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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야경 | ||||||||||
경주 야경
여행 첫 날은 토요일이라 무척 붐볐다. 일찍 정오경에 입실을 할 때는 한적했었는데, 주차장에 밀물처럼 끝도 없이 몰려드는 차들 인해, 밤에는 그야말로 불야성을 이루었다. 요즘 경주는 야경이 좋대~ 하면서 형제 부부 팀들의 절반을 끌고 나올 수 있었다. 동생들에게 로비에 가서 안내에게 야경이 어디 어디가 좋으냐고 물어 보고 오랬더니 천마총이란다. 나중에사 해석해보니..아마도 천마총 부근이란 뜻인가 보다. 막 나서려는데..남아있는 팀의 남편이 "그렇게 입고? 춥지...." 그러는 바람에 인사치레로 그저 점퍼 외피만 빼서 입는 시늉을 하고는 바깥으로 나왔다. 안압지 이르기 전 계림, 야경을 바라보며 유령 숲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야경이 멋진 게 아니라 으스스하다. 먼저 안압지에 들렀는데...차에서 내리자 마자 막내 올케는 도저히 추워서 못 보겠다며 관람권 끊어 놓고도 바로 차 안으로 가 버렸다. 연못에 물이 있어서 그런지 유난히 나도 추웠다. 정말은 안압지 저 건너편으로 한바퀴 빙돌아 건너가야지만 정원 야경도 좋고 안압지가 둘로 나뉘는 물그림자의 확실한 야경을 얻을 수 있는데, 별수 없이 나도 덜덜 떨렸다. 실내와 같겠지 생각한 잘못이다. 입구에서 요리 뱅글 한 장, 조리 뱅글 두어 장 찍고는 나도 얼른 되돌아 차에 올랐다. 괜시리 입장료만 날린 셈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직후인 674년(문무왕 14)에 '궁내(宮內)에 못을 파고 산(山)을 만들고 화초(花草)를 심고 진기 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이 안압지에 관한 최초의 기록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못의 이름에 관해서는 초기에 간행(刊行)된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과 <동경잡기(東京雜記)>등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로 미루어 안압지란 이름은 조선시대 초기에 와서 폐허(廢墟)가 되어버린 신라의 옛 터전에 화려했던 궁궐은 간 곳이 없고 쓸쓸하게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못 위에 안압(雁鴨)들만 노닐고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에 의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추측된다.
여행 첫 날 밤에는 안압지와 첨성대의 야경을 보고는 시내로 나와 야경을 구경했다. 조선호텔 정문이 그 중 제일 나았다.
이튿날 아침 일출에는 그 많은 불빛도 스러지고, 사람들의 수선거림도 스러졌다. 이튿날은 동해바다로 나가서 한나절을 보내고 들어오니...웬걸, 주차장이 텅 비었다. 일요일 주말 끝이라 사람들이 다 몰려 나갔나보다. 붐비던 오일장터의 무싯날처럼 너른 주차장엔 휑한 바람만 불었다. 나이 든 우리들만 남은 것 같아 스산함에 좀은 서글펐다. 일출
이튿날 밤에 전날 밤 다녀온 곳을 생각해 보니 천마총을 깜빡잊고는 다녀오지 않았다. 저녁 산책삼아, 운동삼아 나가자고 부추겨서 바깥으로 끌고 나갔다. 어제 토요일 밤은 그렇게나 쌀쌀하더니 일요일 밤은 산책하기 딱 좋은 기온이다. 오늘이 바로 음력 대보름이 아닌가? 천마총은 입장시간이 늦어선지 모두 무료입장했다. 너무 늦은 시간이었나 보다. 그래서? 불이 다소 꺼졌는지...어두컴컴했다. 산책길에 바로 지금 흐르는 가야금 가락이 흘러 나와 보름달밤의 운치를 더했다. 좋다. 행복한 한가로움이다. 달빛아래 온 가족이 두런 두런 이야기 나누며 산책을 한다는 게,
천마총 산책길 나무 한 그루도 허수히 여기지 않는 고적지 본연의 모습, 바로 이런 상생의 마음이 길이 보존될 때...우리는 세세토록 무궁한 역사의 긍지를 가질 수 있을게다. 지역사람인지 산책 나온 사람들이 간간이 보였지만...뛰는 사람은 없었다. ㅎㅎㅎ 이 음악을 듣고 그 누가 뛰어 다니겠는가 말이다. 경주는 그런 연유로 정적인 사색의 도시가 분명하다.
천마총 내부 전시실로 들어갔다. 바로 이 식구들이 몇 년 전 여름에도 이 곳을 찾았는데, 얼마나 더웠는지 큰 능만 가득했지 그늘진 쉴 곳이 없던 무서운 폭염의 기억들이...
