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이요조 (yojo-lady@hanmail.net)


2003/10/20(월) 18:16 (MSIE5.0,Windows98;DigExt) 218.156.130.220 1024x768


사람의 일일진데 사랑도 그러하여라~  







      이사 떠난 빈 집




      그 곳엔 이젠 내가 없다.
      그 집엔 이제 내가 그리던 아무 것도 없다.

      집에만 들어서면 습관처럼 켜서 돌리던 티뷔 리모콘도 없고
      무언가 속이 허전하면 괜스레 들락거리며 열어보던
      주방의 냉장고도 이젠 그 곳엔 없다.

      '꼭 읽어야지'하며 사두고는 채 읽기도전 아무렇게나 내 팽개치곤
      무료한 생각날 때마다 문득문득 찾아 헤매던 읽을꺼리도 없다.

      아침 저녁으로 닦던 잇솔도 없고
      입으로 부지런히 따순 밥을 퍼 날라주던 내 수저도 없다.

      언제나 덮기보다 감고자던 포근한 이불도 없다.

      백화점 쎄일 때 그냥 빛깔이 고아서 사둔
      여태껏 용기(勇氣)가 없어 차마 두르지 못한
      라벨도 채 떼어내지 않은 실크 머플러도 없다.

      모양새는 별로지만 그렇게 편안할 수없던
      산책길에 늘 즐겨 신던 신발도 이젠 그 곳엔 없다.

      어쩌다 간혹 어쩌다가 들취보면 미소가 베어물리는
      눈부신 젊음과 옛 추억이 고스란히 들어있던 앨범도 없다.

      늘 날 보며 목말라하던 화분도....
      매일처럼 나의 눈길, 마음길 온통 빼앗던 컴텨도...
      늘 애정에 굶주려왔던 외로운 강아지도..

      그리하여 내 손길만 기다리던 모든 것,
      나의 체취가 베어있던 내 모든 것들은 이미 그 곳에 존재치 않는다.




      --그렇듯 이제는
      내게서 훌쩍 이사(移徙) 떠난 그대없는 텅- 빈 집~
      거기에 홀로 남겨진 내 사랑의 잔해들을 하나 하나
      낙엽처럼 줏어모아 책갈피 갈피에 뉘워 잠 재워나 보련다.----








      이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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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사랑]


모니터를 켜놓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 말고
방바닥에 앉아 의자에 기대어 고개를 젖히고는 멀거니 천정을 바라본다.

이 게 아닌데...
분명 뭔가가 있을거야...더 새로운.... 나를 솔깃하게 만들 무언가가,


너무나 욕심이 많아서 일까?
그런 나 자신을 뒤 돌아 보게 한다.
네모난 상자에 갇혀 지내기엔 이젠 더 이상 못견뎌하는
내 속에 죽은 듯 숨어지내다 간헐천처럼 문득 문득 솟구치는 그 무엇!

한 곳에 미치기엔 난 언제나 삼 사년이면 적당했다.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야 한다.
내가 다시금 미칠 수 있는 그 무엇!

이젠 바깥으로 나서고 싶다.
마당 흙을 만지면서도 난 지난 삼년간의 짜릿했던
사이버상의 모든 재미를 능가할 수 있음을 다시금 깨알았다.

더없이 행복하다.
드디어 잠을 깬 것을 안다.
기나긴 잠에서...

뭔가 또 다시 새로운 것을 사랑하지 않으면 않될...
이 계절이 가기 전,
시월이 떠나기 전에 나는 그 대상을 물색해야만 한다.

모니터 앞에서 조금은 비켜 앉을
또 다시 새로운 내 사랑을 찾아서..


[옮겨앉기] 시도를,




이요조



애달픈 라세 린드의 목소리는
사랑에 빠지게 하는 앨범이라는 극찬을 받은
[You Wake Up At Sea Tec] 앨범중에서
C'mon Trough라는 곡을 띄우며
깊어가는 가을에 점점 빠져보시길 바랍니다.





*깊고 푸른 가을하늘이 스러지면 구름도 퇴색하겠지*




-----------------------절---------------------취--------------------선----------------------






[맛을 안다]


맛을 안다 함은 즐길줄 안다는 뜻일게다.
50줄이 넘어서 이제사 살림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살림맛을 조금 알아 간다는 뜻일게다.
그러나 바보스럽게도
나는 아직 돈은 모른다.
돈 맛을 못배웠다.
뒤늦게 돈맛을 안다면? 익힌다면?
아마도 고기맛을 익힌 X처럼 바람벽에 빈대도 남아나지 않겠지.
제발 그렇게만 된다면....
에미의 타고난 그 유수한 소질 탓에 내 아이들 마저 다 그러니.. 참으로 예사일이 아닐 수 없다.

돈은 알고 싶지도 않고, 은행업무도 귀찮을 뿐더러
아마도 나와는 평생토록 무관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면 누가 이렇게 되묻겠지
"아니 돈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그런 거짓말을?"
"돈을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다. 난 그저 돈이니 돈이려니 할 뿐
언제나 돈 이야기는 불편하고 돈 이야기는 꺼내고 싶지도 않고
가능한 만지고 싶지도 않을 뿐..."

.................................



혹자는 내 사랑이라 함에 여러가지로 상상키도 하겠지만
아무려믄 무엇이라도 괴이치않다.

動的이지 못한 나는 엄마에게 등 떠밀려
미혼인 시절에 산악회 회원이 되었다.


그 산악회(도라지산악회)는 부산교육청 주관인 산악회였으므로
거의 부모님뻘의 연세들이셨고 교육계에 계신 분들이셨고
결혼주례도 종내는 교육감님이 서 주셨다.

지금도 기억하기론 아가씨라고는 딱 단 둘이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산행에서 점심시간이면 엄마의 특별히 정성어린 반찬 덕으로 난 항상 어깨가 우쭐했다.

웬만한 남쪽 산은 거의 다 섭렵하고 자일타기 아이젠으로 빙벽타기등
한 때 산에 홀딱 미쳤었다.

엄마는 그냥 딸의 성격을 고쳐보고자 슬그머니 등 떠다 민다는 게
겨울에도 뺨이 꽁꽁 얼어 한 술 더 뜨는 딸을 내심 걱정하셨다.

"얼굴이 얼면 피부회복이 어렵다 그리고 겨울 눈(雪)에 피부는 더 잘 타는 법이고.."
난 엄마의 잔소리같은 말씀에도 아랑곳 않았다.
그래선지 속살은 희어도 얼굴은 그 당시 언 탓으로 거무티티한가 보다.

결혼 전, 동양화 그리기에 빠졌으며
자연스레 蘭애호가 회원이 되기도 했었다.
시집오면서 난분이 거의 신접살림 13평짜리 아파트를 채웠었고
내 아이들이 자라나는 만큼 난들은 한촉 두촉 사그라들어 내게서 영영 멀어져갔다.

아이들 학교 치맛바람? 으로도 한 때 미쳤었고,

막내를 낳고는 그림에도 한 때 미쳐서 밤잠을 자지 않고 작품?을 만들기도 했었다.

신앙에도 한 때 미쳐서? 폐품수집(여전도회 기금마련)에
리어커를 밀고 회원들이랑 시내를 전전하는 것도 마다 않았던 적이 있었고.

