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의 남자친구는 군인이 되었다.
그 남자친구가 입대한 다음날부터
우편함을 보는 딸아이의 눈길이 봉숭아 꽃봉오리처럼 상기되는가 싶더니
언제인가부터 곱게 물든 갈잎처럼 애처로워 보인다.
전화를 걸거나 집에 올 때면 의례 첫 질문은
“엄마, 편지 안 왔어요?”
“응”
“한 통도?”
“응”
늘 선배다 친구다 군사우편이 넘쳐 나던 우리집 우편함이 어쩐 일인지 요 몇 일
텅 빈 채로 문을 열 때마다 내게도 시니컬한 미소를 보내오니..대답하기가 민망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집 우편함엔 잡다한 우편물들과 함께 청색 소인이 너무도 분명하게 찍힌
편지 두 장이 환한 빛으로 가로누워있는 게 아닌가.
가끔씩 본 적이 있는 선배의 이름과 또 다른 하나의 이름이 또박또박하게
적힌 편지 '군사우편'…
흠…반가워라
금새 환하게 웃음짓는 딸아이의 얼굴이 떠오른다.

먼 처녀적,
그렇게도 내 마음 설레게 만들던 군사우편!
세월의 흐름은 유수와 같다던가….
너무 많이 써먹어 일상어로 퇴락해버린 그 말이 이럴 땐 또다시
가장 빛나는 언어처럼 불쑥 떠올라 제 자리를 찾는다.
군사우편을 손에 들고
나는 쉼 없이 흘러가버린 세월을 거슬러오르는 듯 후훗~ 하고
묘한 웃음소리를 내어본다.

그러다 문득 걱정이 앞선다.
딸아이가 이 편지를 보려면 앞으로 4일은 더 기다려야 된다는 사실.
"그래 이 편지를 기숙사로 보내자."

나는 딸아이가 하루라도 빨리 편지를 받아보게 해주고 싶었다.
편지를 다시 봉투에 넣고는 분명하게 기숙사 주소를 쓴 후, 우표를 붙이고
우편함의 빨간 문 안으로 고이 들이밀었다.
이틀 후면 딸아이의 손에 닿으리라는 계산과 함께...
"잘 가주렴 편지야.."

딸아이에게 전화를 걸어,
"얘야, 편지가 지금 너를 향해 마구 달려가고 있단다"했더니
“우와~ 엄마 고마워”
“그런데 이왕이면 택배로 보내지 그랬어요? 헤헤”
“에구..못 말리겠구먼 내 딸”
“암튼 엄마, 무지 고마워요..사랑해..”

이틀 후,
그렇게도 좋아하던 딸아이의 목소리가 수화기 저쪽에서 풀이 죽어 들려온다
“엄마..편지가 안 왔어요”
“조금 더 기다려봐. 내일쯤은 충분히 도착할 꺼야”
“응”

사흘 후,
“엄마, 정말 제대로 보낸 거 맞아요?”
“기숙사 주소를 불러보세요”

나흘 후,
“엄마 난 몰라…나 오늘 집에 가기 싫어” 울먹인다
아, 어쩌란 말인가 이 참담함을…편지를 집에다 가만히 뒀더라면
기숙사에서 돌아오는 오늘은 틀림없이 보게 될 것을...

닷새 후,
딸아이를 마주보며 뭐 먹고싶은 거 없냐고 물어본다.
“…싫어…”

엿새 후,
우체국으로 전화를 걸어본다.
등기가 아닌 일반 우편물일 경우 확인할 방법이 없다는 우체국 직원의
친절한 설명을 들었을 뿐…수화기를 내려놓는 내 가슴 속으로 쓰라린 후회가 몰려왔다.

택배는 아니더라도 등기우편이라도 이용할 것을…
급한 마음에 동네 우편함으로 달려갔으니 이럴 어쩐단말인가...

