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의 美學 // 벤취마킹


언젠가 어느 모임에서,
한 사람이 뜻밖의 질문을 했습니다.

(5-3=2).(2+2=4) 가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 어렵게 생각이 들지않는 계산이라.
쉽게 말을 했는데
그 사람의 설명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5-3=2)란.
어떤 오해(5) 라도 세번(3) 을 생각하면
이해(2) 할수 있게 된다는 뜻이고,

(2+2=4)란,
이해(2) 와 이해(2) 가 모일때,
사랑(4) 이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른사람을 오해할때가 있고.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오해는
대개 잘못된 선입견, 편견, 이해의 부족에서 생기고,
결국 오해는 잘못된 결과를 가져옵니다.

(5-3=2) 라는 아무리 큰 오해라도,
세번 생각하면 이해할수 있다는 풀이가
새삼 귀하게 여겨집니다.


사실
영어로 "이해" 를 말하는 "understand" 는,
"밑에 서다" 라는 뜻으로
그 사람 입장에 서서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이 이해라는 것입니다.

이해와 이해가 모여 사랑이 된다는 말,
너무도 귀합니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사랑은 이해인지도 모릅니다.
따뜻한 이해와 이해가 모일 때,
우리는 그것을 "사랑" 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들의 삶은.
"가까운 타인" 삶으로
전락해 버린 듯 싶습니다.

낚시 바늘의 되꼬부라진 부분을,
"미늘" 이라고 부릅니다.
한번 걸린 고기가 빠져나가지 못하는 것은,
미늘 때문입니다.

가까운 타인으로 살아가지만,
마음 한구석에
미늘을 감추고 살아가는 우리는
때때로 너와 나 사이에 가로놓인 벽 앞에
모두가 타인이 되곤 합니다.


( 5 - 3 = 2 ),
( 2 + 2 = 4 ) 란 단순한 셈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와 서로를 가로막고
때로는 멀리 떨어뜨려 놓은
온갖 오해를 따뜻한 이해로 풀어버리고,
우리 모두
"사랑" 에 이르렀으면 좋겠습니다.


벤취마킹 드림((^_^))









face=굴림체>

**동행자**


족히 30분쯤은 기다렸다가 겨우 행선지를 확인하고는 시외버스를 탔다.
흔들리는 버스에 아직 적응치 못하고 잠시 비틀대며 자리를 찾는 내게
로, 옆 자리에 올려 놓았던 앉은키만한 커다란 베낭을 들어 바닥으로
내려 자리를 마련 하시고는 와서 앉으라는 신호를 보내시는 할아버지를
발견하고...
"아, 감사합니다.”
얼른 인사를 드리며 풀썩 넘어지듯 할아버지께서 내어주신 빈자리로 가
앉았다

잠시 후...
버스의 흔들림에 차츰 몸이 익숙해 짐을 느끼며 자리를 내어주신 옆 자
리의 할아버지께 감사한 마음으로 나는 조심스레 말을 붙여 보았다

"할아버지, 어디로 산행을 떠나시는지요?"
"나? 등산..청평으로 가지."
"녜,거기..호수가 참 좋지요?"

언젠가 청평호 앞에서, 산을 타고 오르는 물안개를 바라보면서 안개 속
같이 불투명한 아침을 맞이하던 어느 날의 하루를 떠올리며 무심한 질
문을 드리는 내게로 할아버지는 참 진지한 답변을 해오신다

"그럼, 좋은 게 호수 뿐인가 어디."
"......."
"거긴 뭐든지 다 좋아. 예전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사람
도 좋고, 물도 산도 다 좋지. 그래서 올 여름은 거기서 나려고 가는 걸"
"베낭이 무겁진 않으신가요?"

보기 싫지 않을 정도로 손때가 묻고 군데군데 까만 곰팡이의 흔적이 남
은 큼지막한 군청색 베낭으로 눈길을 보내는 나를 따라 할아버지는 마
치 오래도록 정을 주며 함께 살아온 애완견의 목덜미를 어루만지듯 살
가운 손길로 베낭을 어루만지시며 말씀하신다.

"무겁긴, 아직 이 정돈 괜찮아. 예전에 비하면 모든 걸 절반으로 줄인
걸. 이젠 힘이 들어서 텐트는 못 가지고 다녀. 그래, 민박을 정해 놓고
다니지."
"오래도록 산을 타셨나보군요. 실례가 아니라면 할아버지 연세를 여쭈
어보고 싶은데요.."
"나? 이제 여든 넷이라우. 산을 탄지는 한 삼십년 됐고..우리 남한
땅에 있는 산은 거의 다 가봤지. 외국의 낮은 산 몇 개 가 보았고..."
"녜? 이렇게도 정정하신데 여든이 넘으셨다구요? 그럼 산엔 자주 가
시는지요?"
"그럼! 일년이면 반은 산에서 지낸 다오"
"어머나 그럼, 할머님이 싫어라 하시지 않으시나요?"
"없는 걸! 먼저 떠나 보낸 지 한 7년쯤 됐어...건강했으면 참 좋았을
것을. 애기 엄마도 운동 열심히 해요. 여자들이 건강해야 해."
"아 저런, 죄송합니다 할아버지.."
"괜찮아.그런 걸 가지고 죄송은 무슨..다 때가 되면 떠나야 할 일인
걸. 나도 준비하고 있지."
"녜? 무슨 준비를..어떻게요?"
"죽는 거! 그거 연습하고 있어야 해! 첨엔 좀 두렵게 생각했지. 그런데
이젠 아녀. 그동안 마음을 많이 비워냈거든. 욕심을 버리면 두려울 게
없어."

