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관광, 울릉도와 갈매기』

 

 

*2005,5,12일(금) 10시  포항출발 13시 울릉도 도착, 5월 14일 오후 7시 포항 도착

 

▼포항 여객 터미널....................................................................울릉도 도동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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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썬플라워호 내무.....................................................................썬플라워호 탑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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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썬플라워호에서 포항여객터미널을 바라보다.................................세 시간 후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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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동항에서 하선, 차례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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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일인데도 인산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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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울릉도는 관광객들로 울렁인다.

 

 

울릉도는 지금 5월이 제일 아름답단다. 신록이 푸르고 보기 좋으므로~

포항여객터미널에서 울릉도까지 선플라워호(49,000+추가이용료 1,100)로는 세시간,

출항재개를 한지 얼마되지 않은 나리호로는 여섯시간이다.

 

배 뒷편으로 지나온 물살이 어림잡이로 1km가량,  파도포말로 하얗게 이어지는.....울릉도 뱃길,

망망대해에 애꿎은 햇살만 눈 아프게 부서지고 있었다.

 

울릉도와 갈매기 사진편은 여행이튿날 오전 울릉도 한바퀴를 선회하는 해상관광 중에 찍은 사진이다. 그 배는 유람선이라  크기가 작아서 아무래도 흔들림이 좀 있었다.

들어오는 날  붙였던 '귀미테'를  떼어두었다가 다시 붙였다.

선실에 있으면 멀미가 더 날 것 같고 차라리 갑판에 나와 지나가는 신비한 울릉도의 비경을 감상하는 게 멀미를 쫓는 비결이다.

 

미리 독도를 예약했으면 좋았을텐데...요며칠 바다는 보기드물게 잠잠했다 한다. 사진에도 바다가 아니라 마치 호수처럼. 강처럼 보이는 물결이다. 독도를 미리 예약하지 않은 관계로 갈 수가 없었다.

이 번 주말만 독도를 찾은 관광객이..어림잡아 3,4000명은 된다고 가이드가 전했다.

 

이렇게 바다가 잔잔할 줄 알았다면 연이어 배를 타도 좋았을 텐데...관광객들이 몰려 예약이 끝났단다.(요금 37,500원 소요시간 4시간30분)

포항에서 울릉도는 217km, 울릉도에서 독도는 87.4km 이다.

 

온통 불덩어리였을 화산터 용암이 바닷물에 식고 굳어서 이제는 그 틈새에서 나무가 자라고 식물이 돋아나 꽃을 피우고 온갖 짐승들의 보금자리로도 기꺼이 내어놓는...

그 모든 것을 품안에 안고 사나운 바닷바람을 피하게 해주는 울릉도~

 

울릉도의 특산물은  오징어와  울릉도 호박엿과 울릉도 먹거리로는 울릉도에서 키운 약소불고기, 홍합밥, 따개비밥, 오징어불고기, 오징어회, 오징어내장국이 있고 재배하는 고비, 삼나물, 더덕, 부지깽이나물이 있고 자연산 명이(산마늘) 등을 그 품에서 키워낸다.

요즘에는 참문어가 많이 잡히는 계절이란다.

 

2박3일의 일정중 이튿날의 울릉도 해상관광인데 두시간을 꼬박 선상에서 사진을 찍는 내내 갈매기가 조연으로 들어가지 않은 게 거의 없을 지경이었다.

과자맛을 알아서 달라고 더 달라고 칭얼대는 애기같은 갈매기들을 어쩌지 못하고 함께 울릉도를 한 바퀴 돌아야 했다, 나중에 사진으로 자세히 보니 절경을 배경으로 날아다니는 갈매기의 흰 날개는 마치 두루미처럼 느껴져서 仙界를 바라보는 듯한 감흥에 다시금 젖어들게 했다. 

울릉도의 비둘기나 갈매기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성인봉 등산은 못하고 도동에서 저동으로 넘어가는 산길에도 울릉도의 자연생태체험을 했으며

온갖 새소리가 산속에 파도소리처럼 들려와서 어느듯 나도 모르게 입술을 오므려서 못 부는 휘파람으로 새소리에 화답하고 있었다.

 

 

三無(도둑,공해, 뱀) 五多(향나무, 바람, 미인, 물, 돌)

의 울릉도의 명칭답게 물은 정말 많았다.

설악산 오색약수 맛같은 철분이 많은 도동약수는 넘쳐나고

바닷길에도 동굴에서 떨어지는 염분끼라곤 전혀 없는 맑고 달큰하고 시원한 물!

이런 넉넉한 물이 사람을 부르고 모든 생명의 원천이 되고 울릉도를 살찌운 근본인 것이다.

 

 

 

 

 

2006,5,16일

 

이요조글/사진

2부에는 육상관광 3부에는 특산품, 먹거리등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호적등재인구:28세대 1,019명(2005년3월)

*주민등록인구:1세대 3명꼴

 

 

 

*울릉도는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다.

*예로부터 지명은 '무릉''우릉'또는 우산국으로 불리워 왔으며 신라에 귀속시켰다.

*태종3년(1403년) 주민을 본토로 귀환케함(공도정책)

*고종18년(1881년)이규원 검찰사 울릉도 순찰

*고종 19년(1882년) 울릉도개척령 반포(도장제실시)

*1883년 7월 개척민 54명도 입도, 주민이주시작

*1900년 광무4년 군제 실시(강원도 울도군)

*1915년 울릉도 개칭, 경상북도 관할

*1945년 울릉군개칭(군제실시)

 

 

 

도동항 전경

 

해상비경

 

섬주변에는 올망졸망한 작은 섬들이 제각기 자태를 자랑한다.

세 선녀의 속삭임이 들려올 것같은 삼선암을 비롯, 공암, 관음도 등 비경이 연이어 숨막힐 듯 펼쳐진다.

 

 

 

 

 

 

 

 

 

 

이번 여행길에 메이트가 되어준 큰 아들,

나도 해보려고 했는데...갈매기가 채어가는 순간 '으악"

온 몸이 경직되어서...ㅎㅎㅎ

 

 

 

 

ㅎ 모자두꺼비 바위랬나?

 

공암(코끼리바위) 물을 들이키는 코끼리같다. 눈도 있고...

 

송곳봉/성인봉 줄기의 하나로 송곳처럼 솟아있어 송곳산으로 불린다.

성인봉과 연결된 능선에는 바다와 맞닿은 구멍이 뚫려있다.

 

 

 

 

비행중에는 발을 비행기의 랜딩기어처럼 넣고,

 

 

 

 

 

서면..같은데....성당이 하나, 교화가 둘,

 

 

가위바위?

 

 

 

 

 

 

 

관음도/해변에 맞닿은 2개의 큰 동굴속에서 천정의 낙수를 받아 마시면 무병장수한다는 관음도.

쌍둥이 굴

코끼리바위

 

 

 

 

 

 

 

 

주상절리현상이 많았다.

해서 국수봉이라 했던가? ㅎㅎㅎ 가물가물,

 

 

바로 이 곳이 지난해 매미로 토사가 무너져 일주도로가 끊겼다는 곳이다.

울릉도 돌은 대개가 모래하나 뜯어내지 못할 정도로 단단했는데...그래도 더러 이렇게 토사로 무너져 내리는 곳이 있었다.

어떻게 손 쓸 수가 없어 궁리 궁리 끝에...이런 터널공법으로 공사중...우선도로는 테트라포트를 깔고 그 위에 무너져 내린

토사를 덮어 임시낸 길로 운행중

 

 

울릉도에도 88도로가 있단다. 회전식 고가도로, 위에서 보면 태극모양으로 회전하게 만들었다.

 

 

 

 

 

 

 

 

 

 

 

 

유람선에서

 

유람선 천정에 비치된 구명품들(아들)                                                              여행중인 모자 (큰아들과 나)

 

 

 

 

울릉도를 제대로 보려면 육상과 해상관광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육상관광

(소요시간4시간)

관광버스, 택시,렌트카를 이용하여 일주도로를 따라 섬의 비경을 감상/관광버스 1인요금 15,000원

 

◈해상관광

쾌속유람선으로 섬을 일주하는 관광코스/1인요금 15,000원

문의/유람선협회(054)791-4468 유람선 사무실(054)791-0123

관광성수기/1일4회

관광비수기/1일 2회/비수기시에 인원이 40명 미만일 경우 운항하지 않을 수도 있음

 

◈울릉→독도 (부정기운항)

유람선:1인요금(왕복)37,500원 소요시간 4시간 30분

문의 ☏ :독도관광해운(054)791-8111

 

포항여객선승선료/49,000 +추가이용료1,100

포항여객터미널/(054) 242-5111~2

민박안내/울릉군 관광안내센타:(☏(054)-790-6454

 


 

 

◎ Tip
울릉도 내에서 현금을 찾을 수 있는 곳은 군청, 농협, 수협, 우체국. 요즘에는 어디서나 신용카드를 받기 때문에 여비가 부족할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검색이미지


유람선 일주
해안선을 따라 기암괴석을 비롯해 아기자기한 섬들이 끝없이 펼쳐지는 울릉도이기에, 울릉도는 명실상부한 유람선 여행의 천국이다. 진정한 울릉도 여행을 완성하려면 유람선 일주를 빼먹지 말자. 유람선은 섬 일주 유람선과 죽도 관광 유람선의 두 종류가 있다. 일주 유람선은 도동항을 시작으로 사동, 거북바위 등 시계 방향으로 섬을 한 바퀴 돌아 죽도와 촛대바위에서 마침표를 찍고, 다시 도동항으로 돌아오는 원형 코스. 섬 전체를 구경할 수 있다.

대게맛은 실속위주: 품위위주?

 

 

 

영덕대게의 축제 본 행사는 삼사해상공원에서 가진다 한다.

보름을 막 지난 후라 달맞이 산행도 좋을 듯하다. 너른 동해 바다에 밝은 달이 비취고

지천으로 흐드러진 복사꽃, 붉게 피어 봄밤의 취흥을 도도하게 더해줄  것만 같다. .

 

삼사해상공원에서 나와 좌회전하면 강구항으로 접어든다.

 

영덕대게를 어디서 어떻게 싸게 먹지?


 

물 맑고 바다 푸른 청정해역이 어우러져있는 축복의 땅

영덕은 복숭아가 유명하다.

길가에는 온통 복숭아나무이니, 지금 영덕은 꽃게축제와 복숭아 축제를

겸하고 있으리라~

붉은 도화꽃 만발한 영덕에서 맛있는 붉은 영덕 게를 먹으니

어찌 봄날, 취흥에 겨워 즐겁지 않을쏜가?

 

그러나  울진 데게 축제도 끝이났고, 영덕대게 축제도 끝이났다.

게는 한참 산란기인 1~6월에는 잡지 않는다 한다.

산란기 전에 살도 많이 오르고 요즘이 일년 중 가장 데게 맛이 제일 좋을 때라고 한다.

나 역시 게가 커서 대데인 줄로만 알았는데...마치 다리가 대나무처럼 죽-죽 뻗었다하여

대(竹)게라 이름지어 불렀다한다.