딸아이의 손전화기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본다
“딸의 마음 아프게 해서 정말 미안한 엄마야,,”
띠디딕~ 하고 금새 답이 온다.
“아냐 엄마..골 내서 미안해 기다려볼께”

이레와
또 여드레 날이,
먼 바다의 신비를 찾아 떠나는 달팽이의 걸음처럼
아주 길고 느리게 우리의 곁을 지나갔다.

그리고
편지를 보낸 지 9일째가 된 어제, 딸아이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편지가 왔어요”
예전의 그 밝은 목소리가 아닌 왠지 조금 갈라지게 들리는 딸의 음성..

“정말이야? 정말 다행이네..그래 뭐라고 했던?”
“응..그냥 시시해..ㅍㅍ”
“그래? 시간이 없었을 거야 너무 실망하지 말렴”
“엄마한테 짜증낸 게 미안해서 그러지…”
"엄만 괜찮아"

하하하 호호호 까르르 깔깔
수화기를 타고 울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9일간이라는 참으로 긴 날 동안 우리 모녀가 함께 겪어야했던 고통도 끝이 나고 있었다.

여자의 삶..
아니 나의 세월들이 이렇게 속절없이 흘러만 간다.
남편에게,
두 아이들에게,
나를 묻어버린 지난 세월들...그러나 그게 절대 쓸쓸함 만은 아닐 것이다.

딸아이의 군사우편을 통해
지난날을 잠시 반추해보며 눈가에 잡힌 주름살들을 정겹게 세어본다.


(2002.11.8. 작가--솔향)































그림/이수동


한 때의 젊은 날을 같이 보냈던 친우,
이윤' 仁兄에게 보내는 부치지 못한 편지.



윤 仁兄!
仁兄과 소식이 끊긴지도 벌써 10년이 다 되었습니다.
어디선가 사회의 소금 같은 존재로 살고있을 仁兄에게,
이미 10년 전쯤에 보냈어야할 편지를
이제서나마 이런 공간을 빌려 보냅니다.


1973년 봄이었으니, 꼭 30년 전의 일입니다.
어느 화창한 3월의 봄날.
그 해의 봄도 여느 해처럼 어김없이 화창했지만,
내 마음은 한없이 어두웠던 어느 날의 얘기입니다.
仁兄이 알다시피,
그 해는 내가 아버지를 영영 잃었던 해이기도 하지요.
(그 땔 생각할 때마다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


인형이 알다시피,
내게는 오누이처럼 지내던 S가 있었지요.
그 아이는 우리들보다는 한 살 아래.
남녀가 유별하던 시절이었건만,
양쪽 집안에서 자유스런 왕래를 별로 간섭하지 않는 사이였지요.
그 집은 딸 부잣집(8녀), 우리집은 딸이 생산이 잘 안 되는 집이었습니다.
(아버지 형제들이 얻은 자식들 총14명, 그 중에 딸은 단1명)


S의 식구들은 이상하리 만치 내게는 무조건 친절했고...
우리 부모들을 그 아이를 친딸같이 대했습니다.
이것저것을 사주시며 밥도 주고 재워도 주고 정말 한 형제처럼 지냈습니다.
특히 아버지의 귀여움을 독차지했지요.
그 아이와 나와의 이러한 관계는 仁兄을 포함한 모든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이 세상을 하직하며 내게 여러 가지 당부를 하셨습니다.
종가의 장손으로서의 기본책무, 어머니를 위로하라 등등.
거기에 덧붙여, 장성하면 "S를 너의 짝으로 맞아라." 하는 말로 유언을 마치셨습니다.
그 아이가 아버지의 장례를 마칠 때까지, 줄곧 상복을 입었던 걸 기억하고 있나요?


워낙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 살아오던 나'는
그때까지 아직 그 누구에게서도 "異性"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던,
아니 표현하지 못하고 지내던 시절이었지요.


아버지의 장례를 마친 후의 어느 봄날에,
그 아이와 나는 집에서 한 5리 정도 떨어져 있는 동산으로 봄소풍을 갔습니다..
봄나물을 뜯었던 것 같은 희미한 기억.