차창 밖으로 아침부터 흐린 하늘이 낮게 내려와 앉았더니 어느새 후두
두둑 유리창을 향해 빗방울을 뿌리고 있다.
어느새, 두눈에 가득 걱정을 담아버린 나.....

"비가 오는데요 할아버지.."
"내 걱정할 일은 없다우. 난 민박집으로 가면 돼. 단골집이니 아무 때
나 가지. 방이 없으면 주인장하고 같이 자면 되고."
"아,그러셨군요..그래도 자녀분들이 걱정 하지 않을까요?"

"첨엔 딸이 성화를 부리더니 이젠 내 고집에 항복했는지 잠잠해. 간간
이 전화로 안부를 전하고 집에 들릴때만 찬가지를 날라오곤 해. 난 딸
만 셋이라우."
"녜, 딸들이 더 살갑지 않던가요 할아버지?"
"다 똑같아. 자식이란 그저 키우는 재미고..다 크고 나면 지들 살기에
바쁜 게지."

"자식에게도 절대 욕심 가지면 안돼. 내가 줄 수 있는 만큼만 주고,
절대 바라지는 말아야 내 맘이 편한 법이야."
"그것도 욕심을 버리는 차원인가요?"
"그렇지! 욕심을 버리면 행복해 지는 게야. 그게 하루 아침에 얻어지
는 게 아니니 탈이지. 나이 들어 다 늙어진 다음에 깨달아지니 말이야.
절대 남의 것 탐하지 말어. 내 것도 다 못 쓰고, 누리지 못하고 가는
게 인생이야. 욕심을 버리고 살면, 사는데 돈도 많이 안 든다는 걸 알
게 되지."

"그런데 말이야 아직 젊음이 있다면 그게 절대로 안돼야. 젊다는 건 욕
심이 있다는 것이거든, 그땐 그게 욕심인지 뭔지도 모르는 법이고....
희망이나 꿈 같은 것과 혼돈 되어 오는 경우가 많아서 절대로 모른단

이야. 그러니 나이가 그저 먹는 건 아닌 게지. 허허허허허"

에구, 아무래도 이 할아버진 산신령님이신가 보다.

"할아버진 혹시 신앙이 있으세요?"
"나? 전엔 교회도 나가보고 절에도 가봤는데..지금은 그냥 마음으로
하나님만 믿고 살아. 하나님은 언제나 내 마음속에 계시는 분이시고 나는
그분을 경외하거든. 왜냐하면, 나를 이 땅에 보내시고 또, 언젠가는
내가 돌아가 만나야 할 분이잖은가. 허허…허허.. 그러는 애기 엄마는
신앙심을 아직 못 가졌나?"
"녜에..저도 할아버지처럼..아,벌써..삼거리가 나왔네요 할아버지! 전
예서 이제 내려야만 되거든요. 그럼..조심해서 잘 다녀오세요. 꼭,
건강하시구요.."
"그래,그래...잘 가요."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오랜 외국생활을 하셨다고 한다. 그러는 중에
할머니 속도 많이 썩혀주었다시며....그래서 좀더 일찍, 자신이 가진
것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게 제일 후회스럽다고도 하셨
다. 볼일을 다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야, 나는 작고 못난 것
일지라도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가슴속에 새겨보
며 진실로 행복할 수가 있었다

모든 동행자는 언제나 내게 커다란 가르침을 주고...
그러기에 나는,
무시로 길 떠나기를 참 좋아하나보다.




글/솔향







Daum cafe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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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밑에 문주란이 방망이 만한 꽃대를 내밀기 시작했다.
" 야 ! 문주란이 또 꽃을 피우려나봐 ! 올해엔 세 번째 아냐 ? "

설흔 살이 넘은 늙은이, 덩치만 커서 이리저리 발길에 차이며 언제 쓰레기로
처리될 지 모르는 가련한 신세로 전락했던 문주란 -

이 문주란은 내가 제주도에 전근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반출 단속을 무릎쓰고
숨겨 가지고 온 거다. 형제들에게 기념으로 한 그루씩 분양했지만,겨울철 관
리가 불편하고 잎이 무성하여 이사다니다가 모두 버림을 받고,지금 나에게만
한 그루 남아있다.

어머니가 보살필 때에는 해마다 한번 씩 꽃을 피우고, 그 진한 향기를 떨치
던 것이 요즘 몇년은 천덕꾸러기가 되고 말았다. 겨울에는 베렌다에 방치되여
동해를 감내해야 했고, 비료는 고사하고 물도 잘 못 얻어 먹으니 그 초라한
모습이 흡사 병든 늙은이 꼴이다.

