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타고..
빗속을 달렸습니다..

그 상쾌함이란..
누가..알런지..

가슴속에 잔잔하게 일던 파문이 ..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습니다..

하얗고 투명하게 되어가고 있었죠..
동그라미 두개..그위에..내 발을 얹어놓고
힘차게 밟았습니다..

마치..
길다란 기차를 운전하는듯 했습니다..

요리 조리..피해가며..그리고
가느다란 빗줄기를..가슴에 꽃아가며..

비와 나는 얘기를 했습니다..
내..가슴에 숨죽여야 하는 고통도..
작고..보잘것 없는 내..바램도..

모두 네가 가져가다오...

비는 내게 말했습니다..
그래..단하나만 빼놓고..모두 내게 다오..
너의 맑은 사랑..
너의 순수한 영혼..그것만 네게 남겨두고
고통과..절망..그리고 병든 육신의 잔해들..
그런것 모두..모두...내게 다오..

그렇게 비는 내게 말했습니다.

개울로
강가로..
그리고 내가 두려워 하고 있는 ..그 바다로
모두 가져가마...

비는 내게 그렇게 속삭였습니다..
참..
고마운..고마운 비였습니다..

그런비가..예고도 없이 오는것이..
나는 참 불만 스럽습니다..
자주 자주 보고 싶거든요...^^


















취화선 홈 門 ◎ 이름:글/이요조
2002/6/27(목) 17:24 (MSIE5.0,Windows98;DigExt) 211.227.69.191 1024x768
취화선/영화감상문




**이제는 보는 영화에서 가슴으로 느끼는 영화였으면....**




임권택 감독, 그는 분명 거장이였다.

좁은 한국은 이상하게도 예술가들을 보는 눈이 좁다한다.

외국에서 부터 먼저 알아주면 그제사 조금씩

인정해주기 시작한다.

이번 우리 축구선수들도 우린 그 실력들을 몰랐다고 한다.

아웃 사이더에서 먼저 인정을 받아야 하는 나라..

친구와 함께...테크노마트에서 취화선을 보았다.

6월 8일...오후 6시

큰 화면 가득...펼쳐지는 우리나라 풍광들....

무수히, 점, 점으로 까맣게 날아 올랐다가...흩어져 쏟아내리는 되새떼들...

감동의 그림이였다.

영상 예술이였다.

마치..우리나라를 잘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홍보로 보여주는 듯한...영상,

정말 우리나라가 이렇게 아름다웠을까?

영화의 줄거리는 장승업이 양반의 전유물인듯한 그림을

그들의 입맛에 맞게 중국풍으로 그려야 하는... 그,

술이 말술이였다는 그,

조선말기...그가 우리 곁을 떠난지는 겨우 100년 남짓,

조선왕조의 마지막 대화가 오원 장승업은 일자무식의 가난한 화가였지만

타고난 천재화가로 산수, 인물, 영모, 절지, 기명 등

다양한 방면에 좋은 작품을 남긴 명인이었다.

그는 주색을 매우 좋아해서 미인과 감미로운 술이 옆에 있어야 득의의 작품을 내놓았다.

오원이 도화서에 들어가 고종황제가 그에게 병풍을 그리라고 명하면서

하루 서 너 잔씩만 나누어주라고 엄명을 내렸다.

그렇지만 한 달을 못 넘기고 창덕궁을 빠져 나와 술집을 드나들다 걸려

왕의 진노를 샀던 일도, 종내는 도망쳐 나오는 이야기도

영화의 한 줄거리를 장식하고,

각본은 도올 김용옥님이 쓰셨다고 자막에 떠 올랐다.

큰화면의 웅장한 스케일에 떠밀려...

'장승업'이란 환쟁이가 예술혼을 앓는 기인 행세...대충 그런 줄거리였다.

그냥 그것 뿐이였다.

영화를 찍어내기에...엄청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걸로 알고

벼뤄서 보았는데.........기실은 아무것도 없다.

느낌이 없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영화란...낚시하는 줄거움에 비유하고 싶다.

감동을 낚고.... 생각을 낚고......철학을 낚고.....사상을 낚고

그래서 자기가 낚아서 뭉뚱그려만든... 고기망태를 기껍게 메고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잡아 놓은 물고기를 그냥...먹고만 온 기분이 드는 것은 웬일일까?

기대한 만큼...아무리 둘러 보아도 ....이,영화감상문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냥 잘 보았다. 좋은 영화였다. 그랬었다.

아무런 생각이 없다. 그걸로 끝이였다.

글로 써 두어야지 벼루다가 달을 넘기게 되었다.

