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7,8일 감
올해로 구순이신 어머님...
며느리 들으랍시고 큰소리로 말씀하신다.
"에고....올해는 감이 얼마나 달렸는지....그 말이 맞네....여자가 첫 감을 따면 해걸이 하는 벱이라고~"
순간..."어.머.니~"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주 작은 감나무가 하나 있는데...몇 해전 교회 집사님이 작대기 만한 무얼 들고 오셔서 마당에다 심어주시길래...
뭐, 저런걸,...언제 커서 감나무가 되겠다고 싶어서(정말 잔가지도 없는 막대기 같았으므로)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는데 세상에나 재작년 키가 사람 키 정도 밖에 안 되는 게 무려 열네 개의 감을 조로롱 달고 있었다.
예쁜 낙엽도 다 떨어지고 꽃도 하나 없는 겨울 마당에 서서 환히 불을 밝히듯 하는 작은 감나무,
비록 떫은감이었지만...꽃나무보다 훨신 보기 좋았다.
초겨울 내 두었더니...어느 날 매일 아침 요란한 까치소리에 나가보니..어느새 사람시선이 가지 않는 뒤쪽은 까치가 거의 다 파먹은 게
아닌가?
매일 감을 쳐다보았는데도....이런, 까치가 사람을 감쪽같이 속이다니....헛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온전한 여남은 개는 까치가 다 먹기 전에 어머님이라도 드시게 하려고 얼른 다 따 버렸더니...
울 어머님, 첫 감은 남자가 따야 하는 법인데...라며 혀를 끌끌 차셨다.
처음엔 그 말씀을 무심코 들어 넘겼는데...그 다음해 감은 달랑 네 개만 달렸다.
어머님은 작년 내내 그러셨다. 그러시다가 오늘 드디어 감꽃이 맺힌 걸 보셨나보다.
또 시작하시는 말씀....많이 매달린 것도 화근이다.
"여자가 첫 감을 땄으니~~"
올해는 감나무 키가 2m를 넘어섰다. 가만히 보니 새가지 에서만 감 꽃이 매달렸다.
대충 세어봐도 60개도 훨씬 더 된다.
기껏해야 20cm길이의 새가지에 매달린 꽃이 심한 거는 바트게 조로롱 매달렸으니...당연히 그 다음 해엔 4개만 달렸지...그러다가 올
해는 무려 60개도 더 되게 꽃이 매달렸으니~~
내 무지한 안목으로도 불가능하다.
울주군 배농장에서 배워 온 게 있다.
꽃을 아예 처음서부터 따 주던 것을..물론 자연현상으로 낙과란 것도 있지만...미리 꽃을 따내 주던 방법을...
나도 감 꽃을 솎아야겠다.
어떻게 작은 감나무가 낙과도 하나 없이 다 매달리는지...작은 감나무의 되바라진 성격?을 안 이상 내년에 어머님..후환을 물리치려면 미리
적절한 산아제한을 내가 시켜야겠다.
해서 검색을 했더니... 제 몸피에 비해 너무 많이 맺히면 영양분이 딸려 자연 해걸이를 할 수밖에
없다한다.
아! 그랬었구나....해서 아주 작은 감나무가 열댓 개나 되는 감을 조롱조롱 매달고 서 있었으니...
올해는 몇 개만 살려야하나?
내가 자란 집은 도회지 복판인데도 감나무가 있었다.
그 감나무는 아주 씨알이 굵고 길쭉하였는데(경상도 말로는 '동이감'이라던)
겨울에 홍시로 만들어 아주 비싼 가격에 팔리는 그런 종자의
큰 감이었다.
감꽃을 가지고 논 기억보다 풀쐐기에 쏘여서 무지 아파 울었던 기억이 더 많은.....
풀쐐기에 쏘이면 무시로 콕-콕- 신경을 자극하는 아픔이라니, 두고 두고 아팠었다.
그리고 풀쐐기의 똥이나 주검이 내어놓은 초록색 물은 시멘트 마당에서 아무리 물로 닦아도
잘 지워지지도 않던 기억~~
대신 시골 외가에 가서는(여름방학) 소 먹이러 가는 아이들을 따라 다니노라면 군데군데
논고랑 진흙 속에 묻어 두었다 꺼내먹던
침시며...
외할무이가 쌀겨 속에 묻어둔 말랑 말랑말랑 노오랗게 익은 감을 꺼내줄 때 그 맛이라니....
감나무는 정원수로도 훌륭하다.
