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산 청량사(淸凉山)답사

 

청량사 홈페이지 서두문에는 이렇게 씌여져 있었다.

 한국속에 가장 고귀한 터에 자리한 청정도량!
경북 봉화에는 이름 그대로 청량함과 고귀함을 간직한 청량사가 있다.

청량산을 들어서면서 풍광이 예사롭지 않다는 건 알수 있었지만,

깊고 깊은 오지에 한 때 번성했던 천년고찰이 있을 줄이야....

위세를 떨치던 큰 절이었지만 조선의 억불 정책으로 피폐했다가  최근 중앙고속도로의 개통으로 다시금 사람들의 발길이 한결

수월해져 왕래가 잦아졌다 한다.

신라 문무왕 3년(663년)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청량사는 가파른 돌산을 현재도 여느 차는  오르기도 버거운데 어떻게 이 곳에다

큰 사찰을 지으려 생각했는지 참으로 놀랄 일이 아닐 수 없다.

청량산은 준봉마다 바위덩어리였다. 열두봉오리 암봉은 연화같이 둘러쌌으며 그 한가운데 청량사가 마치 연심같이 앉았다 한다.

 

청량산 도립공원 입구에 들어서자

왼쪽으로 보이는 가파른 언덕에 청량사 일주문이 있는데....해설사님은 그 길은 무시하고 무조건 저만치 앞서 길을 재촉한다.

< 여기가 청량산데...청량사 간다더니...어디로 가세요?>

대화하기엔 좀 거리가 있는지라 무조건 따라오라는 손짓에 한참을 가다가 산으로 올라가는 좁은 등산로로 접어들었다.

좁은길로 가파르게 한참을 헉헉거리며 올라가는가 싶더니 이내 걷기좋은 산, 오솔길이다. 한 20여분 올랐나보다.

'청량사가 가파른 곳에 있는 줄 짐작이야 했지만, 이렇게 까지 멀리 빙-둘러야 하다니....'

숨 가쁘게 헥헥대느라...앞 사람 등만 보면서 오르다가 보니 어느새,

 

청량사가 저 멀리- 숲 사이로 보인다.

멀리서 바라보는 내 눈에도 명당자리로 보일만치 빼어난 절경이다!

 

이제 다왔구나 싶어 그제사 목도 마르고 잠낀 쉬었으면 하는데 오른편에 사람들이 왁자하다.

청량산 산꾼의 집이 가파른 길을 올라온 사람들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있었다.

산꾼 이대실 명장은 도예와 신비의 숨맥차단 달마를 그리며 장승을 깎고 산악구조 및 구정약차를 무료로 대접하고 있었다.

 

얼마나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등산로는 비좁을 정도였고 청량사에는 온통 울굿불긋 등산복 행장의 사람들로 난데없는

파시를 이루고 있었다.

예까지 올라오느라 여행 전 삐끗한 아픈 허리 탓도 있지만.....복잡한 그 틈새를 비집고 올라가기를 선선히 포기해 버렸다.

 

이렇게 바라만보고 하산하자 마음먹으니 갑자기 여유가 생기고 생기가 돈다.

일행은 올 봄에 생긴 정상의 하늘다리까지 힘들게 올라갔다.

그 곳까지 얼마나 가파른지 네 발로 기어올라갔다는데....그 길을 다시 되짚어 내려오자면 또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되돌아 나오는 길은 입구에서 스쳐 지나간 일주문이 있는 그 길이다.

세멘트길에다가  위에서 내려다 보니 까마득하게 내리꽂을 정도의 내리막 길로, 처음 오는 차들은 그냥 오르라해도 겁먹어

아예 오르기를 도리질쳐질 그런  경사진 길이었다.

그 길로 진입을 하면 등산하는 재미도 없을 뿐더러 힘만 무지 쓰여서 일주문 길은 하산시에만 사용을 하는데 가파른 길이라  종종 뒷걸음으로  내려가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청량산 등산길은 그래서 일방통행길이다. 물론 하산시에도 그 좁은 오르는 산길을 이용하는 사람도 더러있긴한데 그 건 아마도 자기들에 주차시켜둔 승용차와 거리가 가까워서 일테다.

후들거리는 다리가 뒤로 걸으니 한결 수월했다.

워낙에 가파른 길이니...뒷걸음도 조심하지 않으면 아차 실수에 구르기 쉽상이다.

내려오는 길은 어찌나 가파른지 도저히  한 눈을 팔 수가 없었다.

 

절간 아랫마당에서 조금 내려서자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 이라 일컬어지는 안심당이라는 찻집을 만난다.

안심당은 사찰내의 전통 다원(茶園)으로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은 대중들이 스님을 만나는 곳이 된다.

여기서 얻어지는 수익금은 중생구제의 한 실천으로 포교사업과 불우한 이웃을 위해 쓰여지고 있단다.

전통다원 ‘바람이 소리를 만나면’은 안팎 곳곳에서 은은한 전통의 멋과 향을 느낄 수 있는 모두에게 개방된 산사의 포근한

쉼터이다.

나는 잠시 잠깐...'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이라는 미당님의 시를 떠 올렸다.

어쨌거나 연꽃이거나 바람이거나...

내가 바람같은 길손이라면....연꽃만나고 가는 바람이 맞을레라~

 

 

하산하는 일행이 누구 없을까? 찻집 앞에서 한참을 기웃대며 기다리다가

나, 바람 한 줄기는 그냥 소리를 만나지도 듣지도 못한 채 하산했다.

청량산 입구 주막에 앉아  묵 한 접시와 동동주 한 사발만 만났다.

어디선가 바람에 낙엽하나 팔랑이며 떨어졌다.

 

 

 

 

이요조

 

*청량사 약사여래 부처님은 종이재질을 이용한 지불(紙佛)로 유명하다는데 그 지불위에 금장칠을 하였다 한다.

