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



어제는 저의 친정 아버님 기일이었답니다.
생전에 외동딸인 저를 무척이나 귀여워 해
주신 아버지셨습니다.

정이 많으시고 불쌍한 이들을 절대로 그냥
지나치지 못하셨던 나의 아버지...
유난히 꽃을 사랑하셔서 항상 저의 집에는
작은 꽃밭이 있었고, 이런저런 꽃들이 한껏
자태를 자랑하고는 했었습니다.

매우 감성적이셨던 아버지를 제일 많이 닮
은 자식이 아마도 저일 것입니다.
베레모를 삐닥(?)하게 쓰시고, 유머 구사도
잘 하셨으며, 여행을 즐기신 나의 아버지.
아이들을 무척이나 사랑하셨던 나의 아버
지.

그런 아버지의 영향을 이어받아 저도 모자
를 곧잘 쓰고, 꽃을 사랑하며, 우스개 소리
도 심심찮게 해 모임에라도 갈라치면, 제법
인기가 있는 소쇄입니다.
늘 어디론가 떠나고픈 여행자여서, 어느날
갑자기 훌쩍 떠나보기도 합니다.

아주 가끔 살아가다가, 버거운 일에 부딪히
게 되면 저는 고향의 아버지 산소를 찾기도
한답니다.

아마도 나의 아버지께서는 오늘도 저 먼 곳
에서 생전에 끔찍이 사랑하셨던 가족들을
내려다보시면서, 흐뭇한 미소를 짓고 계실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글쓴이: 소쇄
글쓴날: 2003/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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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마음 ...



" 어느날은 뜬금없이 홍어가 먹고 싶었
는데/ 아기가 홍어처럼 납작해지기라도
할까봐 엄두를 내지 못했단다/ 또 어느
날은 낙지와 해삼 생각이 간절해서 장터
를 돌아다니다가/ 뼈없는 아기라도 낳을
까 저어해서 그냥 돌아왔단다"


누군가의 시에서처럼 어머니의 마음은
자식을 위해서라면, 먹을 것이나 입
을 것 다 아주 쉽게 포기하고는 합니다.

저도 예전에는 미처 몰랐었습니다.
어머니의 걱정이 그저 듣기싫은 잔소리
로만 여겨지고 들렸었습니다.

고집은 왜 또 그렇게 쎄었는지 모릅니
다.
언젠가 무슨 일이었는지는 기억이 안납니
다만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
납니다.

"더도 말고 꼭 너 같은 자식 하나만 낳아
키워 보거라"

이제 저도 자식 둘을 키우다보니 그 때의
어머니 마음이 되어, 제 딸아이에게 말합
니다.

" 너도 나중에 결혼해서 꼭 너같은 아이
하나 낳아 키워 보아야 알꺼다. 이 엄마
의 마음을 ..."


(글쓴이: 소쇄
글쓴날: 2003/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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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천사 ...



저에게는 어둔 밤바다와 같은 인생길에서
표류할 때마다, 두고두고 바라다 볼 등대
같은 딸과 아들이 있답니다.

나이는 어리지만 마치 시어머니같은 딸과
과묵하기가 바위와 같은 아들은 분명 제게
있어, 수호천사들입니다.

나이를 잊고사는 열혈녀(?)이면서 마음만은
용광로인 제게, 시시때때로 제동을 걸어주는
아이들이기도 합니다.

말은 없지만, 늘 씩 웃곤하는 싱싱한 미소가
멋진 아들과, 사사건건 참견하는 딸아이는
아주 소중한 저의 재산목록 1호랍니다.

그들은 찬바람이 온몸을 에이는 듯한 겨울
철에도, 저를 따스하게 감싸 안아주는 햇살
임이 분명합니다.

새파랗게 새파랗게 희망으로 제게 힘을 실
어주는 딸과 아들은, 신이 내려주신 크나큰
선물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런 아이들과 행복을 쌓아가면서 살아가는,
저는 분명 행복한 사람입니다.


(글쓴이: 소쇄
글쓴날: 2002/12/30)











무제.1

      나는 양심을 포장한 채 오염되지 않게 선반 위에 고이 간직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세상이 밉습니다.
      그러나,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인간들이 진실로 그들의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을
      참을 수 가 없습니다.
      그들의 영혼은 울면서도 웃는 체 하고 있음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나는 장막을 쳤습니다.
      방안은 적당히 빛을 가리고 어두워 졌습니다.
      나는 편안함을 느낍니다.
      오염되지 않는 상태로 있을 것 같았습니다.

