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히딩크선생님

온나라가 축구열기로 까만밤을 하얗게 지새운다
참으로 오랫만에 맛보는 동포애의 뜨거움이
눈물이 나도록 정겨웁다
선수와 히딩크감독 온국민에게 감사한마음이다

나에게도 못난시절이 있었다
어렸을때부터 4학년때까지 남과싸워
이겨본적이 없었고 엄지손가락을 빨고다니면서
얼굴엔 싸움에서 진 흉터자욱과 눈물
그리고 남앞에 당당하지 못한 내성적인성격과
수줍음으로 나의 어머니는 2학년 1학기까지
교실 뒤에서 나의 학교생활 적응을 위해
모든지원을 다 하셔야했고
수업시간에 손을 들어 발표한번 못하고
4학년에 올라왔다

4학년때부터 도시락을 먹게되었는데
마음에도 안드는 반찬을 책상앞에 내놓고
먹을수가 없어 친구들 책보자기를 빌려
책상에 포장을 둘르고 의자밑에 내려와서
혼자 먹었다

우스꽝스런 내모습은 선생님의 지적과
관심의 대상이였고 이어 가정방문을 통해
싫다는 분단장을 기어히 시키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날 "흥부와 놀부" 의 줄거리를
분단장인 내게 설명하라는게 아닌가?
까무러치도록 놀라고 부끄러워서
나갈수가 없었고
회초리로 탁자를 두두리며 하나둘을 세시던 선생님
40번 을 치신대로 40번을 회초리로 손바닥을 맞았다

그뒤로 스터디멤버에 나를 끼워 어울리게 하셨고
점심시간이면 여자들 전원한팀과 선생님과 부반장 나
3사람한팀과의 미니야구게임 선생님 당직날에는
멤버들이 찿아가 숙식을 같이 하면서
밝고 활기찬 싱싱한 물고기같으신 선생님은
나를 서서히 명랑한 학생으로 길들이기 시작하였고
성적도 점점 나아져 우등생를 타기도 했다

전주에서 익산으로 통근하시면서 우리집을 지날때면
(바로 기차길옆에 살았다)
큰소리로 내이름을 부르며 손을 흔들어 주시던 선생님을 잊을수없다
내게 자신감과 당당함을 가르쳐주시고
전근가셨지만 일년후에는
동네에서 제일 힘센 복남이란 친구를 이길수가있었고
아무도 나를 이길수가 없었다

원래의 내성적인면과 그후 외향적인 면이
어울어져 지금의 나됨은 그때 그선생님을 만남이라 생각하며
온국민이 히딩크감독에게 감사를 보내듯
나의 못난이시절 그분은 분명
나의 히딩크선생님였다고
감사하며 자랑하고 싶다
선생님! 보고 싶습니다










<그림 황진이 이요조님의 타블렛화>



*덧칠*


사랑!
화려한 뒤에 오는 아픔,
그리고 그리움!

나는
덧칠을 한다

먼저 검은 색 아크릴릭에
그녀와 마셨던 향기 짙은
혼미의 헤즐럿 커피를 섞고
붓도 커다랗게 휘저어 장판 칠하는 것처럼,
온통 흩뿌려 잊듯이
모든 것 다 지울 수 있음 좋을거라는 기대로.....

따가운 3월 부터 쏟아진 햇살에 나신을 드리운 채
상처가 아물기를 기다려 애태우며.....
속살이 보이지 않도록 말린다

두 번째
이미 지워졌을 거라 미리 단정한 내면,
검고 검은 바탕 위에 赤黃의 정열을 채운다
검다 못해 붉어진,
바닥까지 가버린 아픔이 보이지 않도톡
핏빛으로 가리워진 생애의
절반 넘는 세월을 붉어짐으로 보리라

세 번째
어느 님이 보라시던
석양의 햇살을 당겨 朱黃의 파노라마를 펼친다
이제는 사랑쯤은 안보이겠지
내심 작은 미소를 지으며......

아니다 이번엔
짙은 葛色의 가을驛 같은
가슴앓이 고통을 헤아려
수많은 인생들이 지나친 사연을 실어보자
아직 물기 덜마른 주황 위에
그래도 인생의 굴곡이 있었으니 행복 했노라고
수많은 사연이 내게도 있었으니...
갈색 추억을 칠해보자

이제는
아물었을 상처에 새싹이 돋게 노랑을 칠한다
열마에 가입하고 어느 비온 후에 보았던
일곱색갈 무지개의 맨 가운데 속살을 그려보자
이제 무지개로 승화된
우리 사랑이 아름다워 보이도록.....

