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의 그녀석이 맥주 마시자고 전화가 왔습니다. 술도 못마시면서... 가지고 간 책을 꺼내다 제 가방에서 사진이 한장 떨어졌지요. 얼른 줏어서 한참을 보더니 내 눈을 보며 말했습니다,
'오빠, 이때만 만났어도 나 오빠랑 연애할 수 있었을텐데...' ' 너 이쁜 고짓말도 할줄 아네?'
'...... ......'
늘 재잘대던 녀석이 가만 있으니 잠깐이지만 무척 어색하더군요.
'야, 닭살이다, 그냥 형이라 그래라, 마시지도 않고 취했냐?' 그래놓고는 그저 애꿎은 술만 웬수삼았더랬습니다.
차마 그게 작년 봄에 찍은 거라는 말은 끝까지 할 수가 없었습니다...
*고짓말; white lie -비가비 단어장에서-
이틀간의 나비
나비가 날아가네 마치 이 세상에 실망한 것처럼
- 一茶 -
보고팠던 사람에게는 고작 '안녕', 그것도 겨우 입술만 달싹이다 말면서도 그다지 반갑지 않은 이와는 얼싸안고 호들갑을 떨다시피 하고... 그런 경우 겪어들 보셨는지요?
그건 그렇고 장자는 왜 나비가 되어서도 날아가버리지 못했는지... 모든 것 다 버린 뒤에도 이름 하나 버리는 것은 그렇게도 어려운 건가 봅니다. 내게는 참 아쉬운 일입니다. 장자에게도 무척 안타까운 일이 아니었을런지요...
결코 만만치 않은 핑계
우리의 만남을 헛되이 흘려버리고 싶지 않다 있었던 일을 늘 있는 일로 하고 싶은 마음이 당신과 내가 처음 맺어진 이 자리를 새삼 꾸미는 뜻이라
우리는 살고 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까지나 살며 있는 것이다
-인 병선님의 '申東曄生家' 전문-
어제 오후는 날씨에 홀려 내도록 여기저기 쏘다녔습니다. 날씨 한 번 경치게 좋더군요, 오늘도 만만치 않네요. 걱정입니다. 오늘은 할 일도 적잖은데... 어젠 글쎄, 술 마시는 것도 빼먹었다니요, 오늘도 숙제 밀릴까 걱정이 됩니다.
-인 병선님은 '아사녀'의 신 동엽님의 각시랍니다, 그 우리 짚, 풀 문화를 보듬고 가시는 바로 그분이요.-
강호에 밤길을 나서본들...
누란으로 가는 길은 둘이다 陽關을 통해 가는 길과 玉門關을 통해 가는 길
모두 모래들이 모여들어 밤까지 반짝이는 길이다
-오 규원님의 '길' 전문-
한 곳에 이르는 길이 한갈래 뿐이라면 얼마나 삭막할까요, 얼마나 각박해질까요.
우루무치, 그 눈빛 파란 여인들. 중원 밖의 세상은 늘 가슴 뛰게 합니다.
오늘도 낙타 대신에 술병을 타고 중원을 헤맵니다..., 세외를 그리게하는 홍진에 고삐잡히어.
날은 아직 길기만 한데...
목련은 또 그렇게 지저분하게 꽃잎을 떨구었읍니다. 이파리도 없는 가지에 희고 큰 꽃잎으로 며칠을 그렇게 환하게 살더니만 땅바닥에 떨어져 또 그렇게 지저분하게 갔읍니다.
따뜻한 봄 햇살에 마르는 꽃잎을 보며 나는 생각에 잠겼읍니다.
-박 상천님의 '遺書.2' 전문-
오늘은 철 바뀌는 채비 단단히 한다고 출근도 안했습니다. 엔간한 옷들은 모두 상자에 넣기, -세탁소에 갈 옷만해도 한 짐이더군요, 물론 옷이 많아서가 아니고 순전히 내 둔적스럼 탓이지만. 몇 개 안되는 그릇 햇살 쬐이기. 냉장고 청소, -세상에 크지도 않은 그 속에 별게 다 들어 있어 놀랐습니다. 이불 바꾸기. -겨우내 펴두었던 요 밑에서 횡재도 했습니다. 겨우내 쌓인 책더미를 추려 헌 책방 갖다 줄 것과 또 누구누구에게 줄 것 가리기. 수시로 동네 가게엘 드나들며 쓰레기 봉투랑 비눗곽이며 세제 따위를 사느라 한참 바빴습니다.