한참을 이곳저곳 헤매다 둘은 양지바른 곳에 앉았습니다.
"오빠! 아버지 말대로 할거야?"
"뭘?"
"나 말이야, 나중에 오빠와 살게 되냐구?"
"글쎄에....., 어쩌면...., 그렇지만 난 우선 군대부터 가야 돼"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뒤
"오빠! 나 오늘 좀 슬픈데, 나 좀 안아주면 안되나?"
"......."
난 그날 처음으로 그 아이를 이성으로 안아봤습니다.


仁兄이 기억하는 대로 그 애와 나는 많은 우여곡절 속에
결국은 각자의 길을 걷기로 했지요.


그리고 내가 결혼을 하던 날.
"신랑입장!" 하는 소리를 들으며 식장 입구에서 발걸음을 떼려는 순간.
"오빠! 나 왔어."
갑자기 피가 역류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아! 주간지에 내 이름이 나겠구나.'하는 생각도 스치고......
발걸음이 앞으로 나가질 않더군요.


"걱정 마, 그냥 보낼 수 없어, 축하하러 온 거야."
이 말을 끝으로 그 아이를 다시는 볼 수 없었습니다.
열 일곱에 만난 그 아이를 스무 일곱에 그렇게 보냈습니다.


그 후에 나는 정말로 한 곳에 붙어있질 않고
아내도 자식도 아버지가 당부하던 장손의 길도 버린 채
이 나라를 떠나 수많은 곳을 헤매며 살아왔지요.


10년 전 귀국해서 仁兄의 집에서 仁兄과 소주를 한잔 기울이던 날이었습니다.
仁兄의 어머님이 내게 충격적인 말씀을 하셨지요.
"애, ㅅㄱ야! S가 시집을 안 가고 사는 건 너 때문이다."
넌 그 애를 그렇게 버릴 수가 있었더냐?
그 애가 가엾지도 않더냐?
그 애의 불행한 모습을 보고,
우리 윤이가 얼마나 오랫동안 속상해 했는지 알기나 하냐?
그 앨 버린 네가 잘 살 수 있었을까?
버릴 거라면 더 일찍 버리든지!"


S가 결혼을 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걸 난 그날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 후의 S에 관하여는 관심조차 없었던 것 같습니다.
더욱 충격적이었던 건 仁兄이 그 애 때문에 오랜 기간을 고심했다는 사실입니다.


며칠 전 大阪을 거쳐 京都 그리고 岡山로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되돌아오는 신간선 열차에서 차창 밖을 내다보며 술을 한 잔 했습니다.
왠지 예전의 그 삼십 년 전의 날들을 생각하며,
혼자 슬픔에 잠겨 맥주 캔을 여러 개 비웠습니다.
열차는 갔던 길을 되돌아오고 있었지요.
나도 그렇게 되돌아가고 싶어하는 시절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지요.
숙소에 도착해서도 내내 잠을 설치다 귀국했습니다..


나를 슬프게 만드는 게 있습니다.
그 아이가 아직도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산다는 것과
仁兄이 그 아이를 맘속에 두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모든 게 내 잘못만은 아니겠지만,
맘속에 무언가가 남는 것은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십여 년 전에 마음속에 써두었던 편지를
오늘 이렇게 밖에 보낼 수가 없습니다.
예전의 자기중심적이었던 나를 부디 용서해주길 바랍니다.
仁兄에게서 또 S에게서 나는 돌이킬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빼앗고 말았다는
사실을 영영 잊지 못하고 살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윤 仁兄!
예전의 그 모습 그대로 仁兄과 한 번 만나고 싶습니다.
주먹다짐하다 코피를 흘렸던 그 날로,
바둑 한 수 물리지 못해 막말을 뱉어내던 그 날로,
등산 갔다 호우를 만나 이틀 밤낮을 산 속에 갇혀있던 그 날로,
그 때의 그 날로 진정 우린 되돌아갈 수 없는 걸까요?


제발 어디선가 仁兄이 이 편질 꼭 읽어주길 바랍니다.
仁兄의 건투를 마음속으로나마 빌어봅니다.