영덕은 유난히 짬(돌틈)이 많단다. 해서 돌김 돌미역이 맛나고

해서 강구면과 축산면 앞바다에서 잡힌 게들이 맛있단다.

다리마디 생김새가 대나무와 흡사하여 대게라고 하며 지방질이 적어 담백하고 독특한

향미를 지녔다. 생산지로는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과 축산면 사이 앞바다에서 잡힌

것이 영덕대게의 원산지이다. 대게란 이름은 몸체가 크다 고해서 붙여진 것이 아니라

몸통에서 뻗어나간 8개의 다리가 대나무처럼 길다하여 붙여진 것이고 영덕 대게는

대게 중에서도 바다 밑바닥에 개흙이 전혀 없고 깨끗한 모래로만 이루어진 영덕군 강구면과

축산면사이 앞바다에서 3~4월에 잡힌 것이 타지역산보다 살이 차고 맛이 좋아 전국에

명성이 높다.

강구항에 가면 영덕게의 즐비한 식당과 직판장이 있는데..

江口항은 이름 그대로 강의 입구라는 뜻으로 오십천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길이란다.


강구항 그리 깊숙히 들어가지 않은 김가네 식당에 들어갔다.

주인이 직접 배를 가지고 대게를 잡아온다더니 정말 맛과 때깔이 다르다.

김가네 대게 054-733-6889 


영덕대게는 다 신선하다.

모처럼 나들이 나오셨으니, 이제 식당에 앉아서 품위를 지키고 먹을 것인지,

아니면 좀 더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가 대게를 파는 난전이나 광동어시장에서 게를 골라

찌는 집으로 연결해준다.

가격이 저렴한 쪽으로 먹을 것인지는 당신이 선택하면 된다.

직접 게를 골라서 살 경우에는 게가 훨씬 싸게 먹힌다.

다리 하나쯤 떨어져 나간 상품성 떨어진 늠을 한두 개 덤으로 얻을 수 있다.

영결해 주는 식당을 따라가면 되는데, 찌는 삯이 5,000원 한 사람당 자리 세 3,000원을 더 내면 된다.

실컷 게만 먹으려면 그렇게 해도 무난하다. 하지만 서비스는 없다.

모양내서 담아온다든가 서빙을 바랄 순 없다.

찐 게를 달랑 가위와 함께 던져주면 그만인 것이다.

가족수가 많을 때는 오히려 제격이고, 어르신을 모시고 갔다거나 하는 자리엔 식당을 권한다.

게는 등짝에 혹이나 검은 반점이 있으면 러시아産이니 그냥 영덕게 달라고 말하면 된다.

삶아냈을 때, 등짝이 선연한 주홍빛이 나야 좋고 몸통을 짜개 보았을 때 속에든 게장이

연둣빛 푸른색이 감돌아야 신선도가 좋은 것이다.

수족관에 오래 머물게 되면 삶아도 등짝 색깔이 선연히 곱지가 않고 속에 게장은 녹아 물이 되고

색깔이 꺼멓게 변한다.

육안으로 보기만 해도 차이가 난다고 봐야한다.

오늘 올린 사진은 아마도 갓 잡은 신선한 게인 듯, 신선도면에서 가히 넘볼자가 없을 것 같다.

지금쯤 길을 나서면 도화꽃 만발한 영덕, 그 부근 관광도 겸하시면 금상첨화이다.

 

 

 

영덕군청   http://www.yd.go.kr/   

    

게 등딱지의 빛깔이 선연하다.

게 등뚜껑을 열자 속을 내비치는 연두색 파르스름한 게장, 이 게 맛을 좌우한다.

물론 신선도도 이 것을 보고 가늠하면 좋다.

게 (속)장을 가져가서 거기다가 밥을 비벼내 오는데...밥이 파르스름하다.

이래야 제 맛이다.

게가 싱싱하지 않으면 밥도 파르스름하게 나오지 않는 보통의 시커먼 볶음밥을 담아나오게 된다.

덤으로 그집 식당  찬모의 솜씨가 좋다면 맛깔나는 반찬도 먹어 볼 수가 있고...

이 된장 고추무침이 별 것 아닌데도 얼마나 맛나던지...한 수 배워왔다.

 

 

 

江口항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오면 난전이 펼쳐지고 또, 광동어시장이 나온다.

비단 게뿐만이 아니라.. 회를 먹어도 좋다.

요즘 은어가 제 철인데, 은어는 꼭 강과 바다가 합류하는 곳에 사는데 영덕은어는 황금 줄을 띄고 있으며 맛 또한 일품이라는데...다음에는 가면 대게보다 은어를 먼저 선택해야 되겠다.

 

글:사진/이요조

 

영덕 강구항은 대게식당이 대략 3~400여군데,

일주일 매출이 한 집당 500만원으로 간주해도 월, 2~3,000만원

강구항의 대게매출은 줄잡아 원 매출액 150~200억이 되는 셈이란다.

대게가 효자상품임에는 분명하다.

 

아무래도 울진보다는 여러모로 더 잘 알려져 있고 인기드라마의 메리트도 작용했는지

많이 알려진 건 사실이다.

강구항의 대게거리 풍광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자, 대게를 아래에는 그냥 찌는 값만 주고는 온전히 게만 먹고 오는 방법인데...

달랑 사온 게에 가위만 던져주는 방법이다.

 

 

 

 

 

 

 ☞ http://blog.daum.net/yojo-lady/6941163

 

▲영덕교통편과 영덕터미널 시간표등 click~

 

 

 

 

『전망좋은 카페같은

            어촌민속전시관에서 본 당두리배』

 

 

사진은 경북 영덕군에 있는 경북대종각/영덕군 강구면 삼사리 삼사해상공원인데, 매년 1월1일 이곳 삼사해상공원에서 열리는 신년해맞이 축제에는 수많은 지역민과 관광객들이 저마다의 소망을 기원하면서 300만 경북도민의 염원이 담긴 경북대종 100계단을 가득 메우는 곳이란다.


 

해상공원 대종각 오른쪽에 자리하고 있는 영덕어촌민속전시관!

바로 한 달전에 이 곳을 방문 했을 때, 둘러보고 가자고 했지만, 우리 가족들왈, 뻔하지, 가봐야 어구 몇 개 가져다 놨을건데..뭐,...

그 말은 대단한 실수였다. 그냥 바다만 바라보아도 좋은 곳에 있는 바다위의 언덕의 입지조건하며, 깨끗하고 모던한 내부, 그리고 전시물 배치까지 무척 심혈을 기울여 만든 역작임에 틀림없다.  


아베크족이 많아서 처음엔 카펜가? 내 눈을 다 의심했다.

젊은 아베크족이 쌍쌍이~~

망망대해! 동해의 푸른 바다가 가슴을 펼쳐보이고~

갯내가 폴폴 날 것만 같은 어촌민속전시관이 왜 이리도 멋진겨?

이렇게 전망이 멋진 카페(민속전시관)를 만나 보았는가?

포스가 느껴지는 게 조형물, 대단하군요!

 

 

굳이 배를 타고 나가지 않아도 물길과 물때를 이용한 그물망, 선조들의 지혜가 담겼다.

'죽방멸치'때문에 알긴했어도, 이렇게 종류가 다양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 당두리배를 아시나요? ▒▒▒  

당두리배 건조순서

 

 

 

 

 

별신굿

 

제주도에만 해녀가 있었던 게 아니란다.

영덕은 짬(돌틈)이 많아서 해녀들이 직접 수산물을 캐내는 작업의 역사도 꽤 된다고 한다.  

각종 어구들

 

어류도감

게가 나오면 잡아 가두는 게임인데 무척 재미있어 보였다.

스코어가 올라가는데..나도 정신을 놓고 정작 사진은 허접만..

 

 재미있는 어시장 풍경

 해양사진전

 

강구항이 보이고

 돌아나오는 길

 대종각 오른편에 있는 독도를 다니는 비행기 격납고란다.

 

영덕어촌민속전시관

지난 2004년 1월 착공, 69억 원이 투입된 어촌민속전시관은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어선의 제작과정과 해저지형, 항구체험, 영덕어촌의 100년사 등 어촌지역의 문화를 한곳에서 살필 수 있도록 꾸며진 게 특징이다.
영덕 ´어촌민속전시관´ 관광객에게 또하나의 볼거리제공, 경북도내에서 어촌민속전시관을 만들기는 영덕군이 처음이다. 

어촌의 과거,현재 그리고 미래로의 시간여행은 또하나의 볼거리제공 영덕의 새로운 관광명소로  탄생했다.


영덕군에서는 어촌지역에서 사라져가는 전통민속 어업문화를 발굴해서 해양의 진취적 기상과 선진 해양수산의 교육 및 체험의 장으로 개발 창포 풍력발전소에 이어 또하나의 관광과 청소년들의 체험의 산교육장으로 활용할것이라고 한다.

삼사해상공원 ‘어촌민속전시관’은 해상공원 대종탑 바로밑에 위치한 관계로 시원하게 펼쳐지는 동해안 바다풍경과 함께 어린들이 좋아하는 ‘영상관’에는 10석규모의 ‘맑고 깨끗한 영덕바다를 찾아 또나는 대게들의 여행’만화 영화도 준비해놓고 있어서 온가족들이 다함께 즐길수 있는 ‘다양한 체험’공간 및 전시실이 준비되었다.
삼사대종탑에서 내려가면서 우측 ‘어촌민속전시관’3층 로비에는 안내 및 카페테리아가 준비되어 있어 관광객들이 편히 쉬면서 강구항과 저멀리 보이는 ‘풍력발전소’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휴식공간’을 마련해놓았으며,

 

그아래 2층의 제1전시실에는 영덕 어촌마을의 전통민속인 ‘영덕별신굿’ ‘사무실’ 각종 어업과 어선의 종류를 일목요연하게 전시해놓았고

그옆으로 ‘배부이’(전통방식의 배 건조과정)과 어선의 종류(덕탄배. 가거도한선. 떼배)와 각종 어구류가 전시되어 있어서 청소년들과 전통 어업문화를 시대에 맞게 전시 해놓았다.
제2전시실에는 그옛날 어촌살림과 도구 및 어구등이 전시되었으며, 대게저자망과 영덕대게잡이를 재현해놓은 공간에는 전통방식의 대게잡이와 최첨단 영상물을 설치 해놓음으로서, ‘영덕대게잡이’ 전시는 바다에서 직접 ‘영덕대게’를 잡는 것 같은 특수효과로서 청소년 체험공간으로서의 시청각 교육의 효과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그옆으로 ‘영덕바다’에서 잡히는 대게 종류별(홍게 청게 대게 수입대게와 북한산 대게)를 전시해놓음으로서 ‘영덕대게’의 식별을 할수 있어서 관광객들의 입맛을 돋우는 ‘영덕대게’진품 시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정도로 자세한 설명과 함께 전시해놓았다.

