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가을여행

참으로 오랜만의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인적 없는 해인사 암자로 오르는 숲길을 걸으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진작에는 아무생각도 없었는지도 모릅니다.

하늘은 슬프도록 푸르고 구름은 걱정 한점없이 평화롭게 떠가고
바람은 또 그렇게 새소리와 함께 가을을 나르고 있었습니다.

암자 밑 고냉지 채소밭의 무우랑 김장배추는
스님들의 그 청정한 몸과 마음만치도 싱싱하고 깨끗하게
겨울을 준비하고 이따금 딱! 딱! 떨어져 내리는
도토리 열매의 작은 소리에도 화들짝 놀라는 저의 죄 많은 심장에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보현암 금강굴 널따란 법당에는 향내마저 바람에 씻기어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텅빔으로..... 화려한 금빛
비로자나 부처님은 저의 외로운 영혼을 아시는 듯 모르시는 듯
삼매경의 평안함으로 그냥 계시더이다.
법당에 혼자 30분을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삼선암 선방에서 공부하는 비구니스님들의 회색빛 장삼과
그 해맑은 얼굴빛을 먼발치에서 보면서
참으로 좋으시구나!! 해서 많이도 부럽기도 했습니다.
인연의 끈을 과감히 끊고 출가할 수 있었음에....

숲속길 여기저기에는 이름 모를 풀벌레와
마지막 꽃을 피우는 들꽃들의 향연으로
가을빛은 더욱더 찬란하게 빛나고
먼 암자에서 들려오는 목탁소리의
그 단조로우면서도 감미로운 소리는 흐르는
계곡물 소리와 함께 평안과 평온과 깨끗함을 노래하더이다.

해인사 구비를 감고 흐르는 계곡 물은
쉴새없이 지저귀는 새소리와 송사리 떼 같은 작은 물고기들을
어울리면서 어디서 와서 어디로 굽이쳐 흘러가는지
그렇게 마냥 흐르고 있었습니다.

내 마음의 어지러운 생각과 내 더러운 영혼의 찌꺼기도
그 맑은 물살에 묻혀 씻겨져 내리면 좋으련만............
마냥 그러고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에 밀짚모자를 쓴 너무나 해맑은 비구니스님이
제 곁에 다가와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인삼을 다린 차 한잔을 조그만 보온병에서
따라서 전하는 겁니다.
그 뜨거운 차 한잔과 함께 스님이 저에게 들려주신
20 여분간의 법문은
제 서러운 이번 가을여행의 해답이 되어 왔습니다.

인연은 끊고자 해서 끊어지는 것이 아니다.
인연의 연이 끝나야 자연히 사라지는 것.....
그것은 우리의 인간의 의지나 힘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닌 것....
주어라~~~~~ 무엇이든지 끊임없이 줄 수 있을 때까지 주어라....
연이 다하면 아무리 붙잡으려 해도 떠나갈 것이니.....
그 스님은 선방으로만 다니면서 참선을 하신다는 先炅스님이였습니다.

스님이 참선 후 보행시간에 산길을 내려가면서
본 모습이나 다시 올라오실 때 모습그대로 혼자 앉아있는 저를 보면서
참으로 고민이 많은 보살이구나 생각하여
옆으로 와서 얼굴을 보니 전혀 고민 있는 얼굴이 아닌
맑고 밝은 얼굴 이여서 차나 한잔 권하고 가려다...........

허나 저는 선경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하느님은 또 다른 이런 모습으로 저를 사랑하시는구나
그리고 나를 이렇게 타일러 주시려는 구나
막연하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스님과 헤어져 한없이 계곡을 따라서 걸었습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올라오고 더러는
떨어져 내리는 도토리 열매를 줍고 있었습니다.