2003년의 어느 봄날에, 예전의 仁兄을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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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꽃다지




오솔길



 
시/채홍조



무수한 낯선 언어들
켜켜이 누워있는 산 길
저마다 은밀한 사연 품고
일제히 숨죽인 고요
산새 한 마리 푸드덕 하늘을 가른다 .


찬바람에 나신 되어 흔들리는
잠들 수 없었던 인고의 꿈
앙상한 어깨 포개고
새까만 잔가지로
황량한 잿빛 하늘 쓱쓱 쓸고 있다.


조각조각 흩어져
떨어지던 붉은 열망
발등에 차곡차곡 쌓아 올린
차가운 집념
발아래 묻어둔 연두 빛 소망.


어느 님이 떨구고 간
외로운 눈물 한줌
이끼 낀 바위틈에 촉촉이 묻어나고
연인들이 흘리고 간
다정한 이야기 꽃
푸새 위에 손잡고 하얗게 웃고 있다.


이제 다시 내일을 노래할 때
발아래 꿈꾸던 상념을 깨워
설레는 아침 사랑을 얘기하자.
아지랑이 조울 거리고
양지바른 언덕 밑에
노란 꽃다지가 방싯 웃지 않느냐.






사진/변승완


















◎ 이름:홀詩/이요조

님의 향기.......꼬리글과




      原題/님의 향기
       



      홀로쓰는




      한 사람을 소유한다는데
      깊이 생각 해 보았는가

      그것은 온전한 독점이 아닌
      공유(共有)라 불러야 한다

      한 사람에게
      그대의 전부를 줄 수 없듯,

      그러나 가랑비에 젖어
      늙소걸음으로 흔들거리는 이 어둠

      선 잠결에 붙잡은 허공가득
      그대의 체취가 찬란히 부서지고 있다

      아.........
      나는 지금 그대에게 오장육부를 내어주고 있구나






          副題/Re:그 사랑




          이요조

          그러는 그댄,
          곧 바스라질 것 같은 달팽이 등의
          얇은 껍질을 보았는가?

          그보다 박사(薄紗)얇은
          어미 고동의 껍질 이야기를 들었는가?
          모든 것 아낌없이 다 내어준 채

          잔잔한 물결위로 티끌처럼
          둥둥~ 가비얍게 홀로 떠 가는
          눈물의 껍질을 만나 보았는가?

          생명을 불어넣은 가 없는
          어미의 사랑이 거품으로 잦아들고 말,
          물그림자의 우울을 아는가?

          마지막 생명불 끝까지 지켜주마던
          그대 생명 온전히 지킬 촛불같은
          사랑의 도, 언약도 그에 버금가니

          모진 폭풍우 지나간 뒤
          사랑과 믿음만으로 견뎌 낸 미루나무 우듬지의 까치집과
          빛 속에 흔들리는 미루나무 잎새의 갈채를 보라

          사랑한다면...
          이 모두가 사랑이라면...
          깨어질 목숨 하나 그저 내어준들..무슨 대수라고,

          황사와 바람과 눈물로 얼룩진 이 봄 날에
          레테의 강에 띄워 보내야 할... 꽃잎이어든..아~~
          끊어져버린 연(燕)실을 차마 거두지 못하고

          선 잠결에 붙잡은 허공 가득
          임의 체취가 찬란히 부서지는 날
          오장육부(五臟六腑)가 아프게, 아프게, 단장(斷腸)되는..








      *광목천에 안료화 "태양"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원제 수선화에게-정호승 시)



















      빅토르 위고의 단편중 '93'이란 것이 있다.

      큰 배가 항해 도중 폭풍을 만났는데,
      배의 선창에는 수송용 대포가 실려 있었다.

      대포를 묶었던 쇠사슬은 큰 풍파를 견디지 못하고 끊어져 버렸고,
      대포들은 배를 파괴하며 무섭게 굴러 다녔다.
      몇명의 선원이 결사적으로 선창에 내려가 제멋대로
      굴러다니는 대포를 붙잡았는데...