무엇보다 삶의 진한 애환이 묻어있는 ‘영덕해녀의 삶과 모습’은 해녀들이 사용한 잠수기구와 어구 그리고 그들의 삶을 한눈에 볼수있을 정도로 전시함과 동시에 앞으로 사라질지 모르는 ‘해녀’들의 삶을 전시함으로서 ‘영덕군의 전통민속 어업문화’의 자료로서 보존해나갈것이다.
강구항의 ‘영덕대게’ 판매 모습을 재현해놓았으며, 기획전시실에는 ‘영덕대게의 100년’이라는 제목의 귀중한 흑백자료 사진이 전시되어 있어서, 관광객들과 청소년들이 과거로의 즐거운 시간여행을 할수 있도록 마련했다.

삼사해상공원 과 오션뷰 골프장 창포풍력발전소와 영해괴시마을 창수 인량리와 영덕군 관내 해수욕장등과 연계한 관광개발과 연계한 ‘어촌민속전시관’은 관광객에게 또하나의 재미있는 볼거리를 제공함과 동시 편안한 휴식공간이 될것이다. /검색

물속에 잠긴 도시 아티란티스처럼 해저에 가라앉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강구항이다. 우리벽에 반사되어 물빛에 되 비친 항이 아름답다.

게잡이 나선 당두리배,

[Canon] Canon DIGITAL IXUS 700 1/100ms F28/10 ISO/이요조

 

 

 

근대 한선이라고 하면 일제강점기(1910)을 전후로 강이나 바다에 떠다니던 배를 말하는데

거룻배, 나룻배, 야거리배, 당두리 등이 있었다.

 

우리 전통 배를 한선(韓船)이라고 한다.

한일합방 전후로 하여 강이나 바다에 떠다니던 배를 말하는데 거룻배·나룻배·야거리배·당두리 등이 있었다.

그 중 야거리배는 돛대가 하나 달린 나룻배로 배 밑이 편평하기 때문에 한강을 거슬러 올라 다녔으며 한강의

모래밭에 그대로 올라 앉을 수도 있었다. 당두리는 당도리선(唐道里船)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원래는 바닷배이나

한강을 거슬러 올라다녔다. 현재 만드는 배는 주로 황포돛배·놀이배·기관선·메생이(그물배나 낚시배) 등이다.

배를 만들 때는 대개 마을사람들이 동원되어 함께 일하며, 큰 배는 2∼3명, 작은 배는 1∼2명이 배의 종류에 따라

일주일에서 한달 걸려 제작한다. 조선배의 특징은 물 깊이가 무릎밖에 안되는 강 상류를 오르내릴 수 있도록 배

바닥이 편평하고 탄력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김용우 - 시선 뱃노래/경기요

시선 뱃노래(배치기소리)

<후렴> 에~에헤 에헤야 어 어그여 어~ 어 에헤에헤 에헤요

[1] 어거차닷차 닻감아미고 엥평바다로 죄기실러간다

[2] 어허 명복을 빌었소 어허 명복을 빌었소 임장군 전에다 명복을 빌었다

[3] 배임자네 아주매 거동을 보소 약주술 동이를 들쳐이고 다릿발 밑에서 엉덩이춤 춘다

[4] 간다 간다 나는가 엥평바다로 죄기실러간다

[5] 날물 따라서 날오는 조기 들물 따라서 들오는 조기 우리 유덕선 다잡아낸다

[6] 오동의 추야 달밝은데 죄기 잡이가 재미가난다

[7] 오라가는 시선배 나려오는 당두리배 우리배 꽁무니를 다둘러섰다

[8] 나갔던 유덕선 들어오드니 강화 일경에 돈풍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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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은 당두리배에 강한 포스가 꽂힌 이요조였습니다. 2006,4,12.

 

 

 

 

해상공원 14742324

민속관 16131725

영덕관광부 14740951

 

♣  KTX연계(4월 말까지)

 

 

 

 
 
 

복사꽃과 영덕대게 축제열차(무박)

 
집계 중 ※ 해당 역명을 클릭하시면 자세한 정보를 보실 수 있습니다.
  기간 : 1일
  출발일 : 4/01~4/30 매일출발
  출발역 : 청량리
  도착역 : 영주
  관광요금 : 대인 59,000원
               소인 54,000원
               경로 59,000원
 

관광안내 : 지구투어
 

문의전화 : 1566-3035
 

관련역정보 : 청량리 , ,영주
 
복사꽃으로 눈요기를 하고 대게로 배를 채울 수 있다.
 

@ 예약문의 : 1566-3035       @ 인터넷예약 :  검색창에  "지구투어"  를 쳐주세요      www.jigutour.co.kr

여행일정
일자 지역 교통 시간 세부일정 식사
제01일 서울 23:00 청량리역 2층 대합실
"지구투어" 노란색 플랭카드 앞 집결
무궁화호 23:30 청량리역 출발
제02일 영주 03:13 영주역 도착
03:30 이동(영주역 →영덕)
영덕 05:30 동해 일출감상 및 자유시간
(해맞이 공원, 해상공원)
07:30

영덕 강구항으로 이동
영덕대게축제 참관
→ 축제 기간 : 2006. 4. 8(토) - 4.9(일) 2일간
→ 개최 장소 : 삼사해상공원 ,강구항 일원

[축제기간 이후에는 강구항에서 09:00에 출발하여 주왕산으로 이동하심을 알려드립니다.]

자유식
10:00 영덕과 청송을 잇는 34번 국도 27Km 구간에서 복사꽃 감상
12:00 중식 제공식
14:00 주왕산의 아름다운 주산지 감상
16:00 영주역으로 이동
영주 무궁화호 17:49 영주역 출발
서울 21:37 청량리역 도착

가자, 영덕으로!!!
그 곳에 가면 포구 물굽이굽이마다 해뜨고, 새가 날고, 매일 쪽배가 떠나는 곳.
해를 보며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미래를 계획해 보는 것도 일출여행의 맛.
거기다 생활의 활력을 주는 갯내음 시큼한 해산물 원가에 싫컷 먹어보며 일상의 찌든 때를 말끔히 씻어내리면, 스트레스 제로! 원기충전!!
공원산책 - 강구 삼사해상공원 해맞이
대게 판매점에 게를 주문해 놓고 다른 사람이 먹는 것을 유심히 지켜보는 사람이 많다 .대게 먹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일부 사람들은 다리만 먹고 게장이 든 아까운 몸통은 못 먹는 것인 줄 알고 그대로 놓고가는 경우도 있다. 게는 껍질만 빼고 모두 먹을 수 있다. 다리살은 맨 끝마디를 부러뜨려서 당기면 살 전체가 통째로 빠져나온다. 또 대게 끝 부분을 부러뜨린 후 다리껍질을 길쭉하게 가위질 한 후 파내 먹는다. 몸통은 뚜껑을 연 후 연한 겉껍질을 하나 하나 벗기면 맛있는 몸통 살이 드러난다. 게장은 참기름을 몇 방울 떨어뜨려 뜨끈뜨끈한 공깃밥과 비벼먹으면 대게의 참 맛을 모두 맛보게 된다.
봄이 붉다, 하늘빛과 대비된다. 과실에 밀려 꽃으로서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봄꽃 중의 봄꽃, 복사꽃으로 지금 영덕은 붉다, 붉어 흐드러진다. 중앙고속도로 개통으로 한결 가까워진 경북 북부의 빼어난 관광지, 강구항. 여기에 복사꽃이 덧입히고 그 꽃잎이 꽃비를 내리우면.... 그야말로 무릉도원이 따로 없음이다. 기왕 나선 김에 봄바람 제대로 쐬어보자. 영덕대게로(구 강축도로)를 따라 시원하게 드라이브도 즐기고 지난 ‘97년 방영된 MBC 주말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의 촬영지를 배경음악과 함께 둘러보면... 아, 봄은 행복한 계절이다... 그렇게 그대와 나의 봄날은 간다.
복사꽃산책 - 지품면일대 복사꽃 전경
포함내역 왕복열차비,현지교통비,입장료,중식,여행자보험,현지가이드.
최소 행사인원 *최소인원(20名) 미달시 행사가 취소될 수 있습니다.
참고사항 [월~목요일출발]
성인 : 59,000 소인 : 54,000
[금,토,일요일,공휴일출발]
성인 : 64,000 소인 : 54,000
비고 *현지 행사지에서 차량명과 차량번호를 꼭 기록하시어 탑승시 혼동이 없으시길 바랍니다.
*가이드 또는 차량기사의 핸드폰번호나 나누어드린 행사일정표를 꼭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현지차량 : 행사 인원에 따라 아래와 같이 차량을 운행합니다.
-10인 이상~14인 : 12~15인승 봉고운행
-15인 이상~25인 : 25인승 미니버스운행
-26인 이상~45인 : 대형관광버스 운행
*신청시 여행자보험을 가입하기 위해 신청자의 주민등록번호와 핸드폰번호를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비상약,세면도구,간편한 산행복장,간식 및 음료수 등
출발여부 및 환불규정
[출발여부 및 환불규정사항]
- 출발일 3일전까지 출발여부를 확인,통보드립니다.
1. 출발 3일전 취소시 100% 환불
2. 출발 2일전 취소시 70% 환불
3. 출발 1일전 취소시 50% 환불
4. 당일 취소시 환불불가
5. 열차 출발전까지 연락이 안될시에는 환불되지 않습니다.
(평일 오후6시이전, 토요일 오후2시 이전, 일요일은 포함되지 않음)
- 3일전까지 모객이 되지않아 취소시에는 쌍방 원칙에 따라 배상의 책임을지지 않음을 알려드립니다.

***근무시간 이외에는 여행의 취소,변경은 처리되지 않습니다.***
알리는 말씀

[상담전화 안내] 전국 어디서나 1566-3035
[근무시간 안내]
- 평일 : 오전9:00~오후6:00
- 토요일 : 오전9:00~오후2:00 (일요일,공휴일은 근무하지 않습니다)
- 점심시간(12:00~13:00) 및 근무시간 외에는 전화상담을 받지 않습니다.
-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시면 담당자로부터 안내전화가 나갑니다.

 

 

 

동해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곳!

 

여행후기를 쓰다보면 다녀와서 얼른 써지는 글이 있고, 그냥 잔잔히 가슴속에 담아 두고 싶은 그런 글도 있다.  그냥  좋아서, 좋다는 이야기는 꼭 어떤 특정장소를 들고 나오는 것도 같아서  내처 입 꾹 닫아 마음에 두고 싶은...그런 곳, 


한 달 전에도 경주로해서 영덕을 다녀왔다. 이번에는 포항으로 해서 바다로 난 길로 쭉 이어 올라가는 7번도로 영덕행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길로 이미 정평이  나있다.  동해안  7번 국도는,

바다를 끼고 난 길이어서 그 풍광은 세계 어디에다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고 할 수 있겠다.

 

포항, 호미곶, 오어사를 경유해서 영덕으로 올라가는 길은 내처 밤길이었다.