마지막으로 느긋이 가까운 곳에 있는 상설 할인점에 여름 옷가지며 뭐좀 사러 갔더니 그만 문을 영 닫았네요, 며칠 않되었더라구요. 일찍부터 부산 떤 것이 허망하기까지 하더군요.
궁리 끝에 얼마전 생각이 나서 부러 골목으로 어슬렁대며 돌아오는 길엔 목련 하나 보이지 않더랍니다... 하, 이제부턴 무얼 하나요...?
* 지롱드江;프랑스 서부 보르도 지방을 관류하여 비스케이 만으로 흘러드는 강 이 곳은 세계적인 와인 생산지.
* 부케香;와인에서 풍기는 향. 부케 다발 만큼한 방향.
**난 와인과 같은 사람이고 싶다.**
그렇다. 나는 와인과 같은 사람이고 싶다.
나이가 열린마당 가입자쯤에 이르면 와인과 같은 사람이 되어야 좋다.
사람의 성격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위스키 같은 화끈함의 청년기를 지나 맥주 같을 느슨한 노년기에 이르기 전,
중년에 비유할 수 있는 주류가 와인이다. 온유하고 오묘한 향기를 지닌 숙성된 연령대를 중년이라고 보면 말이다.
그리고, 사실 우리 세대의 이르면 술도 와인이 좋다. 독하지도 싱겁지도 않을 정도의 술이 와인인데
와인은 다른 술과는 달리 제조과정에서 물이 전혀 첨가되지 않고서도 수분 85%, 알코올 9- 13% 정도이고 당분, 비타민, 유기산, 각종 미네랄, 동맥경화 예방에 효능이 있는 카테킨 등이 내포된 알카리성 주류로 건강에 좋은 술이다. 그러나 과음은 금물이다. 술 실력은 결코 자랑거리가 못된다.
와인은 '청하'와 비슷한 12도 안팎쯤 된다고 보면 된다. 간단히 알콜 도수를 살펴보면 맥주 두 배가 와인, 와인 두 배가 소주, 소주 두 배가 위스키나 브랜디쯤 된다. 와인도 브랜디를 섞어 주정 강화된 와인은 20도 안팎이다.
근사하게 마시고, 은근히 취하고, 담론을 나누며 그윽한 눈빛으로 마주앉은 사람을 대하려고 한다면 단연 와인이다.
와인은 사람들을 가깝게 해 주고. 또 포근한 분위기를 만들어서 부정적인 대화보다는 긍정적인 대화를 하게 하고 은근히 빨리 취하지만 깨는 것도 빨리 깨서 좋다. 다만 우리 안식구를 위해서 한마디만 덧붙인다면 '다른 술과 짬뽕하면 뿅~ 가니 알아서 하소서'이다.
술의 종류에 따라 느낌은 다양할 수 있겠지만 맨살에 척하니 휘감기는 비단옷의 착용감을 주는 술은 오직 와인에 한한다.
와인, 다소의 상식을 알고 마시면 더 좋은데 와인은 문화를 이해하는 하나의 코드이며, 와인 그 자체로도 하나의 문화가 될 수 있다. 오묘한 와인의 방대한 세계, 그 세계에 한 번 발을 들이면 헤어나올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빠지지도 말고 통째로 무식하지도 않은 채 살아가는 것도 우리 대청의 중년들이 지님직한 지혜 또한 아닌가? 이에, '와인 알고 마시자'에 대해 한 말씀해 보고자 한다.
소년이 오늘 글은 재미있고 쉬운 쪽으로 가져가려고 한다. 왠가 하면 제대로 알려면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인데,
웨이터가 와인서비스를 제대로 알면 다 배운 것이 되고 또, '소믈리에'란 와인 전담 바텐더가 있는가 하면 포도주 감별사라는 전문 직업인, 와인샵 매니저, 와인 컨설턴트, 와인 칼럼니스트 등이 있는 걸 봐서도 어렵고,
요상한 와인병의 라벨을 봐도 통 모르겠고, 또, 대개의 와인은 프랑스 것이 많은데 얘기를 하다보면 툭툭 불어가 많이 튀어나오게 되는데 불어 또한 듣고도 머리에 잘 들어오는 언어가 아니라서도 그렇다.