문화해설사님  말씀에 의하면 얼마전에 지불을 살펴 볼 계기가 있었는데...지불인줄로만 알고 있었던 부처의 재질은

종이가 아니라  마(麻)로 짠 천, 베 종류였다는 새로운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청량이라는 지명은 삼각산(옛 북한산이름)에서  볼 때 남쪽을 이름이란다.

정동진이 서울에서 동쪽이라더니...

청량리도 삼각산에서 볼 때 남쪽,

청량산도 남쪽이라는데 맥락을 같이한다고 한다.

 

 

 

 

 

 

제가 하늘다리까지는 못올라갔더니 일행인 '강경원'님이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포스팅에 쓰라고....감사한 일입니다.

 

 

퇴계 이황과 청량산

 

해발 870m의 청량산은 외형상 그리 높지는 않으나 선비의 기품을 지닌 산으로 이 아담하고 단정한 모양을 선비들은 사랑했었다.
일찍이 신재 주세붕도 이 청량산을 보고 "줄지어 선 봉우리는 물고기의 비늘과 같고 층층이 늘어선 벼랑은 꼿꼿하기만 하여
정녕 단아하고 곧은 선비와 같다."고 이야기했다.
청량산을 한마디로 이야기하라면 선비 같은 산, 선비의 산이라 이야기할 수 있는 것도 이런 것에서 연유한다고 볼 수 있다.

퇴계 이황보다 청량산을 사랑하고 아꼈던 사람은 없을 것이다.
청량산은 옛 퇴계 가문의 산으로 그의 5대 고조부 이자수(李子修)가 송안군(松安君)으로 책봉되면서 나라로부터 받은 봉산(封山)이다.
안동 예안의 온혜에서 청량산까지는 불과 40여 리로 한나절이면 갈 수 있는 명승지이다.

퇴계는 평생을 이 산에 올라 학문을 탐구했으며 꿈에서도 이 산을 잊지 못했다. 이렇듯 청량산은 퇴계 삶의 동반자이자 스승이었다.

퇴계와 청량산의 인연은 1513년 2월에 13세의 나이에 숙부인 송재(松齋) 이우(李偶, 1469~1517)가
조카와 사위 조효연(曺孝淵)"오언의(吳彦毅)와 함께 청량산에 들어가 독서를 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이때 숙부 송재는 이들에게 11편의 시(詩)를 지어 주었다.


학문하는 사람의 길 산 오르기와 같나니
깊고 얕음 잘 해내면 가고 옴도 미더우리
하물며 저 청량은 경치가 좋고 그윽하여
내 일찍 십 년간을 거기서 공부했지

 

내 놀던 발자취 눈에 삼삼 아른거려
너희들 보내면서 괜히 십절 시를 읊었네
이번에 가 수학하면 좋은 기록 갖고 오라
상자 속 옛 기록 찾아 전후 비교하리라

 

송재는 이렇듯 시(詩)를 주면서 퇴계 등에게 독서에 전념 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학습장이었고 자신들의 수련장이었던 청량산과 퇴계와의 관계는 이때부터 평생에 걸쳐 이루어진다.

이후 퇴계는 1515년(15세) 되던 해 봄에 사형(四兄) 온계 해(瀣)와 함께 숙부 송재 선생을 모시고 청량산에 들어가 독서에 매진했다.

1525년 25세에는 봄에 청량산에 입산하였는데 열흘 동안 눈바람이 세차 서울에 올라간 3째형을 그리며
2년 전 한강을 건널 때 눈보라를 맞으며 읊은 시 '풍설(風雪)'에 이어 시를 읊었다.

또한 이때 퇴계는 청량산 보문암에서 내리는 눈을 보고 주자(朱子)의 '마상설(馬上雪)'에 운(韻)을 붙여 시를 읊었는데
지금 그 시(詩)는 전하지 않는다. 1528년 28세에는 '청량산 백운암기'를 지었다.

' 백운암기(白雲庵記)'는 절의 승려 도청(道淸)이 찾아와서 기문(記文)을 지어 달라고 하기에 간략하게 절의 승경을 기록해 보냈다.
이후 청량산 백운암에다 선생의 '백운암기'를 새겨서 절간 벽에 걸어 두었다.
이때 퇴계는 주자가 사액(寺額)을 써 주지 않는 의리를 생각해서 이를 지켰다.

1552년 (52세) 9월에는 주세붕의 '청량산록발(淸凉山錄跋)'을 지었으며 1553년 (53세) 9월에는 주세붕의 '청량산록후발(淸凉山錄後跋)'의 제시(題詩)를 지었다. 

 

 

'청량취소도(淸凉吹簫圖)'와 단원 김홍도 

 

청량산은 '화선(畵仙) 김홍도'와 각별한 인연을 가지고 있다.
1784년 정월에 안동부의 안기찰방으로 부임한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45~ ? )는
청량산(淸凉山)에 가서 시와 풍류를 즐겼다.
이 사실은 성대중의 《청성집(靑城集)》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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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원도'속의 김홍도                    △김홍도의 '단원도'(좌측 첫번 

 

 

 

 

 

 

봉화,  청랑산1 내성천2을 따라 가며~


언제적부터인지 몰라도 나는 별스럽게도 길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는 걸 알게된다.
여러번 글에서도 등장하지만 내 어릴 적(초,중등) 여름방학이면 아예 외가행이던 것이
산천초목이 푸르고....내가 흐르고, 산길이나 들길을....혼자 한참을 혼자서 뚜벅뚜벅
걷노라면 길은 언제나 말없이 묵묵하지만 내게 숱한 이야기들을 건네왔다.
'말이 없는 것'과의 대화,
돌멩이, 벌레,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흘러가는 구름, 내 머리카락을 간질이는 바람 마저도
어린 내게는 좋은 길동무가 되어주던... 그런 느낌을 즐기고 있었다면 너무 조숙했을까?
이모집으로 향하던 지열이 후끈거리고 지루하던 모랫길 뚝방길도 어린 내게는 아무시랑 않았던
길- 길들의 추억이다.

