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잎할미꽃*

청담...

하나: 할미꽃


님의 마음이
조용한 아침에 할미꽃으로 올랐습니다.

찾는 이 적어 고적한 묏등성에
한낮이면 하얀 솜털 뒤쓰고서

혹여나 눈에 띌까 작은키를 구부리며...
낮고 낮은 시선으로 아픈 사연 들으려고
님 향한 마음으로 홀로 고개 숙여 있습니다.

시린 바람에 가슴 흘러내려도
전부가 내 탓인냥 조용히 고개 숙입니다.

모두가 돌아가는 저녁이 와도
님의 시선 조용히 기다립니다.



둘: 자목련 앞에서

어제는 봄비가 내려 꽃잎을 떨구더니
오늘은 바람이 불어 마지막 낙화를 재촉합니다.


온겨울 내내 준비하고 가다듬어
힘겹게 피운 짧은 날들...
서러운 가슴과
피맺힌 절규들을 한데 모아
마지막엔 승리함으로 피워낸 꽃,

자 목련...
오늘 그 서러운 꽃잎이 지고 있습니다.


혹여, 어떤이는
내년에도 또 필터인데
무얼 그리 가슴 시려하느냐고 하지만,
내년에도 핀다고 지금 지는 그꽃이
어찌 괜ㅎ지않을런지요..?


사람마다 다 저마다의 몫이 있는것 처럼,
꽃들 또한 저마다의 슬픔의 몫이 있을 터인데...


사람의 사이에서 또한번
시린 외로움에 몸이 떨립니다.
사람이 그립습니다.
진짜사람이 그립습니다.
저 혼자 떨어내는 자목련 꽃잎도 저리 외롭습니다.

바람이 붑니다.
사월의 시린 바람이 붑니다.


청담

*목련열매*




아마 그랬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무수한 '곳' 에서
미루나무 가지처럼 무수한
너와, 너는, 너의, 너를, 만나고 있을 것이다
시간이란 처음부터
흐르지 않는 사소한 연못들과 같았던 것
불멸처럼

저 타오르는 미루나무의
알 수 없는 가지,가지마다에
나는, 우리는,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고 있을, 있었을 - , 것이다

나는 강변의 불빛들이 오랜 기다림처럼 밝혀있는
번창한 만 (灣) 의 부두를 걷고 있다 그리고 조금 후면
모오든 다리를 건너 네가 올 것이다

이 석양이 지고, 어둠이 오면
나는 지금도


- 함성호 (36) '나는 지금도 미루나무 숲에 있다' 중



나는 힘겨워하는 사람에게

그늘이 되기보다는

저 높은 곳에 한 점 혼을 새기리라

나는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쉼터를 주기보다는

드높은 이상을 곧추 세우리라

보듬어 주는 가슴은 없어도

묵묵히 지켜주는 눈은 있다

나그네들이 찾아와

시원한 그늘을 달라고 떼를 쓰지만

아무것도 주지 못한다

더 세찬 바람을 맞고

힘차게 몸을 흔들어 댈 뿐

지친 사람들이 원망하며

내 곁을 떠나간다고 해도

앞서가 달래지 않으리라

세상 어디서든 내 모습 볼 수 있도록

이 벌판에 곧게 서 있으리라



바람으로 지나가는 사랑을 보았네..
언덕의 미루나무 잎이
온 몸으로 흔들릴 때..
사랑이여~
그런 바람이었으면 하네..^^







지난날 국도에 끝간 데 모르게 줄 서 있는
미루나무를 우리는 '영원의 나무' 라고 했다.
미루나무라는 이름보다 포플러라는 이름이 더 익숙했다.

그런 영원의 나무가 지금에 이르러서
새삼 존재를 불러일으키는 나무로 나타났다.
'너와, 너는, 너의, 너를' 이라는 토막나는 도마뱀 같은
존재의 파편들이 제2인칭으로 달려온다.

이어서 '나는, 우리는,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고 있을, 있었을 - , 것' 으로
무척 현학적인 서술이 이어진다.
숨은 그림 같은 연애시로 살아난다.
이 시인에게 세월이 지나가면 이런 황홀한 기호의 해독 (解讀) 이 가라앉으리라.



