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이 요조 ◎ 2002/1/20(일) 01:14 (MSIE5.0,Windows98;DigExt) 211.222.189.172 1024x768 '그림은 언어다' & 오에카키의 커무니케이션 그림이란, 고작 뉘집 거실의 과시용으로 아니면 이발소의 퀭한 벽면에나 걸려있는거라고 생각했던 내게 그림도 언어라는 깨달음을 갖게해준 작가가 콜비츠이다. 그녀의 자화상에서 보면 삶의 질곡을 다 경험한이의 슬픔과 관조가 들어있다. 처음 이 그림을 보았을때 나도 모르게 두빰을 감싸주고 싶은 충동을 받았다. 두 세계대전으로 아들과 손자를 차례로 잃은 그녀는 그림으로 노동자의 삶의 고단함을, 전쟁의 상흔들을, 아이들의 배고픈 울부짖음을 그림으로 말하고 있다. (미술지/퍼옴) ******************************************************* "그림은 언어다." 너무 거창한 제 타이틀이 비약적일까요? 만국 공통 언어, 마음을 그린 그림들...... 그래서 이 말을 참으로 인용을 하고 싶었지요. 아래, 제가 판때기채로 들고나온 그림판은 여태까지 없었던 간단한 그림으로도 그, 그림에 관한 감상의 교환을 통하여, 지금까지는 없었던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졌습니다. 그림도 그리고.....배우고.....교분도 나누고...이 아니, 일거 삼득이 아닐손가? 제가 오늘은 한판 뚝 떼내어 들고 나왔습니다. 자~~ 함께 구경하실까요? 297/이요조 ********************************************************************오에카키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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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 297 2002/1/9 (Wed.) 11:36:44 헤~~ 당연히 요케...됐구먼유 지가 넘 성급했남유?
koelf 2002/1/9 (Wed.) 12:36:06 봄 처녀 되시었구나.. ^^
297 2002/1/9 (Wed.) 14:17:54 봄처녀 Ice Bar~~ 되다 누구 나 좀 말려주지... 아추~~ 秋月아~~
청산 2002/1/9 (Wed.) 18:26:02 애그~~ 내 그리될 줄 알았시요~ ㅋㅋ 따끈한 아랫목이나 지키실 일이지....ㅉㅉㅉ
이요조
2002. 1. 19. 23:01
2002. 1. 19. 23:01
.. .. .. .. .. src="http://www.inha.net/technote/print.cgi/cat.JPG?board=22&img=cat.JPG&xfile=1"> 장미와 고양이 ♡ 어느날 갑자기 한 순간 담장에서 휙 떨어져 덮쳐 오듯 다가 온 사랑 살금살금 날렵하게 예리하게 발톱세운, 언제나 촉각을 곤두세워 서로를 주시하던 체면따윈 잠시 벗어 묶어두고 우리는 서로의 욕망을 나눠 가졌지 할퀸 상처로 따가운 애욕은 본능 앞에 차라리 처절해서 밤마다 그리움에 울며 울며 서로를 찾아 배회 했었지 그래 그랬었어 서로를 절실히 원했어 구애를 했었지...은밀한 사랑 아무도 모르게, 사랑의 유희가 시작되면 우리들의 암팡진 사랑의 세레나데는 교교한 달빛을 타고 밤바람에 날리면 우린 서로를 꿀처럼 탐하고... 이슬 젖은 밤길을 터벅 터벅 그렇게 헤어져 돌아왔지 내 눈을 가만히 드려다 봐, 우린 순간에 충실했어 최선을 다했었지 그 게 다야 언젠가 또 달이 떠 오르면 난 널 찾을지도 몰라 다시금..... 불현듯, 아~~ 아~~ 사랑해~~ 널 사랑했어~~ 내사랑~ 안녕 . . . 글, 그림 /미루 src="http://www.ipost.co.kr/images/gif112/flo1.gif"> 제목: sigur ros - stara ifur *Lee yo jo* 사랑의 증거들~쩝!
..