 

길....
끝간데 없이 뻗어있는 길은 머리가 희끗한 지금까지 언제나 나를 오라부르고
나는 선선히 대답하듯  바랑하나 걸머지고 신발끈만 조이면 꾸벅이며 곧장 길을 나선다.

 

 

얼마전 영주 여행길에 무섬마을까지 버스로 이동중이었다.
어딘지는 잘 모르겠지만 얼핏 아름다운 길이란 팻말을 보고 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버스출입문에 기대섰다.

아름다운 길이 나오겠거니 했는데 또 나오는 팻말에 쓰여진 글씨 아름다운길 아래에 '장의사'
맙소사!! 버스기사분도 나도 그렇게 읽었는데...앞자리에 앉은 젊은 아가씨는 장의사를 읽었단다.

좀 더 가자 고맙게도 내(川)이 흐르는 아름다운 경관이 나타났다.
역시 봉화를 돌아 영주로 흘러감도는 내성천이다.


내성천이 무섬마을(수도리)을 오메가형으로 감돌아 낙동강으로 흘러 들어가게 된단다.
늘 좋은 경치만 봐왔을 관광버스 기사분도 아! 좋다! 하고 감탄하신다.
카메라셔터를 누르는 순간 지그재그 길에 그만 나는 내동댕이쳐졌다.
보는이들은 놀랐겠지만 막상 뒤로 넘어진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하던지 아픈줄도 몰랐다.


이번 다시 찾은 봉화여행길이었다.
계곡이 점점 깊어지면서 한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 해지기 시작했다.
카메라셔터를 버스차창에서 두어번 누르는데...

문화해설사님이 이 길은 아름다운 길로 유홍준님의 글에도 나왔다는 길이란다.
<뭐, 이정도로....> 했는데 아니다. 점입가경이다.

계곡을 접어드는 내내 따라오며 모습 보이던

옥빛으로 푸르게 흐르는 천이 바로 그 영주 수도리전통마을3 을 감돌아 흐르던 내성천이란다.

 

해설사님 말씀은 봄에 수달래4가 피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는 길이란다.
그랬다.

그런데...그런 길은 걸어가면서 쉬엄쉬엄 풍광을 느껴야하는데

이렇게  많은 차량으로 휙휙 스쳐 지나가기에도 바쁜 길이 아니던가?

 

청량산을 찾아 접어드는 길에

심심계곡에 물이 빠진다면 어찌 계곡이라 할 수 있겠는가?

청량산으로 들어가는 초입에는 왼쪽으로 흐르던 내성천이 한참을 지나 다리를 하나 건느자

어느새 오른편으로 내성천을 끼고 달리기 시작했다.

자연은 골고루 아름다운 그림을 다 보여주자는 심산인게다.

 

도저히 그냥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버릇대로 버스 출입구로 나가서 내려섰다.
이번에는 왼손으로는 손잡이를 꼭 잡고서서 한 손으로만 카메라를 작동했다.

마침 레프팅을 하는 젊은이들 한 떼를 만날 수가 있었다.
기사분이 때맞춰 사진을 찍으라고 정차를 해주셨고...

요즘 건기라 물이 좀 얕은지 급류를 타는 게 아니라 숫제 물 속에서 물장난중이다.
날씨가 꽤나 쌀살한데 계곡을 흐르는 물은 얼마나 얼음처럼 찰까?
피 끓는 혈기가 있는데 이깟 가을 날씨 정도쯤이야~~      

기사님 갑자기 마이크를 잡더니...느닷없는 멘트를 날리신다.
<안춥냐?>
<우리는 히터 틀고 간다!>
들렸는지...젊은이들이 노를 들어 흔들어 답한다.
버스안 사람들은 모두 폭소를 자아내고...

웃다가 궁금해서 뒤돌아보니 그들은 아주 작은 점으로 다시 흘러가고 있었다.

 

길은 계속 들어갈수록 감탄을 자아냈다. 

정말 봄에 수달래 붉게피면 눈물날 것 같은 길이겠다.
아니, 단풍이 짙어가도 좋겠지만...봉화 이 곳은 거의 소나무가 많지만
낙엽송(落葉松)일본/잎갈나무5(잎을 가는 소나무)가 노오란 단풍이 들면 또 다른 아름다운 모습이겠다.


 

길은 언제나 길손을 오라 부른다.

계절마다 갖가지 아름다운 옷으로 치장하고서~
차량들 사이로 걸어서는 못간다는 게 큰 흠이지만...

 

 

 

글/이요조

 

 

 

 

시내와  천과  강의 정의

개울 -> 시내 -> 천 -> 강 -> 바다

 

개울 : 졸졸 흘러내리는 개울물

시내 : 개울보다는 큰 물줄기. (사람이 건너갈 수 있는 얕은 내)

천(川) 지명을 나타내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내’를 뜻함. 강으로 흘러들어가기 전 큰 시내, 다리를 이용 왕래

(사람이  건너가지는 못하지만 이쪽 저쪽에서 큰 소리로 말을 하면 알아 들을 수 있는 거리) 

강(江) 넓고 길게 흐르는 큰 내.  (뗏목이나 배를 이용해서 건너가야 함)

 

 

 

 

 

봉화 스피드래프팅(054-672-3377 )에서 가져온 이미지

 

산위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길의 전경

청량산을 돌아 흐르는 내성천을 끼고 달리는 길이다.

왼쪽(상)으로 들어오다가 다리를 건너 오른쪽으로 내성천을 끼고 달린다.

