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집* 더도 덜도 말고 정갈한 뒷마당이 내 外家 같은 초가집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앞뒤 흙 마당에 빗자루 자국이 남도록 말갛게 청소 끝내고 눈 매운 청솔가지, 울면서도 불쏘시개 후후- 불어 아궁이 활-활-타도록 불을 넣고 싶다. 수캐 누렁이도 돌아오는 연기 오르는 저녁때가 되면 난 사랑하는 그를 기다리고 싶다.  몇 번이나 걸레질한 방에 들어가선 구들목에 손을 넣어보리라.  삽짝너머로 동구 밖이 닳도록 내다보리라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면 컹-컹- 달 보고도 짖는 개,  아랫목에 고이 싸 둔 밥 주발을 쓰다듬으며 기다림에 두 귀 쫑긋 열어두고 싶은 초가집, /詩/畵/이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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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여행중에 만난 이 그림 앞에서 순간 나는 세한도를 느꼈다.

그리고 아래 작품 설명을 읽고는 세한도와의 교감을 알고  나 자신이 대견해서 무척 기뻤다.

청맹과니 내 눈에도  애써  세한도와 연관을 짓다니..... 이 아니 흐믓한 일인가?

그 것도 바로 두 작품 다 제주도와 그리고  추운 겨울 따뜻한 茶 한 잔이  떠 올려지는 그림들이니....

 

세한송, 이 그림은 제주도 [오설록]전시관에서  내가 만나 본 그림이다.

 아마도  소장은  태평양화학이 틀림없을터~~

그 그림을  녹차와 걸맞게 소장해 준 것이 고마울 따름, 꼭 적재적소에 와 있는 느낌에,

설록차와 세한송, 연이어 세한도까지 떠 올리게 하는....푸른 녹차밭 그 속에 자리잡은 [o'sulloc 오설록 뮤지엄]館

 

매화를 닮은 녹차꽃이 제주도 맵찬 바람속에 하이얗게 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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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클릭~` 크게 하신 후 글을 읽으시면 됩니다.

 

내게는  입수된지 오랜 추사 김정희님의 난그림이 한 점, 있는데...

보시는 분들은 이 그림이 혹시나 가짜가 아닐까 염려 않으셔도 된다.

왜냐면 믿을만한 데서 나온 영인본이기 때문이다.

잘모르지만 그의 간결한 붓 끝에서 김정희의 선비다운 교양과 인품을  나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기에, 무시로 이 그림 앞에 서면 마음을 가다듬고 눈길로 붓 끝을 따라 허공에다 난을 쳐 본다.

 /이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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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ulloc 오설록

설록차 뮤지엄 오설록 (064)794-5312. http://www.osulloc.co.kr/museum/mu_intro.jsp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무료 개관.


제주와 녹차의 인연은 추사 김정희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추사가 이곳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차에 대한 그리움으로 힘들어하자 다승(茶僧) 초의선사가 봄마다 차를 보내주었다고 한다.
추사는 그 보답으로 글을 보냈으니 그 우정이 지금의 한라산 자락 푸른 차나무의 물결로 다시 태어난 것일 게다.
인근에는 추사가 머물렀던 적거지가 있다.
복원된 옛 초가와 함께 기념관이 있어서 추사의 호쾌한 글과 그림을 감상할 수 있으니 다향만리 제주 다원 여행의 덤인 셈이다.

 

 

아랫글은 조선후기 서화가 김정희(金正喜)편/펌글입니다.