교회 책도 발간하고 교회 카드나 카렌다등.. 스폰서들을 찾아 다니기에도 발품 깨나 팔고 다녔던
열정어린 시절도 있었다.

서울로 나다니며 시조공부에도 한 때 푸욱 빠졌었다,


지금은 석 삼년이 훨씬 지난 이제 네모난 상자에서 옮겨앉기를 시도하고 싶다.

난 근간에 들어 하늘을 즐겨 찍었다.
아니.. 하늘이 아니라 하늘의 표정을 만들어 내는 구름이 좋아서...

구름을 찍으러 높은 곳으로, 높은 곳으로 산에나 올라 가야겠다.
정말 뜬 구름 잡기에 미쳐 볼꺼나...

도심지에서는 온갖 줄로 사진속에 구름은 오랏줄에 꽁꽁 묶인 것처럼 불편해 보인다.
날씨가 좋은 날 산으로 올라가 볼꺼나?

아니면 요가로 이 겨울 동면하듯 참선의 세계로 들어가 볼꺼나?

참으로 사랑하는 것을 찾는 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임에는 틀림이 없나보다.

한 몇년 나를 미치게 할 대상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과연 어디에 있을꺼나?

어떤 모습으로...





2003년 시월,














*폰 카메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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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물안개 핀 산야를 바라보며 기차를 타고 여행지에서 돌아왔다.



      해는 눈 부시게  다시 떠 오르고

      포멧되어진 가슴에 맑고도 좋은 새벽공기로 가득 채워 넣을 수가 있었다.



      너무나 둘러왔다.

      쉬운 길을 두고 .... 우회해서 왔던...아마도 그런 게 인생인가 보다.



      ............................................................................



      동안 답글조차 제대로 쓸 수 없었음을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잠시 떠나있었던 ... 두 달여, 짧은 기간에도 그새 적응이 되어선지

      이 곳에 들어서기도 무척 낯 설게 느껴집니다.



      뭔가를 쓰고 표현한다는 일이... 흐르는 물에다 마음을 새기는 것처럼

      그냥 저냥 내 마음을 흘리는 일이라 생각했었는데...



      동안 잘들 계셨는지요?

      환절기에 감기조심하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미루나무에는 이제 낙엽이 들기도 전 바람에 우수수 떨어질 일만 남았습니다.

      벌써 이파리들이 채 낙엽도 들지 않고 바람에 떨어져나갔군요.



      봄이오면 새잎이 다시 돋아나겠지요.

      동안

      돌아올 봄을 위하여 알찬 겨울 잠을 자야겠습니다.

      포근하고도 행복한 겨울채비를...



      여러님들과 함께~~`





      이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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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Prayer (with Charlotte Church) - produced and arranged by david foster









I pray you'll be our eyes 난 당신이 우리의 눈이 되어달라고 기도합니다. 



And watch us where we go 우리가 가는 곳을 지켜봐 달라고




And help us to be wise 우리가 현명해지도록 도와달라고



In times when we don't know 우리가 모르는 시간 속에서 




 



Let this be our prayer 이것이 우리의 기도가 되게 하소서.



As we go our way 우리의 길을 갈 때 



Lead us to a place 그곳으로 우리를 이끌고



Guide us with your Grace 당신의 은총으로 우리를 인도하소서. 



To a place where we'll be safe 우리가 안전할 그곳으로.... 




 



La luce che to dai (The light that you give us) 당신이 주신 빛으로



I pray we'll find your light 난 당신의 빛을 우리가 찾도록 기도합니다.



Nel cuore rester (Will stay in our hearts) (우리의 마음 속에 머물고)



And hold it in our hearts 마음 속의 그 빛을 유지하도록.



A ricordarchi che (Reminding us) (생각나게 하소서)



When stars go out each night 매일밤 별들이 나올 때 



L'eterna stella sei (That in my prayer) (내 기도속에 있죠.) 



Nella mia preghiera (You are an everlasting star)  (당신은 불멸의 영원한 별입니다.) 



Let this be our prayer 이것이 우리의 기도가 되게 하소서



Quanta fede c' (There's so much faith) (너무나 깊은 믿음이 있죠.) 



When shadows fill our day 그림자가 우리의 삶을 채울 때 



Lead us to a place 우리를 그곳으로 이끌고 



Guide us with your grace 당신의 은총으로 우리를 인도하소서. 



Give us faith so we'll be safe. 우리에게 믿음을 주소서. 그러면 우리가 안전하겠나이다




 



Sognamo un mondo senza pi violenza (We dream of a world with no more violence) 



(우리는 더 이상의 폭력이 없는 세상을 꿈꿉니다.) 



Un mondo di giustizia e di speranza (A world of justice and hope) (정의와 소망의 세상을.)



Ognuno dia la mano al suo vicino (Grasp your neighbors hand)(당신의 이웃의 손을 잡아보세요.)  



Simbolo di pace e di fraternit (As a symbol of peace and brotherhood) (평화와 인류애의 상징으로써) 




 



La forza che ci dai (The strength that you give us) (당신이 우리에게 주신 강한 힘으로) 



We ask that life be kind 삶이 친절해지길 바랍니다. 



E'il desiderio che (Is the wish) (이 소망은..) 



And watch us from above 위에서 우리를 지켜보소서. 



Ognuno trovi amore (That everyone may find love) (모든 사람들이 사랑을 찾을 것이라는)



We hope each soul will find 우리는 모든 영혼이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Intorno e dentro a s (In and around himself) (그의 내부와 그의 주위에서) 



Another soul to love 사랑할 다른 영혼을... 




 



Let this be our prayer 이것이 우리의 기도가 되게 하소서.



Let this be our prayer 이것이 우리의 기도가 되게 하소서. 



Just like every child 다른 모든 아이들처럼 



Just like every child 다른 모든 아이들처럼 




 



Needs to find a place, 그런 곳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Guide us with your grace 당신의 은총으로 우리를 인도하소서. 



Give us faith so we'll be safe 우리에게 믿음을 주소서. 그러면 우리가 안전하겠나이다. 



E la fede che (And the faith that) (이런 믿음이-) 



Hai acceso in noi( You've lit inside us) (당신이 우리의 마음 속에 빛을 주셨고) 



Sento che ci salver (I feel will save us) (-우리를 구원할 것입니다) 





-------------------------절----------------------취----------------------선-----------------------------







      아주 자그마한 집에다가
      어느날 아주 작은 마루를 덧대었습니다.

      차양을 치고 그 차양위로 후두둑대며 떨어지는 빗소리를 즐겨 들었습니다.

      비바람이 치는 날은 그마저 불편했습니다.
      눈이 많이 오는 어느 해 ,
      현관으로 올라오는 돌계단에서 주루룩 미끄러진 나는 마당에 패대기쳐진 채 한동안 의식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어느날
      나무 계단으로 실내로 들여 바꾸고 개조시킨 뒤
      유리로 온통 덮어버렸지요.
      눈이 내리면 마치 흰 눈 속에 갇힌듯한 기분,
      쌓인 눈을 이불삼아 덮고 있는듯한 기분...

      그러나 그 즐거움도 잠시
      얼마 지나지않아 초록이 좋아 심어둔 등나무가 모든 걸 앗아갔습니다.

      밤하늘의 별도, 달빛도...
      거실바닥에 앉아서 올려다 보이던 교회 첨탑위에 걸린 십자가도,
      눈에 보이지 않자 마음에서도 점차 멀어져갔습니다.