      나는 내 정원에 약을 뿌리기를 거부했습니다.
      벌레들이 극성을 부렸습니다.
      사과는 벌레를 먹고 있습니다.
      대추는 더욱 그러합니다.
      감나무는 더더욱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나무가 스스로 자생 할 수 없다면-죽어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잔인한 나무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벌들과 새들은 좋아했습니다.
      어제는 비가 오는데도 내 대추나무 가지 끝에 나래를 활짝 편
      한 마리의 호랑나비가 잠자리를 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작은 철기 한 마리가 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는 스라브 지붕 밑의 천장 마루에 새들이 아파트를 몇 평인지 짓는데도
      그 공사가 끝나고 세대주가 들고나고 몇 번을 해도,
      인사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새 손자가 저쪽 끝에서 이쪽 끝 내 머리 위의 지붕 위에로
      짹짹거리며 뛰어 다녔습니다.
      그들은 내 머리 위가 그들의 운동장인지 착각 한 것 같습니다.

      나는 언제인가 내 시멘트 처마 끝에 집을 짓고 살다간 제비가,
      그 다음 해에 그 집이 부실 공사로 떨어져 버리자
      다시는 오지 않음을 보고 슬펐습니다.

      나는 참새들의 아파트를 그냥 내버려뒀습니다.
      또 올 여름에는 내 정원 숲 속의 해당화 나무 끝에
      작은 멧새가 세 개의 알을 낳았었습니다.
      며칠 뒤, 그 알은 없었습니다.

      그 다음 대추나무 가지 위를 오가는 노란 무늬의 이름 모를
      멧새의 새끼들을 나는 볼 수 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가고 난 후 조그만 초가 빈집만 남았습니다.

      나는 3년전쯤 내가 시장에서 사와서 알을 까서ㅡ날려 보낸,
      잉꼬 새들의 부부와 그의 부모를 찾습니다.
      그 미물은 3일간 내게서 고맙다는 공중잽이를 한 후에는 -
      파란 하늘을 날아올라 뒷산 쪽으로 가버리고는 대를 이어,
      영영 소식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내게 보여준 믿음과 고마움의 3일이 있었기에
      그들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바람 부는 겨울철의 눈이 오는 날들이면-
      그 초겨울에 떠난 잉꼬 부부와 자식들이 먹이나 제대로 먹고,
      살았는지 궁금해하며, 아직도 대를 이어 행복해 하는지 궁금합니다.
      아마 그들도 본능의 지혜로 잘 살아 가리라 믿고 싶습니다.

      고향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입니다. 평생을 고향 없이 살아 온
      나는 정이 어린 새들의 고향을 지켜 주고 싶은 것입니다.

      나는 정원을 정리하면서도,
      그 가지 끝은 잘라 버리지 않고 두었습니다.
      그들이 언젠가는 꼭 돌아 올 것 만 같아서 입니다.
      이 집이 그들의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이른 아침에 뒷산 고개를 넘어간다.
    마른 풀들이 발길에 스치며 발 밑을 스멀스멀 기어오는 안개를 타고 음수골의 샘터로 간다.
    안개 덮인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내가 구름을 타고 노는 신선 같은 기분이다.


    산골의 봄은 늦다.
    며칠 전만 해도 밤이면 서리가 갈가마귀 발톱처럼 막 움트기 시작하는 새싹 끝을
    움켜잡고 얼리어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안타깝게 하더니,
    오늘 아침은 맑고 영롱한 이슬만 맺혔다.
    지난 겨울 녹차 끓일 물을 긷느라 눈 속을 헤치며 부지런히 넘나들었다.
    그 샘물로 끓인 녹차 맛은 정말 일품이다.


    아무도 오지 않는 그 골짜기에는 온갖 짐승들이 살고 있다.
    눈이 하얗게 내릴 때면 밤새 내려와 물을 마시고 간 흔적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한 번은 내가 샘터로 들어가는 순간, 놀란 노루 한 마리가 입구 뒤로 난 빽빽한
    가시덤불을 헤치고 튀어나갔다.


    사람과 짐승이 함께 마시는 샘터에 늦게 온 나의 기척에 놀라서 혼비백산하여
    달아나니 노루에게 미안한 마음이었다.
    우거진 가시덤불을 헤치고 달아나느라 상처라도 입지 않았는지 조금 걱정이 되었다.