 

[ 세한도(歲寒圖) (1844)]
이 그림은 김정희의 가장 대표적 작품이자, 조선 시대 문인화 중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이 <세한도>에 대해 평가를 하는 것 조차 불경스러운 일로 간주될 정도로 신격화, 신비화 되어 있죠. 이는 제주도 유배 중에 그의 처연한 심경을 생생하게 그려냈다고 생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也

날씨가 차가워진 후에야 송백의 푸름을 안다

〈세한도〉는 김정희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그가 59세 때인 1844년 제주도 유배 당시 지위와 권력을 잃어버렸는데도 사제간의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 그를 찾아온 제자인 역관 이상적(李尙迪, 1804-1865)의 인품을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하여 그려준 것이다.
가로로 긴 지면에 가로놓인 초가와 지조의 상징인 소나무와 잣나무를 매우 간략하게 그린 작품으로 그가 지향하는 문인화의 세계를 잘 보여준다.
갈필로 형태의 요점만을 간추린 듯 그려내어 한 치의 더함도 덜함도 용서치 않는 까슬까슬한 선비의 정신이 필선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 그림에는 김정희 자신이 추사체로 쓴 발문이 적혀 있어 그림의 격을 한층 높여주고 있다.
'날이 차가워진 다음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는 《논어》의 한 구절을 빌어 '세한도'라는 말을 쓰게 된 것이다.
세한도는 이상적의 제자였던 김병선이 소장하다 일제 강점기에 경성대학 교수이며 추사 김정희의 연구자였던 후지즈카를 따라 도쿄로 건너가게 됐다.
당시 고서화 수장가인 손재형이 이를 안타깝게 여겨 일본으로 건너가 신발이 헤어지고 무릎이 헐 정도로 찾아가 매달린 끝에 결국 다시 찾아왔다.
당시 후지즈카가 소장했던 김정희에 관한 그 밖의 수많은 자료들은 2차 세계대전 말기 미군의 폭격으로 대다수가 타버리고 말았으니 <세한도>는 구사일생으로 간신히 화를 피한 셈이다.

 

 

 

세 한 도 
                                                  

 


한때 초막에서 샘물 길어 차 달이노라
때는 동지섣달 긴긴 밤
차거운 달빛이 문풍지 뚫고
소나무 그림자 청한(靑寒)한 기운 일으키고
돌샘물 길어 차 마시던 추사(秋史)의 넋은
제주도 거센 바람되어 머물고
돌 여자 바람이 많아 삼다(三多)
거지 도둑 문이 없어 삼무(三無)
바람 홍수 가뭄이 심해 삼재(三災)의 땅
유배지 탐라에는 아직도 칼바람이 부는데
정한(情恨)이 많아 애틋한 제주에
청풍명월로 머물고 있나니
돌하르방으로 지켜보고 있나니

 

 

 윤효선(소암)

 

▼ 추사 김정희님 자세히 알기

http://ncolumn1.daum.net/dist/commentLogin?sid=02GYe&eid=0KmAm&skin=t02&color=yl&view_fldid=00aBQ

▲조선 후기의 서화가 김정희(金正喜)의 문인화 보기/펌글

 

 

아래 사진은 윗 내용과 무관하나 그저 좋아서 찍어 둔 것인데 .....훗 날 정원을

이런 모양새로 그리면서...어찌보면 강요배님의 세한도를 현대식으로 풀어 그리셨다면 나는 세한도를 현대식으로 이런  정원과 집은 어떨까 생각해봤다.

 

'허균'의 '누실명'도 본문은 옛글인 고로 그저 그리 닿아들진 않아도 현대어 풀이에서야  그제서야  썩..좋음을 알아 챈 무식한 나, /이제는 열광하는,

 

그런데... 그 게 풀이하는 개개인에 따라 그 느낌이 그 매력이 자꾸만 달라지는 것을.....

 

아무튼 '세한도'의 풍취를 인위적으로 흉내내본다면 하는....생각에서 완전히 사족같은 image를 첨부하는 무식쟁이 나임을 자처하노니~~~

 

그림은 아는 것 만큼 보인다지 않는가?

[세한도와 세한송]

강요배님의 현대식으로 풀어그린 그림보다야 그 윤기가 덜하다.