이요조
2002. 1. 19. 22:56
2002. 1. 19. 22:56
◎ 이름:이 요조 ◎ 2002/1/15(화) 00:13 (MSIE5.0,Windows98;DigExt) 211.198.117.193 1024x768 꽃 이야기 송기숙님은 참 좋겠다. 부군에게서 자주 꽃다발을 받아보았다니..... 난 언젠가 그에게 말했다. "이번 결혼 기념일엔 뭐 없어요?" "와? 와그라는데? 니만 결혼 했나? 나도 했따!" 라는 대단한 말로 우리부부사이에 잊지못할 어록을 남기고 난 기대치를 꺾어버리고 살았다. 꽃~~ 나처럼 꽃 좋아하는 사람 어디 또 있을까? 아마 내가 죽어 다시 태어난다면... 남자로 태어난다면 아마 님의 부군같은 사람이 아닐까한다. 옛날엔 꽃이 귀했다. 우리 집 뒤안은 산 자락이 끝나는 곳이어서 뒷마당이 큰 천마산의 가장자리 동산의 한 형태였다.(남부민동 1가 69) 물론 그 언덕위로 집들이 더 있고.....그 위로는 큰 도로가 또 나 있는... 부산 특유의 지형세지만, 그렇게 뒤안이 비스듬하게 4층 정도 높이 까지 담장이였다. 내가 오를 수 없는 제일 가파른 윗쪽에는 키가 큰 미루 나무가 두 그루나 있었다.(나중에 베어졌지만) 씨알 굵은 오래 되었지만 잘 크지 않던 아담한 감나무가 한 그루 있었고 군데 군데...듬성 듬성 있는 바위를 타고 난 곧잘 올라갔다. 흙 한자락 보이지 않게끔..시멘트로 잘 손질된 앞 마당에 비하면 뒷마당은 나의 참 좋은 놀이터였다. 학교가 파하고 오면...누가 부르는 듯 난 혼자 그 작은 등성이를 올라가곤 했다. 그 곳에는 새 순들이 아주 앙징맞게 자라나고 있었다. 개나리 큰 무더기로 늘어져 있었고... 개나리가 있긴 있어도 개나리가 잎과 꽃이 동시에 피는 개개나리 였다. 개나리는 잎이 없을 때 노란 꽃 그 자체가 예쁘지, 잎이 피고 난 뒤의 꽃은 유명무실해진다. 초록을 이길 수 없는 노랑빛이라니, 등성이 높은 곳에는 머위가 많이 자랐는데...(아마 적산 가옥이라....일본인들이 머위를 좋아해서 ) 예전부터 심어져 있어왔던 것이라 봄만 되면 제일 먼저..... 아주 예쁘고도 뾰족한 싹을 피워 올렸다. 난 늘 그 새삮이 아닌줄 알면서도 엉뚱하게도 제라늄 잎으로 변하기를 마음 속으로 기원했지만.... 앙징맞은 작은 잎새는 내 마음도 모르고 자꾸만 자라났다. 왜 그렇게 꽃 씨가 귀했을까? 왜 꽃씨를 받아두었다가 파종하지 않았을까? 우리 집엔 기껏해야 분꽃 노란 붓꽃이 전부였다. 아 그리고 앞 마당엔 어머니가 잘 기르시던 손바닥 선인장이 여러 盆 자라고 있었던 게 다였다. 돌틈 사이로 물이 늘 쫄쫄쫄 소리를 내며 흘러 내렸고... 우리들(형제)은 종종 연못을 파놓고는...(흙탕물)좋아라 했다. 엄마 아부지는 뒤란에 물이 고여 있으면 좋지 않다고 우리가 파 놓으면 메꾸어 버리시고 그 물줄기를 눈에 띄지 않게 하수구로 흘러 가게 하셨다. 그러면 또 우리는 어느 날 합세하여 부모님 몰래 물 줄기를 막아.. 구덩이를 또 파고..... 언제나 뒷마당엔 상추며 쑥갓을 심어..... 봄이면 어머닌 그 걸 쏙아내어 여리디 여린 잎새를 손바닥 한 가득 놓으시곤 쌈밥을 싸셨다. 지금도 상추를 별로 달가와하지 않는 나는 그런 엄마가 이상하여서 "엄마 풀이 그렇게 맛 좋아?" 하며 고개를 늘 갸웃댔다. 나는 그 개개나리를 늘어지게 꽂는 것도 좋아하였고 강아지 풀 꽂는 것도 좋아하였고 아무튼 내가 중학교(부산여중)를 다닐 때 쯤은 돈만 있으면 꽃을 사다 날랐다. 하도 말리다 못한 어머니의 말씀 한마디가 50을 넘긴 아직도 시퍼런 멍으로 가슴에 남아 있다. "내가 보니 못난이들이 주로 꽃 들고 다니더라" 예나 지금이나 학교가 파하면... 꽃 장사들이 학생들 주머니 사정에 맞춘 꽃 다발을 가져 오는데 참 쌌다. 