영화를 보고나서 나는 장승업이 뜯어 제끼던 백숙이 떠 올라서...

그의 리얼한 먹는 연기가 떠 올라서....나도 마트에서 닭고기를 사고

팥시루떡을 산 것 외에는...

가슴으로 느껴지는 영화는 없을까?

가슴으로 파고드는 감동의 전이,

인간 내면의 갈등을 전해 받을 그런 모티브를 줄 순 없을까?

짧은 표현에서도 몸짓..눈짓 손짓 하나로도

미천한 신분의 미묘한 갈등과

그가 웅혼의 필치로 그림을 그렸듯....

번뜩이며...고뇌하는 예술혼의 진수...그 이상의 무엇,

영화를 보는 관객, 스스로의 몫으로 생각하게끔

유인하여 만들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저..망연히 영상만 보고 나왔다.

무지한 소인배인 내가, 너무 펌하했을까?

그러나 무지의 소치에서 나온 혹평도 평은 평이다.

최민식의 열연도 열연이지만...

왜? 나는 '파이란'에서 파락호로 보여지던 그가 자꾸만 오버랩 되는걸까?

욕심같아서는 무언가..많이 아쉽다.

한정된 시간안에 다 담기에... 무리였을까?

왜냐면... 그 작품은 수준작이므로... 칭찬은 덧칠일 뿐이다.

이 기회를 빌미로 나는 장승업을 알기위하여....무수한 웹 검색을 했다.

본연의 인간 장승업 보다

한국 고전 미술사의 인물1 쯤으로 분한 인간, '장승업'

암울했던 조선조 말기

장승업의 회화는 초월적 예술정신의 발현이자

시대를 밝힌 찬란한 예술혼으로서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을

영상화한 "취화선" 영화야말로 이즈음에

미술사적 고찰이란 넓이로는 볼만한 귀한 영화였다.

취화선(醉畵仙) 제목 그대로 그림에 취한 신선(神仙),

막상, 말년의 그를 아무도 보지 못했다 한다.

더러는 논두렁을 베고 죽었다 하고 아니면 신선이 되었다 하고

영화속에서는 도자기 가마 속으로 스스로 육신을 사르는 것으로 나온다.

그는 정말 신선이였을까?

말년을 은둔하는 그의 뒷 모습이 더 아름답다.




취화선 스틸컷을 옮겨다 놓으며
글/이요조











*스틸사진을 클릭하시면 큰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장승업의 일대기/취화선/에피소드*










별이 빛나는 밤
실개천 따라
소복입은 처녀처럼
자지러진 메밀꽃이
허연울음 흘리는
그 길을 별이 되어 걷습니다


풀섶의 개구리
가끔 두려움으로 다가오길래
서툰 어릿광대처럼
낯선 몸짓하지만
익숙한 밤길은
어머님 품처럼 아늑합니다


뒷산 접동새
무엇이 그리 슬퍼 우는지
쉬어가려는
풀잎바람마저
서둘러 어둠속으로 데려갑니다


이 어둠 다하기 전
그대 이름 석자
가만히 불러 봅니다


내 안의 유일한
빛으로
다시 살아나
이 밤을 밝힙니다


사랑의 근원
그대에게서 시작되었고
종착점 또한 그대이기에
마르지 않는 나의 사랑시
사위어가는 마지막 촛불이 됩니다



<종려나무 메뚜기>

월드컵 준결승하는 날이다.
드물게 좋은 날씨다.
하늘은 푸르고
구름은 편안하고
먼 데 경치는 씻은 듯이 또렷하게 보이고
가로수는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린다.

얼마만에 걸어보는 인사동길인가.
어렸을 때는 거의 매일 다니던 길인데...
아마 20년은 족히 됐지?

깨끗하고 멋지게 변했다.
둘레둘레 구경하며 여유롭게 걸어간다.
화랑도 많고 표구점, 필방, 도예점, 공방,
골동품점, 민예품점, 자수점, 개량한복점,
그리고, 여기저기 내걸린 음식점 간판.

점심을 먹어야지.
만두 잘하는 집이 있다던데...

사동면옥을 찾았다.
실내장식을 요란하게 한 집이다.
뭘 이렇게 정신없이 만들어 놓았나...
만두국물맛이 독특하다.
산초, 황기 맛인가?
해초맛은 확실하다.
만두는 그냥 담백하고 부드럽다.
밑반찬으로 나온 호박새우젓조림 맛이 좋다.

안국로터리 쪽으로 스적스적 걷는다.
건물들은 깨끗하고
찻집들은 개성이 있다.
보도와 차도 사이에는
가로수와 꽃과 큼직한 직육면체 석물들이
줄지어 있다.