함부로 평을 말라는 [세한도이지만] 뱃길로도 멀...제주도 유배길,
아마도 제목(歲寒圖) 그대로 유배의 심정과 그리고 자신의 청렴결백한 심중의 그림이니 강요배님의 그림처럼 여유로움 같은 건 없을게다
그가 그리려는 것은 사물이 아니라...마음이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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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둔한 마음에  바늘끝 만큼이라도 닿은 '세한도'임에야  칼럼주인 상상에 맡겨야지 어쩌겠는가?

흐~`

 

죄송스런 / 이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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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모사찰, 좀 떨어진 경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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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나라 - 혜은이파란 나라를 보았니 꿈과 사랑이 가득한 파란 나라를 보았니 천사들이 사는 나라파란 나라를 보았니 맑은 강물이 흐르는파란 나라를 보았니 울타리가 없는 나라난 찌루 찌루의 파랑새를 알아요난 안델센도 알고요 저 무지개 넘어파란 나라 있나요 저 파란 하늘 끝에 거기 있나요동화책 속에 있고 텔레비젼에 있고 아빠의 꿈에 엄마의 눈속에 언제나 있는 나라 아무리 봐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어 누구나 한번 가보고 싶어서 생각만 하는 나라 우리가 한번 해봐요 온세상 모두 손잡고새파란 마음 한마음 새파란 나라 지어요우리 손으로 지어요 어린이 손에 주세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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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택 옆에 있는 추사묘역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799-2. 충남문화재자료 제188호. 조선시대.


    본관 경주. 자 원춘(元春). 호 완당(阮堂)·추사(秋史)·예당(禮堂)·시암(詩庵)·과파(果坡)·노과(老果).
    충청남도 예산에서 출생하였다.서예에서는 독특한 추사체(秋史體)를 대성시켰으며, 특히 예서·행서에 새 경지를 이룩하였다.

     

     


    세 한 도 
                                                      

     


    한때 초막에서 샘물 길어 차 달이노라
    때는 동지섣달 긴긴 밤
    차거운 달빛이 문풍지 뚫고
    소나무 그림자 청한(靑寒)한 기운 일으키고
    돌샘물 길어 차 마시던 추사(秋史)의 넋은
    제주도 거센 바람되어 머물고
    돌 여자 바람이 많아 삼다(三多)
    거지 도둑 문이 없어 삼무(三無)
    바람 홍수 가뭄이 심해 삼재(三災)의 땅
    유배지 탐라에는 아직도 칼바람이 부는데
    정한(情恨)이 많아 애틋한 제주에
    청풍명월로 머물고 있나니
    돌하르방으로 지켜보고 있나니

     

     

     윤효선(소암)

     

     

    [ 세한도(歲寒圖) (1844)]
    이 그림은 김정희의 가장 대표적 작품이자, 조선 시대 문인화 중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이 <세한도>에 대해 평가를 하는 것 조차 불경스러운 일로 간주될 정도로 신격화, 신비화 되어 있죠. 이는 제주도 유배 중에 그의 처연한 심경을 생생하게 그려냈다고 생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 후기의 서화가 김정희(金正喜)의 문인화.
    지정번호국보 제180호
    지정연도1974년 12월 31일
    소장손창근(孫昌根)
    소재지서울 종로구 청운동 52-109
    시대조선 후기
    크기가로 69.2㎝, 세로 23㎝
    종류문인화

    1974년 12월 31일 국보 제180호로 지정되었다. 1844년(헌종 10) 작이다. 종이 바탕에 수묵으로 그렸으며, 크기는 가로 69.2㎝, 세로 23㎝이다. 서울 손창근() 소장하고 있다. 작가가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북경에서 귀한 책을 구해다 준 제자 이상적()의 인품을 송백()의 지조에 비유하며 그 답례로 그려준 그림이다.

    그림은 수묵과 마른 붓질 및 필획의 감각만으로 그려졌으며, 옆으로 긴 화면에는 집 한 채와 주위에 송백 두 그루씩이 대칭을 이루어 간략하게 묘사되어 있을 뿐 나머지는 여백으로 되었다. 오른편 상단에는 '세한도()'라는 화제와 "우선시상완당()"이라는 글과 관지()를 적었다.