고은〈시인〉 중앙일보- 시가있는 아침







★ 아주 특별한 고운 님을
미루나무에 걸린 바람으로
정중하게 초대합니다. ★

**대문을 녹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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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행


어제 공장에서 대충 얘기를 다 끝내고 오늘은 정말 "책임"이란 글자를 훌훌 벗어던지고 혼자 지내고파 산행을 결심했다.
새벽까진 구름이 짙게 드리워 비라도 오려나 했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아침을 먹고 나니 아직도 남은 여름의 해가 내리쬔다.


그래도 마음먹은 나만의 휴일인데 싶어 등산화끈을 조이고 산으로 향했다.
늘 날 맞아주는 금정산이 바로 동네 뒤에 있어서 내 마음을 푸근하게 해준다.
어릴 때 소먹이면서 노닐었던 산이기에 어느 누구보다 정감이 가는 산이다.
동네를 빠져 산 초입에 들어서니 벌써 바람에 떨어진 도토리들이 발아래 밟힌다.
옛날 같으면 서로 한알이라도 더 주워서 묵을 만들어 끼니에 보태려고 했었는데...
나 자신부터 그런 걸 추억으로만 여기고 지나치니 세상살이가 조금 나아지긴 했나보다.


평일! 내 혼자 정한 휴일이어서인지 사람 한 사람 얼씬 않는 산길이 더욱 구미를 당긴다.
오늘은 마지막 여름의 햇살을 머리와 얼굴 그대로 맞는다.
꼭대기를 돌아서 내려오리라 마음먹고 한걸음씩 내딛다 보니 어느새 중간쯤은 온 것 같았다.
7부능선 즈음에 자리한 절로 향했다.가는 길목에서 얼굴에 세월의 골에다 흰 수염이 가득한 노인을 만났다.
옆에 있는 동료분이 올해 연세가 90 이라신다.
우와! 순간 놀랐다. 그 연세라면 정말 대단하신 분이라고...
바로 "대단하십니다. 조심해 가십시오."라고 깍듯이 절을 올리고 발길을 계속 옮겼다.


아직도 지난번 물로 불어난 계곡물이 명경지수처럼 맑게 흐른다.
바위에서 떨어지는 물이 조그만 소를 이루어 맴도는 모습이 마냥 아름답고 신기할 따름이다.
초등학교때의 동요가 생각났다.
"시냇물은 졸졸조올졸~"하는 동요가 말이다.
때묻지 않고 자랐던 60년대의 어린 내친구들아!
이젠 어느듯 머리엔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고 이미 멀리 가버린 친구도 있다고 전해 들었다.


목덜미를 타고 등으로 내리는 땀방울이 옷을 흠뻑 적시는 멋진 산행이었다.
하늘을 올려다 보노라니 눈에 띄는 나뭇잎들엔 벌써 한 여름의 짙푸름은 생기를 잃기 시작했다.
조석으로 울어대는 귀뚜라미소리만 듣다가 여기 나무들을 보노라니 절기를 아는 삼라만상이 또 한번 신기로울 따름이다.
아, 세월이여!
나무꼭대기의 나뭇잎 사이로 파란하늘을 이고 흰구름이 두둥실 걸렸다.


어느새 절에 닿았다.
아무도 없는 절마당의 평상위에 배낭을 메고 먼저 도착한 한 아주머니가 쉬면서 책을 읽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산행중이라면 으례하는 인사로
"반갑습니다."라는 말이라도 건네겠지만 그러지도 못하겠다.
독서삼매경에 빠진 것 같아.
"좋지! 맑은 공기 마시며 책읽는 저 순간이.
라이너마리아 릴케의 시도 좋고 우리네 삶을 얘기한 수필도 좋을 것이고...."
라는 생각을 하며 절을 둘러보니 절도 벌써 가을 채비를 다 끝낸 것 같다.
텃밭도 갈아서 아마 배추씨라도 심은 듯 골이 정연하다.
한켠에 발갛게 익어가는 고추들이 평화스러움을 더하는 것 같았다.


발길을 재촉하다 옆길로 잠시 들어서서 그늘진 바위 위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내본다.
그리운 이여!