사람도 많다.
붉은 티셔츠 차림이 여기저기 보이고,
옛날신사 티가 나는 분들도 이따금 보인다.
친구분들과 나들이를 나오셨나?
외국인 관광객도 꽤 있다.
키가 육척에 가까운 사십대 서양여자,
그 여자가 입은 스카프처럼 하늘하늘한 치마,
어쩐지 경박스러워 보이는 일본 청년,
가무잡잡하고 입술이 두터운 편인 동남아 사람.

안국로터리 부근 크라운베이커리 앞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어떤 이가 뭘 만들고 있다.
잎사귀를 길게 찢어서
척척 접고 매듭을 짓고
송곳으로 구멍을 내서
그속으로 꿰어당기고...
그렇게 메뚜기를 만든다.
진짜 같은 메뚜기다.
재료가 무어냐니까 종려나무란다.

삼천원에 한 마리를 사서
무얼 할까 생각한다.
누구에게 줄 생각이다.
옳거니...
세 번째로 칼럼지기가 되시는 님께 드리자.
<열마대상>이니 <오월의 여왕>이니
맨날 엉터리 사이버 상만을 올렸던 데 사죄도 할겸.

다시 종로 쪽으로 걸어간다.
시골 촌놈처럼 두리번 거리면서...
스타벅스커피점도 인사동길을 침범했다.
종로에 거의 다와서 大臀女를 보았다.
상돌벤치에 퍼져앉아서 무얼 먹고 있는데,
꼭끼는 흰바지에 정말 안반만하다.
역시 서양사람들은 좀 멍청해보인다.

촌놈 인사동 구경에 기분이 즐거워진다.
그런데 아차 !
십년 넘게 가보려 했던 <歸天>을 깜빡했잖아 !!!.


.( 주 : <歸天>은 작고하신 천상병 시인의 부인이 운영하는 찻집이다.
<종려메뚜기>는 내 책상속에 고이 모셔놓고 있다.)


작은큰통.2002.6.27.


축구를 외면한 감동의 날!  




지난 2월 28일서부터 시작한 오페라 유령  6월 26일 200회로 막을 내린단다.

6월 22일 한 달전 예약한 오페라 유령,  아이의 입원 퇴원 반복으로 미뤄왔던  그 게 왜 이렇게 날자가 겹치는 것일까?

하기사 토요일 그 날..   시청앞 부근에 예식장을 예약해 둔 신랑 신부도 더러 있다는데,

시간 PM 3시00분,

뷔이아피석 오페라 유령을 포기 할 것인가?

4강을 겨루는 대한민국 대염원을 기릴 것인가? 하지만  모성강한 이 에미 군말없이 역삼동으로 차를 몰았다.

오페라 유령,

책은 읽다가 재미 없어 엎어버렸지만...내용은 익히 알고 있다.

음악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어부지리로, 헌데...딸아이 운전중인 엄마에게 씨디를 틀어줘가며...노래를 찾아가며..시놉시스와 노래와의 줄긋기로 상세하게도 일러준다.

"이 노래는요....유령에게 끌려가며..안개낀 강, 다리위에서 크리스틴이 부르는 노래예요"

"이 노래는요..노래 속에 유령과 크리스틴 두사람의 사랑을..몽환적으로 나타낸 노래예요."

"이 노래는요 크리스틴에게 배역을 주지 않고 무시하는 단원들에게 본때를 보이고자...칼로타의 목에서 두꺼비 소리가 나게 만드는 것이구요"

이 나이에 상상력은 풍부해서리...영동대교를 막 건느며  "걍 집에 갈까? 내 상상력이 더 근사할 것 가토" 두 모녀는 웃는다.



아...엘지 아트센터엔...맨 여자들 뿐이다.

제 1막이 끝나고 나오는 사람들..한결같이 눈이 반짝반짝해서 안내원들에게 묻는다.

"어떻게 됐어요?"

너 나 할 것없이 한결같은 질문에  출입구에 서 있는 안내원들의 이어지는 앵무새 멘트,  "0:0 입니다."

2부를 보는 순간에도 오페라 유령 머리가  축구공으로 보인다.

'으이그... 괜히 왔네 그랴'  '아까운 돈!!'  근데 이상한 것이 오페라 관람하러 오면서도

다들 붉은 악마옷을 입었다. 흐~~

뭔가 마려운 듯한 기분에 빨리 끝나기를 고대하는 기다리던 관람 종료!!

역시 고마운 멘트..."아직 0:0 입니다"     " 곧이어 연장전 들어 갑니다."