서론이 너무 장황했는데 와인의 얘기에 들어가 보자. 들어가기에 앞서 오해의 소지가 있을까하여 덧붙이는 건데,
와인의 2차 발효시 생성되는 탄산가스를 그대로 병입하는 발포성 스파클링 와인이 있는데 이걸 흔히 샴페인이라 한다. 샴페인은 스파클링와인의 대명사 일뿐 술의 종류가 아니다.
샴페인은 프랑스 북부 샹퍄뉴지역의 샴페인市 이렇게 보면 된다. 유독 샹파뉴지방의 스파클링와인만 샴페인이라 부를 뿐이다. 이건 주로 선물용, 경축주에 쓰인다.
또, 와인을 막걸리라하면 소주(증류주)가 브랜디이다. 이것 역시 보통 꼬냑이라 불리는데 원리는 같다. 프랑스 서부의 대서양 연안의 지명인데 보르도 지역의 꼬냑市 이렇게 보면 된다. 꼬냑 분류에 헷갈리게 그랜드샹파뉴꼬냑 쁘띠드상파뉴꼬냑하는데 위의 상파뉴와 전혀 관계가 없다.
참고로 V.S.O.P, 나폴레옹, X.O하는 것은 꼬냑의 등급이다. 까뮈, 레미마르땡, 에네시등이 유명 상표의 꼬냑이다.
아르마냑은 꼬냑지방에서 다소 떨어진 곳인데 아르마냑의 유명상표로는 샤보(Chabot)가 있다. 브랜디만으로도 한편의 글이 따로 요구돼서 이 정도 한다.
와인의 종류에는 적(레드), 백(화이트), 분홍(로제)와인이 있다. 맛으론 스위트(단), 드라이(안 단), 미디엄(중간)와인으로 나눈다. 와인은 주로 식사음료라서 식사전후, 식사 중에 마시는데 식전은 드라이, 식후는 스위트 이런 식이다.
식사 중 와인은 생선요리에는 화이트와인을, 육류요리에는 레드와인을 마셔야 한다고 일반적으로 알고있다. 하지만 각자 취향에 따라 와인을 결정해도 된다.
또 우리 음식과 와인도 잘 어울린다. 불고기, 생선구이, 구절판 등과 같은 음식에 와인이 어울리기 때문이다.
식사와 무관하게 당연히 와인만으로 즐겨도 된다. 보통 레드와인 최고인 줄 아는데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고 종류대로(화이트, 로제, 스파클링) 다 마셔보는 것이 좋다.
와인만 마실 때의 경우인데 레드와인의 안주는 사과 사이에 슬라이스 치즈조각을 끼워 드셔보라고 권하고 싶다. 모든 까나페도 좋다. 또한 안주가 필요 없는 게 와인이기도 하다.
와인은 향기와 맛과 느낌이 있는 술이다. 와인의 빛깔(시각), 향(후각), 맛(미각), 와인을 따를 때의 소리(청각), 마셨을 때 입안 구강세포에 닿는 촉감 등 오감이 동원되어야 한다.
향을 느끼기 위해서는 와인이 든 잔을 돌려서 와인이 와인잔 안 쪽 면에 많이 닿게 하면서 따라야 한다. 와인이 움직여서 향기성분이 기화하기 때문이다.
이때 코로 깊게 와인의 향기를 천천히 맡아야 한다. 되도록 코가 잔 속으로 들어가도록 해서 향을 맡아야만 좋다. 향에는 오크통 속에서 숙성해 가면서 생기는 부케 향과 포도의 품종에 따라 각기 다른 향이 나는 아로마 향 두 가지가 있다.
맥주를 소주잔에 넣어 마실 수 없듯 와인은 와인 잔으로 마셔야 한다. 와인의 종류에 따라 와인 잔은 다르게 선택해야 하는데 어려운 얘기고, 향을 오래 즐길 수 있도록 윗 부분의 끝이 좁아지고 아래 부분이 통통한 튤립형의 잔이 보통 바람직하다.
