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의 일들로 인해 그새 수 년 간이나 즐겨하여 왔던 바다 낚시를
    단 한 차례도 다녀 보질 못하였었다.
    난 그냥 내 신세가 그러려니 하며 체념 속에 묻고 지내기만 하였었다.
    그런 와중에 홀로 이신 할머님 한 분이 오시게 되었다.


    이런 저런 굳은 일들과 함께 나를 도와주시는 게 여간 고맙지가 않았다.
    가끔씩 매듭이 풀리지 않는 세상사 고민거리라도 풀어놓을라치면 속 시원한
    몇 마디 말씀으로 정곡을 찔러 주시고 먹거리 또한 손쉽게 주물럭거려 주시어
    그에 대한 감사함이 늘 드높아 가기만 하였었다.


    낚시를 하러 바닷가를 찾으면 늘 반갑게 나를 맞이해 주시던 한 지인으로부터
    느닷없는 선물을 전달받게 되었다.
    두 개의 상자를 열어 펼쳐보니 모두 전어만 한 가득 냉동되어진 채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게 아니가 ?


    그 전부터 할머니께선 가을엔 전어, 봄에는 도다리가 제 맛이라며 흘리시는 듯한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아 믿는 데라곤 바닷가 근처일 뿐이니 안부나 전하면서
    전어를 좀 구했으면 하는 여운을 남겼더니 이에 대한 화답이었던 모양이었다.


    이 아니 반가울 수가 ...
    기쁜 마음에 큰소리로 " 할머니 ! 이게 모두 다 전어예요 ! "
    " 이제 실컷 드셔 보세요 ! " 하며 할머니의 안색을 살펴봤으나
    갑작스런 선물과 너무도 많은 양에 놀라워하시면서 날쌔고 예리하신 손놀림으로
    이리저리 뒤척여 보시더니 " 횟감은 아니네 ... " 하시는 게 아닌가 !
    "할머니 ! 이건 냉동이 되어서 그럴 겁니다만 녹여서 회를 쳐서 드셔도 될 겁니다 ."
    라고 하고는 바쁜 나의 일상으로 되돌아 왔었다.

    저녁 무렵에 궁금하여 들여다봤더니 욕탕에 들어 가셔서 산더미 같이 쌓아 놓은
    생선들을 일일이 다듬고 계시기에 " 횟감으로는 안 되는 모양이지요 ? " 하며
    다소 실망하시는 표정이 안쓰러워 말을 건넸더니,
    크게 웃으시면서 " 내 말 좀 들어 보라 " 고 하시었다.
    그 말씀인 즉 , 전어 맛을 보고는 싶었으나 그건 횟감으로의 맛이었고 이건 회로
    먹기에는 적합하지 않은데다 양이 너무 많아 그 일부를 들고 시장에 나가 팔려고
    앉아 있었더니 아무도 눈여겨봐 주질 않더란다.


    뿐만이 아니라
    "대체 이게 무슨 종류의 생선이냐 ? " 고 묻기만 하니,
    자신이 더 답답하여 소리 높여 전어라고 하면서 가을엔 제 맛이라고 까지
    설명을 해 봤으나 살려고 하는 사람은 없더란다.
    "얼마냐 ? " 고 묻는 말들에 "원하는 가격에 주겠다" 는 대답을 하셨더니
    더욱 의심스러운 눈들을 한 채 서성거리기만 하다 그냥 가 버리고 하서
    제대로 흥정도 못했다는 전말을 듣고는 아연해 할 수밖에 없었다.


    옛적 바닷가에서 갓 잡아 올려 맛나게 드셨다는 전어의 맛을 못 잊어 하시기에
    몸이 따라 주질 않는 생활이라 바닷가로 한 번 모시고 가 보지도 못하고
    이 가을을 넘기나 보다 하여 궁여지책으로 생각해 내어 마련하였는데
    그게 오히려 할머니의 일손만 바쁘게 해 드리고 말았다.


