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비인후과 약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나보다. 체질이 비슷한 언니 왈... "약 너무 독해서 어찌 먹으려고.." 이젠 다 나았는데도 그 약이 몸 구석구석에 배어서 그런지 나른하다 아무런 힘도 없다. 세상에 좋을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다. 그래 무채색이다.
빨갛던지, 파랗던지, 하얗던지, 아님 새카맣던지...그냥 사위어버린 잿빛이다. 그 동안도 남편과 딸에게는 부지런히 왔다갔다 드나들었다. 그냥 태엽 감긴 로봇처럼 늘 다니던 길을 말없이 오가고 전철에 앉으면 으레 잠도 아닌 눈을 감고는 열길 스무 길 물 속으로 가라앉았다.
전철을 기다리며 역사의 까마득한 철제빔 꼭대기 위를 아슬아슬 아크로바트 하듯이 타고 흐르는 혹한 속의 멜로디.. 귀에 익은 멜로디다. 무슨 곡이지? 근데 무슨 대수랴
서 있을 수가 없어 타일 벽에다 선 채 몸을 기댄다. 등줄기로 시퍼런 냉기가 푸르르 전해진다. 주머니 속에 넣은 손이 속에 들은 동전 몇 개와 자꾸 노닥거린다. 의식은 동전을 멀리하는데..어느새 또 동전을 만지작거리는 손가락, 서너 개 되는 동전을 아예 주머니 뒷 모서리 구석으로 몰아붙였다.
모든 게 귀찮다. 두 번 다시 무의식 결에도 손이 닿지 않게끔, 멀찌감치 밀쳐두고픈 내 일상들 처럼...
.....
처음 사이버 컴퓨터에 푸욱 빠졌던 1999년 밤을 홀딱 세우는 내게 식구들은 우려했다. 그 당시 내겐 해외 나가있는 그이 대신 참 좋은 벗이었고 아마도 6~7개월이면 물려서 지칠 거라(가족들) 예상했다는데..빗나갔다. 그 게 6~7개월이 아니라 6~7년이 되어서 이제야 나타나는가 보다
사이버 세상이 통째로 사라져도 눈썹도 미동 않을 것 같은 요즘이다. 나를 들뜨게 하거나 내 심장 박동 수를 늘여줄 아무 것도 이 세상에는 없을 것 같다.
.....
약이 목구멍에 삼킨 채로 위장 어딘가에 제 자리들을 잡고 걸터앉은 채로 살아서 내게 그 느낌
을 전달해 오고있다. 큰 알약은 알약대로 길쭉한 모양은 그 모양새로 반 알짜 리는 번 알 짜리 대로 크고 작게 길쭉하게 속에서 살아 녹지도 않고 꼿꼿이 서 있다.
그저께부터는 괜스레 목에 뭔가 걸린 것처럼 불편하다. 목이 죄어온다. 아프다. 전에 할머니 치매 시작할 때 근 한달 간 이런 증상에 시달렸는데..
이번에는 정말 가락지 같은 게 목에 딱 걸린 느낌 그대로다. 끙끙거리다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는 한결 수월했다.
그 걸 잊기 위해 만두를 빚었다. 혹시 또 자세가 불안정하여 허리가 아플까봐서 허리를 꼿꼿이 한 채로
시간을 빚는 건지 아무튼 못난이 만두를 건성 조물락 조물락 빚었다. 밀가루 묻힌 손으로 여러 번의 전화를 받았다. 어서 털고 일어 나라고.... 사이버 칼럼 친구들이다. 언제 만나자고...
감동을 잘 하는 나....코끝이 찡해 온다. 만두도 빚었겠다 나는 일 인분 이 인분 헤아려 가면서 빚었다.
누구도 오라 그러고 누구도 부르고...그래서 하하호호 수다도 부리고....
마음 같아서는 그들을 당장이라도 초대 하고싶은데 그들을 초대하려면 나는 또 괜한 대청소를 허벌나게 해야하고
"으악~"
나는 생각만으로도 지레 병들어 지쳐 누울 것만 같다. 텔레비전에는 척추에 관한 아침 건강토크쇼가 한창이었다. 점심 만둣국 준비를 하는데... 얼라...허리는 괜찮은데..목이 경직되었다. 이런 몸으로 이런 고장난 몸으로 내가 살아야하나? 참으로 한심스럽다.
점심을 먹고 나니 다시 목에 걸린 것이 나타났다. 목덜미도 뻣뻣해오고 그냥 자리에 들었더니 내쳐 몇 시간을 잘 자고 났나 보다.
...........................
첫 인사가 우울해서 죄송합니다. 그러나 그 동안 공백기를 활자 몇 개로 표현해 드리기엔 이 방법밖엔 없을 것 같아 섭니다. 잘 쓰지도 못하는 글을 올리고 풀방구리 드나들 듯 하던 그런 작은 행복도 아쉬워서 무거운 눈꺼풀을 뜨듯이 긴 잠에서 깨어보려 합니다. 걱정마세요...그래서 멜로디는 아주 경쾌하게 넣었어요.
제 몸에 남은 약 기운이 다 빠져나가면 여태 잃었던 왕성한 식욕도 되찾고
못쓰는 글 사진 올리며 다시 희희낙락 할 내가 그려지기라도 하니
아직은 추스릴 여력은 분명 살아있나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