계속 오르려니 저번 비가 핥고 간 자국이 너무나 선명하다.
길이 군데군데 패여서 돌만 남은 앙상한 모습이랄까?
저번 비로 물에 잠긴 김해 한림정의 친구가 또 생각난다.
이제 회복이 좀 되었는지...
당장 전화라도 해봐야지.
억새풀군락지에 닿았다.
가을이 이 아름다운 산을 만산홍엽으로 물들일 때 즈음에,
특히 해가 서산에 기울 때 즈음 여기 오르면 억새꽃의 군무는 묘한 실루엣현상으로 환상적이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벌써 억새꽃이 다 피어서 하늘거린다.
어릴 땐 뱀이 많던 곳이기도 했었는데 이젠 그 흔했던 화사마저도 구경하기가 힘들다.


때마침 능선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을 양팔벌려 맞이하며 산세를 관망하다가 정말 "아름다운 조국"이라고 스스로 찬탄해본다.
산까치의 노래소리,
끝으로 치닫는 여름에 항거라도 하는 듯한 매미들의 울음소리!
허리 높이로 자란 억새풀 사이로 나타난 빨간 고추잠자리가 돋보인다.
어느새 부근이 잠자리들의 군무로 또 장관이다.
어릴 때 특히 해질녁 산에서 풀을 먹이고 소를 몰고 집 마당으로 들어서면 마당 한가운데서 이리저리 떼지어 날아다니던 그 잠자리들!
그것들을 제비가 잡는다.
날으면서 주둥이에 잠자리를 낚아채는 날쌘 제비들의 모습들이 불현듯 스친다. 그나마 이제 그것마저도 인간이 배출한 각종 오염으로 볼 수가 없으니 차차 인간의 곁을 떠나는 자연들이 안타깝기만 하다.


산성을 넘어서니 시원한 낙동강 바람이 불어온다.
언제 왔는지 길목을 지키는 막걸리 장수를 보노라니 한잔의 막걸리 생각이 간절하여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땡전 한푼없고 달랑 열쇠고리만 잡힌다.
아까와라!


몇 년전 불이난 자리에 심어둔 나무들이 이제 자리를 잡은 것 같다. 그러나 '언제 곁의 나무만큼이나 키높이가 같아지는 걸 보게될까'하는 작은 인생여정의 끝을 예상하니 크나큰 우주속에 한낱 점도 이루지 못할 내 자신의 존재가 정말 가소롭고 가엾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어느 싯귀처럼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주변의 내 친구들을 더 고운마음으로 사랑하며 살아야지.


햇살이 아직 따가와 발길을 재촉하려니 저만치 큰 바위틈에 자라는 소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어릴 때부터 있었건만 그야말로 모진 풍상을 다 겪으면서도 버티고 있는 저런 자태를 바로 오상고절이라 했던가?
차라리 올라가기 힘든 자리에서 버티고 있었기에 오늘까지 왔으리라.
아니면 벌써 분재에 눈독들인 사람이 살리지도 못하면서 파갔을텐데...
저렇게 크는 동안 우리동네 많은 어른들은 먼 길을 가셨건만...
특히 여름방학때 소를 산에 풀어놓고 친구들과 계곡에서 멱감고 노는 사이 자기 논에 우리 소가 들어가서 벼를 작살내었다고 그 어린(지금도 작지만) 나의 멱살을 잡고 "죽일 놈, 살릴 놈!"하셨던 그 분도 이미 먼 길을 가셨는데 이 소나무는 그래도 좋은 바람과 이슬을 머금으며 버티어온 것이 나의 작은 인생사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계속 길을 가려니 무릎까지 자란 풀속에서 그 옛날의 낄낄이(배짱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여름방학숙제로 등장하는 밀짚으로 만든 낄낄이집이.
새삼 뇌리를 스친다.
우리집 머슴을 졸라서 만들어 달라해서 갖고 갔던 기억들이...
좁은 등산로 옆엔 분홍색 패랭이꽃이 티없이 맑고 고운 색갈을 뽐내고 다소곳이 숨어있다.
바람을 타고 나부끼는 풀잎들이 초록의 파도를 연출하며 품고 있던 더운 열기를 내 얼굴에 쏟아낸다.
소나무가 드리우는 바위위에 앉아 친구가 사는 동네를 내려다보며 찡한 가슴을 쓸어내리려니 호랑나비가 멋지게 날개를 펴고 날아간다.
오, 살아있는 자연이여!