      낙엽이 쌓이길 한 십여년...
      내 마음의 더께도 함께 쌓여갔습니다.

      낙엽은 쏟아지는 햇빛을 가려주는 대신 비가 많이오면 틈새 고인 물이 떨어지게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날은 그 낙엽사이로 작은 새끼 쥐의 분홍빛 나는 다섯 발가락을 자세히도
      볼 수 있게했고 무섭고 징그럽기만하던 쥐에게도 생명의 경이로움과 애정이 솟아났습니다.
      가을이면 후두둑 떨어지는 낙엽이 쌓이고 쌓여~
      다음 해에 비가 자주오는 초여름이면 아주 실낱같은 버섯이
      일순 자라 오르기도 하는 신비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해묵은 낙엽을 싹-말끔히 걷어내고 나니 잠자리도 흰나비도 호랑나비도 벌도 놀러 와주었습니다.
      현관 입구로 들어와서는 나갈 길을 잃은 미아들인 셈입니다.


      삐용이가 있었더면 이 곳으로 옮겨와서 행복했을텐데 말입니다.
      어제는 라이락나무 곁을 파다가 굼벵이(매미)이 나와서 도로 잘 묻어주었습니다.

      참, 그제는 청개구리가 울었습니다.

      갑자기 웬 청개구리 이야기냐구요?
      청개구리의 수명이 얼마인지 전 모릅니다.
      한 오년전 쯤이었나 ..더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제법 추운 11월이었지 싶습니다.

      아주 작은 약지 손톱만한 청개구리는 동면에도 들어가지 않았는지 거실에 종종 나타나서는
      저랑 함께 놀았던적이 있답니다.

      "얘~ 너는 겨울 잠도 않자니? 빨리 들어가..월동준비 하렴..."

      그 다음 해 여름... 마당에서 내내 깰깰 거리며 우는 소리가
      내게는 마치 제 존재를 알리는 것 신호음 같이 들려왔습니다.

      물론 그 다음 해에도 청개구리는 집 부근에서 가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잊었습니다.
      병원에 얽메어 아무런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나날이었지요.

      참~~
      언젠가 티뷔에서 '세상에 이런일이'에 청개구리가 한 아주머니랑 함께 사는 걸 보았습니다.
      그 걸 보고는...
      "내게도 저런 놈이 하나 있었는데.. 그래, 가능한 일이야...가능하고 말고"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근데.. 한 보름 전
      집 굴뚝 부근을 청소하고자 오래된 물건을 들추는데...무엇이 고물 거리는 것 아닙니까?

      "아...이런!!!"
      "세상에~~ 너였구나!"

      그제사 생각나는 그 놈, 잊고있었던...
      이젠 작은 개구리만합니다.

      얼마나 흙을 뒤집어썼는지... 흙덤벵이가 다 되었습니다.

      손바닥에 올려놓으니 미동조차 않습니다.
      눈 높이에 올려다 놓고는
      "너 맞지... 너 엄마 알어?"

      참 큰일입니다.
      전 무조건하고 엄마라는 소리가 먼저 나옵니다.
      흐흐~~ 글케나 미물들에게도 엄마 소리가 듣고자프니...
      만약 하나님께서 내게 아이들을 주지 않으셨다면 아마도.. 전??

      나를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작은 개구리만한 넘을 들고 남편에게로 갔습니다.

      "여보... 당신은 잘 모르지? 얘, 있잖어...~~~"
      하며 인사를 시켰습니다. 그 당시 남편은 국외로 출타중이였거든요

      왜? 두 눈만 빼 놓고 온 몸에 흙을 묻히고 있는지?
      왜 어두운 구석에서 숨어있듯이 지내는지?
      왜 이렇듯 주인도 잘 찾지 않았던 집을 저 혼자 지키고 있었는지??

      "여기서 살아라.."
      하며 마당 철쭉위에 내려주려니 웬걸.. 이넘이 마치 에미등에 업혀 안내리려는 아가처럼
      도로 제 손바닥으로 떼장이처럼 기어 오릅니다.

      정말 내리기 싫은 모양입니다.
      한참을 손바닥위에 두다가 일도 해야겠고 짠하지만
      억지로 떼어놓고 좀 있다보니.. 그 자리에 보이진 않았습니다.


      그랬던 그 넘이
      그제 모처럼 울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제 아침에는 비도 좀 뿌리더군요.






      -------------------------절----------------------취----------------------선-----------------------------




      돌아왔습니다.
      중간에 일기처럼 써 둔 글이 있어서 아래에다 보탭니다.
      밤이 이슥하도록 출퇴근을 하며 일에 매달렸습니다.
      사진은 디카를 두고 새로 장만한 핸폰으로 찍었습니다.

      그런대로 쓸만하기도 하려니와 무엇보다도 사진 찍는 표시가 나지 않아 좋습니다.
      일하시는 아저씨들 앞에서 사진 찍기가 좀 그런데...
      어디서나 준비없이도 상황을 담을 수 있다는 것,
      문명의 이기는 익힐수록 좋다지만..
      어째.. 이 모든 것에 사로잡혀가는 것 같아 좀 그렇습니다.

      오늘 제목은 헤어지고 다시 또 만나지고....

      달팽이, 청개구리, 쥐.... 라이락나무 밑둥치에 숨을 쉬고 있는 굼벵이....

      언젠가 다시 만나지겠지요
      생이란 그렇게 이어지는 것을...




      -------------------------절----------------------취----------------------선-----------------------------






      빈집



      미루나무가 빈 집이 되었습니다.
      빈집을 위하여...
      또 하나의 빈집이 우려되는,

      미루나무에도 혹, 쥐가 쏠고 곰팡이가 피고
      누수가 되는 그런 일은 없겠지요.

      수마가 온통 할퀴고 간 땅에
      미루님들~ 혹 본가나 고향에서
      수마의 피해는 없으신지요?

      제가 아홉살인가? 열살쯤에 추석날 새 옷을 입고는 (부산)댓돌까지 바닷물이 차 오르던 해일,
      '사라'의 공포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헌데 '매미'는 그 '사라'보다 훨씬 위력이 세다지요?

      거제도 '해야'님께서는 전기가 며칠 끊기는 통에
      밥을 사먹으러 다니시다가 16일에야 복구가 되어
      멜도 그제서야 보셨답니다.

      아무튼 기운잃지 마시고들 건강하세요.

      정말 저도 난생 처음 만나보는 우기입니다.
      이웃집들과 모처럼 인사를하고

      "왼통 곰팡이가 다 피었어요~"
      "에그..살고 있는 집도 곰팡이가 피는데 이 우기에는 별 수 있나요...다 그래요"

      곰팡이 냄새,
      웬만한 가재도구들이 아낌없이 버려지고

      지난 해 겨울에 그랬는지...지지난해 겨울에 그리됐는지...
      보이러는 동파가 되어 동관이 찢어져 있고
      닫아둔 온 집은 곰팡이 냄새로...
      마치 제가 수재민이 된 듯한 기분입니다.

      공사하는 곁에서 쓸고 닦고 해도
      끝도 한도 없이 일꺼리가 이어집니다.

      오늘은 비가 무섭게도 내렸습니다.
      비 오는 날이라 묵은 지붕청소를 하였습니다.