    늦가을의 짧은 햇살을 받으며 양지를 찾아 널려진 몸통만 남은 생선들에게
    눈길이 가면서 그윽하면서도 애잔한 여인의 손길과 그 향기에 취해
    이 가을을 온 몸으로 느껴 보았습니다.





월요일 밤 KBS에서 방송한 한국의 美라는 프로를 보았다. 우리들 기억 속에서 스러져 가던 6 - 70년대 모습은 간직하고 있는 어느 시골마을의 이발소 이야기였다.

무너질 듯 초라한 건물 추녀 밑 연통에서 새어 나오는 연기는 지붕 위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가고, 겨울 밤 이발소를 지키는 사인볼은 쉼없이 돌아가고 인적이 끊긴 골목 어귀 이발소 안에는 50대 후반의 손님의 머리를 다듬는 50대 초반의 이발사가 오늘, 어제, 그리고 코흘리게 시절의 추억을 나누고 있었다.

긴 세월의 빛이 켜켜이 쌓인 거울 앞 선반에는 녹이 쓴 바리깡이 놓여있고, 작은 유리상자 안에는 머리를 고를 때 사용하던 색이 퇴색해버린 분통이 덩그러이 놓여있었다. 연탄난로 위 들통에서는 끓는 물의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한 쪽에 아이들 머리를 깎을 때 의자 위에 올려놓는 손때가 묻어 까맣게 된 판대기가 이발소의 긴 세월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얀 타일을 붙여 만든 세면대. 머리를 행굴 때 사용하는 물조리개, 수건을 빨 때 사용하는 빨래판이 세면대 벽에 기대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듯했다. 겨울이라 그런지 이발소 천장을 가로지른 빨래줄에는 노란 타올들이 널려 있었다.

어릴 적 고향에 있던 이발소에는 전기가 없었다. 전기가 없던 관계로 영업은 낮시간 동안만 영업을 했고 손으로 움직이는 바리깡과 가위가 전부였다. 가죽벨트에 날을 세우던 면도칼, 면도 거품을 작게 자른 신문지에 닦았고, 세면대 옆에는 항상 큰 물통이 있었다. 수도가 없던 시절이라 수시로 물을 길러 다니던 더벅머리 견습생이 생각이 난다.

무궁화표 세탁용 빨래비누로 머리를 감아야 시원하다던 시절, 머리를 감기는 이발소 견습생의 손톱은 왜 그렇게 거칠었고, 그 것도 부족해 플라스틱으로 만든 솔로 머리를 빡빡 문지를 때, 신음소리도 못내고 참던 기억이 난다.

40년 전의 이발소 분위기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이발소에서 긴시간 가위질을 견디지 못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사용하는 전기 바리깡의 기계음에 선반 위에 놓여있는 녹이 쓴 바리깡에 시선이 머무는 이유는 무엇일까?

30분간의 짧은 이야기였지만, 이발소라는 작은 공간안에도 긴 세월 우리가 잊고 있던 많은 이야기들이 아직 살아 숨쉬는 모습은 한 편의 장편 서정시처럼 다가왔다. " 세월을 가는 소리 " " 세월의 빛이 가라앉은 곳" 이라는 대본작가의 표현 속에 지난 40년의 이야기가 녹아 있었다.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너무 휼륭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동주 2003.2.11.)


서해안
겨울바다
고향 바닷가.

한적한 독산禿山 바닷가에서
조약돌을 고르면서 내 마음도 줏었다.

돌맹이는 갯가로 밀리다가 이내
모래속에 파묻힌다 .
돌맹이보다 작은 자갈은 세찬
파도를 타고 수없이 이동하면서,
모래속에 파묻힌 돌뿌리를 뒤짚어 투툭!
치면서, 모래장불에 내동댕이 쳐진다.
돌맹이와 자갈은 밀물과 썰물의 파도에
씻기고 모서리끼리 부딫쳤다.
모난 모서리는 점차 동그랗게
닳으면서 다듬어졌다. 매끄러운
조약돌이 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줍지 않는다면 조약돌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러는 쪼개지고 더러는
더욱 작아만 갔다.