 

  점점이 멀리 보이는 래프팅하는 모습

 

 

 

청량산 도립공원 입구 

 기기묘묘한 산봉오리

 청랑산으로 깊은 개울

 

 

 

 

 

  1.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에 있는 청량산 일대에 지정된 도립공원.→ 청량산 [본문으로]
  2. 길이 106.29km, 유역면적 1,814.71㎢이다. 낙동강의 지류로 소백산맥의 남쪽 기슭 경북 봉화군에서 발원한 강은 영주시의 중앙부를 관류하고, 다시 안동·문경을 거쳐 하류부에서 예천분지(醴泉盆地)를 전개하고, 계속 남서쪽으로 흐르다가 용궁(龍宮) 남쪽에서 낙동강 상류로 흘러든다. 기후는 내륙 산악지대로 기온이 낮고 연교차가 심하며, 연강우량도 적다. 주요 농산물은 조·옥수수·감자와 유료작물, 고랭지채소 등이다. [본문으로]
  3. 문수면 수도리는 아름다운 자연과 옛고가가 그대로 보존된 전통마을이다. 수도리는 이름 그대로 내성천이 마을의 3면을 감싸안고 흐르고 있으며, 그 가운데 섬처럼 떠있다. 안동 하회마을을 연상시키는 이 마을에는, 휘감아도는 강을 따라 은백색 백사장이 펼쳐 져 있으며 맞은편에는 소나무, 사철나무 등이 숲을 이룬 나지막한 산들이 강을 감싸안고 이어진다. 또, 강 위로는 견실한 다리가 놓여져 마을과 마을을 잇고 있다. 수도리는 고택과 정자로 이루어진 전통 마을로 옛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그 중에 서도 해우당(도 민속자료 제 92호)과 만죽재(도 민속자료 제93호)는 옛 선비들의 단아한 격식이 느껴지는 고택이다. 이처럼 유유히 흐르는 강과 정겨운 자연 속에 고풍스러운 옛 집이 즐비한 수도리는 고향 을 찾는 편안한 마음으로 다녀오기에 좋은 곳이다. [본문으로]
  4. 산철쭉꽃 [본문으로]
  5. 일본잎갈나무 소나무 잎과 같이 생긴 잎이 하나씩 떨어지는 데서 유래. 낙엽송이라고도 불린다. 북한 이름은 창성이깔나무 [본문으로]

 

 청량사

 

 

 

청량산을 내려와서

땀을 식히고 

주차장에서 바라본 가을하늘!

 

아!  저 구름이

이 곳까지 

나를  불러내었구나!

 

일행을 기다리느라

주막에 잠깐 앉아 쉬려는데...

어디선가 바람에 날려

하나 둘 자꾸만 떨어자는 낙엽

 

어! 감나무잎이네,

붉디 붉은 감나무 낙엽은

꽃 못잖게 무척이나 아름답지~

 

고개를 젖혀 위를 쳐다보니.....

높으당한  돌감나무에 

두 뺨이 빨그작작 물든 아이들같은 

땡감들이 조로로롱~~ 

쌩끗- 웃어주는 장난끼

 

아! 가을이다.

 

 

이요조

 

 

 

 

 

 
 
봉화군 춘양면 서벽금강송 숲을 찾아가는 길이다.

 아직은 9월,

만추도 아닌데 날씨는 쌀쌀하다.

억새풀은 이제사 필 듯말 듯...본격적으로 활짝 피어나 바람에 나부끼며 가을 운취를 한껏 보태보려고 부지런히  은빛 털기를 가다듬고 있었다.

산 높고 물 맑은 청정고을 봉화!   춘양면 서벽금강송 숲으로 들어서는 길은 푸른 기운이 가득하다.

오후 4시30분 무렵인데....어슷 비끼는 햇살에 모든 식물들은 조명을 받아 유난히 고운 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금강송은 궁궐을 복원하는 데 쓰일 목재다.

200년 이상은 키워야지만 목재로 쓸 수 있다는데,,,깊은 솔숲에 들어가면 우람한 금강송들이 번호표를 달고 서 있다 한다.

막상 번호표를 달고 서 있을 장대한 금강송 숲 깊숙한 곳까지 가진 못했지만  비끼는 저녁 햇살을 받고 선 솔숲의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입구서부터  풀향기 같은 냄새가 났는데...피톤치드 향이었나보다, 

금강송의 피톤치드는 무려 다른나무보다 10배가 많다는 해설사님 말씀을 얼핏 들은 듯도...  하였다.

더 없이 장쾌한 숲길로 향하는 군데 군데 지난해의 수마가 할퀴고 간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애석한 현장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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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군 춘양면 서벽리 산골에서 자라는 춘양목은 소나무(금강송)의 또 다른 이름으로 봉화의 금강송이 좋아서 궁궐의 목재로 이용되었는데

일제강점기때 외인들이  봉화의 춘양목의 우수성을 알고는 벌목해서 일본으로 옮겨가기 위해 지은 역사가 춘양역이라  억지춘양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한다.

 

여행을 떠나기전 무거운 걸 들다가 뜨끔했던지라...산길에 접어들자 허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숲속 중간지점 '춘양목 홍보전시관'에 다다랐다. 춘양목에 대한 유래와 춘양목과 외국목재를 비교하며 볼 수 있게 되어있었다.

각국 나라의 소나무와 감촉을 직접 느껴볼 수 있도록 단면을 잘라두었는데, 우리의 금강송 춘양목이 단연 촉촉하고 매끄라웠다.

사계절이 뚜렷하여 나무테가 촘촘하고 춘양목 나무결이 그래서 곱다는 것이다.

숲해설가님의 금강송, 춘양목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끝나가고 일행은 좁은 산행길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 때 해설사님이 목공예체험을 해보지 않겠냐시며 안내를 했다.

들어서자 일행중 젊은이 댓명은 벌써  공예작업에 푸욱 빠져 있었다.

테이블 한가운데 놓여진 샘플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자기가 방금 만든거라고 하기에 그 솜씨에 얼마나 놀랐던지.... 주눅까지 들었다.