더군다나, 덩치가 커서 공간을 많이 점하고 다른 화초를 덮는다고 미움을 받아
왔다. 그래도 큰 아들하고 나이가 같고, 어머니가 보살피던 것이라 해서 차마
내버리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지난 봄 화원에 드나들면서 특수 비료를 만들어 시험삼아서 몇몇
나무에 시비를 하였는데, 그 성과가 두어달만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수년 동안 보지 못하던 꽃대가 한꺼번에 두 개나 삐죽이 솟아났고, 얼마 뒤 환상
적인 꽃다발이 흐드러지게 피어났다. 니는 물론, 가족 모두가 신기하게 바라보
며 찬사를 보냈다.

봄이 이지러지며 문주란 꽃도 시들어 갔다. 그 장대한 꽃대를 칼로 잘라내며.
나는 만유의 흥망성쇠를 연상하였다.

그런데, 엇그제 물을 주다가 살펴 보니 꽃대 하나가 슬며시 솟아나고 사흘만에
꽃봉우리를 터뜨렸다.
" 올해는 무슨 경사가 생기려나봐 ! 세번 째 꽃이 피어났어 ! "
나는 소리쳤다.

나는 비료의 효과를 잘 알면서도 그것이 집안에 상서로운 일이 생길 징조라고
믿고 싶었다. 만일 나에게 지금 천복이 내린다면, 나는 무엇을 선택할까? 돈?
명예 ? 권력 ? 골라잡을 것이 없다. 지금 이대로면 족하다. 다만, 환란만 없이
지낼 수 있다면 감사할 뿐이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한 것이다. 이제부터는 문주란을 구박하지 말고 시골 화원
으로 옮겨서라도 잘 보호해 주어야지 .어머니의 사랑이 담겨 있는 문주란을
내가 할 수 있는 날 까지 간직해야지-.**








2002년, 7월17일,
제헌절 아침나절 집안이 조용하다.
식구들은 모처럼 늦잠이다.
식구라야 네 식구,
엄니.. 그양반.. 큰아들넘,

난, 어제 몸이 좋지 않아 모처럼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며칠..무리한 탓도 있나보다.

월요일은 무슨 맘인지... 두 부부가 의기투합하여
부부팀끼리 함께 하는 나들이...오후 늦게사, 포천을 한 바퀴... 돌았다.

언제나 식사가 끝나고 한 잔 거나해지면 나오는 이야기들, 정치이야기
넷중에 술을 입에도 대지 못하는 나는 언제나 맡아논 운전 기사다.
난 그들의 횡설수설보다는 바깥이 좋아 밖으로 나왔다.

어스름녘...보슬비 내리는 물 안개 자욱한 시골풍경...
아직 숙지법도 익히지 못한.. 디카를 들고 , 사진 몇장을 찍었다.

외출 중에도 늘 뇌리를 떠나지 않는 숙제하나,
카페에 "담배피우는 여자" 란 어느님의 글에 이미지를 붙여야겠는데... 찾아도 없다.
겨우 아주 작은 이미지 두 개 뿐,
하나는 담배를 든 여자손만... 그리고 또 하난, 담배 피우는 뒷모습의 여자다
제법 방대한 이미지 자료를 보유하고 있는 싸이튼데도 확대도 되지 않는 스몰사이즈,
아~ 역시 한국이구나... 싶어 내심 흐믓해했다.

남편은 집에선 담배를 잘 피우지 않는 사람인데..(물론 재떨이도 없다 우리집엔)
그 날 난..담배를 집에 가져가자고 부탁했다.
내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남편,
"거..남자회원 누군가..당신을 놀리는 것 아냐?"
'흐흐~~ 고맙기는...'

집에와서 씻고나서 컴텨앞에 앉으니...새벽 1시 30분이다.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노래방...
나 혼자 맨정신으로.. 맹숭맹숭,,, 두시간,
웃어주고 박수쳐 주고... 간간이 앵콜...에다
옵빠~~ 까지 맘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 났더니...
막상 나도 술먹은 사람 못잖게 어찔거린다.
찬물에 샤워를 정신 번쩍들게 하고 나서는,

그 것.. 늘 낮에도 나에게 따라 붙던 "담배피우는 여자 이미지"

자..이제 작업시작이다.
남편에게 담배한대 불 피워 달래서 막상 손에다 그 담배를 끼우려니...
'이런~~ 서툴기가... 이래서 안 해 본 도적질은 못한다는 것이로구나'
손 폼새를 자상한? 남편에게 전수 받아 몇 카트 팍팍 찍고보니...
이런.. 영락없는 남자 손이다.

여자라는 이미지가 안뜬다...
하기사, 나이 50이 넘도록 일을 할 때는 무지하게.. 장갑도 잘 끼지 않는 나,
일주일전.. 빈집에 가서 풀 뽑고는 (그 땐,장갑 꼈는데도)그 외... 막일에
알러지 피부가 울긋불긋 뾰드락지 난 것까지...

이 손을 그 누가 여자 손이라 보랴,



16일

수술한 아이가 이제는 목발을 떼고도 잘 걷는데..
약과 목발이 동시에 떨어졌단다.
다리가 무겁다고 그런다. 겁이 다시 덜컥났다.

병원에 전화 예약을 했더니.. 일주일 뒤로 잡아진다.
동네 병원에 가서...이야길하고 약을 타서...
광화문으로 달려 갔다.