가을이면 감잎 낙엽은 꽃처럼 아름답다.
초겨울....붉은 감을 매달고 있는 감나무의 자태는 또 어떠하고....
★枾葉題詩(시엽제시)
지필묵이 귀했던 시절 감나무잎은 훌륭한 필기장이 되었다. 주운 잎을 한 장씩 펴서 책갈피 같은 것에 끼워 무거운 것으로 눌러 놓으면 된다.
여기에 먹으로 글씨를 쓰면 잘 써진다. 다른 잎은 미세한 털이 있어서 먹이 잘 묻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감나무는 매끄러워 먹이 잘
묻는다.
기록한 감잎의 꼭지 쪽에 구멍을 뚫고 묶으면 작은 책이 된다. 얼마나 운치 있는 책인가. 한 권의 자작 시집을 만들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옛 시인 묵객들은 시엽제시(?葉題詩)라 하여 말린 감잎에 시를 써서 주고받았다.
감나무잎에 연시를 써서 연인에게 전하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었다. 시정이 담긴 천연의 멋진 러브레터라고나 할까. 한 장의 낙엽에 지나지 않지만 옛 선비들의 낭만이 서려 있다고
할 수 있다./검색발췌
*枾葉(시엽은 감나무 잎을 뜻함)
아래 검색해 온 글을 찬찬히 읽어보시면 매우 재미있고 유익한 감나무의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저도 이렇게 마음에 들도록 나무에 한한
한방에 알찬 검색은 처음 만나는 듯 합니다.
감나무는 성질이 이상해서 옮겨 심으면 잘 살지 못 한다. 특히 늙은 나무를 옮겨 심을 때는 여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 일본에 자생하는 온대성 감나무의 경우 이식성은 더욱 나쁘다. 일찍이 서양에서는 동양 원산의 감나무가
원예 가치가 뛰어난 식물이라고 인식하여 대량 재배를 서둘렀지만 번번이 실패했다고 한다.
가을 늦게 잎이 떨어지고 붉은 열매만 가득 달린 감나무를 보면 지극히 아름답다. 산 속 고즈넉한 산사의 뒤뜰에
선 늙은 감나무는 그 사찰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영국 왕립식물원 큐가든에는 가장 잘 보이는 광장 중앙에 한국산 감나무를 심어 놓았다.
감나무가 그만큼 중요한 수목이기 때문이다.
감나무꽃은 당년에 자란 녹색 가지에 핀다. 잎 사이에서 4장으로 된 노란 꽃잎은 끝이 밖으로 말린다. 수정이
끝나면 꽃 전체가 떨어져 내린다. 이 꽃을 주워 실에 꿰면 꽃목걸이가 된다. 큰 것은 손가락에 끼울 만하다. 초여름의 감꽃은 어린이들의 꽃반지가
되어 유년의 추억으로 남게 된다. 감꽃 중에서도 작은 돌감에서 떨어진 것은 맛이 달다. 떫은 감꽃이라도 시들시들 말리면 떫은맛이 없어진다.
어린이들의 군것질감이 된다.
감나무가 100년이 되면 1000개의 감이 달린다고 했다. 감나무 고목을 보고 자손의 번창함을 기원하는
기자목(祈子木)으로 생각한 것도 바로 이런 까닭이다. 감나무는 잎이 넓다. 가을에 붉은색으로 물드는 단풍이야말로 풍성함을 전해 주는
표상이다.
지필묵이 귀했던 시절 감나무잎은 훌륭한 필기장이 되었다. 주운 잎을 한 장씩 펴서 책갈피 같은 것에 끼워 무거운
것으로 눌러 놓으면 된다. 여기에 먹으로 글씨를 쓰면 잘 써진다. 다른 잎은 미세한 털이 있어서 먹이 잘 묻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감나무는 매끄러워 먹이 잘 묻는다.
기록한 감잎의 꼭지 쪽에 구멍을 뚫고 묶으면 작은 책이 된다. 얼마나 운치 있는 책인가. 한 권의 자작 시집을
만들어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옛 시인 묵객들은 시엽제시(?葉題詩)라 하여 말린 감잎에 시를 써서 주고받았다.