 

만들기엔 나도 이력이 있는데....에라 펜던트나 만들자! 하고 시작하자 숲해설사님과 문화해설사님 두 분의 도움으로, 구멍도 뚫어주시고 줄도 매어 주시고

순식간에 7~8개를 만들었다.

그걸보자 곁에 있던 동행의 젊은이들도...너도 나도 여친에게 선물한다면 펜던트를 급히 만들기에 열을 올렸다. ㅎ`

 

만들기에 열중하자 이내 숲에 간 일행들이 내려오고 우리는 손을 털고 일어나 합류했다.

어눌한 솜씨로 만든거지만 펜던트를 나누고....내려오는 길, 이산 저 산 돌아봐도 참으로 장쾌한 산들과 그 숲으로 울울창창 둘러 쌓였다.

 

봉화군의 총 면적은 서울의 두 배란다.

그런데도 막상 평지는 그 중 13 %,  창평리 부근을 지나며....봉화에서 제일 넓은 평야라고 滄海라고 부르다가 창평리로 부른다기에 모두들 차창밖을 쳐다보며

< 에게게~~>했더니 해설사님 말씀인 즉 관광객들 모두가 그런단다. ㅎ`ㅎ`   정말 골이 깊은 골짜기....봉화 맞다.

산이 높으니 골이 깊고 골이 깊으니 물이 당연 맑지!!

산 높고 물 맑은 청정고을 봉화!

 

서벽 금강송 숲 체험장에 캠프 야영장이나 방갈로가 마련돼있다면 가족과 함께 들어와서 피톤치드 속에서 여름을 휴양림 속에서 지내다 오고싶다.

유난히 공기가 맑아 별이 크고 또렷한 밤하늘도 만나러 다시 가고싶은 곳 봉화!!

야생초화 흐드러지게 피는  5~6월 경에 내 다시 오르리라!!

 

글/이요조

 

 

 

춘양목이란   태백산일대(봉화.울진.삼척등지)에서 생산된 우량 소나무 원목이 춘양역을 통하여 반출되므로서 전국 목재상들이 춘양에 가면 질좋은 나무를 구할 수 있다는데서 비롯된 이름입니다

춘양목의 자랑은 보통 소나무보다 생장이 3배 이상 느리고 곧게 자라며 심재(나무의 가운데 부분)가 붉으며 제재하거나 재목으로 사용하였을 때 뒤틀림이 거의 없는 나무이기도하고, 조선조에 궁궐에서 쓰이는 나무는 거의가 이 나무를 사용하였고 최근에는 유명사찰, 고궁보수 등에 사용하고 있으며 그 가격은 보통 소나무의 10배이상 높은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습니다.

춘양목(일명 적송)의 구별방법은 외피는 거북등 같이 갈라져 있고 색깔은 암회색을 보이며 나무를 잘랐을 때는 심재와 변재부분이 확실히 구분되고 나이테(나무의 나이로서 1년에 1개만 형성됨)가 좁고 치밀하게 보입니다.

 

이런 좋은 형질의 소나무를 보전하여 길이 후손에게 물려줍시다

 

.....

.....

....

 

..

 

숲에는 갖가지 (가을)야생초화들이 만발했다.

 

 

목공예체험

 

솔방울로 꽃잎을 붙여 직접 만든  펜던트,

가운데 돼지코는 울 남편님? 솜씨!

 

관솔가지(송진기름 덩어리)

 

송진이 엉긴 소나무의 가지나 옹이.

주로 옹이(나무에 박힌 가지의 그루터기)에 많이 엉긴다.

예전에는 송진이 많은 관솔에 불을 붙여 촛불이나 등불 대신으로 썼다. 성냥이 귀할 때 불쏘시게용으로 아주 편리하다.

소나무속 나무의 줄기에서 분비되는 송진이 나무줄기에 발달한 세포간도(細胞間道)에 엉겨서 생긴다.

성분은 로진과 테레빈유이다.

이것으로 짠 기름을 솔기름이라고 하며 기계 등에 사용한다.

 

.

.

.

 

 샘플 가운데 두고

모두들 골몰하게 목공예 체험 작업중

 

 

 

 

 

[찾아오시는 길]  

:::자가용
영주IC>>36번국도-봉화방면
남안동IC>35번국도-봉화방면

:::택시
영상운수(주) - (054)673-4365
개인택시연락처(사무실) -(054)673-4110


:::항공편

예천 -> 서울 서울 -> 예천 비고
09:10
17:20
07:45
16:00
예천->봉화 40분 소요

 

 

 

 

 

 

봉화의 아름다운 문화유산 체험

 

 *의양리 권진사댁*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0호
소재지: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성암 權喆淵(1874~1951)선생이 살던 집으로 건너마을 운곡에서 이곳으로 정착하여 건립하였다고 한다.

만석봉(萬石峯)을 뒤로두고동향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9칸의 대문채를 들어서면 넓은 사랑마당이 있고 마당의 좌측에는
3칸의 서실(書室)이 있으며 대문채와 마주하여 ㅁ자형의 정침이 배치되어 있다.

정침의 양쪽 허리부분에는 토담을 좌우로 뻗어 내외 마당으로 공간구분을 하고 있으며 동향 건물임에도 툇마루를 설치하는 등
남측면을 적극 활용하기 위한 평면구성이 돋보이는 주택이다.

 

 

 

봉화군 일대 답사를 마친 첫째날은  의양리 권진사댁 고택 체험겸 일박을 하기 위해 머무르기로 했다.


권진사댁에는 문인명사와 애국지사들의 내왕이 잦았으며

찾아오는 빈객이나 걸인들을 후히 접대하였다 한다.

 

사랑채

 

솟을대문을 들어서자 마주보이는 사랑채와 너른 마당 

사랑채  헛돌 3단의 막쌓기지만 정연해보인다. 

 

  

권씨 집안의 종손부부님이 반가히 맞아주며

 이 굴뚝으로 연기가 오르면 아름답다는 설명이시다.