마시는 법은 눈으로 와인의 색깔과 투명도를 보고 코로 향을 맡은 후 와인을 입안에 조금 머금은 채 치아 사이로 공기를 빨아들인다. 와인을 입안에서 굴리면서 조화를 맛보면 된다.
좌우간 첫 한 모금은 구강 안 전체적으로 와인 적시는 게 기본이다. 식당 같은 데서는 테이스팅으로 먼저 맛보기 시음을 하기도 한다.
와인의 예절은 최소한 이 정도는 지켜야 된다.
첫째 와인은 원샷하지 않는다.
둘째 안식구분들은 글라스에 묻은 립스틱자국을 반드시 지운다.
셋째 와인은 소리나게 마시지 않는다.
넷째 다른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어 마신다.
다섯째 와인은 반드시 음식을 다 삼킨 다음 마셔야 한다.
여섯째, 글라스는 다리를 잡아야한다.볼을 잡으면 체온이 맛을 버린다.
와인병 밑을 보면 제법 오목하게 들어가 있는데 찌꺼기가 약간 있어 다 따르지 말라는 의미와 함께 그 부분을 엄지로 넣고 쥐면 와인 병의 온도에 영향을 덜 주게 되는데 다소 불안하니 조심하고, 보통은 라벨이 보이도록 한 손으로 감싸고 따르되 병을 뱅그르르 돌려 와인 방울이 다른 곳에 흘리지 않도록 해야한다.
와인의 온도는 화이트 와인인 경우 섭씨 12-14°C, 레드 와인인 경우 16-18 °C 가 가장 좋다. 고로 보관도 그에 준하는 것이 원칙이다.
와인병을 세워서 보관하면 와인의 맛을 잃게 된다. 와인을 장시간 보관할 때는 눕혀서 보관해야하는데 이는 코르크의 미세한 틈새로 공기가 투입되면 와인이 산화되기에 항상 코르크 마개를 젖어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마셨던 와인을 보관할 때 하루정도인 경우는 코르크 마개로 잘 막아 냉장고에 보관을 하고 3-7일 정도 보관할 시에는 와인병의 공기를 빼내서 진공상태로 보관을 해야 한다. 그러나 한 번 코르크를 딴 와인은 빨리 마시는 것이 가장 좋다.
코르크마개는 오크나무의 겉껍질인데 포르투갈이 유명하다. 6~7㎝되는 것을 통으로 쓰기 때문에 부산물은 갈아서 실내장식이나 이 지방 특산 선물용품으로 제작하는데 쓴다.
와인 마개를 열고 병 안 테두리를 잘 닦아야하며 잔에 닿지 않게 따르되 너무 높여 소리나게 따뤄서도 안 된다.
다소 고급의 와인 은 코르크 마개 길이가 좀 길다. 값싼 와인은 아예 코르크를 안 쓰기도 한다.
처음 잔에 따르기 전에 뽑은 코르크 마개에 밴 와인 향을 음미해도 좋다. 또 이 마개를 버리지 말고 모아서 와인 가게에 갖다주면 선물을 주거나 할인을 해주기도 한다.
소년을 다시 만난 건 거의 10년만 이었다. 그때 나는 남편의 백수생활로 떠나온 둥지로(친정동네)다시 날아들었던 때였다. 동생이 그곳에서 살고있었기에 퇴근을 하고 나면 의례 한번씩 들르곤 했었는데 어느 날 10여 년 전의 모습과 별 달라진 것이 없는 소년을 동생 네 근처에서 우연히 보게 되었다.
처음엔 걔가 이 동네 살았었나? 하곤 갸우뚱거리며 지나쳤다. 그런데 어느 날 동생이랑 얘기를 주고받으며 동네를 들어서는데 또다시 마주친 것이었다. 다시 한번 갸우뚱하다가 동생에게 "너 저 사람 아니? 이 동네 사는 것 같은데...?" "어? 언니가 저 사람을 어떻게 알아? 우리 뒷집에 사는데." "옛날에 통근할 때 같은 차를 타고 다니다가 엄마한테 엄청 혼났었잖아. 그때 쟤는 농아학교에 다녔고..같이 얘기 많이 했었다. 참 착한 애야."