    이처럼 극도로 생략 절제된 요소들은 모두 문인화의 특징으로, 작가는 직업화가들의 인위적이며 허식적인 기교주의에 반발, 의도적으로 이와 같은 수법을 쓴 것 같다. 작가의 농축된 내면 세계에서 비롯된 필선과 먹빛이 풍기는 담백 아담한 분위기는 문인화가 지향한 사의()와 문기()를 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 문인화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추사체라는 글씨체로 우리에게 유명한 서예가이자 화가였던 김정희는 조선 말기, 부패한 정치의 희생양이었습니다. 뼈대있는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출세 가도를 달리다가, 조선을 망하게 만들었던 당파 싸움에 휘말려 거의 10여년 동안 제주도와 북청에서 귀양살이를 하다가 힘들고 기구한 일생을 마쳤지요. 하지만 김정희는 그가 그렸던 대나무처럼 꼿꼿한 삶을 살았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다고 스스로 자부하였으며, 많은 이들에게 학문의 본질과 선비의 도리를 가르쳤습니다. 그의 정신 세계는 그가 그린 그림에서도 볼 수 있답니다.

    추사라는 호를 사용하는 김정희가 태어난 집안은 왕족의 후예로서, 본디부터 강직한 성품의 가문이었습니다. 전해오는 일화에는 그가 3세 때 붓을 잡고 글씨를 썼으며, 6세 때는 입춘첩을 써서 붙이기도 했다고 하니, 어렸을 때부터 그 총명함이 남달랐나 봅니다. 24세 때는 과거에 급제하고, 병조참판까지 지내셨던 아버지를 따라 청나라 여행을 하고, 조선 학문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청의 문화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세계에 감동을 받은 그는 수많은 청나라 인사들과 교류하면서 그 곳의 선진사상에 빠져들게 되었고, 이는 그의 학문세계에 반영됩니다. 또한 실학사상의 선구자였던 박제가에게 사사를 받으면서,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조선의 문화와 학문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한 거죠. 김정희는 선진학문을 탐구하면서 추사파라는 학풍을 형성할 만큼 조선의 선비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가 주장한 실사구시(實事求是)라는 학문의 정신은 근거없는 지식과 선입견으로 학문을 하지 말고, 사실적인 진리를 탐구하라는 것입니다. 즉 실험과 연구를 거쳐서 객관적이고도 논리적인 사실만을 추구하는 것이죠. 이러한 그의 정신은, 모든 사리사욕과 허영을 버리고, 정직하면서도 대상의 본질만을 압축시켜 표현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는 추사체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청나라 문인에게서 “해동제일의 문장” 이란 칭찬을 받았던 추사는 <서화불분론>이란 미술 이론을 발전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이는 시,서,화를 일치시키는 청나라 예술의 영향으로 “글씨는 그림처럼, 그림은 글씨처럼”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아마도 장승업이 들었다면 가슴을 쥐어 뜯으며 우울해 했을 얘기지요.

    김정희는 당시 최고의 엘리트로서 암행어사와 의정부 검상, 성균관 대가성을 거쳐 병초판서, 형조판서등을 두루 거치면서 출세의 가도를 달렸습니다. 그러던 중 헌종6년, 1840년 당파싸움과 세도정치의 희생양이 되어 제주도 유배길을 오르게 됩니다. 한참 그 세력이 하늘로 치솟던 중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니,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겁니다.

    권력의 무상함을 뼈 속으로 느끼며 추사는 제주도에서의 귀양살이를 자신의 학문과 예술을 재정비하는 시간으로 삼았습니다. 바닷바람이 많기로 유명한 그 곳에서 자신의 내면 깊숙히에 있는 모든 욕망을 바람에 날려보낸 것 같아요. 그 고독한 유배생활 중에 추사는 그 자신만의 독특한 서체를 정립하였으며, 많은 제자도 길렀습니다.