순간... 건물이 무너지는듯한 함성?  오잉?? 한 꼴 넣었나?

사람들은 두리번 거려도 소린 어디서 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엘리베이터를 갈아 타는 곳...

왁자지껄한 함성이 들리던 곳, 티브이 앞에...진을 치고들 있었다.

역시 그곳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도 붉은 물결이 넘실댔다.

선동자도 없는데...그넘의  "대애한민국"이다.

누가 지었을까?

아마 학생이랬지?  처음엔 다들 '이게모야' 면서 비웃었댔지?

맞어!  대애한민국... "愛" 자 하나 더 들어 가는거야.

그러면 응원가가 되는거야. 가슴이 후끈하다. 늙고 낡은 내게도 그 열기가 옮겨붙나보다.



차에 앉자마자 라디오를 켰다. 이런,~~~  소리가 끊긴다.

지하주차장을 나오며....유턴에 또 유턴을 해야하는 테헤란로,

6시 6분?10분?경...

아니...이럴수가?

차가 하나도 없다.

사람도 없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다. 어쩌다..정말 어쩌다 나 같은 차량이

빈-거리를 질주하고 있었다.

유턴이 아니라 바로 좌회전 ,  또 좌회전...

혹 이글을 읽는 분...

나를 나무라지 마시기 바란다. 정말... 아무 것도 없는 도로니까...

비스듬한 비탈도로를 미끄럼타듯  신나게 코엑스까지 왔는데...

이젠 응원물결과 차들이 간간이 있었다.

좌회전이 안되므로 피턴으로 차를 돌려오며..

그 시간에...패널드킥으로 승부를 가리는 순간이였나보다.



길거리 가로수들 조차도 숨을 죽이고 있었다.

다시 거리엔...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정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손에 땀을 쥐는 순간이였다.



나도 덩달아 천천히 차를 몰고 있는데

기름 계기가..빨간 금으로 하락하고 있어..자동차 기름을 넣어야 겠고..

아무도 가들떠 보지도 않을 것 같다.

영동대교 남단 마지막 주유소에다 차를 살그머니 갖다 댔다.

바깥에 티브이를 내어놓고 10여명 앉아서 호흡마저 죽이고 있다.

고맙게도 한 청년이 쫒아왔다.

난 미안해 하며...기어드는 작은 목소리로

"좀 있다 넣어요"

"괜찮아요"

바로 그 때 였다.

스페인의 4번째 꼴을 이운재가 막아낸 순간이였나 보다.



"와아~~~~~~~~~~~~~~~~~~"

젊은 아이넘들 댓명이 박차고 일어나더니...생각할 겨를도 없이 차 한대 없는 빈-거리를 뛰쳐 나간다.

태극기를 마구 흔들었다.

언제 준비한 건지 패트병을 탁-탁-탁- 맞부딪치며.. 마구 강아지들처럼...빈차도를 겅중겅중 날뛰며 뱅뱅거리기를....

아~~ 덩달아 치솟는...터져나오는 이 희열~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축구경기 티브이 화면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딸아이도 벙싯 벙싯 웃고 앉았다.

그때사 보니 아이의 빨간 쉐타가 눈에 들어온다.

"야 너 옷 벗어... 창틈에다 끼우고 달리자."

"엄만,,ㅎㅎㅎ"



뻥 뚫린 동부간선도로를 달려오며...상계동 쯤 오니...차가 슬슬 모여들기 시작했다.

정말 멋진 날이였고  멋진 드라이브였고  멋진 경기였다.



나에겐...

그 텅-빈 거리의 광경이  잊지 못할 역사적 찰라였다.



내가

머리가 하얗게 세고  보행마저 불편할 지경의 파파할머니가 되면...우리 손자들에게 전설같은 얘기를 전해 줘야지

오늘,  내 눈으로 본  텅빈..거리의 느낌을.    그 전율들을....




