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사진/이요조

2002/7/25(목) 20:56 (MSIE5.0,Windows98;DigExt) 210.183.3.37 1024x768


돌..... 탑...담 ...다리......& 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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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두들, 흰 상의에 흰 바지 패션으로  










왜냐구요?

ㅎㅎ~

찜질방 패션이지요.

지난밤 무척 더우셨지요?

이 공짜 찜질방..

이벤트는 고맙게도 8월 상순까지는 이어질 거라네요.

지난밤..
무더위에 잠들을 설쳐서 지쳤는지.. 오늘 아침 교통방송..
글쎄..접촉사고가 좀 잦다고 조심하라더니 그예,
15중 대형 충돌사고를..../올림픽 대로였다지요..아마?

여름..
무더위..습기,
이 무더위가...습함이...우리가 먹을 농작물을 자라게하고 과일을 농익게하고,

이 지겨운 여름 탈출 법~
뭐 없을까요?

우리 속담에 미운넘 떡하나 더주기 식으로
역으로 여름 반겨 즐겨 지내기~~ 어때요? 저랑 함께 해보시지 않겠어요?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저희 친정어머님.. 시골 민물 저수지나 웅덩이에서 익힌 수영실력인데도
대단하셨지요.

여름이 오면... 언제나 바다 물놀이를 가실 생각에 늘 상기되곤 하셨지요.
여름도 오기 전...수영복을 챙겨보시는 분이셨으니까요.
덩달아 저희들도 당연히 여름이 기다려졌지요.
이렇게... 피하시지말고 당당히 맞서서 즐기기~~
여름 좋아하기를...적극 권장해 드리고 싶습니다.

전 한 여름에 태어났습니다.
저희 어머님이 날 낳으시고 무더위에 고생하신 걸...
보답이라도 하듯...
저도 지금 군대 간넘을 똑같은 날자 7월 8일에 낳았습니다.
다행인 것은 전..음력으로 그넘은 양력으로
생일을 쇠고 있어서 아직까진 합동으로 치뤄 손해?보는 일은 일어나질 않았습니다만,


6.25 가 발발한지 며칠 지난 7월 8일에....
그래서 그런지 여름에 태어난 전, 더위에 강한 편입니다.

억수로 내리는 빗 소리가 좋고.....그 비를 가르며 달리는 자동차 바퀴 소리가 좋고
태풍이 오면.. 등대를 마구 활퀴며.. 굉음의 소리를 내던 집채만한 파도더미가 좋고
가쁜한 원색들의 옷차림이 좋고...뭔지모를 경쾌함이 좋습니다.

어렸을 적엔.. 친구나 형제끼리 "묵찌빠 게임"으로 부채 100번 부쳐주기,
모기장 안으로 형제들이 오르르르 기어드나들던.. 그 재미,
바닷가에서 찝찌름한 고동을 탱자가시로 파 먹으면...
모래와 함께..아사삭 씹히던 기억들,
봉선화 꽃 물로 10손가락 칭칭 동여매고 혹시나 벗겨질까...
잠 못이루다가 다음 날 아침에...
두어개만 남아 손가락 끝에 달랑거리던....봉숭아 꽃물 꼬깔...

매미가 쓰르라미가 목청껏 울고... 가재 잡으러..논고동 잡으러 다니던 일,
소 꼴 먹이러 다니던... 시골 외가,
떫은 생감이 떨어지면... 등겨 속이나... 물 논 흙속에 넣어두면... 달착지근히 익어 나오던 감...
소등을 다투고 내린다던... 소나기 묻어 내리던.. 물안개
밤 마실 갈 때마다시끄럽게 울어쌓던 개구리들....

그곳에는 묵찌빠가 없어도 잠들 때까지 부채질 마다 않으시던
내, 외할머니가 계시고
별똥별이 후두둑... 숱하게 떨어지던 멍석위에서
옛날이야기.. 새록새록 정겹던 외할아부지,
청미래 넝쿨 잎(망게)으로 팥 소를 듬뿍 넣은 우리 밀 떡(빵?)을 만들어 주던...이모,

여름날은 그래서 내게 잊지못할 추억의 계절로 늘 가슴을 메우던.....