약을 받아본 아이.. 처방전에는 약이 네알인데 세알이란다.
전화를 해 보더니.. 약사 잘못이다.
괜히 이 에미가 민망하다. 꼼꼼히 챙겨보지 못한 죄로,
아이 룸텔이 있는동네 약국에서.. 매약으로 나머지 약을 채워 주고는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데...
이런.. 차가 막히는 게 장난이 아니다.
하기사 내일이 공휴일이니...

광화문 우체국 피턴에도.. 지치려 한다.
계속 광화문만 빠져 나오는데도.. 난 그로키 상태가 되어가고
주방에서 며칠 전 개미에게 물린 발등도 미치도록 가렵다.
그냥... 신발을 벗어 던지고 발을 올려 발등을 벅벅 긁는다.
잠이 온다... 피곤하다... 배도 고프다...
집에 오니..거의 9시다 허겁지겁 밥을 한술 먹곤 일찌감치 잠에 빠졌다.

보통 하루에 4~5시간 많아야 6시간 자는 천성이 올빼미인 나로서는 기이한 일이다.
몸 한 구석 어디선가 氣가 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침 6시가 못 되어 일어났다가... 몸이 이상하여
다시..곤히 자는 남편곁에 누웠으나...
8차선 도로를 거꾸로 질주하는....비몽사몽간에... 그냥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왜 이럴까?
불안하다... 슬픔같기도 하고... 뭘까?
괜히 주방을 나와 덜그럭대다가....
그만..혼자서 밥을 퍼질러 먹기 시작했다. 반찬은 이럴 때일수록 토속적이고 짠 것이 좋다.
데우지도 않고 찬 그대로,
자반고등어 감자졸임... 콩나물 무침..평소 밥 두배로 먹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커피까지 마시고는 불안감에서 조금 조금 벗어났다.

그래도..이 두려운 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흩어진 내 氣를 다시 되짚어가며 찾아야겠다. ...
내가 왜 이러는지, 내게는 제일 편안한 자리 컴텨 앞에 앉아 글로 써 나를 진단해 본다.

아이 땜에 놀라서 그랬는지... (무리한 외출/나이탓)잠이 모자랐는지..
막히는 도로에서 먹은 스트레슨지...

아침엔 으슬 으슬 춥기까지 하더니.. 이젠 좀 낫다.
우선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다.

아침상을 봐야겠다.
엄니께는 간단한 생식 한 컵 타드렸으나...얼른 서둘러야지.

아침이 아니라.. 이른 점심이다.

비가 오려는지 지나치는 차 소리들이,
열어논 창문으로 ..와르르 쏟아져 들어온다.


글/이요조.





모두는 부지런히 바둥대며...녹음으로 최대한 치닫는 칠월의 성하 막바지!
웬, 고사목하나 그 주검의 장중한 어둠위로 빈 까치 둥지하나...그냥..섧다.



논에는 벼들이 수런대며 자라나고 있었다.
"아~ 몰랐었구나... 잠시 잊었었다. 이 더위에 너덜은 이렇게 푸름을 곧추세우고
키를 한치라도 더 보태려 애를 쓰고 있었구나"



비내리는 길을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뛰어다녔다.
그냥... 그 모습이 좋아 줌인으로 당겨 찍었는데도...게우! ㅎ~



보슬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안개가 자욱한 산야...
산 첩첩 포개어진... 그림이 바로 수묵화다.
사진에는 잘 나타나질 않았다. 산첩첩의 농담을 달리한 담채...
"아 어찌 이리 아름다운 선이던고?"



오는 길에...포천읍내 노래방엘 들렀다.
웬걸.. 시골이라지만.. 차를 주차할 곳도 마땅찮다.



우연히
남편들의 입성이 같다.
까만 바지에 베이지 색 티셔츠
"까만바지 브라더즈" 의 장장 두시간짜리 공연으로
아내들은 즐거웠지만...(즐거운척 해 주었는지)
노래방을 별로 즐기지 않는나로선...두시간이란 무리다.
좋아하는 컴텨 앞에서는 10시간도 무리가 아닌데...



"우리(마누라덜) 이참에 프로덕션하나 꾸릴까? 또 누가 알어? 중국서... 강타처럼
옵빠... 그러면..메니저 우리들 마저 깔려죽게 될찌~~`..."






할머니와 산비둘기




..
길가로 문 하나 열면 바로 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리고,
꼬부랑 할머니 무릎짚고 나와 길바닥에 모이를 뿌려 줍니다.
산비둘기 한마리 다리를 절룸거리며,
자리를 옮겨가며 흩어진 쌀알을 먹고 있습니다.
한톨, 두톨, 그리고 할머니 한번 올려다보고....,
이른아침 달동네 같은 도심속의 빈가들이 모여사는
한 동네 좁은 골목길에서의 광경입니다.
의지할 자식들이 없어 홀로 사는 할머니의 손등이며
얼굴에 검버섯이 돋은 할머니, 한손은 굽은허리를 지탱하려
무릎을 짚고 프라스틱 모이 그릇을 든 손이 가늘게 떨며,
모이먹기에 열심인 산비둘기에게 연민의 정을 주고 있습니다.
카키색 브라우스에 회색 몸베 차림을 한 꼬부랑 할머니를
산비둘기는 매일아침 이렇게 방문하고 있었습니다.