글/이요조


백두산천지모습/사진제공:두류봉님

③ 백두산 천지(天池)를 향하여

우리는 모두 버스에서 내려 세 갈래 갈림길에서 조별로 지프차를 탔다. 왼쪽에 "天池"라고 쓰인 문을 지나서 천문봉 기상대로 가는 찻길은 가파르고 구불구불했지만 모두 포장되어 있었다. 조금 무서웠지만 기술과 곡예가 섞인 운전으로 한 20분쯤 올라가서 차는 주차장에 멈추고 우리는 내렸다. 거기서 다시 약 100m정도를 걸어올라 가면 천문봉에 닿아 천지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여자는 하루에 12번을 변신하지만, 백두산의 천지는 하루에 72번 이상을 변한다는 말이 있어 금방 갠 날씨에서도 억수같은 소나기를 뿌리고 맑게 갠 예쁜 시야를 드러내다가도 금새 마음이 토라져 구름으로 천지의 상공을 덮어 얼굴을 보여주기를 거부하는 현실이라고 한다. 그래서 많은 관광객이 천지에 올라도 전생에 공덕을 쌓고 착한 마음을 갖지 않으면(?) 천지의 얼굴을 보고 내려오기는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여태까지 맑고 환하던 하늘에서 비가 부슬부슬 뿌리고 금새 큰 구름이 지나가 걱정스런 마음으로 지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힘찬 바람이 불고 비가 뚝뚝 떨어졌다. 걱정이다. 천지를 볼 수 있으려나?

우리는 드디어 천문봉에 올라섰다. 금새 하늘이 깨끗이 개었다. 서로 동료를 부르고 사진찍기에 열심이다. 아∼아 민족의 영산 - 백두산 천지를 나는 바라보고 있노라. 통일이여 오라! 순상화산의 함몰로 칼데라(Caldera)가 되어 높은 봉우리의 기암괴석들로 둘러싸인 이 천지, 여기에는 강수(降水)와 용설수(溶雪水) 및 솟아오르는 온천수가 괴어 이루어진 신의 조화요 작품이다.

천지는 남북 길이가 약4.9km, 동서가 3.4km, 호수의 둘레가 13.4km이며 해발2250m 높이에 평균수심은 204m이고 최고 수심은 384m나 되는 규모이다. 이 천지에 담긴 물의 용량은 약40억t으로 중국과 우리나라의 국경을 이루며 유일한 출수구인 달문을 통하여 흘러 나온 물이 송화강의 발원지가 되고, 또 백두산속에서 괴여 흘러들인 물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만들어 낸다. 이 천지는 그 자체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구경꺼리의 장관이지만 천지 위에 움직이는 구름의 변화도 볼만한 대단원의 작품이다.
<亨>

백두산천지모습


사진/웹에서




*우주여행/아동화*



1.
날씨가 너무나도 화창해.

2.
귀는 계속 웅웅거리고 아리하게 묵직하고
나는 지금 이대로의 시간들이 이상하게도 힘들어.

세상은 온통 축구 때문에, 월드컵대회에서 우승이라도
할 것 같은 분위기로 몰아가는데
나는 온 몸이 묵직한거두 다 이 귀 때문일거야.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그게 이상하게도 쉽지가 않아.
지금도 계속.... 아마 이 귀에대한 두려움이나
이상한 나쁜 기분을 혹은 느끼게 되나봐.

3.
컴퓨터를 켜도 음악을 들어도 그냥 책장을 펴도
귓속은 멍멍하고 그 멍멍함은 계속 풀리질 않거든.
그 여파로 얼굴은 부어 오르고 머리를 찌를 듯한 통증 때문에
고개짓은 어색하고 잠자리는 불편해서 잠은 늘 설치고.....

4.
지난 두어차례의 축구 경기는
뒷말이 너무 많아서 찜찜하기는 했어.
그러나 미국의 아레나 감독의 말처럼 일단 이겨놓으니
승자의 논리로 대항할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아.
오늘 저녁엔 정말 깔끔한 기분으로 길거리 벤치에 둘러 앉아
맥주나 두세 캔 함께 마셨으면해, 하지만 그건 어렵겠다. 귀가 아파서...

5.
참 이상도하지,
나이가 들수록 어떤 추억들은 퇴색한 흑백사진처럼 남아
아주 특별한 감성의 채색으로 다시 창조되곤 하나봐.

그것은 우리가 잃어온 것, 또는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어떤 것의
아주 특별한 색감을 지니고 있는 듯 해서 더 간절해.

6.
이 망할놈에 귀는 너무 아파 어떨 땐 짜증이 나기도 해.

7.
물론 내 심성이 강철처럼 단단하지 못해서긴 해도
끊임없이 사소한 고통이 긴장한 겨드랑이의 땀처럼
몸뚱이로 비질비질 배어 나오는덴 도리가 없을지도 몰라.

8.
어젠 의사의 진단결과를 들으며 화가 났었어.
그는 나보고 아마 수술을 해야 될지도 모른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래.
치료중의 통증을 이를 악물며 참아내면서도
웃음으로 그 말을 수긍할 수 밖에 없었거든.

9.
난 사람마다 각각으로 사랑하는 방법과 표현이
다양해질 수 있다는 것만은 말해줘야 했을지도 몰라.
그랬으면 서로 사랑이라는 이상한 마술에 쉽게 걸려들지 않았을 것을..
그랬으면 그냥 지금 웃으며 저 축제에 동참하고 있을 텐데.