그러나  오래전에 한여름 휴가로 며칠간을 머물렀던 칠포에서 월포로 이어지는 해수욕장이라 눈에도 익고 추억이 서린 곳이라 어두워 자세히 보이진 않아도 이미 대낮처럼 기억에  메모리된 그런 바닷길을 더듬어 올라가는 중이었다.

아직은 이른 봄 밤,  동해안 밤 바닷가 끼고 포항에서 영덕으로 가는 길에는 군데 군데 화려한  불빛의 레스토랑  카페들이 즐비하게 눈에 띄기도 했다.

피곤하면서도 언덕배기에 화려한 불빛을 찾아 부나방처럼 또 올라가 보기도 하며 밤 늦게까지도 여행의 열정은 지칠 줄 몰랐다.

 

은근히 밤이  깊어오자 걱정이 앞선다. 숙소를 정해얄텐데,  잠 잘 곳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쉴 데가 마땅찮으니 그저 아득하다. 찜질방 같은 데는 숙면을 할 수가 없어 싫고, 조용한 곳은 모텔정도인데 그도 여자 둘이서 찾아 들자니 그렇다. 도저히 날은 저물고,  물먹은 솜처럼 지친 몸은 어디다 뉘어야겠고, 도리없이 포항에 사는 현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잠자기 좋은 곳이 어디 없냐고? 삼사 해상공원 내에 있는 통나무집이란다.

숙박료도 쌀 뿐더러, 바다가 바로 내려다 보이는 곳이라 좋을 거라는 말을 덧붙인다.

ⓒ2006  삼사해상공원 경북대종각 100계단 /새해해맞이하는 장소

 

삼사해상공원은 얼마 전에도 가족들과 함께 들렀던 곳인데...?

반신반의하며 경북대종각 윗마당까지 찾아갔으나 그런 팬션은 찾을 수 없었다. 

윗마당은 태진아 형님(수산물)가게라는 간판이 걸린 장터 같은 곳인데, 유행가를 크게 틀어놓고 마치 한적한 오일장터 분위기 같아 그저 되돌아 나왔던 곳이었다.

대종각뒤의 너른 마당 끝까지 가서 내리막길을 살폈으나 내리막길 왼편에 모텔 하나만 눈에 들어올 뿐!  몸은 지치고, 대종각 주차장으로 도로 나와서 24시 편의점에서 물어보니 방금 돌아 나온 그 곳이 맞단다. 오른편으로 꺾어져 있어 보이지 않는단다.

모텔 맞은편으로 숨은 듯 있는 입구를 어렵사리 찾아 들어가며 첫눈에 얼핏봐도 모든 분위기가 마음에 딱 들었다.

방에 들어서니 얼마나 찜질 방처럼 후끈하던지, 찜질방 안 가길 너무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덕군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어디나 할 것 없이 숙박요금은 일정하게 정해져 있었다. 주중에는 3만원, 주말에는 4만원, 통나무 팬션이라 비쌀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샀다. 누가 아줌마 아니랄까봐 비철이라 우겨가며 그 것도 10,000원 더 깎아서 들어가 보니 침구도 깨끗하게 두 채가 준비되어있었다.  한 가족이 기거하게끔 만들어 둔 곳이다. 좀 씻고 한숨을 돌리고 나자..그제야 들어 올 때 입구의 불빛이 너무 로맨틱해보여서 나가봤더니 이미 새벽 1시,  늦은 시간이라 소등하고 없었다. 아깝지만 포기한 채, 지친몸을 누이고 단잠에 빠져들었다.

 

다음날 아침, 새가 창가에 와서 아침 잠을 깨웠다.

커튼을 올리니 잠시 날아갔다가 또 오곤하더니...숫제 낯을 익혀 버렸다.

한 쌍이 날아와서 밭에 버려진 오렌지로 아침식사를 하러 온 모양이었다.

내가 알기론  크기로 보아 고양이 소리, 휘파람 소리도 흉내내고, 온갖 새들의 소리를 다 흉내내며 따라한다는 어치같은 데 ...잘은 모르겠다. 

 

 

 

 

 

예쁘다. 모처럼 손떨지 않고 그런대로 찍었다.

나는 움직이는 작은 동물들을 렌즈에다 담질 못한다. 먼저 가슴이 쿵쾅거려오기 때문에...

난생 처음으로 젤 잘찍은 사진이다.

 

아무튼 좋은 아침이다.  정말 예쁜 씨암닭이다.

먼-길 떠나려면 서둘러 일어나야 한다.

늦은 밤에 찾아들었던 통나무팬션을 찬찬히 둘러보며 구경을 해야겠다.

 

 

방갈로 앞에는 매화가 화사하게 피어있었다. 지난 밤에는 미처 몰랐었는데,

 

통나무 방갈로, 통나무 말로만 들었지..나는 실제로는 그다지 편리할거라는 느낌은 와 닿지 않았었다.

자고나보니 아늑한 고향집 안방에서 자고난 듯한 개운한 느낌이다.

 

 

삼사해상공원내에  '해송정 방갈로' 찾기가 어렵다면  삼사해상공원 아무에게나 물어보면 된다.

 

 

오로지 잘잤다는..잘 쉬었다는 감사한 마음뿐, 가볍게 나서며 바다가 훤히 보인다는 이 집에서

바라다보면 좋다는 소문난 풍광이나 한 번 보고 가자며 카메라를 챙겼는데,

 

 

한 눈에 쏟아져 들어오는 바다! 바로 이런 바다가 눈 앞에 펼쳐질 줄이야~

...차마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들었다.

 

 

봄이 오고있었다. 바다 건너서....

삼사해상공원 경북대종각에서 새해 해돋이를 바라본다했는데, 미처 그 생각을 못했다.

이 곳에서 일박하고 새해 일출을 맞이하기에 정말 멋진 곳이겠구나..하는 생각,

온통 너른 동해바다가 시야에 그득하게 바라다 보인다.

 

 

ⓒ2006  왼쪽이 대게로 유명한 영덕의 강구항,

 

 

TV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 에서 송승헌이 고기잡이 나간 아버지(최불암)을 기다리던 빨간 등대

 

 

ⓒ2006  레스토랑 전망대

 

 

ⓒ2006  정일품송 레스토랑



 

ⓒ2006  라이브무대

 

 

ⓒ2006  바지런하고 상냥하신 안주인,

 

 

ⓒ2006  깔끔한 내부

 

 

ⓒ2006  무척 낯익다. 양수리 어드메, 혹은 장흥골짜기 어드메에 있는 대형 카페같다.

 

 

▲ 천정을 유심히 보면 샨데리아가 좀 다르다.


ⓒ2006  주방

ⓒ2006  입구

ⓒ2006  bar가 있고,

ⓒ2006  군데군데 서화가 있고,

 

샨드리에가 특이하다. 닻도 보이고 어구같다.

실제 어구를 가져가서 특별 주문 제작했다 한다. 어부들 용어로는 '우끼'라는 魚具인데..

그 아래 부분을 도려 깍아 내어 등으로 만드는 제작공정은 서울에서 해 왔다한다.

 

 

바다의 서정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인테리어, 어구, 닻, 마줄이 천정에서 또 다른 얼굴로 달려있다.

 

 

최현우 사장님과 마주 앉았다.

처음에는 일을 염두에 두지않고 그저 여행중에 바다를 바라다 보고 갈 생각만 했는데, 정겹고 쾌적한 위치에 자리잡은 통나무 팬션이 좋고  레스토랑이 좋고 사람이 좋다보니, 영덕에 대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울 강남에 사시다가 사람에 치어 회의를 느끼고 낙향하듯 옮겨앉은 자리라 한다.나는 근간에 두번째 이 곳을 찾았지만 입구 찾기가 좀 그랬다고 말씀드리자 안그래도 경북대종각 윗마당에 오르면 광장 끄트머리, 보이는 지점에다 지금 팬션, 건축물을 또 짓고 있는 중이라신다. 단체를 수용할 수 있도록 연수형 팬션인데, 연수원 짓기에는 조금 귀찮다 싶은 병원이나 기업 단체와 자매결연을 맺었으면  하는 바램이시란다.

통나무 방갈로와 레스토랑을 짓고 고향에 내려와 새 터를 잡은지 8년째 접어든다는.. 영덕을 꽤나 사랑하시며,  발이 넓으신지 유명 지인 가수들이 영덕을 찾으면 꼭 이 곳을 들러 간다고 말씀하며 띄는 미소 속에 시원스런 영덕 바다 해풍이 묻어 나왔다.

 

ⓒ2006  나도 모르게 인터뷰 도중에 찍은 동행의 센스~

 

여행도 하고, 일도 하고 여행중에 따라오는 .....숙박명소, 멋기행, 맛기행,  다음 글은 축제를 목전에 둔 영덕의 대게잡이 역사 속으로~ 가  이어집니다.

 

글/사진/Daum 시티N, 여행마스터 이요조

2006년 3월 끝자락에,

 

 

 


관련업소 샵블로그 바로가기

해송정방갈로 통나무팬션

011-9354-3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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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정일품레스토랑

054-733-3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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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우리 땅일수밖에 없는 이유 (옛글과 지도)

 

 

요즈음 나는 울릉도 여행을 앞두고 울릉도 정보를 모으고 있는 중이다.

괜시리  독도까정 넘보게 된다.

(어...난 외늠이 아닌디...)

 

시티N에 한 멋진 젊은이...

박물관 관람 후, 정리한 글이지만 그 뜻이 놀랍고 가상스럽다.

두고 두고 맛보려고...

사실은 무지가 목메어서..

-이요조-

 

 

 

국립중앙박물관의 첫번째이자 2006년도 첫번째 기획특별전으로 마련된

<가고 싶은 우리 땅, 독도>는 우리 국토의 동쪽 끝에 위치한 독도의 가치와 중요성을 국.내외에 알리고,

국민들의 올바른 역사의식과 영토의식을 높이기 위해 마련된 기획특별 전시회입니다.

 

지난번 글의 독도의 자연에 대한 이해에 이어 이번엔 관련된 각종 책과 우리땅으로 그린 지도등을 통하여

독도를 보다 올바르게 이해하고 독도에 대한 관심과 이해의 폭을 넓힐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1. 옛글 속의 독도

 

 

 

 

 

세종실록지리지

 

세종실록지리지는 1454년, 세종실록을 편찬할 때의 부록으로 한성과 8도에 대한 인문지리적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강원도 울진현조에 '우산, 무릉 두 섬이 울진현 정동쪽 바다 한가운데 있다.

두 섬은 거리가 말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가히 바라볼수 있다'고 하여 동해에 울릉도와 독도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자유신문

 

1882년 8월 5일자 일본 신문인 자유신문에서 일본이 임오군란 수습책을 강구하는 과정에서

"토지를 할양받는 것은 영원한 원한을 갖게 만드는 것이므로 원칙적으로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그러나 조선의 송도를 떼어 받는것은 좋을 것이다" 라고 하여 송도(독도)가 우리나라 영토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삼국사기

 

삼국사기의 지증왕조에는 512년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복하였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여지지를 비롯한

여러책의 내용에 따르면 '울릉도와 우산도(독도) 모두 우산국땅이다.'라고 하여 우산국에 울릉도와 독도가

포함됨을 적고 있어 이 때부터 독도가 울릉도와 함께 우리나라 역사에 등장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동국문헌비고

 

1770년에 편찬된 책으로 독도에 대한 내용은 권 18권의 울진조에 울릉도와 함께 실려 있습니다.

