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사동에 나가면 좋은 만남이 기다린다. 

 

 

인도에서 온 첸나이 마담 "디오'님(블로거) 실체도 만나보고 

 

 

 귀천에 가서 차도 마시고,

함께 밥도 먹고,

처음보지만 우리는 백년지기 같다.

글면식도 무시못할 앎이다.

글은 영혼이다.

영혼을 주고 받았으니 우리는 "솔메이트"

그러니 처음 만나도 이렇게 마음이 편치!

 

..

 

나를 먼저 알고 제 블로그에도 왔다며

내 손님이라 띵깡부리는 바람에

인도 보다 자기가 더 더 멀다고-

(18개월만에 얼굴본다고)투정부리는 '사랑이'님도 만나고

우리는 선물도 교환한다.

감기로 다리가 후들거리고 목소리는 저음과 탁음의 연속이지만 길을 나섰다.

인도에서 온 허브제품과 파우치

독일에서 온 쌍둥이 칼

중국에서 온 테이블 크로스

우연인지

모두들 세 사람의 궤적같은 선물들이 되버렸다.

(나야 인사동에서 급조한 것이지만)

ㅎ~  

 

길을 스치며 사진을 찍는다.

<뭐할라구?언니 거꾸로 된 그림인데...> 

 <좌우대칭으로 돌리면 되야~ 컷이 예뻐서....자세히 볼라구>

집에 와서 보니 컷보다 글이 더 좋다.

 

.

 식당을 찾아가는 길이다.(인사동 후미진 뒷골목)

....

 여러 종류의 목침이 화려하다.

인사동은 예술이다. 식당도 박물관이다.

인두 깔판 하나에도 자수를 놓아 씌워서 벽에다 걸어두는 아름다움!

우리 선조들의 멋스러움을

눈으로 포식한다.

 

인사동에 가면

마음이 배 부르고 눈이 배 부르고

영혼이 실컷 포식하는 좋은 만남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좋은 만남

뭐 좋은 볼거리가 없을까하다가

孔 화랑에서 흙으로 빚은 전시회가 있다기에

그것도 기독교적인 작품이라기에 찾아갔더니 간발의 차이로

막 타일화 전시회가 준비중이었다.

서운했다.

 

여기저기 가게에 들어가서 눈 호사 실컷 부리고

저녁을 먹고 헤어졌다.

.

.

.

.

혼자 돌아 오는 길에

노화랑 앞에서 발이 멈췄다.

'이수동'화백

실제 그림으로는 처음 만나지는....

이미 한참 내려갔을 저들을 도로 불러 세울까 하다가 참았다.

 

인사동 나들이 길이...

조금 서운하다 했는데,

 

 

 

 

그에 대해서 나는 잘 모른다.

화가에 대해서 잘 알 필요가 있을까? 그냥 그림을 보고 공감을 느끼면 좋은 게 아닌가?

그의 그림은 자작나무, 양귀비꽃, 눈,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가 녹아있었다.

겨울밤 자작나무가 너무 추워서 천사가 흰 옷을 벗어주었다는 그래서 수피가 희다는 그런 동화같은 이야기가 녹아있었다.

그의 그림앞에 서면 맑은 동시가 생각난다. 하얗게 쌓인 눈 아래로  내가  돌돌돌- 소리내며 흐르고 있는 것 같다.

누구든지 어린 동심으로 돌아가서 詩를 저절로 읊게되는 그림이다.

이 그림앞에 서면 거대한 우주공간 그 속의 자연앞에 한낱 꼬물대는 달팽이 같은 존재처럼 여겨진다.

그 속에서 서로 잘 났다고 뽐내고 다툼이 부끄러워진다.

그저 한없이 베풀며 서로 안아주며 사랑으로 살다가 갈 일이다.  인생이란....

 

 

내가 제일 오래 머문 그림이다.

폭설이 내린 설원을 홀로 가는 사람 발자국이 아니라....파란 강이 생겨나듯한 그림!

전혀 힘들거나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자연이 다 함께 동무해주고 있는 듯하다.

사람도 길도 눈도 모두 자연의 일부로 그 자연에다가 한 획을 그어 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詩 그 자체다. (내 생각에는)

 

 

이층 계단을 올라가는데  이 그림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이 그림 앞에서는 흠칫했다.

멀리서 보고는 예수님인 줄 알았다. 제목<회한>을 보고는....그리고 길을 떠나는 작은 여인의 실루엣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자의 회한에, 그 표현에 가슴이 먹먹했다.