아쉽게도 우리가 도착하기 전 군불을 다 지펴 놓은 후다.

 

 

사랑채는 

팔작지붕, 방형기둥, 7칸이며 정면과 측면에 툇마루를 걸었다.

 

 

각자 여행 봇짐을 내려두고 저녁을 먹으러 나섰는데...

동네의 그 캄캄함이란...하늘의 반짝이는 별!!

모처럼 느껴보는 아득한 옛날의 시골밤길 정취를 느꼈다.

제실을 보고 <사당이닷> 했더니 옹기종기 붙는다.

ㅎ`ㅎ`ㅎ` 도시촌늠들~~

 

배부르게 저녁을 먹고 들어오니 쥔장께서

또  우리를 위해서 특별식으로

미리 마련해둔 콩찰시루떡을 내어오셨다.

밥 방금 먹고 떡먹고...어찌나 맛나던지.. 그런데...또!!! 또야??

 

 

방에는 TV도 없었고

이내 칠흑같은 어둠이 깔린 시골에서 무엇을 하고

이 긴긴-밤을 지새라고....

고구마와 감자를 굽겠다고 다시 군불을 지폈다.

불이 사그라들고, 은박지에 싼 고구마, 감자를  

 

 

 

흡사 초겨울밤 같은 날씨에 <추워~ 추워>~ 해싸며 

부르르 떨어가며 들락날락대더니 구워왔다. 

앗 뜨거 뜨거!!!

 

 

요렇게 쪼개고 들고있자.....

계속 웃음이 터져서 카메라가 흔들흔들..

 

 

카메라 후래시 세례~ 팟! 팍! 

 

둥굴게 모여앉아  정담을 나누고....

밤은 깊어가고... 

방바닥은 따끈거리고, 

피곤한 눈은 스르르르..... 

 

 .....

 

아침이 되었다.

이 곳은 새사랑이기도 하고 서실인 셈이다.

방문을 여니, 차고도 싱그러운 아침 공기와 함께

반겨주는 풍경!

 

 

뒷산이 萬石峯이라는데...

권진사는 만석까지는 아니고 8천석 가까이 하셨단다.

뒷 산 소나무가 고택과 잘 어우러지는 풍경이다. 

 

 

 아침에 일어나

안채 마루에서 조반상을 받다.

국이 두 가지나 있었는데,,,하나는 닭개장이고  또 하나는 된장국이었다. 

안동이 가까워선지 고구마줄기와 함께 졸인 간고등어가 짭짤하니 맛났다.

 

 

옛날에는

위에 사진처럼 함께 둘러앉아 먹는 게 아니고

손님들에게는 1인 1상의 차림을 내었다.

작은 상들이 즐비하게 시렁위에 얹혀있다. 

 

 

안채의 마당 모습

내당(內堂)의 ㅁ자형  정침(正寢)

 

안채의 대문을 밀고 안채뜰을 살피니

 

 안채로 통하는 중문
사랑채에서 안채로 향하는 중문은 낮은 흙담을 쌓아 내외구분을 했다.

왼쪽이 정낭(화장실)

안채 후원에서 바라보이는 정낭과

 

 모란이 있는 장독대와

 

얕은 토담너머로 3칸짜리 서실이 보인다.

 

 서실

 날 밝아 다시 살펴 본 사랑채

 

행랑채 중앙에 솟을 대문을 내었다

너른마당과 사랑채가 정면을 버티고 섰다. 

 

대문채 

 

일행중 몇몇과 나는 書室 사랑채에서 묵었는데

방이 얼마나 뜨끈하던지....아침이 되어도 모두 일어날 생각을 않는다.

나는 <뱀이다아~ 뱀이다~ 몸에 좋고 맛도 좋은 뱀이다~ 아~ @,@> 기상송을 부르고

따뜻한 구들목에 등짝이 붙어버렸는지...

마지못해 부시시 일어나 앉아서들...

개운하다는 한 마디씩 멘트를 날린다.

(다들 늙은이여 뭐셔?)

 

 

글/이요조

 

권진사댁 고택체험 / 봉화군 춘양면 의양 3리 / 054-672-6118
 

 

  

 

 경북 영주의 명물이 될 판타시온 리조트!

지금은 워터파크만 개장중인 곳!!

첨엔 그 규모에 놀라고...

 

입구서부터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중국 자금성 같기도 하고...천안문 같은 느낌도 들고

 

엥?

정말 중국풍으로 용머리를? 무식한 발언을 했더니

듣기에 거북살스러웠던지...강경원님이 살째기 일러준다.

축구 응원단 붉은악마1의 트레이드마크였던 바로 그 치우천황2이라고....

 

 아직은 가동않고 있는 매표소 출입구

 

2008년 한여름에 워터파크만 개장을 하고

9월인 지금 실내만 가동중이었다.

야외 파도풀장

정면으로 찍고 싶었는데...풍기인삼 축제에 앞서

미녀들의 예행연습이 있어서 찍질 못했다. 

대신 홈페이지 이미지로~ 

 아래에서

치어다보며 셔터를 누르는데...

괴성이 간간이 들린다.  누군가 신들이 난 모양이다.

 

 중국풍이냐고 물었던 그 주범이

'출입구에 버티고 있는 치우천황'의 모습과

바로 이 슬라이드 지붕이다.

 

 

정자각처럼 만들어진 슬라이드 기와지붕

이름마저 비류대(飛流臺)다.

ㅎ`ㅎ`

선비의 고장 아니랄까봐....원터파크의 이름이~~

옛 선비들, 이런 놀이기구가 있을 줄 상상이나 하셨을까?

飛流臺라? 음...!!!

 

한여름 개장시에 얼마나 북적였을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십이지신상3의 원통형 조각품이다.

 

실내 풀장과

윗층 정면에서 바라보이는 모습

 주말이어선지  

베드에는 아빠들이 휴식중,

아이들은 대개 엄마와 놀고?