    특별히 그는 벗들과 차를 만들어 마시며 시를 짓는 것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참선과 차를 끓이는 일로 또 한 해를 보냈다”라는 글도 남겼을 정도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시죠? 추사와 차를 마시던 친구들은 그에 대해 “폭우나 번개처럼 당당했다”고 말합니다. 때로는 온화했으며 슬픈 소식을 들으면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하구요.

    추사는 제주도에서 풀려난 뒤에도 몇 번의 유배생활을 더 겪은 후에 관악산 기숡에서 은거하다가 71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습니다. 그의 영정처럼 하얀 수염과 고매한 문인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靜坐處茶半香初 妙用時水流花開

    고요히 앉았노라면 차가 한창 익어 향기가 나기 시작하는 듯 하고
    신묘한 작용이 일어날 때는 물이 흐르고 꽃이 열리는 듯하네

     

     

     

     

     

    [고사소요도(高士逍遙圖) (1844) ]
    고사 소요란 “뜻 높은 선비가 거닐다”는 뜻입니다. 그의 그림 중 유일하게 사람이 그려져 있는 작품이라고 하네요. 원나라 문인화풍의 간결한 필치가 엿보이기도 하는 데요, 작품의 완숙미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떨어진다고 합니다. 여느 그림처럼 가슴 속에서 붇받치는 감동에 밀려 그려진 것이 아니라 이성적인 사고로 그려진 듯하다는 평을 받기도 합니다.

     

     

     

     

     

    [ 지란병분(芝蘭竝盆) (1844)]
    “지초와 난초가 향기를 함께 하다” 는 뜻의 그림입니다. 중심부에 난초를 엷은 먹으로 그리고, 오른 쪽에 진하게 영지를 그렸는 데요, 영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이 두 가지가 추사의 정서를 보여주는 듯 조화롭게 그려져 있습니다. 왼쪽에는 대원군인 이하응과 친구 권돈인의 발문이 적혀있습니다.

     

     

    [ 부작란도(不作蘭圖) (1844)]
    문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추사의 전형적인 난화입니다. 그는 난과 대나무를 많이 그렸는 데요, 대원군도 그에게 난 그림을 배웠을 정도입니다. 특히 유배생활 중에 제주도의 한란을 많이 관찰하고, 아끼며 그 그림을 그렸다고 합니다. 그림 속의 힘찬 난을 보면, 꼿꼿한 그의 기개가 보여지는 듯 합니다. 그나 저나 그림에 도장은 참 많이도 찍혀 있네요.

     

     

    [ 영영백운(英英白雲) (1844)]
    “산천이 멀어서 옛적에는 나를 찾아 주지 않더니, 이제는 어떠한가. 아침저녁으로 서로 대하기를 바란다” 는 발문이 오른 쪽에 적혀있네요. 멀리 있는 벗을 그리워하다가 외로움의 차원을 넘어, 이제는 허허로움마저 느낄 수 있네요. 제주 유배 중에 기거하던 자신의 집을 그렸습니다. 고고한 모습이죠.

     

     

    [ 증 번상촌장(樊上村庄) 난 (1844)]
    추사가 제주 유배시절에 친구 권돈인을 위해 그린 작품이며 번상촌장은 번리에 살던 권돈인의 별서이름이라고 하네요. 왼쪽 위의 발문은 권돈인이 붙인 것입니다. “난초꽃과난초잎이 산중 서재에 있는데 어디에서 부는 가을바람이 사람의 애를 태우네 바람과서리에 쉽사리 꺽인다면 어찌 오래도록 산중 서재에 향기를 남기겠는가!”