      작가는 이 배를 인생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을 파괴하는 가장 무서운 적은 밖에서 오는 풍파가 아니고,
      배 안의 대포인 '미움'과 '원한'과' 분노'가 사람을 망가 뜨린다고.

      가장 실리적인 이상을 추구하는 자들의 집합체에서도
      '알지 못할 암시'의 경쟁에 늘 정신을 놓지 않아야 하고
      방관자의 모습이 아닌~

      대립하고 방어하려 무수히 보이지 않는 수고로 애쓰고,
      긴장하고 심적 무장을 해야하는 사회생활은~
      때에 따라서는 염증이 나기도 하지만 다른 표면에서는
      '실어증 환자'로 전이되는 추세가
      현대인의 신종병으로 드러나지기도 한다.

      틈새를 공략하려는 정신의 세계는 마음을 비우지 않고
      전투의 태세로 몰입하다 보면,
      자신의 철저한 뇌쇄적인 그늘에 잠식 되어져
      스스로의 외경으로 비화되고
      적잖은 파장으로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가미하게 되고...

      더러는 불특정 다수인에 대한 강도 높은 반감은
      새로운 사회문제로의 이슈가 되기도 한 것처럼
      최근의 뉴스를 장식하는 사건은
      모름지기 도외시 되어갔던 또는 흔한 합리화로 들먹거리던
      정신 이상자의 행동반경을 성급히 논하는 범주와 상통하기도 한다.

      내재되어 있는 감정의 분출은
      아주 다른 양상으로 개체에 미치는 '돌연변이 현상'이라고 평하기는
      또 무엇할진데..

      우리는 사소한 감기 정도만으로도 병원을 방문하여 치료를 구하듯이
      정신병이란는 병명은
      그런 사소한 '그럴 수 있음'이 '마땅한 흔한 병'으로 논하여져서
      병원 출입이 잦은 외국의 실례처럼
      관심도가 가까워져야 마땅 하려니와~

      오늘
      전혀 감각도 없이 몸속의 독약을 상시에 품고 사는
      우리의 현실과 대안을 직시해 볼때,

      어느 것에서건
      쉽게 안주해 버리려는 치사하고 안이한 습성 때문에
      많은 것에서 후에 남아있을 '화나게 함'과 '서글픔'과 '비정함'을
      충분히 자극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생각 되어진다.



      작가 : 유정 2003/02/23






      "고모 클 났다. 내 소원이 하나 있는데.... 꼭 들어준다꼬
      약속하마 내 말하고 안된다하마 나 집 나가뿔끼다!"

      나보다 한 살 아래의 5촌 질녀가 죽을 상을 하고 협박반
      애걸반으로 내게 한 말이다.
      나는 그때 여고 1년생이었고 그 애는 나보다 한 해 선배인
      여고 2년생으로 대구 수성못가에 있는 삼류고를 다니고 있었다.

      "와 그라노? 말해봐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마 다 들어주께 "
      나는 그래도 엄연한 고모로써, 속으론 무슨 말할까 겁도
      났지만 태연한척 그 애를 다그쳤다.

      "고모! 이거는 우리둘이마 아는 비밀로 할끼다 절대로!"

      그렇게 다짐을 하고는 워낙 엉뚱한 그 애가 내게 한 말인즉,
      보충수업을 땡땡이 치고 친구 몇이서 미성년 관람불가 영화를
      보다가 학생과 선생님께 걸렸다는 것이다.
      선생님은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호통을 치셨는데, 자기는
      선생님께 바쁜 부모님대신 고모가 오실거라고 말씀드렸으니
      고모가 학교에 와서 자기 담임을 만나뵙고 말씀을 잘 드려서
      제발 정학만은 면하게 책임을 지고 임무완수를 해 달라는 얘기였다.