정말 내려오기 싫었습니다.
그냥 한없이 가을 속에 묻혀있고 싶었습니다
아니 그냥 그 속에서 침잠해 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발걸음은 어쩔 수 없는 세상사의 인연을 찾아서
내려오는 길을 접어들어야 했으며
나의 슬픈 가을여행도 메말라 가는 구절초의
몇 송이 남지 않은 보랏빛 꽃송이의 애절한 빛 바램으로
쓰러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나의 슬픈 가을여행은
또다시 일상으로의 회귀였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당신의 따뜻한 영혼의 위로와
先炅스님의 법문은 내 가슴의 또 다른 의미로
슬픈 가운데에서도 행복하게 떠오를 수 있는
소중한 가을여행의 진실이었습니다.

남쪽의 낭만의 가을여행이었습니다. (2001.9.28)






대흥사 다산초당



봄비가 대지를 적신다. 남풍이 불어 먼 산과 들에 새 생명들이 꿈틀댄다.
개울가의 버드나무는 벌써 파릇한 새싹이 터지기 시작한다.
매년 바라보는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봄이면 늘 새롭다.
겨우내 눈 밑에서 꿈꾸던 생명들이 이제 기지개를 켜고 있다.
탄생은 아우성으로 시작한다. 제 혼을 덮고 있던 껍질을 깨고 터져 나오는
생명들은 가냘프지만 힘찬 울음으로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꽃, 풀, 벌레들이 껍질을 깨는 아픔의 소리가 산과 들에 울려 퍼진다.
'사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어느 시인은 노래했다. 정말 잔인한 계절이 봄이다.
화사한 아름다움에는 죽음과 멸망의 약속이 내포되어 있다.
한 시절을 풍미하고 다시 사라져야 하는 운명이 거기 있다.

한 포기 풀, 한 송이 꽃, 한 마리의 벌레에게도 자신이 가야할 운명이 있다.
스스로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운명, 그렇기에 태어나는 생명들은 아름답지만 아프다.
꽃과 풀들은 한 철을 살고 나면 다시 아름다움을 거두어야 하고,
벌레들은 나뭇잎을 갉아먹거나 다른 생명들을 잡아먹어야 한다.
그것은 자신의 의지로 바꿀 수 없는 운명이다.

이 운명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인간들도 화사한 봄의 교향악을 즐기고 있지만,
저마다의 가슴에는 또 다른 한을 안고 있다. 인간은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서 태어난 것은 아니며,
삶 자체는 아름다울 수도 있지만, 가슴 깊은 곳에는 어쩔 수 없는 한을 안고 있다.
다른 생명들을 취해야만 살아 갈 수 있는 인간은 '한'을 숙명처럼 안고 있다.

산사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세상에 내 던지는 화두 중에 '무소유'라는 말이 있다.

나는 젊은 시절 그 '무소유'에 심취하여 참으로 좋은 말이며, 인간이라면 이것을
실천해 봄직 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절에 가서 기도도 해보고 스님에게서
연비도 받았다. 내 팔뚝의 연비 자국은 내 마음이 지나온 고뇌의 흔적이다.

스님과 대담을 하는 중에 내 취미가 붕어 낚시라고 말하니, 살생을 하면 업을 쌓으니
낚시를 하지 말라고 준엄하게 꾸짖었다. 낚아서 아침에 다시 놓아주고 온다고 해도 안 된다고 한다.
한참을 이야기 중에 내가 물었다. 그러면 에스키모 나 저 북쪽 지방의 툰트라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짐승을 잡지 않으면 굶어 죽는데 그들은 그럼 어찌 되는 것이냐고 물었다.
스님의 말이 '먹고살기 위해서(생계를 위해서) 하는 살생은 어쩔 수 없고 괜찮다'고 했다.

그 날 밤,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생계를 위해서는 살생이 허용되고 취미를
위해서는 업이 된다? 그것이 무슨 근거에 의해서 정당화 될 수 있는지 의아해 하며,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잡혀 죽는 생명들이 인간들의 생계를 위해서는 아깝지 않고,
오락을 위해서는 아깝다는 말인가? 죽는 쪽에서 보면 이러나 저러나 억울한 것은
똑 같을 텐데... 모두다 인간의 잣대에서 만들어 낸, 주관적인 인간 편의주의가 아닌가 생각한다.