10.
이번 대 축제를 보며 저렇게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이번 월드컵과 같은 분출구를 끝끝내 찾지 못했다면
사람들은 얼마나 갑갑한 생활을 마지못해 이어갈 수 밖에 없었을까
하는 측은함이 들며 다행스럽단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어떤 긴장과 스트레스의 엄청난 팽배의 반증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했었지.
어쨌든 축제란 즐거워야하고 조금은 광적이어도 무방하리란 생각이 들어,
상대적으론. 다 비어낸 후의 후유증에 대해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글쎄......


11.
차라리 이렇게 화창하고 좋은 날엔
시골 버스를 타고 차창으로 한없이 넋을 놓고 싶어.

다른 모든 건 내가 하고 싶은 말도 내가 바라는 일도 아니야.
사무실에 그냥 틀어둔 티비에선 지금도 게-속 오늘의 축구 얘기와
지난 우리나라 축구경기의 재방송이 우렁차게 들려와.

난 좀 조용히 있고 싶어, 그러나 안되겠지?
겉으로라도 함께 웃고 떠들며 또 군중속의 하나로 들어가야겠지?
귀는 계속 웅웅거리며 약기운이 떨어질 때마다
극심한 통증이 몰려오더라도, 이 축제속의 군중이 되어야 할거야. 그치?






 





◎ 이름:이요조

2002/6/25(화) 08:26 (MSIE5.0,Windows98;DigExt) 211.227.69.213 1024x768


내,어린날의 상처(방관자로서)  




*위 사진은 내용과 무관한 것임*





오늘은 '육이오'

난 부산 토박이지만...

아래는 부산으로 피난온... 그 당시 태어난 내 친구들...

그리고 둘 다 부모님은 이북 분이셨습니다.

난 늘 걔들의 도시락 반찬 가자미 식혜를 좋아했었지요.

내 것이 아니어서 엉뚱하지만,

아련한 향수가 일만큼....





누구에게나 그런 짐 하나씩 있는 모양입니다.

어릴 적... 그것을 뭐라 ? 명명한 것을 분명 어디에서 읽었는데..

잊었습니다.



전 자랄 때부터 뚱했습니다.

말이 없이...가만 있는 아이였습니다.

고집이 쎄서 입학하기 전 공부를 가르칠 엄두도 못내셨답니다.

해서 언니랑 함께 학교를 보내기로 하셨답니다.

안되면 2년을 하실 각오를 하시고는...7살에 입학



(실은 제가 위로 똑똑한 언니 컴플렉스에 빠져 언니 잘 하는 것은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歌舞를 무시하는 것 그때..영향이라고 봅니다)



겨우 10까지 쓰고 제 이름 석자 배워 학교에 보냈더니

뒷전에서 섞이질 않더랍니다.(유치원도 그래서 포기)



차렷,열중쉬엇은 하는데..율동이나 노래가 나오면 굳어버리는 아이였답니다.

얼르고 달래도 막무가내....뒤로 빠져 나오더랍니다.

(그래서 얻은 내 별명이 선비)

짝꿍이 정해졌습니다.



내 짝꿍은 ...

그 때 무용가 황무봉(부산피난시절)선생님의 무용연구소(학원/충무동에 있는)을 다녔었고...

그 당시.....부산에 역시 김백봉 선생님 무용연구소도 있었고...

각 음반회사... 우리 동네에는 (공장겸)지구레코드사.....

(1950~~ 1960대 말까지...)

피난길로 내려온 예술인들이 양군데에 거점을 둔,,,어중간한 시절이였으므로,

때아닌 무용붐이 일었댔습니다.

언니도 발레복을 입고 무용을 했었고...

학예회 사진 뒤쪽엔 미군들이 서 있었고..

우리는 학교에서 주는 전지분유를 큰 밥통으로 타 와서는

알미늄 도시락에 넣고는 쪄서

딱딱하게 굳힌 우유과자를 지겹도록 먹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피난통에 그나마 제일 경기가 활성화 된 부산에다 왜

그런 혜택을 주었는지...



그 아이가 황무봉 무용학원 갈 때... 몇 번 따라 가 본 나는 그냥 구경만 했을 뿐,,,

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들지는 않았지요.

여태도 에어로빅문전도 못가 보았으니....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부산극장에서 무용발표회 때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에서 '백설공주'를 하던 아이였습니다.

그 아이는 1에서 1000도 잘 썼고,

예뻤고... 엄마도 우리 엄마보다 젊고 세련되었고...옷이나 구두, 이상하게 머리 땋기, 가방

어디서 구하는지... 정말 백설공주처럼 하고 다녔습니다.