사느라고 공장에서 들이킨 먼지들을 다 쏟아낼 욕심으로 다시 한번 크게 심호흡을 하고 발길을 돌렸다.





◎ 이름: 글/그림 /이요조

2002/8/3(토) 23:04 (MSIE5.0,Windows98;DigExt) 218.156.126.181 1024x768




고추잠자리  

















*가을하늘*


호된 열꽃의
여름 장마로 얼룩졌던
젖은 하늘 자락을 널어 말리려
농염한 햇살은
무르익고


헹궈낸
바람도 구름도 한 줄 빛살도
푸른 수의(囚衣)에 갇힌
한 장의 스틸(still),
정지(靜止).


호흡마저
건져내기 민망한
정적의 저 끝에
방자한 고추잠자리 한 놈,
빠알간 획을 그으며 날아 오른다.










Bethoven의 교향곡 제1번 다장조
작품 1








할머니의 초상화 (벌초를 다녀와...) ...... 그리고


얘 아범아~ ~ 할머님 뵈러 가자꾸나~ ~
얘 어멈아~ ~ 애들은 긴 옷 입혀 데려오려마~ ~
내 먼저 그 곳으로 떠나니
니들은 천천히 쉬엄쉬엄 오거라~ ~


개학을 코앞에 둔 손주놈들은
밀린 숙제, 일기 숙제 말도 못하고
궁시렁 궁시렁 차에 오르고
급기야는 즈덜끼리 공연히
티각태각 째려보며 눈 부라리고


장손의 눈꺼풀 누르는 무거운 숙취는
커피로 빈속을 채우며 등을 바로 세우고
분단장한 며늘아기 거울을 보다가
스치는 옛 생각에 가슴 아리다.


우리 손주며늘아기
이쁘다 고와라 하시던 할머님은
지금쯤....
얼마나 고운 흙이 되어 계실까....


큰놈 업고 만두 빚어 쪼르르 달려가면은
증손주놈 귓불을 부비며 돌아서
고무줄 고쟁이에 꼬깃꼬깃 모아둔
자식들의 효도용 쌈짓돈을
뉘 볼세라 몰래몰래 움켜 주셨었는데.......


6.25 .....
담배를 구하러 나가신 후
끝내 돌아오지 않은 지아비의
시신 없는 가묘 위에 난 쐐기풀 손수 뽑으시더니.....
삼베수의 반듯하게 갈아 입으시고는
자손들이 넣어드린 젖은 노잣돈 여며
꽃상여 타시고 먼길 가신지
어언 삼년이 다 되어가네....


할머님은....
야속했던 할아버님 곁에 나란히 누워
곱디고운 흙으로 사무처 내리고
묘의 분상은
만삭의 아낙되어 서러움 달래다
그 어느 곳에서
생명의 울음소리 들려주실까....


할애비된 아들이 붙여놓은 담배연기는
바람결에 안타까이 타들어 가고
새댁이던 며느리의 적삼은
손주놈 등살에 메뚜기 잡느라
허리춤 속살을 하얗게 드러내밀고


증손주놈 애비는 밀짚모 쓰고
무성한 떼 촘촘히 이발을 하고
증손주놈 에미는 갸우뚱 찡그리며
도장나무 미용을 한다.


파르라니 깍인 묘의
풋풋한 풀내음은 어디서
시원해진 가을바람 몰고와


늙은아들 주름에 숨은 탄식 떨어내주고
늙은며늘 가슴에 묻힌 한숨 쓸어내주고
손주놈 힘줄에 입김으로 다가가 주고
손주며늘아기 머리에 리본인냥 앉아있다가


이리뛰고 저리뛰는 증손주놈 소매를
붙잡다가 엉결에 간지러이 흘러내리는
달콤한 후손의 콧물을 훔치고
파르르 날아가 버린다.


얘 아범아~ ~ 너 오늘 애 많이 썼다
얘 어멈아~ ~ 너도 오늘 애 많이 썼구....
그럼 오는 추석에 다시 보자꾸나 ~ ~


어여 어여 가거라며
뒷짐지고 뒤로 물러서시며
아들손주며느리를 먼저 보내고
땀에 젖어 눅눅해진 담배에 불을 붙인다.


