜기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얼마쯤 달려가던 며느리는 집에 남아 있는 아이들이 생각이 나서 뒤돌아보지 말라던 스님의 말을 잊고 집이 있는 쪽을 뒤돌아보았다.

그 순간 천지가 무너지는 듯 한 굉음이 울리더니 며느리의 몸은 돌로 변해갔으며 집이 있던 지리는 땅속으로 꺼져서 온통 물이 괴고 말았다. 물이 고인 집터가 의림지이며 며느리가 변해서 돌이 된 바위는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제비바위(연자암)근처 어디엔가 서 있다는 것 이었다.

 

 
위 치 :충북 제천시 모산동 241번지
문의/안내 :한국농어촌공사 충주제천단양지사 043-841-3000
 

 

 

 

 

 

 

청풍호가 나를 깨우네!

                                       -옥순대교에서-


자욱한 안개 속에 깊게 잠든  청풍호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는 철이 없었다.
<여보세요오~~ 잠에서들 깨어 일어나세요!>


두 번째 찾았을 때
고즈넉이 잠든 너를 보고 싶어
옥순대교 끝에서 끝으로 헉헉대며 내달렸다.

 

나, 나이 들었나보다.
가만가만 흔드는 잔잔한 물결 요람 따라
<자장자장 자아장~ 내처 잘 자거라!>

 

잘박이는 여울에 나이테가 생겨나고

너를 볼 때 마다 나, 철 드는 걸 보니

청풍호가 나를 깨우네.

 

 

 

글/이요조 (2010년 4월)

 

 4년 전에 찾아왔던 옥순대교~~ 저 끄트머리에서 난, 남다른 느낌을 받았다.

그 때도 일행들에게 민폐 끼치지 않으려 사진 찍는 틈을 내어 달리고 달렸다. 저 다리 끄트머리에는 또 뭔가 있을 것 같았다.

역시 있었다.  만났다. 아침 물안개에 감싸인 채 잠들어 있는 청풍호를...... 일어나라고 마음속으로 외쳤다. 그 때는....<"여보세요오~ 잠에서들 깨어나세요~">라고,

이번에는 다리 위를 달음질 쳐 온 내가 무안했다.<어, 오늘도 여태 자네~~ 코~ 내쳐 잘 자려마~> 사진 몇 장 철걱이며 찍어왔다. 카메라 셔터소리가 사위의 적막을 흔드는 듯 했다.

돌아오는 발걸음은 그리 쿵쾅이며 뛰질 못했다.  여행도반들은 옥순대교에서 기념촬영 하느라, 내가 어디 가서 무얼 하고 왔는지, 사라진 것조차도 몰랐다. <흠흠~~ 비밀이야~쉿!!> 

 

 

 

 

 

 

 

 

 

청풍호를 끼고 드라이브, 옥순대교와 도담삼봉

 

청풍호를 옆으로 끼고 드라이브를 즐기는 그 맛!

월악을 돌아 돌아 가며 산이름에 악(岳/큰산)자가 들어가는 산들은 그 큰 이름 만큼 그 산세가 당당하고도

우람함을 진작에 알아 차렸어야 하는데, 산이 깊으면 물도 깊은 법,

월악산! 그 이름만큼이나 대단한 산이기에 대단한 물길을 거느리고 섰다.

 

 

물안개라면 좋으련만 마침 내가 간 날은 물안개가 흐드러져 정오가 가까운데 도심의 스모그 현상같다.

아무튼 물안개의 뒤끝이리라...

좀 더 일찍왔더라면 물안개의 도도한 흥취에는 푹 빠졌을지 몰라도 사진은 한 장도 못 건질 뻔 하였다.

 

이 지역 사람들은 충주호라 부르지 않고 청풍호라 즐겨 부른단다.

아마, 수몰된 청풍을 그리고 싶은 마음에서 이리라.

댐 건설로 진짜 청풍이 수몰된 지 25년. 그 동안 제대로 부르지 못 한 만큼, 이제라도 제 이름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충주호는 남한강의 또 다른 이름 중 하나이다. 강원 태백의 대덕산 검룡소에서 발원한 남한강은 지역마다

저마다의 이름을 지녔다.

태백에서 창죽천이다가도 정선에서는 골지천이다. 영월에서는 동강으로 불리고, 충청도로 넘어 오면

충주호가 된다. 경기 여주에서는 여강으로 갈음한다. 이쯤 되면 청풍호를 고집하는 주민들을 나무랄

이유가 없어진다.

충주댐 건설로 생겨난 호수의 길이는 97.2km. 충북 단양, 제천, 충주 등 3개 지역의 마을이 수몰됐고,

이중 제천 지역이 42km로 절반에 가깝다. 청풍은 29개 마을(리)중 27개가 물에 잠겼다. 청풍호가 아름다운

것은 말마따나 청풍명월이 고스란히 물속에 담겨 있어서 일 터이다.

충주호를 절반 정도로 나눠 서쪽은 충주, 동쪽은 제천, 장회나루부터는 단양에 속한단다.


 

짙은 주황색의 철골이 인상적인 옥순대교는 다니는 통행이 별로 없어 늘상 졸고 있는 다리같다.

다리 위로 다니는 차량보다 다리 아래로 다니는 유람선들에게 위용을 자랑하고자 선 다리같다.

날씨가 어찌된 셈인지 물안개가 덜 걷혔는지...영 흐린 게...... 풍광의 기대치는 마뜩찮다.

하늘을 담아 있는 호수라더니...오늘은 하늘빛도 햇빛도 .... 다 잠에서 덜 깨어났나 보다.

 

너무 일찍 서둘렀나?

아직은 오전, 은은한 호반은 물안개를 걷고 마악 잠에서 깨어나려는 중이었다.