진리는 한가지 일 텐데, 이렇듯 상대적으로 생명의 가치가 변한다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는 다시 낚시 대를 잡았다. 살생유택을 생각하면서
낚시 가방을 꾸렸다.

세월이 흘러 그 스님도 잊어버리고 세상에 묻혀서 살고 있다. 요즈음 다시
그 '무소유'라는 말에 대해서 그 진의를 깨닫지 못해 사색에 잠겨 있다. 사람들은
관념적인 말을 좋아한다. 가슴을 뭔가 푸근히 적셔주는 것 같기도 하고, 어떤 관념어
글에서는 알 수 없는 향기로운 안개가 피어오른다. 그 안개에 싸여 자신이 그 관념어를
성취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다만, 아직 자신이 수양이 덜 됐거나, 마음을 비우지
못했기 때문에 잠시 보류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언젠가는 성취할 것으로 다짐하기도 한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대개 선하다).
그러나 그러한 관념어는 죽을 때까지도 이룰 수 없는 것임을 우리는 잘 모르고 있다.

'무소유'라는 말은 관념어이다. 뜻 그대로 풀이하자면, 아무것도 가지지 않음을 뜻한다.
마음도 비우고 가진 게 없는 완전히 비운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무소유의
참뜻을 모르고 하는 무지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말과 글이란 단순하고
그 뜻이 명료해야 한다. 무소유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세상의 모든 생명들은 태어남과 동시에 소유할 권리를 가진다.
적든 많든 자신의 육체를 보존할 물질들을 소유하도록 자연은 생명들에게 부여해 주었다.
진실로 살기 위해서는 소유해야만 한다. 자연의 먹이 사슬은 곧 소유의 차원에서
이해 할 수도 있겠다. '백수의 왕' 사자는 무소유와 소유 중에 어느 쪽일까.
한 마리 사자가 영양 한 마리를 잡아 메어 두고 있지 않다고 해서 무소유라고 할 수 있을까.
언제 어디서고 배가 고프면 잡아먹을 수 있다는 것은 곧 소유와 상통하는 것이 아닐까.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소유와 무소유는 인간만을 위한 명제인가. 먹이 사슬의 최정상에는
인간이 있다. 무소유는 먹이 사슬의 하부 구조가 없는 상태를 뜻한다면, 우리는 무소유를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라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이 자연계의 어떠한 생명체도 먹이 사슬의 구조에서 벗어 날 수 없다는 것이며,
하부의 것을 취하는 순간, 그것은 소유가 되기 때문이다.

무소유라는 화두를 내 던지는 스님들은 그들의 생이 그러한 것을 추구하도록 스스로
길을 선택했다. 산사의 일주문을 들어서는 순간, 그들은 세상의 살아가는 모든 인연과
법칙으로부터 해방되어 정신적인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때부터 혼자이다.
그들에게는 무소유가 하나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닐지라도 그 목표(해탈)에 이르는
한 방편일 수도 있다. 즉, 그들의 목표는 해탈이다.
그러나, 그들도 어떤 때는 무소유를 갈파하여 소유를 지향하는 우를 범하는 것을 가끔 본다.
우리들이 자주 가는 대 사찰이 무소유를 실천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거기에는 넉넉한 소유로 재화가 넘친다.
햇살이 따사로운 선방에 앉아 한 잔의 녹차를 음미하며 산새소리와 바람소리, 물소리를 들으며,
세속의 인간들을 바라본다. 불쌍한 중생들은 그것을 부러워하며, 무소유를 되뇌인다.
실로 세속에 사는 중생들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재화를 주고받으며, 삶에 고통받는 인간들을 보고, 마음을 비우고 욕심을 버리고
'무소유'를 실천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행복해 지리라고 한다. 정말 말 그대로 내 것 다 버리고
식구들과 행복해 질 수 있을까? 모든 사람들이 다 무소유를 실천한다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모두가 소유를 향하고 있다. 지구상의 거의 전 인류가 소유를 지향하고 있다.