회한을 어쩜 이렇게 짧게 맑게 표현 할 수가 있는지....

사랑하는 사람이 저세상으로 떠나든.....나를 떠나든.... 하늘에 떠있는  연한 핑크빛 구름이 한 방향이 아니라 이리저리로 흩어지는 느낌의  모양!

뭉크의 '절규'도 생각났다.

인사동 길거리의 거꾸로 된 그림을 좌우대칭으로 바로 만들 듯.... 뭉크의 그림을 뒤돌려 놓은 듯한 느낌이다.

고통, 절규의 함성도 귀에 환청으로 들려오는 듯 짜안-했다.

공감할 수 있다는 것!!  바로 그 점이  언어를 초월한  그로벌 예술이 아니던가?

 

 

Green,Red,Orang, Blue,White,를 주조로한 그의 그림에서 이 겨울 따듯한 동화를 읽는 것 같다.

 

 

설원 한 줄의 길을 처음 접한 감동이...

중복되는 그림에서는 조금 덜했다. 자작나무, 양귀비, 눈, 그 것 말고 그의 감성을 더 폭넓게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화가여! 안주하지 말지어다.

 

 

이웃 아저씨, 삼촌같은  정감을 그대로 그려내고 있는 그의 그림

 

 

 

 

인사동에 가면 화랑가에서 이런 기분좋은 그림도 만날 수가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어두운 세상의 등불같은 그림으로 밝혀주시기를...

 

 

글:이요조/노화랑에서

 

 

*'이수동'화백님은 전시물을 사진으로 담아도 좋다고 허락하셨답니다.<감사합니다>

 

 

 

 귀향길, 편안하시고 즐거운 추석이 되시기를...

  

 

 

풍성한 한가위입니다.

나눔의 팔월 명절,

풍요로움 가득한 즐거운 명절날입니다.

태풍피해로 추석 앞두고 곤역을 치르는 피해지역민들에게도

사랑의 마음을 보냅니다.

 

 

 

 

 

 

 

 

이요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요즘엔 오이 호박도 어릴 적부터
코르셋으로 조였다.
파티에 가려면 비비안리처럼
코르셋으로 몸매를 조여야 하나보다.

 

 

우리 집 파티에 참여한 호박!
코르셋을 벗겨내자
조였던 숨통이 터지는 소리 뿌드득!

 

 

소리보다 내 손에 먼저 느껴지던 건
조이고 눌렸던 살이 이완되는 떨림!
송골송골 이슬처럼 맺혀나는 땀!

 

 

오이 호박도 그냥 내사두지 않는데,
마구 퍼질러진 내 허리!
영원히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만
살 떨림!


 

 

이요조

어느 날 호박을 벗기며,

2007.6, 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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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야외마당 및 오솔길
'Art Safari' 관람은 무료입니다.
주야 시간 제한 없습니다.
2007,4,28~ 5,27일까지

 

 

시립미술관 아트 사파리


해마다 5월이면 기다려지는 [시립미술관봄나들이]
미술관으로 올라가는 길, 양쪽 정원 여기저기 작품들이 오래전 부터 늘 그자리에 있어왔던 것처럼 들어 앉았다.
금속조형물, 플라스틱? 아크릴? 조형물?
어떤 작품은 숲 속에 어떤 작품은 솟대처럼 공중에 높이 매달렸다.
어린아이들이 부모님 손을 잡고 나들이 많이도 왔다.

 

실내 전시 미술품들은 사진촬영을 금하고 있지만...야외 조형물은 아이들이 만져보고 사진도 찍고 ...

즐거워하는 모습들~~

덕수궁 돌담길을 봄나들이 산책삼아 걸으며 찾아온 서울시립미술관의 야외 공짜 미술관 관람은 자유롭고 여유가 있어 좋았다. 봄바람도 솔-솔-불고 햇살도 반짝이고....

 뭐, 5월 5일만 어린이 날인가?  5월은 성년의 날도 있고...성년 축하식 데이트로 이 곳이 어떨까?

밤이면 데이트 장소로도 아주 좋겠다. 작품마다 별도 조명이 있어 야간이 더 환상적일지 모르겠다.

가끔씩은 다른나라, 별세계에 와있는 듯한....느낌의 푸른 정원,

올 봄에는 문화와 더욱 가까워지는...그래서 오월 신록처럼 우리, 날마다 짙푸러지자!!