여기에는 울릉도와 독도의 내력을 시대별로 정리하였는데, 안용복의 울릉도와 독도 수호 사실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대한제국 칙령 제 41호

 

울릉도를 울도로 고쳐 부르고 도감을 군수로 이름을 바꾸어 울릉도를 정식 지방관제에 편입한다는 내용입니다.

또한 '울릉도의 모든 섬과 죽도 및 석도를 관할할 일이라고 하여 울도군수의 관할구역으로 석도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석도는 독도의 옛 명칭인 돌섬입니다. 이는 대한제국 칙령이 시마네현 고시보다 4년여 앞서 발표되었기때문에

독도가 결코 일본의 영토가 될수 없음을 보여주는 예라 할수 있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1530년애 편찬된 관찬지리서입니다. 이 책의 강원도 울진현조에는 '우산도, 울릉도는 무릉 또는

우릉이라고도 한다. 두 섬은 울진현의 바로 동쪽 바다 가운데에 있다'고 하여 우산도(독도)와 울릉도가

울진현에 속한 조선의 영토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2. 옛 지도 속의 독도

 

 

 

 

 

동국대전도 (1757)

 

이 지도는 1757년(영조 33년)에 영조의 명에 의해 정성기의(1678~1752)의 동국대전도를 모사한 지도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백두산을 기점으로 남쪽으로 뻗어내린 백두대간을 크게 강조하고, 여기서 뻗어 나간

주요 산맥들을 강조함으로써 국토를 사람의 몸으로 인식하는 전통적 지리관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독도는 울릉도의 동쪽에 우산도로 정확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16~17세기의 지도에는 울릉도와 독도의

위치가 바뀌어 표현되었으나, 이처럼 18세기에 만들어진 지도에는 울릉도와 독도가 제 위치에 표현되고 있습니다.

 

 

강원도지도 (18세기)

 

[여지지] 내에 있는 강원도 지도입니다. 울릉도와 독도를 각각 울릉도와 간산으로 표기하여 울릉도와

독도가 강원도에 속해 있는 조선의 영토임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이 지도에서는 독도가 울릉도 아래에

그려져 있고, 독도가 간산(干山)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우산(于山)의 잘못된 표기로 생각됩니다.

 

 

강원도지도 (19세기 말)

 

대도선국전도가 수록된 책에 함께 있는 강원도 지도입니다. 동해에 울릉도와 독도를 비교적 정확한

크기와 위치에 그려 넣었고, 독도를 우산으로 표기하였습니다.

 

 

관동도 (18세기)

 

위백규가 편찬.간행한 것으로 별자리 지도와 천하도, 조선전도등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이 중 관동도에는

울릉도와 우산도(독도)가 있는데, 우산도는 울릉도의 남쪽에 그려져 있습니다. 또한 관동도에 대한 연혁에는

우산도가 삼척의 동쪽에 있다고 기술되어 있어 동해의 한 섬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팔도총도 (16세기 후반)

 

[신국동국여지승람의]의 동람도에 수록된 지도입니다. 한반도가 동서로는 부풀려져 있고, 남북으로는

압축되어 있습니다. 독도는 강원도의 동쪽 바다에 우산도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우산도는 남북이

긴 타원형으로 울릉도의 서쪽에 있어 울릉도와 독도의 위치가 서로 바뀌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독도를 동해에 있는 조선의 영토로 명확하게 표시하고 있습니다.

 

 

삼국접양지도(일본.1785년)

 

하야시 시헤이가 제작한 [심국통람도설]에 수록된 이 지도는 일본과 주변 3국을 다른색으로 그렸습니다.

조선과 일본 사이의 바다에는 섬을 하나 그리고, 그 오른쪽에 작은 섬 하나를 붙여 그렸습니다. 이 섬들은

모두 조선과 같은 색이며, 왼쪽 섬에는 다케시마라고 표기하고 그 아래에 (조선의 것으로)와 (이 섬에서

온슈가 보이고 또 조선도 보인다)라고 적었습니다. 당시 일본인들은 울릉도를 다케시마, 독도를

마쓰시마라고 불렀습니다. 따라서 이 지도의 죽도는 울릉도, 그 오른쪽의 작은 섬은 독도입니다.

이 작은 섬을 울릉도의 댓섬으로 보는 일본 주장과는 달리 지도의 축척상 댓섬이 이 지도에 표기될수

없습니다. 또한 죽도 가까이에 있는 (작은 섬)등 울릉도에 부속된 작은 섬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조선왕국전도 (1737.프랑스. 당빌. 1697~1782)

 

이 지도는 서양 최초의 한국전도입니다. 울릉도와 독도가 영해(Ning Hai)앞 바다에 'Fan Ling Tao' 와

 'Tchian Chan Tao'로 표기하였는데, 독도를 표기한 'Tchian Chan Tao'가 더 육지에 가깝습니다.

'Tchian Chan Tao'는 천산도(千山島)의 중국어식 발음표기입니다. 천산도는 우산도의 오기로 생각되구요,

두 지명은 이후 서양인들의 조선지도에 조금씩 변형되어 울릉도와 독도의 명칭으로 계속 사용됩니다.

 

 

연합최고사령부행정지역(한국과 일본) (1946)

 

연합국최고사령부에서 세계 제 2차대전 후 일본의 영토를 규정한  SCAPIN 677호에 첨부된 지도입니다.

이 지도에는 일본과 한국의 행정 관할구역이 선으로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는데, 울릉도와 'TAKE'(독도)는

일본에서 분리되어 한국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는 당시 연합국 최고 사령부에서도 독도를 우리 영토로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 입니다.

 

 

여도 (18세기 전반)

 

이 지도는 북부지방이 남부지방보다 상대적으로 작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한반도의 전세계적인

윤곽을 사실에 가깝게 그려 낸 정상기의 동국지도가 나오기 바로 전 단계의 지도로 생각됩니다. 독도는

강원도 울진의 동쪽 바다에 있는 울릉도의 서쪽에 우산도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독도와 울릉도의 위치가

여전히 바뀌어 있어 동람도식의 표현 양식이 반영되어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1. 우리땅 독도가 어떻게 불려 왔는가.

 

 

 

 

우산도----------삼봉도----------가지도----------석도----------독도

512                    1470                  1794                   1900               1906

 

 

우산도

 

가장 오랫동안 사용한 명칭입니다. [고려사] 와 [세종실록지리지].[동국여지승람]

등 옛글 속에는 동해상의 두 섬을 우산과 무릉 또는 우산과 울릉등으로 표현하고 있어

독도를 '우산'으로 불렀음을 알수 있습니다. 우산이란 명칭은 천산, 자산등으로 표기

되기도 하지만 이는 우산을 잘못 표기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삼봉도

 

1470년 (성종 1년)부터 사용된 명칭입니다. 특히 1476년 (성종 7년)의 실록 기록에는

"섬 북쪽에 세개의 바위가 나란히 있고, 그 다음은 작은 섬, 다음은 암석이 벌여 섰으며,

다음은 복판 섬이고, 복판 섬 서쪽에는 또 작은 섬이 있는데 모두 바닷물이 서로 통한다"

라고 하여 지금의 독도 모습을 사실적으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가지도

 

1794년 (정조 18년) 강원도 관찰사 심진현(1747~?)의 울릉도 보고서에 "갑인년 4월 26일에

가지도에 가보니 가지어가 놀라 뛰어 나왔다"는 내용에서 확인할수 있습니다. 가지어는 물개의

일종인 강치의 우리말인 '가제'를 음역하여 부른 것으로 가지도란 강치가 많이 사는 섬이란 뜻입니다.

독도에는 얼마전까지 강치가 많이 서식하였으며, 서도 북서쪽에는 가제바위라 불리는 바위도 있습니다.

 

 

석도

 

석도는 대한제국 정부가 1900년 (고종 37년) 10월 25일에 칙령 제41호에서 울릉도를 울도로 개칭하고

  울릉도의 관할구역을 '울릉 전도와 죽도 및 석도'로 규정하면서 처음 등장합니다. 여기서 죽도는 울릉도

근처의 작은 섬인 죽서를 지칭하고, 석도는 독도를 가리킵니다. 석도가 독도를 지칭하는 것은 석도의

한글 표현이 '돌섬'이고 돌의 사투리가 '독'인 점을 감안하면 석도가 독도로 변하였음을 알수 있습니다.

 

 

독도

 

일본 군함 나다카호의 1904년 9월 25일자 보고에 의하면 "리앙코르토바위를 한인들은 독도라고 쓰고,

일본 어부들은 리앙코섬이라고 부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따라서 독도라는 명칭은 그 이전부터

사용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울릉군수 심홍택에 의해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경상북도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2. 서양사람들의 눈에 비친 독도

 

 

 

 

서양인이 만든 고지도에 우리나라가 등장하는 것은 세기 중반부터입니다. 그리고 서양 고지도에 독도가

표기 되기 시작하는 것은 18세기 전반의 일입니다.

 

독도는 프랑스의 지리학자 J.B.B. 당빌(1697~1782)이 1737년에 제작한 서양 최오의 한국전도인 조선왕국지도에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이후 영국,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의 지리학자들이 만든 아시아 지도나 한국지도에 강원도

동해안에 거의 붙어 있는 섬으로 울릉도와 나란히 표기되어 있습니다. 독도의 위치 표시는 울릉도의 서쪽에 있어

착오가 있으나, 두 섬이 나란히 그것도 한반도에 거의 붙여 표시 된것은 서양 사람들이 울릉도와 독도를 우리의 

영토로 인식하였다라는 증거라 할수 있습니다. 이는 이들 서양 지도들이 우리나라 서남해안의 2,300여개나 되는

수많은 섬들을 매우 간략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에 비해 동해안에 2개 밖에 없는 독도와 울릉도를 명확하게

표기하고 있는 것으로도 짐작할수 있습니다.

 

독도의 명칭은 대부분 '찬산타오 Tchian Chan Tao'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산도의 또 다른 명칭인

천산도를 중국어식 발음으로 표기한 것입니다. 이 외에 일부 서양 고지도에서 독도는 유럽식 명칭인

'다즐레 Dagelet' 나 '리앙쿠르바위(Li Ancourt Rocks)으로 표기 되기도 합니다.