    이튿날 낮에 낫과 괭이를 가지고 와서 뒤쪽의 가시나무를 쳐내어 좁은 길을 내고
    조그만 계단을 만들어주었다.
    멀리서 내 소리가 들리면 상처를 입지 않고 도망 갈 수 있도록 제법 길답게 만들었다.
    그 후, 눈 덮인 그 길로 난 노루와 토끼들의 발자국을 보며 나 혼자 흐뭇해하면서
    아무도 보이지 않는 빈 산을 향해 손을 흔드니,
    산에서 그 동물 친구들이 꼭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 이 산골에도 봄기운이 완연하다.
    오늘 아침 안개를 타고 음수골 샘터로 가는 길은 겨우내 잠자고 있던 내 내면의
    촉수들을 고요한 세상 밖으로 끄집어낸다.
    파란 소나무 사이사이로 힘겹게 서 있던 관목들의 가녀린 가지엔 연노랑 봉오리들이
    조롱조롱 달렸다.
    별들이 멀어져간 추운 겨울밤에도 결코 푸른 꿈을 멈추지 않고 새 봄이 오면
    자연이 허락한 아름다운 몸짓으로 제 몫을 다 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가만히 바라보니 톡톡 터지면서도 말이 없다.
    그저 조용히 그리고 멈추지 않고 무언의 노래를 부르는 것 같다.


    장자가 아침 산보를 친구와 함께 나갔다.
    상쾌한 공기 수려한 경치가 너무나 좋아서 친구가 장자에게 말을 던졌다.
    "이보게 친구, 아침 공기가 너무나 상쾌하지?"
    장자는 말이 없다.
    "아, 저기 피어있는 꽃들 좀 봐. 정말 멋지군"
    장자는 말없이 천천히 걷기만 한다.
    머쓱해진 친구는 이런저런 이야기로 자연에 감탄하며 장자의 동의를 구하느라 바빴지만,
    장자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걷기만 했다.
    집에 돌아온 친구는 내심 괘씸한 생각이 들어 장자에게 달려가서 말했다.
    "이 사람아.. 자네 나한테 무슨 감정이 있는가?
    아침 산보를 같이 갔으면 무슨 말이라도 해야지. 내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이에 장자가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자네가 보고 나도 보고 있는데 말해서 무엇하랴!"


    샘터가 가까워오니 개울물 소리가 청아하다.
    아래 쪽 웅덩이에는 내 어릴 적에 낯익은 버들치가 신나게 헤엄친다.
    그 놈들은 참 복 받은 녀석들이다.
    다른 데 태어났으면 추운 겨울 날 얼음장 밑에서 떨면서 지냈을 터인데 샘물이
    사철 상온을 유지하는 덕으로 겨울에도 훈훈하게 지내니 말이다.
    그런데 그 버들치들은 내 어린 시절 조그맣고 하얀 고무신 속에 잡혀 있던 바로 그 녀석들이다.
    홍안의 소년이 이제 장년이 되어 찾아왔는데도 그 녀석들은 하나도 변한 게 없으니
    내가 꿈을 꾸는지 그 녀석들이 꿈을 꾸는지 모르겠다.


    물 한 통을 받아서 지고 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본다.
    장자의 무언의 참 뜻을 알 것 같지만, 나는 왠지 혼자 걷는 것이 쓸쓸한 생각이 든다.
    산에는 노루 토끼들이 나를 보고 있을 지도 모르지만,
    말을 할 줄 아는 누군가가 같이 걸으며 이 새벽의 아름다운 자연에 대해 감탄과 찬사를
    주고받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먼 옛날 장자가 느끼던 자연의 아름다움을 나도 느끼지만,
    난 아직 장자가 보여주는 도의 바다에는 발가락 끝도 담그지 못 하였나보다.
    왠지 사람이 시끌한 대화가 그리우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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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말과 논리적인 말의 차이



'아름다운 말'과 '논리적인 말'의 차이를 생각해 봅니다.
"무엇을 가지고", "무엇에 대해서", "어쩌자고" 라는
세 구절을 가지고 더욱 나누어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육체를 가지고' '육체에 의해', '육체를 위해서' 삽니다.
'삶'이라는 것은 존재의 문제이고 존재한다는 것은 또한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이라고 한다면,
생명의 근원은 힘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전개과정으로 보고 싶습니다.
삶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힘이 들게 마련인가 봅니다.
삶이 힘이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지 않을까요.