1973년에 발굴되었는데 장신구류 8,766점, 무기류 1,234점, 마구류 504점, 그릇류 226점, 기타 796점으로 모두 1만 15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 중 일부가 국립경주박물관 별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금관(金冠)과 천마도장니(天馬圖障泥)이다. 금관은 지금까지 발견된 신라시대 금관 가운데 금판(金板)이 가장 두꺼우며 금의 성분도 우수하다. 또한 천마도장니는 천마총 출토품 가운데 세상을 가장 놀라게 한 유품이다. 장니란, 말 양쪽 배에 가리는 가리개로, 흙이나 먼지를 막는 외에 장식물로도 사용되었다. 자작나무 껍데기를 여러 겹으로 겹쳐서 누빈 위에 하늘을 나는 천마를 능숙한 솜씨로 그렸는데, 지금까지 회화 자료가 전혀 발견되지 않았던 고신라의 유일한 미술품이라는 데 큰 뜻이 있다. 이 고분의 명칭을 천마총이라고 한 것도 여기에 연유한 것이며, 지금은 이러한 것들을 볼 수 있도록 무덤 내부를 복원하여 공개하고 있다.
불국사 갔을 때는 또 어쩌고? 불국사 경내는 무슨 영화촬영으로 인산인해~ 출입은 금지되고 내려오는 길에는 스콜 같은 소나기를 만나서 다들 쫄딱 젖고서 일행은 모두 흩어진 채 나중에 모두는 차 안에 올랐지만 와이퍼가 무용지물일 정도로 억수같은 비가 무섭게도 쏟아내린 기억에 그 쪽은 이제 별로 쳐다보고 싶은 맘도 없어졌다. 오늘 밤은 실로 쾌적하다 그야말로 여유 자적이다. 밤에 다닐 일이다. 경주는, 게다가 무료입장이지 않은가? ㅎㅎ~~ 천마
신라금관은 천마총에서 시신의 머리에서 직접 수거한 것이라 한다. 머리에 쓰는 관이 아니고 투구처럼 마스크처럼 시신 얼굴에다가 씌운다 한다. 진품은 경주박물관 소장이고 그림의 천마총에 있는 금관은 모조품인 모양이다.
신라금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우주수목 형상의 입식이다. 이 나무 형상의 상징물은 신라금관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절대적인 요소이다. 신라나 가야 지역에서 출토된 고대 금관에는 공통적으로 나무 형상이 주요 구성 요소를 이루고 있다. ▲ 左 새 날개 모양 금관 장식 ▲ 右 천마총에서는 금관과 함께 금제 조익형관식이 발견되었는데, 폭이 59cm로 아주 큰 새가 날개를 활짝 핀 것 모양을 하고 있다. 신라무덤에서 새의 날개가 출토된 것은 천마총이 처음이다. 이 또한 신라인에게 흰 새 사상이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上 곡옥
천마총 내부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관객은 우리 가족들뿐이었다. 정말 찬찬히 마음껏 구경할 수가~ 해서 덕분에..실례의 촬영도, 후래시 터트린 죄를 언니가 대신 인사드린다. '할아버지 죄송합니다. 용서하세요." 천마총 내부전시실 모습
날씨가 포근하다. 천마총 동네가 바로 경주 황남동이다. 정문 옆에 큰 빵 가게가 즐비하다. 언니는 원조 할머니 황남빵 가게를 안다면서 천마총 오른쪽으로 난 길로 총총히 사라졌다. 자연스레 두 패거리로 나뉘어졌다. 오능의 희미한 야경
나와 우리팀들은 오릉 쪽으로 다가갔다. 도저히 사진에는 잘 나오질 않는다. 계림도 그러더니... 계림숲의 야경이 얼마나 으스스한지 천년 원혼들이 곧이라도 나타날 것만 같은 음산함~~
계림숲은 음산하면서도 그 괴기스러움이 멋졌지만 내 카메라는 그 성능이 불가항력! 모름지기 야경 사진을 찍으려면 관광객들이 붐비는 토요일 밤에나 오면 좀 더 밝을래나? 안압지와 첨성대 말고는 그 외 모든 야경이 인터넷에 떠도는 야경과는 전혀 딴 판이다. 아니다~ 검색사진을 보니 안압지도 분명히 조도를 달리했음을 알겠다. 전력절약차원에서 줄였나? 아니면 아직은 손님이 뜸한 겨울이라서? 아무튼 내가 원하던 멋진 야경 사진은 얻을 수 없었다. 대신 오능 옆에 있는 정체불명의 구옥 한 채의 모습과 천마총의 정월 대보름달은 얻었다. 야경의 조도가 낮은 대신에 정월 대보름 달은 확실하게 만끽한 경주의 밤이었다.
내일은 경주 남산아래 있는 포석정을 둘러 본 후 또 다른 여정 길에 올라야겠다. 황남빵을 보며 생각했다. 토담, 그래 바로 우리 전통고유의 토담에 박힌 돌멩이처럼 그다지 눈에 낯설지 않는 내츄럴함이다. 황남빵은, 글:사진/이요조.....중간중간 검색 발췌문 오능안에 있는 빈집
황병기님의 춘설
경주고적순회관광
식대와 입장료는 각자부담
1. 운행코스 2. 소요시간/8시간(중식시간포함)
*필히 하루 전에 예약할 것! *3월 이후에는 변동이 있을 수도 있으니 사전에 전화 확인을 꼭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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