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림트의 아담과 이브*
<할 수만 있다면 여자를 벗고 싶을 때가 있었다.>
여자란...........
여자란 으로 시작하는 설교를 들을 기회가 유난히 많았던 것 같다.
한 여름에도 늘 새하얀 버선을 신으시던 할머니.
할머니의 밥이 되어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시던 우리 어머니.
그 두 여인께서 내게 귀에 딱지가 앉도록 세뇌하려했던 것은
온순하고 참을성 많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오직 얌전히 지내다가 좋은 신랑감 만나면 고분고분 순종 잘하는 아내로 살면서
집안의 손을 이어주고 가세를 번창시키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고
알아도 아는 척 말고, 답답하더라도 나서지 말고, 다소곳이 기다릴 줄 알며
남편의 그늘에서 주어지는 환경과 상황에 순응하여 살아야 한다는..... 식의,
그래서였을까?
나는 내 안에 여자다움을 받아들이는데 아무런 거부감도 느끼지 않았었다.
아니, 한 때는 여자답다, 조신하다는 말이 찬사로 들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여자가 여자다워진다는 것이
얼마나 갑갑하고 불편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여자면 그냥 여자인 것이지
여자답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왜 여자는 머리가 길어야 하고
여자는 예뻐야 하고
여자는 나긋나긋 상냥하고 부드러워야 하며
어쩌자고 늘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하고 수동적이어야 하는가?
불행히도 내겐
여자인 어머니의 유전인자만 계승된 것이 아니었다.
직선적이고 거침없고 자존심 강하면서 호방한 우리 아버지의 인자도
내겐 엄청 내장되어 있었고
다정다감하고 다소 괴팍하며 방랑벽 심했던 외조부님의 인자도 섞여 있었다.
결국 여자다워져야 한다는 것은
내게 잠재되어 있는 이런 부분들을 숙정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린 내 눈엔
새침데기 반듯한 할머니 보다, 인종의 미덕을 온 몸으로 보여주는 어머니의 모습보다,
언제나 사통팔달 거침없는 아버지의 남성적인 모습이나
바람처럼 물처럼 얽매임 없이 자유롭고 낭만적인 외조부님의 모습이 훨씬 더 멋져 보였다.
어려서부터 엄마와 노는 것보다는 아버지를 따라 등산을 하거나 낚시를 가는 것이 더 신났고
외할아버지 곁에서 톱질, 대패질, 못 박는 일을 구경하는 것이 참으로 신났다.
외조부님은 대목이셨고
내가 예닐곱 살쯤 되었을 적에 우리 식구들을 위해
작은 유리창들이 잔뜩 달린 새 집을 지어주시기도 했다.
그때 목재에서 풍기던 나무 향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촉촉한 톱밥의 부드러운 감촉과 처음 맡아보던 시멘트 반죽 냄새와 못질하는 소리, 자갈 섞는 소리까지도.
엄마의 착한 딸이기보다는
아버지의 마스코트역할이 훨씬 더 좋았던 나.
사내아이들처럼 여봐란 듯이 서서 오줌을 누고 싶었다.
누가 멀리 가나 내기를 하면서.......
남자처럼 기운이 세다면 감나무에도 더 높이 올라가고
눈 토끼 사냥도 따라갈 수 있을 텐데 하며 부러워했다.
하지만 나는 약골인데다 얌전히 굴어야 하는 여자아이였다.
자연히 그냥 얌전히 구는 쪽이 편했고,
얌전하다고 칭찬 받으니까 그런 잠재된 소망 따위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사회인으로 첫 발을 딛고 얼마 되지 않아 내가 해야 하는
얌전한 여자의 역할에 대해 분개하게 되고 말았다.
여자와 동료직원이라는 개념이 모호한 직장.
얼마 되지도 않은 신입직원이 이른 아침 출근한 나에게 다가와
무례하게도 얼굴을 만지려고 했을 때의 당혹감.
새파랗게 날이 서서 항의하는 내 모습을 예민한 히스테리라며 오히려 비웃던 선배 여직원.
지금 같았으면 아마도 녀석의 궁둥이를 실히 두드려 주었을는지도 모르지만
그 시절엔 어림없는 얘기였다.
어찌 직장에서 뿐이랴, 골이 너무도 깊어서였을까?
스스로 그러한 분위기 속에 안주하려는 여성들도 있었다.
어딜 가나 여자는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세상에서
남성에 대해 지녀왔던 호감과 동경이 반감을 넘어 적대감으로 변하던 시절도 있었다.
나는 지금도 남녀 함께 회식자리에 가게 될 경우
당연히 여자는 입만 가지고 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부류의 여자들을 혐오한다.
여성을 지니고 세상에 태어났으니
신이 여성에게 부여한 고유한 삶의 영역을 지킬지언정
여성으로서 사랑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자기 성취를 위해서 노력하며 사는 삶,
그 안에서 동등한 자유와 기쁨을 누리고 싶다.
나는 여자인 나를 사랑한다.
그러나
여성, 남성이라는 생물학적 구별을 떠나
그냥 한 사람이고 싶기도 한 거다.
2002, 6, 20. -하닷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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