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는 할아버지
직장 근처로 이사 온 후에는
출퇴근시간이 짧아서인지 퇴근 때는 다른 길로 멀리 돌아가기도 한다.
더욱이 가끔씩은 생각도 하면서 천천히 걷기 때문에
10분 거리가 20분 넘게 걸리기도 한다.
나름대로 퇴근의 편안함도 느끼고
그나마 쫓기듯 사는 日常에서 마음의 여유를 찾는 나만의 방법이기도 하다.
며칠 전 임대 주공아파트 쪽으로 퇴근하는 길이었다.
작은 평수이고 임대 아파트라 그런지
그 곳 놀이터에는 아이들은 없고 할아버지 할머니들만 모여 있었다.
옆을 지나가는데 할아버지들의 얘기가 들렸다.
"담배 있어? 하나 줘. 없어!" 뭐 그런 얘기였다.
그냥 지나쳐 가다 마음이 걸린
나는 다시 돌아가 그 옆의 슈퍼에서 담배 한 보루를 사드렸다.
할아버지들이 처음에는 어리둥절하시더니 나누어 가지시면서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그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문득 할아버지 한 분이 생각났다.
일산에 이사오기 전 인천에서의 일이다.
운동신경이 둔한 내가 그나마 할 줄 아는 것은 수영이었고,
토요일은 퇴근 후 오후 3시쯤에 수영장에 가곤 했다. 가는 길목에는 2동만 있는 5층의 허름한 아파트가 있었고,
그 아파트 정문 수위실 문턱에는 늙고 초라한 할아버지 한 분이 늘 앉아 있었다.
7∼80여세쯤 되어 보였다.
그런데 수영을 끝마치고 오는 시간은
3시간이 지났을 터인데도 그 자리에 꼼짝도 안하고 앉아 계시는 것이었다.
"아니? 이 무더위에 오랫동안 뙤약볕에?" 그 모습이 무척 마음에 걸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은 무척이나 더웠고 수영장 가는 길에서
수위실 문턱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그 할아버지를 또 보았다.
너무나 늙고 초췌한 모습이었다.
곧 돌아가실 것만 같았다.
옆으로 지나가는데도 지린내가 났다.
왠지 모르지만 내가 속상했다.
수영을 끝마치고 오는 그때까지도 그 자리에 앉아 계시는 것이었다.
마음이 여린 나는 일부러 다른 곳을 보며 지나갔다. 마음이 걸렸고 그런 내가 너무나 비겁하게 느껴졌다. 나는 오던 길을 되돌려 할아버지에게 갔고 말을 걸었다.
"할아버지 이 더운데 왜 나와 있어?"
(죄송하지만 나이든 할아버지에게는 큰소리로 약간 반말로 짧게 해야 더 잘아 듣는다)
지린내 냄새가 확 풍긴다.
"누구여?" 할아버지는 내 손부터 잡는다.
"왜 나와 있냐구요?"
"며느리가 나가 있으래"
"매일?"
"그려"
"그럼 언제 들어가?"
"저녁밥 먹을 때 불러"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아침 먹고 나와서는 그 자리에 있다가 저녁때나 되어야 들어간다.
왈칵 분노와 함께 눈물이 났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래서인지 잘 걷지 못한다.
"뭐 먹고 싶어?"
"담배"
"몸에 안 좋아"
"아녀... 난 꽁초 주어 펴"
나는 또 감정이 확 복받쳤다.
슈퍼에서 담배 한 보루 사서 드렸다.
그 뒤로 나는 할아버지와 친해졌다.
아니 자세히 말하면 나 혼자 친한 것이다.
할아버지는 날 모른다.
다음에 만나 "할아버지!" 하면....
그때마다 "누구여? 난 몰러" 하신다.
'아니? 그럴 수가? 만날 때마다 담배 사 드렸는데....'
약간 섭섭한 생각이 들어
"나? 담배 사준 사람! 그래도 기억 안나요?" 하면...
할아버지는 고개를 그냥 끄떡이며 "응....몰러. 난 잘 몰러" 하신다.
약 3년 동안 만날 때마다
담배 한 보루씩 사드렸으니 많이 사드렸음에도 날 몰라본다.
할아버지에게는 치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덕분인지 나는 그 동네 다른 할아버지에게는 인기(?)가 많이 있었다.
문득 그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마 돌아가셨을 것이다.
인생이 뭔지.....
속절없이 가을은 또 가고.......
내가 좋아하는 시 <나그네>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 누가 오래서 온 것도 아닌 목숨
살고 싶어서 사는 것도 아니면서......」
잠깐인 세상에서...
가진 것은 없지만 그래도 있는 것 다 털어서 인심이나 쓰고 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