 

 

 

 

3. 일본인들의 눈에 비친 독도

 

 

 

 

일본인이 만든 지도속의 독도는 1748년 제작된 조선경도일본대판서국해변항로지도에 우산도로

처음 등장합니다. 이는 1785년 하야시 시헤이가 한국과 일본 주변 3국의 위치와 관계, 각 나라의

영역과 경계 및 주변 각국의 지리와 풍속을 소개한 [삼국통람도설]의 삼국접양지도에서 더욱

구체화되어 나타납니다. 특히 이 지도에는 울릉도(다키시마)를 그리고 그 오른쪽에 독도인 작은 섬

하나를 그렸는데 우리나라와 같은 색으로 표현되어 있어 우리의 영토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이후 일본 지도에도 1936년 만들어진 육지측량부발행지도구역일람도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우리

영토로 표기됩니다.

 

지도에 표기된 독도의 명칭은 대부분이 송도입니다. 하지만 우산도.리앙코르토바위. 또는 죽도로

표기되기도 합니다.  이 가운데 우산도는 조선국세견도등 19세기 말의 일본지도에서 많이 관찰되는데

이는 일본인들이 독도를 우리나라의 영토로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한 예입니다.

 

 

 

 

4. 독도를 지킨 사람들

 

 

 

 

신라장군 이사부

 

성이 김씨요, 나물왕의 4대손으로, 지증왕 13년 임진(512)에 이사부는 아슬라주[현재의 강원도 강릉시]

 군주가 되어 우산국[현재의 울릉도]의 병합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그 나라 사람들이 어리석고 사나워서

 위력으로는 항복받기 어려우니 계략으로써 복속시킬 수 밖에 없다 생각하고, 이에 나무 사자를 많이 만들어

전선에 나누어 싣고, 그 나라 해안에 다다라 거짓으로 말하기를 “너희들이 항복하지 않으면 이 맹수를

풀어놓아 밟아 죽이겠다.”고 하였는데 그 사람들이 두려워서 곧 항복하였다고 전합니다.

 

누구나 아는 상식이지만 독도와 우리 민족이 역사기록에서 만나는 때는 남한에서는 서기 512년

신라 하슬라 군주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하는 대목부터 시작됩니다. 북한에서는 서기전 500년에

이미 독도에 관한 기록이 시작된다 하니 기록상으로는 남한보다 1000년 이상 올라갑니다. 서기전

500년이면 단군조선 시기로 역사가 거슬러 올라가는데 기록으로 보더라도 독도는 아득한 옛적부터

 우리와 함께 살아 온 것일지도 모릅니다...

 

 

 

굽다리접시

 

뚜껑받이턱이 있는 굽다리접시입니다. 이 굽다리접시는 533년 창건된 황룡사 초창 당시의 유물과

매우 흡사하여 6세기 중엽경에 만들어져 울릉도로 유입된 토기로 볼수 있습니다. 이는 이사부의

우산국 정복 후 신라와 할발한 교류가 있었음을 증명해 주는 자료입니다.

 

 

 

독도를 지킨 울릉군수 심흥택

 

심흥택(1855~?)은 독도란 명칭을 공식문서에 최초로 사용한 사람입니다. 그는 1897년 독립협회

창립 당시 후원금을 내는 등 독립협회의 창립에도 깊이 관여하였습니다.  

 

일본은 1905년 시마네현 고시 제 40호로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 시킨 후, 1906년 3월 28일에

이르러서야 독도의 일본 영토 편입사실을 알리게 됩니다. 이에 놀란 심흥택은 그 다음날인

 1906년 3월 29일 강원도 관찰사 이명래에게"본군 소속 독도가 일본 영토에 편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라는 보고를 하게 됩니다. 이에 이명래는 이를 조정에 보고하게 되고 이 보고를 받은 당시 참정대신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로 자세한 사정을 다시 조사하라"는 지령을 내렸답니다. 이 처럼 심흥택은 일본의

독도 영유 주장을 신속하게 보고하여 대응할수 있도록 조치한 독도 지킴이였습니다.

 

 

 

심흥택과 일본 관리

 

1906년 3월 28일 시마네현 관리들이 울릉도를 방문하여 찍은 사진입니다. 심흥택 울도군수

(점선 내 관복을 입은 사람)는 깃대에 태극기(오른쪽 원 점선)가 걸려 있는데도 어린이들에게

대형 태극기를 들게 한 뒤 그 옆에 서 있습니다. 앞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가 가이니시 사무관이고

여섯번째는 전임 울릉도 군수입니다.

 

이명래 보고서

 

일본은 1906년 3월 시마네현의 지방관리를 울릉도에 파견하여 독도가 1905년 일본 영토에 편입되었음을

통보합니다. 이에 울릉군수 심흥택은 이를 급히 강원도 관찰사에게 보고하게 되고 강원도 관찰사는 조정에

이와 같은 사실을 알리게 되는데 이 보고서는 당시 강원도 관찰사 이명래가 작성한 것입니다. 독도의 명칭이

오늘 날처럼 '독도'로 사용하게 된 것은 울릉군수 심흥택에 의한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우산도, 가지도, 삼봉도

등으로 불리웠습니다.

 

 

 

성호사설

 

조선후기 실학자 이익(1629~1690)이 쓴 글을 정리 한 백과사전식의 책입니다. 이 중 천지문의

울릉도편에는 일본을 두차례나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안용복의 활약상이

자세히 기술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 책에서는 '안용복은 영웅에 비길만 하다'라고 하여 안용복의

울릉도, 독도 수호정신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

 

 

이렇듯 독도를 우리 땅으로 기술한 각종 책과 우리나라와 일본, 영국, 프랑스등 서양에서 제작된 다양한

지도에서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것을 확인할수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올해가 1906년 울도국수(울릉군의 당시 명칭) 심홍택이 독도 라는 지명을 공식적으로 꼭 100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기도 합니다.

 

 

 

 

독도의 자연에 대한 글 <~~ 클릭해 주세요!

 

 

 

 

이상은 모하라였습니다....

 

 

 

 

*모하라의 더 많은 맛세상을 구경하고 싶으신 분들은 제 다음 블로그로 놀러 오세요~~~

오어사의 해탈, 태극도(太極圖)법 (거꾸로 보이는 듯)

 

 

◇ 오어사의 앞마당으로 펼쳐지는 오어지(吾漁池)

◇ 오어사의 사립문

 

 

오어사(吾魚寺)


이름에서도 말해주듯이 분명 사찰은 물을 끼고 있으리라 상상은 했었다.

입구에서 대단한 저수지 물막이 방죽을 보고는 아! 역시~~ 하고 감탄을 했었는데,

막상 吾魚池 를 바라보니...대단한 큰 못이었다.


이 좋은 물을 끼고 앉은절이니 그 풍광이야 오죽할까?

오어사가 처음 길이지만 사찰은 아직 그림지도 비치지 않는데  오어사를 따라가는 물길만 보고도 나는 지레짐작으로도 벌써 반해있었다.


여기 오어사에 대한 설명을 먼저 듣고 가기로 하자.


오어사(吾魚寺)는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 34번지 운제산(雲梯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의 말사이다.

가는 길은 포항 시내에서 포항제철을 지나 929번 지방도로로 오천과 문충리 방면으로 24㎞ 정도 가면 오어사에 닿는다. 주변에는 1964년에 완공된 만수면적 12만 평에 수량도 500만 톤에 이르는 넓은 오어지의 초록빛 물이 눈길을 끌며, 운제산의 아름다운 산세가 어우러져 승경을 빚는다.


『신라 원효대사가 요석공주와 사이에 설총을 낳고 실계(失戒)한 뒤 대중속에서 노래와 춤으로 교화를 이루던 때, 원효와 함께 신라 불교 10 성에 드는 혜공대사 역시 망태기 진 채로 거리에 나가 춤추고 노래하며 불교를 알리던 중이었다.

이 두 스님이 하루는 술병차고 냇가로 나가 물고기를 잡아 안주삼아 한 잔 하고 있었다.

그 때 혜공스님이 느닷없이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명색이 중인데 물고기를 잡아먹고 있으니 누가 볼까 두렵소.”

그러자 원효스님의 대답.

“다 먹고 난 다음에 그런 소리를 하면 뭐합니까. 정 그렇다면 산고기를 뱉어 내면 되지 않겠소.”

“스님께서 그런 신통력이 있소.”

“해봐야 알지.”

“원효스님이 한다면 나도 자신 있소이다.”

“그러면 말만 할 것이 아니라 여기서 한 번 시험해 봅시다.”

이렇게 해서 두 스님의 신통력 대결이 물가에서 벌어졌는데 한 스님은 냇물 상류 쪽에서, 또 한 스님은 하류 쪽에서 고의춤을 풀고 ‘큰 것’을 보았다던가. 그러자 고기들이 생환, 불안에서 떼 지어 몰려다니는 것이다. 한데 섞인 두 고기떼를 가리키며 두 스님은 서로 내 고기라고 우겼다는 이야기인데, 그 물가에 절이 들어서니 ‘나 오’(吾)자에 ‘고기 어’(魚)자, 오어사가 됐다는 일화가 내려오고 있다.』

「동아일보 발췌」




해가 까무룩 지고도  아직은 밝고도 환한... 그런 저물녘에  춘색이 마악 번져나는 오어사에 당도했다.

남자같았으면 어떻게 하룻밤 유하고 갈 수 없겠냐고 물어보겠건만...괜시리 '아서라'싶다.

텅-빈 주차장에 차를 대는데 그 유명하다던 범종각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때는 어스름녘 오후 6시 30분, 춘분을 넘긴지라 낮이 제법 많이 길어졌다.

동지섣달 같았으면 벌써 해가 저물고 캄캄할 것인데...

오랜만에 보는 엮인 대나무 사립문이 닫혀있었고 사람 겨우 드나들 정도로 쪽문만 빵싯 열려있었다.


나중에사 보니 정문은 오어지를 바라보고 있는 곳이었다. 옆문으로 들어간 셈이다.

사립문을 밀고 들어가자마자  처음 본 건, 복숭아 형태의 돌 허벅에 물이 가득 담긴 것을 보았다.

오래지 않은 석물이지만  정말 아름답다. 담긴 물에 비친 물그림자가  보태어짐인가?

저녁이어선지 돌부처의 투영한 물그림자가  맑은 물에 가득했다.

순간...'하루종일 돌부처는 자신의 물그림자를 내려다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하다가

가까이 다가가 마음속으로 조곤히 속삭여보았다.

"부처님은 내내 물그림자만 바라보시는데...그 속에서 무엇을 구하셨습니까?" 고....

물론 돌부처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고 나는  집에 와서 내 카메라에 든 사진을 캡처하면서  돌부처님 대신

나도 물그림자를 한 번 내려다 바라보리라는 생각으로  물그림자만  잘라내었는데~~

상하대칭으로 .... 돌부처님의 자리를, 그 위치를 잠시 빌려 보았는데...


아! 그림~  양감이 도드라진 그 면경(面鏡)

속에는 성불한 물부처, 한 분이 정좌하셨다!



오어사에는 물이 흔하다.

한여름 우기에는 절 마당 앞까지 물이 넘실댄다는데, 그 모습을 한 번 보고 싶다.

장마 우기 철에 장대처럼 내리는 비를 맞으며, 오어사를 찾아들어서 물에 잠길 듯 넘실거리는

오어사나 실컷 바라보다가 올 일이다.