그리고 마지막
순백의 흰색으로 마무리.......
늘상 처리하기 가장 어려운 純白
차라리 白 이라는 채색이 없었다면
하얀 겨울까지 기다릴수 있을텐데.......
그녀가 백설공주처럼
하얀옷을 입고 있기를 기다리며
기다리고 또 기다릴텐데.......

아!
하지만
지난 시간 고백 해버린
"사랑"이라는 아픔 때문에.....

수십 번 칠한 연륜의 색깔 위에
마지막 칠한 그 하양 마저도
상처를 덮을 수는 없었는가

눈물뿌려 말리운 거기 그곳엔

다시 환하게 나타나는 "사랑"의 흔적

차라리 눈멀어
아픔 없는 느낌만이 내게 왔으면 좋을걸.......
.
.
.

어느날.... 만들다만 작품 "사랑-11"을 바라보며...

흐르는곡:Minor Blue..David Darling



















내사랑을 찾아야 한다.

그윽한 분위기를 위해
모차르트를 불러내고
차분한 맛을 위해 향도 타고
가슴을 재우기 위해 얼음도 넣고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입술만 적시면서
나를 삼키지만
그가 없으니
그 날 이후
잃어버린 나는
되돌아오지 않는다.

같은 장소
같은 커피지만
왜?
세월은 은행잎만 세고 있을까?

내 사랑을 찾아야 한다.

실종된 내 사랑과
잃어버린 나를 찾으러
돌아가야만 한다.
그 날의 나로,



지동훈




작년 이맘 때 생각이 납니다
그 때 세 송이 Daffodil 꽃을 보고 크게 기뻐 감탄했던 일이...,
벌써 한해가 흘러 또 그 때가 되었군요
오늘도 창문 넝쿨 잎 사이로
밖을 내다보는 것으로 나의 하루는 시작됩니다
일어나 층계를 내려와 제일 먼저 하는 일이란
커튼을 젖히고 창 밖 아래 누운 향나무 밑으로 자리잡은
납작이 크로커스를 보는 것이
내 일과의 첫 시작입니다
그것부터 살피고 난 다음에 나머지 커텐들을 돌아가며 열고
식물들에 물을 주고 금붕어 먹이도 주고
비로소 나의 먹이인 생수 한잔을 주~욱 크게 들이킴으로써
하루는 시작되고
또 한잔의 커피를 보글보글 끓여 손에 들고
향기를 맡으며
컴퓨터를 켜고 T-V를 켜야
이제 제대로 되는 하루가 열리는 것입니다

난 생각이 날 때마다 창가로 가
납작이 노랑, 보라 크로커스를 보는 것이 요즘의 낙입니다
왜 납작이란 별호를 붙이느냐 하며는
키가 7~8cm미만이기 때문입니다
꽃대가 한 2~3cm, 꽃 높이가 한 3~5cm정도이니까...

작년 5월쯤 타지로 이사가는 한 한국인 주택 정원에서
멋대로 잡초 마냥 자란
온갖 이름 모를 꽃들의 구근들을 캐어다
여기 저기 대충 구근크기로 짐작하여 심어 놨더니
올 봄에 이렇게 예쁜 꽃들을 피워주는군요

이 곳 날씨가 하도 변화무쌍하여
한 10여일 전에도 눈이 6인치씩이나 내리고
그 후로도 눈이며 우박이며 진눈깨비,
심한 돌풍에 비바람까지...,
연일 찌뿌둥한 날씨 때문에
꽃은커녕 잡초하나 어디 실하게 없었는데,
어느 비바람 몹시 부는 날
무심코 내다보는 창 밖에서
노랑색 꽃잎같은 것이 땅에 붙어 흔들거리기에
두터운 잠바에 터틀넥 쉐타로 입을 감싸 가리고 나가 보니
아니 그 어름 눈 사이로...,
땅 뿌리로부터 곧바로 꽃송이가 붙어서
노랑 꽃몽우리가 피어나고 있었어요
생명의 지혜...,
정말로 신기했습니다