작년 늦은 가을 어느날,
동네뒤 텃밭에 채소를 돌보러 꼬부랑 허리를
나무지팡이에 의지하며 갔다가 밭언덕 아래 이랑에서
할머니를 보고 도망가려 퍼덕거리는 산비둘기를 보고
다가가니 다리에 절상을 입고 있었습니다.
새잡이 포수의 납탄에 왼쪽다리 발목의 뼈가
부서진 것이었습니다.
무우씨뿌린 받이랑을 발톱으로 후비고 주둥이로 쪼아내던
놈이지 싶어 그냥두고 오려 하였으나,
안쓰러운 마음에 잡히지 않으려는 놈을 부여잡고
근근히 집에 돌아온 할머니는 약을 바르고
헝겁을 감아주어 치료하며,
늦가을 부터 할머니와 같은 방에서 동거하며
따뜻한 방안에서 겨울을 나게 되었습니다.
붙잡아 집에가서 치료해 주려하니 기를쓰고 도망가려
퍼드득 거리던 놈이 이제는 할머니 곁을 떠나지 않으려 합니다.
산비둘기는 할머니 손에서 치료되었으나
다리뼈 접골이 잘못되어 옆으로 젖혀저 짧아진 한쪽 다리를
절룸거리며 생을 구가하고 있습니다.
처음 할머니집을 방문하였을때,
할머니의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성질이 급해
온 방안을 휘젖고 다니면서 벽이며 유리창에 머리를 쥐어박으며
탈출 기회만 노리던 놈이, 이제는 할머니와 친숙해져서
방안 한켠에 자리를 틀고 할머니 외출때는 집을 지켰습니다.

봄이되니 산으로 되돌려 보내도 얼어 죽을리 없다고
생각한 할머니는 산비둘기 다리 상처도 다 아문터라,
붙잡아 길가에 내어 놓았으나 할머니따라 방안으로
들어가려 또 퍼드득, 안쓰러운 마음에 다시 들여 놓기를 여러번,
할머니는 슬펐습니다. 나 죽으면 너 돌보아 줄 사람 없으니
너같이 못난 절룸발이 산비둘기를 누가 돌보아 주랴며
밖에 내어놓고 문을 걸어 잠그니,
이틀 밤낮을 할머니 방문 밖에서 닫힌문을 바라보며
애틋하게 소리낮춰 울더니 산으로 날아가고,
다시 홀로된 할머니는 몸이 불편한 자신의 신세가
산비둘기와 같다며 눈물을 짓습니다.
그날 이후 산비둘기는 매일아침 해뜨기전 할머니를 방문하였고,
아침나절을 방의 열린 문안의 햇볕 가리개의 발너머 할머니 모습을
바라보며 길가에 쪼그려 앉아 보냈고, 할머니는 모이를 다 먹었으니
어여 산으로 가라고 돌려 보냈습니다.

그러던 첫여름 어느날, 그날 아침에는 산비둘기가
할머니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간밤은 비바람이 몹시도 몰아쳐 할머니의 방 북쪽 창문을
빗방울이 세차게도 때리던 밤이었습니다.
할머니는 궂은 날씨탓에 온몸이 쑤셔왔고 잠못이룬
불편한 몸을 일으켜 방문을 열었으나
산비둘기가 보이지 않아 못내 아쉬워 하였습니다.
간밤의 비바람에 몸이 성치않은 산비둘기가 어찌되었는지
깊은 한숨속에 비가 간헐적으로 내리던 낮이 지나고 비갠 저녁이 왔습니다.
자리를 뒤척이며 잠을 청하려는 때였습니다.
방문밖 구구거리는 산비둘기 소리에 행여 하는 마음으로
몸을 추스려 문을 여니,
산비둘기 도심 전기불빛따라 할머니집 찾아와 처연하게 부르짖는 소리에라!



윤서







*담배를 피우는 여자*


오래 전엔 여자가 담배 피우는 모습도
하나의 진기한 구경 꺼리었던 때가 있었지요.
요즘엔 너무도 보편화되어 눈 요기꺼리도 안되지만…….

조명 은은한 카페의 구석진 자리에서 늘씬한 여인이
긴 머리 멋지게 틀어 올린 채 가느다란 손가락 사이에
흰 담배 한 대 끼어들고 도도한 모습으로 뿜어 올리는 담배 연기.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환상적이지 않습니까?
저는 그런 걸 감히 흉내도 못 내고,
보는 것만도
눈부셔서 바로 보지 못하고 슬쩍슬쩍 훔쳐보지만요.

담배라면 내 어머니만큼 피우신 분도 없을 것입니다.
제가 어머니를 인식할 때부터 어머님은 담배를 피우셨고
돌아가시기 얼마전까지도 담배는 어머니의 유일한 벗 이였으니까요.
말씀인 즉 새파랗게 젊으신 새댁 때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셨다는데
그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속앓이 때문이었다고 하셨지요.

병명도 잘 모르고 제대로 된 병원 한번 가 볼 처지가 못 될 때
민간요법의 하나로 담배는 그 시절 유일한 치료법이었을 겁니다.
그렇게 배우게 된 담배는 평생 어머니의 벗이자 자존심이요,
세상사를 마시고 내뿜는 돌출구였지요.