늦잠을 즐겨 자는 탓에 미려한가?  아무래도 그 탓이지 싶다.

 

"여보세요오~ 잠에서들 깨어나세요~"

 

 2006년 2월 옥순대교에 들렀을 때,

 

 

 

 

 

 

 

 

 

 

 

 

 

 

 

 

 

 

 

 

 

 

 

 

 

 

 청풍리조트, 레이크호텔....어느얼굴이 정면인지....도로가에서 본 ▲레이크와 강가에서 본 ▼레이크의 두 얼굴이다.

 

 

여행사진 숙소찍기의 TIP은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정리 정돈이 잘 된 실내를 찍는 것이다.

그러나 매번 나의 시도는 틀어졌다.

들어오자마자 여기저기 흩으러진 모습들... 

식사도 그렇다. 다른이들이 먼저 찍으니 건성 따라갈 뿐~~

내가 만든 음식도 깜빡하고 다 먹어갈 즈음 난....후회한다. 그래서 먹거리 맛집 취재는 거의 포기한다.

정말 맛있지 않으면 올리지 못하는 성격이다.

청평호를 두어번 오가며 청평호 부근에서 하룻밤 쯤  묵었으면 생각했다.

드디어 청평에서 하룻밤을 묵어가게 되었다. 술은 근처에도 못가지만 분위기상 일행들과 가볍게 어울려주고 올라오니 11시가 넘었다.

씻고 어쩌고 하니 자정이 넘어가고~~

제천 한방치료로 목에다 약침(무지 아픈 침) 맞은 게 아파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다가 어느결에 꿈나라로~~

잠자리 바뀌면 잠자리 메이트까지 바뀐 상황에...  불면증 운운도 오늘은 헛 말!! 고단한 김에 내처 잠 들었다.

 

내가 애초에 생각하던 청평호의 조용한 하룻밤은 얼렁뚱땅 그렇게 허망하게 흘러가버렸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서 커튼을 저껴보니 맨 윗충인 8층 사이드(패밀리)룸인지라 아침에 일어나니  방향은 몰라도 일출도 없는 흐린 아침이다.  앞으로 옆으로 뒤로 창이 골고루도 나있다. 

남보다 이른 시각 깨어 부산을 떨어보지만....물안개가 끼어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한다.

춘천에서 하룻밤 묵었을 때 만나 본 그런 물안개는 아니다.  사진만 방해하는....

뭐든 부딪쳐보면 생각과는 언제나 어긋나는~~ 

 

그렇지만 포기하지 않고 바깥으로 내려갔다.

청풍호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진 않는다.

아직은 잠에서 덜 깨어난 강의 여신처럼 고즈넉한 자태로 누워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물을 시퍼렇게 가득담고.... 물밑으로 밑으로만 흐르는....속내를 감춘........江 

江풍경이다. 

 

 

 

 

 

 

 

 

 

 

 

 

 

 

 

 

 건너편 청풍랜드의 번지점프대와 오페라하우스를 닮은 야외 음악당~

 

 

며칠전이지만 지금 쯤 이 곳

벚꽃은 만개했을 터~~

상상으로만으로도  

눈에 선-하다.

 

 

글/이요조 

 

 

 

 

 

청풍명월 (淸風明月)

맑을 청(淸)

바람 풍(風)

밝을 명(明)

달   월(月)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라는 청풍명월의 청풍호에 금빛 낙조가 어렸다.

 

 

 

 

퇴계, 이황 선생님은 금수산(제천)을 금실로 수를 놓았다 하셨지만  일몰은  청풍명월, 청풍호에도  눈부신 금사로 수를 놓았다.

서울에서도 하루만에 오갈 수 있는 거리라....한 낮의 청풍호는 보았지만 1박으로 느긋해선지 석양, 노을진 청풍호는 처음 보지만...

더 욕심을 내자면 보름달 밝은 밤 청풍명월을  봐야지만  진수를 보는 게 아닐까? 라는 욕심마저 내어본다.

 

제천 <청풍호 벚꽃잔치>가 얼어붙었다.

변덕스런 봄날씨에 해발 260여m인 제천은 제일 늦게 벚꽃이 피는 지역이라는데...봉오리는 아직 잠들어 있었다.

그랬던 봉오리가 하룻밤 묵고난 다음날 배시시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시간이 무섭게 앞 다투어 피어났다.

우리가 가서 벚꽃을 일깨운 셈이다. 다녀 온 뒤 바로 청풍호 벚꽃이 흐드러졌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주차장에서 산위로 올라가면 조각공원이 있고 강아래로 내려가면 여러가지 시설들이 있다는데...나는 그냥 노을에 빠져서

일몰이 바라보이는 언덕배기에 그만 발이 붙어버렸다.

노을을 바라보며 데이트를 즐기려 미리 커피를 마련해 오거나 하는 연인들의 승용차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이미 이 곳은 석양무렵 데이트코스로도 정평이 나있는 곳이구나~~

인천 영종도 을왕리 해수욕장이 그랬다.

낙조를 즐기러 승용차들이 나란히 나란히 어깨를 겯고 바다를 향하면 저녁 석양은 기다렸다는 듯.....서서히

하늘을 노을빛으로 물들이며 바닷물로 잠겨들던 그 곳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서울서 일일코스로 청풍호를 드라이브로 둘러보며....

1박을 하고싶은 마음 굴뚝같았는데 드뎌 소원대로 청풍호가 내려다 보이는 청풍리조트(레이크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다음글로 계속~)

 

 

 

 

 

 

 

 

 

 

 

 

수상아트홀

 *찾아오시는길*

*승용차*

*대중교통*

 

벚꽃과 청풍대교 

 

글/이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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