      아니, 이 일을 어떡하나?
      유일하게 나를 고모로 인정해주는 고마운 그애의 면전에다
      "노"라고 말할 수는 없는 일.
      그러나 속으론...
      "아니야! 난 그애보다 더 어린 여고 일학년인데 어떻게
      그 애의 학부형이 될 수가 있나?"
      걱정만 태산이다.

      막내이신 우리 아버지의 막내로 태어난 나에게는 무려
      수십살씩이나 나이를 더 먹은 조카뻘들도 수두룩했다.
      그저 항렬로만 따져서 나를 두고 '할머니'라고 부르는
      소리도 아주 어린 나이적부터 들어온 나였으니...

      그러나, 유독 그애가 부르는 '고모'라는 말은 다른 이들이
      그저 항렬을 따라 높혀부르는 '할머니'와는아주 많이 달랐다.
      그 애는 늘 나를 진정한 '고모'로 대우를 해주었으니 얼마나 고마웠겠는가!
      그러니 어쩌랴...

      그 이튿날, 나는 담임선생님께 부모님이 위독하다는 거짓말을 하고 조퇴를 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큰언니의 뽀족구두에 다이또치마를 입고
      입술에다 발갛게 립스틱까지 바르고는 언니의 핸드백을 들고
      수성못가에 있는 그애의 학교로 갔다

      내가 학교에 간 그 시간은 마침 정규수업이 끝나고 그 지겨운
      보충수업을 시작하기 전 잠시 쉬는 시간이었던지라 복도에는
      하얀 교복을 입은 내 또래 아이들이 참새떼처럼 모여서
      조잘조잘 깔깔거리고 있었다

      나는 잔뜩 긴장한 채로 교무실을 찾으려 두리번 거리고 있는데
      애들이 나의 이상한 차림새를 힐끔거리며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얘, 쟤 **여고 일 학년생인데 지가 경옥이 학부형이라꼬
      선생님 만나로 왔다카데 오 ㅎㅎㅎㅎㅎ"

      네들이 암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이제는 하는 수 없다.
      나는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하이힐소리 요란하게 또각거리며
      보무도 당당히 2학년 2반 선생님을 만나러 교무실로 향했다.

      "선샘예, 저 경옥이 고몬데 우리 경옥이가 선샘께서 부른다케가 왔심더"
      순간 선생님은 경악을 금치 못하는 눈치시다.
      금방이라도 이런 말이 선생님의 입에서 튀어나올 것만 같다

      "머 이런 기 다있노! 니가 학부형이라꼬? "

      그래도 선생님 체면에 막말은 못하시고 키 150짜리 비린내나는
      경옥의 고모를 아래위로 훓어보시다가는 하시는 말씀,

      "마 됐심더(요것들을 기냥 콱 뽀사뿌까) 가 보이소!"

      처음 신어본 뽀족구두로 인해 내 다리는 거의 << 자 모양새가
      되어 이상한 걸음걸이를 하며 겨우 교무실을 빠져나오는데,
      나를 향해 한 무더기의 애들이 승리의 환호와 함께 그 긴 복도가
      끝날 때까지 배웅해줬고 나는 신발을 벗어 들고는 천천히
      교정을 걸어 나왔다

      "아싸, 내가 해냈어!"

      그 애는 그후로부터 지금까지 더 깍듯이 나를 '고모'로 대우해주고 있다



      작가 : 벼리 (대청 2003/01/26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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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고싶다/이민영

      이제 당신은 아니 계십니다

      그리움으로 제 가슴속에 한송이
      국화꽃으로 피워두고는
      당신의 고고高孤한 지성至誠은 겨울을
      덮는 향기로 남아 있습니다

      때로는 새가 되어서 쉬임없이 훨훨 나르기도 합니다.

      이른 봄날 마디마디 아픔을 담고도
      절절한 애상으로 貴함을 심는 매화가 되어
      사시던 집 화단에 오시기도 합니다.
      그리 일깨우시기도 합니다.

      여름 하늘 지칠줄 모르게 이글거리는 태양으로
      돌아 와서는 가을을 재촉하십니다.
      술피처럼 파란차림에는 땅을 걱정하는
      님이시니 천둥과 번개로, 비로 재촉하십니다.