딸인 나와 다투고 난 후 토라져서
담배 한 대 피워 무시고 돌아 앉아 있던 그 뒷모습.
한복 저고리에 쪽진 모습이
비록 멋진 신식여성들의 그럴싸한 그림은 아니라도
그 자그마하고 둥근 어깨너머로 뿜어져 올라가던
그때의 담배 연기는 어머니의 가슴에 꽁꽁 묻혀있던
화를 풀어내는 실타래 같아보였지요.

평생 그 걸 보고 느끼며 살아서 그런지
아니면 담배를 그리 즐기며 사셨어도 아흔이 넘도록
건강하게 장수 하셔서 그런지
담배 피우는 것이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이지만은 않더라구요.

오히려 담배 못 피우는 남자를 만나 살면서
급한 성격의 남편이 앞 뒤 가릴 것 없이 화다닥 거릴 때
담배 한 대 피워 물고
자신을 돌아다보시려 하시던 어머님의
담배 연기 피워 올리던 그 때 그 뒷모습이 그리워집니다.

-2002. 3. 15 일. 대청에 오른 글-






 





◎ 이름:이요조

2002/7/14(일) 13:53 (MSIE5.0,Windows98;DigExt) 211.222.169.196 1024x768


"참 병이다 병..."  


긍지란 무엇일까?









사람 사람에게는 저마다 한가지씩은 잘 하는 것이 있어 저마다 그로 인한 대단한 긍지를 갖게 한다.



이 긍지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좀 우쭐해져서는 누구를 가르치려 들고 자기 방식대로 주장하려 들 때..

그  습관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 어느덧 몸에 베이다 보면 남들 하는 짓꺼리가 모두 마뜩잖아지기 시작한다.



나도 한 긍지를 가졌다.

매사에..'만만디'인 내가 예전에 초보 주부일 적에..시어르신이 사들고 오신 아나고 횟감을 씻고 또 씻어

그야말로 단물을 다 빼서...솜뭉치로 만들었던 실수의 기억이 있다.



친정 어머님은 그닥 교육은 많이 받으신 분은 아니셨는데도 양재기본도 없이..암홀이 뭔지 모르셔도

우리들에게  손수, 잠옷이랑 원피스 브라우스등도 곧잘 만들어 주셨던 무척 부지런하시고 솜씨 좋은 분이셨다.



딸 여덟 자매중..둘째인 어머니가 제일 먼저 돌아가시자

이모님들은... 언니~` 언니~` 그재주는 우리나 주고 가지....하며 울었었다.


비오는 날은 게으른 여자들은 잠자기 좋은 날이고 부지런한 여자들은 일하기 좋은 날이라고 하시며

머리에 수건하나만 달랑  쓰신 채 비를 맞으시며... 계단청소를 하시던 분이셨다.



어렸을 적, 육이오 난리통에.. 피난 내려 오신..한 깔끔한.. 평양 아주머니가

우리집 문간방에 세들어 사셨는데 아마 어머닌 그 때..음식 솜씨도 전수 하셨는지

사람들은 모두 어머니의 손끝 맛에 찬탄을 마지 않았다.



그런 어머니신데..... 이 사실을 아셨으니...나는 당연히 큰 야단을 들은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였다.



"에그..내탓이로구나.. 저것들.. 하는 것 성에 안 차서 당췌 시키들 않았더니

오늘 이렇게 사돈님께 걱정을 듣는구나.. 여잔 모름지기 일손이 재야 하는 법...

느려터진 손으로 횟감을 주물럭댔으니...안봐도 훤하구나~~  ㅉ~ ..........................."



그 후로..얼마 못가 내,어머님은 이내 병마로 돌아가시고 그 말씀은 내게 유언처럼 각인되어 왔다.



어느새.. 내가 그 때,  어머니 나이가 되어 간다.

이젠 요리학원에 다니면서도 내가 손이 제일 잰 학생이 되었다.



손이 재어서가 아니라 부엌일은 일손의 순서였다.

즉 일머리였음을 ..그 道를 깨우친 것이다. 그리고 한 평생 살아 오시던 당신의 생활 모습들이

뒤늦게...흑백영화처럼... 왜? 내게 낱낱이 리플레이 되어 가슴을 후리며 오는건지...나는 이제사 안다.



오이지를 담근다. 미리 먹을 것, 두고 먹을 것,  나눠 줄 것...  

삭은 오이 맛을 보고 냉장고에다 보관 할 때는 다시 맛간을 첨가해서 마지막 끓인물을 붓는다.

심심하게 할 것 따로... 약간 피클형으로 할 것 따로....

썰어서 양념까지 해서..병에다 담고...그 병 두껑은 모아둔 포장지로 윗 옷을 입힌 후

역시 모아 둔.. 리본으로 예쁘게 묶어서.. 선물하는 이 즐거움,



이젠.. 이 모든 것이 아무도 못말리는 나만의 긍지가 되어 버렸다.

장마 전... 밑반찬 준비로 사와서 담근 오이지, 한 접이

두접이 되고...또 다시 세접이 될 때.. 나누는 마음의 행복지수는 비례한다.