      어려서부터
      누워서 별이 보고싶었지요.
      여름 밤, 마루에 누워 별을 헤고 싶었지요.
      해서 유리로 벽을 쌓았지요 녹음도 집안으로
      스스럼없이 만끽하게끔 끌어들이는 일이라 생각하고,

      그런데...
      어느새 등나무가 하늘을 다 가려버리고
      오래 누적된 낙엽은 아예 부엽토 퇴적층이 되었습니다.

      한 삼년, 병원생활에 빈집으로 그냥 손질도 않고 버려 두었더니
      폐가가 다 되었습니다.

      낙엽이 고여서 누수도 되는 것입니다.

      등나무가 두 그루였는데...한 그루는 베어내고 죽였는데
      한 그루마저 오늘 일단 손발이 잘려져 나갔습니다.
      인부 둘이 힘들게 작업을 했습니다.

      세간살이는 모두 변질되어 정말 골동품처럼 되었습니다.

      유화말고는 표구액자들은 모두 곰팡이가 쓸었고 거의 버리게 생겼습니다.


      빨간 넝쿨장미도 식상해서 아취를 다 걷어내고
      며칠 전 그 장미 넝쿨에서 장미 한송이를 용케 발견하고 걲어다 준
      남편의 마음이 갸륵해서 빈 집에 꽃을 꽂았습니다.


      먹을 것도 없는 빈 집에 쥐가 한 마리 들어왔다가 갇혔던 모양입니다.
      문을 죄 쏠아 놨습니다.
      이 문 말고도 다른 문도 조금씩 다 맛을 보았더군요

      '쯔쯔가무시병'이 무서워 아끼는 '유화물감'붓으로
      틈새에 쏠아 놓은 톱밥을 꼼꼼히 쓸어 제거했습니다.

      아저씨(인부) 말씀이 쥐도 집착성을 보인답니다.
      하얀 전선만 쏠아 놓는 놈이 있다면
      까만 전선으로 바뀌면 입맛을 잃는다네요

      요넘은 다크부라운 나무틀만 죄다 갉아놨습니다.
      문틀을 이참에 모두 화이트로 바꿔버리믄 괜찮을까 모르겠습니다.


      주방 싱크대에 물을 부으니 바닥으로 주르륵 그대로 쏟아져 내립니다.
      아래 부분을 살펴보니 쥐가 배수구를 다 쏠아 놨습니다.
      아마도 이 곳, 하수구 구멍으로 탈출했나 봅니다.

      쇼쌩크의 탈출 생각이 났습니다.
      긴- 하수구를 통해 탈출하는....






      .........

      저,,,,

      오늘 아침,
      삐용이가 죽었습니다.

      저와 함께한지 백일도 못되어,

      농약 묻은 열무잎 탓인모양입니다.
      언제나 아침이면 물을 갈아 주는데

      씻느라 통을 흔드니
      작은 돌멩이 소리가 났습니다.
      삐용이의 주검이였습니다.

      우리집 뒤 작은 텃밭에 교회 사찰님이 열무를 심으셨는데
      잎사귀에 흰반점을 보고도 ..
      설마 자기네가 먹을 것에 약을 치리라곤 상상도 못했습니다.
      건강하던 삐용이가
      밤 늦게 돌아와 열무잎 하나 씻어서 넣어줬는데...
      그만,


      지금,
      거의
      자정이...

      삐용이 생수병을 도로 찾아와 좀 전에야 사진을 찍었습니다.
      님들께 작별인사 시키려구요

      너무 고단해서 대충 쓰곤 자렵니다.
      내일 아침 일찍 글 올리렵니다.

      폭우가 쏟아지는 속에서 나무를 자르고 낙엽을 긁어내고
      유리를 닦는 아래에서
      새로 산 핸폰카메라로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제겐 아주 역사적인 상황들이거든요.


      다시 만나뵐 때까지
      안녕히계세요.


      9월 18일
      (삐용이를 보내며)





      .....

      .....

      .....

      .....

      .....

      .....

      .....






      **이 글 올리는 지금도 청개구리가 마치 작은 바가지를 긁듯 울고 있네요.

      참, 중요한 것 하나,
      동안 제가 게을러서 자주 못찾아뵙던 그 분도 다시 찾아뵈었지요.
      아마도 절 용서하시고 포근히 안아주실 것입니다.
      아니 이전에도 늘 절, 안고 계셨겠지요
      제가 그 분의 그 사랑의 온기를 잊고 있었을 따름일 뿐...


      2003년 10월1일 이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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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담기⑭



구례 지리산을 다녀오며 차 안에서....한 컷



    하늘을 찍는다는 것은 무척 재미있습니다.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그 모습에...

    비오기 전 날
    우연히 화장실 창문에서 바라다 본 노을...

    갑자기 온 전화를 받고 가보니
    글쎄, 아쉽게도 그냥 사라져 버리고...
    그 안타까운 아쉬움은 두고 두고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늘을 찍는다는 것은
    변화무상한 표정때문에
    멈출 수 없는
    그의 매력에 넋을 앗기는 게 아닐까요?


    큰 비 내린 뒷 날은 언제나 가을하늘 같습니다.

    하늘을 찍고 싶으시다면
    큰 비가 오고 난 다음 날 카메라를 챙겨 떠나세요.

    전 날 우뢰의 천둥 번개...그 고통 슬픔의 조각들을 청소하느라
    시침 뚝 딴 해말간 모습으로 나머지 잔해들을 바삐 쓸어 치우는 모습이 재미있거든요.

    상단 하늘 사진도 며칠 비 끝에 찍은 것이구요/구례부근에서 찍은,

    부천역사는 2002년 7월 여름 (루사??)태풍이 엄청난 피해를 주고 간 바로 다음 날이였습니다.

    맨 아래 타블렛화 황사낀 봄하늘의 해는
    사진으로는 제 역량이 부족하여...파인더에는 잡히지도 않을 뿐더러...
    해가 달로 보이는 신비감에 그림으로 그려보았습니다.





    이요조



아래는 부천역사





아래는 우리집에서 찍은 하늘들


수락산위에 구름 사이로 뜬 달 2003년 음력 8월 12일 달.....13일 부터 비 억수로 쏟아짐




밤하늘 양털 구름


저녁하늘/처음 찍어 본 핸폰 카메라/9월 13일



















아래는 서울하늘들





창경궁에서



운전하며 카메라 조작하다 나도 모르게 찍혀진 하늘,
길가엔 울창한 숲길이였는데, 나뭇잎 사이로 얼핏 얼핏 보이는 하늘....


2003, 8,15, 도봉산의 말복하늘


도봉산


타블렛畵/봄날 황사 낀 도봉산 하늘과 해














여우비






진눈깨비





잠자리와





가을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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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그림자












    물그림자



      정말 모를 일입니다.
      내 가슴 웅덩이에 찾아와
      한 점 흔들림조차 없이 빛으로 가득 채우시니,


      그 빛에 눈 부신 나는
      눈을 감습니다. 감았던 눈을 떴을 때
      당신은 이미 내 안에서 빛을 내며 살고계셨지요


      내 마음에 잠긴 당신을 내려다 봅니다.
      그 모습 그대로 떼 내어
      바람벽에다 못 하나 박아 걸어 놓을까요


      빛으로 눈 부신 님만 쏘옥 건져내어
      가락지로 만들어 내 손가락에 끼운다면
      너무 사치스러운 욕심일까요


      빛이 떨어져서 날이 저물고 나는 흔들립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말씀해 주세요
      "내 발목을 잡아주세요" 라고...