      보고 싶습니다. 얼굴에는 온통 빨간 가을을 담고
      나락 다발을, 풍요함을, 들과 산을 너른 품으로 안으시고 웃으며
      손짖하는 넉넉한 그리움으로,
      그리고 어둠과 어둠 가을과 가을이 교차하는 저 길목에서도
      내리쳐 온 북풍을 온몸으로 받아 내고서도
      당당하고 의연한 님의 모습입니다.

      그렇게 철인 같으신 님도 제 곁에 계셔서
      변할 수 없는 위업威業으로 항상 제 가슴자 위 반짝이는 님인데
      그렇게 가시었습니다.


      한 무리 철새가 지나간 가을을 놓쳐 저 겨울의 입구를
      서성일때면
      서산에 낙조가 오면
      세상의 어둠을 다 가지고 하늘에 오르니
      오늘 제사는 동리의 겨울의 하늘은 저리 짙부연가 봅니다.


      울고 있습니다
      보고싶어서 울고있습니다.

      오늘 처럼 함박눈이 저리 내리면
      내리는 눈은 하늘나라 계시는 아버님이
      당신고향 그리워 흘리시는 모습 같아서 입니다.
      오늘처럼 겨울비가 내리면 내리는 비는
      자식걱정으로 그 애잔함이 애상이 되어
      당신 님의 눈물인것 같아서 입니다.


      내리는 눈을 맞습니다 겨울비를 맞습니다
      제 몸에 젖고 젖어도 한없이 포근하고 따듯합니다.
      .
      우리들은 토끼가 되어
      함박 눈속을 애들과 마누라와 함께 뛰어다니고
      그리고,어느땐 비를 흠뻑 맞아도
      춥지 아니 합니다.
      웬지 모르게 따뜻합니다.
      .
      .
      2003.2.5.오후에








      아버님
      내가 서른세살까지 살아 게신 아버님.
      임종을,가시는길을 뵙지 못했고 같이 해드리지 못했다

      내 기억에 아버님은 언제나
      묵묵한 성격의 말이 없으신 분이시다.
      동네에서 황소라고 부르실만큼, 그러니 언제나 당신이 하시는일에
      한번도 불평없이 평생을 일만하시다가 가신분

      야단을 맞은 기억이 없다.
      그러나 한번 야단치실때는 무서우신 분
      언제나 인자함의 모습.성실의 모습,근면의 모습.
      행동으로 가르키신 모습.
      그런 당신의 모습을 운명 하신뒤에야.
      전방에서 소식을 듣고 갔었다.
      결혼해서도.모셔 보지 못하고.그렇게 돌아가셨으니
      지금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
      장남인데도 모시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전방으로 싸돌아다니느라

      어느것하나 자식들에게 흐트러진 모습이 아닌 당당하며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신분.
      살아서는 항상 든든한 내 연인이시요.
      내가 어른된 뒤에는 항상 내 마음의 안식처요.
      돌아가신 뒤에는 내 그리움의 본향.내고향이시다.
      내 생활.행동.사고의 좌표로 돌아오신 분
      보고 싶다,꿈속에라도 어느해인가 아버님이랑 나는
      옹골에 있는 우리밭과 우리산으로 나무도 하고,
      밭일하러 거르믈 같이 주기도 했었다.
      일을 잘하신아버님에 비하여 어린나,사실 고교시절 이지만
      일놀림이 어디 맘에들엇으랴 그래도 작은목소리로
      이리저리 가르켜 주신다. 일을 안해 본 나는 처음으로 농번기 때 에
      아버님의 일을 도와 준것이다
      지금은 그런것이 없지만 예전에는
      우리 학교 다닐때에는 봄 여름 가을 농촌이 바쁘면
      농번기 방학을 했다.. 고교 시절은 사실 공부다 뭐다 해서
      집안일을 도와줄 틈이 없을때라서 농번기는 유일한 집안일 돕기다
      그날 석양이지던 날 내내 같이 일을 했다.
      옆에서 지켜 본 아버님의 모습은 대견해하신 모습이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처음으로 뭔가 아버님과 같이 했다는
      마음 한구석의 뿌듯함도 느끼고..
      .
      .사랑의 시인-이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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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가끔은 요런 일이 하고싶다!