마음의 번뇌가 장대비에 녹아들어 오어지에 흘러 들어가면 그 번뇌는 절로 사라지고

마음 속 가득 카타르시스를 불러 올 것만 같다.

실컷 울고 난 사람처럼 스스로 정화되어 한결 맑아질 것만 같다.

 

좁은 마음에 송곳같은 번뇌가 너른 물에 합류하면 그저 다 녹아져서 융화(融化)될 것이다.

 

◇ 오어지(吾漁池)

 

 

태극도법!(太極圖法)

비록 그림이 아니고 사진이지만...그 사진의 상하대칭으로 얻은 결과물 그림에다가

꾸어다 대는 이 표현이 과연 합당할지 잘 모르겠으나...

실제 태극도 화법은 바라보이는 대로 그려진다는  담양 소쇄원, 광풍각에 걸린 소쇄원도(1755년 제작)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광풍각과 너럭바위 아래쪽으로 집이며 사람이 거꾸로 그려져 있고 오른편으로는

나무나 담장이 옆으로 뉘어져 있지만 그 그림은 잘못 그리지도 않았고 잘못 건 것도 아니라는데 이런 걸

태극도법 화풍이라고 한단다.

무지한 내가 부연하자면 어린아이의 그림에서 자주 접하는 그런 풍경이다.

어린아이의 그림은 어른들이 보는 시야와 차이가 많다.

사람들이나 집은 그냥 눈에 보이는대로 편안하게 누웠거나 기울어져있는...그런,

 

편지를 쓰려다가  모자라면 위에든 옆에든 여백이 있는 곳이면 글을 마저 쓰는 그런 太極圖法

편히 보이는 대로 그려지고 빈 여백이면 연결해서 글을 쓰던...

그래서 천지간에 우주만물 삼라만상이 다 닿아있다는...



글/사진: 이요조

 

 

 

주요문화재 : 경북문화재 제89호인 대웅전,
             국가보물 제1280호인 범종,
             원효대사 삿갓,
             그 외 다수의 유물을 보관하고 있다.

이용시설 : 유물전시관 - 매일 오전10시 ~ 오후5시 사이에 개방

현지교통 : 시내에서 오천행 102번, 300번 시내버스 이용(12분간격 운행)
           오천 구종점에서 하차 후 오어사행 버스 탑승(1일 11회) 

도로안내 : 경부고속도로 - 경주IC - 포항 - 31번국도 - 청림동 청림초등학교 앞 삼거리-14번 국도 오천읍 방향 - 문충리 - 오어사

 

인근 밥집,찻집: 산하촌 다향원-절에서 차로 5분거리 이갑종씨로 전통 도예를 하시는 분인데 식당과 맞붙은 도자기 작업실을 구경할 수도 있고 이층에는 도자기 및 전통 의류등의 전시실과 겸한 온돌식 전통 찻집

 

 

그 어떤 부처보다 아름답다. 물에 그려진...水佛

 

복숭아 모양인 돌로 만든 물허벅

 

 

문화재 89호인 대웅전, 흰 코끼리가 그려진 주련과 연꽃 무늬 문살이 아름답다.

 

 

▼일주문 양쪽으로 있는 것인데, 한 쪽은 아예 비워져 있었고 검색으로는 연꽃봉우리도 있던데 없어졌다.

이 게 뭘까 하고 궁금해서 찍었는데...나의 상상에는 마치 악어의 날카로운 이빨 같아  보이는, 그 위에

귀한 무엇을 올려놓지 않았을까 하는... 그러고 보니 목어의 이빨 형상을 닮아있다.

 


 

처음에는 일주문인 줄 몰랐다.

오어사는 큰데,,일주문이 어찌나 작고 소박한지...뒷문처럼 느껴지는 그런 기분, 바로 그 앞에 물이 넘실거린다.

얼마나 정겨운 모습인지 나는 가슴이 저릿해왔다.

정말이지 호수와 격리되지 않은 상호 조화된 모습으로 함께 어우러져 있었다.

자연 속에 들어앉아 함께..자연이 돼버린...

 

 

그림이 무섭다기보다 정겨워서 찰깍!  칼라 채색이 아주 재미있는 그림이다.

 

 

반짝 반짝 윤이나는 장독간 뒤로도 물이....

엄마야 누나야 강변살자...그런 노래가 갑자기 흥얼거려지는 곳!

 

 

춘색이 번져나는 오어지....

 

▼저 산길을 올라가면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가  원효암과 자장암을 왕래 하기가 힘들어 구름다리를

만들어 오고 갔다 하여 구름운(雲), 사다리제(梯)자를 써서 이름붙인 운제산 !
   

 

주련 아래에 그려진 흰 코끼리가 퍽이나 인상적이다. 흰 코끼리는 석가모니의 화신으로 취급되며

신성시되어 왔다. 대웅전 내부의 천정 모습이 유난히 아름답다는데 세세히 살펴보지 못한 점이 아쉽다.

 

국가보물 제1280호인 범종이 있는 범종각

단층일 경우 각(閣)이라 하고 중층일 경우 루(樓)라고 한다.

범종은 절에서 조석 예불 때 사용하는 사물(범종. 법고. 운판. 목어)의

대표적인 법구(法具)를 이름이다.

 

 

법고과 목어

 

 

 

 

물가에 늘어진 수양버들이 봄을 연둣빛으로 잣아 올리고 있었다.

 

병풍처럼 둘러친 기암절벽에는 진달래가 붉게 번져나고 있었다.

 

▼오어사지

 

기막히는 오어지...물비단결 모습이다.

 

  오어사에 가면

      물이 지천인 오어사에 가면

     

      필히 나자신도 한 번 비춰 보고 올 일이다.

     

      나는 어떻게 비춰지는가?

     

      나는 어떤 모습의

     

      心狀으로 비춰질 것인지,

     

      오어지에서 깊이 생각해 보고 올 일이다.

     

     

     

       2006,3,24  이 요조.

 

 

 

 

 

 

 

 

 

 

 

        

 

포항에서 가장 오염되지 않은 산 좋고, 물 좋고, 인심 좋은 삼호의 고장 죽장면 입암리에 높이 50m, 폭 4m규모의 인공폭포가 조성됐다.

 

북부해수욕장과 포항제철

 

포항의 신비스런 지역예언

 

 

 

포항을 갔다.

24일 오전 일찌감치 떠난 1박2일 코스의 여행길이었다.

어디선가 포항에 미리 포스코가 들어 설 것을 예언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아.

포항제철이 바라다 보이는 북부해수욕장에서 옛 기억이 떠 올라 신비스럽게 바라다보았다.


바로 여기 까지가 그 용의(어룡사지) 자리라 하였는데...  (竹生魚龍沙 可活萬人地 西器東天來 回望無沙場)

「 어룡사에 대나무가 나면 가히 수만이 살 곳이니라. 서쪽 그릇이 동쪽 하늘에 오면,

돌이켜 보니 모래밭이 없어졌더라. 」로 해석할 수 있다.


아래, 검색글은 간단히 요약된 전설밖에 찾을 수 없었다.

포항이 포스코가 들어서기 이전부터 대나무와 용 운운하는 전설이 도래하기만 기다렸더니,

유전을 찾는다고 바다에 박은 유전 시추봉을 그 대나무로 풀이하고 시추봉에서 솟는 화염을 보고는,

옳다. 바로 저것이 龍이로구나! 하며  예언이 도래했다고 쌍수로 반겼다고 한다.


그러나 약간의 가스매장량으로 그마저 철수해 버리고 난, 얼마 후~  포항제철이 들어서고  높고도 삐쭉한

용광로가 대나무처럼 박히고 낮에는 흰 연기로~  밤에는 붉고 환해서 마치 불을 품어내는 용과 흡사하더란다.

해서 수만의 인구가 몰려들고 그로인해 먹고 살더라는 전설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지명이나 지역적인 예언을 품은 곳이 알고보면 참으로 셀 수도 없이 많다.


충북 청주에 공항이 들어선 지 꽤 오래 되었는데, 활주로 설계를 끝내고 부지를 고르다보니 활주로

예정 지역의 양쪽 끝 마을 이름이 각각 비상리(飛上里)요, 비하리(飛下里)였다. 마치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걸 예견이라도 한 듯 그리 이름이 붙어 있었으니 감탄스럽지 않은가. 아득한 옛날부터

“월악산 그림자가 물에 비치는 날이 오리라”는 소문이 떠돌았으니 이 또한 놀랍고, 월악산 그림자를

물에 비출 충주댐이 들어선 곳 옛 지명이 ‘물막이골’이었으니 더욱더 놀랍다./웹검색문


나 역시 북부해수욕장을 바라보며 옛이야기를 떠 올렸다.

유난히도 북부해수욕장은 동해로서는 보기드물게 해구가 완만하였고  얼핏보아도 그 모래는 너무 고왔다.

나는 사진을 찍겠다고 운동화(여름용)를 신고 뛰어 다녔는데...발가락 사이로 미수가루 같은 모래가

잔뜩 끼이고 말았다.   멋없는 이름과는 달리 북부해수욕장은 꽤나 멋진 곳인데...하는 아쉬움이 생겨났다. 

그만 그 경관은 공업화 바람에 무참히도 자리를 내어주고 제 빛을 잃고 만 셈이 되었다.

워낙에 바다를 좋아하는 나지만..... 그 천혜의 바다는 여전한 파도로 철썩이며  쉼없이 사람과 자연의

상생을 위한 제 소임을 다 하고 있다.

북부해수욕장 모래사장을 잽싸게 가로질러 달려가 사진을 찍고 왔더니 포항에 오래 살았던

보영이(동행)가 그런다.


"언니...여긴 이상하게 사진이 잘 안나와~~"

"응, 지금 역광이라서 그렇겠지...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집에 와서 보니 웬걸....사진 5장이 전부 희미하다.

아니! 이럴 리가! 한 장이라도 선명 하다면 몰라도? 포철 더 가까이 있는 평화의 여상이 서있는 송도

해수욕장은 선명하게 나왔는데...?

(다시 정정합니다. 여행지 첫 사진이라 카메라에 사진이 잔뜩, 바닷바람을 등지고 서서 카메라 메모리를

포멧하느라 뭔가 설정이 틀어졌나봅니다.  좀 있다가 재작동한 송도에서는 선명한 것을 보니, 분명

그런 것 같습니다.)

아무튼 평화의 여상이 있는 송도해수욕장은 부쩍 쇳물냄새가 났다.

용광로에서 쇠를 녹이고 그 쇠를 국수가닥처럼 와이어로 빼내면 식히느라 물을 붓고 벌건 쇠붙이는 지지직~

수증기를 내뿜고~~ 연기가 아니라...그런 수증기란다.