그러나 그 꽃들은 모두 신선도가 한참 떨어져서... 집에 와서 꽃아도 며칠 바라 보질 못했다. 그 것을 늘... 안타깝게 여기시던 엄마의 말씀이라니... 참 또 있다 ..... 시골 외가에 가면....봉선화 키가 큰 노란 장다리꽃 여름 밤 하얀 박꽃..... 산에만 가면 청다래 넝쿨... 채송화..... 그렇게 꽃을 좋아하면서...씨를 받아 파종할 줄은 왜 몰랐을까? 다시 우리 동네 어느 집에는 여름에 우툴두툴한 오렌지색 열매가 달리는 '여자'라는 줄기 식물을 그렇게나 부러워하면서도..... 씨앗을 구해다가 뿌릴 일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저 뿌리가 있는 붓꽃이나 들국화정도..... 그 것도 포기 나누기도 전혀 모르는, 난 입버릇 처럼 말했다. 이담에 크면 난 꽃집을 할거라고, 아마 그 당시 유행하던 노래 "꽃 집에 아가씨는 예뻐요" 가 한참 잘 나가던 때 였던 것 같다. 내가 진주에 잠시 살 땐가 보다. 이사하고 얼마 뒤 친정 형제들이 모두 올라왔다. 진주시 상평동 촉석 아파트...(20년전) 내 형제들은 동 호수는 잊었지만 베란다에 화분이 제일 많은 집으로 용케도 잘도 찾아 왔었다. 꽃~~ 정말 꽃이고 싶었다. 꽃~ 말만 해도 행복해지는 꽃, 생각만 해도 행복해지는 꽃, 저절로 웃음이 번져나는 꽃, 꽃, * 송기숙님 '마른 꽃을 읽고 그냥 써 본 글입니다. 그림은 꼭 일년 전, 마우스 그림 막 시작하고 첫 솜씨입니다* 미루 Visions ♪ Cliff Richard
이요조
2002. 1. 18. 15:51
2002. 1. 18. 15:51
◎ 이름:이 요조 ◎ 2002/1/18(금) 01:18 (MSIE5.0,Windows98;DigExt) 61.80.4.245 1024x768 ◈회상 속으로의 여행, 그리고 치유 2 ◈예리 공포증 바다 소리~ 바다 음향을 생뚱맞게 넣은 이유는 바다소리가 사람 마음의 치유에는 제일 효과가 높다고 그러네요. 우리는 살다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져 오면 누구나 다들 탁 트인 바다를 보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몇 해 전, 유명을 달리한... 연극 배우이자 탈렌트인 손창호씨도 죽기 전에 소원이 바다가 한 번 보고 싶다고 그러는 걸 보았지요. 저 역시 오랜 병마에 시달린다면 속이 다 시원해질 바다가 제일 보고 싶을 것이고 살다가 슬프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에도 바다를 찾을 것 같습니다. 회상 속으로의 치유하기 두 번 째 이야기, 전, 바늘을 잡지 도, 잘 쳐다 보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형제들과 함께 두레상에서 밥을 먹을 때,,,,, 그 들의 젖가락이 내 눈을 찌르는 것 같아... 너무 괴로울 때는 부엌으로 암말 않고 달려나가 찬 냉수를 벌컥대며 들이키고 나면 좀 진정되곤 하였습니다. 내 언니가 부산대학 간호과를 들어가자....난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주사 바늘도 생각하기 싫었기에, 어느 날 언니는 이상한 내 증상이 책에 있노라며... 의학책을 펴 주었습니다. "예리 공포증" 그 외에 더 있는 "고소 공포증" "밀폐 공포증 " 등등이 있었습니다. 고소 공포증은 물론 비행기를 탄다거나... 높은 곳을 오르지를 못합니다. 얼마 전 TV를 보니... 시물레이션으로 점차 강도를 높여가며 치유하고 있었습니다. 밀폐 공포증이란... 혼자서 빈 방에 있다거나 혼자서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는 사람을 이른답니다. 