우리는 정신을 가지고 정신에 의해, 정신을 위해서 삽니다.
'앎'이라는 것을 존재 위에 다져지는 정신 작용이라고 보았을 때,
존재는 곧 나와 나 아닌 것과의 인지 작용의 연속이라고 말을 합니다.
나를 둘러싼 수많은 정보, 지식, 판단, 결정, 행동들이 서로 얽히면서
우리는 육체에 의해서 정신을 다독거립니다.

결국 삶이 힘이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삶에서 앎에 대한 욕구가 사라졌을 때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요,
삶과 앎은 출발점이 같은 단어가 아닙니까.
우리의 삶, 그 삶은 바로 앎의 습득이고
앎의 습득을 통해서 삶은 확장되는 것이고
소망이 달성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더불어 삶의 존재는 부수적인 쾌감을 얻고….
그러나 우리는 인지의 과정을 너머 초인지의 과정으로
교감을 하고 싶습니다. 하고 있습니다.

삶이라는 것이 그저 존재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살아야 할 이유가 없지요,
삶은 '서로의 당신'에 대한 앎의 지속적 투자를 통해
더욱 성숙되고 즐거워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아름다운 말이란 아름다운 의식의 바탕 위에
논리적인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지는 것일 때 아름다운 것이 되지 않는가 합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말이 논리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 감각적이고 직관적일 때,
그러나 더욱 아름다울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언어가 아름다움에 녹아 논리를 잃고,
또 논리에 얽매여 아름다운 사연을 잃어버리면
그것은 여운이 없어 싫습니다. 실수가 없어 싫습니다.
살짝 핥기는 눈매가 없어 심심합니다.
뒷걸음치는 묘미가 없어 맹숭맹숭합니다.
쫄깃한 사람, 쉽게 입술로 잘려나가는 그런 면발보다는
연달아 이어지는 질긴 면발처럼 입안 가득 품은 그런 사람이고 싶습니다.

왜 사냐곤?
웃지요
라고 답을 한 김상용의 '남으로 창을 내겠소'의 시구처럼
그저 웃음으로 앞뒤의 삶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논리로 때론 현재적 아름다움을 추스르고
아름다운 말로 논리적인 푸석거림을 질척하게 만들면서
그렇게 예쁜 송편을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뼈가 있는 말은 뒤돌아서 들리지 않게 하고
살이 있는 말만 앞에서 들리게 하렵니다.
보이지 않는 뼈의 든든한 버팀목이 세월을 지탱하고
눈에 선한 살의 아느작거림은 시간을 벗기면서
'아름'으로 '다움'을 가져봅니다.

소리에 소리가 묻어 소리가 서로 얼싸안습니다.
눈물은 순수의 솜털로 익어가는데,









          봄이 오는 남녘..

          마냥,
          기달릴 수만은 없어
          쉬엄쉬엄 봄을 찾아 나선다.

          해운대 달맞이 고개를 넘어 가는 길
          남해에서 동해로 휘어지는
          해안길이다.

          휘황한 카페의 불빛이 떠있는 해변
          파도에 젖은
          푸른 달을 띄워올리는 포구..

          멸치배가 새벽을 깨우는 어촌들이
          바다를 향해 엎드리고 있다.

          그 바다에는
          음력 중순으로 가는 깊은 밤
          밤바다를 밝히는 꽉찬 달도 만날 수 있다.

          바다에 해가 뜨면
          앞바다에서는 싱싱한 봄멸치를 끌어올리는
          그물질이 한창이다.

          달맞이고개..

          언덕 위의 해월정은 달을 보기 좋은 곳
          바닷물에 얼굴을 씻고
          물을 뚝뚝 흘리며 솟구치는
          월출이 장관이다.

          바다에서 순식간에
          떠오르기 때문에 잠시라도 한눈을 팔면
          월출 순간을 놓치고 만다.

          달맞이길은
          열다섯번을 굽어진다고 해서
          15곡도(曲道)로도 불린다.

          아래쪽은 청사포
          예전에는 한적하고 아름다운 포구였지만
          지금은 그 운치가 사라졌다.

          송정해수욕장..

          백합 껍떼기가 많이 섞인 백사장
          모래가 유난히 희고 반짝거린다.

          앞바다에 떠있는 죽도가 파도를 막아주어
          바다가 호수처럼 잔잔하다.

          송정역은
          동해남부선 철도가 해운대에서
          달맞이 벼랑길을 넘어 쉬고 가던 정거장

          정동진 못지않은
          아름다운 '바다역'이다.