앙증맞게 작아지면서 끝내는 깨알보다
더 잘디잘은 한알의 모래알갱이가 되고,
숱하게 쌓인 모래속에 파묻혀서 사라지고 만다.

조약돌의 빛깔은 제각각이여서 흰빛
은빛 누런빛 백옥색이다. 차돌은 애기의
살갗보다 더 곱고 깨끗했다.
조약돌을 줏어서 눈 가까히 들여다보면
표면은 그다지 반들거리지 않는다.
돌과 돌끼리 부딫쳐서 닳은 것이지
문질러져서 마석磨石된 고운
색깔은 결코 아니다.
유약을 바른 도자기의 표면처럼
반사되지 않고 그저 투박했다.

그런데도 손가락으로 문지르면
참으로 매끈매끈거렸다.

나는 저물어가는 세밑 12월의 겨울바닷가에서
조약돌을 줏었다.
무엇에 쓰려고 줍느냐고 물어도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데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 내 솔직한 대답일 것이다.
그런데도 조약돌을 줍는 것이 곧 내 마음을
줍는 것이며, 세상사는 지혜를 얻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모나지 말고 그저 둥글둥글하게 살고
싶다는 지혜를 배우는 중이라고 대답하고 싶었다.

그 지혜도 세월이 지나면 쓸모가 덜해져서
흔적조차 사라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조약돌이
되어가는 나를 추스리고 싶었다.
세속에 물든 욕심은 조약돌을 줍는 것으로
대신하고 싶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굴껍질 조개껍질 갯모래 틈에서 닳고닳은
조그만한 조약돌을 한되쯤 줏었다.

내 동그란 조약돌을 줏었지,
나를 줏었지.
모래알갱이가 된 조약돌의 흔적은
차마 줍지 못했다네.







    대부분 집안에서 일어나는 흠집 트는 이야기야.
    만인에게 공표 하긴 적이 쉽지 않아 불문율에 붙이고 싶은 이곳의 아낙들도 많겠지만,
    이런 쉽지 않은 이야기도 대중의 공공연한 동조를 얻기에 충분하므로 때에 따라선
    고자질의 주리를 푸는 일에 알미우리 만치 선뜩~ 앞장설 일도 있어진다.


    어느 날인가 큰 동생 집에서 친목 모임을 가졌다가 속없는 올케로부터
    "00 아빠가요, 누부(누이)같이 멋대가리 없는 뇨자는 절대로 되지 말라 카데요"하는
    이런 얘기를 불현듯 전해 듣고...머리에 찬서리가 돋은 일이 있었다.
    듣고 뒤돌아 생각하니...
    그렇게 내가 형제간에도 점수를 못 딸만큼 맹-하고, 섬 머슴아 같았던가
    자숙하게 되고 한편으론 그 넘아가 몹쓸 좀팽이로 보여지기도 했었다.


    '흥!~ 즈그 마눌은 억수로 말랑제리처럼 말랑거리고 싹싹하고 여우처럼
    살랑대는 스타일 인가벼?
    내 보기엔 전혀 아니올시다 이구마..." '천방지축 마글피"의 성씨 안에 본데없다고
    대학 졸업 식장에서부터 따라 붙었던 '치와와'狀의 올케를 다른 식구들은 싸잡아서
    결혼을 반대했건만, 지 좋으니 별수 없었지.


    우쨌든 그 후로 조금은 나긋나긋해지고 여성스러운 간결함과 단아함을 소리 않고
    내 보이기에 나름대로 역겨울 만치 변화되고자 애썼다.
    별 수 없는 간판이고, 특유의 본성은 어데로 가겠냐 마는.
    헌데, 충청도 양반이랑 강산이 두 번 바뀔 때 까정 살다 보니 그 알량한 양반이라는
    호칭에 버금가는 마당쇠가 절로 되가는데...