 

 

 

글:사진/이요조

 

 

 

 

 

 

'전신덕'님의 <나른한 오후> 연작 중 1

 

 

 

 

 

미술관 건물도 엄연한 하나의 작품인 것을..

 

▲  '류신정'님의 작품 ...Close Vitality?  제 보기엔 Open Vitality 같아 보이네요,,,ㅎㅎㅎ

 

 

 

▲ '최혜광'님 작품

  

 

'금중기'님 작품 <무거운 집> ....현대인들을 비꼬는 풍자 카툰 한 장면이 엉금엉금 바깥으로 봄나들이 나온 것 같지 않으세요?

 

'강용면'님의 작품으로 <온고지신 2007-말>

 

웬걸 아빠가 더 신이 났다.

 

보다못한 엄마가 아이들을 불러 챙기고...ㅎㅎㅎ

 

 밤이면 불이 들어와 무척 환상적이겠다. 내 눈에는 하늘을 마구 날아다닐 유니콘 같아 보인다.

 

어때....친구! 이만하면 아름다운 세상을 껴안고 살아볼만하지 않은가?  

 

 

어! 공룡알인가?

 

 

 

▼ '박발륜'님의 작품으로

 

블루 바탕에 빨강 dot 무늬 강아지는 달마시안 강아지처럼 친근스럽기조차 하다.

 

 

 

 

 

  

 

 헉! 눈부셔....눈 부시다니까~~

 

  

신선이 따로 있을소냐? 난....높은 곳에서 유유자적...즐기기나 하련다.

 

 

미술관은 당분간 침묵이다.

 

다시 덕수궁 돌담길을 돌아나오며

 

  덕수궁 돌담길을 돌아나오는 길....연둣빛 신록에 눈이 아리다.

 

            Art Safari, Art in Bloom 2007 exhibition in outdoor road and garden of Seoul Museum
 
  ▶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야외마당 및 오솔길에서 2007.4.28~ 5.27 까지 열리는
    2007 미술관 봄나들이전은 무료입니다.
※ 단, 본관 내부에서 열리는 《한국화 1953-2007》전,《신소장작품 2006》전,
    《천경자의 혼》상설전은 별도 관람권을 구입하셔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실내 미술전시 관람시 사진촬영은 금지하고 있습니다.

촬영을 금지하는 이유는

1. 작품의 저작권자가 작가에게 있기 때문에 작가의 허락없이 작품을 촬영할 수 없으며,
2. 카메라 라이트를 사용시 작품에 영향을 미칠수도 있고
3. 촬영을 하면서 다른 관람자에게 방해를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지도와 이용안내 시립미술관 홈페이지 안내

http://seoulmoa.seoul.go.kr/html/kor/aboutsema/map.jsp

서울시립미술관은 서소문구 대법원자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오시는 길은 지하철 1호선 시청역 1번 출구 또는 2호선 시청역 12번 출구로
나오셔서 시청 별관과 덕수궁 돌담길 사이로 오시면 미술관 진입로가 보이며
이길을 따라 올라오시면 됩니다.

버스로 오실 경우에는 시청 정류장이나 서대문 정류장에서 하차 하시면 됩니다.

미술관내 주차 시설은 협소한 관계로 미술품 운반 및 업무용 차량 이외의 일반
차량은 주차가 어려우니 대중 교통 수단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주차요금은 월요일 부터 토요일까지는 10분당 800원을, 공휴일은 10분당 600원
으로 유료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약도는 관람안내 > 이용안내 > 오시는길 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봄이다.

       

      파를 한 단 사와서

      봄 햇살 가득한 마루에서 파를 깐다.

      이걸로 파전을 부치고
      파 겉절이로 식구들 입맛이나
      상큼하게 해줘야겠다.


      대야 가득 물을 받아

      깐 파를 부벼 씻는다.

      푸드득..푸드득,,,
      파의 속살이 서로 부딪히며 내는 소리!
      청정하고도 싱그러운 소리다.


      장농 안  잘 개켜진 이불처럼

      가족끼리 그렇게 살 부비고 살라고...
      모서리 모서리 곰살궂은 사랑으로

      정을 다독이며 살라고
      푸드득..푸드득,,,

       

      따분한 봄날,
      졸고있는 사랑을 일깨우는

      날개짓 소리다.
      그렇게 풋풋하게 살아가란다.