감나무잎에 연시를 써서 연인에게 전하면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믿었다. 시정이 담긴 천연의 멋진
러브레터라고나 할까. 한 장의 낙엽에 지나지 않지만 옛 선비들의 낭만이 서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당의 단성식(段成式)은 《유양잡조(酉陽雜俎)》에서 감나무를 예찬했다. 감나무는 수명이 긴 나무이며, 좋은 그늘을
만들어 주고, 새가 집을 짓지 않으며, 벌레가 꾀지 않는다. 또 단풍이 아름답고, 열매가 먹음직하며, 잎에 글씨를 쓸 수 있으니 칠절(七絶)을
두루 갖춘 나무라 했다.
감나무는 잎이 넓어 글씨 공부를 할 수 있으나 문(文), 목재가 단단해서 화살촉을 깎으니 무(武), 겉과 속이
한결 같이 붉으니 충(忠), 치아가 없는 노인도 즐겨 먹을 수 있는 과일이니 효(孝), 서리를 이기고 오래도록 매달려 있는 나무이니 절(節)이라
했다. 또한 목재가 검고(黑), 잎이 푸르며(靑), 꽃이 노랗고(黃), 열매가 붉으며(紅), 곶감이 희다(白)고 하여 오색오행(五色 五行),
오덕오방(五德五方)을 모두 갖춘 예절지수(禮絶之樹)로 아꼈다. 수많은 나무 중에서도 감나무를 으뜸으로 여겼다.
옛날에는 감나무 목재를 쪼개 속의 무늬를 보고 점을 쳤다. 감나무는 변재가 희고 심재는 검은색을 띤다. 나무
목재의 무늬에 따라 산수문도 되고 문자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것을 보고 길흉을 점치기도 했다.
시골 어느 마을을 가 보아도 감나무가 없는 마을은 없을 것이다. 감나무가 많은 것은 다른 과일나무에 비해 감이
식량이 되었던 때문이다. 밤이나 배, 능금, 복숭아, 살구 등 많은 과일나무가 있지만 오래된 나무는 흔치 않다. 그만큼 중요한 과수로 생각하지
않았던 때문이다. 밤이나 대추를 제외하면 다른 과일은 저장이 잘 안된다. 밤은 건율(乾栗)로 가공하고 대추도 그대로 말려 저장한다.
곶감(乾?)은 감을 깎아서 말린 것이다. 잘 말려 독에다 저장하면 이듬해 풋감이 나올 때까지 보관할 수 있다.
따라서 당시의 겨울 저장 식품으로 이 보다 좋은 것이 없었을 것이다. 곶감이 마르면 과육 속의 당분이 밖으로 빠져 나와 하얀 분으로 뒤덮인다.
이 분을 시설(?雪) 또는 시상(?霜)이라 하는데 하얗게 돋아난 것일수록 맛이 달다. 그래서 곶감을 백시(白?)라 부르기도 한다.
감은 유난히 이름이 많다. 미숙과도 말랑말랑한 것은 먹을 수 있다. 이것을 풋감이라 한다. 겉이 주황색으로 잘
익었어도 단단하면 떫어서 먹기 곤란하다. 이런 것은 땡감이라 한다. 땡감을 말랑말랑하게 후숙 시키면 연시(軟?) 또는 홍시(紅?)가 된다. 물에
담가 떫은맛을 없앤 것을 침시(沈?)라 한다. 감을 불에 그을려 말리면 오시(烏?)가 된다. 한방에서는 기생충을 죽이고 상처의 고름을
없앤다.
감의 품종에 따라 고종황제가 즐겨 먹었다는 고종시(高宗?), 납작하고 껍질이 얇은 반시(盤?). 작은 감이 많이
달리는 돌감 따위가 있다. 최근 남부 지방에서 많이 재배하는 단감은 처음부터 떫은맛이 없어서 소비자의 인기를 얻고 있다.
감나무는 식용으로서의 감 외에도 약재로 쓰였던 자원식물이다. 감꼭지는 딸꾹질을 멎게 하고 기침과 트림을
다스린다. 감나무 잎은 차가 되었다. 비타민C가 가장 많이 든 과일이 바로 감이다. 곶감을 달여 마시면 설사를 멎게 한다.
떫은 감에서 뽑은 즙은 옷감을 염색하는데 쓴다. 제주도의 작업복인 갈옷은 감물을 들여 붉게 한 것이다. 감에서
뽑은 탄닌은 잉크, 페인트 첨가제로 쓰고 의약품을 만든다.
한국의 전통 가구는 좌우대칭의 미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 가장 합당한 목재가 바로
감나무이다. 감나무 목재를 반으로 켜서 펼치면 좌우의 무늬가 대칭이 된다. 반다지, 옷장, 머릿장 같은 가구에 먹감나무 목재판을 붙이면 좌우
대칭의 무늬를 살릴 수 있다.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어서 예로부터 먹감나무 목재는 전통가구 제조에 널리 쓰였다.