          동암리 해안은 바위절벽이다.
          오랑대는 동해남부 지역에서 첫손 꼽히는 명승지
          유배 시절의 고산 윤선도가 자주 찾았던 곳이다.

          대변항구,
          멸치잡이 항구로 유명한 큰 어항..

          부산에서 만선의 깃발을 펄럭이며
          항구로 들어오는 고깃배의 정겨운 풍광은
          한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밤이면 수십척의 고깃배들이
          기장 해안에 불을 밝혀 불야성을 이룬다.

          포구에서 그물을 끌어내려
          멸치를 털어내는 모습은 가히,
          삶의 극치를 느끼게 한다.

          그물에서 툭툭 떨어져 퍼득거리는 멸치떼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은빛 멸치에 눈이 부실 정도다.

          어부들은 멸치를 털어내며
          노래를 부른다.

          "어여차,어여차~"

          흥겨운 가락에 맞춰 그물을 쥐고
          왼쪽으로 한번,오른쪽으로 한번 당겨가며
          멸치를 터는 모습은 어촌에서만 볼 수 있는
          바다의 힘찬 약동이다.

          노랫말이 따로 없다.
          즉흥적으로 선주를 흉보기도 하고
          독수공방 부인을 위로하는 노랫말도 나온다.

          동해와 남해가 섞이는 곳에 위치해
          바다의 물살이 빠르다.

          최근 대변항이 유명해진 것은
          멸치보다는 영화 '친구' 때문이다.

          어린 시절의 친구 넷이
          튜브를 타고 놀던 바닷가가 이곳이다.

          "조오련이하고 거북이하고
          수영 시합하면 누가 더 빠르노?"

          주먹계의 보스로 성장한
          장동건이 터를 잡았던 부두도 이곳에 있다.

          밤이면 야시장처럼 즉석에서
          횟감을 내놓는 난전이 들어서기도 한다.

          용궁사..

          춘원 이광수가

          바다도 좋다하고 청산도 좋다거늘/
          바다와 청산이 한 곳에 묀다 말가/
          하물며 청풍명월 있으니/
          여기가 선경인가 하노라/ 라고 노래했던 경승지..

          바다와 맞닿아 있어
          '수당법당'이라고 불린다.
          바다를 향해 서있는
          해수관음대불은 높이가 33자나 된다.

          용궁사 너머에는 일광해수욕장이 있다.
          1965년 김수영 감독의 영화
          '갯마을'의 촬영 현장이다.

          당시에는 갈대밭과 해변 풍광이 아름다워
          '섬색시' '제3의 청춘'등의 영화도
          이곳에서 촬영했다.

          해안도로는 임랑을 거쳐
          울산 간절곶으로 이어진다.

          장안읍 임랑 역시
          월출이 아름다워 차성팔경의 하나다.

          해안도로 한 굽이를
          꺽어 돌 때마다 색다른 바다를 만나는
          기장 해변..

          남녘의 햇살을 담은
          바람과 잔잔한 파도에서는 벌써
          봄내음이 짙게 묻어난다.

          나는 지금 봄을 안고
          천년 고도 서라벌로 가고 있다.

          하마,

          내마음은
          봄햇살이 내리는 절마당
          석가탑 아래서 조용히 두손을 모운 채

          솔거의 그림을 향해
          날아가는..

          한마리의 하얀 산새가 되어
          탑을 돌고 있다.

          ..











    고등학교 때 읍내에 나가 자취를 했다.
    그리고 주말엔 일주일치 김치와 밑반찬을 가지러 집으로
    왔다.

    누나와 형님들은 결혼을 하였거나 돈벌러 객지로 떠나고
    집에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막내인 나만 남아 있었다.

    나는 읍내의 남자 고등학교를 다녔고 그 여자는 읍내의
    여고를 다녔는데 그 여자도 주말엔 늘 시골집으로 왔다.

    그 여자네 집은 우리 동네에서 산모퉁이 하나를 돌아 읍내가는
    방향에 있다.

    토요일 저녁이면,
    아버지는 언제나처럼 사랑채에서 일찌감치 주무시고 읍내에서
    돌아온 하얀 피부의 그 여자가 우리집에 놀러오면 어머니는
    슬며시 일어나 이웃으로 마실을 나가셨다.