실내 해수풀장모습

 그 때

한 무리의 미녀군단이...

나중에 알고보니

풍기인삼 미녀들!!

 나도 물에 뛰어들고싶다.

근데..(ㅠ,.ㅠ)

시간이 넘 �어!!

 미녀들...

포즈잡고 워킹!

카메라 앵글 바삐돌고....

흐...내가 남자였다믄 변태로 찍힐 것 같다.

하지만 난(할) 줌마!!

그래도 역시나 내 눈에도 곱고 이쁘다. 뭘~

꽃사슴같은 미녀들의 각선미가....

 

 

 

판타시온 리조트 http://www.pantasion.com/

 

판타시온C.C

 

판타시온 컨트리클럽도

2009년 10월 시범 라운딩 예정이라네요!

18홀 퍼블릭 골프장 (국제대회 유치가능 규격)

묵리 산 25-4번지 일원(리조트에서 약 7분)

 

 

 

 

  1. 붉은악마의 트레이드마크 도안으로 쓰이고 있으며, 2002년 축구 월드컵 때 유명해졌다. [본문으로]
  2. 치우천황/중국 신화에 따르면 치우는 염제(炎帝)의 후예로, 81명(또는 72명)의 형제가 있었으며, 여섯 개의 팔과 네 개의 눈을 가지고 있고 소의 뿔와 발굽을 가지고 있으며 머리는 구리와 쇠로 되어 있다. 처음으로 창과 방패 등의 무기를 사용하였다고 설명되기도 한다. 치우의 부족은 일부가 헌원에 협조했고, 일부는 여족(黎族), 일부는 요족(瑤族)이 되었다고도 한다. [본문으로]
  3. 십이지상/쥐·소·호랑이·토끼·용·뱀·말·양·원숭이·닭·개·돼지(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의 12가지 동물을 상징하는 상 [본문으로]

 

 

금 가고 버림 받은 것들 끌어안기
                                   

아침 햇살에 물든 은행잎!!
은행나무의 배경은

동쪽에서 해가 비껴 떠오른 오전 9시경이었다.

한 달만 더 기다리면, 내가 그렇게나 보고싶어 했던 부석사 황금빛 은행나무길을  걸을 수 있을텐데...


 

9월 하순이라지만 늦더위가 한여름 무더위 못지않다. 
그래선지 은행잎들은 아직도 여름처럼 싱그럽도록 푸르다.

아침 식사 후 바로 들린 부석사엔 지난 밤 많이 내린 비로 인해 아직 먼저 오른 사람은 거의 없어 보였다. 

천년 고찰의 신비를 안은 부석사를 답사하기에 더 없이 고즈넉한 시간이다.

 

 

은행나무길은 우거진 숲그늘로 어두운 듯.. 비쳐보이다가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받은 곳은 연신 눈부신 연둣빛으로 환해보이다가...

혼자서 길을 오르노라면 ...제절로 깊은 생각에  마냥  잠겨서 걷고 또 걸어도 지루하지 않을 명상의 길이다.

신경숙의 소설이야기를 빌자면 상처받은 자들끼리 부석사를 찾아 떠났지만 끝내 도달하지 못했던 곳이다.

설마 소설탓이겠냐마는 영주부석사엔 상처받은 사람들이 오면 치유를 받는다는 잔잔한 설이 생겨났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상처 한 두 번 받지 않은 사람 어디 없을까마는

상처 받은 사람들이 부석사에 다다르면 치유가 되는 그런 절집이란다.

상처받아 딱지가 채 굳지 않아 가끔씩 딱지 아래서 선혈이 흘러 내리는 아픈 사람들에게 영주 부석사는

세상에서 지치고 다친 사람들의 꿈의 이상향이 되어버렸다.

 

 

삿갓 김병연이 부석사를 찾아들어 세상 사느라 백발이 희끗해진 년후, 늦게사 부석사를
찾아들었다는  싯귀처럼 나 역시나 백발이 희끗해서야 부석사에 첫 발을 내 딛었다.

이 나이에  아직까지 무슨 아픈 상처가 짜다라 남아있겠냐마는...
나도 남에게서 받은 흉터 한 두개 쯤은 지지않을 흔적으로 남아있어
살아오면서 내가 누구에게 몹쓸 상처를 주며 살지 않았는지, 뒤집어 생각해 볼 일이다.

 

 

 

안양루를 오르는 길은 좁은데다가 올라가면서 점차 좁혀지는 느낌이다.
무지한인 내 소견에도 짐작컨데  좁은 문은 생명을 뜻하지 않나 싶다.
좁은 문이란 힘든 길,  기피하는 길, 하지만 생명으로 향한 길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형태적으로 본다면 혼자 들어가야 하는 길이고  많은 것을 가지고 가지 못하는 길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탯속에서 어둡고 좁은 길을 통과해서 중심에서 약간 좌측으로 비껴선 듯한 석등을 피해

오른쪽으로 오르면 고고성을 내며 태어나는 신생아처럼 부지불식간에 무량수전 불당위에 솟아 오르게 된다.

이 어찌 새로 태어나듯 하는 생명길이 아니고 무엇일까?
우리나라의 목조건물중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라는 무량수전의 날아갈듯한  팔작지붕의 선과 

무뚝뚝한 듯 무량수전을 말없이 떠받치고 있는 배흘림기둥과 하이얀 창호의 문틀과 문살의 아름다운 모습이 그 곳에  있다.
눈에 가슴에 늘 익혀져 온 것 같은 천년의 세월이 살아 숨쉬는 배흘림기둥의 불룩한 나무결을 쓰다듬노라니 아!
손바닥으로 해서 온 몸에 전달되는 촉감은 세밀하면서도 따뜻하다.