    아침에 이불 안에서 눈 딱! 뜨며 입에서 부는 소리.
    "밥 차려 놨냐?"
    흐미....
    결혼하고 처음엔 무슨 이런 개차반 종자가 다 있누? 했었다. 동서 시집살이 2년
    했는데, 시숙하고 맞불 작전으로 두 양반이 똑같이 눈곱에 낀 때 안 베끼고 이불
    감싸안고 밥숟갈 뜨는 습관이 우리 집안하고는 원체 상상이 안 되는 배경 그림인지라
    황당하고 무엄하고...뭐, 그랬다.


    그래도 스스로 길들여져 가는 게 여필종부의 지존이라 남푠 따라잡기에 열을 올렸는데..
    날이 갈수록 거듬성 없는 거며, 남자의 손이 필요한 가정사에 시시콜콜한 잔손질에 대한
    답답함이 이루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어떤 님은 진실로 자신의 남푠님이 전생에 뇨자 아니었을까 하는 글월도 올려서
    보았었지만... 이렇게 말하고 싶은 적도 있었다.


    '복에 겨운 말씀이네요.
    우리, 정말 남푠 흉보는 멍석 한번 깔아 볼까요??'하고.
    울 집 남푠님은 컴맹은 고사하고.....따따블 컴맹???
    (나도 배운지 왕 초보이긴 하지... 벌써 업신여기는 뇨자 상 줄 감이네..)
    이 세상 기계문명이라 명칭하는 온갖 거 무지하게 다룰 줄 모르니까!
    해서, 특별히 비밀스런 멜 박스의 기록으로 인해 누구 말대로 로그 아웃 해야 할
    일은 진정 없다.


    이런 얘기는 어느 카페 게시판에서도 잠깐 고자질한 적 있지만...
    세상에나 오죽하면 자기 핸드폰이 울리는지 빽빽거리는 지도 모르고 열심히 갖고
    다니기는 충실한 개근상 감이니까..

    근간에 구형에서 신형으로 바꾸며
    아름다운 베르네- 이다도시 목소리- 아기 코끼리- 사랑의 찬가-
    일반 벨소리- 기타 등등. 열심히 울림소리를 바꾸어 줘도 그게 도대체 누구 허리춤에서
    울리는지 좀체 어림을 못하는 무디기가 남의 다리 긁으며 시원함을 느끼는 정도니까..
    관심 부족인지, 아님 우둔한 건지, 미련 맞은 건지 원...


    그리고 집에 오면..
    "아무도 산골짝 다람쥐(베르네)안 울려 주데???"
    하며 폰을 잘못 샀다고 마누라한테 눈 흘기고...
    이 마눌이.... 보는데서 꼭 재 시도 해보는데는 무색할 정도로 극명하다.
    이미 부재중 전화 발신 표시 다 창에 뜨는데도 무조건 우겨요. 우기길...
    운전하고 다니는 거?...
    그 기계문명은 이해 못할 정도로 잘하고 다니니 타고난 돌연변이 아찌님
    자칭 베스트 드라이버라나 뭐라나...

    어쩌다 달력 걸어 놓을 못 한번 박아 달랬더니 자기 마빡 깨 가지고 종일 엄살
    투성이고..... 하다 못해 활명수 하나라도 냉장고에 보일라 치면 단숨에 쉬이 들이
    마셔 대는 藥에 관한 한 광..그 이상.

    양말 짝 버둥거리게 꼬아 무시로 던져 놓는 거 허며...
    예사로 담배꽁초 화장실 바닥에 뭉개 놓는 거 허며....
    뚱땡이 아저씨 춘천 처가에 갔다가 말리는데도 극구 우기고 공지천 호수에서 어린애
    마냥 좋아라~ 오리 배 타다 균형의 중량을 이기지 못한 배가 가라앉기 일보 직전
    안전 요원이 사정해서 도중 하차한 사연...