요즘엔,
닦아서 쓰는 그릇이(알미늄 남비)이 없어졌지만
오래 전부터...
유독 혼자만의 특별한 여름나기 비결 방법 하나!
부엌 베란다에 나가서 수세미로 닦을 그릇은 죄다 내어놓고
물장난 하기입니다.

더우면... 입은 옷 위로 수도 꼭지 채...물을 뒤집어 쓰며
그릇을 닦으면...
더위 걱정쯤이야..저리 가라였지요.
막내 꼬맹이넘이 괜시리 엄마가 부러워 함께 덤빌라치면...
쉬운 일거리를 내어주고
함께... 물놀이를 즐기기도.. 참..돈하나 들지 않는 서민층 물놀이로는 이만하면...
가히....... 賞하나 쯤... 누가 줄법도 한데....

여름이 좋습니다.
전 유독 여름을 좋아합니다.
냉면이 맛있고
과일이 많고..특히나 내 좋아하는
한 입 베어물면..꿀맛처럼 달고 시원한 수박이 냉장고에서 날 기다리고
풀멕인 까슬한 삼베 이불이 좋고
자라오르는 화초들이 싱싱하게 푸르러서 좋고...

휴가를 떠나는 짜릿한 여유의 말미가 좋고
얼음처럼 찬 미수가루...얼음 둥둥 뜬 냉커피를 마시고 난 후
그 얼음을 와자작 깨물 때..통쾌한 그 소리를 좋아하고...

샌들 사이로 드러날 발가락에다 페티큐어를 칠할 때..아이들 처럼 마냥 즐겁고,
빠알갛게 발라진...내 못난 발가락이 한결 예뻐 보여 기분이 좋아지고,

빙과류를 사다가 냉동실 뒷켠에 숨겨두고는
가끔... 더위먹은 내 아이들에게 때맞춰 큰 인심 쓰는 척 하나씩...
건네주는 재미도 쏠쏠하려니와

유난히도 강냉이를 좋아하는 그에게
찰 강냉이를 골라와서 달착지근하게 삶아두는 재미또한 무더운 여름이 아니오면..또 언제 느낄꺼며,

모진 삭풍 에이는 겨울..
차가 빙판길을 슬슬 기며 가지 못하던 겨울을 생각해 보면..
나는 마치 큰 부자가 된 것처럼이나 행복하기 그지없음을...

더위야...
좋다. 오려므나.... 이렇게 찌든 불면의 밤..몇 번만 넘기고 나면...
오슬한 가을바람에 못이겨 이내 옷깃을 여미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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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가치

사람의 가치는 어떻게 따져 측정할까
똑 같은 사람이라도 판단하는 기준과 판단하는 주체
그리고 판단 대상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

힘이 세고 없고 하는 사람의 가치는 옛날 머슴 세경 매길 때
가치 기준일게다. 거기에 머리까지 영리하면 더 비싼 가치가 있을거다

얼굴 이쁘고 몸매 좋고 춤 잘 추고 노래 잘 부르고 하는 기준은
옛날 기생 고르는 포주의 기준일게다
거기에 손님 등까지 잘 치고 외상 술값 잘 받아오면 풀러스 알파의
가치가 더 하겠지 그렇지만 황진이의 경우는 또 다른 가치기준이
있을테니 예외로 치자

현대의 건설 시장에 한 번 가보자
요새는 힘든 일을 않는 사람이 많아져서 건설 공사장에 사람이 없다
아침 인력시장에 가보면 일손이 바쁜 현장에서 봉고차를 대령하여
사람을 실러 오는데 늙은이 젊은이 가리지 않는다

그렇지만 막상 임금 줄 때는 아무래도 나이 먹은 사람은 젊은 사람보다
그 가치가 돈 만 원이라도 빠진다 물론 여자는 남자 보다 몇푼이
더 싸다 기분 나쁘지만 어쩔 수 없다 장사는 장사니까