      밝음과 어둠의 어쩔 수 없는 시간,
      세상의 순리를 거슬러서라도
      사약처럼 다 마셔버리겠어요. 다 들이킨 후


      내 몸에 바라지창 하나 뚫어놓고
      어둔운 곳을 밝히는 작은 등잔이 되어
      님을 닮은 빛으로 나를 태우듯
      세상의 빛되어 그리 되살렵니다.





      사진:글/이요조














                ** 감사합니다.



                미루 칼럼 500회가 되었습니다.

                동안 중언 부언 글 같잖은 글로 지면만 오염시킨 점 사과 드립니다.
                500회에서 일단락 지으며... 잠시 쉬고자합니다.
                잠시 휴면기를 갖고 다시 초발심을 내고자 합니다.

                글을 쓰면서도 "이 게 아닌데..." 하는
                생각에 심히 부끄러웠습니다.

                10월 1일 다시
                만나뵐 때는 새로운 물로 고여있겠지요.
                처음의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동안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그 날까지 안녕히 계시옵기를....

                이요조 드림

                2003년 8월 16일
                    등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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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름:이요조





                      *언니에게서 얻어 온 된장에 박은 깻잎/옛 입맛이 그리워~~
                        

                        가족



                        **가족이란..곰삭은 맛이다.
                        요란하지도 않고 오랜 세월 입맛에 길들여진 그런 맛! 고향의...느낌!



                        ★어무이(1)



                        경상도 말로 시어머님을 수월하게 어무이라고 부른다.

                        어무이~~~

                        이 얼마나 정겨운 말인가.

                        언니네, 지금은 장가 간 첫 아들 녀석 형석이 어렸을 적에

                        제 에미가 할머니를 맨날 "어무이~~"라고 부르자

                        저도 한동안 제 할머니를

                        '어무이~ 어무이~~" 따라 다니며 불렀던 적이있다.

                        .....................................................

                        프랑스의 대문호 '빅톨위고'(1802~1885)는 늙어서도 곶간 열쇠를 자기가 관리했다고 어디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대문호인 그도 늙어서 외로웠기 때문이었다. 가족들과의 소원한 접촉으로 그가 생각해낸 발상이리라

                        내 어무이에게 난, 곶간열쇠를 내어 드렸다.
                        (참고로 우리집에는 차비라도 얻어 갈 시누이나 시동생들이 없다는 점이다./고명아들인 탓에)

                        누가 보면 엄청 효부라고 하겠지만... 난, 돈만지기를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

                        그 건 우리 식구들이 너무나도 잘 안다.
                        심지어 내가 덜렁덜렁 돈 내는 것도 싫어해서 누구에게 슬그머니 건네준다. 내 대신 계산 치르라고...

                        (물론 친지나 회사 회식 자리등)나 스스로 카운터에 나가서 돈 계산하기가 싫다.

                        왜 그런지 나도 모른다. 그냥,

                        그러는 나를 보고 그양반은...회장님 체질이라며 놀려대지만

                        일정한 액수를 드리고는 우리는 들며 나며 어머님께 돈을 요구한다.

                        "어무이.. 저 시장가게요 얼마 주세요"
                        "응? 시장가게? 그 배추 사 올 때... 속이 꽉 찬 것으로 사 오이라"
                        "어무이..지 목욕갈라고 예"

                        돈을 꺼내어 혹시라도 잘못 되었을까봐 세어보고 또 세고는 건네주신다.

                        아들 두 넘이 동시에 대학을 다닐 얼마동안 할머니와 끊임없는 실갱이가 계속되어졌다.

                        "할머니 돈 주세요"
                        "뭐라하노 어제 줬잖아"
                        "그 건 어제 용돈이지요. 차비하고 밥사 먹고 나믄 없어요..."
                        "아이다 어제 책 사고 남은 것 안즉 쪼메 있다 내 안다"
                        '맨날 맨날.. 두 넘이 이리 뜯어가대니.. 니 아부지 허리 휘일라~~"

                        입이 댓발이나 나온 넘 나에게 와서 돈을 내 놓으라 한다.
                        "내가 무슨 돈이 있어?"

                        아~ 이렇게 편리할데가...자식넘들과 눈 부라리며 안다퉈서 좋고
                        골치 아프게 돈 만지지 않아 좋고... 아들넘들에게 인심잃지 않아 좋고...

                        ㅎㅎ~
                        난 내가 쓸일에는 물론 카드 사용이다.
                        외출했다 오면 며느리 손에 뭐가 들렸나 궁금해 하시는 어머님...
                        난, 내 물건이라고 내 방으로 선뜻 갖고 들어 갈 수가 없다.

                        식탁위에 쇼핑본 것을 올려 놓으면..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마냥
                        잽싸게 다가오셔서는 하나 하나 뒤져 보시곤
                        "요건 얼마줬냐"
                        "예...XXX얼마 줬어요"
                        "에구..시상에나.. 시상에나.. 이게 이리 비싸나"
                        이런 대화의 되풀이가 마치 녹음 된듯 이어지는 우리 집,

                        그러던 어무이~~ 얼마전 눈병으로 본의 아니게 곶간 열쇠를 뺏겨? 버렸다.
                        그러시더니.. 시름 시름 앓기 시작하시는 거다.

                        요즘엔.. 속이 자꾸만 거북하다신다.

                        물론 비타민도 빼지 않고 꼭꼭드시지만... 아스피린이 좋다는 말씀을 듣고는
                        아스피린을 신경통핑계로(물론 혈압약이랑 신경통약을 늘 마련해 드리지만)
                        콩 줏어 잡숫듯이 드시고는 속쓰림병이 발단인가 보다.

                        아스피린은 다 좋은데.. 위장장애가 있다는
                        며늘 이야기를 하도 곧이 들으시려 하지 않길래
                        어제는 병원가서 선생님께 고자질을 해 버렸다.

                        '어무이가 아스피린을 너무 잡수세요"
                        "허~~ 할머니.. 아무리 좋은 약도 함부로 드시면 안돼요"
                        "특히 위가 약한 노인분들에게 위험할 수도 있어요"

                        어무이는 의사 샘님 앞이라 요기조기 아픈 이야기는 다 하신다.
                        안과도 아닌데.. 눈아프신 이야기 까지..
                        나를 바라다 보시는 의사 샘님께 보충 설명을 드리고..

                        '예, 두 쪽 다 백내장 수술을 받으셨거든요. 요즘은 심한 안구건조증에다
                        얼마전 결막염까지 앓으셨어요. 그 말씀이예요"

                        '어휴...갓난아기면 귀엽기나 하지.. 아...그넘의 아집은..."

                        영양제를 놓는 것을 보고 나는(무려 3시간)집에 다녀 온다고 말씀드리니 불안해 하신다.
                        흡사 어린아이 같으시다.

                        집에 와서 일해야지 하다가 얼마나 고단했는지..깜빡 잠이 들었다.
                        전화 벨 소리에 놀라 일어나니..할머니 주사약 다 들어 갔댄다.