그 소년이란 사실을 알고는 자연스레 걔라는 말이 나왔다. 동생의 얘기를 들으니 같은 장애우를 만나 결혼을 하고 친가에서 단둘이서 살아가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자신이 장애를 가져서인지 후천적 장애였음에도 자식을 포기했다고 동생에게서 들었다. 부인은 선천적인 장애인이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2세를 포기했다는 말에는 참으로 가슴이 아팠다.
뚜렷한 직업이 없어 겨울엔 호떡장사를 여름엔 날품을 파는 모양이었다. 동생이랑 그 부인과는 이웃이라 잘 지내는 까닭에 어느 날 부인이 동생을 찾아왔는데 너무나 아기를 갖고싶어 소년 몰래 임신을 감행했단다. 그러나 그만 들켜버려 불같이 화를 내는 바람에 병원에 가야한다며 수술비를 빌리려 왔다는 말에 기가 막혀 말도 나오지 않았다.
정말 잘 살기를 바랬었는데... 그로부터 며칠 후 마산에 볼일이 있어서 버스를 탔는데 그 소년도 마산에 가는지 버스에 올랐다. 왜 그랬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첨부터 날 알아보았던 것 같았다. 근데 매번 동생이랑 같이 있을 때 마주쳐서 그런지 아는 체를 않더니 그날은 곧바로 내 자리로 오더니 여전히 알지 못하는 수화로 반갑다는 인사를 하는 모양이었으나 난 전혀 모르겠다는 듯이 머리를 흔들었고 소년은 답답했는지 자기 가슴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치며 자기를 알아보게 하려고 했다.
그 순간 차안에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친구 분이 계실지도 모른다는 생각. 남의 말 좋아하는 이웃사람들이 타고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이 계속 버스에 오르고 소년은 도저히 기억을 하지 못하는구나 그렇게 판단했는지 마침내 자기 자리로 가버렸다. 마산까지 가는 내내 양심이 아파 왔다.
여린 영혼에 상처를 입힌 것 같아서, 나 또한 옛날의 이웃집 아주머니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 그 이후에도 몇 번 길에서 마주쳤지만 소년은 그때마다 흠칫 놀라는 표정이었고 나는 무표정을 가장했다. 내가 모른 체 한다는 걸 알고있는 눈치였다. 동생에게 내가 이상하게 큰 죄를 지은 것 같다고 얘기를 했더니 동생은 아는 체를 안한 것이 잘한 거라나. 별 사연도 없는데 괜히 구설수에 오른다고 아직도 남의 말하길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냐고..
한동안 가슴 한 쪽이 아려옴을 느끼고 있었다. 어떻게 하든 혹시라도 내가 세상의 때에 찌든 눈으로 소년을 바라보는 것이 아님을, 그래서 예전의 그 해맑은 웃음을 잊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며칠을 고심하던 끝에 남편에게 얘기를 했다. 그간의 사정을 얘기하고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함께 연구(?)했다. 남편의 조언은 "그 부인하고 친해 보는 게 어떨까? 처제 집에 들릴 때 자주 마주치니 부인하고 동생하고 있을 때 인사를 터놓았다가 다음에 부부가 함께 있을 때 자연스레 인사를 하면 좋지 않을까?"
바로 이거였다. 내가 생각하고 있었던걸 남편과 생각했던 것이다. 내생각과 같은 생각을 하는 남편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그 다음날로 동생 네로 휘리릭~ 바로 뒷집이라 기회를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그 부인도 동생이랑 자주 같이 있는 나를 봐 왔기에 자연스레 얘기를 했고 그 후로 몇 번을 더 동생이랑 같이 인사를 나눈 뒤 드디어 두 사람이 나란히 외출하는 날이 왔다.