그러나 귀중한 먹감나무도 70년대 나무젓가락이 유행하면서 늙은 감나무는 목재용으로 잘려 나갔다. 최근에는 골프가
유행하면서 한국산 감나무 목재가 골프채의 우드헤드로 최고라 하여 수출까지 하고 있다. 감나무의 수난시대가 열린 셈이다.
온대성 감나무 목재가 가구재로 최적이 듯 인도의 열대성 감나무류의 목재도 널리 쓰인다. 단단하기가 쇠와 같고
속이 검은 것도 있어서 휴대용 호신불을 깎는데 좋다고 한다. 또 각종 의식용 불기 제작의 재료로 쓰이니 인도감나무(鎭頭迦)야말로 없어서는 안 될
성수(聖樹)인 셈이다.
불교가 중국을 거쳐 대륙의 끝 한국과 바다 건너 일본에 전해지면서 불교와 관계있는 식물도 함께 전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열대성인 교목들은 심어 가꿀 수 없었으므로 그 지역에 자생하는 비슷한 식물을 성수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전국의 각 사찰이나 불심이
깊은 가정에서는 감나무를 즐겨 심고 가꾸면서 열매를 따먹었던 것 같다.
불교의 나라 인도는 열대 기후대에 속하므로 갖가지 진귀한 과일이 풍성하다. 불경 속에는 이러한 진귀한 과일이
나오지만 대부분 산스크리트 어를 한자로 음역했기 때문에 잘못 전달되는 수가 많다. 특히 한자 번역본 불경을 읽어야 하는 우리로서는 경전 속의
식물이 실제 어떤 식물인지 궁금할 때가 많다.
대반니원경 사의품에는 진두가(鎭頭迦)라는 과일이 나온다. 달콤한 맛을 지닌 열대성 감나무의 열매를 말한다.
비슷한 것에 독이 있는 나무가 있어서 진리를 찾는 수행자가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눈을 길러야 한다고 설파하고 있다.
과수원에는 두 가지의 과일나무가 자란다. 하나는 가라가(迦羅迦)이고 다른 한 나무는 진두가이다. 두 가지 나무는
잎과 꽃이 비슷하고 열매까지도 서로 닮았다. 진두가는 맛이 달지만 한 그루밖에 없다. 그러나 쓴 열매가 달리는 가라가 나무는 많다.
농장의 일꾼이 진두가 열매의 맛만 보고 가라가까지 한꺼번에 따서 시장에 내다 팔았다. 많은 사람들이 독이 들어
있는 가라가를 사먹고 복통을 호소했다. 마침 그 곳을 지나는 어떤 사람이 가라가와 진두가가 섞여 있는 것을 알고 가라가를 모두 버리게
했다.
불경 속에서는 진짜와 가짜는 언제는 함께 있기 때문에 가려내기가 힘들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더구나 가짜는
많지만 진짜는 하나 밖에 없다. 오히려 가짜는 빛깔이 곱고 크며 먹음직스럽게 생겼다. 그에 비해 몸에 이로운 것은 빛깔도 화려하지 못하고 그리
크지 않아서 눈에 잘 뜨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 주변에는 현인도 많지만 사악한 무리도 있다. 처음에는 친절을 베풀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조그만
이익만을 좇아 상대를 속이고 우리 모두를 배반한다. 그러나 어진 사람은 지나친 친절을 베푸는 일은 없지만 언제나 한결같이 남을 돕는다. 진두가는
겉과 속이 한결같은 그런 과일이다.
진리는 언제나 가까이 있지만 그 것을 구분할 줄 아는 능력이 우리에게 없을 뿐이다. 기독교에서도 “천국으로 가는
길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했다. 수행자의 삶이 얼마나 어렵고 고달픈지를 잘 나타내는 말이다.
열대 과일 진두가는 참 진리를 비유한 것이고, 가라가는 미혹의 세계를 일컫는 말이다. 겉이 비슷한 과일 중에서도
맛난 것을 가려낼 줄 아는 지혜를 길러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진두가는 산스크리트 어로 틴두가(tinduka)라 한다. 번역된 문헌에는 감나무(?), 시목(?木) 또는
시수(?樹)로 표기하였다. 인도의 벵갈 지방에 특히 이 나무가 많기 때문에 인도감 또는 벵갈감이라고도 불린다.