어디 사람 가치 한 번 더 따져 보자
재벌회사에서 일당 백만 원하는 고급두뇌의 엘리트가 시골의 농사일로
하루 품팔이 하러 갔다고 하면 그 일당은 얼마나 줄까?
일자 무식쟁이의 육십 먹은 노인의 일당쯤도 주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경우는 젊음도 늙음도, 학식이 높음도 낮음도 사람가치의
판단기준이 될 수가 없다 하겠다
단지 그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가치의 기준일 뿐일게다

나는 시골에 팔순의 아버님이 계신다
다들 그랬듯이 나도 어렸을 적에는 부모님 한테 많이도 혼나면서 자랐다
내가 자라 장년이 되면서 부모님은 노인이 되시니 자연히 아버님은
판단의 능력을 상실하게 되어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생긴다
어느 때는 불효스럽게도 아버님께 핀찬(?)을 하게된다
그럴 때는 그 자존심 많으신 아버님은 그 눈빛이 고퉁스러워 하심을
볼 수가 있다 나는 곧 후회하고 잘못을 빌게 되면 그냥 됐다 라고 만 하신다
나이를 먹음은 누구나 어쩔 수가 없다 죄도 아니다
자연 현상일 뿐이다 나무가 자라 고목이 되듯이

그러므로 나이를 많이 먹음이 생명이 있는 것에 대하여 가치의
판단기준이 될수가 없는 것 같다 그러할진데 사람에 대하여서랴
단지 힘의 세기나 키가 크다거나 얼굴이 이쁘거나 노래를 잘 부른다거나
손재주가 있다거나 등등의 것들은 그 필요에 따라서 효용의 가치에 따라
그 가치가 매겨질 수 있을 뿐 또 배우고 못 배우고 병신이고 병신이 아니고
지금 나이가 들고 안 들고 등이 사람가치의 기준 또한 되어서는 안되지 싶다

내가 왜 요새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왜 이런 글이 쓰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시골에 연로한 부모님이 계셔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나도 나이를 먹어가고 있어서 일까 나만 나이를 먹어가는
것은 아닐텐데 그런데 가끔 찾는 대청마루가 때로는 우울하다
凡夫의 생각이 올시다













*용마루의 꿈*


















*龍*









자고나면



솟아나는 마천루 숲에



오늘을 사는



 용마루 이무기는



 하늘을 우러러 늘~



 꿈꾸는 비상,



 어이.. 갈꺼나



저 창공을..날아



 번개치고



소나기 퍼 붓는 날



 우뢰 속에 나는 오르리니....     






황금빛 비늘을 번뜩이며,





































?













































음악 : Yuriko Nakamura, Late In Summ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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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이호아의 암시장은 깨끗하고 조용하기만 하다.



폭염 속의 한가로움에

슬슬 장난 끼가 발동해

무기상에 들어가자마자

맥주 5.can 꽁가이 1.

하고 큰소리로 주문했다.

(술과 여자를 주문하자, 주인은 당황하기 시작하였다.)




안면은 많고

거래는 깨끗하고

화를 낼 수도 없고

없는 술에, 여자는 더욱이



제기랄

술은 집에 있는 것 가지고 오고,
여자는 마누라가 나오고 있으니...



그놈의 장사가 무엇인지?

그들의 마음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이제 그만 해야겠다. 생각하면서

장난이 심했다고 말하면서

장난을 접었다.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고

중대장님의 무전 재촉에 할 수 없이

주문을 시작했다.

C. K 2정과 수류탄 5개 실탄 150발을 주문했고

가지고 나온 맥주를 비우기도 전에 준비가 끝나고 있었고

총 550불을 주고 거래는 현금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대대적인 작전이 끝나고 나면 많은 휴식들이 주어진다.

그 날도 3소대는 강가로 고기를 잡으러 나가고,

1중대는 큰 연못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물개로 통하는 박 병장이 연못에서 놀고 있었지만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갑자기 박 병장이 소리를 지르고 물 속에서 나왔다 들어갔다 하고 있었지만

장난하는 줄 알고 바라만 보고 다들 웃고 있었으니

그런데 물 속에서 오랫동안 나오지 않는 것이 아닌가?