      푸드득..푸드득,,,

       

       

       

      파를 씻으며, 글:사진/이요조(5월 가정의 달에 부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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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포옹'  저처럼 착각하지 마세요!

 

영원한 사랑을 이야기하던 '은행나무 침대' 에서 오랜 시일이 흐른 후 사랑을 이루지 못했던 미단 공주와 종문은 황혼의 들녘에서 은은한 햇살을 주고 받으며 사랑을 속삭이는 두 그루의 은행나무로 환생한다.

 

그 어떤것도 우릴 갈라놓지 못해요. 그대 곁엔 언제나 내가 있어요...영원히~


어제 5천 년 전 포옹한 채 눈 감은 연인 유골 발견된 보도 사진을 뉴스로 접하고는 나는 뭔가  풀지못한 문제를 풀은 듯 ....기분이 싸-아 했다. 

...........

 

지금처럼 미니홈피나 블로그가 없고 개인 홈페이지가 성황인 10여 년 전,

나도 홈페이지를 개설했었다. 비록 선물 받은 것이긴 하지만,


그 때  '백신스키'를 처음 알았고

그의 그림을 맞닥뜨렸을 때의 섬뜩함에 기가 질려 버렸다.

처음엔 얼핏 헤비메틀음악에나 어울림직한 그림이라고 폄하해 버렸었다.


'그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그 때  전율에 가까울 정도의 암울한  그의 그림을 접하고는 눈을 쉬 뗄 수 없었던 나는 이 후로 백신스키의 그림이라면  무조건하고 웹상에 떠도는 그림을 죄다 긁어모았지 싶다. 무려 4~50여개의....


물론 그의 이력에 대한 긴-글을 수집 정리 스크랩했다.

지금와서 활자화 시키려니 기억에 한계가 있어서 포털싸이트를 뒤져  검색을 해봐도 이전의 내가 수집하여 잃었던 자료(홈페이지 해킹)의  1/10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다.

물론 요즘에는 저작권법이란 게 있어서 함부로 가져올 수도 없지만...

아예 서점에서 그의 화보집을 산다면 또 모를까~


벡신스키 (Zdzislaw Beksinski)
1929년-폴란드 카르파티아산맥 근처의 도시 "샤녹(sanok)"에서 출생 유년시절을 2차대전의 영향으로 암울함속에서 보냄.
Cracow에서 건축학을 전공, 졸업 후 건축 감독으로 몇 년을 보내던 중 건축설계에 대한 압박감과 지겨움으로 건축일을 그만두고, 예술작업에 뛰어듦
1958년-비평가들로부터 그의 사진작업들이 호평을 받기 시작함.
그후, 그는 드로잉(drawing)작업에 심취함. 그의 극사실적인 묘사와 난해한 작업이 시작됨.
폴란드 현대예술의 대표주자가 됨 1977년 - 가족과 함께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Warsaw)로 이주. 폴란드를 비롯, 유럽에서 수많은 전시회를 함. 1990-새로운 매체인 컴퓨터그래픽 작업 시작.


이외에도 기억을 되돌려 부언하자면 그는 절대적 반전화가였다.

그의 작품은 철사를 뒤엉키게 만들어 석고를 부치고, 마치 기괴한 주검을 나타내어 얼마나 전쟁이 죽음이 참혹하고 무서운지를 나타내려했다고 전한다.

그의 그림들을 모으면서 나는 폼페이 최후의 날의 화산석, 유물로만 알고 있던 '포옹'을 만나보고서야 비로소 그의 작품임을 처음으로 알았다.


나는 그 확인이 있기 전, 화산재에 파묻힌 실제의 유물로 알고는 참으로 그 사랑에 감동했었다.

그런데...그 화가를 알고 나서 가공된 이야기에 시들하기는커녕, 그럴 수도 있을거야~ 라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뉴스를 접하고 가히'백신스키'의 '포옹' 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확인한 셈이다.

 

 

두 팔로 서로를 감싸고 서로를 응시하는 듯한 이 유골은 5천 년에서 6천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남녀의 유골이 이탈리아의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견돼 화제다.

6일(현지시각) 로이터 통신은 이탈리아 북부 만토바 부근의 신석기 시대 유적지에서 원형이 거의 완벽하게 보존된 유골이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치아 상태가 잘 보존 된 것으로 볼 때 젊은 나이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그는 이어 "이 유골들을 처음 발견했을 때 더군다나 포옹하고 있는 형태의 유골이 발견하고는 모두 굉장히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라며 "지난 25년간 폼페이를 비롯한 거의 모든 유명 유적지에서 발굴 작업을 해왔지만 이렇게 감동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발굴을 이끈 엘레나 멘토니의 설명.