 

포스코가 들어서고 포항시가 부흥하고 세계적인 철강의 도시로 웅비할 수 있었던 것은 포항지역 주민들의

숨은 노고가 밑바침이 되어서 그랬을 것이다. 바다가 있어서 모든 공기를 정화했듯이,

 

아무튼 보영이 아우 덕에 포스코...홍보전시관...그 외 등 등....포스코 정원의 봄꽃들 구경을 잘 하고 어두워져서야 호미곶에 당도했는데, 돌아오는 길은 차들의 통행도 거의 없는 어두컴컴한 해안도로를 끼고

포항시내로 들어오며, 용광로가 내 뿜는 온통 붉은....시뻘건 곳을 향해서만 마냥 오니...어느새 포항시내다.

마치 불나방이 불을 찾아드는 것처럼

그렇게 어둔 밤에도 우리는 용광로 빛을 등대 삼아 잘 찾아 들 수 있었다.

 


 

이요조

2006,03,24

 

포항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포항제철 ‘포스코’다. 도대체 철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제철소 견학과 한국 철강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포철 역사관 견학은 아이들과 함께라면 꼭 들러야 할 곳. 제철소 견학은 설 연휴, 추석 연휴를 제외한 매주 토·일요일 오전 10시, 오후 2시. 하루에 두 번. 또 역사관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볼 수 있으며 일요일이나 공휴일은 휴관이다.

 

다음 글은 죽도어시장편


 

 

 

포항의 역사

포항의 역사는 넓게는 영일군, 좁게는 연일과 흥해를 모태로 하여 형성 발전되어 왔기 때문에
옛부터 같은 생활문화권 속에서 합하였다, 헤어지기를 거듭하였다.
이 고장에 언제부터 인류가 거주하였는지 지금으로서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영일만의 바닷가와
형산강을 끼고 있는 지리적 위치로 보아 일찍부터 사람이 살았을 가능성이 엿보인다.
아직까지 구석기 유적지나 신석기 유적이 공식적으로 발굴되지 않아 당시의 삶의 형태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으나 주변의 곳곳에서 무문 토기를 사용한 청동기 시대의 문화 흔적이 넓은 분포를
보이고 있음은 이 고장 역사의 역사를 밝혀줄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오늘날의 포항지역에는 형산강
하류를 중심으로 동남쪽의 일월동, 남서쪽의 효자동, 서쪽의 득량동, 북쪽의 장성동과 양덕동 등의
주변 구릉지대에 가장 먼저 선사 문화인이 거주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하여 이 고장은 신라건국을 전후한 진한부족사회 때에는 소읍국으로 성장되고, 757년
(신라 경덕왕 16년)에는 임정현(또는 오천)으로 고려시대에는 연일(영일)현으로 바꾸어 불러왔다.

오늘날의 포항시 지역을 포함하는 넓은 영일만의 중심 해안지역에 영일(연일)이라는 공식명칭을
사용한 것은 고려 때부터이다. 도기야는 해가 돋는 들판을 뜻하고, 그것은 영일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영일의 구역은 오늘날의 영일읍지역 뿐만 아닌 오천, 대송, 동해, 포항지역을 포함하는 넓은 지역
이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이 고장과 주위 고을은 신라(경주) 서울을 향하는 길목이었기 때문에 왜구의 침략을 받을 기회가
많았던 것이다.

 

 

 

어룡사(魚龍沙)의 신비

지금 포항제철소가 자리잡고 있는 일대를 ‘어룡사’, ‘어룡불’, 또는 ‘어링이불’ 이라고 불렀다.
옛 사람들은 장기곶이 영일만을 감싸고 동해로 길 게 돌출한 것을 보고 마치 용이 등천하는 형국이라 하여
용미등(龍尾嶝)이라 부르고, 흥해읍 용덕리의 ‘용덕곶’ 이 동남으로 돌출한 것을 어약승천(魚躍勝天)의 형국으로
보았다.
양곶[兩岬]의 형상을 풍수학적으로 어룡상투(魚龍相鬪)의 형국으로 보았다. 그래서 영일만의 중심지대인 이곳을
어룡사라고 부르게 된 것이었다.
또 이 ‘어룡사’ 는 광의(廣意), 협의(狹意)의 ‘어룡사’ 로 나누고 있다. 광의의 어룡사는 동해면 약전동으로부터
형산강을 지나 포항시 두호동에 이르는 넓은 백사장을 총칭하는 것이고, 협의의 어룡사는 형산강 하류를 중심으로
남쪽과 북쪽, 즉 포항제철소가 자리잡은 지대와 지금의 포항송도 해수욕장 전역을 말한다.
장장 20여리나 되는 옛날의 어룡사는 모래벌판으로 풀 한 포기없는 황무지였다고 한다. 동지섣달의 하늬바람이
불어 닥치면 눈을 뜰 수 없고 발을 붙일 수도 없는 지대로서 수천만년 동안 황폐하여져서 갈매기가 나래를 쉬어가는 절해의 고도와 같았다.
조선의 유명한 지상학자였던 성지(性智)가 이 지역을 둘러보고는 범상한 곳이 아니라는 말을 했다.
서편의 운제산이 십 리쯤만 떨어졌더라도 수십만의 사람이 살았을 거라고 했다.
그러나 이만한 위치와 지형이라도 좀 늦어지기는 하겠으나 많은 사람이 모여 살 거라고 예언했다.
같이 길을 나섰던 이 지방의 선비들이 풀 한포기 없는 이 백사장에 어찌 수십만의 사람이 살 수 있는 대도시가 된단
말인가 하고 그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자, 성지(性智)는 혼자말처럼 ‘죽생어룡사 가활만인지 서기동천래 회망무사장 (竹生魚龍沙 可活萬人地 西器東天來 回望無沙場)’ 이라는 시를 뇌었다고 한다.
위 글의 의미를 새겨 보면 「 어룡사에 대나무가 나면 가히 수만이 살 곳이니라. 서쪽 그릇이 동쪽 하늘에 오면,
돌이켜 보니 모래밭이 없어졌더라 」로 해석할 수 있다.
그 이후 이 지방에는 성지(性智)의 예언이 널리 퍼졌다고 한다.
이 예언은 수백년이 지나도 아무런 징조가 없더니 약 30년 전, 어룡사가 포항제철 부지로 선정되어 대나무 같은
굴뚝이 치솟아 올라가고, 수십만의 사람이 모여 살게 됨으로써 실현된 셈이다.

(자료 : 영일군사)

포항舊시가지

 

송도해수욕장과 포스코

 

 

 

 

 

 

사진(下) 모두 포스코 전경

 

 

 

포스코역사박물관 외부전경

HD 영상관 내부

영상관 외부(돔형태 외관)

 

세계적인 철강의 주자다운 초근대적 건축미의 위용을 드러내는 건물!

 

 

아래 사진처럼 한 눈에 포스코의 전경이 다 내려다 보이는 전망좋은 곳에 위치한 홍보센터

 

 

 

삼화제철소 고로 문화유산 등록된다

 

국내 철강산업 발전의 시초가 됐던 ‘포항 구 삼화제철소 고로(사진)’가 문화유산으로 등록될 전망이다.

문화재청(청장 유홍준)은 문화재위원회 근대문화재분과 회의를 거쳐 14일자로 진해역사를 비롯한 경남지역 근대문화유산 15건을 문화재로 등록하는 한편 ‘포항 구 삼화제철소 고로’를 비롯한 다른 근대문화유산 13건은 문화재 등록을 예고한다고 13일 밝혔다.

특히 이번 문화유산 등록 및 예고 건 중 ‘포항 구 삼화제철소 고로’의 경우 유일한 산업시설로 국내 제철공업 발달사에 대한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역사적, 산업발달사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포항 구 삼화제철소 고로’는 높이 25m, 직경 3m, 철피두께 15mm, 중량 30t으로 광복 이전인 1943년경 고레가와제철이 건립했으며 1945년 광복 이후 삼화제철소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후 포항제철의 건립 전까지 하루 20t의 선철을 생산하며 국내에서는 유일한 고로 역할을 담당했다. 당시 남한에 건립된 고로 중 현존하는 유일한 고로이며, 현재는 포스코 역사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전시되어 있다

 

[자료원 : steel.ebn.co.kr(EBN스틸뉴스) 20050913]

 

 

 

 

 

 

 

포스코가 있어선지...포항하면 제철소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사진은 제철소 견학은 아니고 포스코...일부건물을 둘러보았을 뿐이다.

재작년 거제도에 갔을 때 일이다.

지나가는 길에 정문에다 차를 세우고 (단 세사람) 대우조선소를 구경할 수 있냐 물었다.

정문에서 전화로 알아보더니, 웬걸 멋진 안내 아가씨와 봉고차가 한 대 정문으로 나왔다.

얼마나 구경을 잘하고...세세한 설명을 잘 들었는지...원, 내 머리에도 세계최대의 배를 만드는 공정이 머리에 쏙-쏙_

주저하지 말고 언제나 부딪혀본다는 것!  여행의 백미는 뭐니뭐니해도 깨우치며 알아간다는 데 있는 것 같다.

 

포항은 알고보니 전역이 역사관이다. 두루두루 봄에 유익한 나들이를 계획해 보심은 어떨까?

 

일단 포스코 홈페이지를 방문해보자.

http://www.posco.co.kr/homepage/docs/kr/s91a0000001i.jsp

포스코 TV CF 벨소리 컬러링 무료제공

http://www.posco.co.kr/homepage/docs/kr/info/tour/s91c3000010m.jsp

제철소견학을 신청하면된다.

 


 

포스코에서는 일반인과 청소년 그리고 관련업계 종사자 여러분을 위해 포항과 광양제철소에 견학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60년대 농업 중심의 1차 산업에서 중화학공업을 육성하기 위해 70년부터 81년까지 영일만에 세워진 270여만평의 포항제철소와 70년대 국가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철강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광양만에 450만평 규모로 세워진 광양제철소를 견학하는 것은 철에 대한 유익한 공부일 뿐만 아니라 거대한 제철소의 실제 모습 을 감상하는 좋은 기회입니다.

또한 포스코역사관의 견학프로그램은 철강 불모지에서 30여 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회사로 성장한 포스코의 성공 역사를 소개하고, 역사관을 방문하는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산 교육장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포스코 섭외팀에 단체명, 일시, 인원, 차량대수, 연락처 등을 인터넷을 통해
견학 희망일을 기준으로 최소 3일전까지 예약해 주시고 예약시간에 맞춰서 견학주차장에
도착하시면 견학안내 사원이 안내를 해드립니다.

견학가능일 설 연휴, 추석 연휴를 제외한 월요일~금요일
견학가능시간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견학소요시간 약 1시간
개인 견학은 설 연휴, 추석 연휴를 제외한 매주 토,일요일 오전 10시,오후 2시(하루 2회)에 가능합니다.
견학 희망일을 기준으로 최소 3일전까지 인터넷으로 예약해 주시면 신청인의 e-Mail 주
소로 견학 가능 여부를 가능한 신속히 알려 드립니다. 견학승인 메일을 받으시면 견학 당일
견학버스 주차장으로 오셔서 회사가 제공하는 버스로 무료로 견학 하실 수 있습니다

시간 매주 토,일요일 오전 10시, 오후 2시 출발
집결장소 견학버스 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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