    카페 테라스에서 우아하게 차 마시며 올케들과 바라보다가 민망한 소리 한 마디씩 들었지.
    초입부터 공연한 자존심 욕심은....
    버리는 침대 나무 쪼개서 뭐- 선반 만든다 길래 알 만해서 제발 참아 줬으면 하는데
    기어코 만든다며 톱으로 그 비싼 모노륨 바닥을 왕창 곰보로 만들어 놓질 않나..
    다른 일 보느라고
    "주전자 물 끓으니 옆에 있는 티백 보리차 하나 넣어 주세요"하고 시키고 났더니...
    아, 글씨 그 눔에 티백 껍질까지 부지런하게 툭- 터트려서 넣으셨대??


    우리 집 무늬만 양반님...
    뭘 시키면 겁나고 내가 맘에 전혀 안 드니까 차라리 관공서, 은행, 집에 문젯거리,
    기타 등등 전부 혼자 해결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견해다.


    그래도 갸륵한 거 한가지는 별로 멋대가리 없는 마누라 믿어 주는 거 하나는 따봉이니까....
    어데루 먼길 나설라치면 쭈뼛 쭈뼛 망설이며~ 종알대는 이"기쁨조"가 같이 동행해 줘야
    겠다나? 지발 안 그래도 되는데.
    그나저나 눈오는 날 그림 좋은 일기에 이 사람 밖에서 귀께나 간지럽겠네 ㅋㅋㅋ.



























그림/한인현


      계란 폭탄


      가끔 뭘 잊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얼마 전엔 갑자기 계란이 먹고 싶어 계란 하나를
      주전자에 넣고 가스렌즈에 올려놓은 채 외출했다.
      그리고 곧 잊어버렸다.
      몇 시간 후 아들이 시험기간이라 열쇠를 놓고 갔다며 빨리
      집에 오라는 전화를 받은 순간까지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3시간 후 집으로 돌아오니 온통 탄 냄새와 연기 다 타 버린
      재와 시커먼 주전자를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들이 일찍 발견해서 그나마 천만다행이었지 가스 사고가
      남의 일이 아니었으니 놀란 가슴 쓸어안고 그만하기를 감사했다.


      이런 얘기를 친구한테 했더니,
      그 친구는 더 놀랬던 자신의 얘기를 해주었다.
      신혼 때 갑자기 계란이 먹고 싶어 가스 불에 올려놓고
      잠깐 졸다가 갑자기 펑하는 소리에 놀라 깨어 보니,
      솥뚜껑은 천장에 맞아떨어지고 많은 계란이 천장에,
      벽에, 창문에, 온통 붙어 있었단다.
      그 참담함이란 정말 .....


      오래 전 TV에서 보았던 또 하나의 계란 사건이 생각났다.
      한 아파트에서 창문으로 연기가 나자 이웃 주민의 신고로
      소방차가 오고 난리였는데, 친구와 얘기를 나누다가
      연기 나는 곳을 바라보니 자기 집이었다고.
      사연인즉 계란을 올려놓고 아들을 찾으러 내려왔다가
      아는 사람을 만나 얘기하다 보니 깜박 잊어버렸단다.


      하루에 수만 개의 뇌세포가 죽는다고 한다.
      그래서 그때 그때의 생각이나 할 일등을 메모하는 습관을 갖고 있지만
      그래도 때때로 잊어버리는 나이임에는 어쩔 수 없나 보다.
      잊을 것은 잊어야 하겠지만 정말 이런 일들로 인해 자신이 슬퍼지는
      일들은 없었으면 좋겠다... 계미년 새해에는.
      ......




      친구의 건망증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나이 탓일까.
      배를 잡고 깔깔대며 웃는 일이 건망증 이야기이다.
      나의 실수이건 남의 실수이건 어쨌든 좀 모자란 이야기는
      웃음이 절로 나온다


      이 친구가 하루는 길을 가다가 누가 인사를 하기에 아는
      사람인가 보다 하고 인사를 했는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아 한참을 걸어가다가 생각해 보니, 그분은 자기가
      10년 넘게 다니고 있는 교회 목사님이었다고,
      이럴 수가...