 

 

폼페이 최후의 날 엿보기


1,700년이나 흐른 뒤, 사람들은 그 옛날의 모습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얼마나 갑작스레 닥친 재앙이었던지, 새끼 돼지가 오븐에 넣어지려 한 채로 발견되었고, 반쯤 구워진 빵이 발굴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너무나 불쌍한 모습으로 굳어져 있었다. 어머니들은 숨이 막히기 전에 힘껏 아기를 감싸 안고 있었고, 어떤 이는 금붙이를 꽉 움켜쥔 채 돌무더기에 깔려 있었다. 어느 집 문턱에서는 젊은 여자 둘이 집안으로 들어가 귀중품을 꺼내려고 망설이는 몸짓으로 굳어 있었고,

한 집에서는 장례식을 치르고 있었던 듯 문상객들이 빙 둘러앉은 그대로 자신들의 장례식에 참석해 있었다.


모든 집이 1,700년 전 8월 어느 날 한때의 모습을 ‘동작 그만’인 채 간직하고 있었다. 도서실에는 두루마리 종이가, 작업장에는 연장이, 목욕탕에는 수세미가, 여인숙 탁자에는 손님들이 서둘러 계산한 돈이 그대로 놓여 있었다.


어느 학자는 이렇게 말했다한다.

 “하나의 도시를 완전무결하게 보전하는 방법으로 도시를 화산재로 덮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이 프레스코화는 그 시대 남자들의 생활을 잘말해준다 .

자신의 성기와 금은보화를 저울에 달고 있다.

 

폼페이를 신의 재앙이라고 부른다면 아마 이런 퇴폐한 생활 때문이었을 것이다라고 현대인들은 추정한다. 

정죄(定罪)를 무서워하고 두려워해야 하는 그런 예시의 역사가 아닌가 싶다.

 

 

2007,2,8. 이요조

 

 

 

 

 

*가을 그리기* 

 

그림판 이용 마우스로 그림 그리기 

 

가을, 그림판으로 마우스 그림을 그려 나만의 그림 메일을 만들어 친구에게

가을 냄새 물씬 풍기는 나만의 편지, 그림 멜을 한 번쯤 보내보는 것은  어떨까요?

마우스만으로도 썩 괜찮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답니다.

자.....그럼 시작해 보실까요?

 

 

 

.

 

 

 

 

갈대

 

 

예전에 그려두었던 그림판 (마우스) 그림들입니다.

윈도우 좌측 하단에 보시면 시작을 클릭하시고 프로그램 ▶ 보조프로그램 ▶ 그림판을 펴 놓으시고 그리시면 됩니다. 잘못 그어진 선은  편집을 열어 실행취소를 누르면 쉽게 사라집니다.

다시 실행에 옮기고 싶으시면 반복을 누르시면 되고요.

 

우리네 인생도 그림판처럼 그림을 그렸다가 잘못되면 다시 지우고 수정하고 반복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갈대

 

 

 

 

그림이 그려지면 일단 흑백으로(맨위그림)  저장을 한 후,

혹은 칼라를 넣기도 합니다. 이 칼라 저 칼라~ 맘에 들 때까지 무한 반복

맘에 드는 칼라로 채색해 보기도 합니다.

맘에 드시면 또 다른 이름으로 저장하시면 느낌이 다른  두 개의 그림이 됩니다.

 

 
,

아! 물론 문자도 넣을 수가 있습니다.
자필로 text 도 가능하니...더욱 더 좋겠지요?

 .
 

 

 

 
타래
 
얼마든지...수정이 가능하니까....주눅들지 마세요.
원하는 칼라는 얼마든지 만들어서 가져다 쓸 수가 있답니다. 색편집만 누르시면,
유치원 다니는 어린 아이들처럼...순수하게....그냥 마음을 비우시고....
 
잠자리
 
 

 

     ▼ 이미지를 눌러 색반전을 시도하면 이런 분위기도 나옵니다.

 

잎새

 

 이상은 모두가 마우스 그림판을 이용한 것입니다.

어때요?

친구에게 내가 직접 만들어 글씨까지 새겨넣은 편지나 생일카드를 보내보면 어떨까요?

이 가을이 가기 전에.....