산사의 곡간은 항상 그득 채워져 있으며, 그들이 마시는 녹차는 엄청 비싼 것이다.
100g 짜리 한 통 값이 거의 쌀 20kg 한 부대와 맞먹는 가격이다. 기차역이나 지하철역에서
노숙을 하는 사람들이 이 말을 들으면 '무소유'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겠는가?
위장을 비워 둔 채로 수행을 할 수는 없다. 수행하려면 기운을 차려야 한다. 다만,
아주 적게 먹는다. 그리고 농사지은 사람을 생각해서 깨끗이 먹는다. 그러나 먹는다는
그 자체는 우리와 다를 게 없다. 곡간에 먹을 것을 소유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다.
곡간의 먹거리들은 소유이다. 속세에는 스님들이 먹는 것보다 더 적게 먹으며 주린 배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 중에는 자신의 삶을 선행으로 살아온 사람도 많다
도둑질하지 않고 남의 아픔을 보고 도움을 마다하지 않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누더기를 걸치고 배고픔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 심각하게 자문한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불행을 당해야 하는가?

스스로를 못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 불행한 사람들에게 무소유론은 어떤 답을 줄 수 있는가?
그들을 배고프지만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도록 무소유론으로 가능한가?

속세에 살고 있는 우리는 자연이 우리에게 부여한 고생을 하며 살기로 작정을 했다.
자손을 잇기 위해 결혼을 하고 낳은 자식들을 키우고 가르치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재화란 그리 쉽게 벌리지 않는다. 갖은 고생을 하며, 마음에도 없는 언행으로 후회를
하면서도 내일이면, 돈을 벌어야 한다. 그 삶이 아프다고 해서 처자식을 내 팽개치고
혼자 산사로 들어가 인연을 끊을 수는 없다. 우리 인류가 전부가 서로의 인연을 끊고
산사에 들어가 수행을 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무소유) 세상을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것은 처음부터 성립될 수 없는 하나의 관념어일 뿐이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도
마음 편히 식구들을 먹여 살리고 자신도 행복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정말이지
극락이며 천당일 것이다.
극락과 천당은 죽어서야 갈 수 있는 곳이며, 우리는 현재 숨쉬고 있다

이 세상에서 거지가 행복하다는 말은 못 들었다. 다만 조금 가진 것에 만족하면
그것이 행복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정말 행복일 것이다. 행복이라는 것은 마음의 느낌이니까.
속세에 사는 중생들에게는 중생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무소유가 아니고, 소유이다. 다만 소유함에 있어 정도를 걷는 것이 필요할 뿐이다.
순진한 어린아이가 어머니 젖을 탐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며, 동생이 태어나서 동생에
대해서 잠시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도 다 자연스런 일이다. 위장을 가진 인간이나 동물이나
심지어 나무와 풀과 꽃들도 필요한 물질들을 자신의 몸 속으로 받아 들여야 생명을
부지 할 수가 있다. 받아들이려고 하는 욕구, 그것이 욕심이며 또한 삶에 대한 의지이다.
자라면서 자신과 남을 위해 재화를 얻으려는 것은 당연하며,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한 수단이다.