한송이는 벌써 바람에 나부낄 정도로 피어났고,
다른 한송이는 땅속에 묻힌 채
꽃이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생명의 신비란...,
얼마나 대견하고 신기한지... 한참을 쭈그리고 앉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보니까 여기저기 낯 설은 새 싹들이
그 모진 강풍을 이겨내면서
"겨울은 가셔요 이제부턴 우리들의 세상이예요"이라고
고함이라도 지르듯 예쁜 손들을 여기 저기서 내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고운 새 싹들이 이미 반은 토끼 밥으로
물어 뜯겨져 버렸드군요

그 후 건강이 좋지 않아 토끼 먹이가 되는
예쁜 싹들이 있는 것에 신경을 쓰지도 못하다가
며칠 전 나가보니
이미 여러 개의 꽃들이 그 예쁜 침입자의 입에
다 먹혀버려 싹쓸이가 되었드군요

망설일 수가 없었습니다

난 기침을 쿨룩거리며
잠바에, 모자에, 마스크까지 쓰고
쌩쌩 날아 갈 듯 부는 바람 앞에 꽃을 지키려는 투사처럼,
작년에 썼던 그 돌돌 말린 닭장 망들을 펴고 잘라서
납작하게 땅을 덮는 땅거미 그물망을 만들어
그 가엾은 크로커스들 위에 덮었습니다
모자라는 그물망을 최대로 늘려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는 것은 잘라내서 또 덮고 하면서...,

지금 밖은 햇볕이 화안합니다
내다보는 창밖에
키 작은 10~15여개의 예쁜 노랑, 흰색, 보라의 크로커스가
그물망 안에서 바람에 살랑거리며
햇님에게 웃음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느새 피어난 하얀 아기초롱꽃 모양의 Snow drop도
망속에서 수줍게 미소를 보냅니다

어젯저녁 늦은 밤,
자려고 계단을 오르려다
언제나처럼 현관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는데
바로 계단 아래 잔디 밭 가운데에 서 있던
한 마리의 아기 토끼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녀석은 몇 초를 앞발을 들고 정지한 채로 쳐다보다가
이내 꽃밭 앞 길 쪽으로 뛰어 갔습니다
나는 얼른 창가로 가 커튼 사이로
달빛이 환히 비취는 화단에
꽃잎을 접고 단잠을 자고 있는 크로커스들을 살폈습니다
토끼는 건너 잔디밭에서 무엇인가를 연신 오물거리며
따먹고 있었지요
나는 기다렸습니다
그 땅그물망까지 와서 먹지 못하고 애쓰는 그 토끼 모습이
보고 싶어서지요
얼마나 통쾌할까요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녀석은 그 자리에서 돌려 앉아가며
무엇이 그리 맛있는지 후벼파고 오물거리느라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
커텐을 젖힌 팔이 아파 아예 커텐줄로 커텐을 열어젖히고 기다렸으나
녀석은 제자리에서 움직일 줄을 몰라,
내가 졌습니다

아침에 나가 보니
참으로 별 볼일 없는 삐죽이 나온 잔디덩어리 한 개 뿐이였습니다
"미안하다 토끼야."

올해에는 더 많은
여러 그루의 Daffodil 꽃나무에서
여러 송이의 봉우리들이
벌써 살포시 고개들을 떨구고 때를 기다리고 있고
작년에도 풍성했던 Allium들도
올해에는 더 많은 보라빛 꽃들을 보여 줄 것입니다
여러 빛깔의 아이리스들과 순백의 데이지들, Dusty Miller들도
이미 예쁜 싹들을 내 보내고 있습니다

한송이 꽃을 보면서도
정말 숭고하신 하나님의 진리와
생명의 귀함을 느낌은
귀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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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 캐나다에서 <이슬초>님이 2002.3.30 에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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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친정어머니의 팔십세되시는날입니다
원 생일이 오늘이지요
오빠가 아침에 미역국을 끓여드리고
점심은 외식을 하기로 하였읍니다
서울에서 내려오는 세째동생이 아침에 참석을 못하여서 그리되었읍니다

예약된 식당에 모두모여서 즐거운 식사를 하였읍니다
오빠덕에 맛있는 일식을 먹어본다며 우리 네딸들은 즐거워하였는데

친정아버지가 하시는말에 모두들 숙연해졌읍니다
"아 오늘 내가 한마디 하마,
얘들아 난 너무 행복하다"하시더니 말끝을 못맺고 흐느껴 우시지 뭡니까
울딸들도 모두들 영문도 모른채 눈시울을 붉히고....