    수줍음을 많이 탔던 그 여자와 나는 거의 말이 없었다.
    방문을 조금 열어 놓고 그저 서로 말없이 TV를 보다가 그녀가
    "나 그만 갈께!" 하고 일어서면 나도 같이 일어나
    그 여자의 집까지 바래다 주곤 했었다.

    그 여자네 가는 시골의 밤길은 늘 한적했다. 논가엔
    개구리가 울고 밭에는 하얀 감자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산에서 소쩍새가 울면 웬지 서글픈 생각이 들었고 부엉이가
    울면 무서웠는지 그 여자는 내게 바짝 붙어 걸었다.
    그럴 때 그 여자의 앞 가슴이 내 어깨에 스치기라도 하면
    나는 그 짜릿함에 마른침을 삼키기도 했었다.

    그 여자네 집 가는 길가엔 늘 수많은 꽃들이 피고 졌다.
    제비꽃이 피고, 할미꽃이 피고, 진달래가 피고, 찔레꽃이 피고,
    아카시아꽃이 피고, 밤꽃이 피고, 싸리꽃이 피고 지었다.

    그 길은
    아버지들이 소달구지 몰고 읍내에 장보러 가던 길이기도 하다.

    그 길은
    내 형님 누이들이 돈 벌러 밤 도망을 쳤던 길이기도 하다.

    그 길은
    어머니들이 객지로 떠난 자식들을 눈물로 기다리던 길이다.

    내가 그 여자를 바래다 주던 첫 사랑의 길, 바로 그 꽃길이다.

    그 때 내가 바래다 준 그 여자는
    허리를 조여맨 하얀 윗도리 교복을 입은 여고 2학년 이었다.


    그해 유월 막 장마철이 시작될 무렵의 토요일 오후
    나는 여느 때처럼 왼손엔 빈 프라스틱 김치통을 싸맨
    보자기를 들고 집에 가기 위해 버스터미널로 갔다.

    그 여자도 저편에서 한손에 보자기를 들고 나타나서
    나를 보더니 씨익하고 쑥스런 웃음을 지었다.
    사실 그땐 김치통을 들고 다니는 게 제일 창피했다.

    그 여자가 나보다 먼저 버스에서 내리면서 오늘 저녁에도
    우리집에 가겠노라는 무언의 눈짓을 보냈다.

    그날 저녁 바쁜 들일에 지치신 아버지와 어버니는 일찌감치
    사랑방에서 주무시고 그 여자와 난 말없이 TV에 눈을 돌리고
    있었는데 지붕에서 우당탕탕 큰 소리가 들렸다.

    그땐 대부분의 농촌에선 새마을 사업으로 초가집을 함석지붕
    으로 개량 했는데 비올 때면 그 소리가 무척이나 크게 들렸다.

    그 여자가 돌아갈 밤 열 시가 되어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비 그치기를 기다리며 우린 '주말의 명화'를 보고 있었다.

    제목은 생각나지 않았지만 키스하는 장면등 그 당시엔
    미성년자 관람 불가 정도의 영화 같았다.
    이상한 장면에선 쑥스러움에 TV에서 눈을 떼고 딴 곳을
    쳐다보곤 하였다.

    영화가 다 끝나가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아마 그날이 첫 장마비가 시작되는 날이었을 게다.
    우린 어쩔수 없이 일어나 겨우 헌 우산 한 개를 찾아 같이
    쓰고 그 여자네 집을 향해 나섰다.
    영화에서의 야릇한 감흥을 가슴에 남긴 채..

    그 여자가 후레쉬를 들었고 난 한 손엔 우산 그리고 다른 손은
    그 여자 어깨에 올렸으나 그 헌 우산은 성인이 다 된 우리 둘을
    세찬 장마비로부터 막아주지 못했다.

    옷은 점점 젖어오고 그 여자의 추워서 흔드는 어깨 떨림이
    내 가슴에 따뜻함으로 전해왔고 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 뛰는 가슴을 들킬까봐 그 여자의 어깨 등뒤에서 내 몸을
    떼고 싶었지만 그 여자가 추울까봐서 그럴수가 없었다.

    갑자기 입 안에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목구멍으로 넘기고
    싶었으나 침 넘기는 소리를 들킬까봐 삼킬 수도 없었다.

    침은 점점 입안 가득히 차 오르는데 뱉을 수도 없었다.
    그 여자가 기분 나빠할까봐서..

    참으로 난감했다. 할 수 없이 젖은 소매자락으로 입 안에
    고인 침을 슬며시 훔쳐내기 시작했다.