     

     

    [ 추사 김정희 서 (1844)]
    조선 최고의 명필로 칭송받고 있는 그가 고독한 유배 생활 중에 이루어낸 예술 세계입니다. 세상의 권력과 물욕에서 벗어나 자신을 들여다 보며, 자신을 비워 창조해낸 거죠. 조선시대에는 글씨자체의 멋과 아름다움도 즐겼는데요, 글씨도 그림처럼 열정을 다하여 써 내려간 그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 묵란도 (1892)]
    대원군 이하응의 묵란도 입니다. 그는 추사에게 난치는 것을 배웠는 데요, 추사는 이하응을 조선에서 제일 가는 난 그림을 그린다고 칭찬하였습니다. 마치 벼랑에 핀 듯 바위 틈새에 피어 난초와 괴석이 어울린 석란의 모습인데요, 그림 두 폭이 짝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는 대원군이 노년의 병중에 그렸음에도 매우 깔끔하고 고결하게 그려내었습니다.

     

     

    [ 방석도산수도 (1850)]
    추사가 아끼던 제자 허유가 젊은 시절에 그렸던 그림입니다. 그림 위의 발문은 김정희가 썼습니다. 깔끔하고 고매한 정서가 전형적인 문인화의 품위를 느끼게 하고 있습니다. 젊은 감각 그대로 다소 거칠지만 나름대로 진지한 태도도 묻어나고 있네요.

     

     

    [ 묵란도 (1850)]
    추사를 무척 따랐던 조희룡의 작품입니다. 그는 특히 난초와 매화를 잘 그렸는데요, 추사는 그에 대해 “조희룡은 난초를 배워서 치지만, 끝내 화법이라는 한길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가슴속에 문자기가 없기 때문이다.”라는 평을 합니다. 이는 화법과 기교에만 치중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나름대로 절제된 표현과 힘찬 필선은 후대인들에게 인정받고 있습니다.

     

     


     

     

    일편단심 민들레

     

    토종 민들레는 근친상간(자체수정)을 않는다네

     

    님(총각)을 기다리다 못해

     

    지치면 처녀 홀씨로

     

    훨~ 훨~~

     

    하늘을 나른다네.

     

     

    글:그림/ 이요조

     

     

     

    * 외래종 민들레는 자체수정으로 씨퍼트리기에 얼마나 열심인지...삼천리 강산이 다 왜래종 민들레입니다.

    토종 민들레는 홀씨는 날려도 발아를 못합니다.

    그래서 "일편단심 민들레"란 말이 생겨 났답니다.

    왜래종 민들레는 꽃받침이 발라당 뒤로 제껴져 있고 토종 민들레는 꽃받침이 얌전히 꽃을 잘 감싸고 있답니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이나...고산에서만 토종 민들레를 가끔 만나 볼 수가 있습니다.

     

    임시보관함 끼어넣기입니다.

    날자가 틀립니다.

    흐흐~~

    글씨가 난필이라 다시 적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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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섬집아기-한인현사/이흥렬곡.

       

       

      노래 - 이성원


      1.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가면
      아기는 혼자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팔베고 스르르르 잠이 옵니다.

      2.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소리 맘에 설레어
      다못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 옵니다. 

       

       

      그림- 이요조

       

      출처: http://www.metro.seoul.kr/kor2000/s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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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름: 이요조 (yojo-lady@hanmail.net)
      2003/10/31(금) 04:21
       .  시월, 그 마지막  밤에

      그렇게 가을은 떠나고.....  
      .
       






      스산한 바람이 일고
      사람들은 웬지 모를 허전함에 따듯한 온기를 그리워합니다.
      벌써, 시월의 마지막 밤이군요.
      이리저리 흩날리는 낙엽을 창너머로 보며 괜스레 으스스해져서 옷깃을 여미고는
      황망히 주전자를 찾아내 찻물을 앉힙니다.


      그 무엇 이 우리 맘을 이토록 시리게 만드는 걸까요?
      밤이 이슥하다 못해 새벽이 오도록 내 방에 불을 끄지 못하는....
      시월의 존재 는 우리를 한없는 사색의 길로 접어들게 하나봅니다.





      .
       





      사람들은 저마다 소중한 그리움 하나,
      코트 안자락에다 을 굴리듯 그렇게 그리움 하나씩 품기 시작하는 계절입니다.
      그렇게 가슴 안에 품고있던 알이 깨어나는 날!