군에 간 아들 면회를 가도, 고속도로..먼 길을 떠나도,

언제나... 휴계소 등나무 아래 도시락을 펴는 우리 집...정오도 되기 전.. 밥 먹자고 보채는..

남편이 있는 한... 나의 이 작은 긍지는 계속 될 것이다.



남편에게 아내로서의 늘 떳떳함이 따로이 있다면..

난 바로 이 것이다 라고 대답 할 수 있다. 최소의 경비로 최대의 효과적인 음식제공을 한다는 것,

먹을 것을 챙기는데도..나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귀재다. (자화자찬?..암튼..ㅎ~)

많이 먹진 않아도 뭔가 계속 자주 먹어야 하는 남편... 그 입에다 무언가 꾸준히 건네주면서

즐거이 받아 먹는 오물거리는 그 입을 볼 때... 난, 먹지도 않고 배부르고 난 있는 그대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약속을 좀체 않는 나, 약속은 언제나 나를 그 날까지 부담스럽게 한다.

왜냐면 꼭 지켜야 하므로...그러나 어쩌다 무지개같은 약속은 꿈꾸는 시간이 길어서 좋아한다.

전국에 분포된.. 남편의 동창친구..열댓명의 모임..그 날은 우리 모두를 설레게 한다.

마치...수학여행을 떠날 어린 아이들처럼,

그렇지만.. 그것은 일년에 딱 두번이고,

가까운 지인들 중에 부부끼리 자주 떠나는 단 한 집 우린 이젠 모두 서로를 닮아 있다.



날씨가 너무 좋은..국경일 같은 날 서로는 갑자기 전활하고

가까이 떠날때는 그냥 전화 한통화로 '우리 바람 쐬러 갈래요?" 그 걸로 끝이다.



각자 집에서 냉장고에 있는대로 주섬주섬 담는다.

언제는 끼니도 막 때웠고..해서 보온병에다 냉동실에서 꺼낸 누룽지..

뜨거운 물로 몇번 튀기듯해서 마지막으로 팔팔 끓는물 부어 출발했다.



한적한 개울로 내려갔다. 모두 조금 출출한 모양이다.

즉석 누룽지탕을 꺼내놓았다. 잘 익은 김치랑..젖갈이랑 딱 맞아 떨어졌다.

웬 누룽지탕?...뜨겁고도 부드러운... 간만에 먹는 누룽지..

(식은 밥이 남았을 때..후라이팬에다 밥을 잘 펴서...은근히 두면

저절로 노릇한 누룽지가 된다. 그 누릉지를 냉동실에 모아두면.. 된다.)



가만 생각해 보니... 언제든..먼 길을 떠나도 먹을 것을 만지는 것은 언제나 나였다.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을까?  언제 적부터 내 어머니처럼...

남의 손길을 믿지도 못하지만..아예 믿으려 들지도 않고,  

나만 고달퍼지는 이, 짓꺼리에 탐닉당하고 있을까?



얼마전..딸아이 친구가 집으로 왔다.밥을 한끼 차려주면서 보니..젖가락질이 너무 서툴다.

그래서 시집가서 음식 장만할 때, 부침게나.. 튀김등을 어떻게,

날렵하게 뒤집어 가며..일을 할 것인지.. 젖가락질은 그 아귀에 힘이 들어 김치라도

한 손으로 쭉 쭉 찢어내야 한다고 더구나... 여자라면, 하는 궤변도 늘어 놓아본다.



오늘 아침 식탁에서는 우리 어머님..잡수시고 늘..그렇게 부탁말씀 드려도

내가 한눈 파는 사이 김치 보시기 두껑을 그 새 닫아 놓으셨다.



김치 붉은 양념이 약간 묻은 유리 뚜껑이 가지나물 그릇 두껑으로 닫겨져 있다.



"엄니.. 관 두세요 제발~ 이래서 제가 한다니까요"

두껑까지 들어 보이며 덧붙여 말씀 드려 놓고는..이내 후회한다.



"참 병이다 병..."


























삭 삭, 귓전을 스쳐가는 갈바람 소리.
"삐리릭 삐리릭"
"훠어이 훠어이"
"딱 딱"

누렇게 나락 익어가는
논엔 참새 쫓는 소리가 한창이다.
이맘 때 쯤이면 마당엔 벌건 고추가 한 가득이고
들녘은 바라보는 마음만으로도 풍요롭다.

"어이, 칠복이 탁배기 한 잔 하고 가게".
억새숲 사이로 새참 소쿠리가 논두렁을 건너고
술주전자를 든 아이들 웃음이 연어처럼 날뛰었다.
아낙들은 두렁에 찬을 풀고,
고등어 조림이며 고깃국을 맛깔나게 내놓았다.
수저도 서너 벌 더 챙기고 반찬도 넉넉히 담아
새참은 늘 푸짐했다.

사기대접에 뽀얀 탁배기가 콸콸 따라지고
장에 다녀오는 사람,
구들지기 노인들까지 다 불러 술잔치를 벌였다.
지난 봄 물꼬 싸움에 멱살 잡혀 앙숙처럼 지냈던
칠복씨도 슬쩍 끼여 못이기는 척 한 잔 비웠다.