그 아이는 나를 좋아했습니다.

우린 반편성 한 번 없이... 육년을 그대로 있었지요.

순수 여학생 반으로,



일학년 시험 볼 때,

아이는 나에게 자꾸만 보고 쓰라고 답안지를 보여줬습니다.



보았지요.

그랬더니... 걔가 100점 전 95점을 받더라구요.

선생님...칭찬에...상장에....(시험 볼 때 마다 주더군요)

몇 번을 그러다가 제 스스로 도를 깨우쳤습니다.

묵묵히 공부를 했습니다.



둘 다 100점이였습니다.



그렇게 4학년까지 그 아이는 급장 전 부급장 이였습니다.

실제 그 아이 성적이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아~ 왜 둘은 계속 짝꿍이였냐구요?

두 엄마의 치마 바람이 그나마 있는 사람이였거든요

그렇지만 판이하게 다른 두 어머니의 생활양식

제 어머니는 고전적이라면...그애 어머니는 신식여인)



도시락을 보아도

그 아이 도시락통까진 생각나진 않군요

제꺼요?

말씀마세요.

아마 지금 갖고 있다면..

진품명품에도 나갈 수 있을 겁니다.

동그랗고 둔박한 나무통인데요...앙징맞게 귀여웠어요.

위에는 분리된 찬통... 옻 칠기처럼 번쩍 거리진 않는데...

무광으로 붉었어요.

사각 나무 찬합하고는 틀렸어요 일인용이니....

둥글고 불룩한 뚜껑을 보면...통나무로 깍은 것 같았지요.

어느 날..그 나무원통 도시락을 계란말이 넣어 달라고

메다 꽃는 통에 그만 뚜껑이 트는 금이 가 버렸습니다.

다른 형제들...다..이런 도시락 안 쓴 걸 보면...

제가 좋아해서 여기다가 싸달라고 특별 주문한 것 같기도 하고...아무튼

제 반찬은 주로 큰 굴비(그 때는 흔했음)가운데 알(卵)든토막

아니면... 된장에 박았던 깻잎 장아찌...엄마가 만든 단무지....

주로 그랬던 것 같은데(제일 싫어한 것이므로)

그 아이가 계란 말이(계란이 굴비보다 귀했음)를 사오는 게 얼마나 보기 좋았던지요.

그 아이가 3학년 때...빨간 다후다 점퍼를 입으면..그 걸 사 달라고 졸라서

사입으면...내 옷의 디자인이 맘에 들지 않았었고

그 아이 신은 샌들이 너무 좋아 엄마를 몇 날 며칠 졸라서 신발 가게를 갔더니

내 발이 너무 커서 없다는 말에 얼마나 서운하던지요.(비닐샌들)

그 당시엔 애기들 것이나...숙녀들 것만..있었습니다.

물론 나보다 발이 작은 걔,

아마 멋쟁이 걔 엄마는 그 신발을 어디서든 구해 올텐데, 알고 계실텐데,







이야기가 다른데로 갔지요?

시험을 볼 때면 늘

보여달라고 했지요

제가 누군가요

가르쳐 주긴 했지만..

그 아이의 점수는 언제나 차등이였습니다.



그아이가 교문에 떴다하면..

물론 집에까지 가서 책가방 들고오는 시녀가 따로 있지만

교실에 있는 아이들이 우르르 다 뛰쳐 나갑니다.



가히...장관이지요.

와...소리를 지르며...

그냥 나가냐구요?

손에 손에는 제일 귀한 것들을 다 들고 있지요.



연필..먹을 것,,, 귀한 것...

심지어 돈까지도,



난, 언제나 못 마땅했지만...

덤덤했습니다.

왜냐면 그 아이는 나에게 언제나 절반은 나눠 주니까요.

싫어 싫어 하면서도

못이기는체 받아왔습니다.



4학년 2학기 뜸 되어서

분위기가 이상해졌습니다.

묘했습니다.

아니 이제사 자아가 형성되었다고나 할까요?



수런수런..

그아이의 안티 세력이 합세하여 늘어났습니다.



학교에서 못다한 나머지 이야기를

우리집에 몰려 와서 하곤 했습니다.

전 언제나...

가만 지켜보았습니다.



드디어

D-데이를 정하더군요.



학급회의가 열리는 날입니다.



누구누구를 오늘은 성토하겠습니다.

누구는 시험 볼 때마다 괴롭힌다.

늘 컨닝을 한다.

어떤 비리기 있다.

아무튼 아이들이였는데도 당찼습니다.