아버지는 눈물을 거두시더니 너무 행복해도 눈물이나온단다
하시며 애써 변명처럼 말씀하시고는

조금있다가 또 흐느껴 우십니다
여기있는 너희들 모두다 행복하고 너의에미도 다 행복한데
나만 불효다 하시며 목놓아 우십니다
젊어서 헤어져 생사도 모른채 반백년을 넘게 살아오신 아버지
부모님께 효도한번 해보지 못한채 다 저세상으로 가신듯하여
목이 메이십니다
당신은 아들딸에 둘러쌓여 생일날 어버이날 명절날마다
자식들에게 효도받으시는데
정작 당신은 하고싶어도 할수 없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이렇게 글을 쓰고 있으니
다시금 아버지의 눈물에 나도 눈믈이 납니다

아버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으시면 삼촌들은 만날수 있을거예요
우리 오빠보다도 한살이 아래라는 막내삼촌이나 그위의 고모는
만날수 있을거라며 위로를 해드리고 점심을 끝냈읍니다
6.25의 비극은 아직도 끝날즐을 모르는군요






컴만 열면 멜보다 더 먼저 들어오는 미루칼럼~

눈만 껌뻑 껌뻑 드려다 볼 뿐....

난, 아무런 글 하나 쓰질 못한다.

연소심님....그녀가 의리있게 잘 하고 있으므로....

오늘 아이를 퇴원시켰다.

퇴원 전..감기로 며칠 고열에 시달리는 통에

에미로서...그냥 입도 얼고 손도 얼고

마음마저 얼어 붙었나 보다.

아무런 생각이 없다. 텅...비었다.

백색이다. 그저 하얀 빛깔이다.

무엇에 크게 감전되었다가 벗어난 멍-한 느낌~~

내게 무슨 진력이 남아 있으리 ...

바깥 세상은 축구의 함성이 소나기 퍼붓듯

내려꽃혀도 나완 무관하다.

언제쯤이면 다 타다남은 잿빛 가슴,

그 속에 다시 빨간 불꽃을 지필 수 있으랴?





297(이요조) 2002/5/30 (Thurs.) 11:04:37 삶, 그 속의 숙제. 청산님 오에카키.






내 고향 고양과 파주

돈암초딩 시절에 방학하면 쪼~르르 달려가던 고향
서울역서 90원 짜리 기차표 사고
일산역서 내려 산과들을 지나고 논밭의 푸르름을 만끽하며
걷다보면 울 할머니는 오이밭에서 머리에 수건 두르시고 일하시다가
반갑게 달려오시던 그곳~~~

지금도 그할머니는 살아계십니다
압구정동 우리집을 오시려면 택시기사님한테 악기동 가자 했다는데
신기하게도 알아듣고 모셔다 주더랍니다

그곳에서 20 리에 파주 금촌은 외갓집
일산서 싫증나면 또 그곳으로 이동~~
20 리 길을 걸어도 지루하지 않았던 것은 이모하고 나무이름 맞추기
산에 들어가 항아리 버섯,싸리버섯,기와버섯등...따고
산나물도 뜯고 했기에..

넘 방갑게 맞아주시며 옥수수,감자,단호박, 쪄 주시고
원두막에 나가면 참외,수박밭에서 냠~냠 하다가
강가로 나가 배도 타다가 수영도 하다가
팬티 하나만 걸치고 (ㅋㅋㅋ) 강으로 풍덩~하면 고기반 물반....
보리새우,버들붕어,송사리,미꾸라지 등...
손으로 더듬어 고기잡아 강아지풀에 아가미를 꿰어 가져오면
외할머닌 털래기(?)란 수제비도 뜯어넣고 고추장 풀고 버섯도 따다가
맛갈나게 끓여 주셨는데...외할머닌 몇년전에 하늘나라로...