급히 물 속에서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소대가 대대적인 수색을 펴보니 수초에 감겨 죽어 있지 않은가?

금방 비상히 걸리고 소대장 중대장이 왔다.

군에서 안전사고는 큰 골칫거리였으니 더욱이 사망은 치명적인 타격이었다.

중대장 이하 장교 하사관은

진급에 지장이 많으며 직속상관은 책임을 묻고 있다.



금요일 저녁 11시 40분 매복조에서 상황이 타전되었다.

1소대 매복조와 베트콩의 대대적인 총격전이 있었고

포대의 조명 지원도 모자라 헬기 조명까지 가세해

난민촌 입구는 대낮같이 밝았다.

지루했던 불꽃놀이는 2시간 가까이 가서야 끝이 났다.

전과와 아군의 피해는

베트콩 사살2명 C. K 소총 2정 수류탄 5개 실탄 다수

아군 피해는 전사1명으로 밤중에 이동병원으로 공수.



물에 익사한 박 병장을 위생병 이 병장은 잘도 닦고 있다.

나무 그늘에 판초우의를 깔고 알코올로 정성스럽게 3번을 닦고는

새 옷으로 갈아 입히고 있다.

그런데 한시간도 채 못 되어

다시 옷을 벗기고 헌옷을 입히고 땅바닥에 몇 번을 굴리고 있다.

무엇이라고 말을 하려고 하는데

중대장님의 호출이다.

품목을 적어 주고는 즉시 다녀오라고 했다.

투이호아의 암시장을



부대장의 묵인 하에 가짜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고

죽은 박 병장은 업혀 나가

김 하사가 조준하는 C. K 소총에 정면을 관통하여 현장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명치에 단 방울의 피가 흘렸다.

저승에서도 벌어지지 않는 두 번 죽는 사자가 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지금은 동작동에 장엄하고 잠들고 있다.

또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우리 인류 평화를 위해 자유의 십자군으로 참전하다

장렬한 최후를 바친 아버지의 후광으로

정부의 특혜와 연금으로 잘 지내고 있을게다.



김 하사는 죽은 박 병장을 다시 C .K 소총으로 죽이는 공에 의해

57$의 봉급을 10개월 간 못 받는 대가로

화랑 무공훈장을 받고 진급도 했으며

조국을 위해

영원히 길이 빛날 금자탑을 쌓고 있었고

악질하사라는 오명을 벗고

지금은 근엄한 상사로 군의 귀감이 되고 있다.



이건 어느 날의 가짜 상황 일지다.

그렇지만 실제 일이다.

가짜는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결국에는 진실은 없어지고

가짜만 남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현실에서는 흔한 대리전이 판을 치고 있다.

가짜가 진짜가 되는.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으면서도

방관자가 되어 편한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었다는 근사한 이유와 함께.

시치미를 잘도 떼면서.

나는 절대로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치부하면서



자본주의의 부산물이요,

우리 현실이 자신도 모르게 만들고 있지,

자아의 인간성 상실은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다.



어쩜 이 대리 전은

엘리트들의 포장된 유희인지도 모른다.



전쟁이란 어차피 인간성 상실이라고 매도하면 그만 이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자꾸만 생각나는 것은 웬 조화일까?



요즘 어르신들의 요양시설을 자주 간다.

여기에서 대리 전 생각이 자주 나는 것은 내 과민성일까?

그냥 내 할 일만 하고 돌아오면 그만인데.

그래도, 그래도

다른 것은 다 그만두고

휴일에 책임자가 없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봉사자들은 몰려오고, 급박한 상황은 늘 일어나고 있는데

이곳에서 대리전이라니

곧 해소되리라 기대하면서도 뒷맛은 개운치가 않은 것은 날씨 탓일까?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다만 총을 근사한 언행과 사물로 대체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 사회에서 만연하는 이야기는 접더라도

상류사회나 최고 지성인들의

상실된 인간미와 치졸한 행동,

끼리끼리의 야합의 행동에 실망한지 오래이다.