      또 한번은 버스를 타고 가다가 차안에서 누가 반갑게
      인사를 하기에 옆에 있는 친구에게,
      "누구지? 나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모르겠어." 하니
      "우리 교회에 같은 나이또래 여전도 회장이잖아."
      매사에 이 정도였다.


      언젠가 청주에서 올라와 터미널에서 만났을 때도,
      차표를 두 번이나 샀다고 속상해 했다.
      금새 잊어 버렸다나...
      그런 이야기는 계속 되었고 우리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웃었다.
      그 친구는 겸연쩍은 듯 이렇게 변명을 한다.
      "아니야, 수술을 여러 번 해서 그런 거야..."


      그런데 친구 남편은
      "다 잊어도 괜찮으니 남편만 잊어버리고 말아 달라"
      했다고 한다.
      아내의 건망증이 수준 이상인데도 나이가 보여주는
      중후한 넉넉함이 멋있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이
      정겨워 보였다.










































나들이







    오랜만의 발걸음이었어.
    숨이 멈추고 맥박이 멈출 것 같은 내 안의 생활에서
    기지개를 펴듯 똬리를 풀고 오랜만의 망설임 끝에 길을 나선 게야.
    단지 오늘을 회피하려는 생각보다는 오늘을 도피하고 싶었고
    그리고 틀에 박힌 이곳의 생활들에 현기증이 났던 게야.
    아마도 그러한 표현이 적절할 게다.


    내가 도착한 곳은 정겨워야만 했는데 너무나 많은 것이 변모해 있더군.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삼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말일세, 정말로 많이도 변해 있더군. 도심들이. 농촌들이.
    그리고 사람들이 변해 있었고 더욱 놀라운 것은 벗들이 변했다는 게야.
    고국을 다녀온 소감을 간단히 정렬하라면 그저 놀람을 금치 못했다는
    말밖엔...


    자신만을 아는.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려 드는.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결핍되어 있는 것이 왠지 씁쓸하게 느껴지더군.
    백의민족. 동방예의지국이라던 나의 고국. 어찌하여 그렇게 인색하고
    각박하고 황폐하여 가는지 모르겠구먼.


    어쩌다 초대를 받거나 집을 방문하면 그럴싸한 분위기에 멋들어진
    장식들을 한 식당으로 인도를 하더구먼.
    나에게는 깍두기 한 소발에 김치찌게를 집에서 차려 주는 것이 정녕
    아름답고 정겨우며 고마웠을 거야.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그러했겠지만,
    자네는 그러하지를 않기를 바라는 게야.


    숨이 막히고 열이 오르내리는 나들이였어.
    어깨에 힘 좀 빼고 고개에 깁스 좀 풀고 가슴에 헛바람 좀 빼어 버리고
    살아가라고 말하고 싶군. 그리고 이건 여자 친구들에게 하는 말인데,
    전철을 타거든 좁은 자리에 않자 보려고 그 큰 엉덩이들이 되는 꼴불견은
    삼가 주었으면 해.


    "어이구 허리야. 어이구 다리야."
    공연히 젊은 사람들이 않아 있는 것만 보이면 괜스레 주절대지 말고 엄살
    좀 피우지 말란 게야. 눈살이 찌푸려지고 공연이 같이 늙어 가는 판에
    짜증이 난단 말이야. 다음엔 정중히 자리를 양보하여 줄 것을 요청하거나
    아니면 웃음을 잊지 말고 조용히 있으라는 당부이네.


    너무나 정겹고 좋은 나의 나라. 나의 고국이었네.
    한국 놈이 한국 말 좀 하면서 살아가고 싶으이.
    X하고 소리를 질러 보니 십 년 묵은 체중이 싹 하면서 풀리는 것 같더군.
    그 동안 은혜를 주신 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리고 다음엔 정식으로 감사의 글을
    드리기로 하겠네. 다음 만날 때는 남자 친구에겐 포옹과 함께 뜨거운 악수를,
    여자 친구에겐 얼싸안음과 뜨거운 입맞춤으로 이곳의 인사 방식대로 대신하겠네.
    강건하기를 빌면서.