 

 

글:그림/이요조

 

 

 

해바라기

 

 

 

 

 

 

소철

 

 

 

 

화병

 

 

 

아래 그림은 블로그 이미지 올리기에서 여러가지 효과를 담아 변화를 조금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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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는 것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을 그린다. -피카소-

 

 

피카소를 만나보기 위해 덕수궁 돌담길을 걸었다. (2006, 7월 14일)날씨는 매우 후텁지근했지만

미술관가는 길은 아직은 연초록빛 은행나무 그늘아래로 걷기엔 기분은 상큼했다.

오히려 에어컨 설치 잘 되어있는 미술관 관람은 한여름도 좋지 않을까 권유하며~~

 

서울 시립미술관으로 향하는 덕수궁 돌담길~

함께 가 보실까요?

전시장 내부 사진은 당연 찍을 수 없지만...

 

샤갈전에 가서 사람들에게 한 번 치인적이 있는지라 주말은 피하고 부러 주중을 선택해서 갔다.

태풍이 지나갔지만 폭우가 쏟아지던 화욜날(11일) 가면 무지 널널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대문을 벗어나기도 전에 바짓가랑이는 다 젖을 것만 같았고....을씨년스러워 참았던 게 금요일이 되었다.

 

 

 

가만....샤갈도....붉은 색이었나?

초록빛 거리에 붉은 걸이게 현수막,  피카소가 그 답게 꽤나 열정적으로 다가온다. 

 

 

미술관 입구

 

해 묵은 향나무의 인고의 몸짓도 예술?

 

내 느낌에는 너무 화려하지도 결코 넘치지도 않은 모던한 느낌의 서울시립미술관!

입구서 부터 무척이나 편안한 느낌을 준다.

미술관 자체를 감상  둘러 보는 것도 ....좋지않을까...하는

 

 

 

매표소 입구, 예매가 아니면 주말엔 줄 깨나 설 성 부른....

 

빨강이다.

아마 그의 삶도 색채로 고르라면 빨강일 것 같다.

 

지난 번 샤갈전 기록을 뒤져 비교해 보니...화이트에 블루다.  하늘을 훨훨 날아 다니는 그의(샤갈)그림

불루가 아니고 그런 몽환적인 분위기를 끌어 낼 수 없을 것 같다는....생각을...조금~

 

역시 피카소 그는 단연코 Red다.

 

 

금요일 점심시간을 막 지난 주중이라 한산한...

 

서양 갤러리문화는 편안한 의자가 많이 놓여져 있어서 편히 앉아서도 오래 감상할 수 있게끔 되어있다는 데 우리는 주말이면 완전 도때기 시장 모습이다.

큐레이터의 설명도 듣고 천천한 감상을 원한다면 주중을 필히 이용하시라 권하고 싶다(월욜은 휴관)

 

 

전시실 바깥 곳곳에 휴식의자는 그런대로 갖춰진 셈이다.

 

 

찍으면 안되지만 큐레이터를 쫓아 설명을 듣고자 몰려다니는 사람들 뒷 모습만 한 컷!

 

나는 어린 아이처럼 그리는 법을 알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피카소-

 

 

한때 친구의 죽음이 계기가 되어 피카소의 암울한 청색시대를 주조했던

그의 친구 페르낭드 모습?인지는 정확히 잘 모르겠지만....

 

 

휴게실 매점 창문에서 내려다 보이는 미술관 입구

 

 

창에서 바라보이는 곳 북악산인가?

 

휴게실

 

휴게실 팥빙수와 쿠키~

 

3층에서 내려다 보이는 shop~

 

 

휴게실에서 내려가는 나무계단

 

덕수궁 석조전이 마주 바라다 보인다.

 

미술관 매장답게 명화들로 만들어진 소품들~~

 

고흐와 크림트의 그림...모네의 수련등이 보인다.