혼자만 갇힌 것같아 너무 불안하답니다. 그런데..예리공포증은 잘 없는 걸로 압니다. 가만히 무슨 뾰족한 걸 생각만 해도... 눈이 감기면서 괴롭습니다. 방송인.....손숙씨와 같이 진행을 맡아보는 김승현씨가 식사를 하러가면 디저트 과일에 이쑤시게 꽂힌 것을 죄다 빼 버린다며 놀려대는 이야기를 듣고는 너무도 반가왔답니다. "아~ 그도 나와 같은 예리공포증을 앓고 있구나" 하며..... 그래선지 과일을 깍아보질 못했습니다. 칼이 싫어서 대충 울퉁불퉁 깍다보면 어머니께서 "얘야 관둬라 사과 절반도 더 버리겠다" 시며... 어느 때는 손님으로 갔다가 맞은 편 안 주인이 과일을 들고 깍을 때..그 칼끝이 눈을 찌를 것 같아 미간이 찡그려 집니다. 거기다 한 술 더 보태.....그 집 앨범을 가져다 주면서..... 가족사진 설명회가 있는 날이면 사진 네 귀퉁이 때문에... 난 너무 괴로워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물론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지요. 어쩌다 간혹 그런 증상이 도진답니다. 그런데 그 증상이 사그러 들었습니다. 미싱으로 홈패션을 즐기면서 그나마 서툰 솜씨의 창작욕구에 혼신을? 다 하다보니 증상은 자연치유로 잊혀졌습니다. 아무리 미싱바느질을 해도 손으로 해야 하는 마무리도 필요하지요. 이상하게도 즐거운? 바느질은 하루 종일을 해도 괜찮아지는 것입니다. 그래도 유난히 손끝에 뾰족한 느낌이 전이되어 오는 날은 그만 둘 수 밖에 없습니다. 지난 여름 유난히 더운 날......모임이 있어 카페에서 모두 시원한 쥬스를 한 잔씩 마시고 난 후...담소중에.. , 키가 큰 빈잔에 꽂힌 스트로우가 눈에 거슬려 왔습니다. 전 아가씨를 불러 빨리 치워 달라고 했습니다. 그 때 주위 사람들은 제가 성격이 걸걸하니까 괜히 장난하는 줄 알았답니다. 그런데 아가씨가 빨리 오질 않고.....난, 재차 큰소리로 다시 불러대서...... 아마 많이 신경질적이였나 봅니다. 전 계면적어서 "예리 공포증" 이야기를 그만 실토하고 말았지요. 그랬더니... 그 중 한 분이 물으셨습니다. "혹시 어렸을 때....날카로운 무엇에 찔리거나 다친 적 없냐고?" 처음엔 없다고 했습니다. 그랬다가 불현듯 떠 오르는 생각 "피!~~ " " 맞어 피야, 피!!" 저희 집은 딸 둘을 낳은 후 귀하게? 얻은 제 아래 남동생입니다. 얼마나 특별대우를 받고 자랐는지..모릅니다. 저희들도...아예 남동생은 그러려니하고 그렇게 대우하고 인정해 주었지요. 어느 날 옆집 담장에 나팔꽃이 너무 곱게 피었습니다. 나도 곁에 있었는데..... 내가 그 꽃을 따 달라고 했는지 그 것은 확실치는 않습니다. 동생은 두 다리를 양 담벼락에다 대고는 올라갔습니다. 나팔꽃은 담장에 철조망을 감고 아주 예쁘게 피어 있었습니다. 다 올라간 남동생은 아마 뾰족한 곳에 찔려서 앗 하는 순간.. 발은 미끄러져 땅바닥에 내동댕이 쳤는데..... 피가 쏟구치는 손목은 잘려 나간 듯 덜렁거렸습니다. 피는 붉게 무섭도록 쏟아졌습니다. 이제 곧 귀한 동생은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처음 보았습니다. 피가 그렇게 붉고, 그렇게 많이 쏟아지고, 그 광경으로도 아랫 윗 턱이 마주쳐 다그닥대는 공포심도 준다는 것, 뭔지 모르지만 어두운 죽음 같은 것도 떠 올랐습니다. 그랬습니다. 난 그 후로 그 담장을..애써 시선을 비꼈습니다. 그리고 간혹 간간이...철조망 생각이 떠 올랐고 그 때마다 미간이 찌푸려졌으며..... 철조망에 감아둔 작고도 예리한...날카로움이 상상으로도 내눈을 충분히 찔러댔습니다. 하~~ 이젠 많이 고쳐졌습니다. 그 덕에 칼질은 서툴지만, 그래도 아직은 핀으로 뭘 찌르거나 할 때는 썩 유쾌하진 않답니다. 아 그리고 또 하나.....식사 할 때.....어떤 분들은 젖가락을 들고 마구 말씀하시더라구요 그럴 때는 아무리 먹성 좋은 저라도, 그만 아찔하답니다. 마지막 또 하나, 손님 앞에서 과일을 깍을 때는 상 아래서 얌전히 깍으면 어떨까요? 칼끝이 손님을 향하는 것도 좀 실례처럼 느껴지지 않으세요?
