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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응(1820-1898)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으로 더 잘 알려진 고종의 아버지로,
자를 시백(時伯), 호를 석파(石坡)라 하였다.
그는 영조(英祖)의 현손인 남현군 구(球)의 넷째 아들로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불우한 청년기를 보냈다.
안동 김씨가 세도를 잡고 왕실 종친에게 갖은 위협을 가하자
생명을 부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방탕아 같은 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다 왕궁내의 최고 어른인 조대비와 연줄을 맺어 후계 없이 돌아간
철종의 뒤를 이어 자신의 둘째 아들 명복(命福)을 왕위에 앉히고 섭정을 하였다.
이 이가 바로 고종이다.
그는 고종의 아버지로서뿐 아니라 당대의 서화가로서도 유명하였는데,
글씨도 잘 썼지만 특히 난초를 잘 그려 이름을 떨쳤다.
당대 최고의 감식안이었던 김정희는 그의 난 그림을 가리켜
"압록강 동쪽에 이만한 작품이 없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석파 이하응 란도/크기 30.5 ×43cm
난을 잘 그리며 추사체를 잘 구사하였다.
이그림의 화제는 추사체로 썼기 때문에 석파의 진면목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글/ 인터넷/미루
◆대원군 유폐때 쓴 편지 10통
◆사진설명 : "망건과 간장을 보내달라."
대원군은 중국 유폐시절 노정객의 쓸쓸한 최후를 증언하듯,
비감어린 편지를 남겼다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이 임오군란 직후
청나라에 의해 납치돼 3년간 유폐됐을 당시 가족과 친지에게
보낸 편지 10여통이 본지에 단독입수됐다.
대원군 친서는 가로 7~11㎝, 세로 22~25㎝의 한지와 분홍색 종이에
휘갈겨쓴 쪽지편지로, 노정객 대원군의 기개와 처연한 심경을 함께 담았다.
몇몇 편지는 뒷면에도 글씨를 적었고, 2㎝ 크기가 될때까지 여러차례 접어
비밀리에 보낸 흔적까지 남아있다.
유배초기인 1882년 가족에게 보낸 것으로 보이는 8월14일자 편지에는
"천진에서 안치 공문을 봤다.
그 지시에 따라 보정부로 향할 것인데, 언제가 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어느 곳에 가든지 내 마음에는 번뇌가 없다.
집안 일과 자식교육은 조금도 소홀히 하지말라.
대저 팔자소관이다”라고 적어 목숨이 경각에 달린 위기속에서도
태연함을 잃지않은 대원군의 기개가 엿보인다.
비슷한 시기 또다른 편지에는
"내 망건 하나와 평소에 쓰는 망건 너댓개를 사서 보내고,
간장도 많이 보내거라. 오후에는 보정부에 갈 것 같다”
고 적어 대원군이 의식을 걱정해야할 정도로 궁색한 처지에
빠진 것을 알 수있다. 대원군은 “지금은 조각편지들이 밖으로 통하지만,
다시는 한마디 말이나 글자 한자도 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쓰기도 했다.
대원군이 중국을 다녀온 후 만년에 쓴 글에는
한창 때의 그답지않게 신세한탄하는 내용도 있다.
"내 나이 칠십에 긴 밤을 당해 음식을 생각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하물며 팔십을 바라보는 때에 있어서랴. 낙죽 한그릇 밖에 없구나.”
1882년7월 임오군란의 주동자로 몰려 청나라에 끌려간
대원군은 천진에서 당시 청나라의 실력자인
이홍장의 심문을 받은 후,
보정부에 안치됐다가 1885년 2월 원세개와 함께 귀국했다.
대원군의 중국 유폐 행적은 천진에 도착한
1882년7월19일부터 10여일간의 상황을 대원군이 차후에 작성한
비망록 정도만 공개됐을 뿐 그동안 베일에 쌓여있었다.
( 김기철기자 kichul@chosun.com )
** 거의 실물과 흡사하도록 확대해 보았습니다.
요즘 사극 명성왕후를 보며......
그가 한 번 더 궁금해졌더랬습니다.** 이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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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보내온 뜻을........................ HTML/미루:이 요조 작자 미상 님이 나에게 부채를 보내셨다 부채, 보내준 뜻을 잠간 생각하여 보니, 내 가슴 속에 붙는 불을 이 부채로 식혀 끄라고 보내신 것이 분명하구나. 허나, 님 그려 밤낮으로 흐르는 눈물도 못 끄는 이 불을...., 님은 날 더러 부채로 끄라는가? 어찌 부채라고 한들 이 내 가슴 타는 불을 끌 수가 있을손가? 그리운 님이여~~` 참으로 답답하기만 하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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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살
내가 아끼는 물건중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모를 떡살 하나,
절편을 만들 때 눌러서 문양을 찍어내는 떡살
정교하고 예쁜 것이 많을텐데...
내가 가진 것은 이상하게도 못 생겼다.
떡살 무늬가 정교하지도 정렬되어 있지도 않다.
그런데…얼마나 손 때가 묻었는지
양 손잡이는 나무가 아닌듯 마치 황소 뿔처럼 결이 닳았고...
떡을 찍어낸 후, 물에다 담궜을 그 오래 스민 물색이 장구한 세월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 소중한 느낌을 샀었다.
그닥 세련되진 않았지만 편안한 정감이 묻어나는,
한 촌부가 사랑하는 지어미를 위하여, 정성 드려 깎고 다듬었을...
만약 그 걸 내가 갖는다면, 그 옛날 그 촌부의 아내 사랑이
내게도 이어질 것 같은 부적같은 소망에...
그 걸 구입 한 후 나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실 눈을 하고 그 떡살의 탄생 순간을 상상하노라면,
아~~영락없이 나는 그 자상한 촌부의 행복한 아낙이 된다.
글/ 이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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