실크 스카프가...8만여원, 넥타이가 6만여워~ 가량

 

 

그림 넥타이 청색계열 그림이 무난해 보인다. /내가 보기엔...역시 모네의 수련이 그 중 마음에 듬~ (右 3)

 

 

 

 

이전 글 (2)에서 부분 발췌문

 

*미술지에서 읽었던 내 기억 뒤집기+


많은 사람들은 예술은 몰라도 피카소는 다들 잘 알고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흔히 말하기를"눈이 튀어 나온다느니~""코가 납작해졌다....."
또는"코가 비뚤어지도록 마셔댔다""입이 얼었다"이런 왜곡된 언어들처럼...
왜곡되게 그려진바로 그점이 피카소의 그림의 키워드가 된다.
피카소는 살아생전 부와 명예와 사랑을 누린 아주 특별한 예술가였다.
여러 여자들과의 열렬한 사랑......아마 그는 틀림없이 대단한 열정가 였으리라...
그는 많은 여자들에게서 한결같은 사랑을 받았었고 그는 많은 여자들을 앎으로 해서 氣를 뺏기는 게 아니라 되려
영감을 받은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는 1973년에 91세로 사망했다.     2002.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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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년
폭염이 내리 쬐던 여름,
63빌딩 1층 전시관에서 피카소의 “전쟁과 평화의 대서사시”<게르니카>를 관람했다.
파블로 피카소는(1881-1973.스페인 출생 파리활동) 전쟁의 인간말살,파괴에 대해 1937년 캔버스에 유채, 세로 349 가로776센티의 거대한 그림을 그렸다.
인간파괴를 고발한 예술가의 양심으로----
광복기념 행사 일환으로 열린 이, 전시회를 관람하며 전쟁이 끝난 우리의 싯점에서 우린
<게르니카>의 비극에서 진정으로 해방 되었는지 다시금 생각해볼 문제였다.
전쟁이 발발 한지 어언 50년,
냉전은 화해와 평화의 분위기로 돌아서고---
우린 20세기를 빛낸 천재화가 최고의 걸작인 <게르니카>를 만난다.
고국,스페인의 소도시<게르니카>가 파시스트로부터 무차별 폭격을 받은 기사를 읽은
피카소가 분노하여 수십 번의 밑그림(exquisse)을 통해 완성한 그림.
엄청난 충격과 사회적 이슈를 일으킨 에스키스42점과 그 작품을 대하며 그의 예술 세계를
한층 가까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그는 생존 시,드물게도 가장 부요를 누리던 운 좋은 예술가 피카소!---
그의 작품 <게르니카>의 뒷얘기를 찾아 보기로 했다.

캔버스에 나타난 숫소는 파시즘이 아니라 잔인성과 암흑을 표현한 것이라고 그는 어떤 인터뷰에서 답했다고 했다.
게르니카의 화폭 속에서는 진짜 적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분명치 않다.
마찬가지로 정의에 편에 서있는 자가 누구인지도 찾아내기 어렵다.
인민을 상징하는 것으로 편리하게 해석했던 숫소도 피를 흘리면서 보이지않는 적을 찾고 있는 것처럼 광폭스럽게 그려져 있다.

포화에 견디는 얼굴, 추위에 견디는 얼굴
거부에 밤에 부정에 타격에 견디는 얼굴

뒤집혀진 죽은 심장

여인들 아이들은 같은 붉은 장미들을
눈 속에 지녀
저마다 자신의 피를 보여준다.
(게르니카의 승리<부분>)

,엘뤼아르’(프랑스 최고의 저항시인,자유의 찬가노래 1894-1952)
피카소완 남다른 친분 관계며 굳건한 예술적 동지이다
그가 피카소에게 보낸 편지 한귀절을 빌면
“한폭의 그림앞에 설 수 있는 시인처럼 한편의 시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이다.”
피카소는 분명 시인 기질이 넘쳐 흐르는 예술가임이 분명하다.
실제로 피카소 자신이 상당량의 시를 쓴바 있고
‘앙드레 브르통’이 “시인 피카소”라 당당히 불러준 사실에서도
그의 시적 상상력의 풍부함과 창조성을 확인 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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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하나다.
예술은 언어가 필요치 않다.
예술 그 자체만으로도 완전한 커무니케이션을 이루기 때문이다.

문학이 그러하고 음악이 그러하고 그림이 그러하고
무용이 그렇다.(난, 무용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무용은 샤먼에서 기인한다고 들었다.
신과의 교접----
마치 신 들린 듯한 몸짓이 아니고서야 어찌 몽매한 범인이 공감이 있을까?---
무언의 그 어떤 느낌, 우린 본능의 느낌으로 그냥 알고 있다.
단지 표현에 한계성만 느낄뿐, (2000년도 글에서~)

 

 

 

 

......2006년에 만난 피카소.........

 

 

그는 또 다른 이야기를 몰고 왔다.

기획 전시하는 사람에 따라서 이야기는 무궁무진하게 그 색깔을 달리한다.