술은 추수 후 햅쌀로 담그는 것을 으뜸으로 쳤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이집 저집 술익는 냄새가 시큼하게 번졌다.
아낙들은 날잡아 쌀 몇 됫박을 담갔다가
시루에 쪄 고두밥을 지었다.

김이 오르고 시룻번이 익어가면
그 달짝지근한 밀떡을 떼어먹는 재미에
아이들은 부뚜막 옆을 고양이처럼 지켰다.
고두밥에 누룩을 섞어 멍석에 말린 이 밥은
쫄깃쫄깃하고 맛이 좋아 손을 많이 탔다.
누룩이 묻어 까슬한 밥을 아이들은
한줌씩 뭉쳐 내달음치곤 했다.

이 밥을 맛 잘든 독에 담고 물을 잡아
절절 끓는 아랫목에 솜이불 폭 씌워 익혔다.
2∼3일 지나면 발효하면서 버글버글 끓어 오를때면
어머니는 쉬지 않게 온도조절하느라
하루에도 몇 번씩 독을 들여다봤다.

고구마통가리 썩는 듯,
메주를 띄우는 듯 그 쾨쾨한 냄새는 정말 지독했다.
술에 대가 돌면 독 안에 용수를 박아 말간 청주를 떠냈다.
물을 부어가며 체에 거르면 '막 걸렀다' 하여 막걸리가 되고
텁텁하지만 진한 맛이 있었다.

연누른 빛 맑은 술에 밥알이 동동 뜬 동동주는
달짝지근하여 입에 쩍 붙는데
도수가 높아 마시다보면 은근하게 취했다.

꾼들은 냄새가 알싸하게 올라오면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술맛을 본답시고
간을 재다 종일 취해 돌아다녔다.
또 아낙들은 술이 익으면 지나는 체부든 동냥아치든
마루로 불러 김치에 술 한보시기 씩 내왔다.

간식거리가 귀했던 시절 아이들은
이 술 찌끼에 사카린을 타 먹곤 했다.
그것도 술인지라 가끔 벌겋게 취해 드러눕는 일도 있었다.

"술도감이다!"
멀리 신작로를 타고 밀주 단속원의 자전거가
나타나면 동네는 선술집처럼 술렁댔다.

대부분 농가에선 제사며 농삿일,
잔칫날에 쓰려고 술을 한 독쯤 익히고 있었다.
삽짝을 걸고 밭으로 내빼기도 하고
이곳 저곳 숨길 곳을 찾느라 소란을 떨었다.

먹다만 술주전자는 아궁이에 밀어넣고
나뭇간, 장독, 헛청, 뒤란 대숲,
심지어는 썩은내 푹푹 나는 두엄까지 들춰 숨겼다.

시치미 딱 잡아 떼는 통에 단속원들은
코를 벌름거리며 집안을 헤집고 다니기 일쑤였다.
특히 철없는 아이들 입단속에 아낙들은 애가 달았다.

모두 그런 일 없다며 손사래를 치면
술도감은 슬그머니 물러섰다가 동구 밖에서 놀고있는
아이들을 눈깔사탕 하나로 꼬드겼다.

알록달록한 그 사탕을 보면
어머니의 당부는 까맣게 잊고 술술 불어버렸다.
물론 그날 저녁엔 부모님으로부터 치도곤을 당했다.
술을 1말 정도 담갔다가 걸리면
쌀 10말은 벌금으로 물어야했고 무엇보다도 오라가라
해대는 통에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하여튼 시큼한 술냄새를 맡고 이웃집에서
"이 집 술 담그나" 하면"식초 내린다네"하며
눈짓하곤 했다.

"술 한 되 받아오너라".
담근 술도 여의치 않으면 점방에 심부름을 시켰으나
아이들은 무척 싫어했다.
점방 술독엔 나무 술구기가 독 속에 담겨 있었고
됫박 인심은 주인 맘이었다.

짓궂은 아이들은 돌아오는 길 밭둑에 앉아
술을 반 주전자쯤 마시고 우물물로 채웠다.
그러면 어른들은 점방 여편네가
물을 타서 싱겁다며 삿대질을 했고
아이들은 슬그머니 꽁지를 뺐다.

장맛처럼 이 술맛도 손내림이 있어
집안마다 독특한 풍미를 자랑했다.
종류도 많고 맛도 다양해 술맛을 보면
그집 아낙들의 손끝 맛을 알 수 있었다.

꽃이나 과일껍질을 넣어 만든 가향주,
아지랑이처럼 술빛이 아롱거린다는 백하주,
봄철 진달래꽃을 넣은 두견주,
여름철 황혼녘에 빚어 밤을 재운 뒤
새벽닭이 울면 마실 수 있다는 계명주,
연꽃향기가 난다는 하향주,
비스듬히 자란 소나무에 넣고 빚었다는 와송주,
네 번을 빚어 1년이 지나도 쉬지 않는다는 사마주….

일과 화해, 축복의 자리에
빠질 수 없는 것이 술이었고,
때문에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이어주는 끈이기도 했던 술.

우리들은 어쩌면 이 가을의 어느 길목에서,
볕 잘드는 툇마루에 길손처럼 초대받아
잘익은 술 한 잔 대접받고 싶은지도 모른다.


'…술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가듯이/ 가는 나그네'


1.체부=우편배달원
2.술도감=밀주 단속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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