자존심을 최고로 지칭하는 글 쓰는 사람들조차도

교묘한 자기미화와

자아 상실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이 부분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기에

대리전쟁 속에서 나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장 존경받는 곳에서

받은 충격에 실신하고 있었으니

차라리 돌아가고 싶다.

가서 통곡하리라.



이제 정석의 삶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자아를 찾을 때까지



그리고는

이 가짜 속의 나를 찾아서

그 님의 사랑 속으로 돌아가리라.

영원히.





(2002.6.12. 보리밭님이 쓴 글)














** 동생 아다다 **






내 슬픈 전설의 22 페이지( 그림 천경자 )




저는 착한 사람을 사랑합니다
저는 순수한 사람을 좋아합니다.
저는 저기 서 있는 사람은
하얀 사람이다 라고 하면
하얀 사람인줄 아는 그런 사람
그런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아다다~순진하고 착했습니다
제가 50평생 동안...가장 좋아하는 친구
친구의 동생도 아다다처럼 벙어리였습니다
헤헤 웃는...그냥, 아아"의 소리 밖에 못하는.
그런 친구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국민학교만 나오고
더이상 학교를 가지 못했습니다
집에서 안 보낸 것입니다
학교는 못가도 그녀는 웃으며
싸돌아 다니기만 했습니다.
농사 일과 집안 일은 맡아놓고
그녀의 차지였습니다

친구네 집은 우리 마을에서 강건너
저편인데 시오리 거리였습니다.
힘드는 생활인데도 언제나 웃는 얼굴로
반기며 오빠와 오빠 친구인 나를
하염없이 좋아만 했습니다.
그냥 얼굴울 보면 압니다
눈빛만 보아도 압니다.
맨날,여기 저기 바보라 소리를 듣는
그 동생이 얼마나 우리들 오빠들을 좋아 하는지를..
행동과 말에서 표정에서 알 수 있습니다.
위선과 가식이라고는 전혀 티끌조차도
찾아볼 수 없는, 못생긴?=그러나 너무도 예쁜
그런 친구의 동생이었습니다

또래 애들은 고등학생이었는데도
그녀는 일만하는 시골소녀였습니다.
우리들이 대학생이였을 때에 친구 집에서
그녀를 볼라치면 항상
솥두껑처럼 큰 두 손을 휘휘 내저으며,
논으로 밭으로 나다니며..밭을 매는
키는 멀대처럼 솟고,저고리 해삼 적삼은 헤져
햇볕에 그을린 붉은 속살이 드러나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언제나 미소지으며, 아다~로 반기는,
그녀는 제 친구의 동생이였습니다.
.............

세월이 흐른 뒤였습니다
난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인이 막 되던
어느 해에 친구의 집에 갔었습니다,
그 때 친구 동생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친구의 동생을 물었지만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그의 눈가엔 작은 이슬 같은 눈물방울이
맺히고는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도 더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집을 나서는 내내 저의 눈 앞은
그 동생의 해맑게 웃는 옛 모습만 어른거렸습니다
........
그 뒤 들리는 이야기로 여름 날
홍수로 불어난 내를 건너다 물에 휩쓸려
그렇게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고향의 江은 평상시에는
조그만 물줄기가 맑게 흐르는 내인데도,
비만 오면 맹수처럼 불어나는
물쌀돌이를 일으키며 무섭게 내달리는 江이 됩니다

곧 아랫 마을 허리가 꼽추인 총각에게
시집 가는 날을 잡아놓고 기뻐하고 좋아 했었다는데
그날도 일만시키는 성화에 못이겨 강건너 밭을 매러 갔다가
갑작스레 쏟아진 여름 폭우에 넘친 강물을 건너다 그랬답니다,
.......

.......