파르라니 깍인 묘 뒤로
우뚝 서있는 소나무에서
매미의 애절한 쉰 노래소리가
늙은 아들 손끝에 매달려
가려는 아들 차의 시동을 늦춘다.


"이봐 망구~ ~"
"내달 추석에도... 저 매미가 .... 그때까지 울고 있을까?"


늙은 아들 귓전에
매미의 쉰 울음소리 남아


매 엠~ ~ 매 엠~ ~
매 엠~ ~ 매 엠~ ~


다가올 추석을 기다리는 거래나.........



2002. 8. 25. 시할머님 묘에 벌초를 다녀와서.....











우리는 참으로 하찮은 것으로부터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다.
오늘 그간 보지 못했던 드라마 "새엄마"의
마지막 부분에 속하는 두어 편의 드라마를 보았다.
우리가 일상 통속적이라고 말하는 드라마 속에서
나는 인간의 오묘한 감성의 아름다움을 듬뿍 느꼈다.

우리는 큰 것보다는 작은 것에서 민초들의 삶 속에서
그들의 애환을 보며 잔잔하고 진정한 인간애를 볼 때가 많다.
오늘 느낀 것도 그렇다

인간의 감성이란 어쩜 이리도 감미롭고,
안타깝고, 애처롭고, 사랑스럽고
또한 애틋하고, 감격스러운 것들을 세세하게 느끼게 하는지...,
신비스럽고 경이롭다

오랫동안 군림하며 칼날 같은 시집살이를 시켰지만 살아내면서
인간적인 연민의 정이든 시어머니와의 사별순간 장면에서
어쩜 5년 전 내 시어머니의 돌아가실 때의 사별 현장의 감정이
그대로 재현 될 수가 있는지...,

용서하면서 그 힘들었던 세월이 아름답게 느껴지며
유명을 달리하시는 어머니에게서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는
슬픔이 밀려옴은 지금 생각하면 사랑이라고 느껴진다.

인간의 감성을 색으로 표현하자면 어떤 색들일까?
아마도 상상을 초월케 하는 우주의 대 하모니 색깔...
혹은 대자연의 무궁무진한 모양새의 모든 색들...
아니 그보다도 더 깊을 것 같다.

오늘 내 마음속을 헤집어 놓은 감성들은
나도 그것이 어디로부터 오는지...
어느 구석에... 언제 내 마음속에 있었는지...
어쩜 이토록 유효 적절한 시기에 그 감정을 꺼내서 느낄 수 있는지...
.
.
그저 "인간이란 하느님이 지으신 아름답고 오묘한 동물"
이라는 지극히 단순한 단 답만이 내 가슴속을 맴돈다.










새댁과 잔치국수 ......................... 이슬비


끝 간 데 없던 지난 겨울의 추위.
그 추위도 남녘의 화신에 밀려나고,
골짜기의 잔설도 따사로운 햇살에 점점이 사라지고 있다.

뜰에 화초삼아 심어 놓은 몇 그루 약초에
거름으로 덮어 두었던 낙엽들을 걷어 내니,
그새 새 살을 봉긋이 부풀리고 있는 생명들에서
선뜻 다가 온 새봄을 맞는다.

이렇듯 작은 뜰을 어루만지는 일로
아직 여린 봄 향기를 곱게 감싸 안아 본다.


아침저녁 상위에 오르는 묵은 김치에
차츰 입맛을 잃어가는 즈음,
입맛을 돋우는 음식이 뭐 없을까?...
이것저것 생각 하다가
오늘 점심에는 추억도 아련한 잔치국수를 준비했다.


오랫만에 남편과 맛깔스런 점심을 먹고 차 한 잔을 나눌 때,
문득 가녀리고 앳된 지난 날의 새댁의 모습이 스쳐왔다.

노랑색의 에이프런을 두르고,
새댁이란 호칭이 낯설게만 느껴지던 신혼 초의 어느 봄날이었지.


그새 20여 년이 지났다.
수줍은 듯 미소를 머금은 채
남편 옆에 다소곳이 앉았던 모습이 어제인 양 아련히 떠오른다.
참 곱기만 했던 순간들이었다.