이요조
2002. 1. 18. 10:42
2002. 1. 18. 10:42
◎ 이름:이 요조 ◎ 2002/1/16(수) 22:19 (MSIE5.0,Windows98;DigExt) 211.222.169.219 1024x768 회상 ◈회상 속으로 치유하기 겨울답잖게 비가 추적 추적 내린다. 엊그제 밤에는 뇌성마저 울린다. 잠도 오지않고 가만 누웠으려니..... 유년시절 회상속으로 스르르 미끄러지듯 빠져 들어갔다. 어줍잖은 글이라도 쓰면서.....나는 나를 치유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적어도 그 이유만이라도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을,,,참, 다행이라 생각한다. 여태껏 나는 글 쓰기를 주저했고 두려워서 기피해 왔었다 왜냐면, 나에겐 징크스가 있기 때문이다. 글만 좀 계속해 쓰면 나에게 불행한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내 자신 속에는 나도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너무나도 많이 웅크리고, 아니, 또아릴 트고 앉았다는 표현이 아마 더 적절할 것같은....성장기, .....하나 하나 되짚어가면...나의 어느 부분이 어디서 잘 못 되었는지....... 나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아주 조금씩 발견해 내고 스스로 흠칫 놀라곤 한다. 치유까지는 모르겠다. 50이 넘도록 살아오면서... 내 몸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나도 알 수 없는 나속으로의 여행을 떠날까한다. 아마...아이들을 기르는 부모들은 ,,딱히 똑 같진 않을지라도 참조하면 매우 좋을 것 같다. 미루 칼럼에는 눈으로만(늘 열려있는 상태니까) 보고 갈 내 형제들, 내 조카들이 있을 터이고....큰 아이가 아파서 투병생활을 할 때, 친구의 근황이 차마 궁금해서 거의 생중계하는 내칼럼을 아예 열어두고 보았을 아이의 친구 두서넛~ 아마 어제로써 마지막 아이가 보따리를 싸서 떠난 걸로 안다. 내가 아는..... 송기와 그니...그 외 다수..날 잘 아는 이들이 멀찌기 서서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좀은 부끄럽다. 나를 잘 아는 사람들 앞에서.....적나라하기가 더 더욱이나....., 글이란.. 詩와 달라서.. 아무런 옷을 걸칠 수 없다 백일하에...글 쓴이의 생각과..관념 그 모든 것이 다 드러나게 된다. 마치 발가벗기운 것처럼, 숨을 곳도 가릴 것도 없어야 진정한 글이 된다. 과거 속으로...내 유년기, 성장기 속으로 들어가 보면 특이 할 만한 일들이, 그 후윳증이 아직도 지속되는 것을, 그 이유를 짚어 나가 봐야겠다. 누구나.....자기는 자기가 알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그런 자기를 안다. 나 역시.. 그런 문제들이 거의 다가 성장기에 기인된다는 것을... 이제사 반백을 넘기고야 안다. 