그후 이제는 벌써 20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잊고 있었지만... 그녀는 너무도 착한 이미지로
지금껏 제 맘 속에 남아있습니다
...
...
백치아다다(계용묵의), 노래 아다다~
아다다가 생각나는군요
백치 아~다다,..누가 불렀던가요
오래 전의 노래 아다다
너무도 착하고 착한 우리 아다다,
너무도 가엾은 우리 아다다,
불쌍하고,불쌍한 착한 아다다
몇 년 전인가..이미자와 조영남이
세종문화회관 이미자콘써트에서
이 曲 아~다다를 부르더군요,
미칠듯이 밀려 왔다가는 사라지고
다시 밀려오는 애원의 곡조가
이미자외 조영남의 美聲으로 어우러져
제 마음을 후비어
제 눈에서는 눈물이 주루루 흘렀습니다


글/이주민



***만용의 여유***


되잖은 글도 자꾸만 쓰다 보면...
성격이 유리 어항처럼. 속 내장이 다 드러내 보이는 빙어처럼,
싫던 좋던 남에게 환히 다 드러내 보이게 된다.
가릴래야 당췌 가릴 수가 없어진다.

그 게 오래 지속하다 보면... 성격이 그렇게 변하여 가고...
종내는 속에다 아무 것도 담아 둘 수 없는 창고 하나 없는 빈곤층이 되어간다.
가정사도 조금만 언짢은 일이 있어도 난, 누구에게든지
이야기 하고는 털어버리려 애를 쓰는 쪽인데...
전혀.그 쪽으론 자물쇠를 채운..지독한 사람을 알고 있었다.
그러더니...어느날 갑작스런 이혼을 했단다. 주변사람들은 아무도 그 사실을 믿으려 들지 않았다.

왜? 왜그랬을까?
나중에 만날 기회가 있어..들어 본 바로는
'내가 부러웠단다. 그냥.. 남편흉도 보고...자식흉도 보고,,,막상 자기는 늘 가슴에다 꼭꼭 묻고 살아서..
어디서 부터 실타래를 풀어야 할지...늘 막막해 왔다고 했다.

그래서..난, 내 못난 성정이 그날은 위안을 얻었었다.
비닐 천막이나 프랭카드는...
큰 바람이 거세게 불면 저항감으로 견디다 못해... 찢어지거나 날아가 버리는데...

나처럼 언제나... 구멍이 적당히 숭숭 뚫어져 있다면...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진 않으리라...
(ㅎ~ 너무 궤변을 늘어 논건가? 시방???)

아무튼... 이젠.. 각설하고
나도 쪼까... 내숭을 떨어보아야 할란가보다.
앞 뒤, 거두 절미하고 글을 써 볼려고 한다.
누가 보면..얼마나 시간적 여유가 호사스러워 그럴까? 하겠지만,
그 이야기는 생략하기로 하고,

난, 아주 오랜만에 창경궁엘 들렀다.

어디쯤... 식물관도 있고 연못도 있으려니.. 오른 편으로 돌아갔더니
아니나 다를까...연못이 나온다.
물가를 노니는 한 마리 새, 농병아린지..도요샌지.. 사진을 찍어가며...산책을 했다.
도심속에서 이렇게 좋은 자연을 그저 접할 수 있다니...폐부로 들어오는 비릿하고도 달착지근한...
숲의 냄새..습기만큼, 기분이 상큼해 왔다.

조금 이상한 것은 혼자 온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것,
하지만 이젠 괜찮다.
그만큼 내가 이젠 늙었나보다.
지금보다는 좀 젊었을 적에는 혼자 다니는 게 늘 마음에 캥겼다.
아마도 나처럼 혼자 다니는 이가 없지 않나 싶었다.
보는이들 눈에 어떻게 비춰질까?
아마도 아직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수준은 혼자서 찻집이나 유원지를 드나드는 사람, 그리 흔치 않을 터이고,
더구나..그 게 여자라면.. 구구한 억측이 많을 법도 한 일이다.

난, 여태 살아오면서...밑 빠진 곳에 돈을 써 본적은 거의 없다.
그러나 딱 한가지 혼자서 가까운 길을 나서고 좀 괜찮아 보이는 찻집을 구경하고
차 한잔을 마시고 오는 것이 내 40대의 주종인 호사였었다.
간혹 맘 맞는 주인을 만나.. 뜻밖의 좋은 이야기를 나누고
또는 자신의 애장품들을 이야기하고....(주로 전통찻집이나..테마가 있음직한 집만 찾아감)
그랬었는데...
그 당시 지인들은 나를 전통찻집을 차리려고 그러는가보다는 구구한 억측만 남기기도.....