반갑게 인사를 하니 소년의 부인이 그 옛날 소년의 얼굴에서 보았던 벚꽃 같은 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흔들었다. 소년은 잠시 어리둥절하더니 이내 얼굴에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 했다. 그 옛날 소년이 그랬던 것처럼 소년의 부부는 손을 흔들었고 난.. 그들을 향해 한껏 밝은 미소를 보내주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우리는 마산으로 이사를 했고 그 눈빛 맑은 부부는 다시 볼 수 없었다. 건강하게, 그리고 그릇된 사고를 깨치고 귀여운 자녀를 두었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양심을 포장한 채 오염되지 않게 선반 위에 고이 간직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세상이 밉습니다. 그러나,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인간들이 진실로 그들의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을 참을 수 가 없습니다. 그들의 영혼은 울면서도 웃는 체 하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나는 장막을 쳤습니다. 방안은 적당히 빛을 가리고 어두워 졌습니다. 나는 편안함을 느낍니다. 오염되지 않는 상태로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나는 내 정원에 약을 뿌리기를 거부했습니다. 벌레들이 극성을 부렸습니다. 사과는 벌레를 먹고 있습니다. 대추는 더욱 그러합니다. 감나무는 더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나무가 스스로 자생 할 수 없다면-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잔인한 나무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벌들과 새들은 좋아했습니다. 어제는 비가 오는데도 내 대추나무 가지 끝에 나래를 활짝 편 한 마리의 호랑나비가 잠자리를 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작은 철기 한 마리가 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는 스라브 지붕 밑의 천장 마루에 새들이 아파트를 몇 평인지 짓는데도 그 공사가 끝나고 세대주가 들고나고 몇 번을 해도, 인사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새 손자가 저쪽 끝에서 이쪽 끝 내 머리 위의 지붕 위에로 짹짹거리며 뛰어 다녔습니다. 그들은 내 머리 위가 그들의 운동장인지 착각 한 것 같습니다.
나는 언제인가 내 시멘트 처마 끝에 집을 짓고 살다간 제비가, 그 다음 해에 그 집이 부실 공사로 떨어져 버리자 다시는 오지 않음을 보고 슬펐습니다.
나는 참새들의 아파트를 그냥 내버려뒀습니다. 또 올 여름에는 내 정원 숲 속의 해당화 나무 끝에 작은 멧새가 세 개의 알을 낳았었습니다. 며칠 뒤, 그 알은 없었습니다.
그 다음 대추나무 가지 위를 오가는 노란 무늬의 이름 모를 멧새의 새끼들을 나는 볼 수 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고 난 후 조그만 초가 빈집만 남았습니다.
나는 3년전쯤 내가 시장에서 사와서 알을 까서ㅡ날려 보낸, 잉꼬 새들의 부부와 그의 부모를 찾습니다. 그 미물은 3일간 내게서 고맙다는 공중잽이를 한 후에는 - 파란 하늘을 날아올라 뒷산 쪽으로 가버리고는 대를 이어, 영영 소식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내게 보여준 믿음과 고마움의 3일이 있었기에 그들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바람 부는 겨울철의 눈이 오는 날들이면- 그 초겨울에 떠난 잉꼬 부부와 자식들이 먹이나 제대로 먹고, 살았는지 궁금해하며, 아직도 대를 이어 행복해 하는지 궁금합니다. 아마 그들도 본능의 지혜로 잘 살아 가리라 믿고 싶습니다.
고향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입니다. 평생을 고향 없이 살아 온 나는 정이 어린 새들의 고향을 지켜 주고 싶은 것입니다.
나는 정원을 정리하면서도, 그 가지 끝은 잘라 버리지 않고 두었습니다. 그들이 언젠가는 꼭 돌아 올 것 만 같아서 입니다. 이 집이 그들의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이른 아침에 뒷산 고개를 넘어간다. 마른 풀들이 발길에 스치며 발 밑을 스멀스멀 기어오는 안개를 타고 음수골의 샘터로 간다. 안개 덮인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내가 구름을 타고 노는 신선 같은 기분이다.
산골의 봄은 늦다. 며칠 전만 해도 밤이면 서리가 갈가마귀 발톱처럼 막 움트기 시작하는 새싹 끝을 움켜잡고 얼리어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안타깝게 하더니, 오늘 아침은 맑고 영롱한 이슬만 맺혔다. 지난 겨울 녹차 끓일 물을 긷느라 눈 속을 헤치며 부지런히 넘나들었다. 그 샘물로 끓인 녹차 맛은 정말 일품이다.