      나도 가끔씩은 사람 사는 냄새를 맡으며 살고 싶다.

      흰눈이 펑펑 쏟아져 내린 날 아침,
      아무도 지나지 않은 눈 속의 오솔길을 걸어보고 싶다.
      뽀드득 뽀드득하며 소리를 내는 눈이라면 더 없이 좋으리이다.


      먼 곳으로는 단풍 가득한 산이 보이고,
      뜰에서는 이리저리 지푸라기를 헤치며 모이 쪼는 닭을
      졸리 운 강아지가 쫓는 둥 마는 둥하며 뒹굴 거리는
      초가집의 양지바른 툇마루에 앉아,
      잘 익은 단감을 한 입 베어보며 온 시름을 잊어보고 싶다.
      뒤뜰 아름드리 밤나무에서 까치라도 울어주면
      더더욱 그럴 뜻하리다.


      잘 뻗은 아스팔트길,
      그 것도 포장한지 얼마 되지 않아
      콜타르냄새가 은은히 풍기는 신작로 길을,
      콧노래 부르며 시원스레 운전하며 달리다가,
      그림같이 생긴 깔끔한 카페에 앉아,
      흘러간 팝송을 나지막한 볼륨으로 들으며
      향기진한 커피를 한 잔 마셔보고 싶다.
      세련미 물씬 풍기는 여주인이 있는 카페라면
      커피의 진한 향은 가슴속까지 배어 오리다.


      동해바다 저 북쪽으로 달려가,
      처얼석 처얼석 솨아악∼ 처얼석 처얼석 솨악∼하는
      파도소리를 들으며,
      곱고 가냘프게 생긴 연인과 함께
      철지난 바닷가를 거닐어 보고 싶다.
      몸이 추워와도 마음을 데우고 싶다.
      등대라도 있어주면 한없이 걸을 수 있으리이다.


      아들녀석 손을 잡고 북한산을
      구파발에서 우이동으로 넘어 내려와,
      구수한 촌티가 배인 시골아주머니 같은 분이
      별 치장 없이 차려놓은 빈대떡집에 앉아,
      아들녀석이 개구쟁이였던 시절의 얘기를 나누며,
      소주 한 잔에 옛 추억으로 돌아가 볼 수 있는 그런 자리에서,
      마음 포근한 휴일을 하루쯤은 보내보고 싶다.
      아버지를 이해해주는 정도의 아들이라면 그 산행은 보람되리다.


      설악산이라도 좋고 아니라도 좋다.
      가슴이 후련할 만큼 산 냄새 들 냄새를
      맘껏 맡을 수 있는 초가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가끔씩은 마당에 나와
      쏟아질 듯 하늘을 수놓고 있는 별들 속에서,
      어릴 적의 내별을 찾아보기도 하며 온밤을 지새고 싶다.
      촉촉한 이슬에 옷깃을 적셔도 좋으리이다.


      마지막 낙엽도 가지를 떠난 스산한 날에
      속리산 법주사 한가운데 서서,
      구름 한 점 없이 새파란 하늘을 바라보다,
      물소리도 듣고 새소리도 들으며
      냇가를 따라 터벅터벅 한 참을 내려와,
      정이품송이 위태로이 서있는 곳쯤에 이르러
      더덕구이 한 접시에 동동주 한 잔으로 목을 축여보고 싶다.
      고사리나물이라도 파는 아낙네가 옆에 앉아있는 풍경이라면
      더욱 어울리리다.


      나도 가끔씩은 이렇게
      사람 사는 냄새를 맡으며 살고싶습니다.
      사람처럼 살다 지고싶습니다.

      '베리굿맨' 답게 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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