큐레이터를 쫓아 다니기에 평일이라도 6~70명은 좋이된다. 어떤 해설은 잘 들리고 어느 그림은 건성 지나가듯 하지만,

시대적으로 일목요연 분류 게시된 피카소 그림들... 함께 동거한 여인에 따라 그림도 그 색깔을  달리하고 있었다.

 

그 시대적 나눔이 곧 현실의 배우자와의 나눔도 되는 듯,

그 배우자와의 삶에서 그림도 바뀌고 주,모델도 바뀌는...이 번 피카소 주제 컵셉은 넷상에서 한참  떠 돌던

피카소의 여인들 이야기에 포카스가 맞춰졌다.

어쩌면 <게르니카>전 보다 시대의 유행흐름인 누리꾼들의 입맛에 맞춘 듯....

 

그의 그림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화가와 모델이란 제목하의 수많은 그림들을 보면서 느낀점은

다소 거칠고 조악해 보이는 드로잉과 왜곡

 

한결같이 웬 여성 모델들의 성기는 그렇게 과다노출 크로즈엎 시켰는지....

씁쓸한 느낌이 드는 건 그의 그림에서 오는 섭함이 아니다.

 

우리나라  천재화가 이중섭님이 자꾸만 오버랩되어 온다.

그는 아이들 그림에서 夏童을 많이 그렸고 자연 성기가 노출된 어린아이들로 구성된 그림이었다.

 

그의 그림은 전시를 앞두고 그림이 내려지는 불운을 맞았다.

그림이 쌍스럽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유에 의해서~~

 

1880년대에 출생한 파블로 피카소와 1916년에 태어난 이중섭,

우리의 불운했던 화가가 왜 가슴 한 켠에서 청승처럼 꿈틀거리는지....

 

왜 시대는 ...세상은..... 관점이랄지...관념?이  그렇게나 다른지?

우리는 왜 그렇게 예술의 눈뜸이 늦었는지....참으로 애닯은 일이 아닐 수 없는 노릇이다.

피카소는 아무런 제약도 받지 않은 과감하고도 거칠어 보이는 붓질이다.

실로 거리낌없는 단숨의 붓놀림들이다.

그에게 캔버스가 주어지면 생각할 겨를도 없는 사람처럼 단숨에 스윽쓱 대충? 그리고는 그 자체가 완성인 적이 많았다 한다.

마치 동양화의 선의 미술...여백의 미술을  짐작,   커닝한 것처럼 말이다.

 

시쳇말로 제 꼴리는대로 그린 그림...요즘 아이들이 본다면 호색환 변태라고 주저없이 말할 것 같다.

그는 자유뷴방한 화가이면서 누릴 건 다 누렸다.

부와 명예와 여자 마저도....아마도 그의 정력은 대단했었지 싶다.

그의 예술적 에너지는 끝없는 스테미너에서 나온 게 아닌지 짐작한다.

 

 

그의 그림이 조악내지는...거친듯 하다고 했던 생각은 오히려 판화 에칭부분에 가서 그 생각을 접는다.

동판, 석판이라 하기에는 얼마나 섬세한지 차라리 몽환적 분위기가 나는 그림들...

그의 싸인, 년도가 거꾸로만 보이는 것만 아니라면 실제 내가 선호하는 (그 다운?)그림인 듯...

역시 대가답구나!! 하는 인정의 기 눌림을 받았다.

 

 

깨어진 그림!!

 

그는 사물을 보이는대로 그리는 게 아니라 느껴지는 것을 그린다는 파블로 피카소!

 

내 자화상을 들여다 보니...마치 피카소가 그린 그림보다 더 하다는 생각을 잠시잠깐 해본....

피카소와의 데이트~ 좋았습니다.

 

이상 무식쟁이의 그림읽기 이요조 였습니다.

 

 

 

 

 

 

2006년 7월 14일 다녀와서 15일 쓰다.

 

 

 

 


파블로 피카소 ( 1881~ 1973년 스페인 말라가 출생)

 

피카소전/서울시립미술관  http://www.seoulmoa.org/  

기간/5월20~9월3일(월요일 휴관)

지하철 이용/시청 1번 출구 : 덕수궁(左) 돌담길을 끼고 250m 좌측

요금/12,000원(성인) 5,000(어린이)

관람시간/오전 10시~ 오후 10시(평일) /오전10~오후 8시(토,일 공휴일)

전시문의/02-724-2900

ARS 2124-8800

 

 

 

7월17일 제헌절은 월요일이지만 개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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