신혼 여행지에서 돌아온 5일 째 되는 날,
새댁은 비둘기 집 같은 신접살림을 차리게 되었다.

친정에서 아기자기하게 마련해 간 살림살이는
시댁의 사랑방에 고이 모셔 두고
둘이 덮을 수 있는 이부자리와 수저 두벌과 그릇 두벌로...

신랑의 근무처 가까이에 단칸방을 마련하였기에
신랑은 점심식사를 집으로 와서 해결하고
다시 근무처로 돌아가곤 했다.
아마 나도 볼 겸해서가 아니었으랴 싶다.


그 때 그 일들이 한 단막극의 대사인 양 떠오른다.

어느 봄날,
넥타이를 단정하게 맨 신랑이 출근을 서두르면서 나에게 말했다.

"점심때는 국수 좀 삶아 줘. 잔치국수 말야..."
"알았어요. 잘 다녀와요..."

혼자 남은 난 점심 준비에 분주했다.
멸치, 양파, 다시마 등을 넣고 국물을 우려내고,
아껴둔 깨소금과 참기름을 조금 넉넉히 넣어 양념간장을 만들고,
파란색이 감도는 김을 구워서 잘게 부수고...
그리고는 몇 번 먹어 본 잔치국수에
계란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용케도 기억해 냈다.

멸치국물이 끓고 있는 동안
큼직한 계란 하나를 골라
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계란후라이를 아주 그럴듯하게 준비해 놓고선
연신 대문을 들락거리며 신랑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에
신랑이 휘파람을 불며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다가 왔다.
맛있는 국수를 먹을 수 있다는 작은 사실에 행복해 하면서.

준비해 둔 국수 사리를 넓은 대접에 담고
두어 가지의 고명 옆에 계란후라이를 곁들인 뒤
부셔놓은 김을 살짝 얹어 알뜰히 마무리를 했다.
몇 번씩 조물거려 간을 맞춘 새콤달콤한 오이무침과
햇김치가 구미를 당기게 했다.

마치 우리의 사랑이
한 그릇의 국수에 다 담겨 있기라도 한 듯 흐뭇하기까지 했다.
물끄러미 상위의 국수를 바라보다가
한 그릇을 비운 신랑이 나의 손을 잡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이 바보야, 국수 위에 얹는 계란은 후라이를 하는 게 아니고
계란을 풀어 얇게 지단을 부쳐서 채 썰어 얹는 거야.
다음부터는 알았지?...."


아, 이 수모...
나의 밑천이 다 드러난 양 싶은 순간이었다.
일찍이 뉘 앞에 이렇게 부끄러워 본적이 없었거늘...

졸업하고 곧 바로 직장 다니네 하고
친정 엄마를 도와
밥 한 끼 제대로 해 본 일이 없었던 새댁으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가 아니였으랴.

신랑이 근무처로 돌아간 후에야
그 심각성을 알았고
그 날부터 몰래 요리책을 끼고 살다시피 했다.


생각해 보니
그날 이후 나는 잔치국수 알레르기가 생긴 듯 싶었다.

여름, 겨울 없이 정말 무던히도 국수를 삶아 내지만
그 일 이후 내가 먹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국수만 보면
행복해 하는 신랑의 모습에
철없던 이 새댁의 행복 지수도 높아만 갔다.


바람처럼 거침없는 세월은
곱기만 했던 새댁을 가만히 두지 않았다.

어느새 중년고개의 지천명을 바라보는 즈음에
헛되이 보낸 세월은 아니었는지 때로 생각에 잠기곤 한다.

그 세월은 성년의 두 아이를 둔 중년의 부인으로 나를키워 놓았다.
세월을 벗하여 눈가에 자리한 주름에
신경줄이 당기는 날도 더러는 있어 서글픔이 들 때도 있다.


무심한 세월에 변한 것이 있다면,
외적인 것에 연연하지 않고
그저 조금 느긋해진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봐 줄 수 있다는 것.

혹여, 변치 않은 것 하나 있다면
아직껏 시들지 않는 느낌표로 기억된
그 때 그 향기롭던 사랑...