                        이틀 째 죽을 끓이고 있다. [기능성 위장장애]

                        "에고 어무이..여태 건강하게 잘 사셨으니.. 걍 봐드릴께여 한 십년은 더 사셔요"
                        "야가 무신 소리하노 어잉? 차라리 욕을 해라"
                        "헤헤~~ 어무이 괜히 좋음써~"

                        '빨리 회복하세요.
                        그래서 이 며느리 놀러 나갈 때... 용돈 좀 챙겨 주셔야지요'







                        ★형부(2)



                        언니와 울집양반이 개띠 동갑이고
                        형부는 좀 나이 차이가 나서 나랑 띠동갑이다.

                        울집 양반은 동서지간에도 형님을 깍듯이 잘 대할 뿐더러
                        고명아들이라 천지간에 형제누이가 없어
                        나보다도 더 내 혈육들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 맨 위에 누나 언니들, 매형지간에 사이가 좋으니 덩달아 아랫물도 좋아질 밖에....

                        내 아래,(男) 그 아래로 여동생이 하나 더 있건만
                        아무래도 언니네와 우리가 갭(gap)이 좁아 뜻이 더 통한다.

                        부산사는 언니는 분당을 자주 오르내린다.
                        자녀 역시 우리와 같은 딸 아들 아들 수순이다.

                        둘째, 큰아들만 부산에서 신접살림을 따로 채렸고
                        큰 딸은 분당에 살고, 총각인 막내 넘도 분당에다 작업실겸(일러스트레이터) 홀로 둥지를 틀었다.

                        아직은 홀로인 그 넘을 돌보느라 한 달에 한 번 꼴은 족히 올라오는데
                        우리부부는 그 중 공휴일이 끼이게 되면 우리의 분당콘도?로 모이는 날이다.
                        가면 꼭 1박을 하고 다음날은 시간이 허락 되면 두집 중늙은이들이 야외로 나간다.

                        친구~~ 피붙이 친구,
                        그래 형제간처럼 좋은 평생친구가 또 어디에 있으랴~

                        올라 오는 날, 언니는 청소다 뭐다 언제나 바쁘기 마련
                        난, 분당 갈 때면 저녁 메인 메뉴를 주로 챙겨간다.
                        도우지는 못할 망정 일손을 덜기위해..

                        "오늘 저녁은 낙지전골이야"
                        "오늘은 추어탕~ 해갈꺼야"

                        질녀와 이질서(조카사위)도 함께 모이면 얼마나 잘 먹는지...
                        미리(앞당겨) 장모의 심정을 알 것만 같다.

                        여러가지 밑반찬을 힘들게 해 오는 언니..
                        딸네에게도 주고 아들에게도 주고 나까지 나눠줘야 하니...
                        얼결에 얻어 온 된장에 박은 꺂잎이 너무 맛있었다.

                        시외전화를 해서는 친정 엄마에게 하듯 물어본다.
                        "그 거 어떻게 담어? 응? 된장 쏘스를 만들라고...응..그래서...그 다음?...."
                        그런 언닌데... 가까이 분당까지 왔다는데... 한달음에 안달려 갈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매사에 우리 형제(독수리 오형제)의 맏이 역활을 잘 해내는 언니와 형부,
                        .............

                        외손주녀석들이 다 돌아가고 저녁 설겆이가 끝나갈 무렵
                        형부는 컴퓨터로 벅스뮤직 노래와 가사를 찾아 노래방 분위기로 만들고
                        (처제에게 배운 실력으로)

                        끼가 많은 개띠들은 벌써 어깨가 출렁이기 시작하고
                        언니는 설겆일 하다말고도 어깨가 우쭐대기 시작한다.
                        처형과 제부의 한판 어우러진 관광버스춤이 전개되고

                        끼가 젬병인 형부와 나는 그래도 열심이다.
                        노래도 함께 불러주고 손뼉도 쳐 댄다.
                        부지런히 Cj도 해야하고...

                        얼마전 난 작은 갑상선 수술을 했다.
                        결절이라 관둬도 되는데.. 물혹안에 또 생긴 혹도 의심스럽거니와 결절이 있는 왼쪽으로만
                        유독 여러증세가 나타나서 일단 수술을 하기로 했다.

                        종합병원 과장으로 있는 이질서가
                        "이모님.. 저 역시 찜찜하니 그냥 수술해 버리자구요 가족처리하면 돼요"
                        우리집하고는 거리상 엄청 멀었지만...이질서가 있어 괜스레 든든하고
                        언니와 형부가 그에 맞춰 간병하러 올라 오기로 해서 마지 못한척 D-day 를 잡았다.

                        몇 년 전에도 디스크 수술받을 때.. 언니가 달려와서 몇날며칠을 잘 해 주었는데,
                        막상 이 번 수술하는 날..(별 것 아니지만)
                        항상 바쁜 남편도 없고 언니도 없고 형부혼자서 지켜보게 되었다.(첫 수술시간이라)

                        수술예후야 아무렇지도 않지만..
                        난, 언제나 MRI 조영제 알러지나.. 마취 알러지가 심한 편이다.

                        아침 첫 수술을 마치고 나온 내내 다음날 새벽까지 심한 구토에, 간호하는 언니 꽤나 힘들었을 거다.

                        좀 진정이 되자 거짓말 같이 멀쩡해졌다.
                        형부가 보시다 두고 간 신문을 뒤적이다가 신문 윗쪽 여백에 씌여진 낙서를 우연히 보았다.

                        몇時 몇分에 入室... 몇時 몇分에 手術中... 몇時 몇分에 回復室... 기타 등등...

                        아! 이런~ 눈물이 핑-돌았다. 마음 졸이며 매 순간을 수술실 밖에서 내내 지켜보셨구나
                        얼마나 힘드셨을까? 더군다나 남달리 예민한 성격에....


                        난, 안다.
                        지금은 아주 먼-옛날일로 지우고 싶은 악몽같기도 하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내 아이의 연이은 수술.

                        남달리 간이 좀 큰 나는 그 중 혼자서 지킨 적이 있었는데...

                        정말이지 물도 한방울 마실 수 없었다.

                        누가 곁에서 말이라도 시켜줬으면..입은 바짝 바짝 타들어 가는데

                        바로 옆에는 따듯한 차가 동전만 넣으면 쏟아지고 물은 손끝만 움직이면 마실 수 있는데

                        마시질 못했다, 아이에게 죄스러웠다. 내 아이는 죽어있는데....에미가 까짓 물을 마신다는 게

                        용납이 되질 않았다.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정말 피가 마른다는 표현이 옳았다.

                        그 다음 수술에서는 많은 식구들이 있어서 웃고 떠들고 식사하러들 나가고

                        와르르한 소용돌이에서 완전히 탈피할 수가 있었다.

                        맨 마지막 수술은 난 아이의 입실을 보자 일이있어 집으로 냉큼 달려왔다.

                        그리고 부랴 부랴 달려가니 아이는 벌써.. 병실에 누워있었다.
                        (하기사 보호자가 필요없는 병원이었으니)

                        그만큼 간이 더 커지기 시작했다는 표현이 맞으리라

                        .................

                        그렇게 어려운 일을 형부 혼자서 지켜냈으니,

                        그 것도 난생처음 겪어보는 수술실 밖에서...시간과 마음을 졸이시다니.

                        부산 내려가신 형부는 당장 병이 나셨다한다. 한동안 힘들게 앓고 나셨다.