      차마 그리웠던 그 사랑이 행여나 돌아 올거라 굳게 믿고 싶기 때문입니다.
      쓸쓸한 계절에 그런 하나 품지 않고는 고독한 가슴을 어찌해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





      달 밝은 밤이면 가을요정의 쓸쓸한 피리소리에 낙엽이 우수수 떨어집니다.

      꼬깔모자의 작은요정은 이른 봄부터 가을이 다 가도록 수고한 모든 잎새들을
      피리소리로 불러모아 깊은 산 속으로 모두 데리고 들어가면 산은 무겁게 닫기고
      명년(明年) 봄이나 되어야 긴- 잠에서 깨어난 산이 하품을 하려 입을 크게 벌리는 사이
      잎새들은 와르르르~~ 탄성을 지르듯 모두 되돌아 올 수가 있을 것입니다.

      금새 꽃들은 앞 다투어 피어나고 우리 모두가 코트자락 안쪽 가슴에 품었던 알에서는
      깃털 고운 새 한마리 날아올라 창공을 가를 것입니다.

      떠나간 그리운 이도 분명 돌아올 것입니다.
      명년 이 오면.....



      2003년 시월 마지막 날에
      이요조 쓰다.





      .
       


      Moldova는 그(바이올리니스트/세르게이 트로파노프) 가 발표한 솔로앨범인
      [Gypsy Passion]의 수록곡으로
      서글프면서도 열정적인...
      영혼을 시리게 만드는 바이올린의 선율이 지극히 아름답습니다





      -----------------절----------------취----------------선------------------





      *postscript.......more


      ,
       
       위에 낙엽 그림은 지금 윗 그림과 함께오래 전에 그린 것입니다.
      지난 밤엔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뭘 할까 하다가 그림을 그렸습니다.
      음악을 찾았습니다.
      좋아서 하는 일은...그럭저럭 새벽 5시를 넘기고도
      아침이면 거뜬하게 일어나집니다.
      그 것도 아주 상쾌하게....
      좋은 아침입니다!!
       
       
       


                                      
                                      
                                     
      - 집시 바이올린의 대가, Sergei Trofanov - 드라마 같이 극적인
      음악, 삶의 희로애락이 묻어있는 음악, 늦은 가을의 우수를 닮은 음악,
      캐나다 출신의 집시 후예 세르게이 트로파노프의 음반
      [집시 패션]......‘검은 눈동자’, ‘두 기타”, 등 러시아 민요를 비롯하여
      삶의 고단함과 고향의 그리움을 노래한 집시 음악을 수록한 이 앨범은
      발매 전부터 몇몇 드라마의 주요 테마 (KBS 매화연가, SBS 아버지와 아들)로
      사용될 정도로 드라마적 성격이 강한 멜로디 라인이 인상적이다.
      특히 트로파노프는 국내 소개된 젤렘 (Djelem)이라는
      캐나다 출신의 3인조 밴드(바이올린, 기타, 더블베이스 구성)의 바이올리니스 겸
      리더로서 활약하고 있는데, 그들 음악 역시 드라마에 사용되어 많은 인기를 얻었다.
      그 가운데 Dorogi와 Pole는 얼마 전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며 ‘원조교제’
      논란의 대상으로 떠오른 주말 드라마 <푸른안개>와 60-70년대 청춘의 사랑을
      그린 드라마 <소문난 여자>의 배경음악으로 각각 사용되어 꽤 친숙한 음악이다.
      트로파노프는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뿐만 아니라 작곡가로서도 활동하고 있다.
      이번 앨범에 실린 ‘Moldova’, ‘Corsica’, ‘Adios’ 등은 클래식 스타일에
      집시 음악의 정서를 가미한 월드 음악적 성격을 띄고 있다.
      무엇보다 트로파노프의 장점은 다양한 음악을 구사한다는 것이다.
      클래식, 민속음악, 뉴에이지 풍의 월드 뮤직, 집시 음악 등 실로 다양한 음악이
      이 앨범에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
      몰다비아 출신인 그는 현재 몬트리올에서 거주하고 있다.
      키치네프 음악원에서 수학했고 국립민속음악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 활약했다.
      그 기간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많은 페스티벌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는 탄탄한 음악적 배경과 동서유럽의 광범위한 음악을 두루 섭렵하며
      많은 경험을 얻었다. 또한 그는 집시 음악의 대가로서 루마니아, 헝가리, 불가리아,
      우크라이나, 러시아, 유대 음악까지 꽤 많은 음악을 해석하였다.
      트로파노프는 다른 국적을 가진 연주자들을 모아 Djelem을 만들었다.
      이 다국적 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밴드와 더불어 그는 북미 청중에게
      그가 자랑스럽게 물려받은 짚시의 오랜 음악적 유산을 그의 확고한 신념을 토대로
      그만의 독특한 해석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는 우리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여행으로 이끌기 위해 여러 다양한 문화에서
      꽃피운 음악을 선곡한다. 때로 리듬과 선율이 색다른 지역의 음악에 까지 우리를 초대하는데,
      이는 동서양을 넘나들며 동양의 영향을 많이 받은 유럽 국경지역의 음악이나
      광대한 러시아 들판에서 날아온 꽤 익숙한 음악까지 포함된다.
      세르게이 트로파노프의 음악은 이국의 세계와 꿈의 세계로 인도한다.
      또한 다양한 감정의 세계을 일깨우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멜랑콜리하면서 즐겁고, 놀랍고도 흥겨우며, 서글프면서도 열정적이다.
      그는 모든 문화는 각각의 고유한 음악적 전통을 갖고,
      그 음악적 언어는 세계적임을 환기시킨다.
      -<오이뮤직에서>-
       
