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사 제대로 된 한 겨울이 온 것 같습니다.
올 해는 그 좋아하던 동치미 국물 맛도 못 보고 지나쳐 버릴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제 입맛은 자라날 때 시골에서 길들여진 것 같습니다.
언젠가도 제가 이야기 했지요 성장기를......
전 학교만 도시에서 다녔지
방학만 되면 제집으로 돌아가기위해 보따리를 부지런히 사는...
그래선지 별반 친구가 없습니다.
영희라는 국민학교 친구는 역시 몇십년만에 만나고 보니
그 친구는 방학 때만 되면 어디론가 떠나는 제가 미웠다고 합니다.
그렇듯 전 자연이 제 친구였습니다.
외할부지가 더 없는 스승님이였구요.
나보다 대여섯살 더 많은 막내이모는,의젓한 보호자 역활을 마다않고 해 주었습니다.
부산, 우리집에서 아침 먹고 출발하면...
한 두어시간 비포장 길로 버스가 털털거리며 먼지가 풀썩대는 길을
마냥 갑니다.
여름에도 뜨거운 본네뜨위에 올라 앉아 한참을 차창밖을 망연히
펼쳐지는 낙동강을 잇는 둑방길만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강물내가 훅- 끼치는(경남 녹산다리) 전 거기에서 내립니다.
그날이 장날이면...외할머니를 용케도 만나 올 때는 소달구지를 타고
얼마간은 편하게 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 때 그 장터에서 사 주시던 국시맛, 또는 개구리 참외 맛...
그 게 바로 잊을 수 없는 외할머니 맛으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 집에서도 못 말리는 제 황소 고집에 무시날 무작정 떠나오면...
조용하고도 휑한 장터거리를 지나...갈대가 가득한 강을 끼고 돌아......
한적하고도 고즈넉한 길을 가방을 든 채 타박대다 보면 어린 나이에도
언제 그 곳에 다다르나 싶어 한숨이 다 나왔습니다.
강 바람소리 들으며......그 때 그늘이라는 괜찮은 친구도 익혔습니다.
나중에는 그 중간 지점까지 버스가 다녔지만.....
국민 학교시절... 어린나이에 왜 겁도없이.... 그 길을 걸었는지.....
중간 지점 쯤 오면.. (세산) 개울 방둑이 너무 길어 아스라한 곳,
그 끝 지점에 네째 이모가 사는 동리가 보입니다.
그 곳에가서 늦은 점심밥 한 술 얻어먹고.....
이모는, 하룻 밤 쉬고서, 이종 남동생이랑 같이 가든지......
또는 조금 비껴난 곳에 있는 제일 큰 이모집에 가면
큰 오빠가 데려다 줄거라는데도 전..또 막무가내 홀로 길을 떠납니다.
혼자 가는 길을 아무에게도 방해 받고 싶지 않았습니다.
산에는 산나리가 너무 예뻤지요
이름 모를 산새도 따라 온답니다.
비록 지열이 훅훅 달겨드는 더위지만 시냇물에 발도 담그면서,
예쁜 조약돌도 건져내어 만져 보다가.....
송사리떼에게 물도 찌꺼려 보다가,
노래도 흥얼거려 보면서 가는 길
혼자가는 길에 전 오직 외가가 그리운 마음 뿐입니다.
산 고개에 올라서면....아득한 곳에 그리운 집이보입니다.
멀리...마음은 앞서고.... 왜 그 어린 나이에 그 곳을 동경했던지,
저수지를 지나 성황당을 돌아 동구나무에 이르면 마을 입구에 다다릅니다.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는
졸졸졸~ 흐르는 개울물도 즐겁게 날 반기는 것 같았습니다.
어스름이 다 되어서야 발은 부르트고 온 몸은 땀에 후즐근해져서야 겨우 당도한 외갓집,
그 곳에는 외할부지 외할머니, 이모,머슴 문도령, 나, 이렇게 우린 한 식구입니다.