                        난 안다. 이해가 가는 일이다.

                        처음 겪어보면 얼마나 힘든 일인데...


                        "형부 사랑해요~~"







                      *내가 된장쏘스로 준비한 깻잎....익혀야지 엄마의 손 맛~ 그 깊은 맛이 우러나지~






                      http://column.daum.net/Column-bin/Bbs.cgi/miru3/dwn/zka/B2-kB2-t/qqfdnum/11/qqsubno/4/qqfname/Dsc01375.jpg

                       

                       

                       

                      <img src=http://column.daum.net/Column-bin/Bbs.cgi/miru3/dwn/zka/B2-kB2-t/qqfdnum/11/qqsubno/4/qqfname/Dsc01375.jpg>






                      ◎ 이름:이요조



                        

                        여름날 아침을 열며..


                        모기가 물어서 잠이 깼다.
                        새벽, 소나기소리에도 잠을 좀 설쳤는데..
                        무척 가려움을 타는 난 도저히 잘 수가 없어 마지 못해 일어났다.
                        이러니 여름밤은 다들 잠을 설쳐댄다지,

                        혹시나 해서 사다둔 물파스형 바르는 약을 찾아 새삼 이름을 보고는 (물린디액/약명)나혼자 피식~웃었다
                        어쩌면 나하고 비슷한 수준이네..사투리 어울리잖게 쓰긴..

                        다시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아 모처럼 어제부터 독서하던 책을 찾아 들었다.
                        마흔다섯난 여자의 글인데.. 지난 번에도 [일본은 없다]란 책을 써서 꽤 인기가 있었다 한다.
                        (애들이 보던 책,, 아이들 전언에 의하면)
                        [대한민국은 있다] 그래서 제목이 여장부답게 광활해서 오잉? 여자가 국책을 논하다니...호! 대단한 일일쎄,
                        기대감에 책을 펴서 저자의 이력을 보니.. 그럴싸해서 읽어내리니..여자치곤 꽤 재미있는 수다다.
                        새벽 6시에 책이나 쪼메 읽어볼까 하고 제일 밝고 시원한 거실 한쪽을 골라 얇은 패드를 깔고 드러누웠다.


                        비는 멈췄지만 날씨가 흐린 탓인지 좀체 촛점이 잘 맞춰지질 않는다.
                        내 눈으로 책을 읽기에 밝기가 별로이다. 불을 키자니 그렇고
                        그래도 촛점을 모아보자! 안과 다니는 데마다 내 눈이 좋다고들 감탄하지 않았던가?
                        이 나이에 어두운 데서 책을 읽다니...
                        (노안인 탓에 한동안 가시거리 촛점을 스스로 맞추어야 함)
                        돋보기를 찾아서 낄까 하다가... 아서라.. 돋보길 쓰게 되면 천혜로 부여받은 조절능력마저 퇴보할 것 같아 관두었다.

                        우리나라 변호사 이야기에서 [그가 변호사를 그만두는 이유]

                        ****그는 변호사이다. 이른바 '사'자 붙은 '쯩'을 지닌 이들의 시대가 한국에서 마무리 '쫑'을 했다해도
                        아직은 '그래두......'하는 직업임에 틀림없다.*******

                        는 글에 가서 그만 걸려 넘어졌다.
                        쯩이 꽝인지 쫑인지,,, 구분이 안갔다. 다른 글은 그런대로 감이 잡히는데...
                        쫑짱쯩꽝인지... 거기에서 맴을 돌다 피식 헛웃음을 웃고는 걍 책을 덮었다.

                        나도 우리 어무이 마냥 무료했나 보다.
                        귀에서 흥얼 흥얼 멜로다가 흐르는 것 같아 속으로 불러보는데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웃기지도 않는 가사다

                        [복남아 우지마라 오빠가 있다. 니가 울면 내눈에서 피가 흐른다아~~~ ]

                        이 웃기지도 않은 가사...어디서 왔을까?
                        내가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 아버진 일제..나쇼날로 기억되는 전축을 하나 사 오셨는데..
                        턴테이블이 위에 뚜껑만 열면 되는.. 지금의 전자렌지만한 회샛빛의 전축이였다.

                        아버진..... 집에서 쉬시는 날이면 턴테이블을 여시고는
                        축에다가 동그란 프라스틱을 하나 더 끼우고는 일본 도너츠판(SP)을 주로 들으셨다.
                        그 당시 우리의 것, 크다만 LP레코드 판에 비해서 노래는 몇 곡 들어있지 않았지만 음질은 월등히 나았다.

                        여기다가 그 멜로디를 옮길,, 수준은 못되고 늘 귀에 익은 이 멜로디에 어린 내가 붙여놓고는
                        아무도 모르게 속으로 따라 불렀던게 아닌가 싶다.
                        홍도야 우지마라에서 따온 듯한.. 홍도가 왜 복남일까? 그 멜로디가 왜? 내 귀에는 영낙없는 복남이로 들렸을까?
                        아니면 흥얼거리시던 아버지의 일본말 가사를 알아들을 리 없는 내가 내맘대로 각색을 했을까?

                        간혹 아버지가 생각날 때면 아직도 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누가 들음 아마도 포복졸도할 가사...
                        무슨 악기인지..유난히 슬프게 단절되던 악기소리...에 이어 부드럽게 이어지던 애절한 멜로디...
                        아버지는 아마도 젊은 시절을 보낸... 그 곳(일본)의 향수를 음악으로 달래시는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니,

                        육이오 때 피난 내려왔던 지구레코드사가 동네에(부산) 있어 엄마는 외삼춘(외가의 양자/엄마의 사촌동생)
                        을 거기에다 취직시켰더니 외삼촌은 간혹 LP레코드판을 거저 가져다 주었는데
                        [흙냄새 땀에 쩔은 베적삼만 못하더라.....] 뭐, 이런노래..였다.

                        이상하게도 우리는(형제) 어른들의 유행가를 따라 부르면 큰일나는 줄 알았다.
                        속으로도 따라 불러보지도 않고 자라났으니,
                        후에야 독수리 오형제(우린 그렇게 부르고 있다. 각 배우자들은 비독수리 오형제)들은
                        모두다 끼가 맹탕인 젬병이란 걸 뒤늦게사 알았지만...

                        이런 저런 씨잘때기 없는 옛 생각에 혼자 누워서 뒹굴거리다 보니 제법사위가 환해졌다.
                        책을 들고보니 이젠 읽을만하다, 시간을 보니 7시 10분전이다.

                        그러나 책을 아예 저만치 밀어 버렸다.
                        그 작고 예쁜 회색빛 전축에 얽힌 애틋한 사연을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했다.

                        언니가 부산여고에 들어가고 내가 부산여중에 들어가자 우리 아버지는 일류 여중생,여고생인 된
                        두 딸을 데리고 아침 출근길이 뿌듯하다고 하셨다.

                        몸이 약한 언니가 혹시 공부에 뒤 처질쎄라 가정교사를 두었는데..
                        칫! 나는 건강하고 말없이 잘 해내니까... 머리가 좋다고? 믿으셨고
                        언니는 약한 몸에 코피를 간혹 쏟아가며 밤잠을 자지 않으니..
                        조금은 머리가 부족한 노력형이라고 단정하신 애틋함이어선가 보다.