소근소근 귓속말: 에피소드가 있는데요

6학년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에 이모랑 토끼먹이 풀 뜯으러 산에 갔다가
쉬~~하고 나니 빨간 피가 보이는거예요
이모는 억센 풀에 베었다고 했고 외할머닌 빨래를 하시곤
급하게 제 방학 숙제등을 챙겨서 기차타고 칙칙폭폭~~
집에와서 부랴~부랴~~엄마랑 소근소근---시장가서 하얀 애기 기저기감
끊어다가 거시기 접는법을 아무리 갈쳐줘도 난---몰랑
히히히 키가 반에서 뒷줄이었으니---첫 생리를 시작 했던거죠
우~하하하하 엄마가 깨끗이 삶아 말려 다시 갈쳐주는데 울 남동생이
이거 뭐하는거야? 하는데---난...얍~~! 이것 니 마스크 해라~ 하면서 입에다 갖다 대보고...
ㅋㅋㅋ 철부지가 와 그리 빨리 첫경험을 했는지..

지금은 그곳 보라,하얀 도라지꽃밭이 있던 외가집터는 모두 아파트단지로
변해버렸어요 너무도 아름다웠던 내 어릴적 고향이 말입니다

경산님의 글을 읽다가 불현듯 고향이 절 부름을 느낍니다
1 시간이면 자유로~~금방 가는 길인데...
가까운 날을 잡아 그곳에 가렵니다

그리운----일산 & 파주여~~~~~~~~




<사패산 헤매기>

- 1 -
9시반에 김선생을 만나기로 했다. 나이먹으면 잠이 없어진다더니 약속시간을 일찍도 잡았다. 어제(6.8) 사패산 가자고 전화가 왔길래 시간 장소를 정하라 했더니 회룡역에서 9시반이란다. 전철갈아타는 시간이 좀 걸려서 약속시간에서 6분 늦었다. 김선생은 벌써 나와계신다.

화장실에 들러서 큰일을 보고 슈퍼에 가서 청하 한병을 샀다. 요즘 계속 그 모양이다. 속이 안좋다. 하루에도 몇차례 화장실신세다. 그래 소주를 끊었다. 이젠 소주한테 진다. 번번히 지는 것을 안진다고 빡빡 우겨봐야 나만 곤해지니 이젠 인정할 건 인정해야지... 끊은지 벌써 한달이다.

김선생이 이런다.
< 아 지도를 가져온다하다가 깜빡 잊었지 뭐요. 안주는 챙겼는데... 요즘 이 모양이라니까...... >
사실은 나도 집에서 나와가지고 한 10분 후에 아차 했다. 나도 지도를 깜빡한 거다. 왜 그러는 거야... 나이도 어린 사람이...

- 2 -
회룡골 매표소를 통과했다. 등산객이 별로 없다. 부근에 구멍가게 한개하고 음식점 한개뿐이다. 김선생은 요즘 인절미를 등산점심으로 가지고 다니시는데, 오늘 인절미를 사지 못해서 여기 구멍가게에서 빵을 사려했지만, 빵도 없단다. 손님이 없으니 빵을 들였다가는 상해서 버리게 되는 모양이다.

하늘엔 고가도로가 높고 웅장하게 걸려있다. 등산로는 차가 다닐만큼 너르고 포장이 잘되어있다. <사패산 터널 신설반대> 플래카드도 보인다. 한 십년전인가 여기 왔댔는데, 그땐 아파트도 없었고 고가도로도 없었지...

코스를 어떻게 잡을 거냐고 물었다. 사패산에 올랐다가 송추계곡으로 내려가든지 아니면 회룡으로 되돌아오든지 란다. 일단 정상에 올라가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숨차고 힘든다. 왜 그러지? 전엔 안그랬는데... 김선생은 저만큼 앞서서 잘도 간다. 작은 키에 깡마른 분인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지... 차림새도 멋지다. 등산화에 긴양말, 니커보커바지, 등산복 상의에 망으로 된 조끼, 멋진 모자, 빨간 배낭을 메고 오른손목을 빨간 손수건으로 동였다.

나는 어떤가? 내 차림새엔 <등산용>인 것이 하나도 없다. 오늘따라 거치적거리는 게 싫어서 등산화를 신지 않고 그냥 운동화를 신었다. 바지는 그냥 작업복바지. 셔츠도 어제 입던 것. 모자도 어제 쓰던 것. 바지주머니 세간도 없앴다. 지갑도 놓고 오고 핸드폰도 배낭에 넣었다. 배낭은 어떤 구두가게가 폐점세일할 때 천원주고 산 거다. 양말도 보통 때 신던 것이다. 그런데 이놈이 자꾸 흘러내린다. 등산시작한지 20분도 못되어서 양말이 발바닥에 걸려있다.