즉, 속세에 사는 사람들의 목표는 '행복한 삶'이다. 가진 것을 남에게 나누어주는 것은
행복의 첫걸음이라고 한다. 아무 보상을 바라지 않고 주는 것은 정말 아름답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소유하고 있어야 가능하다. 혹자는 마음으로라도 도와 주는 것도
아름답다고 한다. 물론 헐뜯는 것보다는 아름답고 좋은 일이다. 그러나 진짜 어려운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구두선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스님들의 목표는 차원 높은 '해탈'이며, 속세인의 목표는 '행복한 삶'이다.
이 양자의 목표가 다르다. 해탈을 성취하는 데는 무소유가 필수이지만, 행복한 삶을 얻는 데는
소유가 필수이다.
누군가가 '부자라고 다 행복하고, 가난뱅이라고 다 불행한 것은 아니지' 라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부자이기 때문에 불행하지 않을 수 있고, 가난하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로 대신 할 수 있다. 그것은 행복론이라는 별개의 문제이다. 같은 마음이면
재물이 많은 것이 좋지 않겠는가? 물에 빠져 죽어 가는 사람을 보고, 밧줄 던져줄
생각은 하지 않고, 무소유를 외친다면 말이 되겠는가. 밧줄은 재화이며 곧 소유이다.
그때 밧줄이 없으면 무소유이며 구두선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눈에 보이는 사물은 다 공한 것이고, 공한 것은 다 눈에 보이는 것이다.
그러면 공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불공이다. 불공은 공하지 않는 것이다.
공하지 않다는 말은 텅 빈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반야심경은
이 불공처가 부처가 머무는 곳이며, 보살과 여래가 본래부터 앉을 곳이라고 한다.
공하지 않고 뭔가가 있는 불공처는 이 세상이다. 우주이며 우리의 지구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본래 부처이며 보살이며, 여래이다.
다만 먹어야 살 수 있는 부처들이다. 부처가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곳은 이 세상이 아니다.
그 곳에 가려면 선행을 하며 때를 기다리거나, 아니면 스스로 삶의 의지를 기각하면 이루어질지,
그것은 알 수 없다.

눈물 젖은 빵도 겨우 먹는 사람에게 무소유를 갈파하여 그 사람이 수긍을 하고
실천 할 수 있다면 나도 무소유를 행해 보고 싶다.
그러나 오랜 세월 새겨가며 생각해 왔지만, 그게 가능할 것 같지가 않다.
이 세상의 사람들이 다 본래 선하므로 나도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노력하며 열심히 살아 갈 뿐이다.
봄비가 대지를 적시는 날, 녹차 향을 즐기며 무소유를 생각한다.


부석사







부석사의 4월


천년을 타오르고도
다 타오르지 못한 절집 처마 밑
한 귀퉁이에 살고 있는 상사화
소리도 없이 흘린 눈물 한 방울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눈물만큼 뜨거운 마음 자락을 놓지 못해
무량수전 부처 손끝에 필 우담바라보다
더 먼저 전생을 살고
다 못한 인연을 못내 그리워 하기 위해
제 가슴에 못을 박고 있는
앙상한 가지 하나

제 모태였던 지팡이 보다도 더 야위어
눈녹는 소리로 제 살을 저며 잎눈을 틔우는
살빛만이 이슬도 내리지 않는 맨 땅에
젖은 몸으로 누워 있다
미륵불처럼



계수나무





Daum cafe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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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은

타의적인 우연이다.

무신론적인 사람들은 운명이라고 말하고

종교의 믿음을 가진 나는 은총이라고 말한다.


어렸을적 우리가정의 주연은 조부님이시었고

나는 귀여운 조연이었다.

손에서 놓치면 깨질까,다칠까,

어른들의 사랑속에서 관심의 대상이었다.

사랑을 받기만 하는 유리곽속의 인형처럼,,,



조부님이 타계하시고 우리가정의 주연은

부모님들을 중심으로 모든 중심점이 잡혀갔다.

청년기가 되어 주연으로서의 나의 연습도 시작되었다.

책임과 의무에 대하여 실습이 반복되고,,,



결혼을 하고 사회에의 일선에서

깃발을 흔드는 선봉에서

책임과 의무를 두 어깨에 지고

있는 힘을 다하여 주연의 길을 달렸다.