아무도 오지 않는 그 골짜기에는 온갖 짐승들이 살고 있다. 눈이 하얗게 내릴 때면 밤새 내려와 물을 마시고 간 흔적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한 번은 내가 샘터로 들어가는 순간, 놀란 노루 한 마리가 입구 뒤로 난 빽빽한 가시덤불을 헤치고 튀어나갔다.
사람과 짐승이 함께 마시는 샘터에 늦게 온 나의 기척에 놀라서 혼비백산하여 달아나니 노루에게 미안한 마음이었다. 우거진 가시덤불을 헤치고 달아나느라 상처라도 입지 않았는지 조금 걱정이 되었다.
이튿날 낮에 낫과 괭이를 가지고 와서 뒤쪽의 가시나무를 쳐내어 좁은 길을 내고 조그만 계단을 만들어주었다. 멀리서 내 소리가 들리면 상처를 입지 않고 도망 갈 수 있도록 제법 길답게 만들었다. 그 후, 눈 덮인 그 길로 난 노루와 토끼들의 발자국을 보며 나 혼자 흐뭇해하면서 아무도 보이지 않는 빈 산을 향해 손을 흔드니, 산에서 그 동물 친구들이 꼭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이 산골에도 봄기운이 완연하다. 오늘 아침 안개를 타고 음수골 샘터로 가는 길은 겨우내 잠자고 있던 내 내면의 촉수들을 고요한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다. 파란 소나무 사이사이로 힘겹게 서 있던 관목들의 가녀린 가지엔 연노랑 봉오리들이 조롱조롱 달렸다. 별들이 멀어져간 추운 겨울밤에도 결코 푸른 꿈을 멈추지 않고 새 봄이 오면 자연이 허락한 아름다운 몸짓으로 제 몫을 다 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가만히 바라보니 톡톡 터지면서도 말이 없다. 그저 조용히 그리고 멈추지 않고 무언의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
장자가 아침 산보를 친구와 함께 나갔다. 상쾌한 공기 수려한 경치가 너무나 좋아서 친구가 장자에게 말을 던졌다. "이보게 친구, 아침 공기가 너무나 상쾌하지?" 장자는 말이 없다. "아, 저기 피어있는 꽃들 좀 봐. 정말 멋지군" 장자는 말없이 천천히 걷기만 한다. 머쓱해진 친구는 이런저런 이야기로 자연에 감탄하며 장자의 동의를 구하느라 바빴지만, 장자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걷기만 했다. 집에 돌아온 친구는 내심 괘씸한 생각이 들어 장자에게 달려가서 말했다. "이 사람아.. 자네 나한테 무슨 감정이 있는가? 아침 산보를 같이 갔으면 무슨 말이라도 해야지. 내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이에 장자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자네가 보고 나도 보고 있는데 말해서 무엇하랴!"
샘터가 가까워오니 개울물 소리가 청아하다. 아래 쪽 웅덩이에는 내 어릴 적에 낯익은 버들치가 신나게 헤엄친다. 그 놈들은 참 복 받은 녀석들이다. 다른 데 태어났으면 추운 겨울 날 얼음장 밑에서 떨면서 지냈을 터인데 샘물이 사철 상온을 유지하는 덕으로 겨울에도 훈훈하게 지내니 말이다. 그런데 그 버들치들은 내 어린 시절 조그맣고 하얀 고무신 속에 잡혀 있던 바로 그 녀석들이다. 홍안의 소년이 이제 장년이 되어 찾아왔는데도 그 녀석들은 하나도 변한 게 없으니 내가 꿈을 꾸는지 그 녀석들이 꿈을 꾸는지 모르겠다.
물 한 통을 받아서 지고 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본다. 장자의 무언의 참 뜻을 알 것 같지만, 나는 왠지 혼자 걷는 것이 쓸쓸한 생각이 든다. 산에는 노루 토끼들이 나를 보고 있을 지도 모르지만, 말을 할 줄 아는 누군가가 같이 걸으며 이 새벽의 아름다운 자연에 대해 감탄과 찬사를 주고받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먼 옛날 장자가 느끼던 자연의 아름다움을 나도 느끼지만, 난 아직 장자가 보여주는 도의 바다에는 발가락 끝도 담그지 못 하였나보다. 왠지 사람이 시끌한 대화가 그리우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