- 3 -
회룡사입구를 지나서 석굴암에 이르렀다. 길은 거기까지 너른 포장도로다. 마땅치 않다. 절에 다니지 않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산속에 그렇게 너른 포장도로를 내서 자동차소음과 매연으로 산을 오염하는 게 영 마땅치 않다. 득도를 원한다면 호젓한 오솔길을 지나고 계곡을 건너고 숨찬 비탈길을 오르는 것도 좋은 수행일 것인데...

석굴암은 백범 김구 선생이 일본 순사를 피해 은신했던 곳이며, 선생의 필적이 돌에 새겨져 있다한다. 선생은 해방이후에도 이곳을 자주 찾았으며, 자필 명문을 조각하여 준공식을 하던 1949. 6. 26에 선생은 피살되었다. 아주 커다란 돌 두개가 기대어 서있다. 그게 암자 입구다. 거길 지나 조금 가면 석굴이 있다. 신발을 벗고 계단을 올라가서 석문을 지나 석굴에 들어갔다. 촛불이 켜져있고 위패가 모셔져있다. 합장을 하고 나오다가 석문을 당겨보니 움직인다. 신기하다. 옛날에는 돌쩌귀로 무엇을 썼을까? 다시 생각해보니 그때에도 쇠가 있었을 테니 쇠돌쩌귀를 썼을 게다. 쇠가 없었다면 청동을 쓰면 될게고... 정 없으면 박달나무로 하더라도 꽤 오래 쓸수 있을게다. 통짜배기 돌로 만든 문을 처음 본 터라, 내심 겁을 먹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신을 다시 신으려고 계단에 앉았는데, 아무래도 무슨 수를 내는게 좋을 것같다. 맨살이 운동화에 이칫거려서 오른발뒤꿈치에 물집이 잡힌 거다. 옳지, 방법이 생각났어. 여기저기 살피다가 끈을 찾았다. 공사용 마대자루 아가리에 있는 끈이다. 김선생한테 라이터를 얻어서 끈을 두뼘쯤 잘라냈다. 끝을 녹여서 뾰족하게 만들고 그걸로 양말모가지께를 꿰었다. 그리고 신발뒤에 있는 고리에 묶었다. 이젠 됐다. 흘러내리지 않을게다.

난 꼭끼는 것이 싫어서 헐렁헐렁한 양말을 신는다. 사람은 발이 편해야 한다. 그래야 피도 잘 통하고 정신도 편안하다. 당뇨병있는 사람은 특히 발을 잘 모셔야 한다. 맨발이 제일 좋지만, 왜 그런지 맨발은 예의에 어긋난다고 생각들을 한다. 맨손은 괜찮고 맨발은 나쁘다? 이상한 일이다. 우리 어렸을 적에는 어른들도 맨발로 잘 다녔다고 기억한다. 공연히 서양사람들 예법을 들여와서 그렇게 된 거 아닌가? 서양사람들은 양말은 물론이고 신발벗는 것도 싫어한다.

어쩔 수 없이 양말을 신어야 한다면 할 수 없지. 헐렁한 양말을 신어야지. 그런데 이렇게 오르막길에서는 문제란 말이야... 더 잘 흘러내리거든. 10년내에 헐렁하면서도 흘러내리지 않는 양말을 만들어 내겠다. 사실 아이디어는 대충 되어있다. 언제 돈을 들이느냐가 문제일 뿐이지...

- 4 -
한창 대웅전 공사중인 석굴암을 아래에 두고 또 올라간다. 오늘은 바람이 불고 안개가 약간 있는 날씨다.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숨을 헥헥거리며 김선생을 따라 오르는 길이다. 두달만에 하는 등산이라서 그런가? 요 며칠 잠을 적게 자서 그런가? 아니면 이제 진짜로 맛이 가는 중인가? 등줄기에 땀이 흘러서 팬티까지 흥건할 지경이다. 하여튼 회룡능선에 올랐다. 좀 더 가니 큰 바위가 나온다.

아아~~ 시원하다.
시원한 바람과 탁트인 시야와 널찍한 바위.
한동안 머리카락으로 가슴으로 바람을 흘리다가 끄응 주저앉았다.
허리띠를 풀려고 만지작 대다가 그만 끊어져 버렸다.
허리띠 장식 이빨이 허리띠를 물어끊어버렸다.
이런이런... 요즘 배가 나와서 좀 꽉 묶고 다녔더니 그랬나?
바지가 흘러내릴 테니 허리띠를 빼고 다닐 수도 없고...
할 수 없지... 띠를 더 잡아당겨서 맬수 밖에...

