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껏 먹어봐야 소주 한 병이면 족하지만
요즘 이 술이 제법 늘었다.
걸핏하면 술을 찾는다.
남들은 집에서는 거의 술을 하지 않는다는데
난 집에서 더 자주 술을 찾는다.
아내와 함께 마트에 가면 나 때문에 계산서 금액이 마구 는다.
천세주 한 세트(6병)에 소주 몇 병씩은 꼭 보태니...
기분 내키면 맥주도 몇 병 얹고...
밥상에 꽁치 한 마리만 올라와도 한 잔.
무슨, 무슨 부침개만 있어도 한 잔.
국에 고기 건더기만 있어도 한 잔.
기분 나면 농촌통자닭 날개로만 시켜서 또 한 잔.
우리 엄니하고 집에만 있는 동안 제법 술이 늘었다.
처음엔 별로 간섭도 하지 않던 아내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술을 잦게 찾으니 이젠 견제를 한다.
어제도 딸이 오뎅(표준말은 '어묵'이고만요)이 먹고 싶다고 해서
아내가 오뎅국물을 해서 먹는데 술이 딱 한 잔하고 싶었다.
그러나 요즘 지나치다 는 아내의 간섭에 그냥 꾹 참고 말았다.
오늘은 아내가 모임이 있어 외출을 하고
먹다 남은 식은 밥이 먹기 싫다는 핑계로 딸과 함께 외식을 하러 갔다.
뭔가 걸쭉한 걸 먹으려다가 딸이 갑자기 설렁탕이 먹고 싶다 기에
새로 생긴 큼직한 설렁탕 집 거실 한 가운데 앉아
한일전 축구를 보며 기분 좋게 소주 한 잔 했다.
남들이 보기에 애인 사이는 아닌 것 같고,
아비와 딸 사이인 것 같기는 한데, 설렁탕 한 그릇 시켜놓고는
"짠"하고는 쭈욱 마시고, "짠"하고는 쭈욱 마시고 하니
옆의 사람들이 곁눈으로 자꾸만 쳐다본다.
설렁탕 반찬으로 나온 김치와 깍두기를 안주 삼아 맛있게 먹었다.
그놈의 축구까지 이겼더라면 금상첨화였을 텐데
다 끝나고서는 한 골 먹어 좀 기분이 그랬다.
제 아비 소주 실력은 기껏해야 소주 한 병인데
우리 딸아이는 기분 내키면 소주 세 병을 먹고도
제 친구들 다 집에 데려다 준다나 어쨌다나.
자주 먹는 것 아니니 크게 걱정할 건 없지만 딸을
이렇게 키워도 될는지 모르겠다.
대학을 다 마쳐갈 때까지 이제껏 별로 신경 써준 것도 없어
고맙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미안하기도 했는데
3학년을 마치고 어학연수를 가고 싶다고 해서 기꺼이 허락을 했다.
내일 모레면 호주로 한 1년 정도 떠난다는데
다 큰 딸아이 혼자 보내려니 그래도 조금은 마음이 불안하다.
무사히 잘 갔다오기만 빈다.
그나저나 딸애가 없으면 이제 누구하고 술을 같이 하지?
아내는 한 잔도 못 마시는데...
술 마실 때마다 딸아이 생각하면서 울지나 않을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