                        서울대 국문과에 적을 두었는데... 인물 좋고... 이북출신이라 사투리 쓰지 않고
                        단..소아마비로 심한 지체장애가 있었다.
                        목발을 짚고 다녔는데 우리 집에 들어오면.. 난 그의 비참한 모습에 자리를 피해 주었다.
                        목발을 벗어던지고 나면 방에서 상체를 두 손으로 옮겨 다닐 정도의 중증이였다.
                        그러나 내가 여지껏 만나보지 못했던 지식에로의 열린 문이 바로 그였고...
                        그에게서의 어떤 좌절이나 비굴함은 전혀 찾아 볼 길 없을 정도로 멋져 보이기만 했다.

                        방학이면 아예 언니를 책임졌는데.. 난 느꼈다. 그가 언니를 꽤나 좋아한다는 것을..
                        하지만.. 언니가 둔한건지.. 아니면 아예 장애인이라 상상도 않는건지..

                        언니는 무뎠다. 그래서 나도 무관심한 듯했고 아마 우리 부모들도
                        그 점을 어린 나보다 더 잘 알고 계셨으리라.
                        그런데 문제는 막상 다른데서 불거졌으니 난 말도 잘 않하는 편이지만(원래 뚱해서)
                        장애자라도 상관없이 그 오빠를 혼자서 좋아하고 있었다.

                        일부러 집안에서도 피해 다닌 것을보면.. 뚱한 내가 수줍음을 탈 정도라면..그래선지.. 그와의 별 기억도 없는데..
                        여름이 생일인 나... 어느날 그에게서 엉뚱한 선물을 받았다.

                        Lp레코드판 한 장이었다. "Stephen Foster" 곡으로만 된...
                        그날 그와의 공부는 나까지 동석시킨 음악과 감성에 대한 공부였다.
                        내게 아무도 일러주지 않은 중요한 첫 공부였다.

                        좋은 음악을 들어라.. 그에 맞춰 감성을 그렇듯 키워 나가야한다
                        그리고 포스터 곡에 얽힌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무려 3~4 시간을... 진지하게
                        난, 아직까지도 그런 진지한 수업을 받아보지 못했다.
                        그만큼 그의 [음악과 감성] 수업은 내 사춘기를 그나마 온전히 지켜 준 버팀목이 되었다.

                        아마 그 수업 시간 후.. 나는 그를 사랑하게 되었나보다
                        그와의 상상을 꿈꾸어 보았다. 휠체어를 밀고 다니는 젊은 새악시, 나...
                        그렇게..내 소녀시절, 엉뚱한 망상의 시절은 지나가고...
                        그 후 그 선생님 오빠는 서울 유명 일간지에 기자로 있다고 들었는데 과연 그 몸으로 잘 버팅겼을지..

                        당사자인 언니는 관심조차도 없어했다.
                        생전 연애라고는 못해 봤을 것 같은 언니...
                        멋부릴 줄도 모르고 높은 뾰죽구두 한 번 신을 줄 모르던
                        바보맹추 언니는 다른 사람들의 상상을 뒤엎고 대학을 졸업하자 마자 형부에게 달랑 업혀가 버렸다.
                        그 때 형부는 市 공무원이셨는데.. 市 중책의 자리로 퇴임하시고 지금은 한문공부와 등산등으로
                        소일하신다. 아마(칼럼에 올린) 이글도 형부가 보실텐데... (부끌~~)

                        시집가는 길에도 엄마에게 깔깔웃으며 손을 흔들고 떠나는 철없던? 언니,
                        집에 들어오신 엄마는... "철 없는 것 못때 먹은 것 같으니라구~ " 하시며 우셨다
                        해서 난 이담에 시집갈 때는 엄마를 위해 좀 울어 드려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정작 시집가는 날.. 난 웬지 우울했다.
                        일년만 더 사셨더라도...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막상 눈물은 흐르지 않았는데,
                        신랑신부 友人들 사진 찍으러 내 곁에 다가 선 신랑우인 사회자가 가만히 놀렸다.
                        신부가 왜 우냐고...아마도 콧등이나 눈시울이 붉어졌거나 콧물을 훌쩍거렸나 보다.

                        시집온 후로도 내가 즐겨 듣던 내 레코드판을 여러 번의 이사에도 늘 챙기고 다녔는데...
                        한 10년전 아깝지만 다 버렸다.
                        지하에 넣어두었다가 보니.. 텐테이블위에 얹을 수 조차도 없을 정도로 많이 휘어져서 바늘이 튈 정도였다.

                        낫킹콜, 루이 암스트롱...팹분등..원판도 꽤나 있었는데..
                        물론 사춘기 생일의 첫 선물, 포스터곡의 음반도 챙겼음은 당근이였다.

                        버리고 나니 어디서 *상식*으로 줏어 들었다.
                        휘어진 레코드판을 아래 위 유리판 사이에 찝게로 끼워 여름 볕에다 놔두면 원상복귀한다는...

                        에고 아까운 것, 그러게 사람의 생각하는 머리는 무궁무진 하다니께....

                        부산 갈려다가 (음력 7월2일/엄마제사) 못내려가고
                        모처럼 흩어진 식구가 다 모여 늦잠을 즐기는 일요일 아침...
                        뒹굴대면서 별별, 생각을 다 하고 있는 내 모습이라니...

                        이젠 일어나서 식구들 아침상에 갈치에 애호박 쏭쏭 썰어넣고 새우젓 간을 한 찌게나 맛있게 끓여야겠다.

                        '아함~~ 이제 일어나야지'


                        ** 그 때, 일어나서..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윗 글을 다 쓰고는 식구들 아침을 만들어 먹인 후
                        나는 톰소오녀가 무더운 여름날 담장 페인트 일을 놀꺼리로 만들듯이..
                        식구들에게 일꺼리를 놀꺼리로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나는 사과를 댓가로 얻었다.
                        세 남자에게 계단 물청소를 하게하고.. 똘이를 목욕시키고 털을 깎이고 버릴 것들을 미련없이 갖다 버리고,
                        ㅎㅎ~ 게으른 엄마가 모처럼 휴일을 맞은 가족들에게 시켜먹는 일이라니,

                        내가 부쩍 늙어졌나? 아님.. 몸이 좀 부실해진 게으름도 나름대로 건지는 게 다있네,
                        요즘 아이들과 별반 다를바 없는 배타적인 내 아들들이 모처럼 내 자식으로써 믿음직한 자리매김을 한,

                        일 잘 시켜 먹고도 대신 얻어 먹은 톰소오녀의 사과,
                        내 소중한 아이들에게 가족의 구성요소 즉 일원임을 확인하는 패밀리즘을 각인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음을 뉘가 알리..

                        딸은 주방에서 딸그락거리며 그릇 정리를 하고,
                        형제는 둘이서 모처럼 머리를 맞대고 똘똘이를 윽박질러가며 어쩌면 멋진 미용(컷)을 하나? 궁리를 다 하고

                        바깥에서 막 키우느라 개전용 샴푸도 없는 불쌍한 똘이...
                        혹시나? 하고 디려다 봤더니.. 지들도 아까와 잘 못 쓰는 Calvin Klein 의 Obsession
                        샤워 젤을 사용하느라 진한 향이 코를 훅! 찌른다.


                        ㅎㅎ 거참,



                        2003년 8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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