- 5 -
사패산(賜牌山) 정상이다. 정상은 아주 너른 바위로 되어있고 남쪽으로 보이는 병풍같은 산들이 장관이다. 왼쪽으로부터 포대능선--자운봉--오봉능선--상장능선이 이어지고 그 뒤로 인수봉과 백운대는 보일듯말듯 하다.

사패산은 도봉산의 북쪽 끝자락에 있는 산이다. 북한산 국립공원안에서 제일 사람의 때가 덜 묻은 산으로 알려져 있다. 울창한 숲은 원시림에 가깝고 물가 큰 바위를 뒤덮은 두터운 이끼는 이곳이 얼마나 깨끗한 곳인가를 증명해주고 있단다. 얼마전까지 군사보호구역으로 묶여 일반인 출입이 제한되었던 덕분이란다.

키가 작고 잎사귀가 무성한 소나무 아래 자리를 잡았다. 허리를 곧추 세우면 머리가 소나무가지에 닿는다. 신문지를 깔고 먹을 것을 꺼낸다. 김선생에게 싸온밥을 반으로 잘라서 드렸다. 반찬은 간단하다. 깻잎장조림, 햄부침, 김치, 표고버섯기둥장조림, 계란 두알. 요즘 치과에 다니기 때문에 술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 오늘 옅은안개가 좋고 시원한 바람이 좋으니, 청하 한잔 좋겠다.

허리띠를 풀어제끼고 다리는 편하게 주욱 뻗치고,
밥 한 젓가락 먹고, 반찬 하나 집어넣고, 청하 한모금 꿀꺽.

앞으로는 병풍같은 산봉우리와 능선,
바위 저 아래로 펼쳐진 푸르른 숲,
산 병풍 바로 위에는 뾰죽뾰죽한 소나무 잎새.

뒤에서는 경상도 사나이 몇이서 얘기판을 벌인다.
50대 후반인 듯하고 국민학교 동창들인가보다.
< 내가 ㅇㅇㅇ선생님을(미인처녀 선생님인듯) 엄청 좋아했다는 거 아니가? >
< 그 선생님, 글씨를 아주 잘 쓰셨지, 지금도 답장편지를 가지고 있지...>
얼마전에 명퇴를 한 모양이다.
< 빨리 시작해야 돼... 돈 번다고 생각하지 말고 일을 한다고 생각해야 돼... >
< 얼마전에 들은 얘긴데... 며느리들이 제일 좋아하는 시아버지가 누군지 아나?
개인택시 운전사래. 술먹지 못하지, 서비스업이니까 친절하지, 그러니까 곱게 늙을 수 밖에.
나도 봐서 개인택시 해볼까 생각하고 있지...>

김선생은 한잠 주무시겠단다.
하긴 나이 60에 바삐 올라왔겠다, 술 한잔 걸쳤겠다, 곤하기도 하겠지.
난 그 30분 동안 다리를 제멋대로 뻗고 앉아서 건너편 산들만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이마를 소나무가지에 기대니까 훨씬 편하고 또 조금 졸립기도 했다.

- 6 -
생각해보기로 했었지만 사실 마음은 이미 결정된 상태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송추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을 찾는다. 지도를 안 가지고 왔으니 그냥 짐작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내려가는 길이 상당히 가파르다. 그나마 조금 가니 길이 없어진다. 가파른 바위가 끝이다. 이렇게 세군데를 다녔지만 길은 없다. 바위보다는 땅이 안전할 것이어서 그 쪽으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웬 낙엽이 이렇게 많은가. 미끄럽고 푹푹 빠진다. 낙엽이 무릎까지 올라오는 곳도 있다. 사람이 다닌 흔적이 없고, 나무는 빽빽하다. 모기도 있다. 그렇게 미끄러지고 헛발디디면서, 나무줄기에 의지하면서, 갈 방향을 가늠하면서, 엉금엉금 내려간다. 그러다 <숲속의 빈터>를 찾았다.