그 아이는 게거품을 물고 실신했습니다.

손발이 뻣뻣해졌습니다.



학급회의서부터...

얼굴이 질렸지만 손을 쓰지 못할 만큼 드쎈 아이들 기에

억눌렸던 선생님께서는 급기야

얼굴이 새하얘지셔서

물,,가져 오라고 고함을 치셨습니다.



제가 물을 갖다 드리자

팔다리를 부지런히 주무르고 계셨고

벌써...심부름 보낸 아이의 어머니는 사색이 되어 달려왔습니다.



그 때부터...

그 아이는 다른 아이였습니다.

멍해졌습니다.

그 예쁜 얼굴이 살이 디룩디룩 붙으며 멍-해졌고...

왕 여드름 마저 툭툭 불거지는 미운 아이가 되었습니다.



그 날이후와 5,6학년 급장은 당연히 제가 했지요.

그렇게

아이들의 저마다 개성이 뚜렷해지고 자아가 발달하고

중학교를 가면서 헤어졌습니다.



전 부산여중을 갔고

그 반란의 주동자는 경남여중을갔었고

(훗날 왜 서구관내에서 먼 그학교 갔냐니까?

세라복이 예뻐서 그랬데요 ㅎ~)



바로 그 아이는 모여중을 갔습니다.

그리고 전설의 그 아이는 잊혀져갔습니다.



외모도.뛰어날 것도 아무 것도 없는 평범한 아이로.



난, 미안하다는..부담감...늘 남모르게 지니고 살았습니다.

걔가 그런 것은 내 탓이라고 늘 찜찜하게 맘속으로 괴로워했습니다.



고등학교는 나중에...야간인지..아무튼 이름없는 학교밖에 못갔다는 말만 풍문으로 들었습니다.



늘 가슴 한 구석..

또아리 틀고 있는 ..내 최초의 배신감으로

난 괴로워했습니다.

그 고운 아이를 평범으로 몰 고 간

내가 저지른 범행같았습니다.



사느라고...바빠서...아이 셋에다

시집살이에다, 병치레 잦은 한넘에다

또는 성장지를 멀리 떠나 온

이질감에다

난 나를 정말 잊고 살았습니다.



인터넷 세상이 오고 난 친구를 만났습니다.

주동자..

김 영희,

몇 년전...우린 극적으로 만났는데..약속을 하고



우려했지요

못 알아 볼까봐서...



그런데...기우였습니다.

그얼굴 그대로였습니다.

그애도 그런 말 했습니다.

우린 동시에 알아보고 껴 안았습니다.



영희, 그애는 형제가 별로 없어서 그런지

우리 집 언니 동생 이름까지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우리 집에 걸린 그림까지도 기억해냈습니다.

"아~ 맞어,그랬었구나...나도 잊었는데...너가?"



그날...우리의 만남 장소는 잘못 선택되었습니다.

바로 모텔로 직행했어야 하는데...

해서 푹신한 물침대위에 나란히 누워서

끝간데 없는 이야기를 했어야 했는데...



초저녁에 만난 우리의 수다는 장소를 옮겨가며 밤 2~3시까지 이어졌습니다.



드디어..

그 말을 꺼낼 시간이 왔습니다.

"얘, 걔 말이야 소식 아니?"

"응 ...미국살어...올 때마다 나 만나는걸"

"맙소사...이럴 수가?"

"아니 네가 걔에게 그래놓고선?"

"뭐 어때,,,어릴 때 일인걸..."

"걔는 몰라?"

"걔, 암 것도 몰라...ㅎㅎ 이상해...푼수가터...

미국에서 잘 사나봐..그러니 job도 없이 맨날 빈둥거리며...

비디오만 보다가 심심하면 고국에 날라들지..

걔, 골 아픈 얘기는 전혀 듣지도 못해..."

"아~ 어쩜........"

난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억울해서....쓸데없는 것에 얽매여 왔던 내가 억울해서,,

'난 평생을 죄의식에 억눌려 살아왔는데...

난..얼마나 그 일로해서...괴로와 했는데...'



"요조야, 잊어...ㅎㅎ..니도 참 우낀다야~~"



"담에 오면 연락해줘? 같이 만나?"



"싫어, 됐어."



추억은 추억대로 묻어두는 것입니다.

아마 난 똑부러지고 잘난 언니 둔 덕에

그열등감을 내심 걔에게 만회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난 영희를 만났다는 반가움보다

그 날 이후~

그 아이가 잘 산다는 게 얼마나 고마웠는지...정말 반가운,

해서, 내 마음을 밝게 하는 창을 한 켠에 뚫어논 기분이랍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