연못에 다다르자 부근에 잉어 먹이를 파는 아저씨가 있었다. 붙여논 쪽지글에는 수성펜으로
"에이스 500원 잉어밥 300원"
되었길래 나는 둘 다 잉어 밥인데 에이스가 더 나은 고급인줄 알았다.
"아저씨... 에이스가 뭐에여?"
"에이스가 에이스지요"
심드렁하게 말하는 아저씨가 가르키는 쪽을 보니... 정말 에이스 크래커를 놓고 팔고 있다.
잉어밥을 두 봉지 달라고 하자
"비둘기에게 주면 안돼요 그러면 안 팔 거예요"
' 아따...이 아자씨... 비둘기에게 혼껍을 묵었나....' 혼자서 생각하며... 실쭉 웃어주었다.

사람들은 군데 군데 쌍쌍이거나... 아니면 삼삼오오 모여 앉았다.
사람들 시선이 적은 한적한 곳으로 가서 잉어밥을 조금씩 뿌려 주었다.
피래미만 잔뜩 꼬여 들었다.


그 때... 저쪽 반대편 수면을 둔중하게 가르며...첨벙 솟아 오르는 물소리!
잉어였다. 내 팔뚝만한...

몇번을 그렇게 첨벙거리더니...
난, 그 때..엉뚱하게도 "백경"을 생각했다.
등줄기 위로 물살을 가르며....유연하게 다가 오는 것이 느껴지다가 보이기도 하다가
아마 그넘도 나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빙빙 돌다가
날 인식하는 듯... 원을 그리며... 배회하다가
내가 가진 먹이가..고작해야 동네.. 피래미들... 목축이기에도 모자란,,것인줄 약삭빠르게 알아차리고는
나에게서 멀어져 가더니 영영 나타나질 않았다.
잠깐 ...느릿한 물결이 일길래 자세히 보니... 자라 한 쌍이 느긋하게 헤엄을 치고 있었다.

연못가의 산책로를 빙...돌아 보노라니,
수령이 약 500년도 더 묵은 느티나무가 있었다.
바로 이씨조선의 역사와 함께한.. 산 증인일테다.
묵묵히 있는 나무지만, 뭔가 모를 겸허함이 느껴진다.


실로 간만에 들러 본.. 창경궁,
늘 바쁘다고... 그 앞으로 황망히 지나치기만 했던 곳,

모처럼 호사스럽게
만용의 여유를 한껏 게걸지게 부려본 날이였다.




글/이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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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몹시도 따뜻하던 어느 봄날에 우리 동네 버스 정류장 앞에 어떤 할머니께서 좌판을 펼쳐 놓고 장사를 하시고 계십니다. 지나가며 우린 이다음에 나이가 들어 부자는 아니더라도 우리 부부 손잡고 공원에라도 산책하는 여유와 국수 한그릇 사 먹을수 있는 형편이라도 되어야지 우린 저렇게 되게 낭비말고 부지런히 살자며 이야기를 하며 지나갔습니다.



그런 한달 후 친정 엄마께서 우리 집에 다니려 오셨습니다. 아침에 식구 모두 직장에 나가고 혼자 심심하셨는지 운동 삼아 동네 한바퀴 도시다가 할머니를 발견하시고 과일 좀 사오셨다며 저녁 먹은 후 내 놓으십니다. 그러면서 젊을땐 고왔겠다며 "그 연세에 쯧쯧" 혀를 차시며 안타까워 하십니다. 그 다음날 엄마께서 좋아하시는 메밀국수를 하려고 장국 만들어 식혀두고 국수를 삶아 놓고 냉장고를 뒤져 파를 찾으니 다 먹었는지... 할 수 없이 수퍼에 파를 사러 가다가 문득 할머니 생각이 나서 발걸음을 돌려 할머니께로 향했습니다.