주위는 나무들이 들어찼는데, 거기는 비었다. 앉아서 잠시 쉬기로 한다. 이렇게 헤매는 건 불안하기도 하지만 재미도 있다. 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때문에 정신이 집중된다. 잡생각이 안난다. 김선생도 나처럼 무엇을 하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는 분이다. 그래서 같이 말하기가 좋다.

< 당신은 왜 좋은 길 놔두고 길이아닌 길로만 갈려구 그래? >
아이들과 함께 등산을 갈 때(10년쯤 전), 나는 길이 아닌 길로 가는 경우가 꽤 있었는데(그래야 더 재밌으니까) 그때마다 집사람이 내게 하던 말이다. 사실 그건 등산에만 국한되는 말은 아니다. 발명을 한다고 책을 쓴다고 이리저리 헤매기를 밥먹듯이 했으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난 한우물을 판다고 열심히 노력했는데 사람들이 <쓰잘데 없는 짓>을 한다고 했었지. 어쨌든, 오늘 이곳 사패산에서 다시 헤매게 되었다. 그리고 역시 즐겁다.

한참을 헤매다가 오솔길을 발견했다. 사람이 다니지 않아서 풀과 나무가지들이 오솔길을 침범했다. 손으로 머리로 이리저리 헤치며 내려간다. 한 시간이 걸려서 계곡에 도착했다.

계곡은 말라있었지만 가다보니 물이 조금씩 흐르는 곳이 있어서 거기 앉았다. 세수할 곳을 만들었다. 모래와 돌멩이를 퍼내고 물을 흘려내보내서 깨끗하게 한 다음, 출구를 막으면 된다. 세수를 하고 오이를 씹으면서 청하 남은 것을 마셨다. 아까 산에 오를 때부터 느끼던 것이지만, 나무가 상당히 울창하다. 이쪽 계곡쪽으로는 소나무는 거의 안보이고 거의 활엽수다. 참나무종류가 많다. 내려오면서는 한 사람도 마주치지 않았다. 이렇게 울창한 숲속 오솔길을 호젓하게 걸으니 기분이 점점 더 좋아진다.

젊은 여자 둘하고 여자아이 하나 그리고 예쁘게 치장한 푸들강아지 한마리를 마주 쳤다. 좀 더 내려가니 넓은 계곡 가에 젊은 여자 둘이 누워있다. 푸들 강아지와 일행이란다. 10년전부터 여기에 다니는 친구를 따라왔단다. 물어보니 여긴 송추계곡이 아니란다. 계곡 양쪽이 물에 많이 소실되었다. 길도 가다가 끊어지곤 한다.

- 7 -
가다가 계곡바닥에서 아주 너른 바위를 만났다. 50평은 족히 되어보인다. 거기서 한참을 쉬었다. 무슨 소리가 들린다. 바람소리다. 계곡에 있는 나무는 잠잠하고 조용한데 저 산위에 나무들은 푸르르 떨고 솨아 소리를 낸다. 내 뒤 어느 풀끝이 하얀고깔인가 했더니 너풀너풀 계곡을 건너서 수풀로 사라진다. 내가 나비를 본게 언제였나?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계곡상류쪽으로 큰 상만한 바위가 있는데 그 뒤쪽위로 갑자기 콩새가 올라앉는다. 고개를 몇번 갸우뚱거리더니 계곡아래쪽으로 낮게 날아간다. 이상한 일이다. 여지껏 한시간을 내려와도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한꺼번에 나타나다니... 우리를 마중하러 온 것인가? 그런데 한 5분 지났을까... 잠자리 한마리가 높이 날아서 계곡아래로 내려간다. 이게 무슨 조화람......

사패산을 즐거이 헤매었다. 하긴 이제껏 내 생활이 그러했다. 틀에 얽매이기 싫어하고 제멋대로 놀기를 좋아했다. 부모님말씀 선생님말씀을 잘듣는 모범생이지만, 속으로는 아주 못된 <꾸러기>가 들어있었나보다.
이젠 다시 중심을 잡아야하나 ? 너무 늦지 않았을까 ? 아니야... 그동안 한 실패가, 그 경험이 나를 도와줄거야. 나비도 콩새도 잠자리도 축하행진을 해주었지 않아?

이제 가자. 가다가 빈대떡하고 동동주 한사발 해야지...
가는 길에 벚나무에서 버찌를 좀 따먹었다.
그리고 한움큼은 비닐봉지에 담았다.
집사람 갖다주어야지...


작은큰통.2002.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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