    독일에서 영주가.
















謹 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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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버 조문'


        글마다
        근조등을 밝혀 들고
        떠난 이를 추억한다.


        面面한 사연이야
        있거나
        없거나
        해 뜨면 달려 나와 옹기종기 모여 앉던
        글의 두레밥상, 사이버 카페


        한나절 오순도순
        또 한나절 티격태격
        다투며 정드는 식구 같은 글자들이
        오늘은 빈자리, 밥상머리
        허전함을 감출 길 없다고
        황망히 달려 나와 두건 쓰고 띠 두르니
        더러는 喪主되고
        더러는 弔客되는 사이버의 초상치례


        그래도 한사코 보내지 못 할 이를,
        몇 구절 글월로 헤아리며 보내자니
        권커니 잣커니
        마음 속 술잔만이 하릴없이 바빠서


        근조등 빛 붉은 밤
        기나긴 글의 골목 사이버의 상청엔
        따르는 술잔마다 눈물이 그득,
        시나브로 흐르는 情의
        窓가로
        망자의 푸른 한이 성에로 녹는다.



        솔향












"쿨럭쿨럭..."
목 저 너머에서 끓어오르는 비릿한 그 소리.
그의 가슴엔 구멍이 세개나 뚫리고 있는 중이었다.
인생이 허물어지는 소리...

운명을 맞 서 저항하던
그의 깊은 눈빛이
한 번 움찔 용을 쓰다가 다시 감긴다.

화장지도 귀한 시절이었으니
노모 혼자서 한 뙈기 텃밭과 손바닥만한 천수답도 힘에 부치는데
그게 가당키나 하랴!
그의 머리맡엔 녹슨 깡통이 하나, 마치 주인 곁에 철없는 강아지마냥 쪼그리고 있을 뿐이었다.
아침마다 그의 허리굽은 노모는 밤새 타들어간 자신의 가슴속 재끌까지
탈탈 털어서 함께 쏟을 테지.

갓 스물 앳된 소녀는 초연한 얼굴로
방안을 조심히 둘러보고는
이내 그의 눈꺼풀이 다시 열리면 마주칠 준비를 하고 있다.
겨우 숨을 돌린 그가
쌕쌕... 기관지의 바람 새는 소리를 애써 비집고
계속해서 힘에 부치는 행군을 하려한다.

"내가 정말 다시 살 수 있을까요?"
간절한 기대를 담고 있는 그의 눈빛을
차마 배반치 못하고 소녀는 또렷한 음성으로 대꾸 한다.
"물론, 그러셔야죠."

무심코 그의 시선을 따라가니 벽에 걸린 검은 양복이 눈에 들어온다.
그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만큼 커다란 검정 양복.
마흔다섯 중년남자, 그의 소망은
언젠가 그 옷을 다시 입고
부산 나들이를 한바탕 휘돌아치는 일이란다.

"가끔씩 저 옷을 입어봐요. 이젠 허리가 커서 둘은 들어가게 생겼어요. 쿨럭쿨럭..."
소녀가 옷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지
겸연쩍은 듯 그렇게 말했다.

부산의 어느 여고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쓰러졌다는 그.
폐결핵 중증 판정을 받고
세상을 작별하려고 극약을 먹고 산등성이에 누웠단다.
"엄청 많이 먹었는데 사람들에게 발견이 되어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났어요."
눈물이 주루룩 흐른다.