어려서 부터 나는 꿈을 아주 신통하게도...아니....소름이 돋을 정도로 잘 맞힌다. 거의 대부분 잊혀졌지만... 아주 중요한 것은...지금껏 어제 일처럼 뇌리에 선연하다. 위에 그림은 내가 태어나고 22살까지 나를 키워 주었던 집이다. 하도 그 집이 지겨워 이사 한 번 가는 게 소원인 우리 형제들은 요즘도 모여서 이야기 하면.. 다들 어릴적 꿈을 자주 꾸고 바로 이 집이 꿈속에 단골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오늘 내가 이야기 하려는 것은, 어느 글에선가 이야기 했었던... 내가 불질도 칼질도 잘 못한다는 것, 오늘은 그 불질에 대해서 이야기 해 봐야겠다. 내가 아마 열 두어살 때 쯤, 바로 그림에 보이는 이 다다미 방에 우린 다 모여 앉아 있었다. 아마 여름 방학 장마 때였었나 보다. 우리 다섯 남매와 엄마, 이렇게 바깥 유리문만 닫고는 억수로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는 중이였다. 그 때 내가 앉은 걸음으로 엄마 코앞에 다가가서는 " 엄마 있잖아. 어제밤 내꿈에... 저기 저 전봇대에 불 났어" 어쩌면 다섯남매가 그 전봇대를 바라보는 순간과 내말이 떨어지는 순간, 동시에 우린 모두, 우리들 바로 눈 앞에 확 끼치는 불빛과 굉음에...... 다다미 방을 건너... 또 안방을 건너...뒷 골방까지 다들 데굴 데굴 공처럼 굴러 들어가서는 서로 부둥켜 안고 고개만 다들 가운데로 쳐 박은 채로 덜덜 떨고만 있었다 그런데.....영문도 모르며...벌벌 떨고 있는 우리 다섯 남매와 놀라셨을 우리 엄마, 엄만 어느 결에 어디서 가져오셨을까? 나에게 유엔 성냥통을 내미시며...불을 그어 버리라신다. 왜? 왜? 엄만 왜? 그랬을까? 쬐그만 기집애는 무섭고 떨려서 손이 달달거렸는데..... 엄마가 그러시니...마치 좀 전에 불로내린 재앙이.... 나의 방정맞은.요사스런 말한마디로 그렇게 된것처럼, 어린 내 생각에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아마 우리 집 마당에 무슨 큰 재앙이 내린 것으로 짐작한 나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죽기보다 싫은 성냥 한 개피를 그어서 내 던지고.. 그 한 개피 성냥으로 내 요망한 꿈이 상쇄 돼 주기를 빌었다. 정신을 차린 후 우리 모두들은 바깥으로 우르르 나가 본 즉..... 전신주...변압기와 전봇대 나무는 불 붙어서 한참을 타다가 검은 연기만 내고 꺼져가는 중이였다. 벼락맞아 떨어지고 깨어진 애자 사금파리는 미치광이에게 좋다고..... 그 것마저 다들 가져 가 버린 뒤였지만 구경꾼이 얼마나 모였는지...그 광경이 실로 구경이였다. 나는 숨도 쉬지 못했다. 이 일이 다 나?에게서 기인된 일 같았으므로...... 나는 아직도 성냥 키는 일이 너무 두렵다..... 그래선지..라이터도 못켠다. 난 왜 내가 불질을 못하였는지... 요즘 옛일을 떠 올려놓고 나니 아~~ 그랬었구나, 아~~ 이제사 그 원인을 안다. 엄마가 왜 내게, 벼락에 놀란 어린 내게, 그 모든 것이 내 책임인냥 겁에 질린 고사리 손에 부정의 성냥을 그어대게 하셨는지... 이제사 어렵사리 그 원인을 알아내도... 내가 과연 불을 잘 켤 수 있을지 장담조차 못하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물어 봐야 하는가? 아니면? 지금쯤, 내가 끽연이라도 하고 있을까? 아무튼 요즘 생활은 성냥을 그어댈 일이 없어졌다. 나에겐 얼마나 잘 된 일인지 모른다. 이요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