    난 야릇한 감정이 입 안에 그렇게나 많은 침을 고이게 하는 줄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후에 이발소에서 예쁜 면도사 아가씨가 면도해 줄 때
    가끔 침이 고일 때도 있었지만ㅎㅎㅎ...)

    난 또 이미 빳빳해진 내 신체의 한 부분이 그 여자의
    히프에 닿지 않도록 불편한 걸음을 걸어야만 했다.

    이십여 분을 걸어 그 여자의 집 앞에 왔을 때는 이미 옷이 거의
    다 젖어 있었고, 그 여자의 젖은 몸이 그 집 앞 가로등에
    어렴풋이 비쳤을 때 난 그만 호흡이 멎는 줄 알았다.

    나는 이상해져버린 내 감정과 커져버린 신체 일부분을 들키지
    않으려고 잘 자란 말도 못하고 얼른 뒤돌아서서 걸어나왔다.

    마을을 벗어나도 이상해진 나의 몸과 감정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나는 여자네 동네 입구의 정자나무 뒤에 숨어 혼자 바지를 내렸다.

    부르르 떨림과 거친숨.. 그리고 긴 한숨을 내쉬고 바지를 올렸다.
    괜시리 혼자 부끄럼에 우산을 접어들고 집으로 뛰기 시작했다.

    그때 내 나이 열일곱 살이었다.


    그해 추석이 돌아왔다. 중학교를 겨우 마치고 돈 벌러
    서울로 올라갔던 경숙이 등 시골친구들이 내려왔다.

    우린 방안에 남녀 둘씩 넷이 둘러 앉아 손목맞기 화투를 쳤다.
    손목을 때리기 위해 처음으로 그 여자의 하얀 손을 잡아봤다.

    그 여자의 손은 너무 부드러웠고 손 떨림이 내게 전해졌다.
    그 여자는 유난히 하얀 피부에 살결이 약해서 나중에 보니
    맞은 자국이 하도 선명해 오랫동안 내 맘이 아팠다.

    고 삼이 되자 입시공부를 하느라 우리는 자연스럽게 만나지
    못했다.

    그때 우리집에 불행이 닥쳤다. 큰 형님 회사 부도와 형님이
    돌아가시고 아버지에겐 겨우 논 여나무 마지기만 남겨졌다.

    난 아버지의 뜻대로 진학을 포기하고 시골의 면서기 시험을
    치뤘고 그 여자는 도시의 대학에 입학했다.

    발령은 쉽게 나지도 않았지만 난 왠지 시골의 공무원이 싫어서
    아버지 몰래 군에 지원해 입대를 하였다.

    서울 근교의 부대에 배치를 받았고 어느 뜨거운 여름날 주말
    그 여자가 부대로 면회를 왔고 난 외박을 얻었다.

    버스를 타고 서오능으로 갔다. 능 뒤 오솔길을 따라 산 속으로
    들어갔다. 뜨거운 태양과 남의 시선을 막아줄 떡깔나무 아래
    에 손수건을 펴고 나란히 앉았다.

    한참 말이 없다 어설픈 첫 키스를 시도했다. 그리고 난
    그 여자의 앞 단추 두 개를 풀었다. 그때 얼마나 가슴이 크게
    뛰었는지 모른다.(지금도 뛰네 ㅎㅎㅎ)

    그러다 갑자기 그 여자가 훌쩍훌쩍 눈물을 흘렸다.
    깜짝 놀란 나는 왜 우느냐고 물어도 대답이 없다. 난 지금도
    그녀가 왜 울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날 밤 녹번동의 한 여관을 잡았다.
    난 끈질기게 시도를 했고 그 여자는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그뒤 몇 번의 면회가 있었고 다음 해인 것 같다.
    면회 온 그 여자의 머리가 생머리에서 파마머리로 바뀌어 있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고 이내 그 여자의 입에서 헤어지자는
    말이 나왔다. 난 이유를 묻지 않았다.

    일주일 동안 거의 밥을 못 먹으며 가슴앓이를 했다. 차츰
    그녀를 잊어 갔지만 그 여자를 잊는데 여러 해가 걸렸다.


    2년 전 시골 초등학교 첫 동창회에 그녀가 나왔다.
    피부는 여전히 하얗고 고왔다.

    난 그 여자에게 "잘 사니?"하고 딱 한마디만 물었고 다른 여자
    동창들에겐 짖궂은 농담도 많이했다. 그 여자도 "응"하고
    딱 한마디 대답뿐이였다.