모든 일의 선택과 결과의 賞과罰을 체득하면서

때론 힘들고

때론 행복속에서,,,



언제부터인가

아이들이 성장하고

가정은 아이들의 싸이클에 맞추어 돌어가고

첨단 지식을 습득한 후배들이 앞장서서

직장<천직으로 생각하는>의 선봉에서서

나보다 더 지혜롭고

나보다 더 이지적이며

나보다 더 합리적인 그들을 볼 때

그들처럼 행동할 수 없음은,,,



이제 지천명의 타이가

주름진 목을 더욱 깊게 파고들고

몇 달 전 친선 체육대회에서,

운동장에서 밀려나 스탠드에서

음료수나 마셔야하든 시각들,,,



이제 나는 느낀다.

주연은 끝났다.



그러나 내가 진정한 끝을 모르는

이 나의 연속극에서는

이 건강한 하루가

아픈이들의 희망의 하루임을 생각하면서

소중한 하루 하루를 보내야 하겠다.



나에게 다가온 현실을 겸허하게 수긍하며,,,





(2002.8.9. 한뫼님이 쓴 글)





빗소리 그치니 매미가 먼저 안다
귓전을 울리는 여름소리 들.

나를 유쾌하게 하는 소리 들이다

앞도 안보이던 어제는 간곳 없고
푸른창공은 새로움으로 다가온다

빛이 오면 어둠은 사라진다

언제부터인가 믿음은 적은 나이지만
마음속에 뿌리내린 한귀절.

그래

빛이 오면 어둠은 사라진다.
평범한 내용을 왜 몰랐던가.

난 나를 유쾌하지 않게하는
여러가지에 정면으로 도전하기로 했다.

우선 녹색 십자가 선명한 병원으로
향하는 일을 자신있게 행하기로 했다.

내게 아픔을 주는 일을 늘 겸손하라는
가르침(?)으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다.

늘 아프니 기분 나쁘고 아는 이들을
만나는 일을 기피하게 되었으니
의사선생님께 하소연을 하여서라도
이 아픔이 호전되게 해야 하는게 내 일이다.

우선 씩씩하게 정형외과를 두드려본다.

오십견이란다.

세상에.....
내나이 50이 돼가는거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니...

물리치료실...
누워서 곰곰 생각하니 참 오랫동안 나를 ,
아니 나의몸을 사랑하지 않은것 같다.

그렇다고 가정을 위해 뼈품팔고
목숨바쳐 살아온건 아닌데
아프다고 누워 있으려니 괜시리 미안스럽기도 하다.

그래도 얼른 나아야지...

살아온 흔적들
그리고 살아가야할 많은 미래.

오늘은 그래도 망설임 없이
병원 문을 들어선 일을 참말로 잘했구나..
라고 나를 칭찬해 본다.







**물푸러 가는길**












빗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두 그루가 있었는데 대문께 한 그루는 죽고

어린 묘목(5000원/15년전)내 손으로 사다 심어 기른 거라.. 애착에

거름을 많이 해 줬더니..한 그루(下)그럭저럭 사네여...





우리집.....불쌍한 똘똘이~~ 비에 드러진.. 상사화 신세나..네 신세나...





저도 어케 찍었는지 몰라염... 장님 문고리 잡은 격 ㅎ~/그럴듯해 보이져?









비비추가 빗속에 그래도 곱게 피었네...



보라빛을 보니 엄마 생각난다... 우리엄마가 유난히도 좋아하던 빛깔...



내가 좋아하는 수국은 유난히도 붉더니만... 이젠..퇴조하고,



☞ 산울림 - 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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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은 세 잎 클로버







오랫만에
부서지는 햇살을 주우려고
나의 경쾌차 덴뽈에 올랐다.

아파트를 뱅뱅 도는 건
내 머리까지 뱅뱅 도는 것 같아
건너편 개구리의 마을로
핸들을 돌렸다.