"할머니 잔파 천원치만 주세요. 봉투는 여기 있으니 여기에 담아 주세요." 파가 담긴 봉투를 내미시며 한줌 덤으로 더 주시며 고마워 하십니다. 봉투까지 들고 와서 더 주는 거라며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참으로 푸근해 보이고 비록 자판에서 장사를 하고 계시지만 고운 분이라 여겨졌습니다.



시장 다닐 때면 꼭 장바구니와 비닐봉투를 가지고 다닙니다. 내게는 비록 하찮은 봉투이지만 장사꾼들에게는 돈이니까요. 좀 귀찮더라도 가져갑니다.



난 가끔 할머니께 뭘 사러 갔다가 놀다 오기도 하며 시장에서 사고 받은 봉투는 깨끗이 씻어 차곡차곡 말려 두었다 할머니께 갖다 드리면 고마워 하시며 과일 몇개 집어 주십니다. 내가 받지 않으면 도리어 할머니께서 미안해 하실까봐 그중에 못생기고 흠 있는 걸로 몇개 골라 도망가듯 뛰어 가면 할머니께서는 나를 부릅니다. 그건 팔지 못해서 할머니께서 먹을려고 두었던 거라며 좋은 것 가져 가라고 고함을 지르십니다. 난 뒤돌아 보며 "할머니 잘 먹겠습니다." 하고는 얼른 집으로 갑니다.



어느날 할머니께 김치지짐 몇개 구워서 갖다 드리면서 가족이 없으시냐고 여쭈니 "놀면 뭐하노 힘 있을때 움직여 손자 용돈도 주고 내도 좀 쓰지" 하시면 씁쓸하게 웃으십니다. 젊은 시절때 참 고왔던 얼굴이며 그런대로 사셨던 인품인데 어찌하여 저 연세에 길거리 자판에서 장사를 하시며 사시게 되었을까 가슴이 아픕니다.



난 가끔 남편과 다투거나 남편이 늦게 들어오는 날엔 지짐 몇개 구워 할머니께 갑니다. 어린 시절 동네 머슴아들에게 맞고는 친할머니께 이르듯이 할머니께 남편 흉도 보며 화를 내기도 하면 할머닌 사람 좋은 웃음으로 "참거라" 하십니다.
"참는 사람이 이기는 기다. 남정네들 알고 보묜 불쌍하데이 그래도 색시 신랑은 그만하몬 된기다, 꼭 시장 같이 댕기고 심부림도 잘 하드마이 천난만날 젊인기 아이라 쌔움 하지 말거라" 하십니다.
난 할머니 말씀에 잠시 내 자신이 부끄러워 집니다. 그런 내 투정을 항상 잘 받아 주시며 살아가는 지혜로운 말씀을 더러 해 주시는 할머니가 참 좋습니다.



비가 아주 많이 내리던 날 밤에 남편이 내게 그럽니다. 비오는데도 천막밑에서 찬밥 드시고 계시기에 인사도 않고 얼른 와버렸다고 하는 남편도 마음이 안쓰러운가 봅니다. 내내 그말이 가슴에 맺혀 있었습니다. 그날도 남편이 늦는다는 전화에 남편줄 밥을 도시락에 담고 지짐 몇개 굽고 된장찌개 가지고 할머니께 갔습니다. 비닐을 덮어 쓰시고 계시는 초라한 모습에 공연히 화가 났습니다. 도대체 가족들은 뭐 하는 사람들인지 그들이 미웠습니다. 한사코 마다하시는 할머니께 던지듯 도시락을 드리고는 돌아서는데 내 눈에는 빗물인지 눈물인지 흘러 내리고 있었습니다. 밤 늦게 들어 온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잘 했다며 내 등을 두드려 주는데 갑자기 왈칵 또 눈물이 쏟아집니다. 아마도 예전에 내가 고생하던 그때가 생각나서 그런가 봅니다. 울면서 나 늙어서 할머니처럼 그렇게 살기 싫으니 돈 많이 벌라고 하니 남편은 웃으며 알았다며 그런 내가 어린애 같다고 꼬옥 안아줍니다. 그런 남편이 듬직해 보입니다.




(2002,3,24, 새침이님이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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