아내도 아이를 데리고 그의 곁을 떠난지 오래라고 했다.
그저 스무살짜리에 불과한 철없는 소녀를 붙잡아 놓고
무슨 성녀라도 만난듯이 고백성사를 계속하던 그.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 할수 있는 일은
오로지
그 지긋지긋한 고문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일 뿐이라고 맘 먹었는지
내장이 쓰리고 꼬이고 낭창낭창 헤어져도
한움큼씩 되는 알약을 꾸역꾸역 입에 털어넣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결국은 무의미하게 되고 말
그 무의미한 고문을 줄기차게 부추겼던 야멸찬 소녀.
그의 부음 앞에서
소녀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사기꾼이 된 기분.
거짓말이 탄로난 기분...
솔직히 너무 부끄럽고 미안했다.
마치 그의 죽음에 어떤 책임을 져야만 할 것 같은 느낌까지 들 정도로...

그의 노모가 소녀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전갈이 왔다.
내키지 않는 무거운 걸음을 무릅쓰고 찾아가니
마당 전에 붙은 고추밭 이랑에 수건을 눌러쓰고 앉았던 노파가
손보다 눈물이 먼저 나오며 소녀의 팔에 매어 달린다.

"난 이제 어찌 살아요?"
병든 아들이 노파에게 해 준 게 뭐 있다구
그 아들이 없어서 못 산다는 건가?
차라리 진저리 나는 병수발 끝이 났으니 짐 하나 던 셈인데...
온갖 머리를 짜 보아도
소녀는 마땅한 말을 찾지 못 해 어쩔줄 모르고 서 있었다.

노파는 병자가 머물던 방으로 소녀를 이끌었다.
땟국 절었던 무명이부자리가 없다.
반사적으로 벽을 쳐다보니
그의 까만 양복도 없다.
낯 선 느낌만이 휑하니 그녀를 밀어낸다.

-너 이젠 필요없다...
더 이상 너를 믿지도 않는다...그러면서-

노파가 구석을 가리킨다.
"저거... 박선상이... 아가씨에게 주면 안되겠냐구 해서..."

책이 두어 다발 노끈으로 묶여 있다.
가슴이 철렁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오싹 진저리가 쳐지게 두렵기도 했다.
책 갈피갈피 죽음이 묻어있는 것 같아서...

책 무더기 위에
그의 검고 커다란 눈이 붙어있는 것 같아서 얼른 외면을 했다.
그러면서 그들의 진심을 푸근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철부지 속알머리를 들킬까봐 전전긍긍 창피함과 미안함이 범벅이 되었다.

"아니요, 생전에도 그런 말씀을 하셨지만 사양했는 걸요.
언젠가... 사모님과 아드님 오시면 그 분들 드리세요."
그렇게 약삭바른 말로 그 난처한 유품을 거절했다.

그랬다.
"제가 뭘 드리고 싶어도 마땅히 드릴만한게 없네요.
제가 가지고 있던 책들이 있는데 좀 가져가시지 않을래요?"

그때는 그의 이별을 준비하는 행동에 동의하기가 싫어서
"나중에 직접 골라서 주세요."라고 얼버무렸다.
그런데 그가 작별을 며칠 남기지 않은 어느 날,
무리하지 말라고 만류하는 모친에게 떼를 써가며
애써 그 책들을 따로 가려 놓았단다.

오래도록... 그의 아들과 아내가
그의 죽음을 애도하러 왔다는 소문은 듣지 못한 채
소녀는 그 곳을 등지고 신세계를 향해 떠나야 했다.

무심히 세월은 흘렀고 이제는 잊힐만도 한데
겨울이 되면
감기에 걸린 사람들의 기침소리에 묻어
그의 기억이 쿨럭쿨럭 되살아 난다.
야윈 몸과 커다란 눈과 젖은 기침소리가
한번씩 소녀의 가슴을 휭하니 휘돌고 지나감을 느낀다.

채 몇 달 되지 않는 동안의 짧은 인연이
어째서 이토록 긴긴 세월동안
가슴에 스러지지 않는 기억의 불씨로 살아있는지
소녀는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노파가 생존해 있을 때
한 번쯤 찾아가 만나보지 못한 것이
종종 후회가 되기도 하면서...

2003. 1. -하닷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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