    지금 그 여자는 같은 서울 하늘 아래 살고 있다. 친구들을 통해
    전화번호를 알아낼 수도 있다.

    그녀는 어떨지 모르지만 한 번 만나 사랑을 나누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관두리라. 다시 빠지면 헤어나지 못할 것 같아서.









겨울이라는 철은 봄을 안고 있다.

산야(山野)로 도시로,
겨우 잠들려 하는 바다 얼굴 위로,
기분 좋게 하늘가에까지 날아보고

때로는,
너무 딱딱하리라 생각해온 참나무 고목에
눈을 호두 알처럼 힘주어 뜨고
뒷생각도 없이 부딪혀 보는
겨울,


그 겨울이
조금씩 미워지기 시작해
나는 봄을 빌리려 작정했다

잎눈 많은 능수버들 한가지
남이 보든 말든... ...

뚝 꺾어 움켜 쥐고, 등 뒤로 감추고는 휘파람 불며,
유유한 사나이처럼
하늘만 올려다 보면서 걸어갔다.

크지만 높지 않은 소나무 아래에
아직은 참새 눈만한 꽃눈을,
양지 볕에 들키고 부끄러워 하는
진달래도 몇 가지 와드득 분질러 모아 들고
보지 않는 척하면서 두리번거리며 집에 왔다.


매일매일 벌컥 소리 나게 물 마시던
노란 물통에
훔쳐 온 봄을 꽂았다.

누구에게도 내 봄을 보여주기 싫고
가지고 온 봄이 고향 그리워할까...
음악을 틀어 놓고 같이 들었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펴

건너 마을 젊은 처자 꽃 따러 오거든
꽃만 말고 내 마음도 함께 따 가아주-

하루, 이틀, 열흘...
거실 물통 속 내 봄은 꽃이 안 핀다.

화초 영양제를 한 통 모두 쏟아 부어주었다

한나절 지나고 시들해 지더니
딱,
하루가 지나자
잎눈 꽃눈이 다 떨어져 버렸다.

내 봄이 그렇게 죽은 것이다.

나는,
내 가슴으로 보고자 했던 봄을
14층 위에서 던져 버렸다.


나풀나풀 날면서
화단,
또 다른 봄 위로 비로소 꽃들이 피어 춤추며
진짜 봄은 그렇게 꽃만 말고
내 마음도 따가고 있었다.










★야 임마! 난 네가 보고싶다 ★


이 새벽 문득 눈뜬 지금
오늘은 더 많이 보고 싶습니다


가난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듯 싶은 우리집에
오리 새끼처럼 못 생긴 막내는 엄마를 서너시간 아프게 하고
28년전 오늘 아침 이 암담한 세상에 삐죽이 나왔드랬습니다.


뭘 보겠다구 그리도 극성을 부리고 나왔는지...


다시는 낳지 않겠다고 결심을 한 후 밤이면 슬그머니 다가오는
옆지기에게 열심히 모자를 뒤집어 씌웠건만
이 풍진 세상에 뭘 보겠다구,
불량모자를 뚫어가며 기어이
이 못난 엄마에게 아양을 부리며
슬그머니 내 뱃속 한자리를 차지한 막내....


옆지기도
無대책으로 삼 남매를 만들어 놓은 게 미안스러웠던지
예비군 훈련소에서 병원으로 직행,
아름다운 간호사의 손에 히죽 웃으며
영원히 자유로운 '거시기'로 만들어 왔더군요


그런 서러운 막내는
끝내 책임지기를 포기한 아빠 손에서 자라지도 못하고
강원도 화천 38선 지뢰밭 한가운데서 더덕을 한 뿌리 케면
이크 이건 울 엄마 꺼!
두 뿌리 케면
이크 이것도 울엄마꺼! 하다가
98년도에 제대를 하곤
뒤숭숭한 대~~한민국의 앞날을 보더니 복학을 포기하고
엄마 짐 덜어준다며
팬티 한장 달랑들고 넓은 나라로 휭______ 날아갔습니다


그리고는 이제 저 닮은, 오리 새끼 같은 아들 하나 만들어서
며늘아이 하고 다음 달에 둘만 내 보낸답니다
저는 내년에 나온다나 뭐라나 하면서......


에궁~~~~~
미안하지만 막내야
난 임마, 니가 더 보고 싶단말야~~~~~~



솜사탕:2003/03/17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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