인도 대륙 서해안 지역과 동인도, 스리랑카의 열대 해안 지역에 널리 분포하는 상록활엽 아교목이다. 나무 높이는
6~10m 정도이고 옆으로 많은 가지가 벌어진다. 여름철 우기가 시작되기 직전에 묵은 잎 사이에서 새싹이 돋아나 작은 꽃이 다닥다닥
붙는다.
힌디 어로 가브(gab), 벵갈 어로는 캔드(kend)라 하여 맛있는 과일로 친다. 종류가 많고 여러 가지 원예
품종도 있다. 넓은 의미의 진두가는 태국, 자바, 말레이지아, 세레베스 섬에도 자생하지만 인도의 진두가와는 약간 다른 종이다.
과실의 지름은 5cm 정도이고 약간 납작하며, 노란색 또는 주황색으로 익는다. 덜 익은 것은 떫어서 먹을 수
없다. 감나무의 일반적인 성질은 어린 열매일 때는 탄닌질이 많아서 먹지 못하지만 완전히 익은 것이나 물에 식히면 떫은맛을 없앨 수 있다.
진두가도 마찬가지로 나무에서 잘 익은 것을 따면 맛이 달콤하여 ‘꿈속의 맛’이라 뜻으로 불린다.
열매를 가로로 자르면 4~8개의 씨가 들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과일의 크기는 작지만 맛이 좋아 인도인들이
정원에 즐겨 심는다. 감나무 류는 목재가 단단해서 갖가지 공예품을 만들거나 가구를 짠다. 진두가도 목재의 결이 곱고 단단하여 가구, 건축재,
선박 건조용으로 쓰인다.
열대성 감나무는 종류가 대단히 많아서 약 200여 종이 이른다. 목재로 쓰이는 감나무 중에 심재가 검은색을 띠면
흑단(黑檀), 보라색을 띠는 것을 자단(紫檀)이라 하여 최고급 공예재로 쓴다. 인도에서는 목재를 에보니(Ebony), 세이론 에보니(Ceylon
ebony), 마르베 우드(Marbee wood)라 한다.
우리 나라의 신안 앞 바다에서 인양한 원대의 무역선에도 흑단과 자단 원목이 무더기로 선적돼 있었다. 600년
전의 목재가 바다에 가라앉아 있었던 것은 비중이 1.0~1.2 나 되었던 때문이다. 당시의 무역선이 극동의 바다를 누비며 멀리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흑단과 같은 보물을 가득 싣고 우리 나라와 일본까지 화물을 실어 날랐음을 말해 준다.
불경 속의 진두가와 비슷한 가라가란 어떤 식물일까. 식물학자들은 인도인들이 말하는 와피가란 나무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나무는 산스크리트 어로 비사 틴두까(visa tinduka) 또는 쿠라까(kulaka)라 한다. 틴두까는 독이 있는 열매라는
뜻으로 독진두가(毒鎭頭迦)라 쓴다.
사실 감나무와는 전혀 다른 종류로 열매의 크기가 비슷한데서 비유한 것으로 보인다. 잎은 진두가가 긴타원형인데
비해 가라가는 둥글며 세로 엽맥 3줄이 뚜렷하여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열매도 진두가는 꼭지가 있지만 가라가는 꼭지가 없다.
가라가의 씨에서 독극물인 스트리키니네를 뽑아 의약품을 만든다. 인도의 원주민 중에는 가라가 씨에서 추출한 독을
화살촉에 묻혀 사냥에 쓰기도 한다. 인도의 진두가는 아니더라도 감나무는 불경 속의 나무와 사촌간임에 틀림없다. 사찰의 늙은 감나무 보호
운동이라도 펼쳐야 할까 보다.
촬영 정보를 보니 2005년 5월 26일 17시다.
석장을 찍었는데...다 흔들렸다.
흥분했나보다...내가,
개미가 꽃 속에 잔뜩 들어있다.
부지런히 드나들며 수정하고 있었다.
감꽃 촬영은 여수 다녀와서 해야지 했는데...
감꽃개화기는 무척 짧나보다 5월31일 감꽃은 다 말라 져버렸다.
감이 맺힌 것을 보고 솎아주라고 말봉씨(농장하는 남편친구)가
가르쳐주었다.
꽃이 지고 난 자리끝에
벌써 감이 맺혔다.
오늘, 6월 1일
며칠 더 있다가 솎아 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