 


  
세상의 물결에 이리저리 부대낀 상한 마음을 위로하고 다스리려 한다면  명상로를 시작으로 천천히 걸어 올라보라!
주말이라면 사람들이 한창 붐비는 한 낮을 피하고...
아침 일찌감치 올라 태백 산봉오리를 부드럽게 감싸 안은 운해를 바라보거나
관광객들이 내려오는 오후 느즈막히 올라 부석사의 석양을 바라만봐도 좋으리라~


 

소백산 자락을 딛고서서 태백산맥의 등허리가 물결로 출렁이듯 바라보이는 곳에 허리를 쭉 피고 바로서서
침묵으로 구순하게 엎딘 태백을 보노라면  .... 세상사 아무것도 아닌 듯,  별일 아닌 듯,
저 아래 세상일이 하찮은 것인 양  갑자기 큰 해탈의 도량이 밀려들 것이다.


눈물이 나면 와락 쏟아내도 좋을터,  이내 서럽던 마음이 차분하게 씻겨나가리라~~

 

 

비바람 치는 날에나,
은행나무 앙상한 겨울,
발이 푹푹 빠지는 눈내리는 날에도...


 

영주부석사를 찾은 느낌을 옮기다.  사진:글/이요조 2008,9,21

 

 

 

은행나무 명상길

 

 

 

 

 

 postscript

거의 인적이 안 보이는

은행나무길을 찍은 것은

함께 간 팀원들이

포토라인의 규율을 지켰기 때문이다.

 

은행열매가 떨어진 길바닥

우리는 정지선을 정하고 일제히 샷!!!

또 걷다가...정지하고,

 

 

제일 어눌한 줌마 포즈 의 나,

 

 

 

 

나름 여행을 한다고 다녔지만 내게 있어 경북 영주는 언제나 인연이 닿지않는 먼-별나라였다.

 

 

신경숙의 부석사를 읽고 언젠가는 꼭 가리라 마음먹었던 곳이긴 하지만 매번 결정적인 순간에
다른 곳으로  여행지가 바뀌곤 하였다.

너른 바다를 바라보고 성장하다가 바다를 볼 수 없는 중부 내륙지방에 사노라니 늘 바다가 고팠기 때문인가보다.
그랬는데...정말이지 모처럼 영주를 찾았는데, 너무 늦게 찾아 온  내게  영주는 그  서운했던 마음을...
그 속내를 숨길수 없었음일까?  

흐린날씨에 기어히 오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피곤한 몸을 누이자 빗줄기는 장대같은 폭우로 변해버렸다.


 

 

내일 찾아가는 부석사에서 바라보이는 태백산맥을 정원으로 품고있는 멋진 경관도 저으기 못볼 것 같아서 잠이 오지 않았다.

밤새 천둥 번개가 치면서 불면에 뒤척이게 만들더니 새벽녘에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행여 아침이 찾아와도 일어나지 못할까봐 커튼을 조금 열어두었더니 어느덧

그 틈새로 새벽의 푸르스름한 미명이 고개를 디밀어 창을 기웃대고 있었다.

 


 

날씨가 걱정이 되어서 창가로 다가갔더니  파르라니 날 선 푸른 새벽이다.

눈 뜨자 처음 바라보이는 영주의 신선한 새벽이다.

과연 소백산의 정기어린  선비의 고장다운 모습이다.

 

 

 

지난 밤, 저녁 식사후  캄캄해져서야 버스로 이동을 했기에 아침에 눈을 뜨고 바라보이는 생경한 경북 영주의 풍경이다.

어둠속에서도 오똑하게 서있는 예배당이 신새벽, 웬지 가슴을 찌르르르하게 한다. 
영주사과골 아니랄까봐 눈 앞에 바라보이는 아파트 마당에는 사과작업을 마친 트럭들이 주차된 진기한 풍경이다.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려 바라보니 사과 공판장같아 보이기도 하다.

산비알에는 으레 사과밭, 그리고  풍기인삼밭이 오순도순 공존하는 영주땅이다.

 

 

 

새벽 물안개가 스멀스멀 산을 기듯 오르는 걸 보니 오늘,  비는 오지않을 모양이다.
나는 커튼을 제끼고 방충망까지 비껴두고는 푸르스름한 미명을 렌즈에 담았다.
아주 소중한 듯 새벽을 깨우지 않으려고...조용하게,

밤새 마을을 지키려 밝히고 있는...아직은 꺼지지 않은 불빛이 정겹다.

 

.............

 

 

오늘 일정 투어를 위해서 준비를 하고 거리로 내려서니 아름다운 코스모스 꽃길이다.
밤새 깨끗이 청소가 된 신작로가 여행자들을 반긴다.

 

 

아침을 먹고  여행 스케줄대로  이동하는데
밤새 폭우에 말끔히 씻겨진 말그란 얼굴의 하늘!!
영락없이 드높고 맑은 가을하늘이다.

물에 빠진 파아란 하늘과 흰 뭉게구름에 눈이 시리다.

 

 

그랬다!
내가 늘 좋아해서 즐겨 찾아다니는 푸른 바다가

영주! 그 곳에서도 날 기다리고 있을줄이야~~

 

 

 

2008년 9월21일

이요조


 

 

 

 

 

여행지 (영주)추천업소

 

 

* 참고로 제가 묵었던 숙박지는 부석사와 위치가 아주 가까운 유일한 숙박업소인 코리아나호텔(054-633-4445, 1박에 3만 원)

영화 ‘너는 내 운명’이 촬영된 장소니 ‘영화촬영지 답사광’이라면 한번 들러보시기를....새벽 미명의 사진(上)은 코리아나 5층에서 찍은 사진임,

방 넓고 욕실넓고 침구 깨끗하고  가격 착하고, 아침에 일어나 호텔옆에 붙은 <영주 코리아니식당> 음식 좋고 친절하고....

단체로 입모아 영주에서 제일 맛있었다는 격찬까지!!! 호텔에서 주무시기 전 에약을 하면 융숭한 아침을 드실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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