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용의 여유***
되잖은 글도 자꾸만 쓰다 보면...
성격이 유리 어항처럼. 속 내장이 다 드러내 보이는 빙어처럼,
싫던 좋던 남에게 환히 다 드러내 보이게 된다.
가릴래야 당췌 가릴 수가 없어진다.
그 게 오래 지속하다 보면... 성격이 그렇게 변하여 가고...
종내는 속에다 아무 것도 담아 둘 수 없는 창고 하나 없는 빈곤층이 되어간다.
가정사도 조금만 언짢은 일이 있어도 난, 누구에게든지
이야기 하고는 털어버리려 애를 쓰는 쪽인데...
전혀.그 쪽으론 자물쇠를 채운..지독한 사람을 알고 있었다.
그러더니...어느날 갑작스런 이혼을 했단다. 주변사람들은 아무도 그 사실을 믿으려 들지 않았다.
왜? 왜그랬을까?
나중에 만날 기회가 있어..들어 본 바로는
'내가 부러웠단다. 그냥.. 남편흉도 보고...자식흉도 보고,,,막상 자기는 늘 가슴에다 꼭꼭 묻고 살아서..
어디서 부터 실타래를 풀어야 할지...늘 막막해 왔다고 했다.
그래서..난, 내 못난 성정이 그날은 위안을 얻었었다.
비닐 천막이나 프랭카드는...
큰 바람이 거세게 불면 저항감으로 견디다 못해... 찢어지거나 날아가 버리는데...
나처럼 언제나... 구멍이 적당히 숭숭 뚫어져 있다면...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진 않으리라...
(ㅎ~ 너무 궤변을 늘어 논건가? 시방???)
아무튼... 이젠.. 각설하고
나도 쪼까... 내숭을 떨어보아야 할란가보다.
앞 뒤, 거두 절미하고 글을 써 볼려고 한다.
누가 보면..얼마나 시간적 여유가 호사스러워 그럴까? 하겠지만,
그 이야기는 생략하기로 하고,
난, 아주 오랜만에 창경궁엘 들렀다.
어디쯤... 식물관도 있고 연못도 있으려니.. 오른 편으로 돌아갔더니
아니나 다를까...연못이 나온다.
물가를 노니는 한 마리 새, 농병아린지..도요샌지.. 사진을 찍어가며...산책을 했다.
도심속에서 이렇게 좋은 자연을 그저 접할 수 있다니...폐부로 들어오는 비릿하고도 달착지근한...
숲의 냄새..습기만큼, 기분이 상큼해 왔다.
조금 이상한 것은 혼자 온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것,
하지만 이젠 괜찮다.
그만큼 내가 이젠 늙었나보다.
지금보다는 좀 젊었을 적에는 혼자 다니는 게 늘 마음에 캥겼다.
아마도 나처럼 혼자 다니는 이가 없지 않나 싶었다.
보는이들 눈에 어떻게 비춰질까?
아마도 아직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수준은 혼자서 찻집이나 유원지를 드나드는 사람, 그리 흔치 않을 터이고,
더구나..그 게 여자라면.. 구구한 억측이 많을 법도 한 일이다.
난, 여태 살아오면서...밑 빠진 곳에 돈을 써 본적은 거의 없다.
그러나 딱 한가지 혼자서 가까운 길을 나서고 좀 괜찮아 보이는 찻집을 구경하고
차 한잔을 마시고 오는 것이 내 40대의 주종인 호사였었다.
간혹 맘 맞는 주인을 만나.. 뜻밖의 좋은 이야기를 나누고
또는 자신의 애장품들을 이야기하고....(주로 전통찻집이나..테마가 있음직한 집만 찾아감)
그랬었는데...
그 당시 지인들은 나를 전통찻집을 차리려고 그러는가보다는 구구한 억측만 남기기도.....
연못에 다다르자 부근에 잉어 먹이를 파는 아저씨가 있었다. 붙여논 쪽지글에는 수성펜으로
"에이스 500원 잉어밥 300원"
되었길래 나는 둘 다 잉어 밥인데 에이스가 더 나은 고급인줄 알았다.
"아저씨... 에이스가 뭐에여?"
"에이스가 에이스지요"
심드렁하게 말하는 아저씨가 가르키는 쪽을 보니... 정말 에이스 크래커를 놓고 팔고 있다.
잉어밥을 두 봉지 달라고 하자
"비둘기에게 주면 안돼요 그러면 안 팔 거예요"
' 아따...이 아자씨... 비둘기에게 혼껍을 묵었나....' 혼자서 생각하며... 실쭉 웃어주었다.
사람들은 군데 군데 쌍쌍이거나... 아니면 삼삼오오 모여 앉았다.
사람들 시선이 적은 한적한 곳으로 가서 잉어밥을 조금씩 뿌려 주었다.
피래미만 잔뜩 꼬여 들었다.
그 때... 저쪽 반대편 수면을 둔중하게 가르며...첨벙 솟아 오르는 물소리!
잉어였다. 내 팔뚝만한...
몇번을 그렇게 첨벙거리더니...
난, 그 때..엉뚱하게도 "백경"을 생각했다.
등줄기 위로 물살을 가르며....유연하게 다가 오는 것이 느껴지다가 보이기도 하다가
아마 그넘도 나를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빙빙 돌다가
날 인식하는 듯... 원을 그리며... 배회하다가
내가 가진 먹이가..고작해야 동네.. 피래미들... 목축이기에도 모자란,,것인줄 약삭빠르게 알아차리고는
나에게서 멀어져 가더니 영영 나타나질 않았다.
잠깐 ...느릿한 물결이 일길래 자세히 보니... 자라 한 쌍이 느긋하게 헤엄을 치고 있었다.
연못가의 산책로를 빙...돌아 보노라니,
수령이 약 500년도 더 묵은 느티나무가 있었다.
바로 이씨조선의 역사와 함께한.. 산 증인일테다.
묵묵히 있는 나무지만, 뭔가 모를 겸허함이 느껴진다.
실로 간만에 들러 본.. 창경궁,
늘 바쁘다고... 그 앞으로 황망히 지나치기만 했던 곳,
모처럼 호사스럽게
만용의 여유를 한껏 게걸지게 부려본 날이였다.
글/이요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