외할부진 얼마나 약주를 좋아하시는지 늘 방에는 술 익히는 독이 자주 들어와
이불을 동이고 앉아있던(겨울에) 할아버지 방은 여름에도 술내가,
누룩뜨는 내가 났습니다. 할아버진
" 어허~~ 우리 요조 왔는데.. 뭘 맛있는 걸 해 줄꼬? 옳다구나
저눔 누렁이 축 늘어진 황소 붕알 뚝 떼내서 끓여 묵자꾸나 ㅎㅎㅎ"
참 자랑스런 제 이름도 우리 외할부지가 지어주신 것입니다.
외할부지가 저를 제일 좋아하시는 것은 제가 어려도 데리고 놀기엔
딱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민화투만 두어판 함께 쳐 드리면
제가 그렇게나 좋아하는 책에도 없는 옛날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용이 되지 못한 깡철 이무기 이야기며, 효심어린 산삼 이야기,
의리를 지키는 호랑이 이야기며....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니... 바로 그 게 도덕의 근본이였습니다.
겨울 이야기를 하려했다가 제가 기억대로 여름 이야기로 들어가 버렸군요
이렇게 맵도록 추운 날,
하도 옛날 생각이 나서 그냥 횡설 수설입니다.
참 외할부진 또 그러셨지요
겨울은 호랑이 거시기가 꽁꽁 얼도록 추워야 내년 농사가 잘 된다구요
뭐든 계절은 그 계절 다와야 된답니다.
외할부지랑 겨울 깊음 밤 움집에서 꺼내 온 무시(우)를
외할부지가 안경집이랑 늘 함께 옆구리에 차고 다니시는
작고도 무섭도록 잘 드는 칼로 싸악 삭 깎아주시는 맛이라니,
마치 예술인듯 잘게 쪽쪽 내 주시던 칼 솜씨가 눈에 서언-합니다.
전 50이 넘게 살아도 칼질...불질을 아직도 잘 못하거든요.
외할부지의 솜씨에 난 언제나 바싹 다가 앉아선 우와-와~ 하며
탄성을 곧잘 자아내곤 했었지요
외할부지가 출출해지시면 괜시레
"우리 국시 삶아 묵으까?"
그러시면 눈치 빠른 나는 옆에 누워 주무시는 할머니 몰래
쪼르르르 이모에게로 갑니다.
이모는 시집갈 때를 대비해서...깊은 밤에도
신랑 우인들에게 나눠줄 것인지 옥양목에다 십자수를 놓다말고
내 채근에 등 떠 밀려 어두운 밤 정지간으로 나갑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을 때니...... 썰렁한 정지간에 새삼 나서려니
오죽 하랴만 심성 고운 이모는 두 말 않고 웃으면서
심지 돋우어 등을 밝힙니다.
도깨비들 처럼 나온 우리들에게 겨울밤 춥고도 무서운 정적에 잠겼던
정지간은 아궁이의 밝고도 따스한 불빛으로 다시금 생기가 돌아 났습니다.
국시라고 지금 처럼 매끄럽고 뽀얗기나 하나요
밀농사를 지을 때라 우리 밀로 만들어 시커멓고 촌스럽게 생겼어도
그러나 그 맛이 얼마나 구수했던지요.
경상도 사투리론 동김치가 동짐치로 불리웠지요
남도 사투리로는 싱건지라 하던가요?
이모가 언 손 시려 호호 불어가며 꺼내 온 동짐치,
춥지도 않았을 까요? 시원스레 일을 잘하는 이모가 동치미에 씨언하게 말아 내 온 국시,
외할부지랑 저는, 둘이 죽이 맞아 동짓날 긴 밤의 허기에 한 그릇 뚝닥,
잘도 해 치워내곤 했습니다.
그 동치미가 그립습니다.
이렇게 제대로 된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이면,
얼음 둥둥 뜬, 동짐치에 국수 말아먹고.....
턱이 덜덜 떨려서는 엉금 엉금 썰-썰 끓는 아랫목으로 다가가
외할부지랑 둘이 이불쓰고 앉아.....
히히히~~ 함께 웃으면... 그제야 몸이 제대로 따뜻해져 왔습니다.
* 동치미 국수는 없고 새해라고 끓여둔 씨언한 식혜 한 컵 들이키고 와선
지금 달달 떨면서 이 글 마무리를 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셨지요?*
이요조
밤의 소리 (4.애절하게) - 황병기 (가야금), 김정수 (장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