밝고 환한 모습으로 한 송이 들꽃처럼 웃던,
노랑색의 에이프런이 썩 잘 어울렸던 그 새댁이
오늘 문득 그리워지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그 때 그 사랑의 향기를 안고
내일도 그 내일에도 잔치국수를 더욱 맛깔스럽게 말아 내리라.


그 풋풋했던 사랑을 오래토록 긷고 싶은 까닭에...




여름의 끝자락에 앉아서.....

아침에 일어나서 마당을 나가니 살갗을 스치는 바람결이 한결 서늘한 것이
인정하기 싫어도 또 세월은 어김없이 흘러서 이제 여름의 끝자락에 와 있다.

소담스럽게 열려서 늘 뒷문을 열면 빠알갛게 익어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던
토마토 나무를 다 뽑아내면서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며 그자리에 알타리무우를 심었다.

고집스럽게 화학비료와 농약을 안치고 끝까지 버텨왔지만 그 수확은 참으로 보잘 것이 없다.

아무도 이 초보 농부의 깊은 뜻을 알아주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무당벌레가 다 파먹은
토마토 잎사귀의 황량한 모습이나, 일찌기 나를 수확의 기쁨으로 떨게했지만
병충해를 이기지 못하고 말라가는 오이넝쿨을 걷어내면서도 꾿꾿이 농약의 유혹을 이겨내고 있다.

그렇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 고추다.

그 탐스럽고 푸짐하게까지 열리던 고추는 긴 8월 장마와 그 뒤끝의
화창하지 못한 날씨 때문에 결국 고추 최대의 적인 탄저병에 걸리고 말았다.

이 이쁘던 열매의 말라가는 모습이라니.....

파랗건 빨갛건 군데군데 썩어들어가며 나무에 달린 체 허옇고 꺼멓게 말라들어가는 것이
아침미다 저녁마다 출 퇴근길에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너무나 안타깝다.

처음의 탐스럽던 열매를 보며 한 열 근 정도만 따면 그걸로 올 김장을 하겠다고
들떠서 말하던 아내의 눈가도 그 고추를 보고 있노라면 슬그머니 붉어져 온다.

아마 그 희망하던 열 근이 안될 것 같은 서운함 보다는 농약을 치지않은
순 무공해 농산물을 얻는 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안타까움일 것이다.

이 작은 터에 소일거리로 심은 농작물의 병충해 피해도 이만큼
마음이 아프고 쓰라린데 이번의 집중폭우로 열흘넘게 물에 잠겨서
모든 일년의 농사가 수포로 돌아가버란 수해 농민들의 아픔은 어쩔 것인가?

여름의 끝자락에 앉아서 그래도 나는 그 토마토와 오이 넝쿨을 쳐내고
뽑아낸 자리에 또 한 겨울 반찬거리를 위한 준비로 알타리 무우를 심었다.

벌써 지난 주에 심어둔 김장 배추와 가을 무우는 싹이 돋아서 파랗게 자라간다.
아마 또 온갖 벌레들이 해충들이 이 배추와 무우들을 못살게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 갈등에 휩싸이고 그러다가 이번에는 농약을 칠지도 모르겠다.

배추란 놈이 너무나 병해충에 약한 식물이라서 그 이파리에
구멍이 뚫리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온 밭이 구멍뚫린 배추 이파리
천지가 될 터인데 그 모습에 내 약한 마음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 이번에도 농약의 유혹을 이겨내려고 한다.
이 작은 밭에서라도 순수 무공해를 만들어 낼 수 없다면 우리에겐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물과 공기와 땅의 오염, 그 땅에서 자라고 사는 식물과 동물과 사람의 오염.
그리고 이제 미래는 모든 오염 투성이로 부터 벗어나지 못해서 돌연변이 천지의
이상한 식물과 동물들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에서 살아야만 하는 안타까움.

나 혼자만이라도 상상하면 소름이 끼치는 그 이상한 미래를
좀 더 더디게 오도록 순수 무공해 농산물을 만들어 내 보려고 한다.

햇빛이 반짝 좋았던 이틀 휴무를 서해안 한 바퀴 드라이브 하는 것으로
금년의 여름을 정리하고,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에
살갗에 스치는 마당의 공기가 여름의 끝자락을 느끼게 하여 주절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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