       
       Moldova
      Corsica
      Adios
      La Boheme 
       
      .
      .
      ◎ 이름: 이요조 

      2004/10/31(일)
       
      해마다 시월 마지막 밤이오면 잠이 오질 않았답니다.
      시린...가을밤과 함께 오기로 맞서서 
      오는 11월을 맞으려는 심산인지....
      지난 해 그려둔 그림을 다시 한 번 더 울궈먹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세르게이 트로파노프'의 바이올린 만큼
      가을의 심금을 울려줄 음악..아직 못 만났거든요.
      ,시월의 마지막날~` 
      짚시, 바이올린의 Moldova 음률이 
      가슴에 낙엽처럼 떨어져 쌓이는 밤입니다.
      모두 행복하시기를.....
       
      이요조. 
       
       이름: 이요조
       2002/1/4(금) 16:04 (MSIE5.0,Windows98;DigExt) 210.183.3.64 1024x768
      photoleft_dna.GIF (33KB, DN:18)

      정초에 그린 그림 2  

      .

      클릭해서 자세히 드려다보면 '매직아이' 같아요~~
           
      어제 컴텨다운 후

      인터넷이 되질 않는다.

      as man 올 때까지
      동안, 윈도우 열어서 그림이나 그렸다.

      말띠 해,
      말은 웬지 그 높은 기상이 남성적이다.
      '유니콘'은 후ㅓㄹ훨 나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하늘을, 우주를 생각했다.

      밤하늘 수많은 별들을 떠올렸다.

      은하계도...
      그럼 땅은...지구는?
      땅은 모성이다.
      고로 여성이다.

      나는 인터넷으로 들어 갈 수 없는 외곽에서
      오늘, 우주를 그려본다.  ㅎㅎㅎ~~~



      이요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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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ㅎ~

      하 오래된 글이라 음악마저 먹통이군요.

      윈도우 그림판으로 그림을...지금 생각하면,,,

      에효효~단연~못하지요.

      무슨 열정으로 ..그렸는지...

      2002년 1월4일 그림, 그림창고에 두려고 챙겨와봤어요~~~

      바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챔발로 연주

       
       

      .

      [베토벤]월광 소나타 제 3악장-굴렌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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