물 댄 논에
살랑살랑 물무늬가 춤을 추고
겨우내 논에 묶였던 벼의 발목은
바람결에 누운 채로
고호의 자화상을 그려낼 듯
논 끝에서 촘촘이 모여 있었다.

군데군데 웅덩이에 고인 벌건 황토물이
하얀 내 경쾌차에 얼룩을 그렸고
내 눈에 그려지는 건
비온 뒤 논두렁에 더욱더 새파래진
들꽃들의 선명한 자태였다.

잎이 어찌나 크던지
클로버가 아닌 줄 알았다.
난 쪼그려 앉아 행운의 네 잎을 찾았다.
이쪽에도..
저쪽에도..
여기에도..
저기에도..
행운의 네 잎은 없었다.

그럼 그렇지
내게 행운이 그렇게 쉽게 올 수 있겠어?
아니야 네 잎은 기형이고
기형이 없는 크로바는
자연에게는 행운이지 ....

아파트에서 멀어지는 농로를 택해
끝까지 가볼 작정이었다.

몸뻬바지에 분홍 수건을 쓰신 할머니,
밀짚모자에 긴 장화를 신으신 할아버지,
노란 장화를 신고 쫄랑쫄랑 따라 다니는 사내아이,
그 아일 따라 다니는 누렁이......

지나칠 때마다 고개를 숙였다.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핸드폰을 목에 걸어서?
몸빼바질 입지 않아서?
아마 내가 그들을 구경하고 있다는
스스로의 생각일 거다.

폭폭폭폭 까만 연기를 품어 내며
물 속에서 오가며 흙을 뒤엎는
농기구 이름이 궁금했다.

농기계가 일함에도 불구하고
옆 논에서 손으로 연신 진흙을 퍼내어
논두렁에 올려 놓으시는
할머니?
아줌마?
뭐라고 불러야 하지?

"어머님....저쪽에 저 농기구 이름이 뭐예여?"

"트락타!"
"트 락 타!" 라고 하시며
빙그레 웃으신다.
"왜? 농사짓게?" 라며 되물으신다.

그저 고개를 숙여 미소만 지었다.
"트랙타" 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얼마나 또렷하게 말씀해 주셨던가
트락타! 라고.....

페달을 힘차게 구르다
두 다리를 밖으로 뻗어도 보고
자전거에서 내려
덜덜덜 끌고 걸어도 보면서.....

방 구석에서
들이 쉬고 내 뱉던 한숨이 아닌
긴 호흡을 하며
풀냄새를 마시고,
흙냄새 물냄새를 흠뻑 들이마셨다.

멀찍이서
오래 전에 아버지가 타셨던 것 같은
까만 자전거가 다가왔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그분의 뒷모습을 보았다.

타이어 바퀴로 가늘게 잘라 만든
까만 고무 끈 속에
물이 뚝뚝 떨어지는
곱게 씻은 녹슨 삽이 있었다.

농부의 자전거에서
삶의 아름다움이
농로 위에 뚝뚝뚝 떨어지며
어린시절의
향수어린 풍경을
농로에 그리며 멀어져 갔다.



2002. 5. 10 - 그리고의 경쾌차 여행기 1 -



















생각나는 할아버지


직장 근처로 이사 온 후에는
출퇴근시간이 짧아서인지 퇴근 때는 다른 길로 멀리 돌아가기도 한다.
더욱이 가끔씩은 생각도 하면서 천천히 걷기 때문에
10분 거리가 20분 넘게 걸리기도 한다.
나름대로 퇴근의 편안함도 느끼고
그나마 쫓기듯 사는 日常에서 마음의 여유를 찾는 나만의 방법이기도 하다.

며칠 전 임대 주공아파트 쪽으로 퇴근하는 길이었다.

작은 평수이고 임대 아파트라 그런지
그 곳 놀이터에는 아이들은 없고 할아버지 할머니들만 모여 있었다.
옆을 지나가는데 할아버지들의 얘기가 들렸다.
"담배 있어? 하나 줘. 없어!" 뭐 그런 얘기였다.
그냥 지나쳐 가다 마음이 걸린
나는 다시 돌아가 그 옆의 슈퍼에서 담배 한 보루를 사드렸다.
할아버지들이 처음에는 어리둥절하시더니 나누어 가지시면서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그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할아버지 한 분이 생각났다.
일산에 이사오기 전 인천에서의 일이다.

운동신경이 둔한 내가 그나마 할 줄 아는 것은 수영이었고,
토요일은 퇴근 후 오후 3시쯤에 수영장에 가곤 했다. 가는 길목에는 2동만 있는 5층의 허름한 아파트가 있었고,
그 아파트 정문 수위실 문턱에는 늙고 초라한 할아버지 한 분이 늘 앉아 있었다.
7∼80여세쯤 되어 보였다.
그런데 수영을 끝마치고 오는 시간은
3시간이 지났을 터인데도 그 자리에 꼼짝도 안하고 앉아 계시는 것이었다.
"아니? 이 무더위에 오랫동안 뙤약볕에?" 그 모습이 무척 마음에 걸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은 무척이나 더웠고 수영장 가는 길에서
수위실 문턱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그 할아버지를 또 보았다.
너무나 늙고 초췌한 모습이었다.
곧 돌아가실 것만 같았다.
옆으로 지나가는데도 지린내가 났다.
왠지 모르지만 내가 속상했다.
수영을 끝마치고 오는 그때까지도 그 자리에 앉아 계시는 것이었다.
마음이 여린 나는 일부러 다른 곳을 보며 지나갔다. 마음이 걸렸고 그런 내가 너무나 비겁하게 느껴졌다. 나는 오던 길을 되돌려 할아버지에게 갔고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 이 더운데 왜 나와 있어?"
(죄송하지만 나이든 할아버지에게는 큰소리로 약간 반말로 짧게 해야 더 잘아 듣는다)
지린내 냄새가 확 풍긴다.
"누구여?" 할아버지는 내 손부터 잡는다.
"왜 나와 있냐구요?"
"며느리가 나가 있으래"
"매일?"
"그려"
"그럼 언제 들어가?"
"저녁밥 먹을 때 불러"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아침 먹고 나와서는 그 자리에 있다가 저녁때나 되어야 들어간다.
왈칵 분노와 함께 눈물이 났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래서인지 잘 걷지 못한다.
"뭐 먹고 싶어?"
"담배"
"몸에 안 좋아"
"아녀... 난 꽁초 주어 펴"
나는 또 감정이 확 복받쳤다.
슈퍼에서 담배 한 보루 사서 드렸다.

그 뒤로 나는 할아버지와 친해졌다.
아니 자세히 말하면 나 혼자 친한 것이다.
할아버지는 날 모른다.
다음에 만나 "할아버지!" 하면....
그때마다 "누구여? 난 몰러" 하신다.
'아니? 그럴 수가? 만날 때마다 담배 사 드렸는데....'
약간 섭섭한 생각이 들어
"나? 담배 사준 사람! 그래도 기억 안나요?" 하면...
할아버지는 고개를 그냥 끄떡이며 "응....몰러. 난 잘 몰러" 하신다.

약 3년 동안 만날 때마다
담배 한 보루씩 사드렸으니 많이 사드렸음에도 날 몰라본다.
할아버지에게는 치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덕분인지 나는 그 동네 다른 할아버지에게는 인기(?)가 많이 있었다.

문득 그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마 돌아가셨을 것이다.
인생이 뭔지.....
속절없이 가을은 또 가고.......
내가 좋아하는 시 <나그네>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 누가 오래서 온 것도 아닌 목숨
살고 싶어서 사는 것도 아니면서......」
잠깐인 세상에서...
가진 것은 없지만 그래도 있는 것 다 털어서 인심이나 쓰고 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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